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 김도연(21) 선수가 17일 경기를 하다 숨을 거뒀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 선수가 꽃다운 나이에 그라운드에서 죽은 것이다. 가족들도 마음이 아프겠지만 대학의 축구 지도자로서도 비통하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아 슬픔에 잠길 수만은 없다. 김 선수의 표면적인 사인은 심장마비다. 그러나 그것이 김 선수를 숨지게 한 요인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난 17일 봄철대학연맹전이 열린 속초엑스포경기장은 말이 경기장이지, 축구를 할 수 있는 그라운드가 아니었다. 콘크리트처럼 딱딱한 맨땅. 바람은 사람을 쓰러뜨릴 정도로 강하게 불었고, 손이 곱을 정도로 기온도 낮았다. 공을 차면 역풍에 의해 꺾였고, 가뜩이나 긴장한 선수들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애초 속초에 도착했을 때 53개 참가 대학팀 감독들은 저마다 “어떻게 이런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가”라며 한탄을 했다.
그러나 경기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부상자가 잇따랐다. 16일에도 부상자가 나왔는데, 앰뷸런스가 없어서 고생을 했다. 그런데 17일에도 앰뷸런스는 없었다. 대회 규정상 최소한 앰뷸런스는 준비하는 게 기본이지만, 모두가 무관심했다.
더 큰 문제는 대학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의 축구 철학이다. 대학축구는 한국 엘리트 축구의 정상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대회가 맨땅에서 열려야 하는가? 잔디 경기장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로는 100개는 된다. 로비를 하든 돈을 더 쓰든 대학 선수들을 위해 최상의 경기장을 섭외할 수는 없었는가? 대학축구연맹은 왜 맨땅인 속초에서 경기를 개최했는가를 해명해야 한다.
프로 감독들이 대학 감독들에 늘 하소연하는 게 있다. 대학 선수의 `못믿을' 기량이다. 잘한다고 뽑아갔는데 도대체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다. 다 이유가 있다. 맨땅에서 10년을 뛴 선수가 어떻게 하루 아침에 잔디경기장에 적응할 수 있겠는가? 공 감각이나 기술 면에서 맨 땅과 잔디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국제경기는 모두 잔디에서 이뤄진다. 대학축구가 맨 땅에서 이뤄지는 축구 풍토에서는 한국 축구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질 수 없다.
스포츠는 정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거울처럼 그대로 비쳐준다. 투자한 만큼 거둘 수 있다. 그런데 축구협회는 대표팀에만 집중 투자하고 있다. 히딩크 감독 1명에 지급되는 돈으로 지도자 양성에 쓰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더 큰 효과를 볼 수도 있다. 대표팀에 투자하는 게 더 생색이 나고, 더 빛난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포츠는 오랜 기간 투자한 데서 강력한 힘을 내기 때문이다.
월드컵 16강을 희망하는 한국은 축구환경부터 바꾸어야 한다. 대학 축구는 적어도 잔디 경기장에서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다음 지도자들을 양성해야 한다. 60점짜리 지도자가 90점짜리 선수를 만들어내기는 힘들다.
축구협회는 대표팀 뿐 아니라 대학 축구, 유·청소년 축구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김도연 선수의 죽음은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지는 축구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예방은 가능하다. 그 노력은 축구협회와 대학축구연맹, 축구인 전체의 몫이다.
홍익대 축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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