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항서 베트남 대표팀 감독과 함께 베트남에서 한국축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
정해성 감독이 베트남 프로축구 V리그 최고 명문구단인 호앙아인잘라이(HAGL FC)의 총감독 및 기술위원장으로 부임했다. 정 감독 측 관계자는 '정 감독은 12일 국내에서 베트남 호앙아인 구단 관계자와 만나 계약을 체결했다"며 "정 감독은 동남아시아 리그는 물론, K리그 클래식 감독보다 더 좋은 대우로 해당 구단 사령탑에 부임한다"고 전했다. 호앙아인은 K리그 클래식 강원FC 미드필더 쯔엉이 뛰었던 구단이다. 현재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 다수가 포함된 명문 클럽이다.
정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코치로 보좌, 한국의 4강 진출에 힘을 보탰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도 허정무 감독을 도와 한국의 사상 첫 원정 월드컵 16강 진출을 도왔다. 정 감독은 지난 4월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이 이끌던 대표팀 수석코치로 부임했지만, 지난 6월 슈틸리케 경질 후 대표팀 수석코치에서 자진사퇴했다. 이후 모교 중앙고에서 고문으로 일하며 어린 후배들과 함께 땀흘려 왔다.
정 감독은 12일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도전을 결심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추석 연휴에 베트남 구단 에이전트에게 먼저 연락이 왔다. 중앙고에 몸담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연휴 내내 가족회의를 하며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밝혔다. "구단의 제안이 단순히 감독직이 아니었다. 회장의 확고한 철학이 '유소년 선수 육성'이라고 했다. 선수를 키우는 일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내가 지향하는 바와 같았다. 회장이 프로필을 보고 좋다고 했다고 하더라."
베트남 명문구단 호앙아인잘라이는 '베테랑' 정 감독의 대표팀 수석코치 경험, 제주, 부천, 전남 감독을 거치며 대한민국 대표선수들을 키워낸 경험과 능력을 높이 샀다. 정 감독은 "프로팀에서 유소년을 발굴하고 관리하고 키워낸 부분, 최근까지 국가대표 코치로 현장에 있었던 점을 좋게 본 것같다"고 말했다.
정 감독의 가장 큰 고민은 모교 중앙고의 눈빛 총총한 제자들이었다. 중앙고 교장, 학부모, 선수들에게 베트남 클럽의 제안을 솔직히 밝히고 의견을 구했다. "구단측이 좋은 제안을 보내왔지만 나로서는 중앙고와 학부모, 아이들이 가장 큰 걱정이었다. 후원회도 결성해주시고 마음으로 함께 해온 교장 선생님과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했다. 어떤 학부형은 눈물을 보일 정도였다. 너무나 죄송했다. 이런 일을 언론을 통해 알리는 것은 부모님과 학생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분들이 안보내주시면 못간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학교와 학부모들은 정 감독의 새 도전을 지지했다. 사령탑 부임이 알려진 이날 오후에도 정 감독은 그라운드에 있었다. 모교 중앙고가 배재고 인조잔디구장 개장을 기념하는 친선경기에 초대받았다. 정 감독의 고별전이었다. "2대0으로 승리했다"며 미소지었다.
이날 정 감독은 호앙아인잘라이 구단 관계자를 만나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기간은 2019년까지, 1군 선수들의 감독뿐 아니라 유소년 육성 아카데미의 관리까지 총괄하는 기술위원장 자리다.
때마침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대표팀 및 23세 이하 대표팀 사령탑으로 부임한 직후다. 2002년 히딩크 감독과 함께 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레전드' 지도자들이 나란히 베트남 대표팀과 명문 클럽팀 사령탑이 됐다. 정 감독이 클럽에서 잘 키워낸 선수들이 박 감독의 대표팀, 23세 이하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선순환 구조'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정 감독은 "구단 사장도 박 감독과의 시너지를 물어보시더라"며 웃었다. "대표팀 감독과 클럽 감독이 소통하고 연계해야 축구가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다. 베트남에 가서 선배님인 박항서 감독님을 잘 모시고 잘 소통하겠다. 먼저 다가서겠다. 국제적으로 베트남에서 한국 축구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프로팀 감독으로서 국가대표 감독과 잘 소통하면서 베트남 축구를 잘 이끌어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거듭 다짐했다.
정 감독은 17일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베트남에 입국한다. "일단 20일 첫 원정 경기를 보고 팀 상황을 점검해봐야 할 것같다. 올시즌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팀을 만들어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정해성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의 호앙아인잘라이FC(이하 HAGL FC)가 28일 베트남 FA컵 8강에 올랐다.
HAGL FC는 28일 베트남 꽝남에서 펼쳐진 FA컵 16강전에서 꽝남FC를 상대로 3대2로 승리했다. 4년만의 8강 진출을 이루고 환호했다. HAGL FC는 최근 10년간 이 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수석코치 출신의 정해성 감독은 지난 시즌 1군팀과 유스팀을 모두 총괄하는 총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HAGL FC U-21팀을 이끌고 베트남 U-21 컵대회에서 21년만에 첫 우승을 이끈 데 이어 올시즌 성인팀까지 8강에 진출시키며 한국 축구의 힘을 보여줬다. 전반 38분 HAGL FC는 공격수 콩 프엉(22)이 역습에 이은 발리슈팅으로 골망을 흔들며 1대0으로 앞서 나갔다. 후반 5분, 후반 9분 꽝남 FC에 연속골을 허용하며 1-2로 밀렸지만 K리그 강원에서 활약한 '주장' 공격수 쯔엉(23)이 후반 25분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다. 종료 직전 콩 프엉이 또다시 페널티킥을 유도하고, 직접 성공시키며 3대2로 8강행을 확정했다.
정해성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랜 기간 동안 팀이 컵대회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작년 시즌부터 토너먼트에서 계속해 성과를 낼 수 있어 기쁘다. 이동 시간이 긴 원정 경기여서 선수들의 체력적인 부담이 컸는데, 잘 극복하고 좋은 경기를 펼쳐 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라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한편 이날 경기에는 한국인 수비수 김진서가 센터백으로 선발 출장해 풀타임 활약했다. 김진서는 리그 개막 이후 리그 8경기 중 7경기를 선발 출장하여 수비진을 이끌고 있다. 지난 시즌까지 한국에서 활약했던 주장 쯔엉은 개막 이후 4골 1도움을 기록중이다. 전영지 기자 sky4us@sportschosun.com
지난 4일 울리 슈틸리케(63ㆍ독일) 전 감독의 뒤를 이어 신태용(47)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선임되자 정해성은 바로 다음날 대한축구협회를 찾아 수석코치에서 사퇴했다. 지난 4월 벼랑 끝에 몰린 슈틸리케호의 수석코치로 긴급 투입된 지 불과 석 달 만이었다. 그는 내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까지 계약이 보장돼 있었다. 미적미적 자리를 지켜 잔여 연봉 중 적지 않은 돈을 보상금조로 받고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제자 뻘인 신 감독이 편한 마음으로 코치를 물색할 수 있도록 미련 없이 물러났다.
정해성은 1984년부터 1989년까지 럭키금성 선수로 뛰었다. 1986년 후반기부터 주장도 맡았다. 그 때는 프로 6년 차가 되면 재계약금 3,000만 원을 주는 제도가 있었다. 아파트 한 채 값이 4,000만 원 안팎이던 시절이다. 1989년을 마치고 번듯한 집 한 채 사려던 그의 꿈은 “1년 더 뛰면 뭐하나. 은퇴하고 지도자를 해라”는 구단의 권유로 물거품이 됐다. 지금 같으면 재계약금을 안 주려는 ‘꼼수’로 난리가 날 법 했지만 정해성은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못내 미안했던 구단은 이듬 해 말 그에게 격려금으로 2,000만원을 내밀었다. 정 감독은 “돈은 됐으니 공부 좀 하게 해외 좀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1992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8개월 연수를 하고 돌아온 뒤 2군 코치로 선수들을 조련해, 1군 코치로 승격했다. 1993년 고재욱(66) 감독이 경질되자 구단은 정해성에게 “감독대행을 맡아라”고 했다. 스승 자리를 꿰차고 앉을 그가 아니었다. 사표를 던지고 나왔다.
이후 정해성은 박성화(62) 유공 감독 아래서 스카우트를 했다. 1군 코치까지 지낸 그에게 스카우트는 성에 차지 않는 자리일 수 있었지만 묵묵히 ‘보석’을 찾아 전국을 누볐다. 당시 프로축구 포항 사무국 직원이었던 안기헌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는 “다른 스카우트와 달리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메모하며 선수를 살피던 모습이 선하다”고 했다. 안기헌 전무는 2013년 정몽규(55) 축구협회장이 취임해 첫 집행부를 꾸릴 때 “다른 맘 안 품고 우직하게 일만 할 사람”이라며 정해성을 경기위원장, 심판위원장 등 요직에 연이어 천거했다.
정해성은 고재욱과 박성화 외에도 국가대표와 프로에서 박종환(79), 이회택(71), 허정무(62) 등 한국 축구를 주름 잡은 인물들을 코치로서 보좌했다. 하나 같이 개성 강하고 대가 센 감독들도 ‘코치 정해성’은 신뢰했다. 그가 평소 감독에게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면서도 진짜 필요할 때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참모였기 때문이다. 또한 정해성은 선수들로부터 신망이 컸다. 선수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코치인 동시에 가장 믿고 따르는 선생님이었다. 2002년 한ㆍ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거스 히딩크(71ㆍ네덜란드) 감독도 선수 관리는 정해성 코치에게 일임했다.
정해성은 모시고 있던 감독이 물러나 지휘봉을 물려받을 기회가 몇 번 더 있었지만 그 때마다 거절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후 허정무 감독이 연임을 고사한 뒤 축구협회가 제안한 국가대표 사령탑 자리도 마다했다. 정해성이 ‘의리’를 지킬 때마다 가장 힘든 건 그의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정해성이 구단에서 나와 ‘백수’일 때 보험영업을 하며 살림을 책임진 적도 있다.
정해성은 분명 ‘일류감독’은 아니었다. 프로축구 제주(2004~07)와 전남(2010~12)을 맡아 뚜렷한 성과를 내진 못했다. 하지만 ‘일류참모’가 누구냐고 물으면 축구인 열에 아홉은 그를 꼽을 정도다.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 1990년부터 27년 동안 공백기를 다 합쳐도 2년 남짓이다. 정해성은 “운이 좋았다.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몸을 낮추지만 그건 단순한 ‘우연’이나 ‘행운’이 아니다. 책임감과 의리, 헌신으로 무장한 그를 감독들이 탐내고 놔주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다.
박항서 효과가 다시 한번 통했다. 박항서(59)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동남아 월드컵'으로 불리는 2018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의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베트남은 15일 스즈키컵 결승 2차전 경기에서 말레이시아를 1-0으로 이기고 정상에 올랐다. 베트남은 10년 만의 우승이다.
앞서 베트남은 말레이시아에서 치른 1차전에서 2-2로 비겼다. 박항서 감독은 우승이 확정되자 어퍼컷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했다. 코치진과 선수 들 모두 그라운드로 뛰어나와 환호하며 기쁨을 누렸다. 태극기를 든 선수와 관중도 눈에 보였다. 베트남 총리 응우옌쑤언푹이 시상직장에 나타나 박항서 감독에게 메달을 걸어주고 포옹으로 기쁨을 나눴다. 푹 총리는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며 베트남 축구 대표팀의 열정을 치하했다.
'베트남 영웅' 박항서 코스프레도 인기 폭발 (하노이=연합뉴스)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이 15일 말레이시아 대표팀을 상대로 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 결승 2차전을 펼치는 베트남 하노이 미딘경기장 앞에서 박 감독 머리 모양을 하고 안경을 쓴 현지 청년이 인기몰이하고 있다. 2018.12.15 [독자 제공=연합뉴스] youngkyu@yna.co.kr/2018-12-15 18:16:14/ <저작권자 ⓒ 1980-2018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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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민들도 박항서 감독과 베트남 축구 대표팀에 감사를 표했다. 경기 직후 베트남 국민들은 SNS에 한국어로 "감사합니다", "고맙다 박항서 선생님", "한국인 고마워요" 등의 글을 올렸다. 윤경진 기자 youn@ajunews.com
뇌 손상 최대한 줄여…시간과 싸움서 이겼다 임수혁은 - 사고 현장서 응급조치 안해 식물인간으로 버티다 사망 신영록은 - 任 사고후 응급의료 개선돼… 응급처치 7분 만에 병원에
프로축구 경기 중 쓰러져 깨어나지 못하던 신영록(24·제주)이 50일 만에 극적으로 의식을 찾았다.
제주한라병원은 27일 "신영록이 지난주 금요일부터 인공호흡기 없이 스스로 호흡하고, 가족을 알아보고 간단한 대화도 한다"며 "이제 곁에서 24시간 살피지 않아도 될 만큼 호전돼 일반 병실에서 가료 중"이라고 밝혔다. 신 선수가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지방 종합병원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는 데다 심장마비가 일어난 경기장 현장에서 의료진과 팀 운영요원 등이 신속히 심폐소생술을 했기에 가능했다.
이는 지난 2000년 롯데 자이언츠 프로야구팀 포수 임수혁 선수가 잠실야구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부실한 현장 응급 처치로 끝내 회생하지 못한 것을 교훈 삼아 이후 경기장 응급 의료시스템이 개선된 덕이다. '죽은 임수혁'(2010년 사망)이 신영록을 살린 셈이다.
신영록은 지난달 8일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홈경기에서 후반 37분 교체 투입됐다가 경기 종료 직전 운동장에서 쓰러졌다. 의학계에서는 신 선수에게 심장 맥박이 어느 순간 불규칙하게 뛰는 부정맥이 숨어 있다가 과도하게 땀을 흘리는 전해질(電解質) 이상 등으로 인해 심장마비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신영록은 쓰러지자마자 현장에서 대기하던 간호사와 팀 운영요원에 의해 즉시 심폐소생술을 받았다. 이후 구급차에 태워져 7분 만에 제주한라병원 응급실로 후송됐다. 병원 도착 후에는 심장 전기충격 치료로 심장 박동이 되살아났다. 심장마비로 뇌 혈액 순환이 일시적으로 멈췄지만 그로 인한 뇌 손상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 지난달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 최근 50일 만에 극적으로 의식을 회복한 신영록 선수(왼쪽)가 27일 박경훈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과 만나 손을 잡고 있다. /전준엽 기자 noodle@sportschosun.com
그래도 심장마비로 인한 뇌 산소 공급 부족으로 뇌 손상이 일부 생겨 신영록은 의식을 잃었고 그 후유증으로 간질 발작이 일어났다. 의료진이 세 가지 간질 약물을 조합 투여하고 인공호흡기와 수면 치료를 세심히 시행했다. 뇌파상에서 신영록의 간질파는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21일 신영록은 눈을 뜨고 의사 표현을 했다. 현재 신영록은 부모를 부르거나 "배고프다"는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만큼 호전됐다. 손가락으로 볼펜을 잡는 것 같은 세밀한 동작은 못하지만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는 정도는 가능한 상태다. 신영록은 이날 회복 소식을 듣고 찾아온 소속팀 박경훈 감독을 보자 손을 쥔 채 눈물을 쏟았다. 제주한라병원 전종은 신경과 과장은 "꾸준한 재활 치료가 이뤄진다면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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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석달 째, 2018년 A매치 무패 기록한 '벤투 코리아' 선수들이 직접 말하는 '강해졌다'의 의미
"계획대로 팀이 잘 만들어지고 있다."
호주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벤투 감독이 말했다. 3승3무, 새 감독 부임 이후 치른 여섯 차례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무패를 기록했다. 현재까지는 꽤 순조롭다. 선수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갈증을 느끼지 않는 듯 하고, 팬들은 경기를 기분 좋게 즐기고 있다. 결과와 내용 모두 긍정적이다.
이 팀이 어떻게 공격을 하고 수비를 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 경기의 승자가 되고 싶은지, 나아가 대표팀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난 석달 간 벤투 감독은 대표팀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경기를 통해 차분히 설명했다. 지난 여섯 번의 경기에서 보여준 모든 전략적 선택에는 의미와 효과가 있었다. 벤투 감독 체재에서 대표팀은 경기장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난 우즈벡 전을 끝으로 2018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경기가 모두 마무리됐다. 대표팀은 12월 중순, 국내 활동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아시안컵을 대비한 훈련을 시작한다. 벤투 감독의 목소리에서 차분함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첫 단추는 잘 꿰어졌다. 벤투 대표팀의 지난 석달을 돌아본다.
# 스타일
'4231 과 433'
벤투 체재에서 대표팀은 두 가지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과거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도 대표팀은 4231 포메이션을 주로 활용했기에, 숫자로 접근하면 어색함이 없다. 지난 일년 반 동안 대표팀 감독이 슈틸리케, 신태용, 벤투로 바뀌면서 대표팀의 플레이 스타일 또한 변화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상대보다 오래 점유하길 바랬다. 실제로 상대보다 점유율이 높은 경기가 많았지만, 당시 대표팀이 추구한 점유율의 목적은 단지 상대보다 공을 오래 갖고 있는 것을 벗어나지 못했다.
2017년 7월, 바통을 이어 받아 월드컵에 출전한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의 무게감을 후방에 집중시켰다. 본인의 스타일이 아닌 ,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점유율이 낮은 상황에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전략을 계획했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과 한국 대표팀을 떠올리면 독일 전 승리도 떠오르지만 VAR, 손흥민, 그리고 모두가 미친듯이 열심히 수비하는 모습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정체성을 만들어 야망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목표다."
석달 전, 벤투 감독이 한국에 왔다. 그는 첫 번째 기자 회견에서 '정체성', '공격', '점유'를 강조했다. 축구에 있어 언제나 달콤하고 매력적인 단어들이다. 그 달콤함에 몇 차례 속은 경험이 있는 팬들은 반신반의 했다. 최근 두 번의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대표팀의 모습은 호랑이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시아에서 만큼은 대표팀이 상대보다 공을 많이 만지면서 골도 많이 넣는 축구를 하길 바랬다.
선수와 팬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꽤 오랫동안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대표팀의 경기는 뛰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기쁨보다 스트레스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축구 선수들은 공을 만질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선수가 행복하면 그 느낌은 퍼포먼스로 표현된다. 배우들이 공연을 즐길 때 관객들 역시 자연스럽게 그 속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선수들의 표정이 과거와 달라졌다. 얼굴에 '당황함'이 써 있던 파나마와의 후반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선수들의 표정에 진지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패스가 연속으로 잘 연결되다보면 자연스럽게 리듬이 타진다. 리듬을 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고, 평소보다 서포트 동작도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짧은 거리의 서포트가 많아지면 비 경제적인 스프린트가 줄어든다. 즉, 힘을 아낄 수 있다. 서포트 동작이 활발해질수록 패스의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패스의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것은 우수한 공격 형태로 이어진다.
공격 형태가 우수하면 전진 패스 확률이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공격 기회가 증가하며 득점에 가까운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공을 빼앗겨도 갖춰놓은 형태가 좋고 선수들이 리듬을 타고 있는 상황이기에 빠른 수비 전환이 가능하다. 긴 스프린트가 적었기에 강한 압박도 할 수 있다.
코스타리카 전, 파나마와의 전반전, 최근 우즈베키스탄 전 등 대표팀이 특히 '잘 한' 경기에서 나타난 특징이다. 전진 패스가 활발했고 전체적인 패스 성공률 또한 높았다. 3선 미드필더들이 중심이 되어 미드필드를 장악했고, 덕분에 좌우 풀백들은 거침없이 전진하여 공격에 가담했다.
# '공과 친한' 미드필더들이 핵심이다.
축구에서 덜 중요한 포지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뼈대가 되어주는 선수는 있다. 김영권, 이용, 남태희는 벤투 체재에서 진행된 6 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출전했다. 그리고 코스타리카, 칠레, 우루과이를 상대한 첫 3 경기의 선발 명단은 단 3 곳 (골키퍼, 윙어, 포워드) 를 제외하곤 모두 동일했다.
10월 평가전 이후 주전 윤곽이 어느정도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흥민, 황희찬, 이재성, 기성용, 정우영 없이 치른 11월 원정 평가전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주세종, 황인범, 석현준, 이청용, 이진현, 정승현, 박지수, 나상호 등 그동안 기회가 적었던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렸다. 장현수와 남태희의 이탈은 벤투 감독의 말처럼 전력의 손실이나, 이번 평가전에서 증명된 진리처럼 누군가의 빈 자리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된다.
벤투 체재 대표팀의 핵심은 중앙 미드필드다. 원 볼란치 (역삼각형) 혹은 투 볼란치 (삼각형) 형태에 따라, 또는 형태가 같더라도 조합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9월 이후 기성용-정우영 조합이 첫 번째 선택이 되었다. 두 선수는 훌륭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간결한 볼 터치와 깊이 있는 전진 및 전환 패스로 중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3선에서 두 명의 존재는 한 칸위에 위치한 남태희, 손흥민, 황희찬, 이재성에게 편안함을 줬고 전방 유닛들이 공격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수비적인 대비를 했다.
그런데 역시 11월에 새로운 조합에 대한 가능성이 확인됐다. 주세종-황인범 조합은 과거 아산 무궁화에서 함께한 경험을 바탕으로 호주, 우즈벡 전에서 벤투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주세종-황인범은 기성용-정우영 콤비보다 조금 더 공을 많이 만졌고,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공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지원했다. 수비 상황에 대한 리스크가 있었지만, 두 선수가 상대의 빽빽한 수비 블록 사이로 창의적인 키 패스를 투입하는 장면에서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벤투 감독에게는 색깔이 뚜렷한 여러 장의 카드가 주어졌다. 몇 장을 어떻게 짝 지어 패를 꺼낼지 선택해야 한다. 남태희와 구자철의 부상은 아쉽지만, 투 볼란치 바로 위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는 이재성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며, 황인범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11월 소집에서 제외된 이승우도 선호하는 포지션이다. 전현직 아산 무궁화 소속 선수들이 대표팀의 중원에 새 바람을 넣고 있다면 내친 김에 이명주도 경쟁에 참여시켜보면 어떨까?
벤투의 축구를 어렵게 만들지 않는다. 포지션 별 역할이 분명하고, 간결하며, 기본에 충실하기에 합리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드필드가 있다. 벤투의 미드필더들은 자신에게 온 공을 한 번에 처리할 것인지, 잡아놓을 것인지를 잘 구분해야 하며, 안전을 위한 백 패스와 전진을 위한 백 패스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감독이 바꼈고 상황도 달라졌다. 벤투의 선수들은 과거 어느 시절 대표팀보다 공과 친해야 한다. 공과 친한,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 분위기
"우리 모두 다들 강해졌다는 걸 서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즈벡 전을 마치고 오랜만에 골을 기록한 석현준과 이야기를 나눴다. 선수가 직접 자신 혹은 자신의 팀이 강해졌다는 것을 느끼는 것 만큼 긍정적인 요소는 없다. 지난 9월 벤투 체재 첫 소집 이후, 대표팀을 경험한 선수들 모두 다음 소집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지난 소집 중 부상으로 먼저 독일에 돌아간 이재성이 대표팀 공식 채널을 통해 진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처럼, 현재 선수들은 대표팀에 대한 높은 만족도를 갖고 있다.
대표팀이 주는 무게와 압박감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긴 호흡이 필요한 기분 좋은 긴장감, 벤투 감독과 그의 스텝들이 제공하는 세밀한 프로그램, 거기서 채워지는 배움에 대한 갈증이 지금 대표선수들에게 특별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축구팀은 살아숨쉬는 하나의 유기체다. 축구팀이라는 집단의 리더는 감독이고, 감독은 코칭스텝과 소그룹을 이룬다. 훈련장과 숙소에서 이들이 짓는 표정 하나, 몸 동작 하나가 때로는 팀 전체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만큼 축구팀은 예민한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를 마치고 진행되는 공식 기자회견에 벤투의 모든 코치들이 동행하는 모습이 이슈가 됐다. 벤투 감독은 이를 '생각의 공유를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벤투 감독과 코칭스텝들이 축구 토론을 시작하면 가끔 목소리가 커져 근처에 있던 협회 관계자가 놀란 경우가 있다고 한다. '팀 벤투'는 예전부터 가감없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고, 그 방법을 통해 발전했다고 한다. 우리에겐 여전히 익숙치 않은 모습이지만, 이런 에너지가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달되는 것 같다.
12월에 진행될 소집은 당장 눈 앞에 닥친 아시안컵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벤투는 확신을 갖고 길을 제시했고, 선수들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으며, 팬들은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지금까지는 잘 가고 있다. 파나마를 상대한 후반전 좋지 않은 리듬을 호주 원정에서 만회한것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정확히 진단하여 빠르게 개선하고 있다. 이제 막 걸음을 띄었고 카타르까지 가는 길은 아직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석현준의 말한 저 느낌을 대표팀에 포함된 많은 선수가 최대한 오래 유지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