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륭의 원사이드컷] 대표팀, 그들 스스로 강해졌음을 느끼다.

김태륭 입력 2018.11.23. 08:36 수정 2018.11.2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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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범 석달 째, 2018년 A매치 무패 기록한 '벤투 코리아'
선수들이 직접 말하는 '강해졌다'의 의미

 

벤투 감독은 부임 후 3승3무의 전적으로 2018년 A매치 일정을 마무리했다.
"계획대로 팀이 잘 만들어지고 있다."

호주 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벤투 감독이 말했다. 3승3무, 새 감독 부임 이후 치른 여섯 차례의 경기에서 대표팀은 무패를 기록했다. 현재까지는 꽤 순조롭다. 선수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갈증을 느끼지 않는 듯 하고, 팬들은 경기를 기분 좋게 즐기고 있다. 결과와 내용 모두  긍정적이다. 

 

이 팀이 어떻게 공격을 하고 수비를 하는지, 그로 인해 어떤 방식으로 경기의 승자가 되고 싶은지, 나아가 대표팀이 추구하는 스타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지난 석달 간 벤투 감독은 대표팀을 바라보는 모든 이들에게 경기를 통해 차분히 설명했다. 지난 여섯 번의 경기에서 보여준 모든 전략적 선택에는 의미와 효과가 있었다. 벤투 감독 체재에서 대표팀은 경기장에서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지난 우즈벡 전을 끝으로 2018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식 경기가 모두 마무리됐다. 대표팀은 12월 중순, 국내 활동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아시안컵을 대비한 훈련을 시작한다. 벤투 감독의 목소리에서 차분함과 자신감이 느껴진다. 첫 단추는 잘 꿰어졌다. 벤투 대표팀의 지난 석달을 돌아본다.

한국은 2018년 마지막 A매치에서 우즈베키스탄을 상대로 4-0 대승을 기록했다.

# 스타일

'4231 과 433'

벤투 체재에서 대표팀은 두 가지 포메이션을 활용했다. 과거 슈틸리케 감독 시절에도 대표팀은 4231 포메이션을 주로 활용했기에, 숫자로 접근하면 어색함이 없다. 지난 일년 반 동안 대표팀 감독이 슈틸리케, 신태용, 벤투로 바뀌면서 대표팀의 플레이 스타일 또한 변화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상대보다 오래 점유하길 바랬다. 실제로 상대보다 점유율이 높은 경기가 많았지만, 당시 대표팀이 추구한 점유율의 목적은 단지 상대보다 공을 오래 갖고 있는 것을 벗어나지 못했다.

 

 

2017년 7월, 바통을 이어 받아 월드컵에 출전한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의 무게감을 후방에 집중시켰다. 본인의 스타일이 아닌 , 442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점유율이 낮은 상황에서 상대를 괴롭힐 수 있는 전략을 계획했다. 지난 러시아 월드컵과 한국 대표팀을 떠올리면 독일 전 승리도 떠오르지만 VAR, 손흥민, 그리고 모두가 미친듯이 열심히 수비하는 모습이 우선적으로 떠오른다.

"정체성을 만들어 야망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목표다."

석달 전, 벤투 감독이 한국에 왔다. 그는 첫 번째 기자 회견에서 '정체성', '공격', '점유'를 강조했다. 축구에 있어 언제나 달콤하고 매력적인 단어들이다. 그 달콤함에 몇 차례 속은 경험이 있는 팬들은 반신반의 했다. 최근 두 번의 월드컵 아시아 예선을 통해 우리가 확인한 대표팀의 모습은 호랑이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아시아에서 만큼은 대표팀이 상대보다 공을 많이 만지면서 골도 많이 넣는 축구를 하길 바랬다.

 

선수와 팬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꽤 오랫동안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대표팀의 경기는 뛰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기쁨보다 스트레스가 되었다.

 

기본적으로 축구 선수들은 공을 만질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낀다. 그리고 경기장에서 선수가 행복하면 그 느낌은 퍼포먼스로 표현된다. 배우들이 공연을 즐길 때 관객들 역시 자연스럽게 그 속에 빠져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런데 선수들의 표정이 과거와 달라졌다. 얼굴에 '당황함'이 써 있던 파나마와의 후반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에서 선수들의 표정에 진지한 즐거움이 느껴졌다. 

 

패스가 연속으로 잘 연결되다보면 자연스럽게 리듬이 타진다. 리듬을 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고, 평소보다 서포트 동작도 적극적으로 하게 된다. 짧은 거리의 서포트가 많아지면 비 경제적인 스프린트가 줄어든다. 즉, 힘을 아낄 수 있다. 서포트 동작이 활발해질수록 패스의 선택지가 다양해진다. 패스의 선택지가 다양해지는 것은 우수한 공격 형태로 이어진다.

 

공격 형태가 우수하면 전진 패스 확률이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공격 기회가 증가하며 득점에 가까운 상황이 자주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공을 빼앗겨도 갖춰놓은 형태가 좋고 선수들이 리듬을 타고 있는 상황이기에 빠른 수비 전환이 가능하다. 긴 스프린트가 적었기에 강한 압박도 할 수 있다.

 

코스타리카 전, 파나마와의 전반전, 최근 우즈베키스탄 전 등 대표팀이 특히 '잘 한' 경기에서 나타난 특징이다. 전진 패스가 활발했고 전체적인 패스 성공률 또한 높았다. 3선 미드필더들이 중심이 되어 미드필드를 장악했고, 덕분에 좌우 풀백들은 거침없이 전진하여 공격에 가담했다. 

베테랑이 되어 돌아온 이청용은 전성기의 기량을 거의 회복한 모습이었다.

# '공과 친한' 미드필더들이 핵심이다.

축구에서 덜 중요한 포지션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뼈대가 되어주는 선수는 있다. 김영권, 이용, 남태희는 벤투 체재에서 진행된 6 경기에서 모두 선발로 출전했다. 그리고 코스타리카, 칠레, 우루과이를 상대한 첫 3 경기의 선발 명단은 단 3 곳 (골키퍼, 윙어, 포워드) 를 제외하곤 모두 동일했다.

 

 10월 평가전 이후 주전 윤곽이 어느정도 드러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손흥민, 황희찬, 이재성, 기성용, 정우영 없이 치른 11월 원정 평가전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주세종, 황인범, 석현준, 이청용, 이진현, 정승현, 박지수, 나상호 등 그동안 기회가 적었던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렸다. 장현수와 남태희의 이탈은 벤투 감독의 말처럼 전력의 손실이나, 이번 평가전에서 증명된 진리처럼 누군가의 빈 자리는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체된다. 

 

벤투 체재 대표팀의 핵심은 중앙 미드필드다. 원 볼란치 (역삼각형) 혹은 투 볼란치 (삼각형) 형태에 따라, 또는 형태가 같더라도 조합의 차이에 따라 각기 다른 방법으로 경기를 풀어나간다. 9월 이후 기성용-정우영 조합이 첫 번째 선택이 되었다. 두 선수는 훌륭한 피지컬을 바탕으로 간결한 볼 터치와 깊이 있는 전진 및 전환 패스로 중원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3선에서 두 명의 존재는 한 칸위에 위치한 남태희, 손흥민, 황희찬, 이재성에게 편안함을 줬고 전방 유닛들이 공격에 보다 집중할 수 있도록 수비적인 대비를 했다.

 

그런데 역시 11월에 새로운 조합에 대한 가능성이 확인됐다. 주세종-황인범 조합은 과거 아산 무궁화에서 함께한 경험을 바탕으로 호주, 우즈벡 전에서 벤투의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주세종-황인범은 기성용-정우영 콤비보다 조금 더 공을 많이 만졌고, 조금 더 가까운 거리에서 공을 주고 받으며 서로를 지원했다. 수비 상황에 대한 리스크가 있었지만, 두 선수가 상대의 빽빽한 수비 블록 사이로 창의적인 키 패스를 투입하는 장면에서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 벤투 감독에게는 색깔이 뚜렷한 여러 장의 카드가 주어졌다. 몇 장을 어떻게 짝 지어 패를 꺼낼지 선택해야 한다. 남태희와 구자철의 부상은 아쉽지만, 투 볼란치 바로 위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는 이재성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며,  황인범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11월 소집에서 제외된 이승우도 선호하는 포지션이다. 전현직 아산 무궁화 소속 선수들이 대표팀의 중원에 새 바람을 넣고 있다면 내친 김에 이명주도 경쟁에 참여시켜보면 어떨까?

 

벤투의 축구를 어렵게 만들지 않는다. 포지션 별 역할이 분명하고, 간결하며, 기본에 충실하기에 합리적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미드필드가 있다. 벤투의 미드필더들은 자신에게 온 공을 한 번에 처리할 것인지, 잡아놓을 것인지를 잘 구분해야 하며, 안전을 위한 백 패스와 전진을 위한 백 패스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감독이 바꼈고 상황도 달라졌다. 벤투의 선수들은 과거 어느 시절 대표팀보다 공과 친해야 한다. 공과 친한, 축구를  잘하는 선수들이 대표팀에서 빛을 보기 시작했다. 

최근 26경기-25골, 요즘의 황의조는 해리 케인도 부럽지 않다.

# 분위기

"우리 모두 다들 강해졌다는 걸 서로 느끼고 있습니다."

우즈벡 전을 마치고 오랜만에 골을 기록한 석현준과 이야기를 나눴다. 선수가 직접 자신 혹은 자신의 팀이 강해졌다는 것을 느끼는 것 만큼 긍정적인 요소는 없다. 지난 9월 벤투 체재 첫 소집 이후, 대표팀을 경험한 선수들 모두 다음 소집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지난 소집 중 부상으로 먼저 독일에 돌아간 이재성이 대표팀 공식 채널을 통해 진한 아쉬움을 표현한 것처럼, 현재 선수들은 대표팀에 대한 높은 만족도를 갖고 있다. 

대표팀이 주는 무게와 압박감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긴 호흡이 필요한 기분 좋은 긴장감, 벤투 감독과 그의 스텝들이 제공하는 세밀한 프로그램, 거기서 채워지는 배움에 대한 갈증이 지금 대표선수들에게 특별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

축구팀은 살아숨쉬는 하나의 유기체다. 축구팀이라는 집단의 리더는 감독이고, 감독은 코칭스텝과 소그룹을 이룬다. 훈련장과 숙소에서 이들이 짓는 표정 하나, 몸 동작 하나가 때로는 팀 전체에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만큼 축구팀은 예민한 곳이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를 마치고 진행되는 공식 기자회견에 벤투의 모든 코치들이 동행하는 모습이 이슈가 됐다. 벤투 감독은 이를 '생각의 공유를 위한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벤투 감독과 코칭스텝들이 축구 토론을 시작하면 가끔 목소리가 커져 근처에 있던 협회 관계자가 놀란 경우가 있다고 한다. '팀 벤투'는 예전부터 가감없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했고, 그 방법을 통해 발전했다고 한다. 우리에겐 여전히 익숙치 않은 모습이지만, 이런 에너지가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달되는 것 같다. 


12월에 진행될 소집은 당장 눈 앞에 닥친 아시안컵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벤투는 확신을 갖고 길을 제시했고, 선수들은 자신의 역할을 잘 수행했으며, 팬들은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다. 지금까지는 잘 가고 있다. 파나마를 상대한 후반전 좋지 않은 리듬을 호주 원정에서 만회한것처럼 문제가 발생하면 정확히 진단하여 빠르게 개선하고 있다. 이제 막 걸음을 띄었고 카타르까지 가는 길은 아직 보이지도 않는다.

다만, 석현준의 말한 저 느낌을 대표팀에 포함된 많은 선수가 최대한 오래 유지하면 좋겠다. 

우리는 강해졌고, 앞으로 더 강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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