莊子
오강남 풀이 현암사 초판 1999/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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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의 도가 사상이 중국 철학사에서 문학, 예술 등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특히 당대에 와서 그것은 선불교를 꽃 피우는 직접 계기가 되었다.
북송의 곽상(기원후 312년 사망)이라는 사람이 그 때까지 돌아다니던 여러 가지 사본들을 정리하여 65000여 자, 33편으로 줄여서 편집하고, 거기에다 자기 나름으로 주를 달았다. 이렇게 곽상이 편집한 장자가 바로 우리가 지금 보는 장자라는 책이다.
곽상은 장자를 33편으로 하고 이를 내편 7편, 외편 15편, 잡편 11편으로 나누었다. 19
1. 노자의 도덕경은 주로 간략한 어록이나 시나 아름다운 산문 형식인 데 반하여 장자는 주로 이야기 형식이다.
2. 노자가 도가적 정치 실현을 이상으로 삼았다면 장자는 도가적 삶의 완성에 초점을 맞춘 셈이다.
3. 도덕경은 도의 生하는 측면을 말하였는데, 장자는 도의 化하는 기능을 부각한다.
4. 노자는 대체로 자기의 생각을 홀로 개진한 데 반하여, 장자는 그 당시에 유행하던 사상들, 특히 이론학파들과 부단히 대화하고 대결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첨예하게 전개하였다.
5. 장자는 한 가지 체계적인 인식내용을 제공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일깨움을 목적으로 하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절대 自由와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變化와 超越, 이것이 장자 전체의 주제이며 가르침의 궁극 목표라 할 수 있다.
조금 아는 것으로 많이 아는 것을 헤아릴 수 없고, 짧은 삶으로 긴 삶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31
우리는 모두 여름 한철을 사는 메뚜기들이므로 봄이나 가을을 모른다. 아니 아침에 나서 잠시 후에 시들고 마는 버섯이기 때문에 새벽과 저녁도 알 길이 없다. 영원이니 초월이니 변화니 하는 것들은 모두 우리의 이성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헛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33
신화란 이성을 초월한 세계의 엄청난 진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주는 특수전달 수단이다. 37
그 아는 것이 벼슬자리 하나 채울 만한 사람, 그 행위가 마을 하나를 돌볼 만한 사람, 그 덕이 임금 하나를 섬길만한 사람, 그 재능이 한 나라를 맡을 만한 사람, 이런 사람들은 그 기량이 저 메추라기만한 사람들입니다. 38
어떤 사람이 하늘땅의 바름을 타고 여섯 가지 氣의 변화를 부려, 무한한 경지에서 노닐 수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사람이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러므로 至人은 자신에 집착하지 않으며, 神人은 공적에 무관하고 聖人은 명예를 탐내지 않습니다. 39
우리 머리 속에 이미 형성된 쓸모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에서 쓸모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55
참주인이 분명히 있는데 그 흔적을 잡을 수 없구나. 참주인이 작용하는 것은 믿을 만한데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우리가 그 실체를 알든 모르든 그 참모습에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다. 73
도는 절대로 커서 그 밖이 없고(至大無外), 절대로 작아서 그 안이 없다(至小無內)
세상에서 아무리 큰 것도 이렇게 무한히 큰 도에 비하면 무한히 작고,
세상에서 아무리 작은 것도 이렇게 무한히 작은 도에 비하면 무한히 크다.
도는 아무리 긴 시간보다 더 길고 아무리 짧은 순간보다도 더 짧다. 102
성인들은 (도를) 마음속에 간직하는데 보통 사람들은 서로 보이려고 변론을 한다.
그러므로 변론은(도를) 보지 못해 생겨나는 것이다. 105
석가는 우주가 영원한지 영원하지 않은지, 끝이 있는지 없느지 하는 등의 질문에 침묵을 지겼다.
이것을 '부처의 침묵'이라고 하고, 이렇게 대답을 회피한 질문을 '답할 수 없는 질문(avyakrta)'이라 한다. 107
철학자 파스칼도 하느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느님이지 철학자와 학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다.'라고 했다.108
도대체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모른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은 아는 것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겠는가? 111
내가 보기에 인의의 시작이나 시비의 길 따위의 것은 (결국 이처럼 주관적 판단 기준에 따라 걷잡을 수 없이) 번잡하고 혼란한데 내 어찌 이런 것이나 따지고 앉아 있겠는가? 114
소크라테스가 사약을 마시기 직전 "이제 떠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길을 간다.
나는 죽음의 길, 너희들은 삶의 길.
어느 길이 더 좋은 것인가 신만이 알 것이다."
(플라톤)
삶을 즐거워하는 것이 미혹 아닐까? 죽음을 싫어하는 것은 어려서 집을 잃고 돌아갈 줄 모름과 같은 것 아닐까?
- 죽은 사람들도 전에 자기들이 삶에 집착한 것을 후회하지 않을까? 121
깨어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꿈이었음을 알게 되지.
드디어 크게 깨어나면 우리의 삶이라는 것도
한바탕의 큰 꿈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네.
<장자> 2-27
나와 자네가 논쟁을 한다고 하세.
자네가 나를 이기고 내가 자네를 이기지 못했다면,
자네는 정말 옳고 나는 정말 그른 것인가?
내가 자네를 이기고 자네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나는 정말 옳고 자네는 정말 그른 것인가?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반드시 그른 것인가?
두 쪽이 다 옳거나 두 쪽이 다 그른 경우는 없을까?
자네도 나도 알 수가 없으니 딴 사람들은 더욱 깜깜할 뿐이지.
누구에게 부탹해서 이를 판단하면 좋을까?
<장자> 2-28
엷은 그림자가 본 그림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조금 전에는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조금 전에는 앉았더니 지금은 일어섰으니, 왜 그렇게 줏대가 없소?"
본 그림자가 대답했다.
"내가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소? 내가 의존하는 그것 또한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오?"
장자 2-31
모든 존재는
상호합일 - Mutual Identification
상호침투 - Interpenetration
상호연관 - Interrelatedness
상호의존 - Interdependence
상호변화 - Interchanging
상호연기 - Co-arising
상호존재 - Interbeing
한다.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습니다.
아는 것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는 것은
위험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계속 알려고만 한다면
더더욱 위험할 뿐입니다.
장자 3-1
못가의 꿩 한 마리,
열 걸음에 한 입 쪼고
백 걸음에 물 한 모금.
갇혀서 얻어먹기 그토록 싫어함은
왕 같은 대접에도 신이 나지 않기 때문.
장자 3-8
心齋
먼저 마음을 하나로 모으라. 귀로 듣지 말고, 마음으로 들어라.
다음엔 마음으로 듣지 말고, 氣로 들어라.
귀는 고작 소리를 들을 뿐이고, 마음은 고작 사물을 인식할 뿐이지만
氣는 텅 비어서 무엇이든 받아들이려 기다린다.
道는 오로지 빈 곳에만 있는 것. 이렇게 비움이 곧 마음의 齋니라. 장자 4-12
虛而待物者也 唯道集虛 虛者心齋
도가 들어오도록 마음을 비우는 것. 이것이 마음을 굶기는 것, 심재라는 것이다.
몸은 앉아 있으나 마음이 쏘다니는 상태를 座馳라 한다.
"바꿀 수 있는 것에는 바꿀 능력을 주시고,
바꿀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의연함을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예지를 주시옵소서."
어느 성자의 기도
安命論은 니체가 말한 '운명을 사랑함'과 비슷하다.
왕필(226-249)은 말했다.
공자는 無와 하나가 되었기에 그것이 가르침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깨달아 어쩔 수 없이 有만을 말했지만, 노자나 장자는 有의 경지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에게 모자라는 바를 계속 이야기 했다. 240
죽고 사는 것은 운명입니다. 밤낮이 변함없이 이어지는 것과 같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 모든 사물의 참모습입니다. 6-11
샘이 말라 물고기가 모두 땅 위에 드러났습니다. 서로 물기를 뿜어주고 서로 거품을 내어 적셔 주지만, 강이나 호수에서 서로를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6-12
대지는 나에게 몸을 주어 싣게 하고, 삶을 주어 힘쓰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합니다. 그러므로 내 삶을 좋다고 여기면 내 죽음도 좋다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6-14
작은 것을 큰 것 속에 감추면 그만인 줄 알지만, 거기에는 아직도 새어 나갈 자리가 있습니다. 천하를 천하에 감추면 새어 나갈 자리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변함없는 사물의 참된 모습입니다. 6-14
도는 무한히 커서 그 밖이 없고, 동시에 무한히 작아서 그 안이 있을 수 없다. 감출 곳이 어디 따로 있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도에 머무르는 사람, 도와 하나가 된 사람에게는 삶을 잃는다거나 찾는다는 것도 있을 수 없다. 도와 하나 되면 살아도 거기, 죽어도 거기. 밤중에 죽음이 찾아와 우리의 생명을 도둑질해 간다 해도 결국 숨을 데가 없으니 거기가 거기. 죽음이니 삶이니 하는 구분이 있을 수도 없고, 잃느니 찾느니 하는 대립이 있을 수 없다. 277
무릇 도가 실재라고 하는 믿을 만한 증거는 있지만, 그것은 함도 없고(無爲) 형체도 없습니다(無形). 전할 수는 있으나 받을 수가 없습니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를 근본으로 하고 스스로를 뿌리로 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땅이 있기 이전부터 본래 있었습니다. 귀신과 하늘님을 신령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내었습니다. 태극보다 높으나 높다 하지 않고, 육극(六極)보다 낮으나 깊다 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보다 먼저 있었으나 오래되었다 하지 않고, 옛날보다 더 오래되었지만 늙었다 하지 않습니다. 6-16
누가 없음으로 머리를 삼고, 삶으로 척추를 삼고, 죽음으로 꽁무니를 삼을 수 있을까? 누가 죽음과 삶, 있음과 없음이 모두 한 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까? 나는 이런 사람과 벗하고 싶네. 6-22
자래가 말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동서남북 어디를 가라 해도 자식은 그 명을 따르는 것. 음양과 사람의 관계는 부모자식간의 관계 정도가 아닐세. 음양이 나를 죽음에 가까이 가게 하는데 듣지 않는다면, 나는 고집스런 자식. 음양에 무슨 죄가 있나. 대저 대지는 내게 몸을 주어 싣게 하고, 삶을 주어 힘쓰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하고, 죽음을 주어 쉬게 하지. 그러니 삶이 좋으면 죽음도 좋다고 여길 수밖에. 6-26
이제 큰 대장장이가 쇠를 녹여 주물을 만드는데, 쇠가 튀어나와 ‘저는 반드시 막야(鏌鎁)가 되겠습니다.’한다면 그 대장장이는 필시 그 쇠를 상서롭지 못한 쇠라 할 것일세.
이제 내가 사람으로 나왔다고 해서 ‘사람의 모양만, 사람의 모양만’하고 외친다면, 조화자는 필시 나를 상서롭지 못한 인간이라고 할 것일세. 이제 하늘과 땅이 큰 용광로이고 조화가 큰 대장장이라면, 무엇이 되든 좋은 것 아니겠는가? 조용히 잠들었다가 홀연히 깨어나는 것. 6-27
*막야 - 옛날 오나라 우장이라는 사람이 오왕을 위해 만든 명검
이름에 매이지 말고無爲名戶
꾀의 창고 되지 말고無爲謀府
쓸데없는 일 떠맡지 말고無爲事任
앎의 주인 되지 마십시오. 無爲 知主
무궁한 도를 체득하고 없음의 경지에 노니십시오.
하늘에서 받은 바를 완전히 하고 터득한 것을 드러내려 하지 마십시오.
역시 비움뿐입니다. 7-11
거울은 앞에 나타나는 것을 그대로 비출 뿐, 밉다고 쫓아 보내고 예쁘다고 받아들이는 짓을 하지 않는다. 앞에 나타난 것이 슬프다고 함께 슬퍼하는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을 비췄다고 제가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출렁거리는 것을 보여준다고 같이 출렁이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잔잔히 떠오르는 대로 비추는 거울, 이것이 자유인(至人)의 고요하고 잔잔한 마음이다. 345
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길게 늘여 주어도 괴로움이 따르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잘라 주어도 아픔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본래 긴 것은 자를 것이 아니며, 본래 짧은 것은 늘일 것이 아닙니다. 8-11
우물 안 개구리에게는 바다 이야기를 할 수 없지요. 한 곳에 갇혀 살기 때문이오.
여름 벌레에게 얼음 이야기를 할 수 없지요. 한 철에 매여 살기 때문이오.
마음이 굽은 선비에게 도를 이야기할 수 없지요. 한 가지 가르침에 얽매여 살기 때문이오. 17-2
장자가 말했다. "아내가 죽었을 때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나? 그러나 그 시작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 본래 삶이란 게 없었네. 본래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던 것이지. 본래 형체만 없었던 것이 아니라 본래 氣가 없었던 것이지.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그것이 변하여 기가 되고, 기가 변하여 형체가 되었고, 형체가 변하여 삶이 되었지. 이제 다시 변해 죽음이 된 것인데, 이것은 마치 봄여름 가을겨울 사철의 흐름과 맞먹는 일, 아내는 지금 큰 방에 평안히 누워 있지. 내가 시끄럽게 따라가며 울고불고 한다는 것은 스스로 운명을 모르는 일이라. 그래서 울기를 그만 둔 것이지. 18-4
옛날 바다새가 노나라 서울 밖에 날아와 앉았다. 노후가 이 새를 친히 종묘 안으로 데리고 와 술을 권하고, 구소의 음악을 연주해주고, 소와 돼지, 양을 잡아 대접했다. 그러나 새는 어리둥절해 하고 슬퍼할 뿐, 고기 한 점 먹지 않고 술도 한잔 마시지 않은 채, 사흘 만에 죽어 버리고 말았다. 18-8
<빈 배>
배로 강을 건너는데
빈 배 하나가 떠 내려오다가
그 배에 부딪쳤습니다.
그 사람 성질이 급한 사람이지만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떠 내려오던 배에
사람이 타고 있으면
당장 소리치며
비켜 가지 못하겠느냐고 합니다.
한 번 소리쳐서 듣지 못하면
다시 소리치고
그래도 듣지 못하면
결국 세 번째 소리치는데,
그 땐 반드시 욕설이 따르게 마련.
처음에는 화를 내지 않다가
지금 와서 화를 내는 것은
처음에는 배가 비어 있었고
지금은 배가 채워져 있기 때문.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비우고
인생의 강을 흘러간다면
누가 능히 그를 해하겠습니까?
장자 30-3
..人能虛己以遊世 其孰能害之.
어진 행동을 하면서도 스스로 어진 행동을 한다고 하지 않으면
어디 간들 사랑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20-10
내가 남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오는 것을 물리치지 아니하고
떠나는 것을 붙잡지 않을 뿐입니다.
얻고 잃음은 나와 관계없는 것.
그러기에 걱정하는 기색이 없을 뿐입니다. 21-13
너는 네 모습을 바르게 하고,
눈길을 하나로 모으라.
하늘의 화기가 이를 것이다.
네 앎을 없애고
네 의식을 하나로 모으라.
신이 찾아와 머물게 되고,
덕이 너를 아름답게 하고,
도가 네 안에 살리라.
너는 새로 난 송아지처럼 사물을 보고
그 이유를 묻지 않게 될 것이다. 22-5
나라를 다스리는 일은 말을 기르는 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그저 말을 해치는 것을 없애는 것. 그것뿐입니다. 24-5
장자가 말했다.
쓸모 없음을 알아야 쓸모 있음을 말할 수 있지.
땅은 한없이 넓지만 사람에게 쓸모 있는 땅은 발이 닿는 만큼뿐일세.
그렇다고 발이 닿는 부분만 남겨 놓고
그 둘레를 모두 황천에 이르기까지 다 파 없애면
(그 쓸모 있다는 땅이) 그래도 정말 쓸모 있는 것일 수 있겠는가?
26-9
물고기 잡는 틀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
물고기를 잡았으면 그것은 잊어야 합니다.
덫은 토끼를 잡기 위한 것.
토끼를 잡았으면 그것은 잊어야 합니다.
말은 뜻을 전하기 위한 것.
뜻을 전했으면 그것은 잊어야 합니다.
나도 자기 말을 잊은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