창의적 플레이 막는 한국축구 - 제주UTD 알툴감독 |
한국프로축구연맹 | 08.09.16등록일자 |
짧은 패스 위주의 플레이가 제주의 강점
2007년 K-리그를 기억하는가? 리그가 시작됨과 동시에 또다시 어김없이 시작된 성남의 1위 독주와 그 아래를 바짝 쫓으며 치열한 순위 다툼을 벌인 수원. 그리고 좀처럼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6강 플레이오프 대진에서 우승을 향한 각 팀들에 끝없는 접전 끝에 결국 우승컵을 차지한 팀은 브라질에서 불어온 ‘삼바 매직’ 파리아스 감독이 이끄는 포항이었다.
그리고 2008년 K-리그에는 지금 또 다른 브라질 돌풍이 일어나고 있다. 그 돌풍의 주인공은 K-리그에 ‘알툴 매직’ 을 보여주고 있는 제주 유나이티드의 감독, 알툴 베르날데스. ‘알툴 매직’ 의 진정한 모습과 그가 생각하는 K-리그에 대해 묻기 위해 가을의 따스한 햇살 속에 9월 12일 울산과의 2군 경기가 열릴 강창학 구장에서 그를 만났다.
- 한국에 온지도 벌써 8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적응은 완벽하게 했나.
물론 완벽하게 끝났다. 하지만 딱 하나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아직 한국어에 서툴다는 점이다. (웃음) 축구 용어나 '빨리 빨리‘ 와 같은 쉬운 말은 할 줄 알지만 일상에서 쓰는 단어들은 아직 서툴다. 그래도 늘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지역을 거치면서 또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지만 제주 유나이티드가 동아시아권에서는 처음으로 맡는 팀이었기에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조금은 난감했었다. 하지만 같은 브라질 출신의 파리아스 감독이 한국의 축구 수준이나 문화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정서에 대해서도 많은 조언을 해주어서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제주도는 내가 어릴 적에 살던 고향과 비슷하다. 내가 어릴 때 브라질에서 살던 곳도 축구 열기가 높고, 해변가에 위치해 있던 아주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제주도는 내 고향과 비슷한 점이 아주 많기 때문에 적응하는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개인적으로 제주도가 축구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생각한다. 제주 도민들도 너무나 친절하고 이곳의 경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아름답다. 이런 곳에 있는 팀에 감독으로 오게 된 것을 정말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 시즌 초 힘든 경기를 치른 제주였다. 하지만 시즌 중반부터 상승세를 타기 시작해서 지금은 확 달라진 모습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데, 그동안 훈련이나 경기를 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이나 선수단에게 특별히 주문한 점이 있다면.
어느 팀의 감독을 맡든 당연히 처음은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보통 적응기간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를 잡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제주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최단기간으로 3개월 정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작년 시즌 제주 유나이티드를 분석하면서 이 팀에 기본적인 성격을 파악했고, 리그가 시작되고 다른 팀들과 경기를 치르면서 한국 축구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그 후에 내가 여러 리그를 거치면서 쌓았던 유럽 축구와 남미 축구에 대한 경험을 기반으로 한국 축구와 접목을 시키려고 노력했는데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또한 다른 리그에 비해 한국선수들은 아주 영리하고 자신이 어떻게 경기 중에 플레이를 해야 하는지 금방 알아낸다. 그 점을 이용하기 위해 선수들에게 창조적으로 원 터치나 투 터치를 강조하는 짧은 패스를 주문했다. 처음에는 선수단도 체력적으로 힘든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짧은 패스 위주의 플레이가 무엇보다도 우리 팀의 강점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선수들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을 때에는 선수들이 경기 중에 내 바람과 다른 플레이를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가 바라보기만 해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즉시 행동에 옮긴다. 한국축구를 이해하기 위한 나의 노력과 리그를 거치면서 선수들과 쌓은 신뢰가 지금의 제주 유나이티드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 그렇다면 감독이 직접 생각하는 제주 유나이티드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 팀의 단점은 골이 잘 터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터치 패스를 하면서 공을 골라인 근처까지 끌어올려 좋은 기회를 만들어 내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해 골을 못 넣고 있다. 아마 그동안 있던 수많은 기회에서 70%만 넣었어도 지금 K-리그 순위는 바뀌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경기를 분석해보면 패스 점유율은 늘 우리 팀이 높았고, 늘 우리와 경기를 치르고 나면 힘든 경기를 치렀다는 평가가 다분하다. 원·투 터치의 짧은 패스와 높은 패스 점유율이 우리 팀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패스 점유율을 유지하면서 골 결정력을 높이기 위해 선수들도, 나도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 포백 시스템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팀의 기본적인 포메이션은 4-5-1 포메이션이다. 포백을 기본으로 수비형 미드필더 두 명을 두고, 나머지 선수들이 유기적으로 미드필더 라인과 공격 라인을 이루는 것이 기본적인 형태인데, 포백을 선호하는 이유는 내가 윙백을 중심으로 넓은 공간을 활용하는 플레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저 이론적인 설명일 뿐이고 그 날 상대하는 팀의 전술에 따라 포메이션은 늘 달라지기 마련이다. 또한 그 날 출전하는 선수의 역량에 따라서도 포메이션은 유기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선수들 아주 영리, 한국축구 브라질만큼 성장할것
- 자신만의 축구 철학이 있다면.나에게 축구란 ‘정밀한 과학’ 이다. 모든 것이 기록을 기반으로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단체생활을 정말 중요하게 여긴다. 선수들뿐만 아니라 코칭스텝도 일정한 환경에 적응하고 정해진 스케줄을 규칙적으로 따라야만 한다. 그런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큰 결과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축구가 정밀한 과학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경기 결과는 나도 예측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것이 진정한 축구의 묘미가 아닐까.
ⓒ 제주 유나이티드
그리고 나는 축구가 축구를 하고 있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축구를 보는 관중들 역시도 함께 즐거울 수 있는 ‘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기 중에 늘 많은 볼거리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며 선수들에게도 늘 경기 중에는 적극적이길 강조한다.
- 여러 프로리그에서 많은 경험을 했다. 혹시 모델로 삼는 축구 또는 팀이 있는가.
완벽하게 모델로 삼는 팀은 없다. 늘 그 팀의 장·단점을 동시에 보려고 노력을 하는데, 레알 마드리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같은 경우에는 구조적으로 잘 이루어져 있는 팀이면서 관중들에게 늘 많은 볼거리를 주기 위해 노력하는 좋은 팀이다.
- 많은 축구 리그를 경험했는데 감독님이 경험한 각 지역의 축구에 대해서 평가 해 달라.
유럽리그와 남미 축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창조성’이다. 물론 남미 축구 선수들과 유럽 리그 선수들의 피지컬적인 면이 차이나기도 하지만, 유럽 리그의 팀들이 일정한 틀이 정해져 있는 세트피스나 조직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비해 남미 축구는 선수의 개인기를 바탕으로 한 창조적인 플레이를 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중동 축구는 아프리카 피가 섞인 중동 인들하고 순수 중동 인들과 함께 섞여서 축구를 하기 때문에 아프리카 특유의 빠른 스피드가 일품이다. 하지만 주목을 받는 성인 축구에 비해 근본적으로 유소년 축구의 기반이 전혀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중동 축구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유소년 축구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동아시아권의 국가는 한국이 처음이고 한국에 온지 1년도 채 되지 않아서 아직 아시아 축구에 대해 평가하기는 조금 이르지만 다른 리그에 비해 동아시아권의 선수들이 아주 영리하다. 수십 년 내에 세계 수준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조국 브라질과 한국의 축구 문화에 대해서 비교하자면.
브라질은 정말로 축구를 위해 사는 나라이다. 브라질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는 그 순간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이 어느 팀을 지지할지를 생각할 정도이니. 나 역시도 아버지 손에 이끌려 자연스럽게 브라질에 있는 플라멩고 팀을 응원했었다. 하지만 브라질에 비해 한국은 아직 축구 열기가 부족하고, 써포팅 문화가 덜 정착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볼 수 있었듯 한국인들의 축구 사랑은 정말 대단하다. ‘써포팅’ 이라는 문화가 K-리그 내에 조금 더 자리 잡는다면 K-리그에서도 수 만의 써포터를 자랑하는 팀들이 하나 둘 씩 생겨나게 될 것이다.
또 하나 덧붙이자면, 브라질 선수들은 워낙 어릴 때부터 축구를 시작하고 선천적으로 타고난 기량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재미있는 축구를 구사하지만 감독이나 코칭스태프의 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늘 나의 말을 잘 들어주고 축구 지도자들의 경험을 존경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그들은 무척이나 영리하다. 조금의 시간이 더 지나면 한국 축구가 브라질만큼 성장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축구, K-리그 발전 위해서는 지도자 교육 중요
- K-리그를 경험한지 8개월이 넘어가고 있다. K-리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많은 경험을 거쳐 왔지만 나에겐 유달리 힘든 리그이다. 팀 간의 수준차가 많지 않기 때문에 매 경기가 늘 중요하며, 팀들의 색깔이 뚜렷해 모든 팀들이 나에게는 어렵고 까다롭다. 하지만 팀의 수준차가 크게 나지 않는 것에 비해 K-리그에 있는 선수들의 수준이 아주 높고, 지금 당장 유럽으로 진출해도 손색이 없을 선수가 많다. 이런 선수들을 지도자들이 조금 더 키운다면 제 2, 제 3의 박지성도 무리 없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리그 자체가 조직적인 플레이를 강조하기 때문에 선수 본연이 가지고 있는 개인기를 이용한 창의적인 플레이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관중들은 팀의 탄탄한 조직력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뛰어난 개인기에 더욱 즐거움을 느낀다. 탄탄한 조직력을 바탕으로 선수들의 창의적인 플레이를 더욱더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된다면 관중 몰이 또한 성공할 것이다.
- 현재 한국 또는 아시아축구가 국제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다. 본인의 경험으로 볼 때 한국 축구의 가장 취약한 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외국에서 온 내가 한국 축구의 장·단점을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한국에는 좋은 선수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한국 선수들의 피지컬은 점점 축구하는데 유리하게 변화되고 있고, 이들의 영리함은 이미 국제무대에 진출한 몇몇 선수들에 의하여 증명되지 않았는가.
내 생각에는 지금이 한국 축구의 과도기와 같은 시점이고, 무엇이 문제라고 짚기에는 내가 한국에 머문 시간이 너무나도 짧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기적인 발전을 원한다면 유소년뿐만 아니라 지도자 교육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선수는 자체적으로 클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역량을 지닌 선수라고 할지라도 좋은 지도자를 만나지 못하면 그 선수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면 지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이제 서울, 수원, 울산 등 강 팀들과의 경기만이 남아있다. 6강 플레이오프를 위해서 꼭 이겨야 하는 경기들인데 이 경기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점은.
강팀들과의 경기가 남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에 특별히 구애받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 나의 제주 유나이티드를 믿으며, 우리 선수들은 어느 팀과 경기를 한다 할지라도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 걱정되는 것은 지금 팀에 부상 선수들이 많다는 점이다. 예상하지 못한 부상이 너무 많이 생겨서 앞으로 선수단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지 고민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태까지 준비한 대로만 한다면 6강 플레이오프에는 당연히 진출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 K-리그 팬들은 감독의 계약 기간이 올해까지라는 사실에 아쉬움이 크다. 계속해서 제주를 이끌어줄 의향이 있는가?
물론이다. 제주도가 너무 좋고 내가 맡고 있는 이 팀이 너무 좋다. 하지만 무턱대고 내가 원한다고 계속해서 이 팀의 감독을 맡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내가 계약을 연장할 시에 생길 문제점에 대해 구단과 이야기가 거친 후에 조화롭게 합의된다면 제주를 오랫동안 맡아 한 번쯤은 우승 하고 싶다.
- 올 시즌 목표는?
당연히 목표는 우승이다. 나는 어느 지역의 팀을 가더라도 목표를 꼭 우승으로 잡는다. 작게 생각하면 그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내가 국가대표 팀의 감독을 맡는다고 해도 목표는 16강 진출, 8강 진출이 아닌 우승이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좋은 결과를 갖게 되는 법이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우리 팀을 믿는다. 제주 유나이티드를 지켜봐 달라.
K-리그 명예기자 강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