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2009년 후반기 K-리그를 달군 핫 이슈 중 하나는 '조광래 유치원'이었다. 프로 1, 2년 차의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팀을 꾸린 조광래 감독의 경남FC는 시즌 중반까지의 부진이 언제였냐는 듯 후반기에 5연승을 포함 10경기에서 8승을 거두며 막판 6강 플레이오프 싸움의 판도를 흔들었다. 비록 정규리그 최종전에서의 패배로 6강 진출엔 실패했지만 조광래 감독과 어린 선수들이 보여준 도전은 과거 펠릭스 마가트 감독의 슈투트가르트나 현재 아르센 벵거 감독의 아스널에 비견됐다.
조광래 감독은 조광래 유치원의 진정한 도전이 2010년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경남의 2010년 목표를 K-리그 정복에 맞췄다. 재정적으로 취약한 도민구단의 현실적인 목표를 상회하는 조광래 감독의 꿈에 많은 이들은 콧방귀를 낀다. 하지만 경남 부임 직후 3년 차에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던 조광래 감독은 자신의 꿈에 차근차근 다가섰다. 그리고 < 누드토크 > 를 통해 자신의 축구관과 경남의 우승을 자신하는 근거를 조목조목 밝혔다.
- 리그 개막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2010시즌을 앞둔 심정은? 이전의 두 해보다 일찍 준비를 시작했는데 걱정했던 것보다 괜찮다. 대부분의 선수가 잔류했고 신인 선수들도 좋은 재능을 보여주고 있다. 인디오가 나가는 바람에 걱정도 했지만 그 못지 않은 능력을 지닌
루시오와
마르셀로가 조기에 합류했다. 전에는 시즌 직전에 팀이나 한국 스타일에 적응이 안된 상태에서 시즌에 들어서다 보니 자기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팀과 부조화가 발생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특히 우리처럼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큰 팀은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아마 개막전부터 안정된 페이스로 경기를 펼치지 않을까 싶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부분이 있다면? 선수 층의 문제다. 경험 많은 대표급 선수가 2~3명만 있어도 그 팀은 안정감이 생긴다. 주요 포지션에서 나머지 선수들을 리드할 선수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부분이 약하다. 2009년에 10무를 기록했는데 그 중 3~4경기만 잡았어도 우리는 여유 있게 플레이오프에 갈 수 있었다. 페이스를 초반부터 유지하지 못하는 게 약점이었는데 지난해 리빌딩을 통해 자리 잡은 선수들이 경험이 쌓이며 어느 정도 보완됐다.
- 지난해 기존 선수들을 대거 방출하고 신인들을 중심으로 리빌딩을 시작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나는 그런 상황이 굉장히 흥미롭다. 선수를 키워서 팀 전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지도자로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이다. 과거 재정적 지원이 훨씬 좋은 팀에서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생활해 봤지만 그때도 언젠가는 열악한 상황에 있는 팀을 정상으로 끌어올려보겠다는 욕심을 가졌었다. 경남을 선택한 것은 그럼 꿈이 있어서였고, 자신이 있었다. 지난 2년 동안 그 꿈을 조금씩 이뤄갔다고 생각한다.
- 선수들을 프로 무대에서 육성하는 데 느끼는 애로사항은 무엇인가? 아마추어 무대에서 배운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이다. 우리가 올해 신인 1순위로 뽑은 이경렬의 경우 성실하고 장점이 많다. 하지만 수비수로서 상황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 대학 시절 강하게 부딪힐 줄만 알았지 상대에 맞춰 자신의 플레이를 조절하는 판단력은 지금 프로 선수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윤빛가람도 마찬가지다. 수비 가담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는 프로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경기에 투입해보면 아마추어에서 올라온 선수들이 지닌 문제가 금새 노출된다. 아마 습관을 고치는 데 6개월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텐데, 프로에서 뛰어야 할 선수가 그런 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아쉽다고 느낀다. 대다수 선수들이 그 같은 문제를 보이는데 보다 아래 단계에서 제대로 된 훈련을 받아 올라와야지 스무살이 넘은 선수가 프로에 와서 그런 문제로 경기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은 한국 축구 전체가 책임을 느껴야 할 문제다.
- 경남은 다른 팀에 비해 번외 지명 선수들의 활약도가 더 높다. 나는 한 가지만 특징이 있어도 그 선수를 뽑는다. 강점이 있다면 그걸 최대한 살리고 나머지 문제는 우리가 보완해주면 된다. 능력이 고루 좋지만 평범한 선수보다는 한 가지 장점이 확실한 선수가 더 성장할 수 있다. 그 기준으로 택한 게 성공 케이스가 많다.
- 선수들 얘기를 들어보니 감독이 웃으면서 비수를 꽂는다고 한다. 그래서 더 무섭다는데? 심하게 야단 칠 수 있지만 운동장에선 즐겁게 얘기해야 더 효과적으로 지시가 먹힌다. 게으른 선수가 눈에 보이면 "야, 좀 쉬어라. 내가 들어가서 대신 뛸게"라고 하는 식이다. 농담이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생각하게 된다. 야단만 치면 그 순간에 종료된다. 생각할 기회를 주는 거다. 어려움을 못 느끼면 자신의 문제가 뭔지 돌아보지 않게 된다.
- 어린 선수 육성에 대한 관심이 남다르다. 어떤 계기에 의해선가? 1976년 세계대학선수권이 우루과이에서 열렸는데 그 대회에 참가해 우승을 거뒀다. 대회를 치르는 동안 남미에서 전지훈련을 가졌는데 그때 어린 선수들의 훈련과 경기를 유심히 지켜봤다. 당시 남미의 훈련 방식이 우리와 완전히 달랐다. 그때 느낀 게 "브라질 선수들이 과연 타고 나서 잘하는 것인가? 아니다. 훈련 프로그램의 차이다"였다. 민첩성 같은 부분은 우리가 더 빠르다. 그런 장점을 이해도 높은 훈련으로 끌어올리면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1987년에 현역에서 은퇴한 뒤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린 선수를 가르치는 방식에 관심을 기울였다. 유럽으로 건너나 스페인, 프랑스, 독일을 돌아다니며 선진 축구를 관전하고 훈련 방식을 배웠다. 프랑스 연수 시절에 옥세르를 방문했는데 그 팀의 시스템이 독특했다. 프랑스 전역의 어린 선수를 데려와 조기에 육성하고 있었다. 옥세르 관계자에 물었더니 자기네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고 했다. 중위권 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면서 선수를 육성하는 것이 현실적 목표라고 했다. 옥세르의 훈련장이나 경기장을 가면 늘 스카우트와 에이전트들이 바글거렸다.
- 안양LG 감독 시절의 유망주 영입은 그 영향인가? 그때 품은 꿈을 시작하는 데 10년이 넘게 걸렸다. 안양LG 부임 2년째이던 2000년에 K-리그 우승을 한 뒤 코치들을 모아 놓고 얘기했다. "앞으로 대학생을 뽑지 말고 고등학생을 뽑자." 그래서 선발된 선수들이 최태욱,
박용호, 김치곤,
최원권, 김동진이었다. 그런데 그 선수들도 습관을 고치기엔 시기가 늦은 것 같았다. 더 빨리 선수를 영입하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중학생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해보지 않은 실험을 해 보고 싶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중학생들을 스카우트하기 시작했고 그때 한동원, 안상현,
고명진,
이청용이 왔다. 중학생 선수들에겐 체력 훈련을 금지시켰다. 2군 시합에 선수들을 내보냈는데 나이가 많은 선수들을 상대로도 기술 있는 어린 선수들이 압도했다. 그때 조기 육성의 중요성을 확신했다.
- 어린 선수를 뽑는 데 있어 기준은 무엇인가? 최우선 기준은 플레이가 얼마나 지능적이냐였다. 체력과 스피드는 어차피 그 연령대에나 통하는 것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축구 지능은 선천적인 부분이 크다. 신체적 능력은 피지컬 훈련을 통해서 키울 수 있다. 처음 뽑을 때는 힘과 스피드에 의존하는 선수가 두각을 나타내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지능적인 선수가 이긴다.
-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이청용도 그런 경우였나? 그렇다. 청용이는 굉장히 지능적인 선수다. 거기에 스피드까지 갖췄다. 드리블링이 굉장히 특이한데, 우리는 보편적으로 공간을 찾아 나가지만 청용이는 사람을 향해 정면 승부를 펼쳤다. 당시 중학교 무대에서 크게 돋보인 선수는 아니었지만 특별한 능력을 갖췄다는 걸 포착했고 영입했다.
- 2009년 후반기와 달리 전반기는 혹독했다. 다수의 선수를 내보내고 어린 선수로 경기를 한 대가였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용이 저조했던 건 3~4경기 뿐이었다. 마무리 작업이 안 돼 어려웠다. 인터뷰를 하면서 경기를 못했다고 선수들을 질타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과정상 잘못된 게 있다면 지적해도 결과만 놓고 비판하진 않았다.
- 안탈리아 전지훈련에서 3-4-3 포메이션을 주로 가동했다. 공격은 지난 시즌처럼 스리톱 형태로 가지만 수비는 포백이 아닌 스리백으로 가려고 한다. 우리 수비수들의 경험이 떨어지기 때문에 안정감이 더 우선이다. 가마 코치도 동의했다. 더 이상의 선수 영입은 없다. 지금 자원 중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한다. 현재는
김주영, 박민, 이용기가 가장 낫다. 스리톱 조합은
김동찬, 마르셀로, 루시오로 가는데 어느 팀을 상대로도 골을 넣을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
미드필드와 공격은 상황에 따라 조합을 달리할 것이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미드필드다. 허리를 주도해야 경기를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은 내 축구의 근간이다. 우리는 중앙 지역에서 돌파해 들어가 만드는 득점이 많은데 비해 다른 팀들은 측면에 공격 루트가 몰려 있다.
- 올 시즌 목표를 우승이라고 당당히 밝혔다. 그러자 '어떻게 경남이 우승을 한다는 것이냐?'는 반응이 대다수다. 알고 있다. 큰 목표를 갖고 도전해야 선수들에게 도움이 된다. 목표 없이는 큰 사람이 될 수 없다. 실현 불가능한 목표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능성은 있다. 나는 누구보다 국내 축구의 특징과 성향을 잘 안다고 자신한다. K-리그에는 절대 강자가 없다. 리듬을 타면 금새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간다. 2009년 후반기에 경남은 경기 내용과 결과를 모두 잡는 컬러를 보여줬다. 경기를 지배하면서 이겼다. 당시의 상태를 시즌 초반부터 유지한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 우승이라는 생각으로 훈련과 경기에 임할 때 더 강해진다. 한번 지켜봐라. 선수의 질도 중요하지만 경기 운영과 조직력을 뛰어넘을 수 있는 특수성이 한국 축구엔 있다. 올해는 슬로우 스타터 성향에서 탈피하겠다. 그러려고 훈련도 일찍 시작했고 외국인 선수 합류, 전지훈련 모두 전보다 빠른 시점에 가져갔다. 지난 2년과 같은 실패는 올핸 없을 것이다.
인터뷰=서호정 기자/사진=경남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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