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박주영이 아니다 … 반박자 빠른 슛으로 3경기 연속골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던 ‘천재’는 전사가 됐다. 전쟁터 같은 유럽 축구무대에서 생존하는 법을 터득했다. 박주영(24·모나코)이 달라졌다. 요즘 쉽게 쉽게 골을 넣는다. 몸싸움을 즐기는 적극성과 90분 내내 뛰는 체력, 여기에 부쩍 길어진 턱수염이 그의 강인함을 드러내 보인다.

    박주영은 24일(한국시간) 르망과의 프랑스리그 19라운드 원정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었다. 3경기 연속 골이다. 0-1로 뒤지던 후반 4분 프랑수아 모데스트가 크로스를 올리자 문전을 향하던 스피드를 살려 오른발만 살짝 갖다 댔다. 르망 수비수 2명이 달려드는 상황이었지만 간결한 슈팅동작이 돋보였다.

    ◆90분 쉴 새 없이 뛰는 체력=박주영의 ‘천재 신드롬’이 한국 축구계를 강타했던 2004년 말, 그의 대표팀 발탁은 당연한 듯 보였다. 하지만 당시 대표팀을 맡고 있던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은 “박주영은 후~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일침을 가했다. 유럽 무대를 오래 경험한 노장의 지적은 예리했다. 본프레레 감독의 뒤를 이은 딕 아드보카트 감독도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박주영을 대부분 벤치에 앉혀 놓았다. 프랑스 데뷔 무대였던 지난 시즌 박주영은 5골(5도움)을 넣었다. 성공도 실패도 아니었지만 주전 공격수로 뛰기엔 모자라는 기록이었다.

    하지만 유럽에 진출한 보람은 있었다. 훈련이 달랐다. 90분을 쉴 새 없이 뛸 수 있는 체력과 건장한 유럽 선수들과 몸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역량이 자연스레 길러졌다. 딱 절반이 지난 올 시즌, 벌써 6골을 넣어 지난 시즌 기록을 넘어섰다. 대표팀에서 한동안 골 소식이 없던 박주영의 득점 행진이 재개된 것도 지난 6월부터였다. 6월 이후 대표팀이 기록한 9득점 중 3골이 박주영의 발에서 나왔다.

    박주영의 에이전트인 이동엽 텐플러스스포츠 사장은 “체력훈련의 강도가 한국보다 훨씬 세다. 특히 올 시즌 부임한 기 라콩브 감독의 훈련은 혹독하다. 따로 개인훈련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팀 훈련을 잘 소화하면서 근육량도 늘었다”고 말했다.

    박주영은 올 시즌 18경기 중 9경기를 풀타임 소화했다. 부상으로 뛸 수 없었던 경기를 제외하면 대부분 경기를 끝까지 뛰었다. 특히 경기가 몰린 이달 중순부터 진가가 드러났다. 박주영은 8일 사이 열린 3경기에서 모두 골을 넣었다.

    ◆반 박자 빠른 슈팅=2004년 아시아 청소년선수권대회 중국과의 결승전 골 장면은 박주영의 ‘천재 신드롬’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슛을 날릴 듯 날리지 않는 박주영의 템포 조절에 중국의 수비수들은 낙엽처럼 쓰러졌다. 하지만 프로 무대에서 볼을 끄는 그의 스타일부메랑처럼 약점으로 돌아왔다.

    요즘 박주영의 골 장면은 공격수의 교과서와 같다. 최근 3경기 연속골 모두 반 박자 빠른 슈팅 타이밍으로 만들어냈다. 21일 리옹과의 17라운드 동점골은 헤딩 패스를 발리슛으로 연결했다. 17일 렌과의 16라운드 결승골도 헤딩으로 넘어온 볼에 지체 없이 오른발을 갖다 댔다.

    이동엽 사장은 “프랑스 축구에 적응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붙었다. 주저 없이 슈팅을 할 수 있는 편안한 마음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19라운드를 끝으로 휴가에 들어간 박주영의 다음 경기는 내년 1월 14일 열리는 몽펠리에전이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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