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 부의미래

도서관 정복 2013.06.01 13:27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일단 책의 제목이 눈에 많이 띄었기 때문입니다. 

책의 앞 표지를 보면 2022 Global Trend, 시장을 뒤바꾸는 제4의 물결, 10년후 부의미래  이렇게 글씨가 들어가 있는데 요즘은 트랜드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어서 직작인이든 사업가든 트랜드를 빨리 읽지 못하면 경쟁에서 도태될수 있는게 현실인듯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을 선택한게 아닐까 합니다.

 

저자는 트렌드 지 특별취재팀(전 세계 2만여 명의 전문가들이 매월 6~8개의 사회ㆍ경제ㆍ산업기술 관련 기사를 각자의 의견과 자료를 공유해 형성하는 ‘집단지성을 활용한 지식보고서’입니다)

<트렌즈> 지의 필진들이 지은 책으로는 《지금부터 10년 글로벌 트렌드》 등이 있다. 이 책은〈트렌즈〉 지에 실린 글들 중 국내 독자에게 유용한 것들을 모아 엮은 것입니다.
역자 : 권춘오

 

책의 구성은

1. 제1부 국제사회 - 위기를 알아야 출구가 열린다.

2. 제2부 경제경영 - 패러다임이 바뀐다.

3. 제3부 정보통신 - 세상 모든 것이 융합된다.

4. 제4부 산업기술 - 신기술에 자본이 몰린다.

5. 제5부 생명공학 - 새로운 물결이 몰려온다.

이렇게 총 5부로 구성되어있고 세부적인 내용으로 총 34가지의 미래에 대한 변화및 예측에 관해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몇가지만 간추려서 제 생각과 같이 정리해보겠습니다.

 

 

청년실업 - 지구촌의 취업률은 높아질 수 있을까?

☞ 이 책은 청년실업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청년 실업이 지속되면 정치 및 경제 체제에 대한 불만이 생길것이며, 그로 인해 우울증, 마약 복용 및 범죄를 불러 올 수도 있는데, 하지만 청년실업에 대해서 기대를 거는것은 민간 분야의 고용주, 노동조합, 그리고 취업알선업체등의 노력으로 어느정도 개선될 것이며, 또한 정부의 노력으로 좀더 극복할 것이라 보는듯 합니다. 그러나 저 임금에 고용하려하는 고용주, 어려운일 하기 싫어하는 청년들, 40대 초반에 은퇴할 수 밖에 없는 사회 등 과연 언제쯤 이 시대적 문제가 극복될지는 지켜봐야 알듯합니다. 하루빨리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젠더사이드 - 재앙을 일으키는 중국의 성비 불균형

☞ 중국의 남아선호사상이 큰 문제를 일으킬것이라는 예측입니다. 1980년대 여자아이 100명이 태어나면 남자아이는 105명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여자아이 100명에 남자아이 130명이 태어난다고 합니다. 중국 인구가 10억이 넘으니... 대충 비율이 짐작이 갑니다. 이로인해 현재 28세에서 49세 사이의 미혼 인구 중 94%는 남성이라 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저출산 정책도 문제인데 2050년도엔 중국인구 20%~30% 정도가 감소할 수 있다네요. 이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 현재 중국은 낙태금지, 1자녀 완화등 법적으로 노력하고는 있지만 사실상 통제가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이 듭니다.

 

워터 쇼크 - 메말라가는 지구를 구할 대안은?

☞ 바다도 있고 강도 있고 물이 이렇게 많은데 왜 자꾸 물부족을 이야기 하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중동, 중국, 인도등 여러 나라에서는 약 10억 명의 사람들이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물의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담수화 기술개발, 나노기술의 개발등이 활발히 이루어 지고 있는데 하루 빨리 해결되길 기대해 봅니다.

 

일자리 전쟁 - 취업난 시대의 최대 과제

청년실업과 비슷한 맥락에서의 내용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실업률은 갤럽(Gallup Organization) 여론조사에서 50%에 달한다고 합니다. 갤럽 회장인 짐 클리프턴은 "만약 국가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붕괴될 것이다. 국가,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도시는 고통, 불안정, 혼돈, 그리고 결국에는 혁명을 경험할 것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책 47페이지)

일자리 창출은 그 만큼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기업도 정부도 그리고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모두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식품 혁명 - 바이오 기술과 나노 기술이 농업을 발전시킨다.

☞ 유전자 변형을 일으켜 식품의 혁명을 일으킨다는 내용입니다. 하지만 유전자를 조작하여 만드는 식품이므로 혹시나 모를 사람에게 위협적인 요소가 없는지 철저하게 분석을 하여 시장에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간접광고 뉴로마케팅이 대세로 떠오른다.
☞ 뉴로마케팅이란 소비자의 무의식에서 나오는 감정ㆍ구매행위를 뇌과학을 통해 분석해 기업마케팅에 적용하는 기법입니다. 즉 무슨의미냐 하면 영화를 보다보면 배우들이 목이 마르다면서 갑자기 콜라 한캔을 따서 마실때 보통 사람들은 중점을 콜라에 두진 않을겁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무의식속에 콜라가 자리잡히게 되는거죠. 전문가들은 뉴로마케팅이 트랜드로 자리 잡힐것이라 예상하고 있는듯 합니다. 시간날때 뉴로마케팅관련 책을 한번 읽어 봐야겠습니다. 그 후 좀더 구체적으로 뉴로마케팅에 대해서 포스팅하겠습니다.


가상 사무실 - 사무실이 사라진 회사
☞ 요즘 저도 업무를 볼때 원격접속을 통해서 해당 컴퓨터를 접속하여 일을 처리합니다. 그렇게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는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아무런 해당사항이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화상회의를 통해서 일하는 모습을 TV,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이제 일을 하는데 있어서 거리는 해당사항이 없어지는듯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컴퓨터가 있고 인터넷만 연결되어 있으면 어디든 사무실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스마트 시티 - 모든 것이 연결되는 네트워크 세상 

☞ "모든 것이 연결되는 네트워크 세상" 대부분 예측하고 있는 미래가 아닐까 합니다. 스마트폰 하나만 가지고 있으면 집에 전등을 켜고 밥을 짓게 하고 TV를 켜는둥 이러한 기술들이 종종 개발되어 나오고 있는데, 아마도 몇 년후 모든 전자제품들이 하나의 IP를 가지면서 PC 또는 스마트폰 하나로 컨트롤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때문에 보안을 철저하게 하지 않으면 사이버 범죄가 일어날수도 있겠죠.


인공지능 - 자동차와 가전제품이 스스로 작동된다

☞ 인공지능 컴퓨팅 기술이 점차 발전되면서 기계들이 스스로 작동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TV에서 종종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이는 영상을 볼 경우가 있습니다. 그때마다 무인자동차가 나올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디지털 패브리케이션 - 책상 위에 공장이 들어선다

☞ 3D 프린팅 기술이 발전되면서 이제 필요한 물품을 스스로 생산하고 활용하여 가정에서도 공장이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미래엔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집에서 나만의 신발, 옷, 더 나아가 전자제품을 생산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인간 게놈 - 인류의 삶이 바뀐다

☞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인간의 수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술의 발달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에는 모든 게놈에서 활동하는 요인들을 해독하는 효과적인 도구를 갖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효과적인 표적치료가 가능하며 어떤 환자에게 어떤 치료법이 가장 도움이 되는지를 결정할 수 있을겁니다.

 

 

 간략하게 몇가지만을 추려서 내용을 정리를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 즐겨보는 만화는 은하철도 999, 아톰, 태권브이 등등 대부분 미래의 공상과학만화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이 얼마되지 않아 현실이 되는 시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공상과학소설을 읽고있는 듯한 느낌이었네요. 모든 내용을 정리 못해서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관심있는 분들은 가볍게 이 책을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책의 제목은 "10년후 부의미래" 이지만 이제 부터 "10년후 나의미래"에 대해서 설계를 시작해야겠습니다.

[텐센트 완전 해부 10편] 텐센트, 애플의 자리를 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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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센트는 텐센트만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모방’이란 키워드로 중국 인터넷 기업 1위 자리에 올랐고, 이후로 상승세를 타고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모방’이 가진 파괴력도 조금씩 상쇄되어가면서 텐센트에게는 무언가 새로운 대안이 필요해진다.

 

을에서 갑으로, 텐센트 투자자로 대변신

중국 인터넷 기업 1위인 텐센트는 2009년까지 텐센트 특유의 모방 장인정신(?)과 막대한 사용자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매년 80-100%에 달하는 성장률을 기록했다. 또한 게임과 SNS가 큰 성공을 거두며 든든한 수익모델까지 갖추게 되었다. 이 모든 노력의 결과로 중국 최고의 IT업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었지만, 주변에서는 “텐센트가 할 줄 아는 건 오로지 모방뿐이다”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2009년전까지 텐센트는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모두 80% 이상의 고른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2009년, 이들 수치는 처음으로 73.9%,71.6%, 85.5%를 기록하며 80%를 하회했고, 2010년이 수치는 57.9%, 55.8%, 63.4%을 기록하며 성장세가 대폭 하락했다. 2011년 1분기에도 이러한 하락세는 멈추지 않았고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은 50%,43%, 57.6%를 기록하며 성장세가 크게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텐센트는 나날이 급감하는 성장세를 두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그리고 텐센트는 성장속도 급감이 회사의 수입구조로부터 야기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수익의 절반이상이 온라인 게임과 SNS에서 창출되고 있는 텐센트의 수익구조는 유저 확보로 충분히 유지가 가능했다. 하지만 2009년에 접어들면서 런런왕(人人网), 시나웨이보(新浪微博), 카이신왕(开心网)등 Qzone의 경쟁자들이 잇달아 등장했고, 넷이즈(网易, Netease), 샨다(盛大, SNDA), 더나인(九城, The 9) 등 게임시장 경쟁이 심화되면서 자연스레 텐센트의 성장세는 하향곡선을 그릴 수 밖에 없었다.


텐센트의 리우츠핑(刘炽平) 전임이사는 성장률 하락에 대해 “초창기 텐센트의 사업규모는 작았지만, 사용자들이 꼭 필요로 하는 서비스였다. 이후로도 우리는 계속 변화하는 이용자들의 니즈를 고려해 더 많은 신상품을 출시했고, 이는 늘 시장의 니즈와 잘 부합해 이용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왔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자의 니즈가 서비스보다 더욱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텐센트로 유입할 수 있는 유저 수도 한계에 이르렀다. 이제 더 이상 텐센트 기업만으로는 벅차다.”라고 텐센트가 마주한 한계를 설명했다.

 

새로운 문제와 마주하게 된 텐센트는 이제 혼자의 힘이 아닌 주변의 힘을 빌리기로 한다. 그리고 그 동안 유지해온 ‘모방’이라는 DNA를 대신하여 ‘투자’라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장착하게 된다. 2010년, 텐센트는 본격적으로 투자업계에 발을 내밀기 시작했다. 투자대상은 자사와 연관성이 깊은 업체뿐만이 아니었다. 과감하게 영역 파괴에 나서 인터넷 분야라고 하면 전부 텐센트의 손길이 미치기 시작했다. 또한 텐센트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인터넷 전분야에서 잠재력 있는 기업에 대해 투자를 진행했고, 투자업계에 발을 들인 텐센트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2010년 텐센트는 총 7차례의 투자를 진행했으며, 투자금액은 3억 5,000만 달러(한화 약 630억 원)에 달했다. 그리고 2011년 언론에 공개된 텐센트 투자 프로젝트는 총 9건, 투자금액은 약 7억 달러를 기록해, 2010보다 배 가까이 증가했다. 2011년 6월 마화텅은 텐센트의 투자전략을 발표했다. 2011년 초 당초 집행하기로 했던 투자자금 50억 위안(한화 약 9,000억 원)에 100억 위안(한화 약 1조 8,000억 원)을 추가로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대외투자에 보다 많은 금액을 투입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다.

 

그리고 2012년 7월 5일, 마화텅은 텐센트의 발전방향을 ‘글로벌’로 설정하고 리스크가 큰 직접진출보다는 해외기업 투자형식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밝혔다.

수익성 개선으로 시작된 텐센트의 투자는 동종업계는 물론, VC들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VC들은 텐센트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했다. 그리고 현재 텐센트는 해외투자를 조금씩 확대해 나가고 있다. 이제 텐센트가 미국 거대 게임업체를 인수했다는 뉴스를 접할 날이 머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텐센트의 선택을 받은 이들은?

2010년 인터넷 서비스 업체인 Comsenz(康盛创想)를 시작으로 기업투자에 대한 열의를 보인 텐센트는 지난해에만 70억 위안을 대외투자에 퍼부었다. 그리고 투자로 새로운 성장동력을 얻은 텐센트는 이제 그 투자 범위를 점차 확대해 나가고 있다.

아래는 2011년 텐센트의 주요 투자이슈이다.

 

SNS 1위 탈환을 위한 선택, ‘카이신왕’

2011년 텐센트의 기업투자 가운데 단연 화제는 카이신왕(开心网) 투자이다. 현재 정확한 투자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약 1억 위안(한화 약 180억 원)으로 추측되고 있는 카이신왕 투자는 런런왕(人人网)과 시나웨이보(新浪微博)를 견제하기 위한 텐센트의 전략적인 투자이다.

현재 텐센트의 펑요왕(朋友网)과 텐센트 웨이보(腾讯微博)는 중국SNS 시장에서 런런왕과 시나웨이보에 밀려 2인자 자리에 머물고 있다. 또한 런런왕과 시나웨이보의 활약으로 QQ의 활동 유저 수가 계속 감소하여 텐센트는 때아닌 위기를 겪고 있었다. 텐센트는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용자 수 1억 2,000만 명이 넘는 카이신왕 지분 일부를 인수하면서 런런왕과 시나웨이보를 견제하고 나섰다.

 

동영상 판권가격 상승의 해결책 ‘화이브라더스’

텐센트는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화이브라더스(华谊兄弟, Huayi Bros)’에 대한 투자로 일부 영상 저작권에 대한 고민이 절로 해결되었다. 2010~2011년 온라인 동영상이 큰 인기를 끌면서 동영상 판권 가격도 덩달아 폭등했다. 매년 이를 구입하기 위해 투자하는 비용만 최대 1억 위안(한화 약 180억 원)을 넘어서자 텐센트는 비용절약을 위해 머리를 굴렸다. 중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회사이자 영화제작사인 화이브라더스는 대량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데다 국내 중국 영화 시장의 30%를 차지하고 있어, 텐센트가 화이브라더스와 손을 잡을 수 있다면 큰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뿐더러 영화산업에까지 손을 뻗칠 수 있었다. 이에 텐센트는 4억 5,000만 위안(한화 약 800억 원)을 화이브라더스에 투자했다.

 

비주류 산업 진출에 대한 해결방법 ‘이롱’

텐센트는 돌연 ‘이롱(艺龙, e-Long)’이라는 여행 전문 플랫폼에 투자를 집행했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온라인 여행 산업에 진출하기로 결정한 텐센트는 전무한 경험을 메꾸기 위해 업계 1,2위를 다투는 이롱에 5억 4,700만 위안(한화 약 1,000억 원)을 투자하여 ‘QQ여행 플랫폼’ 서비스를 위한 교두로를 마련했다. 현재 QQ여행의 호텔 관련 업무는 이롱이 독점 공급하면서 서비스 리스크를 최소화했다.

 

2012년, 텐센트의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휴대폰 및 PC 관리프로그램 제작사 모러 소프트웨어(魔乐软件)에 이어 미국의 대형 게임업체인 Epic에 투자를 집행하며 활발한 투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또한 최근 언론에 텐센트의 블리자드 인수설이 나돌면서 텐센트의 대외투자가 이제 글로벌 수준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텐센트는 텐센트 월드 영향력 확대를 위해 글로벌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페이스북 이펙트>의 저자 데이비드 커크패트릭(David Kirkpatrick)는 “텐센트의 글로벌화는 페이스북에 매우 위협적이다.”라고 언급할 정도로 글로벌화에 대한 텐센트의 기세가 전세계 IT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세계 유수의 IT업체들이 이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텐센트의 발걸음은 한국을 향하고 있다.

한국게임인 ‘크로스파이어’와 ‘던전앤파이터’ 등을 퍼블리싱하며 쏠쏠한 재미를 본 텐센트는 한국게임업체에 대한 투자에도 매우 적극적인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0년 텐센트는 한국 벤처캐피탈인 캡스톤파트너스와 함께 500억 원 규모의 캡스톤벤처펀드를 결성하고 한국의 7개 게임개발사에 투자를 실시했다. 이는 규모가 비교적 작은 게임개발사에 대한 투자를 통해 업체의 게임개발과 성장을 돕고 성장한 게임을 다시 중국 시장으로 퍼블리싱 하겠다는 전략으로, 이전 단순히 퍼블리셔의 투자 방식과는 사뭇 다른 행보이다. 또한 텐센트는 국내 대형게임업계와의 게임판권 계약에도 매우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며 2011년 엔씨소프트, XL게임즈, JCE, 웹젠 등의 대형 게임 판권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텐센트는 ‘크로스파이어’에 이어 ‘블레이드앤소울’까지 한국 게임을 퍼블리싱하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고 있다. 또한 게임 퍼블리싱 뿐만 아니라 한국의 개발업체 인수 기회를 엿보고 있으며, 게임 개발자를 스카우트 하기 위해 매력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2012년 SNS, 게임, 전자상거래, 영화, 여행, 펀드 등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은 텐센트는 한국에서도 유망기업에 대한 투자를 놓치지 않고 있다. 모바일 광고 플랫폼인 ‘카울리’를 통해 한국 모바일 광고시장 점유율 1위 자리에 올라있는 FSN(퓨처스트림네트웍스)는 텐센트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총 42억 원을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텐센트는 2012년 4월 국내 최고 어플리케이션으로 손꼽히는 카카오톡에 약 900억 원을 투자하며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집중시켰다. 이와 같이 텐센트는 한국 인터넷 전 영역에서 우수한 인재와 기업을 자기편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한국의 문을 계속 두드리고 있다.

 

그럼 텐센트를 비롯한 중국의 자금력에 우수한 기업과 노동력을 하나 둘씩 빼앗기고 있는 대한민국의 IT업계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대한민국의 IT업계는 이제 중국을 알아야 한다. 자고로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했다. 우리는 중국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텐센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텐센트를 가짜 서비스의 총집합 정도로만 알고 있다. 이제는 개안해야 할 때다. 텐센트는 이미 우리 기업을 저만치 앞질러 가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입장이 되어가고 있다.

 

연재 기획을 마치며

1편부터 10편까지 텐센트에 대한 연재 기획을 작성하며 텐센트를 다시 보게 됐다. 작은 기업이 초 거대기업이 되기까지의 순간순간을 목도할 때마다 등줄기에는 식은 땀이 흐르고 소름이 돋았다. 우리가 좌정관천 하는 사이 텐센트란 기업은 어느덧 글로벌 일류 기업으로 거듭났다.

“내가 천하를 버릴지언정 천하가 나를 저버리게 하지 않겠다.” 삼국지의 간웅 조조(曹操)가 남긴 말이다. “우리에 모방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방이라는 창조적 활동을 통해 전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게 만들고 있다.”라고 말하는 텐센트의 CEO 마화텅의 모습은 흡사 조조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 China.(www.duduchina.co.kr)

[텐센트 완전 해부 9편] 텐센트의 미래 성장동력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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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SNS와 게임시장의 절대강자 텐센트.

소셜과 게임시장 장악을 통해 지난해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했다. 하지만 2012년 접어들면서 점차 그 성장곡선이 완만해지는 모습이다. 하지만 텐센트는 절대 안주하지 않고 “I’m still hungry”를 외치며 또 다른 영역에 지속적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텐센트, 알리바바에 다시 도전장을 내밀다

마화텅은 새로운 사업 구상하던 중 ‘인터넷 구매를 하는 동시에 판매자와 직접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화텅은 텐센트 직원과 동료들에게 이 같은 질문을 공유했고,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고심 끝에 마화텅은 2006년 3월 13일 텐센트 최초의 C2C 플랫폼인 파이파이왕(拍拍网)을 정식으로 서비스하게 된다.

 

하지만 텐센트 전자상거래의 성적은 매우 처참했다. 2007년 2분기 파이파이왕은 타오바오(淘宝)라는 큰 장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C2C 시장에서 9%에 가까운 점유율을 보이며 순조로운 출발을 했지만, 이후로도 점유율은 늘지 않았다. 전체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 면에서도 2008년 시장점유율 5.47%로 전체 3위를 기록하였지만, 2011년 시장점유율 3.54%로 하락하여 알리페이와 징동상청(京东商城)에 밀려 5위를 기록했었다. 또한 아마존 차이나와 VANCL이 빠르게 치고 올라오고 있으며 쑤닝이꼬우(苏宁易购), 이하오디엔(1号店) 등 B2C 업체들이 활약하면서 텐센트의 입지는 조금씩 위협받고 있다. 이후 텐센트는 B2C플랫폼인 QQShop(QQ商城), 소셜커머스 플랫폼인 QQBuy(QQ网购)를 출시하지만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텐센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했다.

 

하지만 텐센트는 전자상거래라는 노다지를 포기하지 않았고, 지난 2012년 5월 기업 전체의 업무를 6개 파트로 전면 재구성 할 때, 단독으로 10억 달러(한화 약 1조 2,000억 원) 투자하여 텐센트 잔자상거래 지주회사를 설립하였다. 2006년 파이파이왕을 출시한 후 7년만에 전자상거래 시장에 다시 한번 독기를 품은 텐센트는 전자상거래 NO.1이 되기 위한 불을 다시 지피기 시작하였다.

 

현재 텐센트 전자상거래 지주회사는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전자상거래 플랫폼 파이파이왕, QQShop, 이쉰(易迅), QQBuy 등의 서비스 경계가 불분명하다고 판단하여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플랫폼 재통합을 준비 중이다. 또한 텐센트는 ‘B2C+오픈 플랫폼’ 형태의 플랫폼을 구축하여 현재 하오러마이(好乐买), 마이빠오빠오(麦包包), 이하오디엔(一号店) 등과 같은 업체의 물품을 QQBuy에서 판매할 수 있게 하며 서비스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2012년 7월, 텐센트 전자상거래 지주회사의 우샤오광(吴宵光) CEO는 “지금 중국의 전자상거래 플랫폼은 크게 타오바오 모델(C2C)과 징동상청 모델(B2C)이 존재한다. 이들 모델의 장점을 모아 텐센트 만의 모델을 만들 것이며, 이것이 곧 출시될 QQBuy이다. 우리의 모델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며 중국 전자상거래 판도를 바꿀 만한 텐센트의 오픈 플랫폼 QQBuy의 서막을 알렸다.

 

QQBuy에서 상품공급업체를 모집하는 광고

 

텐센트는 오픈 플랫폼인 QQBuy을 완성하기 위해 반년이란 시간을 투자해 시장조사 및 판매업체들의 실태조사를 진행하였고, 업체의 정품 품질 보증, 가격대비 성능, 애프터서비스 수준, 상품 배송 능력 등을 까다롭게 고려하여 300여개의 상품공급업체를 선정하였다. 300개 업체들은 곧 출시될 QQBuy에 입주시킬 준비를 대부분 마친 상태이다. 선정된 업체는 HSTYLE(韩都衣舍), GOELIA(歌莉娅), 7PRINCESS(七格格), SPORTICA(斯波帝卡), Mr.ing 등 온라인 유명 브랜드와 이외에도 아디다스, 나이키, 리닝, Kappa 등 인기 브랜드도 포함되어 있으며, 이들 300여개 업체들은 2011년 전자상거래 플랫폼 전체 매출액이 570억 위안(한화 약 10조 원)을 넘어선 알짜배기 업체들이다.

 

향후 5년 내 거래규모를 2천억 위안까지 끌어올려 업계 1위의 자리를 공고히 하겠다고 대외적으로 선포한 텐센트는 QQBuy를 통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새로운 강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또한 종전의 가격전쟁 모델 패러다임을 판매자의 서비스 경쟁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마케팅 예산만 5,000만 위안(한화 약 89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텐센트는 자금력, 결단력, 추진력으로 알리바바의 왕좌를 빼앗을 수 있을지 현재 전자상거래 시장의 이목이 모두 텐센트를 향하고 있다.

 

텐센트, 포스트 애플을 노린다

텐센트와 모바일의 만남은 2006년부터 시작되었다. 모바일 시장이 미래 인터넷 시장의 주류가 될 것이라 내다본 마화텅은 2006년 11월 자사의 인스턴트 메신저인 QQ의 모바일 버전을 출시하게 된다. QQ의 기본 기능인 메신저 기능 외에도 텐센트의 여러 부가 서비스들을 동시에 선보이며 QQ 모바일 하나면 인터넷에 관한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새로운 QQ 생태계를 구축하였다. 또한 텐센트는 당시 중국 내 휴대전화 시정 점유율 1위에 빛나던 노키아와 손을 잡고 QQ 모바일을 유통시켜 모바일 시장을 선점해 나갔다.

 

HTC CHACHA에 설치된 QQ Service

QQ service는 텐센트의 방대한 이용자에게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의 휴대폰 제조업계의 환영을 받았고, 2010년 12월 텐센트는 화웨이(华为)와 손을 잡고 QQ service가 탑제된 휴대폰 HiQQ를 출시하게 된다. 이후 텐센트는 ZTE(中兴) 쿠파이(酷派), K-Touch(天语), HiSense(海信)HTC, 삼성 등과 손을 잡고 QQ service가 탑재된 휴대폰을 출시하였으며, 2011년 6월 13일 차이나 텔레콤과 손을 잡고 최초의 합작 스마트폰인 티엔이QQ스마트폰(天翼QQ智能手机)을 출시하게 되었다. 텐센트와 QQ service의 영향력은 판매량으로 직결되었고, HiQQ는 출시한지 100일 만에 100만대가 판매되었으며, 차이나 텔레콤과 함께 출시한 티엔이QQ스마트폰은 출시한지 3개월 만인 9월 100만 대를 돌파하며 기염을 토하였다.

 

2010년 모바일 활성 유저 2,000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운 텐센트는 휴대폰 영역뿐만 아니라 어플리케이션 영역에서도 신제품을 출시하여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바로 웨이신(微信)이다. 사용자 1억 명에 빛나는 중국 최고의 메시지 어플리케이션 웨이신(微信)은 2011년 1월 12일 정식 출시됐다. 텐센트는 오랜 기간 쌓아온 QQ메신져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용자의 편의성을 극대화 시켰다. 웨이신의 저우하오(周颢) 최고 기술 책임자는 유저 기호에 딱 들어맞는 제품 철학, 빠르고 군더더기 없는 UI, 텐센트의 기술적 지원을 웨이신의 성공 비결로 꼽았다.

 

또한 10억명이 넘는 이용자 수를 보유한 QQ 메신저의 명성을 이어받아 웨이신 역시 빠른 성공을 거두었고, 서비스 시작 이후 정확히 433일만에 사용자 1억 명을 돌파했다. 웨이신은 주이신(追信)과 퍄오신(飘信), 미랴오(米聊) 등 경쟁상대의 선점효과를 무색하게 만들면서 또 하나의 웨이(微) 열풍을 주도했다.

 

휴대폰, 어플리케이션 시장에서 모두 성공을 거둔 텐센트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2년 4월 모바일OS인 텐센트Tita를 출시하게 된다. 안드로이드 4.0버전을 기반으로 한 텐센트Tita는 안드로이드 4.0과 내부 UI를 유사하게 디자인 하였으며, QQ전화번호부, QQ문자, 배터리 관리 등 다양한 기능을 융합하여 텐센트 만의 모바일OS를 완성하였다. 또한 텐센트는 모바일OS를 강화하기 위해 안드로이드 제3자 Rom 개발사인 러와(乐蛙)에 5,000만 달러(한화 약 580억 원)을 투자하였다. 현재 Tita는 Google Nexus S, Galaxy S 2, Galaxy nexus(i9250)을 대상으로 한정 이용자에 대한 내부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안드로이드 4.0과 유사한 텐센트Tita의 내부UI

모바일을 향한 텐센트의 열정은 텐센트의 샤오미(小米) 인수설과 QPhone 제작설 등 수많은 루머를 만들어내며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마화텅은 “좋은 어플리케이션이 없으면, 미래는 없다”라고 언급하며 어플리케이션과 같이 소프트웨어가 갖는 파워가 텐센트의 미래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는 뜻을 강력히 내비치기도 했다. 텐센트는 지난 2011년 모바일 부가가치 산업에서 32억 7,080억 위안(한화 약 5,700억 원)의 수익을 거두었으며 이는 2010년과 비교할 때 20.4%나 증가한 수치이다. 텐센트는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시장에 이어 모바일 OS까지 넘보고 있어, 업계에서는 포스트 애플이 텐센트가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높게 점치고 있다.

 

 

애니메이션으로 눈을 돌리다

텐센트는 게임 산업과 SNS산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중국 인터넷 기업 1위에 올랐고, 그 왕좌의 자리는 2012년 지금까지도 여전히 텐센트의 것이다. 2011년 텐센트의 총 수익 285억 위안(약 5조 원) 가운데 게임과 소셜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 산업은 성장기를 거쳐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매년 그 성장속도가 완만해지고 있다. 텐센트는 새로운 게임과 서비스를 출시하고 있지만 완만해진 성장그래프를 치켜 세우기란 여간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텐센트는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해답을 찾으려 하고 있다.

 

2012년 4월 10일, 텐센트(腾讯)는 세계 최대 애니메이션 왕국 월트디즈니(Walt Disney), 차이나ACG(中国动漫集团, China ACG)와 손을 잡고 새로운 애니메이션 플랫폼인 텐센트 애니메이션(腾讯动漫)을 출시하였다. 텐센트는 그 동안 게임산업에서 얻은 경험과 자원을 통해 중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 5억 명의 네티즌 가운데 75%는 1년에 적어도 한 번은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소비하고 있으며, 애니메이션의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아동 관련 제품이 주류를 이루던 애니메이션 산업 소비층이 점차 젊은 층 위주로 개편되고 있어, 2010년 1,800억 위안에 그쳤던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지난해 어느새 3,000억 위안을 돌파하였다.

 

이러한 중국 애니메이션 시장의 발전가능성을 일찌감치 내다 본 텐센트는 자사의 강력한 무기인 플랫폼의 영향력을 발휘해 모든 애니메이션을 끌어 모을 수 있는 플랫폼인 텐센트 애니메이션을 구축하였고 국내외 애니메이션 거물들과 잇따라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텐센트는 중국 문화부, 재정부, 문화기업국유자산감독관리사무실 등 정부기관의 전폭적인 정책적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 3월 21일 텐센트 게임은 새로운 애니메이션 플랫폼 구축을 발표함과 동시에 한국 신작 액션게임 ‘크리티카’를 퍼블리싱한다고 밝혔다. ‘크리티카’는 텐센트 게임과 애니메이션 두 개 플랫폼에서 동시 서비스되는 첫 번째 타이틀로 기록되었다.

 

텐센트는 애니메이션 플랫폼 구축을 통해 해외 애니메이션 업계에 밀리고 있는 중국 애니메이션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이를 통해 애니메이션 산업의 무한한 잠재력, 텐센트가 가지고 있는 막대한 고객 DB, 국내외 애니메이션 게임업체와의 협력과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향후 중국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져 중국을 넘어서 세계시장까지 도전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다. 그리고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하나로 이어 세계 게임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불확실한 내일을 준비하는 텐센트의 자세는 많은 이들로 하여금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 방향이나 방법이 때로는 옳을 수도, 또 때로는 틀릴 수도 있지만 텐센트는 언제나 실행을 최우선시 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텐센트의 노력이야말로 텐센트를 중국 최고의 회사로 존재하게 만드는 원동력일 것임에 틀림없다.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China.(www.duduchina.co.kr)

[텐센트 완전 해부 8편] 텐센트의 캐시카우, 돈이 되는 그들만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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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전까지, 텐센트는 빠르게 성장하면서 큰 성과를 거두었지만, 확실한 수익모델이 없었던 탓에 수익창출을 위한 텐센트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아바타, QQ에 새로운 길을 제안하다

텐센트는 유료서비스가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나섰다. 그러던 중 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싸이월드 모델을 접하게 되었다. 싸이월드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로 가상공간인 미니홈피와 아바타를 꾸밀 수 있는 이 서비스에 사용자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이며 자신을 꾸미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텐센트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자신의 미니홈피와 아바타가 대중적으로 호응을 얻으며 수익을 창출해 낼 수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이를 QQ에 적용하기로 한다.

QQ시우

텐센트는 당시 텐센트의 인터넷 소프트웨어인 QQ메신저, QQ자위엔(QQ家园), QQ개인대화실(QQ自带聊天室)에 QQ시우를 추가하였고, QQ시우 아이템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QQ시우상점을 오픈하며 아바타와 관련된 모든 상품을 판매하였다. 예상은 적중했다. 인터넷 세상에서의 자신을 꾸미는 일에 사람들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나의 얼굴을 내가 꾸민다는 일은 중국인들에게도 큰 기쁨이었다. QQ시우는 QQ메신저의 발전, 부가 서비스 확대와 함께 자연스럽게 인기를 끌게 되었고 2005년 Qzone와 만나 정점을 찍게 된다.

 

텐센트는 Qzone에 미니홈피 개념을 도입해 QQ시우를 가용범위를 더욱 확대했다. 이후 QQ시우의 인기를 등에 업은 Qzone은 폭발적인 서비스 성장을 보였다. 2009년 Qzone의 엑티브 유저는 2008년보다도 158.9% 증가한 약 3억 878만 명에 달하였다. 그리고 Qzone의 사용자는 거의  대부분이 QQ시우를 이용했고, 이로 인해 2004년 전체 수입 중 38.4%를 차지하고 있던 텐센트의 부가서비스 수익은 2009년 76.6%로 성장하는 등 텐센트의 주요 수익원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았다. 이 모든 것은 작은 아바타의 힘이었다.

 

“35세의 나이로 중국 내 가장 HOT한 기업가가 된 마화텅과 QQ메신저로 대화할 때, 우리는 멋진 청바지에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의 아바타가 웃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 뉴욕타임즈

2007월 2월 5일 뉴욕타임즈에 기재된 ‘중국의 인터넷 발전을 있게 한 사이버 엔터테인먼트’라는 기사에서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 인터넷 산업을 특집으로 다루었다. 뉴욕타임즈는 텐센트의 발전하는 모습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텐센트의 최대 수익원인 QQ시우(QQ秀)를 집중 조명했다.아바타를 통한 수익모델은 텐센트의 수익모델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면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아바타를 가지고 한 기업의 수익모델로 만들 수 있는 텐센트의 저력이 엿보인다. 2005년 중국에도 미니홈피 열풍이 불었고 유사 서비스는 수도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성공한 모델은 오로지 텐센트뿐이었다.

 

 

 

인맥관리가 곧 돈이다

텐센트가 홍콩증시에 상장한 후 출시된 기념비적인 QQ2004 정식버전에 텐센트는 획기적인 기능을 추가하여 QQ발전 역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였다. 먼저 텐센트는 QQ그룹기능과 파일전송기능을 강화했다. 그리고 텐센트는 연이어 QQ메신저에 등급제를 도입하면서 QQ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QQ시우 이후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고 있던

 텐센트는 한가지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된다. 만약 이용자의 등급을 분류하게 되면 어떨까? 내부적으로 반대의 목소리는 많았지만, 텐센트는 결국 QQ등급 서비스를 실시하게 된다.

텐센트는 QQ등급을 3분류로 나누었다. 먼저 낮은 순서부터 별, 달, 해로 큰 등급을 나누었다. 별 3개가 모이면 하나의 달이 되고, 달 3개가 모이면 1개의 해가 된다. 최고 등급인 해 3등급이 되려면 12,240시간, 즉 1년 하고도 145일을 QQ에 접속해 있어야 한다.

 

 이후 텐센트는 QQ 접속시간을 조금 조정하는 등 등급제 분류에 따른 리워드를 차등적용하고 있다. 친구 수와 생성 가능 그룹 수 제한을 조금씩 늘리며 등급에 따른 리워드로 대신했다. 또한 텐센트는 등급별로 QQ시우 할인권 등 여러 가지 할인권을 차등 지급하기도 했다.

QQ등급은 실시와 동시에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보였다. 상위등급을 위한 접속 시간 늘리기 프로그램까지 나돌 정도로 등급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04년 3분기까지 940만 명의 동시 접속자 수를 기록

하고 있던 QQ메신저는 등급제 실시 후 4분기 동시 접속자 수가 1,320만 명, 1년 후인 2005년 3분기에는 동시 접속자 수가 1,950만 명까지 늘어나는 등 메신저 보급에 크게 한 몫 했다.

이후 텐센트는 2006년 9월 ‘QQ회원 성장 시스템’이라는 명목 하에 본심을 들어내며 QQ등급에 유료 QQ회원제를 도입했다. 텐센트는 유료사용자에 ‘VIP’라는 등급을 만들어 기존보다 더 다양한 리워드를 제공했다. 과연 메신저 서비스에 유료화 모듈이 적용될까에 대한 우려가 많았지만 사용자들은 인맥관리를 위해 기꺼이 유료서비스를 이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QQ VIP 광고

 

 

 

돈이 돈을 부르는 사이버 머니 ‘Q머니’

중국 온라인 게임산업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사이버 머니 결제 또한 급속도로 증가했다. 2001년, 중국 내 사이버 머니를 결제하는 게임 이용자가 168만 명에서 2002년에는 401만 명으로 급증하였고, 각종 온라인게임 카드충전소는 PC방, 가판대 등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텐센트 역시 게임사업과 기존 여러 사업군의 부피가 커지는 가운데 자체적인 비루체계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텐센트가 내놓은 사이버 머니가 바로 ‘Q머니(Q币)’이다. Q머니는 텐센트가 2002년 5월 개발한 사이버 머니로, 1Q머니를 1위안으로 계산하여 현실의 화폐개념과 동일하게 적용해 혼란을 최소화 했다.

 

텐센트는 Q머니를 만든 후 이용자들이 손쉽게 돈을 지불 할 수 있도록 여러 루트를 개발했다. 먼저 텐센트는 당시 유행하던 사이버 머니 충전 카드의 네트워크를 확장하였다. 텐센트는 대리상 판매 체제를 도입, 자사의 카드 판촉업무를 일괄 대리상에게 넘겨주며 그들로 하여금 판매망을 구축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사이버 머니 판촉망은 기존의 PC방, 가판대 등에서 일반 상점, 문구점 등으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텐센트는 수수료가 대리상보다 저렴하지만 이용하기 번거로운 계좌이체 대신 ‘Q머니 지불 카드’라는 은행카드를 고안해냈다. 텐센트의 주 이용고객이지만 구매력이 높지 않은 학생 이용자들에게 몇 십 위안을 충전하고자 은행까지 뛰어가 결제하는 일이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텐센트는 바로 이점에 착안하여 은행과 손을 잡고 Q머니 지불 카드를 만들게 된다.

 

Q머니 지불 카드

 

텐센트는 Q머니를 출시하면서 기존 여러 유료 서비스에 모두 Q머니를 적용했다. 이에 따라 QQ메신저는 물론, 유료 회원 결제와 텐센트 게임까지 텐센트의 모든 서비스 결제가 Q머니로 통용되었고, Q머니는 텐센트 월드로 들어가는 화폐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QQ가 단순한 인터넷 프로그램을 넘어서 우리 실생활에서 영향을 미치자 Q머니도 텐센트 안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실생활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2007년 중국에서 큰 화제가 되었던 ‘차오지뉘셩(超级女生, 오디션 프로그램)’의 일반인 투표방식을 문자투표에서 Q머니 투표로 교체하자, Q머니의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일이 벌어졌으며, Q머니가 현금으로 교환이 가능해 지자 불법적으로 싼값에 Q머니를 구매해서 비싼 값에 되팔고, 각종 방법으로 사기를 치는 등 불법적인 현상이 기승을 부리는 등 Q머니는 사이버 머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시나(新浪)의 U머니, 바이두(百度)의 바이두머니, 넷이즈(NetEase, 网易)의 POPO머니 등이 중국 내 사이버 머니에는 Q머니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서비스 활용범위가 넓은 Q머니가 사용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애용되고 있다.

 

 

한때는 수익창출이 불가능해 이것저것 돈 되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했던 텐센트였다. 그들의 캐시카우가 된 것은 모두 혁신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텐센트의 QQ시우, 등급제 도입과 유료회원제 그리고 Q머니는 큰 자금과 대규모의 인력이 투입되어 만든 획기적인 제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은 텐센트만의 장점과 잘 융합되어 최고의 퍼포먼스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 서비스는 텐센트를 여기까지 있게 한 숨은 주역이 되었다.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China.(www.duduchina.co.kr)

[텐센트 완전 해부 7편] 소셜 전쟁 그리고 텐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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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SNS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전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중국이란 곳에서 이들의 뒤를 조용히 밟고 있는 중국의 은둔고수 텐센트. 이제 중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는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움츠렸던 몸을 한껏 펴고 있다.

 

 

모든 시작의 중심엔 QQ 메신저가 있다

1999년 2월, 텐센트가 개발한 인스턴트 메신저 QQ는 텐센트 SNS의 위대한 첫 걸음이었다. 당시 지금과 같은 소셜네트워크를 상상할 수는 없었을 테지만, 텐센트가 서비스한 QQ 메신저는 여러모로 현재의 텐센트를 만든 주도적 역할을 했다. QQ가 출시된 1999년 당시 중국에서 인터넷 사용자간 소통에는 주로 메일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메일은 상대적으로 소통에 드는 시간이 비교적 길었고, QQ메신저는 이런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떠올랐다. 간편하고 빠른 속도의 인스턴트 메신저는 상대방과의 거리를 대폭 축소할 수 있었고 QQ메신저는 현지화된 UI, 기능, 안정적인 시스템으로 많은 이용자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또한 QQ는 사용자간 문서, 그림, 음악 등의 파일을 편리하게 공유할 수 있어 회사나 기업체의 필수요소로 자리매김했다.

 

그 후 텐센트는 QQ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오락적인 요소를 추가하였다. 2002년 텐센트는 QQ의 주 사용자인 대학생 및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QQ스타 선발대회를 열어 젊은 이용자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갔다. 2003년에 출시한 ‘QQ게임’을 QQ와 연동하였으며, QQ게임의 급성장으로 QQ의 이용자 수도 2억 명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2003년 12월, 텐센트는 직장인을 주 타깃으로 한 인스턴트 메신저 TM(Tencent Messenger)을 출시하며 더 많은 사용자를 모을 수 있었고, 2004년 텐센트가 홍콩 증시에 상장하며 중국 내 QQ의 입지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리고 2005년 텐센트의 전체 사용자 수는 5억 명, 최대 동시 접속자 수는 1,000만 명을 돌파하며 명실상부 중국 최대 이용자를 보유한 인스턴트 메신저가 되었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텐센트는 텐센트 최초의 소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는 Qzone(QQ空间)을 출시했다. 2005년 텐센트는 인터넷 비즈니스 방향을 개성화와 관계화로 설정하고 제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텐센트의 전략하에 출시된 것이 바로 Qzone이라는 서비스로, 사용자들에게 다이어리, 방명록, 사진첩 등의 기능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버 공간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저마다의 온라인 공간을 사용자 취향대로 장식할 수 있게 하여 사용자들의 참여를 확대시켰다.

 

 사실상 한국에서 큰 인기를 구가했던 당시 싸이월드를 조금 차용한 이 모델은 이전까지 무개성에 획일화된 서비스만 가득했던 중국시장에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갔다. 사용자 마음대로 꾸밀 수 있는 Qzone은 자신만의 공간을 가꾸고 싶어하는 중국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고, 사용자들은 “Qzone에서는 내가 왕이다. 나도 나만의 독립된 공간을 가질 수 있다.”라며 좋아했고, 이내 뜨거운 호응이 이어졌다.

Qzone

2006년과 2007년, 텐센트는 메인 페이지와 여러 기능들을 추가하며 Qzone의 구조를 전면 개정해 중국 내 다양한 계층의 인터넷 사용자들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Qzone은 최초 기획했던 ‘관계성 증대’를 위해 자신과 친분이 없는 사람들과도 친구를 맺는 이벤트 등을 진행하는 한편, 여러 게임과의 연동을 통해 Qzone을 중국 내 최고의 서비스로 만들 수 있었다. Qzone은 출시한 지 3년 만인 2007년 활성유저 수 1억 명, 1일 PV(Page View) 10억 회를 기록하는 등 중국 초기 SNS의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어냈다.

 

텐센트 SNS의 기초가 되는 QQ와 Qzone의 발전은 이후 텐센트가 다양한 소셜 플랫폼을 출시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 텐센트의 장즈동(张志东) CTO는 “텐센트의 QQ 메신저는 단순한 인스턴트 메신저에서 인맥관리 소프트웨어로 거듭났다”라고 언급하며 텐센트 SNS의 발전에 QQ 메신저가 끼친 영향에 대해 설명하였고, QQ 메신저에 이은 Qzone의 연착륙으로 텐센트는 중국 최고 SNS 반열에 오르며, 온라인에서 더욱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두 개의 해를 품다

1999년 QQ메신저로 시작한 텐센트는 2008년 Qzone으로 또 한번의 성장동력을 얻었고, QQ 출시 10주년인 2009년 텐센트의 SNS 플랫폼은 큰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당시 페이스북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중국에도 SNS 붐이 일어났고 런런왕(人人网), 카이신왕(开心网)이 대학생과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Qzone이 성공을 거두면서 텐센트는 SNS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지만, 런런왕 카이신왕과 달리 폐쇄적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텐센트의 Qzone에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텐센트는 오픈 플랫폼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 기꺼이 페이스북(Facebook)을 벤치마킹 하기 시작했다. SNS의 주 사용자 층이 20대 학생인 점에 착안하여, 텐센트는 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학교 중심으로 특화된 SNS QQ샤오요우(QQ校友, 현재의 펑요우망)를 출시했다. QQ샤오요우는 실명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어 학교친구, 동창을 찾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이는 국내 아이러브시쿨이나 다모임과 기능적으로도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음). 또한 QQ샤오요우의 그룹을 학교별 또는 학급별로 나누어 많은 학생들이 자신이 속한 그룹의 네트워크를 간편하게 형성할 수 있었다.

 

 비록 그 방식은 완전한 오픈 플랫폼 지향이 아닌 지인간의 폐쇄적 플랫폼이었지만, 텐센트는 펑요우망을 서비스하면서 보다 다양한 SNS를 동시에 선보일 수 있었다. 2011년 7월 텐센트는 QQ샤오요우의 영역을 더욱 확장하여 학생뿐 만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펑요우망(朋友网)을 출시하였다. 펑요우망은 학교에 포커스가 맞추어 있던 QQ샤우요우를 개선하여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그룹이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이에 따라 기존 문제점으로 지적되어 온 폐쇄성 역시 일부 상쇄할 수 있었다.

 

사실, 형태는 조금 다르지만 텐센트가 야심 차게 준비하고 출시한 QQ샤오요우와 현재의 펑요우망은 대학생을 그 주요 타깃으로 서비스가 시작, 발전했다는 점과 오픈 플랫폼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페이스북과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 하지만 펑요우망과 페이스북 사이에도 결정적인 차이는 존재한다. 하나의 플랫폼이 전부인 페이스북과 달리 텐센트는 Qzone, 펑요우망을 서로 연계하여 텐센트 ID로 하나로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은 텐센트만의 고유한 특징이다.

 

펑요우망(朋友网)

텐센트가 가진 QQ 메신저의 막대한 충성고객들은 여기서도 십분 그 중요성을 발휘했다. 텐센트 플랫폼을 사용하는 이용자라면, 어떤 서비스든 관계없이 펑요우망을 통한 친구 추가가 가능했다. 이에 따라 기존 서비스의 친구들이 자연스레 새로운 서비스로 연계되었고, QQ메신저의 친구들은 그대로 평요우망 서비스를 이용하게 되었다. 기존 인스턴트 메신저에 머물러 있던 QQ 사용자들은 여러 소셜 플랫폼을 통해 인적 네트워크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텐센트의 SNS는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졌다.

 

또한 이러한 서비스 연계 서비스는 매번 다른 계정으로 로그인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최소화 하였다. 텐센트의 통합된 아이디 하나로 사용자는 어느 서비스를 이용하던 업데이트되는 친구들의 활동 및 게시물들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아이디 연동은 텐센트 입장에서 자칫 플랫폼간의 경계가 모호해 질 수 있었던 부분을 ‘QQ 패밀리’로 묶어 하나의 통합 플랫폼화할 수 있었다.

 

Qzone과 펑요우망으로 중국 내 SNS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했지만, 텐센트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2010년 4월 텐센트는 트위터와 비슷한 형태의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인 텐센트 웨이보(腾讯微博)를 출시하며, SNS 영역을 더욱 확대하였다. 텐센트는 다른 소셜 플랫폼보다 강력한 정보전달 능력을 가진 마이크로 블로그를 적극 활용하여 이용자 간의 소통을 극대화 했다. 텐센트는 텐센트 웨이보와 QQ메신저를 연동하여 두 플랫폼의 대화 및 정보 컨텐츠를 빠르게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서비스를 즉각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도 출시하며 텐센트 웨이보를 적극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텐센트는 여기에 다양한 시도를 더해가면서 텐센트만의 색깔 찾기에 한창이다. 텐센트는 이미지와 동영상 공유기능을 추가하여 요우쿠(优酷), 투도우(土豆) 등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컨텐츠를 바로 웨이보에 공유할 수 있게 하였다(URL 공유가 아닌 동영상 재생이 가능한 기능). 또한 텐센트는 텐센트 웨이보에 등급제를 만들어 사용자의 웨이보 활성화 여부와 팔로어 수에 따라 등급을 나눠 혜택과 각종 리워드를 부여하며, 사용자들의 경쟁심리를 자극하기도 했다.

 

텐센트는 펑요우망과 텐센트 웨이보 서비스를 선보이며 세계 양대 SNS라고 할 수 있는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모두 가진 세계 최초의 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텐센트는 이 두 서비스의 연동을 통해 이들이 선보이지 못한 새로운 서비스에 도전하고 있다.

 

 

SNS의 화룡점정, QQ취안즈

텐센트는 텐센트만의 색깔찾기를 위해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QQ취안즈(QQ圈子)와 소셜 마케팅 플랫폼을 통해 경쟁업체를 모두 따돌리겠다는 계산이다.

QQ가 SNS에서 승부수를 띄우고 있는 첫 번째는 바로 QQ취안즈이다. Qzone, 펑요우망, QQ메신저, 텐센트 웨이보(腾讯微博)까지 텐센트는 소셜 플랫폼 간의 연계성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한계는 있었다. 이들의 연계 서비스는 다른 서비스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텐센트 만의 고유한 특징이었지만 4개의 플랫폼을 하나로 묶기에는 유대관계가 약했다. 또한 4개의 플랫폼 모두 SNS라는 개념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라 서비스가 상충되는 부분이 상당했다.

 

텐센트는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고, 자사의 강점을 극대화 하기 위해 QQ취안즈(QQ圈子)라는 비밀병기를 내놓았다. QQ취안즈는 텐센트가 운영하고 있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들을 통합하고, 각 서비스 이용자들은 QQ취안즈를 통해 모든 기능을 공유할 수 있도록 모든 플랫폼을 연결하는 서비스이다. 현재는 베타 서비스 중인 QQ취안즈는 그 동안 연동만 가능했던 모든 SNS를 한데 묶어 통합한 상위개념의 SNS로 오픈 플랫폼과 폐쇄적 메신저까지를 두루 아우르는 미래지향적 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QQ취안즈(QQ圈子)

 

QQ취안즈에 이은 텐센트의 승부수는 소셜 마케팅 플랫폼이다. 텐센트의 2011년도 재무제표를 보면, 텐센트 게임이 전체 수입 중 55.5%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텐센트 게임은 텐센트 서비스의 주력군이 되었지만 그에 반해 QQ메신저, Qzone, 펑요우망의 수익은 전체의 6%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들 서비스의 하루 평균 트래픽은 10억회 이상, 인스턴트 메신저의 엑티브 유저는 7억 명, Qzone의 엑티브 유저는 5억 5,000만 명에도 불구하고, 2011년 텐센트가 이들 SNS로 거두어 들인 수입은 19억 9,220억 위안(한화 약 3,416억원)에 그쳤다.

 

텐센트는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2012년 4월, 소셜 마케팅 플랫폼을 대외적으로 전면 개방하고 나섰다. 최근 SNS 광고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텐센트는 소셜 마케팅 플랫폼을 통해 자사의 소셜 플랫폼인 QQ, Qzone, 텐센트 웨이보, 펑요우망의의 데이터를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텐센트는 이 데이터를 광고주에 제공함으로써 보다 정확도 높은 광고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계획이다.

 

텐센트의 SNS에서도 역시 모방과 창조가 적절하게 혼합된 텐센트만의 DNA를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전세계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텐센트만의 모델을 만들며 SNS시장을 빠르게 잠식해 가고 있다. 또한 다른 SNS업체들이 수익모델 한계 앞에 고뇌할 때, 텐센트는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합법적인 것이라면 전부 시도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는 페이스북을 이길 수 있는 회사로 텐센트를 가장 많이 꼽는다. 이는 텐센트의 수익이 뛰어나서도 또한 서비스의 질이 월등해서도 아니다. 이는 모두 텐센트가 끊임없이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나가는 모습의 자연스런 결과물이다.

‘중국인들이여, 소통하라!’
중국인들의 소통의 창(窓)인 텐센트, 중국대륙을 넘어 세계인이 함께 나누는 SNS서비스를 꿈꾸는 그들의 도전은 지금 이 시간에도 이어지고 있다.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China.(www.duduchina.co.kr)

[텐센트 완전 해부 6편] 일기당천(一騎當千), 게임 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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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텐센트의 전체 수익 가운데 게임 수익이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55%!

유저 선호도 1위, 게임시장 점유율 1위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데 이어, ‘2011 중국 최고 인기게임 TOP 10’에 텐센트가 개발하거나 서비스하고 있는 게임이 4개나 이름을 올리면서 그야말로 2011년 한해는 텐센트가 게임으로 우뚝 선 원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혹자는 말한다. 그저 사용자 데이터베이스를 잘 활용해서 그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지금과 같은 게임왕국을 건설하기까지 텐센트가 흘린 땀과 눈물을 범인(凡人)들이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이런 입장은 금방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텐센트 게임시장을 탐하다

2002년 봄, 텐센트 내부에서는 온라인 게임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이었다. 게임개발을 할 것이냐? 다른 게임을 퍼블리싱 할 것 인가? 만약 게임을 개발한다면 대규모 온라인 게임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보드게임을 개발할 것인가? 또 만약 퍼블리싱을 한다면 어떤 게임을 선택할 것인가? 등등 텐센트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 앞에 머뭇거리고 있었다.

 

당시 텐센트에는 우리가 흔히 ‘라인’이라 부르는 계파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나는 텐센트의 최고기술경영자(CTO)인 장즈동(张志东) 라인과 다른 하나는 텐센트의 업무최고책임자(COO)인 정리칭(曾李青) 라인이었다. 장즈동은 텐센트의 CTO로서 기술적인 연구와 개발을 중시한 반면 정리칭은 COO로써 시장진출과 제품판매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 두 라인은 게임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의견 충돌을 보이며 여전히 대립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두 라인의 대립은 한 일화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마화텅과 장즈동, 정리칭이 미국에서 열리는 게임 박람회에 참여하기로 계획돼 있었다. 하지만 게임 퍼블리싱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CTO 장즈동은 온갖 핑계를 대며 미국 게임 박람회에 참여를 보이콧했고, 결국 마화텅과 정리칭 두 사람만이 게임 박람회에 참가했다.

좌 장즈동(张志东), 우 정리칭(曾李青)

텐센트의 수뇌부는 게임시장 진출방식에 대해 수 차례의 회의를 거쳤지만 단기적인 수익과 장기적인 수익에 대한 견해 차를 보이며 의견을 어느 한쪽으로 의견을 수렴하기란 어려웠다. 또한 퍼블리싱과 게임개발이라는 두 가지 방향 앞에 두 라인의 의견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고, 외부에 자문을 구하여도 의견이 천차만별이어서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때 마화텅은 의견차를 좁히기 위해 장즈동과 정리칭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이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마화텅은 ‘선(先) 퍼블리싱 후(後) 개발’이라는 카드를 꺼낸 끝에 두 사람을 모두 설득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2003년 텐센트는 첫 게임을 중국에 퍼블리싱하게 되었다. 이들이 심사숙고 끝에 결정한 게임은 한국게임 개발업체인 이매직의 <세피로스>. 당시 30만 달러의 가격에 <세피로스>를 중국에 퍼블리싱 할 수 있게 되었고, 여기에 중문 게임명인 <카이쉬안(凯旋)>이라는 이름표를 바꾸어 달면서 텐센트는 게임시장에 첫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물론 그 첫 행보 역시 결코 순탄치 만은 않았다. 이매직과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하기 전, 텐센트 내에서는 당시로썬 보기 드문 높은 사양을 요구하는 3D 게임인 <카이쉬안>이 한국과 비교해 여전히 낙후된 중국 인터넷 환경에서 실행될 수 있을 지의 여부에 대한 여러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게임시장에 대한 경험이 부족했던 텐센트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고, 계약 당시 ‘중국 현지에서 충분한 테스트를 거치지 않아도 무관하다’는 내용의 퍼블리싱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텐센트의 이 같은 불찰은 <카이쉬안>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게임이 출시된 뒤에야 텐센트의 관계자들은 중국 각지의 PC방을 다니며 <카이쉬안>에 대한 가동여부에 대한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아직 인터넷 및 PC사양이 좋지 않은 일부 지역에서는 게임이 끊어지거나 접속 오류가 나는 등의 문제가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기념비적인 게임, 카이쉬안(凯旋)

텐센의는 경험 부족과 중국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카이쉬안>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길 수 있었다. 아예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텐센트는 첫 경험의 의미를 성공과 실패에 두지 않기로 했다. 그간 숙원사업이기도 했던 게임시장에 진출했다는 점에 주안점을 두고 실패의 원인을 하나씩 분석해 나갔다. 그리고 처음의 실패는 이후 텐센트가 중국 게임업계 1위로 발돋움하는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다마고치에서 MMORPG까지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데에 만족해야만 했던 <카이쉬안>을 퍼블리싱한 이후, 다음 행보를 고심하던 마화텅은 경쟁사였던 샨다(盛大, SNDA), 더나인(九城, The 9)이 게임제작으로 큰 이윤을 남기는 것을 보고 자신이 약속했던 대로 게임제작을 회사에 제안하였고 장즈동과 임직원들의 찬성으로 텐센트의 게임제작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게임제작에 경험이 없던 텐센트는 개발하기 쉬우면서도 적은 개발비용과 실패 시 위험부담이 그나마 적은 웹보드게임을 개발하기로 결정하고 소수 정예의 개발팀을 따로 구축해 웹보드게임에 대한 개발을 시작하였다.

텐센트의 게임제작이 결정되었을 때 가장 기뻐했던 사람은 단연 텐센트의 장즈동 CTO였다. 그는 평소에도 웹보드게임에 대한 애정을 대외적으로 표출해왔고, 특히 바둑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장즈동은 자신이 평소에 느끼고 생각했던 점을 텐센트 게임에 접목하기 시작했고 화면 구성과 시스템의 완성도를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려 놓았다. 또한 QQ의 장점을 게임에도 접목시켜 게임 이용자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였다. 텐센트는 개발작업 2~3개월 이내에 본 게임을 출시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게임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유저 사용효과 극대화를 전제로 게임을 제작하면서 타사 게임과 차별화를 가능하게 했다. 2004년 12월, 텐센트는 중국판 봄버맨(Bomber Man)이라고 할 수 있는 <QQ탕(QQ堂)>을 완성한 후 베타 테스트를 시작하였고, 정식 출시한지 1년 후 동시 접속자 수 68만 명을 넘기며 중국 내 게임기록을 갈아 치웠다. 또한 당시 웹보드게임시장 1위 업체였던 Our Game(联众游戏)을 누르고 1위에 등극할 수 있었다.

그 후 개발된 <QQ펫(QQ宠物, QQ Pet)>은 텐센트가 이후 MMOG게임을 개발하는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캐릭터 육성 게임인 <다마고치>와 <포켓몬스터>가 많은 인기를 끌던 1990년대 말에서 2000년 초반, 중국에서도 몇몇 게임업체가 캐릭터 육성을 컨셉으로 한 게임 제작에 뛰어들었다. 텐센트는 중국 내 변변한 캐릭터 육성 게임이 없음에 게임 제작을 결정했다. 2005년 텐센트는 <다마고치>의 기본 컨셉인 캐릭터 육성을 바탕으로 게임을 제작했고, QQ 메신저와의 연동을 통해 사용자 유치에 성공했다. 또한 중국 게임의 최대 단점으로 지적되던 스토리 보드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작업에 열중했다. 공부, 일, 오락, 결혼, 여행 등 다양한 테마를 가지고 캐릭터를 육성할 수 있게 하는 한편,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며 사용자들에게 최대한의 선택을 제공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6년 7월 <QQ펫>은 동시 접속자 수 100만 명을 넘기는데 성공했고, 경험과 인지도가 낮았던 텐센트 게임은 <QQ펫>을 통해 게임시장에서 인정받는 업체로 재탄생 할 수 있었다.

QQ환상(QQ幻想)

사업 다양화를 위해 선택한 게임산업에서 점점 자리를 잡을 무렵, 텐센트는 <QQ탕>부터 쌓인 게임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2005년 3월 첫 MMORPG 게임인 <QQ환상(QQ幻想)>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MMORPG에 대한 운영경험이 부족했던 탓일까, <QQ환상>은 동시 접속자 수 30만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에 그치고 말았다. 하지만 텐센트는 첫 MMORPG 게임인 <QQ환상>의 경험을 기반으로, 2007년 중국 역사를 배경으로 한 MMORGP게임 <QQ삼국(QQ三国)>, <QQ화샤(QQ华夏)>를 잇달아 출시하게 되었다. 텐센트는 QQ 메신저를 포함해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다양한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마케팅 활동에 열을 올렸다. 그 결과 <QQ삼국>의 동시 접속자 수 60만명, <QQ화샤>의 동시 접속자 수 70만명을 기록하는 등 빠른 성공을 거두었다. 2007년 이전 텐센트 게임의 주요 수익은 보드게임이었지만, <QQ삼국>과 <QQ화샤>를 시작으로 MMORPG게임 수입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텐센트에서 MMORPG에 대한 입지가 달라지게 되었다.

 

 

중국 최대 게임 퍼블리셔, 텐센트

중국 주요 게임업체인 넷이즈(网易, Netease), 더나인은 2000년대 초부터 게임개발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2006년 이들 업체는 중국 최고의 게임 개발업체라는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자체적인 게임개발은 많은 수익을 수렴할 수 있는 동시에 해외게임과의 직접대결이라는 큰 부담감을 안고 있었다. 또한 해외게임과의 완성도 차이 등 발전속도에서는 여전히 해외업체를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에 중국 내 다수의 게임업체는 해외게임 개발사와 자사 기술의 발전을 위해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텐센트는 자체 개발한 게임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와 기대 이하의 성적 등의 근거를 들어 그 동안 해외 게임 퍼블리싱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게다가 게임시장 내 텐센트의 포지션은 넷이즈나 더나인에 비해 여전히 낮은 상태였고, 이러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초대박 게임이 가지는 네임 벨류였다. 이러한 텐센트의 딜레마는 2007년 <QQ삼국>과 <QQ화샤>가 성공을 거두면서 단번에 해결되었고, 이후 텐센트는 해외게임 퍼블리싱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기 시작했다.

텐센트는 먼저 한국의 게임업체들과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크로스파이어>, <아바 온라인>, <던전앤파이터>를 중국에 런칭하기 시작하였다. 해외 게임과의 계약에 무모할 만큼의 자금을 투입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시장에 팽배했지만, 텐센트의 투자는 투자의 몇 십배나 되는 수익을 텐센트에 안겨주게 되었다. 그 중 <던전앤파이터>의 개발업체인 네오플은 당시 이름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게임업계이지만 2005년 8월 한국에서 <던전앤파이터>를 정식 출시한 후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으며, 실력을 인정 받아 일본에 진출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어 차세대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었다. 리니지와 미르의 전설 등 그간 중국에서 퍼블리싱되던 게임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중국 게임업체들은 네오플과 퍼블리싱 계약을 위해 한국 행을서두르게 되었다. 네오플은 향후 업체 성장전망이 가장 밝고 활용 플랫폼이 많은 텐센트의 손을 잡았고, 중국 시장에 <지하성과 용사(地下城与勇士, DNF)>라는 이름으로 런칭되기에 이르렀다. <던전앤파이터>는 한국에서 넥슨과 함께 3년간 안정적인 서비스를 선보이고 해외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던 만큼 중국 시장에서도 빠르게 적응하였으며, 동시접속자 수 210만 명을 기록하며 텐센트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한 <던전앤파이터>는 텐센트가 중국 게임업계 선두그룹에 올라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크로스 파이어(穿越火线)

<던전앤파이터>가 텐센트를 중국 내 최고의 퍼블리셔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면, <크로스파이어>는 텐센트를 중국 내 최고의 게임업체로 우뚝 솟게 만드는 역할을 했다. <크로스파이어>가 한국에서는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간편한 UI와 걸출한 타격감을 가지고 있어 중국 이용자와 잘 맞을 것으로 판단하였고, 2008년 네오위즈와 손을 잡고 <크로스파이어>에 <천월화선(穿越火线)>이라는 중문 네이밍을 입혀 런칭에 성공했다. <크로스파이어>는 중국에서 서비스 현지화와 오픈 베타 서비스를 진행하는 동안 상당 수의 사용자를 흡수할 수 있었다. 서비스 오픈 초기 다양한 이용자를 대상으로 각종 체험 위주의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한편 게임 관련 행사에서 전략적으로 게임을 공개하는 등 중국 모든 지역에 <크로스파이어>를 알릴 수 있었다. 이후 <크로스파이어>는 동시 접속자 수 300만 명을 돌파했고, 중국 최고의 온라인 게임으로 당당히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이후 텐센트는 NHN Games의 <C9>를 퍼블리싱 하였고 최근 넥슨의 <프리스타일 풋볼>을 중국시장에 내놓는 한편, 지난 6월 출시된 NC소프트의 역작 <블레이드앤소울>을 중국에 퍼블리싱 할 예정이어서 중국 사용자들의 눈과 귀가 모두 텐센트를 향하고 있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텐센트의 해외게임 퍼블리싱으로 2007년 3분기 중국 게임시장 점유율이 5.5%에 불과했던 텐센트는 2009년 16.5%를 기록하며 업계 2위로 껑충 뛰어오르더니. 2010년 2분기에는 점유율을 27.6%까지 확대하며 업계 1위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텐센트 DNA

많은 사람들은 텐센트의 게임을 이야기 할 때 퍼블리셔로 그저 컨텐츠를 잘 선택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텐센트의 게임을 고르는 안목과 퍼블리싱 능력은 지금의 텐센트를 만든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한가지는 바로 텐센트의 차별화 전략에 있다.

먼저 텐센트는 자사의 게임 구조를 피라미드 형태로 개편했다. 사람들이 널리 즐길 수 있는 웹보드 게임을 자사 게임 서비스의 근간으로 삼았고 <QQ탕>, <QQ삼국>, <QQ스피드(QQ飞车)> 등의 게임으로 텐센트만의 다작주의(多作主义)를 선보이며 유저 확보에 열중했다. 그리고 자사개발 게임과 퍼블리싱 게임을 적절하게 혼합하며 이를 피라미드 최상층에 위치시켰다. MMOG게임인 <던전앤파이터>, <크로스파이어> 등 퍼블리싱 게임을 선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며 모든 사용자의 기호에 맞는 구색을 갖추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텐센트는 어린아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이 즐길 수 있는 종합 게임 플랫폼을 만들 수 있었으며, 지금도 텐센트 게임을 이용하는 사용자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게임개발이면 게임개발, 퍼블리셔면 퍼블리셔로 양분화 되어있던 시장을 통합하면서 가져간 텐센트만의 고유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텐센트는 “QQ 아이디 하나면 전세계 모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라는 슬로건을 제창하며 텐센트가 제공하는 모든 게임 아이디를 QQ아이디로 통합했다. 중국 내 모든 인기게임을 별도의 계정생성 없이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사용자에게 퍽이나 즐거운 일이었다. 이에 따라 ‘텐센트가 곧 게임이요, 게임이 곧 텐센트인’ 새로운 인식을 사용자에게 심어줄 수 있었다.

또한 텐센트는 마케팅 방법에 있어서도 다른 게임업체들과 차별화를 두었다. 당시 게임 업체들의 게임을 직접 광고하는 방식을 많이 채택했지만, 텐센트는 출시할 게임과 연결되는 모든 산업군에 합동 프로모션, 마케팅을 제안하며 자신의 힘을 100% 쏟지 않고도 200%에 가까운 성과를 일궈낼 수 있었다.

 

텐센트 게임은 처음부터 업계 1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인터넷 업체들이 모두 자리를 잡은 후 2003년에서야 비로소 온라인 게임시장에 발을 들여 놓은 지각을 해도 한참이나 지각한 후발주자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텐센트는 퍼블리싱과 게임제작의 비율을 적절히 조절해 나가면서 중국 시장에서 새로운 서비스 모델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면 혹자는 바보라 칭할지도 모르고, 또 혹자는 미쳤다 손가락질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들이 시도해보지 않았던 그것을 통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을 때 사람들은 그를 존경해 마지 않는다. 텐센트 그리고 마화텅, 한계를 넘은 그들은 지금 중국 최고의 자리에 올라있다.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China.(www.duduchina.co.kr)

[텐센트 완전 해부 5편] 창조와 모방, 그리고 텐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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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주식시장에 상장한 뒤 텐센트의 성장 엔진 RPM은 더욱 빨라졌다.

상장 이후 주식가치가 100% 가까이 껑충 뛰는 등 중국 IT업계의 기린아로 불리고 있는 텐센트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현재 거의 없다. 빠른 성장을 이룬 기업에는 확실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텐센트의 마화텅 CEO는 자사의 원동력을 감히 ‘모방’이라 단언하고 있다.

 

텐센트식 모방

텐센트의 모방은 실패에서부터 비롯되었다. OICQ를 발표하기 전, 텐센트는 당시 중국서 큰 인기를 구가하던 메일 비즈니스에 손을 댔다. 기타 인터넷 서비스보다 모방이 손쉬웠던 메일 시스템은 운영 비용 역시 많지 않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업체의 메일 서비스와 비교했을 때 텐센트의 서비스는 특징이 없었고 명확한 수익모델이 없어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이내 경쟁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마화텅은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다른 선발주자의 비즈니스 모델을 모방하되 텐센트만의 특성에 맞게 재창조하자는 텐센트만의 기업이념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텐센트는 맹목적인 재창조가 아닌 이점만을 취해 조합하는 텐센트만의 신 창조론을 가지고 서비스와 제품 개발에 나섰다.

텐센트는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신 창조론에 입각해 인스턴트 메신저인 QQ를 탄생시켰고, 이는 텐센트가 빠르게 발전하는데 가장 실질적인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이후 텐센트의 주력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QQ 메신저 서비스를 비롯해 텐센트게임(腾讯游戏)、파이파이왕(拍拍网), 차이푸통(财付通) 등 다수의 텐센트 제품이 바로 이러한 모방을 통해 재창조되었다. 텐센트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이점인 데이터베이스를 적절히 활용하는 방법 또한 모방에서 나왔다. 수억 명에 달하는 사용자 DB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중국인의 입맛에 가장 적합한 요소들을 버무렸다. 모방에 텐센트만의 ‘+a’를 첨가하면서 텐센트는 시장에 먼저 진출해있는 선점업체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다.

 

마화텅의 철저한 성격은 바로 여기서 빛을 발했다. 마화텅은 텐센트가 진출하기로 결정한 분야에 대해 하다못해 아주 작은 수치와 분석들까지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현재까지의 시장상황을 입체적으로 분석한 뒤, 상대방의 단점까지 보완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소비자들이 더 많은 것을 원하고자 하는 적절한 타이밍에 서비스를 내놓았다.  이 같은 텐센트의 방법은 Qzone(QQ空间)에서 빛을 발하였다. 한국에서 싸이월드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자 텐센트는 어떻게 하면 싸이월드 모델을 중국 시장에 입힐 수 있을지를 늘 눈 여겨 보고 있었다. 특히 도토리를 이용한 결제 서비스에 푹 빠져있었던 텐센트는 유사 서비스를 바로 출시하지 않았다. 아직 인터넷 사용자들이 유료 서비스에 지갑을 쉬이 열지 않던 2000년대 초, 유사 싸이월드 서비스를 중국에서 출시할 경우 수익을 내기 힘들 것이라 판단해 텐센트는 서비스를 더욱 중국에 맞게 다듬고 다듬었다. 그리고 2005년 텐센트는 Qzone을 출시하며 대박을 쳤다.

중국판 싸이월드 ‘Qzone’

텐센트의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중국을 잠식해가던 2003년, 업계에서는 텐센트와 마화텅을 가리켜 ’공공의적’ 이라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화텅의 입장은 확고했다.

그는 “한 기업이 어떤 제품을 가장 먼저 개발했다고 해서 시장의 1등일수는 없다. 그 제품을 만드는 것이 창조가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조라고 할 수 있다. 텐센트는 한결같이 시장의 니즈(Needs)에 따라 자사의 전략을 결정했고, 우리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창조라고 믿는다”라며 자신과 회사의 소신을 지켰다.

 

 

모방이 낳은 텐센트의 성공모델

텐센트가 모방을 통해 만든 제품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검색 서비스인 소소(搜搜)와 QQlive가 그 예이다. 소소는 중국 최대 검색 엔진인 바이두(百度)를 모방한 서비스이다. 그렇다면 소소가 바이두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두 서비스의 광고수익을 주요 수익원으로 하고 있으며 가격경쟁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 역시 동일하다. 사용자 연령대 역시 유사하며 하물며 서비스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메인 페이지 역시 큰 차이점이 없다.

하지만 텐센트가 자사만의 재창조를 통해 바이두와 결정적인 차이를 만들어 냈는데 그것이 바로자사 제품과의 연결이다. 현재 바이두 서비스는 자사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기타 서비스와의 연동에 있어 텐센트보다 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워낙 서비스 카테고리가 다양한 텐센트인지라 상대적인 차이일 수도 있지만, 텐센트는 바이두의 유일한 취약점은 서비스와의 연계를 노렸다. 텐센트가 가지고 있는 QQ, QQ게임, QQZone 등 텐센트 산하 모든 플랫폼에 대한 페이지 검색과 직접링크 등이 가능해져 별도로 웹 페이지를 열어 검색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 같은 소소의 서비스 특징은 텐센트의 여러 서비스들과 연계돼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내고 있다. 여러 전문기관은 소소가 가진 이 같은 특징이 앞으로 바이두의 아성을 넘볼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QQlive는 QQ의 모방 가운데서도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꼽히고 있다. 현재 텐센트의 QQlive와 PPlive는 현재 중국 P2P 스트리밍 TV 1위 자리를 놓고 혈전 중이다. 그 중 PPlive는 시장을 선점하고 막대한 컨텐츠를 바탕으로 중국 P2P TV시장 1위에 올라섰다. 이후 후발주자로 나온 QQlive 는 PPlive가 구축한 서비스의 틀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워낙 공고한 서비스 영역을 구축하고 있던 PPlive이기에 QQlive의 성공은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좌(左) QQlive, 우(右) PPlive

하지만 텐센트는 기존 PPlive의 P2P 스트리밍 방식을 표방하되 여기에 생방송 서비스를 추가하면서 승부수를 띄웠다. 이를 통해 QQlive가 빠른 속도로 다른 제품보다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당시 경쟁사들은 VOD 서비스가 전부였고, 생방송 기능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QQlive는 VOD 서비스에 생방송 서비스를 추가하면서 타 업체들과의 차별화를 도모했다.

QQlive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가운데 82.6%가 “컴퓨터로 생방송을 직접 볼 수 있어, 굳이 따로 VOD를 보지 않아도 돼 QQlive를 선택했다”라고 답해 텐센트가 소비자의 니즈를 정확하게 캐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텐센트는 QQlive에 자사의 최대 무기인 메신저 기능을 추가하면서 사용자에게 친숙함으로 다가갔다. 인터넷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린 중국에서 P2P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용자들은 해당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할 경우, 구동중인 모든 프로그램을 다 종료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는데, 텐센트는 바로 이 부분에 주목했다. QQlive에 QQ 메신저 서비스를 연동시키면서 사용자들이 다른 서비스를 종료해도 메신저 서비스는 이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텐센트를 바라보는 시선들

“새로운 서비스를 최고로 여기는 인터넷 분야에서, 텐센트는 전혀 창조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텐센트는 마치 R&D에는 관심조차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우리는 기존에 있던 사업을 더욱 세분화 하고 각 서비스마다 우리만의 개성을 부여하며, 이를 이익과 결부시키려 노력한다. 텐센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잘못된 점이 있다. 왜냐하면 다른 어떤 기업도 모방하지 않고 성장한 기업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방법은 잘못되지 않았다.”- 텐센트 CEO 마화텅

 

인터넷 업계에서는 텐센트의 모방에 대한 말들이 많다. “마화텅은 인터넷 업계에서 표절 대마왕으로 불린다. 시나닷컴(新浪网)의 CEO 왕즈동(王志东)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텐센트를 철면피에 후안무치(厚颜无耻)라고 대놓고 깎아 내렸다. 한편, 알리바바의 CEO 마윈(马云) 역시 “텐센트의 파이파이왕(拍拍网)은 새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우리의 서비스나 타사 서비스를 보기 좋게 표절한 것이다.”라고 텐센트의 서비스에 대해 독설을 날렸다.

바이두(百度) 검색창에서 ‘텐센트’와 ‘표절’을 검색하면 약 22만개 가량의 검색결과가 나오고 이 중 대부분은 텐센트의 방식을 비판하는 글이다. 또한 미디어와 여론은 마화텅과 텐센트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가며 텐센트의 표절을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그럼 이와 같은 여론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일까?

외부에서 텐센트의 모방을 2가지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는 크게 옹호론과 비판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저마다의 의견은 아래와 같다.

“텐센트가 비록 다른 기업의 제품을 모방하기는 했지만 철저히 고객의 니즈를 위해서 모방하였고, 텐센트의 제품은 기존에 있던 제품보다 기능적으로 뛰어난 점이 많아 단순한 표절이 아닌 모방을 통해 새로운 상품을 만들고 있다. 세계적인 기업인 Microsoft나 Google도 모방을 기초로 성장했다. 텐센트의 경우도 이와 같다” 라는 것이 옹호론적 입장이다.

 

한편 비판론자들은 “다른 기업이 열심히 준비해서 만든 제품을 그저 보고만 있다가 강탈해가는 텐센트의 표절은 올바르지 않다. 기존에 출시된 텐센트 제품은 그저 많은 사용자 DB를 악용해 성장한 것으로 이는 중국의 기업문화 발전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친다. 텐센트와 같은 대기업이 이 같은 파렴치한 행동을 일삼을 경우, 중소기업들은 기술을 빼앗기고 거리에 내앉게 될 것이다.”라고 소리 높이고 있다.

사실 2가지 입장 모두 틀린 말은 아니다. 현재로써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이분법적 논리로 가늠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텐센트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자신만만해 하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사 서비스에 대한 연구 개발 없이 기존 모델 덧입기 식의 발전은 자칫 기업 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메신저 DB를 기반으로 조금씩 서비스를 추가한 텐센트는 풍부한 자금을 이용 여러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3~5년 뒤 텐센트가 계속해서 이러한 성장을 보일 수 있을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텐센트는 이제 그 발걸음을 세계로 향하고 있다. 이제 페이스북 구글 등의 업체와 직접경쟁을 해야만 하는 실험대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앞마당에서는 승승장구 했지만 글로벌이라는 무대 앞에 텐센트의 모방 모델은 그 앞길이 불투명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텐센트가 걸어온 10년간의 황금기 동안 텐센트의 이론과 모델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앞으로의 10년, 텐센트의 모방 모델이 얼마만큼 유동적으로 작용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China.(www.duduchina.co.kr)

[텐센트 완전 해부 4편] 기사회생, 투자로 새로운 생명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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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Q 메신저의 이용자 증가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마치 신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QQ를 사용했다. 심지어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혹은 비즈니스에서 상대방의 메신저 ID(QQ의 경우 ID Number)를 묻는 일이 전화번호를 묻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마화텅과 직원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고민이 머리를 들고 있었다. 수익모델이라고 하는 아귀는 텐센트의 뒤를 지옥 끝까지 쫓아갈 요량으로 텐센트의 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실패로 끝난 텐센트의 넷이즈모델 

텐센트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용자를 감당하기 위해 서버를 확충해야 했지만 대당 2,000위안이나 하는 서버 관리비를 감당하기에는 당시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다른 서버에 기생하듯 의존하여 서비스를 운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1999년 텐센트는 넷이즈(Netease)가 선보였던 서비스 매각 방식을 통해 OICQ의 시스템과 이용자 DB를 매각하기로 결정하였다. 마화텅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각 지역의 이동통신 업체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게 OCIQ과 사용자 DB를 약 300만 위안에 매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텐센트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친구이자 라이벌인 넷이즈의 CEO 딩레이 였다. 마화텅은 딩레이를 찾아가 ‘OICQ를 매입하면 앞으로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간곡하게 그를 설득했다. 하지만 당시 딩레이는 IM보다는 이메일 사업에 모든 관심을 쏟아 붓고 있었던 데다 텐센트의 기술 수준이 아직 낮다고 판단하여 마화텅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땅을 치고 후회할 짓이지만 당시에는 넷이즈의 이메일 서비스와 텐센트의 OICQ(QQ) 모두 인지도나 기술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기업은 차이나 텔레콤(中国电信)의 자회사이자 중국 화남지방(광둥성 일대) 최대 통신업체인 21CN이었다. 당시 광저우 텔레콤은 IM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21CN에 입장에서는 텐센트와 손잡는다면 경쟁자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21CN 입장에서 이제 갓 사용자 100만 명을 넘긴 인스턴트 메신저는 그들에게 별다른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고, 끝내 매각은 불발에 그쳤다. 이들 기업 외에도 차이나닷컴(中华网, china.com), 선전텔레콤(深圳通信), 중베이 호출기(中北寻呼) 등 여러 회사에 매각 제안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고, 결국 텐센트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텐센트의 QQ 메신저 매각 시도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전까지 중국에서 IM 프로그램의 성공사례가 없다는 것이 텐센트가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인스턴트 메신저는 대화하는데 있어서는 메일보다 효과적이었지만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서비스였고, 이들 사용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조차 구비가 되지 않은 업체들에게 텐센트의 100만 유저는 그저 그림의 떡 아니 먹지 못하는 떡에 지나지 않았다.

 

고심하는 마화텅

1999년 11월 OICQ가 이용자 100만 명을 달성할 동안에도, 텐센트의 통장잔고는 늘어나기는커녕 1만 위안(한화 약 180만 원)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텐센트는 서버 유지비용을 비롯해 지출로 충당되는 비용으로 인해 자금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에 텐센트는 자금 마련을 위해 홍콩에서 저렴한 노트북을 가져다가 중국에 팔기까지 하는 등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이는 투자유치 없이 텐센트를 성공시키고자 했던 마화텅의 결단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하지만 아사지경에 이르게 되자 결국 텐센트는 어려운 상황에도 고수했던 투자유치 거부입장을 철폐하고 외부의 지원을 받기로 결정하게 된다.

 

 

텐센트를 도운 대천사 류샤오송

당시 텐센트에서 기업자금 업무를 담당하던 마화텅은 고질병인 허리통증이 재발하면서 투자유치를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화텅은 투자유치업무를 같은 창업멤버이자 COO인 정리칭(曾李青)에게 위임하게 된다. 당시 마화텅과 정리칭은 텐센트의 회사 벨류를 550만 달러로 설정하고, 투자유치 한도금액을 전체의 40%인 220만 달러로 설정하였다.

투자유치를 위임 받은 정리칭은 투자자를 물색하던 도중 텐센트의 창업멤버와 친분이 있는 리우샤오송(刘晓松)을 찾아가게 된다. 텐센트 창업멤버인 장즈동(张志东)과 이전 직장동료였으며, 정리칭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인물인 류샤오송은 텐센트가 초기 자본금 50만 위안에서 100만 위안으로 증자할 때도 흔쾌히 돈을 대출해 주었던 인물로 텐센트와는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그 역시 신리더(信力德)라는 금융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을 설립한 CEO로, 창업 3년만인 1997년 500만 위안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텐센트의 은인 류샤오송(刘晓松) A8 CEO

 

정리칭은 류샤오송을 찾아가 회사의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류샤오송은 평소 자신과 투자 얘기를 나누던 미국의 IDG를 정리칭에게 소개해 주었다. 텐센트와 IDG는 1999년 중국국제신기술성과교류회에서 투자유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투자와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를 일찌감치 나눈 바가 있었다. 류샤오송은 IDG에게 텐센트의 가능성과 경쟁력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텐센트를 투자대상업체로 강력히 추천하였고, IDG는 텐센트의 성장가능성과 수익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텐센트의 성장 가능성을 비교적 높게 점친 IDG 아시아 쿼터 책임자인 숑샤오거(熊晓鸽)는 마침내 텐센트에 11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하였다.

정리칭이 다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친구이자 홍콩에서 통신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린지엔황(林建煌)이다. 정리칭이 린지엔황에게 텐센트의 상황을 설명하자, 린지엔황은 당시 자신이 속해있던 홍콩잉커(香港盈科, 현 香港电讯盈科-PCCW)를 추천하였다. 홍콩잉커는 통신 서비스 공급업체로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었으며, 중국 내륙 통신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협력파트너를 찾고 있었고, 텐센트가 바로 이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라 내다봤다. 이에 따라 홍콩잉커는 중국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110만 달러를 텐센트에 투자하게 되었다.

텐센트는 투자를 유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류샤오송과 린지엔황에게 감사의 표시로 각각 1% 회사 지분을 나누어주었다. 또한 220만 달러의 투자자금을 서버 확충과 네트워크 환경 개선에 할애했다. OICQ 프로그램 업데이트와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많은 자금을 투입시켰다. 이로써 텐센트는 당시 인스턴트 메신저 성역에 도전하는 2위권 업체들과의 간격을 벌릴 수 있게 되는 한편, 자금난과 생활고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다.

 

 

텐센트의 최대 주주 MIH

2001년 QQ로의 변신에 성공한 텐센트는 동시 접속자 10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고, 마화텅은 회사 전 직원들과 함께 축하행사를 여는 등 텐센트가 앞으로 성공할 일만 남은 듯 했다. 하지만 이용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한 수익모델의 한계는 여전히 텐센트의 뒤를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텐센트는 IDG와 PCCW로부터 투자 받은 투자금 220만 달러를 모두 사용하게 되자 또 다시 자금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경영권 보유와 투자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원하는 텐센트, 그리고 자금난으로 인한 지분매각과 투자지분 유지라는 두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두 투자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한 가운데 놓이게 된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텐센트를 구원한 빛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MIH.

미국 나스닥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인 MIH는 아프리카, 동남아, 중국 등의 이머징 마켓 인터넷 기업을 전문투자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투자기업이다. 1997년 중국에 처음 들어온 MIH는 마이보왕(脉搏网)등 여러 인터넷 기업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텐센트는 MIH가 투자를 원하던 인터넷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2000년 9월, MIH의 중국 지역 부대표였던 왕다웨이(网大为)는 중국에서 투자할 기업을 찾던 중 전국 어느 곳을 가던 PC방이라면 공통적으로 QQ의 메신저 아이콘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중국인들이 QQ를 사용해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텐센트의 무한한 잠재력을 점쳤다. 그 후로 텐센트를 주도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던 MIH는 이용자 수가 3개월 마다 배로 늘어나는 모습을 보며 텐센트에 투자하려는 마음을 굳혔다.

 

텐센트와 MIH의 만남은 순조롭게 이루어 질 것 같았지만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MIH는 텐센트 창업멤버 다음가는 2대 주주가 되기를 원하였지만 텐센트는 경영권 확보를 위해 이전 두 개 회사에 매각하였던 40%지분 이외에는 더 이상 매각하려 하지 않았다. IDG와 홍콩잉커 보유 중인 텐센트 지분을 매각할 의사가 없었다. 하지만 2001년 6월, 샹강잉커는 홍콩전신(香港电讯)과 합병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하는 수 없이 텐센트의 지분을 MIH에 양도하게 되었다.

MIH는 홍콩잉커가 텐센트에 대해서 보유하고 있던 20%의 지분 전부를 1,260만 달러에 매입하고, IDG가 소유하고 있던 지분 중 12.8%의 지분을 800만 달러에 매입하며 총 32.8%의 지분을 가진 텐센트의 2대 주주가 되었다. 이 후 2002년 6월 MIH는 텐센트가 보유하고 있던 13.5%의 지분을 추가 매입함으로써 텐센트 46.5%, MIH 46.3%, IDG 7.2%의 지분 구조를 나타내게 되었다. 2003년 8월에는 IDG가 가지고 있던 7.2% 지분을 텐센트와 MIH가 공동으로 매입하며 텐센트와 MIH 지분은 거의 동일한 보유비중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전히 텐센트는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며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텐센트 홍콩에 상장하다

텐센트는 약 1년여간에 걸친 지분 소유 구조 재편과 이에 따른 투자를 바탕으로 텐센트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갈 중요한 순간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6월 16일, 마화텅, 장즈동, 정리칭, 쉬천화(许晨哗), 천이단(陈一丹) 총5명의 공동 창업자와 정전궈(曾振国) CFO는 홍콩연합거래소의 중앙에 서서 대형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고 “홍콩연합거래소에 상장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텐센트 홀딩스(腾讯控股有限公司, 00700.HK)의 홍콩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텐센트는 주당 3.70 HKD의 가격에 총 4억 2,000만 주의 주식을 발행하였다. 상장 당일 텐센트의 최고주가는 기존 발행 가격보다 25% 치솟은 4.625 HKD를 기록하였으며, 발행가격보다 12.16% 상승한 4.15 HKD로 장을 마감하였다. 이날 시장에서는 총 19억 HKD의 텐센트 주식이 거래되며 텐센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들이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한 반면 텐센트만이 유일하게 홍콩주식시장에 상장했다. 비록 수익률이나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여러면에서 홍콩주식시장이 미국보다는 그 효과가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마화텅은 본사가 위치한 선전과 지리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홍콩과의 소통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최종적으로 홍콩행을 택했다.

텐센트의 주식상장으로 이들 공동창업자는 모두 돈방석에 오르게 되었다. 불과 5년전만 하더라도 직원들 월급 챙겨주기가 힘들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모든 해야만 했던 이들에게도 드디어 쨍하고 해뜰날이 오게 된 것이다. 마화텅의 주식보유비중은 14.43%로 장부상으로만 기재된 재산만 8억9,800만 HKD, 장즈동은 6.43%로 4억 HKD, 나머지 3명의 공동 창업가인 정리칭, 쉬청화, 장즈동은 총 9.87%의 주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3인의 총 재산 합계는 6억 1,400만 HKD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외 7명 임원진은 6.77%의 주식을 보유하며 4억 2,200만 HKD의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텐센트의 공동창업자 외에 상장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이는 역시 MIH다. MIH 발표에 따르면 당시 IDG와 홍콩잉커가 보유한 텐센트 지분 매입을 위해 4,000만 달러를 투자하였지만 텐센트가 상장과 함께 MIH가 보유한 텐센트 주식가치가 23억 3,300만 HKD로 3년새 천문한적인 액수가 되어 돌아오며 MIH를 일약 최고의 투자회사로 만들었다.

홍콩잉커와 IDG는 회사 내부적인 자금사정으로 인해 보유하고 있던 텐센트의 주식을 매각해야만 했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지만, 만약 IDG와 홍콩잉커가 보유하고 있었던 텐센트 주식을 지금까지 팔지 않았더라면, 그 두 회사가 얻을 수 있었던 투자수익은 70배 또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상장 이후 텐센트의 순항은 이어졌다. 2004년 4억 4,100만 위안의 순수익을 거두며 2004년 최대 수익을 기록한 인터넷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한때 자금 부족으로 허덕이던 하루하루를 보내던 텐센트는 주식상장으로 일약 중국 최고의 인터넷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홍콩잉커(香港盈科): 홍콩을 근거지 한 통신업체로 홍콩전신(香港电讯)과 합병하여 현재의  PCCW(香港电讯盈科)가 되었음.

왕이모델(网易模式):넷이즈의 전형적인 초창기 수익모델로 자사의 기술이나 정보를 다른 기업에게 매각하여 수익을 얻는 것을 말함.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China.(www.duduchina.co.kr)

[텐센트 완전 해부 3편] 위기가 가져다 준 선물, Q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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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ICQ의 인지도가 급 상승하며 텐센트 서비스 사용자 수가 100만명을 바라보고 있을 때 텐센트로 날아든 편지 한 통은 텐센트를 대혼란에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적재산권에 대해 이해가 전무했던 텐센트의 무지는 순식간에 스스로의 목을 겨누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다.

 

 

 

OICQ에서 QQ로

1999월 8월 9일, 선전에 있는 텐센트 본사에 미국 인터넷 서비스 회사인 AOL로부터 2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편지의 내용 이랬다. 텐센트가 1998년 11월에 등록한 도메인 ‘oicq.net’과 1999년 1월에 등록한 도메인 ‘oicq.com’은 AOL사의 ICQ와 유사한바 AOL사의 서비스인 ICQ 상표권을 침해하였기에, 텐센트는 자사가 소유하고 있는 oicq.com와oicq.net의 도메인 소유권을 AOL에 이전할 것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이전에 AOL이 진행하였던 상표권 분쟁 소송에서 승소하였던 ‘smsicq’건을 예로 들어 설명하며, ‘텐센트는 이번 소송에서 승소할 수 없으니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한시 빨리 도메인을 이전하라’는 경고성 권고 역시 동봉하였다.

 

사실 AOL과 분쟁이 있기 전 중국 내 몇몇 지적재산권 관련 전문가는 텐센트가 서비스 하고 있는 oicq라는 상표명은 미국에 있는 AOL이 등록한 ICQ와 상표명이 매우 유사하여 상표사용권 침해의 우려가 있다고 조언한바 있다. 하지만 당시 텐센트의 임직원 가운데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리하여 전문가의 충고에 일말의 걱정도 하지 않은 채 진심 어린 충고는 잊혀져 갔다.

 

2000월 3월, AOL은 미네소타 주에 있는 NFA(미국선물협회)에 고소장을 제출하였고, NFA 중재위원회에서 텐센트와 AOL의 변호사는 각 회사의 입장을 변호하였다. 텐센트의 변호사는 AOL이 미국에서 ‘oicq’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한 기록이 없으며 심지어 AOL은 중국에서 상표등록을 한 기록이 없는 것을 증거로 내세우면서 AOL의 주장은 터무니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AOL측은 텐센트가 기존에 등록되어 있던 ‘0icq’라는 상표명에 의도적으로 숫자’0’를 소문자’o’로 바꿔 상표권을 등록하였다고 주장하며 텐센트의 oicq는 AOL의 ICQ를 노린 의도적 상표권 등록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AOL은 NAF에 고소장을 제출하기 한달 전 의도적으로 ‘oicq.org’라는 도메인을 등록하며 소송에서 더욱 유리한 입장을 취하기 위해 치졸한 수를 썼다. 이에 따라 2000년 3월21일 NAF 중재위원회는 텐센트의 도메인을 AOL사에게 이전하라며 AOL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텐센트는 NFA의 이와 같은 서비스 양도 권고조치가 있은 이후 AOL이 도메인 뿐만 아니라 OICQ의 상호명까지 소송을 걸어올 것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이름을 결정하기 위해 주동적으로 움직이기로 결정하였다. 급작스럽게 사안들이 진행되는 가운데, 새로운 서비스로의 개명은 필수적이었다. 이에 OICQ의 이름을 대신할 무언가 강렬한 네이밍이 필요했다. 하지만 의외로 문제는 수월하게 해결되었다. 당시 사용자들은 기억하기 힘든 OICQ 대신 마지막 Q에 악센트를 주어 중국식으로 별칭으로 QQ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잘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사용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에 텐센트는 OICQ를 버리고 QQ를 취했다.

 OICQ 당시의 QQ IM

텐센트는 주력 서비스의 이름을 하루 아침에 바꾸는 큰 모험을 감행했다. 이에 따라 회사 내에서는 이래저래 말이 많았지만, 서비스 이름 변경은 다행이 별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QQ로의 변신으로 텐센트는 AOL과의 자칫 깊어질 수 있었던 법적 분쟁을 빠른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있었고, 한편으로는 기존 OICQ 보다 사용자에게 쉽게 다가설 수 있는 QQ로의 변신을 통해 사용자 확보에 고속 엔진을 달 수 있었다. 서비스 개명 이후 12년이 지난 지금 결과적으로 볼 때, 당시의 선택은 되려 QQ를 국민 메신져 자리에 올려 놓을 수 있었던 신의 한 수였다는 평가이다.

 

 

가래로 막을 것 호미로 막다

QQ로의 연착륙에 성공한 텐센트는 다음 변신으로 QQ 아바타 이미지를 변경하였다. 텐센트의 이러한 변신에 QQ이용자들 사이에서는 불필요한 서비스가 아니냐는 회의적인 입장이 지배적이었지만, 대부분 이용자들은 변경된 아바타 이미지에 굉장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또한 텐센트는 자신이 찍은 사진을 자신의 아바타 이미지로 대체 설정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심지어 당시 중국에서는 QQ 아바타 이미지를 꾸미는 프로그램까지 성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QQ 사용자 아바타 이미지 변경의 이면에는 전술한 지적재산권 문제가 깊게 자리잡고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지 않았던가. AOL과의 법정투쟁으로 한 번 크게 데인 텐센트는 지적재산권 관련 문제가 될 요소들을 사전에 차단하기에 적극 나섰다. 외부에서 볼 때는 텐센트가 창조적인 서비스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텐센트로써는 별 다른 도리가 없는 선택이었다.

 

OICQ 초기 지적재산권에 대한 개념이 뚜렷하지 않았던 텐센트의 엔지니어는 미키마우스, 곰돌이 푸, 스누피 등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해외의 유명 캐릭터들을 무단으로 사용하였고, AOL 사건 이후 마화텅은 문제가 될 수 있는 아바타 이미지들을 모두 다른 것들로 바꿀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

전체 아바타 이미지를 변환한 QQ2000을 출시하기 전날 밤, 미국의 세계적인 애니메이션 제작 업체인 디즈니와 중국의 하이홍(海虹)투자회사가 중국 내 디즈니 캐릭터 사용권과 홍보를 내용으로 한 중국 퍼블리셔 계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중국 내 상표권에 대한 명확한 소유권 효력이 발생하게 되었다. 텐센트는 운이 좋게도 때마침 교체한 캐릭터로 인해 다시 한번 겪을 수 있었던 법률 분쟁을 피할 수 있었다. 만약 텐센트가 무단으로 사용했던 디즈니의 캐릭터를 변경하지 않았더라면, 법적 분쟁으로 인해 현재 텐센트의 성공은 결코 장담하지 못했으리라.

 

 

텐센트 내부의 변신

인생지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타사의 서비스와 캐릭터를 베껴서 사용하던 텐센트가 다른 업체로부터 텐센트의 캐릭터와 상표권을 침해 당하면서, 갑과 을의 위치가 단번에 뒤바뀌었다.

2001년, 지적재산권 침해로 인한 여러 어려움을 이겨내고 출시한 QQ2000은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중국 인터넷 사용인구가 급증하는 만큼 QQ 메신저를 이용하는 인구 역시 이용자 수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QQ는 이제 보통 인스턴트 메신저가 아닌 중국인의 소통의 창이 되어가고 있었다. QQ의 높은 인기는 인터넷 세상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쉽게 확인이 가능할 정도였다. QQ 메신저의 이름을 딴 QQ 주유소, QQ PC방 등 QQ의 이름을 붙여다 쓸 수 있는 곳이면 대부분이 QQ의 상표를 불법으로 사용했다. 지적재산권과 상표권에 텐센트조차 어두웠을 정도였으니, 일반 업체들의 상황은 말하나 마나 할 정도였다. QQ 상표의 무단도용이 성행하면서 텐센트는 자사의 상표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전문가, 법무 전문가, 변호사를 직원으로 채용하여 회사 내부에 법무부를 개설하였고 도메인, 상표, 판권, 특허, 영업비밀 등 기술적인 부분과 상품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재산권 보호전략을 세워 나갔다.

 QQ 펭귄을 무단 사용한 가짜 스마트폰

 

텐센트는 자사와 관련된 모든 제품에 대한 상표등록을 빠르게 진행했다. 특히 텐센트는 당시 큰 인기를 끌고 있던 텐센트의 팽귄 캐릭터(企鹅)를 보호하기 위해 자사의 팽귄 캐릭터를 소유권 등기뿐 만 아니라 상표등록까지 신청하였으며, 회사명, 회사 도메인, 텐센트의 서비스 등 회사와 관련된 모든 부분에서 상표등록을 신청했다. 또한 당시 텐센트가 광고를 통해 선보인 ‘Q인류(Q人类)’, ‘Q생활(Q生活)’과 같은 신조어 역시 상표등록을 마쳤다. 지적재산권 문제로 깨달은 바가 큰 텐센트의 움직임은 우뢰와도 같이 맹렬했다.

 

텐센트는 영업비밀보호와 특허보호에 관해서도 법적 초치를 시작하였다. 텐센트는 자사가 만든 제품의 영업비밀, 즉 설계도면, 프로그램 일련번호 등에 대한 영업비밀보호조치를 주도면밀하게 진행하였다. 특허부분에서는 텐센트가 소유한 특허에 대해 특허관리데이터시스템과 특허신청항목추적시스템을 연동하여 특허신청에 대한 데이터 프로세스화와 관리를 실현하였다. 또한 텐센트는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한 직원교육을 실시하였다.

 

전화위복이 된 텐센트의 법적 분쟁은 중국 내외 기업관련법규와 상표, 판권, 특허에 대한 연구와 노력으로 자사의 제품과 기술을 보호하는데 큰 동기부여가 되었다. 또한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투입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이는 회사를 운영하는 여러 방면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며 텐센트가 업계 1위의 자리에 올라가는데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AOL: 타임워너의 인터넷사업부문 자회사인 AOL(America On Line)은 인터넷 서비스를 주력 사업으로 하는 미디어 기업.

 

NFA: 1982년에 설립된 미국선물업의 자율규제기관. 미(美) 선물업협회는 규칙 제정, 선물중개회사들의 고객계좌와 자기계좌 간의 독립적인 회계처리 여부의 감독, 브로커·딜러 등 선물거래에 관련된 자들의 등록에 관한 규제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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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센트 완전 해부 2편] 펭귄 아빠, 마화텅의 창업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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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중국의 인터넷 산업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인터넷 관련업체들이 하루에도 수백여 곳씩 생겨났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걸음마 단계였던 인터넷 사업은 미래가 불확실 하여 무턱대고 달려들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화텅은 불확실한 상황과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는 신념대로, 자신이 열정을 쏟고 흥미 있게 할 수 있는 인터넷 사업을 선택하고 운명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천리 길의 첫 첫걸음

90년대 말 중국에서 통신사업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고 경쟁 역시 무척이나 치열했다. 마화텅이 대학을 졸업한 뒤 처음으로 입사한 선전룬쉰(深圳润迅)은 통신사업에 모든 역량을 투자하여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선전룬쉰은 후이뚜어왕(慧多网)과 선전룬쉰 사이를 오가며 두집살이를 하고 있던 마화텅의 행동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개발팀 팀장이었던 마화텅에게 모든 열정과 시간을 회사에 쏟기를 바랬지만 마화텅과 선전룬쉰은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1998년 10월, 마화텅은 선전룬쉰에서 떠나 자신이 좋아하는 인터넷과 관련된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마화텅은 인터넷 소프트웨어가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 수 없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마화텅의 고민을 한번에 해결해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마화텅의 술친구이자 현 넷이즈(网易, Netease)의 CEO인 딩레이(丁磊)가 그 주인공이다. 마화텅은 딩레이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딩레이가 넷이즈를 창업하고 1998년 2월 전자메일 시스템인 163.net을 119만 위안(한화 약 2억1,500만 원)에 매각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돈이 되니 일단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하며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마화텅에게 동기부여를 가능케 한 딩레이(丁磊)

 

마화텅은 선전룬쉰에 사직서를 낸 후 1998년 11월 선전대학 동창인 장즈동(张志东)과 함께 텐센트 컴퓨터 시스템 유한공사를 창립하였다. 하지만 창업 초기 텐센트는 계속되는 자금압박에 모아놓은 월급이 점차 바닥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마화텅은 고집스럽게 고상한 척을 하지는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마화텅은 소프트웨어 개발과 동시에 선전룬쉰에서 쌓았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해 10명도 채 되지 않는 직원들과 함께 선전 텔레콤과 선전 유니온을 오가며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익은 커녕 회사를 운영하기도 벅찼다. 텐센트의 숑밍화(熊明华) CTO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사무실 임대료, 월급, 각종 공과금을 생각하면 월말이 무서웠다”라고 밝히며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설명하였다.

 

그 후 텐센트는 살아남기 위해 홈페이지 제작, 시스템 통합, 프로그램 제작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다. 선전 텔레콤의 소싱을 받아 일을 하는 입장에서 이것저것 할 것은 많았지만, 그들이 주력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텐센트는 당시 개발한 자사의 상품을 가지고 여기저기 판촉을 나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고, 텐센트의 기술을 원하는 기업이 많지 않아 판로를 개척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마화텅은 인터뷰에서 “당시 사람들은 우리를 보지도 않고 거부한 적이 많았다. 그때마다 깊은 좌절감이 들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텐센트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 좌절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창업 초기의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고, 1999년 2월 텐센트는 현재 10억명이 사용하는 인스턴트 메신저(이하 IM) QQ의 전신인 QICQ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텐센트가 개발한 OICQ는 사실 미국의 IM 소프트웨어인 ICQ를 많은 부분이 흡사한 카피 캣 소프트웨어이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했던 창업 초기 텐센트에게 모방이라는 방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텐센트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기존 소프트웨어의 단점을 보안하고 중국 사정에 맞게 변화시켜 이용자가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ICQ를 중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 내놓았다. ICQ는 기존에 사용하던 컴퓨터가 아닌 다른 컴퓨터에서 ICQ를 사용하게 되면 저장되어 있는 친구정보가 모두 사라지게 되며 또한 ICQ는 오프라인 상태의 친구에게는 메시지를 남길 수 없는 선천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텐센트는 이러한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기존 컴퓨터 저장 방법이 아닌 서버에 고객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하여 다른 컴퓨터에서도 편리하게 메신저를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메시지를 서버에 저장하여 오프라인 상태인 친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으며, 아이디 만으로 친구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국어로 서비스하는 메신저가 생겨났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

초기 OICQ

OICQ를 알려라

텐센트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순수 중국 기술로 제작한 IM 소프트웨어이며, 외국 IM 소프트웨어 보다 중국시장에 더욱 적합하다고 판단, OICQ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OICQ 발표한 후 이용자 수가 생각만큼 빠르게 늘어나지 않자, 텐센트는 잠재되어 있는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OICQ를 알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텐센트에게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닷컴 열풍이 중국에까지 전해지면서 일부 해외 투자자들은 중국 인터넷 기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중 투자를 유치한 바이두(百度), 시나닷컴(新浪) 등과 같은 중국형 포털 사이트는 투자금액 가운데 일부를 오프라인 광고에 투입하며 이용자 늘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당시 중국의 340개 방송사와 360개 신문사의 광고영역에 이들 기업의 광고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1999년과 2000년, 2년간 2개 인터넷 기업이 신문, 방송사에 퍼부은 돈만 하더라도 1억5,000만 위안(한화 약 270억 원)에 이르렀다. 심지어 옥외광고는 물론 버스 정류장에 있는 광고판도 이 기업들의 광고로 도배되어 있었고,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휴지에 까지 이들의 광고로 도배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중국에서는 광고를 ‘烧钱(큰 돈을 쓰다)’라 불렸고, 광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급증하고 있었다.

 

회사 경영권을 위해 해외 투자자는 생각하지 않고 있던 텐센트는 자금 사정의 압박으로 OICQ를 알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텐센트는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였지만 적절한 마케팅 루트를 찾지 못하였고 이용자 증가 속도는 여전히 답보상태였다. 1999년 5월, 텐센트의 한 직원이 대학BBS에 광고를 하자는 의견을 냈다. 텐센트 일부에서는 신문, TV광고와 비교해 노출이 너무 떨어진다며 반대했지만 마화텅은 오히려 이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텐센트는 대학 BBS에 OICQ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였고, 이러한 전략은 당시 인터넷 사용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대학생에게 더욱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텐센트는 BBS광고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자금의 한계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인지도와 이용자 수를 늘려갔고 1999년 11월에는 OICQ 사용자가 100만을 넘기며 일약 껑충 뛰어오를 수 있었다.

 

텐센트와 펭귄의 운명적 만남

텐센트의 또 다른 고민 중의 하나는 자사의 아이텐티티를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90년대 말, 인터넷 이용자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PC방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였다. 메인 화면 속 수많은 아이콘 중에서 사용자의 이목을 끌지 못하면 도태되는 PC방의 사용자 특성 때문에 마화텅은 OICQ를 캐릭터를 사용해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백방으로 찾았다.

1999년 2월, OICQ를 개발한 후 마화텅은 텐센트의 케릭터를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였던 koke와 동물에서부터 식물까지 수많은 캐릭터 후보군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아이콘으로는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결국 마지막에 남은 동물이 바로 펭귄이었다. OICQ99a 버전과 OICQ99b 버전에 팽귄이 사용되었지만 당시 펭귄의 모습은 지금과 달리 삐쩍 말라있어 보기 흉했다. 이에 마화텅은 흔히들 삐삐라 부르는 무선호출기와 펭귄 사이에서 어떠한 캐릭터를 선택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정은 사용자들에게 맡겼고, 사용자들이 퉁퉁해 정감이 가는 펭귄을 선호하자 마화텅 역시 펭귄을 텐센트의 최종 마스코트로 낙점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OICQ2000버전에 현재의 텐센트 마스코트인 펭귄이 정식으로 등장하였다.

텐센트 마스코트 – 펭귄

텐센트는 자사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펭귄을 상품화 하기로 결심하였다. 2000년 12월 텐센트는 ‘헬로키티’를 생산한 경험이 있는 ‘광저우동리싱(广州东利行)’과 손을 잡고 중국 전역에 펭귄을 홍보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텐센트는 펭귄을 알리기 위해 주요고객이 모여있는 PC방과 문구점을 주 타겟으로 홍보하였고 많은 사람이 흥미를 보이자 2001년 10월 QQ 전문 매장인 Q-GEN을 오픈 하였다. Q-GEN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의류, 학용품, 장난감, 회원카드, 컴퓨터 액세서리, 포스터 크게 6개 제품군으로, 총 300가지 종류의 상품이 Q-GEN을 통해 판매되었다. 광저우에 Q-GEN 1호점 오픈 한 후 3개월 만에 49개 도시에 60개 지점을 오픈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매장이 300개까지 늘어났다. 자사를 홍보하기 위해 시작한 캐릭터 상품화는 의외의 성공을 거두며 수익과 홍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누가 처음부터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까? 텐센트의 첫걸음 역시 일반적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소프트웨어가 무기였던 그들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이것저것 손을 대야만 했었고,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갈 때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하며 오히려 목표로 가는 첩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과정에 겪은 텐센트의 여러 경험들은 현재의 텐센트를 존재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 China.(www.duduchi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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