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착하라…괜찮아…공포 털고 탈출
사고 몇분만에 런던 병원 비상체제 갖춰
구조대 바로 출동…시민들 팔걷고 도와
“혼돈스럽기는 하지만 공황 상태는 아니다!”
128년만에 최악의 테러공격을 받은 영국 런던 지하철 현장에 대해 현지 언론들은 이렇게 표현했다. 언론들은 불의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런던 시민과 당국이 비교적 차분하고 침착하게 대응했다고 전했다. 분석가들은 영국인들이 수십년동안 아일랜드공화군(URA)의 테러와 맞서온 경험이 침착한 대응에 한몫한 것으로 평가했다.
올드게이트이스트역으로 진입하던 지하철에 탔다가 바로 앞 칸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을 목격한 스콧 웬번은 “오전 8시 50분께 출입문에 기대고 있다가 꽝하는 소리와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차량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며 “곧바로 승무원들이 와서 공포에 떨 필요는 없다며 승객들의 대피를 도왔다”고 전했다.
그는 “폭탄이 터진 차량은 파편과 찢겨진 금속 조각으로 가득했고 차량이 완전히 구겨져 한쪽으로 튕겨져 나갔으며, 철로 위에는 주검이 세구 있었다”고 테러발생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30분이 걸려 역으로 빠져나왔으며 온몸에 피를 흘리는 등 부상자들이 즐비했으나 심한 공포에 빠진 사람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킹스 크로스역을 막 출발한 피카디리선을 탔던 <비비시방송> 재키 헤드는 “갑자기 폭음과 함께 기차가 흔들리며 멈췄고 연기가 솟아나면서 사람들이 공포에 빠져 울거나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고 사고 순간을 설명했다. 헤드는 “곧이어 일부 사람이 ‘침착하라. 괜찮을 거다’는 말을 해 평정을 찾기 시작했다”며 “사람들은 힘을 합쳐 문을 열었고 차오르던 연기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 얘기를 나누면서 평정을 찾고 일부는 유리를 깨고 탈출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그는 “질식하거나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무서운 생각을 하기도 했으나 20분 만에 구조대가 도착했다”고 전했다.
러셀 광장에서 있었던 제럴딘 포어먼은 “큰 굉음과 함께 버스 2층에서 적어도 5명이 튕겨져 나왔으며, 버스는 종잇장처럼 구겨졌고, 뛰어내린 사람들은 먼지와 파편에 뒤덮였다”고 목격담을 얘기했다.
이날 사고 현장에서는 시민들이 부상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했다. 승무원과 지나던 시민들은 피에 범벅이 된 부상자들을 구조했다. 또 사무실과 상가에 있던 시민들이 현장으로 달려가 의사 등 구조대를 도왔다고 일간 <가디언>은 전했다.
또 <로이터 통신>은 런던 테러가 발생한 후 불과 몇 분만에 구급차가 출동하고 병원이 비상체제를 갖추는 등 불행 중에 의료진 대응은 거의 완벽했다고 평했다.
택시 운전사인 스티브 그린은 아수라장이 됐지만 사람들은 하던 일을 계속했고, 놀랍게도 강한 정신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는 “런던 시민들은 아일랜드공화군(IRA)에 익숙해 있다.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처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말했다.
2012년 올림픽 개최지 선정과 관련해 싱가포르에 간 켄 리빙스턴 런던 시장은 폭탄 공격은 “겁쟁이 같은 테러 공격”이라고 비난한 뒤, 침착하고 용기있게 대응한 시민과 훈련한 대로 잘 대응한 경찰과 긴급구조대, 교통당국의 노고를 칭찬했다.
김학준 기자 kimhj@hani.co.kr
G8 한눈판새 외곽 허찔려
허점 드러난 테러 대비책
미국과 함께 이라크 침공 주력군인 영국은 오랫동안 테러에 대비해 왔으나 끝내 허를 찔리고 말았다. 테러조직의 공격수단이 워낙 다양해진데다, 주요8국(G8) 정상회의 경비 집중으로 런던에 치안 공백이 생긴 것이 주된 요인으로 지적된다.
테러위협 수준 되레 낮춰=영국 정부는 주요8국(G8) 정상회의 기간(6~8일) 10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해 회의장소인 스코틀랜드 글렌이글스 일대에서 사상 최대 규모의 경호 작전을 펼쳤다. 덕분에 G8 회의장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바뀌었으나, 테러조직은 다른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테러 전문가들은 “미국 다음으로 영국을 증오하는 알카에다 등 이슬람단체들이 지하에서 숨을 죽이고 오랜 시간 치밀한 계획을 세워 런던 도심에서 연쇄 테러를 감행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한 순간의 방심이 엄청난 참사를 불렀다”고 말했다.
특히 영국은 9·11 테러 이후 테러위협이 강화됨에 따라 대응책도 강화해 왔으나 최근에는 되레 경보수준을 한단계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지난 2월 세인트 앤드루스대학 연구팀은 2년간의 연구 끝에 영국의 교통시스템에 보안상의 허점이 있다는 보고서까지 낸 상태였으나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정부는 안보 소식통들 사이에서 위협이 현존하고 심각하다는 경고가 나왔지만 5월말 테러 위협 수준을 “전반적으로 심각”에서 “상당수준”으로 낮췄다.
테러경보 ‘심각’→ ‘상당수준’ 최근 낮춰
“사전경고 받고도 못막았다” 주장 나와
사실 영국은 2001년 9·11테러 이후 알카에다의 공격이 “현실적이고 심각하다”는 판단에 따라 2001년 9억5천만파운드였던 안보 관련 예산을 2004년 15억파운드로 늘려 왔다. 2007년엔 21억파운드로 증액할 계획이다. 또 런던 경찰청은 이슬람 인구가 많은 영국의 심장부인 런던의 테러 발생에 대비해 지금까지 수차례 대테러작전을 펼쳐 수십 명의 테러 용의자를 체포하고 폭탄 원료를 압수하는 등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사전에 감지했나?=영국 경찰이 런던 연쇄 테러에 대한 사전경고를 받았다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돼 사전경고 유무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독일 시사주간 <슈피겔>은 알카에다 집단이 인터넷을 통해 영국을 공격할 계획을 수차례 밝혔으며, 영국 보안 당국도 이를 알고 있었으나 막는 데는 실패했다고 전했다. 이들 언론은 그러나 영국경찰이 사전경고를 언제 받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백악관 관련 민간소식지인 <백악관불리틴>과 <에이피통신>, 미국 <시비에스방송> 등도 영국 경찰당국이 테러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사전경고를 받았고 이를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통지했다고 7일 보도했다. <백악관불리틴>은 런던 경찰국이 이스라엘 대사관 보안 관리에게 전화를 걸어 테러발생 수분전 테러 가능성에 대한 경고를 했으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재무장관이 폭발이 발생한 지하철역에서 한 구간 떨어진 호텔에서 열리는 경제회의에 참가하려다 포기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예루살렘포스트>는 이스라엘 대사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사전경고는 없었다고 전했다. 영국 경찰과 정보국 MI5는 아무런 사전 경보나 정보는 없었다고 밝혔다.
김학준 기자, 외신종합 kimh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