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단한 사람입니다. 히딩크, 그가 또 세계를 흔들고 있습니다. 유럽축구의 변방인 러시아를 일약 유로2008 4강 대열에 합류시켰습니다.
다시 ‘매직’이 운위됩니다. ‘기적’이 거론됩니다. 전 세계가 히딩크의 마법에 놀라고 히딩크의 리더십에 경탄합니다.
비결이 뭘까요? 이 세상에 ‘매직’은 없습니다. 히딩크 또한 마법사의 힘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의 ‘기적’은 단지 노력의 결과입니다.
모두가 공감하는 게 있습니다. ‘동기 부여’입니다.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이렇게 표출된 잠재력을 조직력으로 엮어내는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모두가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히딩크가 ‘동기 부여’를 하는 데 얼마나 탁월한 재능을 가졌는지는 숱한 일화가 증명합니다. 훈련에 지각하던 러시아 수비수 이그나셰비치를 집으로 돌려보낸 일화는 PSV아인트호벤 시절 호마리우 일화와 빼닮았습니다. 유로2008에서 러시아 최고의 공격수로 활약하고 있는 아르샤빈을 한때 대표팀에서 뺀 일화는 한국 대표팀 시절 홍명보의 일화와 비슷합니다.
‘자극’을 받아 ‘자발성’을 내보이는 선수에게는 공평하게 대했습니다. 당장의 명성에 현혹되지 않고 당장의 악평에 휘둘리지 않았습니다. 모두를 같은 출발선에 놓고 공평하게 재려 했습니다. 그 결과가 박지성과 김남일입니다. 고만고만했던 선수들을 대표팀의 주축으로 키워냈습니다.
기껏해야 심리전이라고, 선수 다루는 기술에 불과하다고 폄하할 일이 아닙니다. 히딩크는 그러면서도 동고동락했습니다. 선수들과 같이 공을 차고, 선수들과 같이 장난을 치고, 선수들과 같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어깨동무를 했습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뻥’이 세다고 싶을 정도로 자기 팀을 치켜세웠고 주변의 비아냥에는 단호한 태도로 임했습니다. 이렇게 조직력을 키웠습니다. 통합을 일궈냈습니다.
그리곤 맡겼죠. 어차피 그라운드에서 승부를 펼치는 주체는 선수들이니까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이렇게 정리해도 될 것 같습니다. 히딩크의 리더십은 수직적 리더십이 아닙니다. ‘나를 따르라’는 독불장군식, 메시아식 리더십이 아닙니다. 히딩크의 리더십은 수평적 리더십입니다. 선수를 끌고가는 게 아니라 그들 속으로 들어가 자극을 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리더십입니다.
오버랩 되는 인물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입니다.
서울시장으로 있을 때 반바지에 샌들 차림의 아들과 함께 히딩크와 기념사진을 찍은 일 때문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리더십이 극명하게 교차된다고느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동기 부여’를 하지 못했습니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는 둘째 치고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자발적 헌신조차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얼리 버드’로 상징되는 ‘다그침’만 보였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처럼 부처 과장이 할 일조차 직접 챙겼습니다. 관료의 창발성을 고양하기보다는 눈치보기 풍조를 야기했습니다.
‘탕평’의 리더십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천명했던 ‘실용’의 리더십도 아니었습니다. 자신과 잘 아는 사람을 기용했습니다. 부도덕한 행적을 보인 사람조차 ‘연’을 중시해 내치지 않았습니다.
‘통합’의 리더십도 펼치지 않았습니다. 국민과 소통하지 않고 토론하지 않았습니다. 논란이 많은 정책인데도 공개적 토론보다 비밀스런 추진에 힘을 쏟았습니다. 자신이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에 국민들이 반대를 하면 ‘오해’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랬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동안 보인 리더십은 이랬습니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요? 바뀌는 걸까요?
그럼 다행입니다. 5년의 임기 가운데 석 달여는 극히 짧은 기간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다면 지난 기간은 전화위복의 준비기간 쯤으로 여겨도 됩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러겠노라고 합니다. 그래서 ‘뼈저린 반성’을 고백하고 청와대 비서진을 개편했고, 내각을 교체하려 합니다.
헌데 ‘일신’의 면모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청와대 비서진 개편을 두고 ‘돌려막기’라는 야박한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동관 대변인의 유임을 두고는 비난이 쏟아집니다. 내각 개편도 그렇습니다. 내각을 교체하기 전부터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팀 유임을 시사했기 때문입니다.
정책도 그렇습니다. 변화를 언급하면서도 단서를 달고 표현을 바꾸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이런 모습에 신뢰가 아니라 의구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앞날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해소’하고 ‘새출발’하는 게 아니라 ‘소강’ 상태를 지나 ‘재연’될 수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렇고 촛불민심이 그럴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정말로 나타난다면 그건 국가적 불행입니다. 통합이 기적을 일궈내는 신명나는 모습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변해야 합니다. 변할 것이라면 확실하게 변해야 합니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 그리고 국민이 간절하게 원하는 것은 ‘창조적 단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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