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 세월호 선체가 수면 위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4월16일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지 1073일 만이다. 예상보다 순조롭게 인양이 진행되면서 그동안 왜 인양이 오래 걸렸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 당한 직후였기 때문이다. (▶
‘1073일의 기다림’…세월호 인양, 안 했나 못했나)
3년간의 세월호 인양 과정은 기다림과 슬픔, 기대, 분노, 의혹의 시간이었다. 인양기술 검토, 업체 선정, 인양방식 변경, 4·16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활동 연장 거부 논란 등을 거치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부의 ‘인양 의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했다. 해양수산부 선체인양추진단은 지난해 7월까지 인양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가 기상악화와 기술적 결함 등을 이유로 인양 시기를 8월, 11월, 올해 3~5월로 거듭 미뤘다. 선체 인양의 핵심 과정인 선수들기도 7번의 시도 끝에 지난 7월에야 겨우 성공했다. 마침내 세월호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지만 정부는 미수습자 수습과 선체 정리 방법을 놓고 또다시 유가족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유실방지 처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졸속 인양’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정부의 ‘구멍 난’ 세월호 인양과정을 되짚어봤다.
■ 참사 371일…세월호 인양, 1년 만에 결정
참사 이후 미수습자 수중수색이 7개월여 계속됐다. 295번째 희생자를 끝으로 더는 미수습자가 발견되지 않자 정부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2014년 11월11일 수색 중단을 발표한다.
수색 중단 직후부터 미수습자 가족들은 ‘조속한 인양’을 요구했다. 그해 11월, 정부는 선체 인양을 검토할 ‘세월호 선체 처리 기술검토 태스크포스(이하 티에프)’를 구성했다. 12월엔 세월호 특별법에 따라 특조위 설립준비단도 출범했다. 티에프에서 기술 검토 결과가 나온 건 2015년 4월10일이다. 미수습자 수색 중단 이후 5개월 만이다. 티에프는 인양 방식으로 크레인과 케이슨 플로팅독(항만공사용 플로팅독)을 함께 사용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크레인의 쇠줄로 세월호 선체를 어느 정도 끌어올린 상태에서 플로팅독에 실어 수면 위로 띄우는 방식이다.(▶
크레인 2대로 들어 ‘이동식 부두’에 실어 올리는 방식 제안)
정부가 구성한 ‘세월호 선체 처리 기술검토 태스크포스’가 2015년 4월10일 발표한 세월호 인양 방법과 절차. <한겨레> 그래픽.
그러나 티에프가 내놓은 결과는 정부가 참사 직후인 2014년 5월5일 영국 해양구난 컨설팅업체 티엠씨(TMC)와 자문계약을 맺으면서 이 업체가 제시한 인양 기술과 거의 일치했다. (▶
<뉴스타파> ‘세월호 인양가능’ 작년 5월 결론…1년간 은폐) 신중하게 접근했다고도 볼 수 있지만 ‘판박이’ 결론을 얻기 위해 아까운 시간만 흘렀음은 부인할 수 없다.
공식 인양 결정은 참사 371일 만인 2015년 4월22일에 나왔다. 정부는 인양업체 선정 절차를 거쳐 이르면 그해 9월에 현장 작업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양은 업체 선정 뒤 1년~1년6개월이 걸린다”며 2016년 6~12월을 인양 가능 시점으로 짚었다. 정부가 시간끌기를 하고 있다는 의혹이 커졌다. 활동 기한이 2016년 9월로 예정돼 있는 특조위가 진상규명의 핵심 증거인 선체 조사를 해보지도 못한 채 활동이 종료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세월호 특별조사위 활동 끝난 뒤 ‘핵심 증거물’ 세월호 인양?)
■ 참사 476일…‘부적합’ 판정 기술 가진 인양업체 선정
정부는 참사 476일째인 2015년 8월4일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을 인양업체로 선정한다. 선정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때까지 특조위는 예산을 받지 못해 정식 활동에 들어가지 못한 상태여서 인양업체 선정 과정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상하이샐비지는 선정 보름 만에 첫 수중조사를 시작한다.(▶
490일 만에…세월호 인양 ‘첫발’) 그러나 정부는 인양 작업 참관을 원하는 유가족과 특조위의 조사 활동에 비협조로 일관했다. 유가족들은 8월29일 동거차도에 초소를 세우고 인양 작업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세월호 인양업체로 선정된 상하이 샐비지가 2015년 8월16일 첫 수중조사에 나섰다. <한겨레> 자료사진.
정부와 상하이 샐비지는 2016년 7월까지 인양을 장담했다. 하지만 인양은 계속 지연됐고, 상하이 샐비지의 기술력에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상하이 샐비지는 선정 과정에서 평가 총점 2, 3위 업체와 기술 평가에서 엇비슷한 점수를 받았으나 인양 가격이 가장 낮아 선정됐다. 기술 평가 1위를 받은 네덜란드 업체가 정부가 제시한 금액이 너무 낮아 입찰을 포기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렇게 ‘가격’이 강점이었던 상하이 샐비지의 경쟁력은 두 달 만에 무색해졌다. 정부가 유실방지망 비용 60억원, 작업중단 보전 비용 5억원을 추가로 지급하게 된 것이다. 처음 851억원이던 계약금액은 916억원으로 불어났다. 인양 비용을 우선시할 필요가 있었냐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인양 방식이다. 2016년 3월29일 특조위는 2차 청문회에서 상하이 샐비지의 인양 방식이 인양업체 선정과정에서 티에프가 제안했던 ‘크레인 인양 뒤 플로팅독 안착’ 방식과 다를 뿐 아니라, 티에프와 같은 인양 결론을 낸 바 있는 영국업체 티엠씨가 ‘부적합’하다고 평가한 기술이라는 점을 밝혔다.(▶
<뉴스타파> “정부, ‘인양 가능’ 알고도 5개월 허송”…세월호 2차 청문회)
실제로 상하이 샐비지가 채택한 ‘부력재 인양’ 방식은 인양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지난해 5월 부력 확보를 위해 설치한 고무폰툰에 공기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폰툰이 불규칙적으로 팽창하면서 연결 장치에서 떨어져 나갔다. 6월에는 세월호 선수를 들어올리는 작업 중 일부 와이어에 하중이 몰려 갑판부 두 곳이 6.5m, 7.1m 찢어지고 선체 옆면도 손상을 입었다.(▶
불안감 커지는 세월호 인양…뱃머리 들다가 선체 갑판 두 군데 훼손) 부력재를 선내에 넣기 위해 뚫은 구멍(천공)도 140여개가 넘는다. 크기가 제각각인 구멍들로 인해 선체 파손 위험은 물론 미수습자와 유품 유실 가능성도 커졌다. 해수부는 선체 인양 과정에 방해가 된다며 스테빌라이저(균형장치), 앵커(닻), 불워크(파도를 막아주는 울타리) 등을 절단해 육상으로 옮기기도 했다. 특히 불워크 부분은 특조위가 침몰 원인 조사에서 주요 증거라며 작업 중지 요청까지 했지만 묵살됐다. 침몰 원인을 밝힐 핵심 증거들이 무참히 훼손됐다.
인양 과정에서 각종 문제가 불거지면서 인양 일정도 꼬였다. 2016년에는 인양이 성공한다고 공언했던 해수부는 지난해 11월11일 인양 일정을 올해 3~5월로 미룬다고 발표했다.(▶
올해 꼭 성공하겠다더니…정부 ‘세월호 연내 인양 실패’ 공식화) 인양 방식도 변경했다. “바람이 강한 겨울에 해상 크레인은 위험해 사용할 수 없게 됐다”며 인양 방식을 ‘재킹 바지선’과 ‘반잠수식 선박’을 이용하는 공법으로 바꾼 것이다. 이를 준비하느라 시간이 또 흘렀다.
정부와 상하이 샐비지는 2016년 11월11일 해상크레인을 이용한 ‘플로팅도크’ 방식에서 재킹바지선을 이용하는 ‘텐덤리프팅’ 방식으로 인양 공법을 변경했다. 해수부 제공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참사 1073일…유실방지책 유명무실
지난 22일에야 시험인양이 성공적으로 이뤄져 본인양이 시작됐지만, 인양 과정에서 선체 훼손이 이어지고 있다. 23일에는 선미 램프(자동차 등이 출입하는 통로의 출입문)가 열려 있는 것이 발견돼 뒤늦게 절단 작업이 진행됐다. 1년6개월 넘게 잠수사들이 세월호 곳곳을 조사하며 인양 준비를 했는데도 램프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인양 준비 부실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물빼기용 구멍을 뚫었다 기름이 쏟아져 나와 작업이 중지되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 원인 ‘안갯속’, 증거물 소홀히 다루는 해양수산부)
세월호가 26일 오후 반잠수식 선박에 선적돼 있다. 세월호는 해수 배출과 잔존유 제거, 고박 작업 등을 마친 뒤 30일 목포신항을 향해 ‘마지막 항해’에 나선다. 진도/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28일에는 급기야 동물뼈가 선체로 쏟아지면서 유실방지책에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동물뼈 발견으로 유해 유실 우려 커져) 2014년 11월 실종자 수색을 중단하면서 세월호 문과 창에 설치해 놓은 실종자 유실방지책이 ‘망’이 아니라 가위표(X) 형태로 쳐놓은 2개의 유실방지줄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유실방지책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지만, 여태껏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셈이다.(▶
‘세월호 실종자’ 유실 방지 장치 ‘망’아닌 ‘줄’이었다)
미수습자 주검 수습 방식도 문제다. 지난해 8월29일 정부는 세월호가 눕혀진 상태에서 객실 구역만 절단해 바로 세운 뒤 미수습자 수색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선체정리업체로는 이런 내용의 제안서를 제출한 코리아쌀베지가 선정됐다. 미수습자 가족들은 즉각 반대했다. 객실 부분과 화물칸을 분리할 경우 침몰 원인 조사에 필요한 조타실, 기관실 구역과 이어지는 배선 라인이 분리되는 점, 절단 과정에서 화물칸 화물이 쏟아질 가능성을 우려했다. 거센 반발에 해수부는 새롭게 꾸려진 선체조사위원회와 미수습자 가족들의 의견을 모아 처리 방식을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한발 물러선 해수부 “세월호 선체절단 집착 않겠다”) 그러나 세월호가 30일 목포신항으로 떠나 뭍에 거치되면 선체 절단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정부의 ‘구멍 난’ 인양으로 녹슬고 긁힌 세월호를 마주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3년.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 규명 과정에서 또다시 시간이 허투루 흘러가는 일이 없도록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이유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참고자료: 세월호 인양 국회 토론회 자료집(2017.3.23)
<세월호 인양과정>
- 2014. 11.11 정부, 수색 중단 발표
- 2014. 11.24 세월호 선체 처리 기술검토 태스크포스(TF) 구성
- 2015. 2.5 정부 TF, 기술적으로 선체 인양 가능 결론
- 2015. 4.22 인양 공식 결정. “9월 착수, 2016년 6~12월 인양 가능”
- 2015. 8.4. 인양업체 결정. 상하이 샐비지 컨소시엄
- 2015. 8.16. 상하이 샐비지, 첫 수중조사 착수
- 2016. 4.14 “7월 선체인양” 계획 발표
- 2016. 5.28 선수들기 작업 중 폰툰 이탈사고
- 2016. 6.13 너울성 파도로 인한 대규모 선체 파손
- 2016. 7.29 선수들기 7회 시도 끝에 성공
- 2016. 8.29 선체 인양 후 절단 방식 발표
- 2016. 9. 30 세월호 특조위 활동 종료
- 2016. 11.11 “연내 인양 불가” 발표, 인양 방식 변경
- 2017. 3.19. 시험 인양 시도했으나 줄꼬임 현상으로 실패
- 2017. 3.22 시험 인양 성공 뒤 본인양 시작
- 2017. 3.26 세월호 전체 모습 공개
- 2017. 3.30 목포신항으로 출발(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