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리더십 비결은 ‘겸손, 합리, 결단, 단결’
김세훈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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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우(연세대)는 파라과이전에서 골을 넣은 뒤 벤치로 달려와 부상으로 뛰지 못한 오재석(경희대)을 덥썩 끌어안았다. 구자철(제주)은 골을 넣자마자 홍명보 감독 품에 와락 안겼다. 벤치 멤버들도 골이 터지는 순간 어김없이 자리를 막차고 나와 골세리머니에 동참했다.

홍 감독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벤치에 앉아있는 후보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현재 이집트에서 열리고 있는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보여준 한국 청소년대표팀 모습이다. 오직 승리를 위해 하나로 똘똘 뭉친 게 8강행 원동력이었다. 그 지휘자는 홍명보 감독이었다.

홍 감독은 스타 출신 감독이 자주 실패해온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몸을 낮춰 더 준비를 했고, 그늘진 곳을 더 챙겼다.

#겸손의 리더십=홍 감독은 청소년대표팀 코치진 구성부터 몸을 낮췄다. 이케다 세이고(일본) 피지컬 코치를 영입한 게 그랬다. 홍 감독은 일본으로 건너가 우라와 레즈 구단에 읍소해 이케다 코치를 초빙했다. 우리 선수들이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쾌조의 몸상태를 유지한 것은 이케다 코치의 공이 절대적이다. 홍 감독은 “피지컬 트레이닝은 내가 모르는 분야”라면서 “나보다 전문가를 모셔 그분에게 모든 걸 맡기는 게 맞다”고 말했다.

홍 감독은 눈높이를 선수들과 맞췄다. 선수들에게 먼저 장난을 걸고 농담도 먼저 건넸다. 감독 먼저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선수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홍 감독은 파주트레이닝센터에서 일하는 식당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에게도 깍듯이 예를 갖춘다. 홍 감독은 “이분들이 없으면 대표팀도 없다”고 말하며 이들은 “역대 모셔본 감독 중 우리를 가장 잘 대해준다”고 답례한다.

#합리적 리더십=홍 감독은 기성용(서울)의 대표팀 합류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아예 기성용이 없다는 전제로 선수단을 구성했다. 또 수비진은 대학생으로 꾸렸다. 수비는 고정된 멤버가 하는 반복 훈련이 생명. 오랜 합숙이 어려운 프로 선수들을 수비수에서 배제시킨 이유다.

홍 감독은 또 세계대회를 한달 앞두고 시작한 마지막 합숙훈련 중 초반 2주 동안 프로선수들을 주말마다 소속 구단으로 돌려보냈다. 홍 감독은 “규정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며 반쪽 훈련을 감수했고 그게 오히려 선수들을 감동시켰다. 통역 차영일 대리는 “한국에서 태어난 네덜란드 감독과 일하는 기분”이라고 평가한다.

#결단의 리더십=지도자는 고뇌하되 결단은 빨리 해야 한다. 홍 감독은 결정적인 순간에 승부수를 던질 줄 알았다.

홍 감독은 K리그 신인왕 출신 이승렬(서울)을 조별리그 1차전 선발로 세웠다가 실패하자 곧바로 벤치로 돌렸다. 이승렬은 파라과이전엔 아예 뛰지 못했다. 주전 골키퍼도 전격 교체했다.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온 주전을 동시에 빼는 결정은 확신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멀티 플레이어 김민우를 히든카드로 쓴 승부수는 기가 막히게 적중했다.

#단결의 리더십=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팀워크다. 홍 감독은 지난달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감독이든 코치든, 스타든 무명이든, 장비 담당자든 버스 운전사든지 모두 우리 팀에서는 똑같은 팀의 일원일 뿐”이라며 “팀워크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스타라도 해도 내치겠다”고 말했다.

훈련 중에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도 팀워크를 위해서다. 홍 감독은 좋은 장면이 나오면 플레이 자체에 대해 칭찬하며 잘못된 동작이 나올 경우 그 동작 자체만 지적한다. 홍 감독은 “이름을 부르고 칭찬하면 감독이 특정 선수를 편애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면서 “플레이만 지적하고 칭찬하면 선수들이 경쟁적으로 서로 배우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 관계자는 ”홍 감독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면서 “그게 대표팀 전력을 극대화시키면서 기대 이상의 성적을 올릴 수 있는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김세훈기자 sh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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