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으로디자인하라(3) 하버드 교수도 열광한 카를 비테식'다른교육' ◆。책속의글귀

2011.01.01.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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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당신이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200년전의 일이다.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카를 비테는 장차 태어날 아이를 성공적으로 교육하고자 플라톤,에라스뮈스,존로크,루소,페스탈로치 같은 위인들이 집필한 교육 서적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로마의 교육에 관한 문헌들을 연구했는데,하나같이 1ㅑ세기 당시독일의 교육과'다른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카를 비테는 그책들이 옳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깨달았고,자녀를 그'다른 교육'에따라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첫째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장티푸스로 죽었고 둘재는 지능이 현저히 낮았다.비테는"하나님,이게도대체 무슨 일입니까?제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벌을 내리십니가?"라고 울부짖는 아내를 위로하면서 아들에게'다른교육'을 실시했다.


카를 비테에게는 확신이 있었다.비록 아들이 지능이 떨어지긴했지만'다른 교육'을 받으면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는확신.그대 태어난 지 15일 된 아들에게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었다.두 살 대부터는 베르길리우스의[아이네이스]같은 고전을읽어주었고,여덟 살때부터는 혼자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읽게했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그는 고작 아홈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자격을 취득했고 열세 살에 기센 대학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델베르크 대학 법학박사 학위를받았다.그리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이후 여든세 살로 세상을 더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받았다.


카를 비테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을 책으로 썼다.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천재로 키우기를 열망했기때문이다.그런데 그 책은 어느 날 갑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모른다.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듯했던 비테의 저서는 20세기에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서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그리고 그 책을 접한 사람들을 여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레오 카를 비테의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받은 나머지 기자회견을 열어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그렇게 말할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카를 비테식 교육을언급했다.그의 아들 노버트 위너는 열두 살에 태프트 대학에 입학해서2년만에 졸업했다.


열네 살에는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고,열여덟 살에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이후 하버드 대학과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교수가 되었고,인공두뇌학이라는 새로운 헉문을 창시했다.레오 위너의 딸 콘스턴스는 열네 살에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고,다른 달 버사는 열두 살에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심리학자로 이름을 날ㄹ던 보리스 사이디스도 아들 윌리럼 제임스 사이디스를 카를 비테식으로 교육 했는데 가장 중점을 둔 것이 인문고전 독서였다.그가[속물과 천재]에서 한 고백을 들어보자.


"내 아들은 올해 겨우 열두 살이지만(.......)[일리아스]나[오디세이아]를 그리스어 원문으로 암기하고 있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이리스토파네스 같은그리스 고전 원전도 다른 아이들이[로빈슨 크루소]를 읽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는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는 열한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열두 살에는 하버드 대학 수학 클럽에서4차원 세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100여명의 교수들을 지적 충격에 빠뜨렸다.


테프트 대학 교수 벌 도 자녀에게 카를 비테식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실시했다.그의 아들 애돌프 벌은 열세 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했고 곧장 하버드 대학교 법과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게속했다.딸 리나는 열다섯 살에 하버드대학교 부속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다.다른 아들 루돌르와 딸 미리엄 역시 각각 열두 살,녈네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외견상으로는 학교 교육과 학원 교육으로 나뉘어 있다.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학교 교육 하나다.학원 교육의 목표가 학교 성적 올리기이기 대문이다.


학교 교육은 프러시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당시 후진국이었던 프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싶었다.그러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전쟁터로 달력가는 군인들과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 육체 노동자들이 필요했다.그 두 가지는 강대국이도기 위한 필수조건인 군사력과 경제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엄청나게 많이 배출해낼 수 있을가 고민하던 프러시아 지배계층의 눈에 어느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계층의 자녀가 들어왔다.그들은 농민의 자녀들에게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가되는 교육을 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세웠다.후일 프러시아는 독일제국에 합병되었다.독일제국은 프러시아의 교육제도를 한층 더 발전시켜서아예 군대식 학교를 세웠고 1*2처 세게대전을 일으켰다.


영국을 1860년에 의무교육,즉 공립학교 교육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영구의 공립학교 교육도 프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산업혁명으로 인해 숙련된 공장 노동자가 무한정 필요했고이를 위해서는 농민의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프러시아 즉 족일에서 시작된,국민을 바보로 만드는학교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당식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바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게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 두고있다.혹시라고 이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다음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라.


-군대의 상광은 부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부하들은 그 명령을기계처럼 수행한다.

-공장의 장은 휘하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작업지시를 내리고 노동자들은 그 지시를 기계처럼 수행한다.

-우리나라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기계처럼 암기한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중고 합쳐서 무려12년이나 교육을 받고도 지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는커녕 좀 심하게 말하면 바보가되어 사회에 나온다.대학에 입학해서 다시 4년을 배우고 대학원까지 졸업해도 마찬가지다.당당히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식인이 되기는커명 제 앞길 하나도 헤쳐나가지 못하는 뮤능력한 존재로 전락하기 일쑤다.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걸가?왜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시키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육성하는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에 뿌리를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알아야 한다.당신의 자녀가 학교를다니면 다닌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학교를 부정하거나 다니지 말라는 의미가아니다.학교는 다녀야 한다.그것도 될 수 있으면 최고의 학교를 다녀야한다.여기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또 교사와 교육부는 프러시아에서 유래된 나쁜 공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보는 게 맞을것이다.그들은 학생들에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문고전을 집필한 위대한 천재들이 우리나라의 학교재도를 보면 뭐락말할까?십중팔구 학생의 두뇌를 죽이는,창조성을 말살하는,노에를 만드는,국가의미래를 어둡게 만드는,하루빨리 개혁해야 할,민족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새롭게 고쳐야할 그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문고전 저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실시한 교육은 교사사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깊은 대화를 통해 지혜와 진리를 터득하고 발견해가는 교육이다.


새로운 두뇌를 갖고 싶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루도는 일주일에 몇 시간식 카를 비테식'다른 교육'을 실천하기 바란다.위대한 고전을 집필한 인류의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깊은 정신적 대화를 하기 바란다.그렇게 그동안 받았던 프러시아식 교육을 두뇌에서 털어내고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배움의 세계로 들어가기 바란다.


리딩으로디자인하라(2) 윌스미스인터뷰내용 ◆。책속의글귀

2011.01.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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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윌스미스가[리더스 다이제스트]기자와 만나서 한 인터뷰 내용 중일부를 소개하고싶다.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하셨는데)대학에 가려고 생각한 적은 없나요?

 저는 가장 소중한 것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습니다.전통적인 교육의 주된 목적은 사실과 숫자를 배우고 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죠.어떤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생활에 으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아내와 저는 아이들을 집에서가르치고 있습니다.

보스턴 차 사건이 발생한날짜 다위를 배우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교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지식을 가르치지 않나요?

물론입니다.읽기,쓰시,셈하기 같은 것들이죠,이런것들은 당연히 배워야합니다.

-집에서 가르친다고 하셨는데,직접 교육하신다는 의미인가요?

아뇨.저는 교사를 고용해서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가르치고있습니다.예들 들면 플라톤의[국가]같은고전이죠.이런 책은 아이들이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초등학교에서 왜 철학고전을 가르치지 않는건지 이해할 수 없어요.

 

-초등학생이 플라톤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네.초등학교 때부터 플라톤의[국가]와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같은 철학고전을 읽지 않으면 훌륭한 미국시민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인문고전은 우리선조들이 소중하게 읽었던 것입니다.알다시피 우리 선조들은 인문조전에서 배운것을 토대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정부체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기사에 따르면 윌 스미스는 아이들에게 최고수준의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키고 있다.고등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한 그가 어떻게 유럽 왕가와 명문 귀족가의 전유물이었던 가정교사를 통한 인문고전 독서교욱을 실시할 수있었을까?어저면 그가 미국에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고 미국 최상류층에 편입한 뒤 그들만의'다른 교육'을 목격했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아니 어쩌면 그는 어머니의 조언을 따랐을지도모른다.그의 어머니는 카네기멜론 대학을 졸업한 수재로 필라델피아 교육위원회에서 일하면서 미국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탁월한 식견을 쌓은 교육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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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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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대신 철학고전에 취하겠다!

알베르트 아인수타인(1879~1955,이론물리학자)

지금으로부터 약130년전의 일이다.독일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아이는 부모의 근심거리였다.루리 나이로 세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초등학교에 들어간아이는 모든 면에서 너무 느렸다.지적 장애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중학생이 된 아이는 나븐 기억력과 산만함그리고 불성실한 수업태도로 유명했다.교사들이 이런 독설을 퍼부을 정도였다.

"너는 너무도 형편없는 놈이기 때문에 커서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할 것다.","네가 교실에 있다는 자체만으로 아이들은 나의 대한 존경심을 잃는다.


 아이의 인생은 꽤 오랫동안 교사들의 예언대로 진행되었다.아이는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대학 입학시험에 낙방했고,다시 고등학교에 들어갔고,대학교 졸업후 별볼일 없는 학점과 그저 그런 졸업논문으로 인해 조교 자리조차 따내지 못했고,지도교수와 반목하다가 박사학위 논문을 중도에 때려치웠고,생계를 위해 초라하기 그지없는 여러일자리를 전전했다.

 100번을다시 생각해봐도 특별한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아이에게도 남다른 면이있었다.아이는 인문곤전을 열렬히 사랑했다.어쩌면 그것은부모의 영향이었는지도 모른다.아버지는 집네서 문학고전을 즐겨 낭독했고,어머니는 고전음악 마니아였다.


 막스 탈무트는 의대생이었다. 그는 아이 부모의 초대로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들러서 아이와 함께밥을 먹었다.천성이 따듯하고 쾌활한 그는아이와 금세 친해졌고,자연스럽게 아이의멘도가 되었다.

막스 탈무드는'인문고전 독서'의 힘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던것 같다.그리고 이 독서로 아이의 두뇌를 바꿔주기로 작정했던것 같다.왜냐하면 그가 아이에게 읽힌 첫번째 책이 유클리드리[기하학]이었고 두번째책이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었기 때문이다.열세 살에 유클리드,열네 살에 칸트를 만나고 어던 변화를 경험한아이는 인문고전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완저히 바꾸기로 결심하고 열일곱살에 이런 맹세를 하기에 이르렀다."나는 술 대신 철학고전에 취하다!"

이후 아이의 삶은 인문고전 독서로 채워졌다.이미 십대에 대부분의 서양철학 고전을 독파한 아니는 대학에 들어가서는 전공보다 철학 강의를 즐겨 들었고,친구 아버지가 알선해준 직장에들어가서는 상사로부터 아리스토텔레스논리학에 근거한사고 훈련을 받는데 몰두했고,퇴근한 뒤에는 자신이 만든 인문고전 도서모임인 '올림피아 아카데미'회원들과 독서토론을 하는데 열을 올렸다.


그 모임은 플라톤의'대화편',존 스튜어트 밀의[논리학 체계],데이비드 흄의[인간 본성론]칼 피어슨의[과학의문법}앙리푸앵카레의[과학과 가설]같은 책들을 읽고 토론했는데,창립회원 중 한 명인 모리스 솔로빈에 따르면,중요한 부분에 이르면한페이지나 반 페리지 또는 한 문단을 가지고도 며칠씩 치열하게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그 아이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과학철학 및 과학사 교수이자[알베르트 아인슈타인-특수 상대성 이론]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아서I.밀허는[아이수타인,피카소]에서아인슈타인의'의식적 사고'를 설명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아인슈타인이 로렌츠의 전자기 이론에 한계를뛰어넘어 상대성 이론을 발명하게된 배경에는10독일의 과학자 발터 카우프만의 고속전자의 질량에 관한 자료2)1895년 사고실험의 자료3)스위스 폴리테크닉 연구소에서의 배움4)인문고전독서가있었다.

2

우리 나이로 열네 살에 한 유명미술가의 작업자에 조수로 들어간 사람이 있었다.그는 견습생들 중에서 단연돋보였다.스승조차도 그를 보고 은연중 많은 것을 배울 정도였다.덕분에 그는6년만에 수석장인이 될 수 있었다.보통 13년이상은 조수로 일해야오를수 있는 자리였다.


하지만 성공도 잠시,1482년 서른이된 그는 실패한 예술가였다.그해10월 피란체 정부는 교황 식스투스 4세로부터 시스티나성당을 장식해줄 최고의 예술가들을 추전해달라는 의뢰를 받았다.도메니코 기를란다요,피에로 디코시모,루카 시뇨렐리,페루지노 등이 피란체 뒤족들의 더들썩한 배웅을 받으며 로마로 향할대 그는 비참한 기분으로 피란체 거리를 걷고있었다.피란체의 유망한 젊은 예술가들 중 그 혼자만 로마행 마차를 타지못한 것이다.


사실 그는 프로로 나선 지 3년이 되도록 피란체예술의 주소비자인 지배층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총치자인 로렌초데 메디치는 드러내놓고 그를 무시했다.당시 피란체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그런도시의 지배계층에게 삼류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다는 것은,예술가로서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울증과 무기력중에 시달리던 그는 길낱같은 희망을 품고서 이듬해에 밀라노로 이주했다.하지만 거기서도 두각을 드러내지못했다.비록 피랜체에서보다는 나은 대접을 받았지만,자신의 내면에 숨어있던 천재성을 이끌어내기 위한 어떤 특별한 독서를 시작하기 전까지,그는 밀라노에 널리고 널린 중간급 장인의 한사람에 불과했다.


서른여섯 살이던 1487년,그는 라틴어를 독학하기 시작했다,이탈리아어로 번역되지 않은 문학,철학,역사고전을 읽기 위해서였다.아니 그것들로 자신의 두뇌를 와녁하게바꾸기 위해서였다.위대한 천재들의 사고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늘 고생하긴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초인적인 의지를 발휘해서 책을 읽어나가곤 했다.당시 그의 좌우명 중하나는"어떤 장애물이든고된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였다.


그는 특히 고대 그리스철학에 심취했는데,플라통이 아카데메이아 정문 위에"기하학을 모르는사람은 들어오지 말라고"써놓은 것을 본받아,자신의 사고및 연구결과를 기록한 노트에"수학자가 아닌 사람은 내 작품을 읽지말라"고 적어놓을 정도엿다.

인생을 건 인문곤전 독서를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천재성이 비로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이후 그는 회화,조각,공기역학,광학,해부학,식물학,건축학,지리학,물리학등 다양한 분야에서천재적인 업척을 남기에 되었다.


그의 이름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레오나로르도 다 빈치는 분명천재였다.하지만 인문고전독서를하기 전까지 그의천재성은 드문드문 드러났을 뿐이다.그러나 인문고전독서에 몰입하자 그의 천재성은 마치 우리를 뛰쳐나온사자처럼,역사를 향해 질주하기시작했다.결국 그의 이름은'천재'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3

1806년 5월20일,영국 런던에서 한 아이가태어났다.아니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이해력 기억력 등 지적 능력의척도하고 할수 있는 모든 부분에서 특별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아이는 평범했지만 아버지는 특별했다.그는 평범한두뇌를 천재의 두뇌로 변화시크는 법을알고 있었다. 그것은 두뇌를장기간에 쳐서 인문고전,즉 문학,역사,철학고전에 노출시키는 것이었다.

아이의 인문고전 독서는 여덟 살부터 시작됐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유클리드,키케로,데이비드흄,헤로도토스,투기디데스,플루타르코스,카이사르,에드워드기번,호메로스,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리비우스,오비디우스,테렌티우스,소포클레스,에우리피데스,아리스토파네스......아이는 열세 살이 되기 전에 이런 수많은 거장들의작품을 경험 할 수 있었다.아이는 번역서를 읽지않았다.그리스 및 라틴 원전을 읽었다.물론 굉장히버거운 일이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까웠다.책의 내용을 전부 이해할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일레로 플라톤의[테아이테토스]같은 경우 너무 어려운 나머지 내용을 전혀 이해할수없었고,차라리읽지 않낳는게 나았다고 자서전에 썼을 정도였다.하지만 아이는 아버지의 헌신적인 지도로 인문고전 독서를 큰 무리없이 해나갔다.인문고전 독서는 두뇌에 특별한 기쁨을 가져다준다. 물론 처음에는 고되다.이루 말할 수 없이힘들고 어렵다.


단어 하나,문장하나를 이해하지 못해 진도가 일주일 도는 한달씩 늦어지는 경우가다반사다.하지만 어느 지점을 넘기면 고통은 기쁨으로변한다.인류의 역사를 만들어온 천재들이 쓴문장 뒤에 숨은 이치를 깨닫는순간 두뇌는 지적 쾌감의 정점을 경험하고,그맛에 중독된다.그리고 서서히변화라기 시작한다.뻔한 꿈밖에 꿀 줄모르고 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두뇌가 인문고전 저자들처럼 혁명적으로 꿈구고 천재적으로 사고하는 두뇌로 바귀기시작한다.


엄청난 양의 인문고전에 일상적으로 노풀된 아이의두뇌는 자연스럽게 그 저자들의 두뇌처럼 바뀌어갔다.내용을 이해하고못하고는 크게 중요하지않았다.천재들의 생각하는 방식과 접촉한다는 자체가 중요했다.


물과 식물의 관계를 생각해보자.식물에 물을 주고나중에 보면 물의 흔적조차 발견하기 어렵다.하지만 이상하게도 식물은자란다.인문고전 독서 또한 마찬가지다.특히 철학고전 같은 경우 몇 번을되풀이해 읽고,해설서는 다 찾아읽고,심지어 필사까지 해도 그 내용을 이해하기가쉽지 않다.아니 아예 이해불가능인 경우가많다.일반인만 그런게 아니다.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철학 연구가들조차 '어렵다'고 고백하는 실정이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철할고전을 한 권씩 뗄때마다 사고의수준이달라짐을 느끼게 괸다.이는 철학고전을 제대로 릭은 사람이라면 누구나경험하는 현상이다.


아이는 평생 인문고전을 읽었다.아니 인문고전에 푹빼져 살았다.그리고 아인슈타인처럼 임문고전 독서모임을 만들었고,여가의 대부분을 독서토론 준비에 쏟아부었고,하나의 주제를 놓고만족할 만한 결롬을 얻을 때까지 석 달 넘게 토론할정도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독서토론에 집중했다.그결과 평법하기 이를데없었던 아이는 마침내 인문고전 저자들과 똑같은천재의 두뇌로 완벽하게 변신했다.그의 이름은 존 스튜어트 밀,지금까지도 철학,경제학,사회과학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논리학체계](1843),[경제학원리](1848)[자유론의](1859)의저자이다.

존 스튜어트 밀은 [자서전]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지적인 영역에서 평균 이하였지,이상은 결코 아니었다.평범한 지적 능력,평범한 신체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내가 받았던 고전 독서교육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있다.

-우리 아버지는 세상의 어떤 아버지도 기울이지 못할 정도의 노력과 주의와 인내를나에게 쏟았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고전독서교육 덕분에 내 또래들보다25년 이상 빨리 출발할 수 있었다.

-나는 고전독서와 토론으로 인해 한 명의 독창적이고 독립적이 사상가로 출발할 수 있었다.

4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이있다.고전과 비고전.고전은 짧게는100~200년 이상,길게는1,000~2,000년이상 살아남은 책을 말한다.쉽게말해서 천재들의저적이다

생각해보자.만일 앞으로 10년동안 노벨상 수상자들에게 매일두 시간 이상 개인지도를 받는다면,나는어떻게 될까?아마도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성인으로 추앙받고있는 사람들보다뛰어난 존재가 될 것이다.아니 세계최고의 두뇌 중 하나가 될것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분명이 시대의천재들이다.그러나 불멸의인문고전을 남긴 진정한 천재들과 비교하면 그들은 기껏해야머리가 조금좋은 사람들에불과하다.그렇다면 이번에는 어떻게생각해보자,만일 앞으로 10년동안 매일 두 시간 이상 위대한 인문고전을 남긴 진짜 천재들에게 개인지도를 받는다면,나는 어떻게 될까?


인문고전은 인류의 역사를 새로 쓴 진정한 천재들이자신의 모든 정수를 담아놓은책이다.아인슈타인,레오나르도 다빈치,존스튜어트 밀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정수를 완벽하게 소화하면 누구나 다음 세 가지 중하나를 경험할 수있다.

1.바보또는 바도에 준하는 두뇌가 서서히 천재의 두뇌로 바꾸기 시작한다.

2.그동안 억눌려있던 천재성의 빛을발하기 시작한다.

3.평범한 생각밖에 할 줄 모르던 두뇌가 천재적인사고를 하기시작한다

 


리딩으로 리드하라(3)장한나는 왜 하버드 철학과를 선택했을까? ◆。책속의글귀    

2011.01.01.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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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게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석학들 중에는 역시 철학을 외면학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김대식,[공부혁명]중에서

 

[천재들의 뇌]에 다르면 일본의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음악교욱가였던 스즈키 신이치는 일종의 음악교육을 실험을 했다.그는 교육에 참가한 부모들에게 다음과같이 주문했다

1.아이가 한 살이 되면 클래식 음악을 들려줄 것.

2.두 살 대부터는 음악 감상의 강도를 본격적으로 높일 것.

3.음악 감상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교육에 참가한 다른 아이들 또는 부모와 함께 들을 것.

4.부모는 클래식 악기를 배울 것.

아이들이 자라면서 음악교육은 보다 전문적으로 진행되었고 아이들은 다들 훌류안 연주자로 성장했다.5퍼센트는 전문연주가의 길을 가도 될 정도의 재능과 실력을 갖추게 되었다.하지만 천재 음악가는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소련은 각 나라의 대표적이 수학 영재들을 모아서 수락 올림피아드를 조직했다.그리고 무려12년 동안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특별한 교육을 시켰다.천재 수학자를 배출하기 위해서였다.하지만 소련 정부의 파격적인 후원에도 불구하고 천재 수학자는 나오지않았다.


스즈키 신이치의 음악교육과 소련의 수학 올림피아드 교육에 빠진게 하나 있다.인문고전 독서교육이다.만일 두 교육실험이카를 바테식'다른 교육'의 정신과 방법하에 진행되었다면 어떻게되었을가>나는 분명히 천재가 나왔을 거라고 생갱각한다.


이렇게 말할수 있는 근거는1)카를 비테가 자신이 창안한'다른 교육'을 받으면 누구라도 천재가 될 수 있다고 확언했고,2)실제로 카를 비테식 교육을 받은 인물 중에 천재가 나왔고,3)바흐,헨델,베토벤,바그너 같은천재 음악가와 데카르트,파스칼,뉴턴,라이프치히,오일러 같은 천재 수학자들이 하나같이 인문고전독서가였기 때문인다.


카이저슬라우테른 대학교 인간생물학과 인간유전학 교수인 하인리히 창클은 카트야 베츠와 함께 쓴[신동]에서 독일에만 아이큐130이상의 영재가 160만 명에서 320만명 정도 있는 것으로 추산되지만 그중천재의 전 단계인 신동으로 발전하는 아이는 극소수라고 밝혔다.아마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느 약 7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숱한 영재들을 만났다.약5년동안 근무했던 첫 발령지의 경우 언론이'명문'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정도로 대단한 학교였는데 영어 원서를 술술읽고 고등학교 수학 문제를 암산으로 풀어버리는 아이들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못할 정도로 뛰어난 아이들이 많았다.


음악,미술,분야에서도 전국 대회에서 연달아 수상하는 등 특별한 영재성을 보이는 아이들이 꽤 있었다.하지만 그 아이들 중 초등학교 시절이상의 눈부신 번뜩임을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좀 냉정하게 말하면 성장할수록 평범해졌다.참고로 내가 처음 만났던 아이들은 지금 대학교 4학년이다.


처음에는 나는 아무 생각없이,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생계를 해결할 목적으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하지만 독서를 통해 마음의 큰 변화를 경험한 후에야 교직을 생활의 수단으로 보는관점을 탈피하게 되었다.그러다보니'어떻게 하면 진정한 교육을할 수 있을까?'같은 당시의 나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민가지 하게 되었고,그 결과 다섯 권의 교육 서적을 집필하게되었다.

교사로서 새로운 마음으로 임하게 된 초기3년은,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천대를 만드는 교육에 관심이 추척 높았다.나는천재를 다룬 많이 책과 논문 등을 읽었고,천재로 발전할 소질이 다분한 영재연구소 아이들과 부모들을 심층 인터뷰하기도했다.그렇게 얻은 결론은1)우리나라에 영재는 넘치도록많다,2)대부분의 영재는 중고등학교 때 어린 시절의 빛을 잃는다,3)영재에서천재로 넘어가는 아이는'전혀 없다'는 표현이 어루릴 정도다.


이 결론을 이해할 수 없었다.영재로 판명되면 보통 영재연구소 등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그 교육은 궁극적으로 천재를 길러내는것이 목적이다.그런데 왜 아이들은 특별한 교육을 받으면 받을수록 두뇌의 빛을 잃게 된다는 말인가?물론 지식측면에서는 월등한 진보를 보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하지만 아인슈타인이 밝혀듯이 아무리 많은 지식을 축적한다 한들 백과사전은 될수 있을지언정 천재는될수 없다.천재는 지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백과사전은 몇만 원이면 살 수 있다.좀 잔인하게 말하면 영재교육을 받는 그 숱한 아이들은 고작 몇만 원짜리 가치밖에 없는 백과사전이 되기 위해 그토록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영재연구소 등에서 실시하는 교육을 폄하하려는 의도로하는 말이아니다.


영재교육 자체만 놓고 본다면 영재연구소 등에서 실시하는 교육은 참으로 대단하다고할 수 있다.하지만 비행기가 아무리 많은 장비를 단다고 한들 우주왕복선이 될 수 없듯이 영재교육을 아무리 열심히 받는다고 한들 천재가 될수 있는 것은 아니다.둘은 서로 차워이 다르기 때문이다.영재교육에 대한내 의견은 이런 관점에서 들어주기 바란다.영재교육의 한게는 천재의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데 있다.음악영재교육의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음악 영재교육은 악기 연습에 치중한다.내 제자 중 한 명은 유명 음악잡지에 인터뷰가 실릴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자랑하는데 그 아이가 받았던 교육은 매일 열 시간씩 바이얼린을 연주하는 것이었다.만잃 그 아이가 인문고전 독서를 병행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바흐나 헨델같은 천재 음악가들이 그랬듯이두뇌를 지속적으로 위대한 고전에 노출시켜서 서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그 놀라운 깨달음을 연주에 불어넣었다면 말이다.


장한나는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연주가다.그는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한뒤 전공으로 음악이 아닌 철학을 선택했다.그가이런 결단을 내린 이유는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의 권유 때문이었다.그는 장한나에게 진정으로 위대한 음악가가 되려면 반드시 인문고전을 공부해야 한다며 하버드 대학교 철학과를 추천했다.요요마가 하버드 대학교 인문학 학부과정을 졸업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였을 것이다.


미술 영재교육도 바뀌어야 한다.다 빈치,피카소,로댕,세잔샤갈,마티스 등 미술의 천재치고 인문고전을 사랑하지 않은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학*과학 영재교육은 실망스러운 수주이었다.기존 원리를 터득하고 보다 복잡한 계산,조금 더 심도 있는 실험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물론 무능력한 학교 교육에 비추어볼 때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다.하지만 아타깝게도 그런 교육으로는 천재를 만들어낼수 없다.수학과 과학의 천재들은 원리 자체를 만들거나 발견한 사람들이다.


즉 수학*과학 영재교육이 천재를 배출하려면 기존 원리를 터특하는 교육이 아니라 새로운 원리를 창조하거나 발견하는 교육 쪽으로 방향을틀어야 한다.데카르트,파스칼,뉴턴,라이프치히,오일러,가우스,아인슈타인,하이젠베르크 같은 수학*과학 천재들의 공통점은1)새로운원리를 발견하거나 창조한 천재들이쓴 고전에 심취했다,2)새로운 원리를 발견하거나 창조했다,3)새로운 고전을 집필했다는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 의대 교수이자 한국과학기술원 외부협력교수인 김대식의[공부혁명]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에 따르면 현대의 천재들 역시 같은 길을 걸었다."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석학들 중에는 역사나 철학을 외면하고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독특한 창의력과 명석한 두뇌의소유자 머리 겔만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퀴크의 존재를 발견하고1969년에 노벨불리학상을받은 위대한 물리학자다.


그런데 그는 과학자로서의 인지도만큼이나 현대문학에 조예가 깊다.특히 제임스 조이스 문학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사실이다.에어빈 슈뢰딩거도 양자역학의 창시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였느나 그리스와 인도 철학분야에서 탁월헌 실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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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버드 교수도 열광한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

○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인문고전 연구를 한 카를 비테가 창안한 ‘다른 교육’

▷ 저능아인 아이에게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게 함

- 태어난 지 15일 - 위대한 시인들의 시 낭송

- 2세 - 고전 읽어주기

- 8세 - 그리스 로마 고전 원전으로 읽히기

▷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성장시킴

○ 20세기 하버드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되어 큰 인기를 얻음


○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창의력이 넘치는 인재가 부족함

▷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인문고전 독서 교육’이 필요함


2. 소문난 삼류 학교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사연

황상과 박지원

▷ 청소년 시절까지 글을 몰랐던 두 사람

▷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천재로 성장함

○ 위인들의 사례

  아이작 뉴튼은 초등학교 시절 연속적으로 전교 꼴찌를 하다가 지진아 반에 들어간 경력이 있다.

  교장 선생님은 그런 뉴튼을 안타깝게 여겨 인문고전을 소개해주었다.

  이후 뉴튼의 삶은 인문고전 독서로 채워진다.

  그 결과 한 때 저능아 취급을 받았던 뉴턴은 휘황찬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로 변화하게 되었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과학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윈스턴 처칠은 열세 살에 해로우 학교에 전교 꼴찌로 입학했는데, 4년 6개월의 재학기간 동안 거의 전교 꼴찌였다.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23세에 인문고전 독서를 처음 시작했는데 하루 평균 4~5시간씩 독서했다.

  처칠의 인문고전 독서는 그의 두뇌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되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토머스 에디슨은 초등학교에 입한한 지 3개월 만에 퇴학당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갈 만한 지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본래 머리가 나쁜 아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포기했지만 교사 출신 어머니는 희망을 가지고 특별한 교육과정을 만들어서 에디슨을 직접 교육했다.

  에디슨은 어머니의 지도로 아홉 살에 '자연과 실험의 철학'을 독파했다. 시어즈의 '세계사',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흥망사', 흄의 '영국사' 같은 역사 고전과 세익스피어, 찰스 디킨스의 소설 같은 문학 고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20대에는 도서관을 통째로 읽어버리겠다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세계 최고 기록인 1,093개의 특허를 따내면서 발명왕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창업자가 되었다.



3.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

○ 저능아로 판명받은 사람도 인문고전 독서 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천재로 성장할 수 있음

▷ '제대로'의 의미 : 일반인이 상상하는 수준 이상의 독서를 한다는 의미


○ 시카고 대학

▷ 3류 대학이었으나 총장 로버트 허친스의 시카고 플랜을 통한 인문고전 독서 교육 실시

- 고전 100권을 외울 정도로 읽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

▷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명문대로 거듭남

미르바 콜린스의 사례

▷ 빈민가의 아이들을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변화시킴

▷ 웨스트 사이드 사립 예비학교를 통해 인문고전 독서 교육 실시

○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효과

▷ 문맹을 천재로 만듬

▷ 저능아를 천재로 변화시킴

▷ 평범한 학생들을 아이비리그 졸업생보다 뛰어난 인재로 만듬

▷ 둔재를 노벨상 수상자로 만듬

▷ 학습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지적으로 성장시킴

▷ 어떤 희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줌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석학들 중에는 역사나 철학을 외면하고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독특한 창의력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머리 겔만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서 쿼크의 존재를 발견하고 196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위대한 물리학자다. 그런데 그는 과학자로서의 인지도만큼이나 현대문학에 조예가 깊다. 특히 제임스 조이스 문학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에어빈 슈뢰딩거도 양자역학의 창시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였으나 그리스와 인도 철학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 김대식의 『공부혁명』 중에서 -


※ 함께 읽기

○ 장한나는 왜 하버드 철학과를 선택했을까?

○ 미국의 아이들을 변화시킨 ‘카를 비테’ 교육법

- See more at: http://kiyoo.tistory.com/427#sthash.W3XIvjYT.dpuf

카를 비테식 교육 과연 그 교육이 무엇란 말인가? 이것저것

2015.10.16. 16:57

복사 http://blog.naver.com/msgolf83/220510686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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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비테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비록 아들이 지는이 떨어지기 했지만 다른 교육을 받으면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확인 그는

다른 교육을 받으면 얼만든지 천재가 될수 있다는 확인 그는 태어난 지 15일 아들에게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었다 두살 때부터는 베르길리우스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을 읽어주었고 여덟 살떄부터는 혼자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일게 했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면서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살에 라이프치히 대학 입학자격을 취득했고 열세살에 기센 대학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 하이텔베르크 대학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 법대 교수로 임용됐다

이후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칭송받았다

카를 비테는 지능이 떨어지는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을 책으로 섰다

 세상 모든 무보들이 자녀를 천재로 기우기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대 그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왜 그런일 이 벌어졌느지는 아무로 모른다

하버드 대학 교수였던 레오 위너는 카를 비테의 책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은 나머지 기자회견을 열어서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말할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카를 비테식 교육 언급했다 과연 그 교육이 무엇란 말인가?

내 아들은 올해겨울 열두 살이지만 위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는 열한살에 하버드 대학에 입학했고 열두살에는 하버드 대학 수학 클럽에서 4차원 세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 100여명 교수들의 지적 충격에 빠뜨렸다


http://blog.daum.net/teachi/13686759

[ 人side Dream] '태양의 후예' 만든 New 김우택 대표 "사업계획 세워본 적 없다, 직원들과 꿈을 공유할 뿐!"

  • 김지수 대중문화전문기자
  • 입력 : 2016.04.16 07:00 | 수정 : 2016.04.16 12:49

    한 치 앞도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성의 시대, 창조 경제는 유행어처럼 퍼져나가도, 그것을 성공적으로 실행해내는 사람은 드물다. 이에 [ 人side Dream]은 꿈을 항상 곁에 두고 있는 사람, 각자 도생하는 듯한 콘텐츠를 황금률로 배합해 놀랄만한 빅뱅을 이뤄내는 사람, 미지의 꿈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현실적인 비즈니스 생태계를 열어가는 ‘콘텐츠 시대 뉴리더'를 소개해 독자들에게 영감을 주고자 한다.[편집자 주]

    “부드러운 곰의 얼굴을 한 대호, ‘태양인’ 김우택"
    “첫 드라마 ‘태양의 후예'로 엔터테인먼트 태양계에 빅뱅 일으켜"
    “넥스트 플랜은 생각해본 적 없어, 준비 체력을 키울 뿐”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MBA 학위를 받은 전형적인 인수합병(M&A) 전문가가 어느새 꿈을 짓고 꿈을 공유하는 드림팀의 리더가 되었다. /사진=김지호 기자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MBA 학위를 받은 전형적인 인수합병(M&A) 전문가가 어느새 꿈을 짓고 꿈을 공유하는 드림팀의 리더가 되었다. /사진=김지호 기자
    영화투자배급사로 시작해서 뮤지컬, 음반, 극장, 드라마 사업까지 진출한 넥스트엔터테인먼트(이하 NEW)는 논현동 두산빌딩 8층에 세 들어 산다. 직원은 80명 정도다. ‘태양의 후예'를 사전 제작해서 한국과 중국의 드라마 시장을 넘어서 유럽에까지 핵폭탄급 신드롬을 일으킨 김우택 대표(52세)가 NEW의 수장이다.

    NEW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김우택의 실제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60~70년대 영화계를 풍미한 올드 스타 ‘신성일'과 ‘남궁원'을 닮았다. 익숙한 듯 호방하며 친근하다. 어느 자리에서나 말보다 너털웃음을 먼저 터뜨려 주위를 편안하게 만드는 그다. 

    그러나 사업가의 면모로 차갑게 바라보자면 김우택은 부드러운 곰의 얼굴을 한 대호(大虎)다. 그가 ‘태양의 후예'를 만들었다. 글은 작가가 쓰고 연기는 배우가 하고 연출은 PD가 하지만, 그것이 실행 가능하도록 태초에 모든 구조를 설계한 사람이 바로 김우택이다.

    그는 ‘태양의 후예'의 중국 사전 판매,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에 회당 3억 원 선판매, PPL 35억 원 판매로 첫 방송 전에 이미 제작비 130억 원을 뽑아 ‘사전 제작'의 기틀을 마련했다. 이후 미국,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 32개국 판매와 드라마 OST 제작 유통 등 그 콘텐츠 부가가치의 확장은 설명이 필요 없다.

    물어보지 않았지만, ‘태양의 후예'를 만든 사람답게 김우택은 체질적으로 ‘태양인'임에 분명하다. 건강백과에 따르면 태양인은 체격이 크고 얼굴은 둥글고 잘 생겼으며, 눈은 정기가 있고, 목덜미가 충실하다. 성격은 활달한 편이라 사귐을 잘하며, 명석하고 진취적이다. 결정적으로 남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해 낸다. 딱 김우택이다.

    그가 ‘태양인'임을 추측할 수 있는 창업 초기의 물리적인 일화가 있다. 그는 2008년 쇼박스 미디어플렉스 대표라는 안정된 대기업 임원 자리를 박차고 나와 삼성동 건물 한 켠에 NEW라는 간판을 단 작은 회사를 차렸다. ‘태극기 휘날리며' ‘괴물' 등을 배급하며 이름을 날리던 영화계 거물은 단출하게 직원 4명과 함께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건물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이 났다.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모든 게 불에 타버렸다.
    “홀랑 다 타버렸죠. 그 일이 트라우마가 되긴 했지만 모든 건 해석에 달려있어요. 다 잘 되려고 그랬던 거 아닌가 싶어요.” 엔터테인먼트 신대륙을 찾아 나선 그는, 뜨거운 화마(火魔)를 이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김우택이 본격적으로 영화배급 사업에 대한 경험을 쌓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오리온그룹 계열의 배급사인 쇼박스 미디어플렉스의 대표로 취임한 이후부터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괴물'을 배급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사진=김지호 기자
     김우택이 본격적으로 영화배급 사업에 대한 경험을 쌓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오리온그룹 계열의 배급사인 쇼박스 미디어플렉스의 대표로 취임한 이후부터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괴물'을 배급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사진=김지호 기자
    ‘태양인' 김우택이 이번 인터뷰 내내 가장 많이 내뱉은 단어는 꿈, 체력, 상식이었다.

    꿈과 상식이 잘 붙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신적 육체적 조직적 체력이라는 것. 지극히 현실적인 꿈의 공장장다웠다.

    “사업 계획은 창사 이래 세워본 적이 없고, 똑똑한 사람 대신 꿈이 맞는 사람과 일한다"는 NEW의 김우택 대표를 만났다. 한 달 사이에 70% 이상 뛰는 NEW의 주가 앞에서 들뜰 법도 한데, 맑은 얼굴엔 이상하리 만치 돈 냄새가 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7시에 나와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직원들 표정이 무척 밝습니다. ‘태양의 후예'가 크게 성공해서겠지만, 예전부터 영화나 뮤지컬 현장에서 NEW의 직원들은 특별히 에너지가 넘치고 자신감이 있어 보이더군요.

    “2008년에 4명으로 시작했는데, 지금 80명 정도로 늘었어요. 제가 “왜 안 나가냐”, 물어보면 “여기보다 좋은 직장을 못 찾아서” 그렇대요(웃음).”

    -리더로서 김우택 대표의 매력은 무엇이죠?

    “꿈이 있다는 거죠. NEW 직원들도 마찬가지예요. 자기 꿈과 오너의 꿈이 맞는 사람들이 오래 있어요. 꿈이 맞는 사람들끼리 있으면 힘들어도 행복해요. 꿈이 안 맞으면 다른 직장을 구하든지, 자기 비즈니스를 해야죠.”

    김우택은 금융전문가답게 리스크 관리도 치밀했다. 창립 이후 NEW는 회사 고유계정의 투자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추가 투입비용은 외부에서 결성한 투자조합을 이용해 재무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을 폈다./사진=김지호 기자
     김우택은 금융전문가답게 리스크 관리도 치밀했다. 창립 이후 NEW는 회사 고유계정의 투자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추가 투입비용은 외부에서 결성한 투자조합을 이용해 재무 리스크를 줄이는 전략을 폈다./사진=김지호 기자
    -NEW의 꿈이 궁금하군요.

    “멋진 미디어 회사가 되는 거예요. 사랑과 정의 같은 상식적인 가치를 대중과 나누고 사회에 널리 소통시키면서 좋은 에너지를 주는 거죠. 미디어 회사다운 자유와 창의성을 근간으로 해서요. 구글 회사에서 일해본 적은 없지만, 구글의 이미지를 좋아해요. 대기업 시스템에서 나온 공장 같은 미디어 경영은 피하고 싶어요.”

    -1998년부터 10년 동안 메가박스, 쇼박스 등 대기업에서 일하면서 젊은 나이에 대표까지 올랐습니다. 대기업에서 순항하던 분이 직원 4명 데리고 스타트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메가박스 총괄대표를 맡았을 때가 36살이었어요. 제가 일한 회사에 감사한 건 ‘정말 내 것처럼 일하게 해줬다'는 거예요. 권한도 강했고, 눈치도 안 봤어요. 그러면서 회사가 성장하는 걸 보는 기쁨이 컸어요. 돈도 영향력도 날이 갈수록 커졌지요. 2008년 즈음엔 이 일을 좀더 소명을 갖고 하고 싶어졌습니다.”

    2008년부터 NEW는 작지만 강한 회사로 영화계에서 차근차근 이름을 얻어갔다.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투자 방식, 저예산의 작은 영화를 여러 편 제작하는 방식이었다. 결정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건 2013년이었다. 2012년 ‘내 아내의 모든 것’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피에타’ 등 화제작들을 내놓으며 시동을 건 NEW는 이듬해 2013년 ‘7번 방의 선물’과 ‘변호인’, ‘신세계’ 등으로 잇따라 대박을 터뜨리며, CJ와 쇼박스, 롯데를 이기고 그해 관객 동원 1위를 기록했다. 다들 기적이라고 했다.

    내리막길도 있었다. 2014년과 2015년 ‘허삼관'과 ‘대호' 등 크게 실패를 맛보았다. 주가는 급락하고 재무 환경을 염려하는 시선도 많았지만, 잘 나갈 때나 못 나갈 때나 김우택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2년간 우직하게 뮤지컬과 스포츠, 음악 사업부를 론칭하며 저변을 확대했고, 중국의 금융 자본과 엔터테인먼트를 연결해 갔다.

    2014년엔 중국의 드라마제작·유통업체인 화처미디어로부터 540억 원의 투자유치 계약, 이어 2015년, 10월, 부산영화제 기간에 모두가 파티의 여흥에 취해 있을 때, 중국에 합자법인 화책 미디어를 설립했다. 그 모든 게 ‘태양의 후예'라는 작품을 중심으로, 엔터테인먼트 태양계에 빅뱅을 일으켰다.

    -결정을 내리는 데 중요한 원칙이 있나요?

    “결정적인 결정이든, 사소한 결정이든 인생은 결정의 연속이에요. 좋게든 나쁘게든 계속 쌓여서 지금에 이른 거겠죠. 가령 쇼박스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배급을 결정한 것, 당시에 그게 쇼박스가 한 단계 도약한 계기가 됐다고 뿌듯해하지만, 그동안 제 손으로 ‘망한’ 결정도 많이 내렸죠(웃음).

    중요한 건 과정이에요. 성공이든 실패든, 이 결정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 자산으로 남겠다 싶으면 결정해요. 조직구성원에게 지적 재산으로 쌓인다면, 다소 위험한 결정이라도 내려요. 반면 그냥 돈 넣고 돈 먹는 그런 식의 투자 결정은 안 해요.”

    -‘태양의 후예'의 제작을 결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걸 통해서 직원들이 많이 배울 수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우리 회사는 드라마 제작은 처음이라 드라마 팀도 없어서 각 팀에서 차출해서 7~8명이 이 일을 해냈어요. 실수도 많았지만 확실히 노하우가 쌓였다는 게 느껴져요.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다음에 하면 진짜 잘할 수 있다"예요. 남이 하는 데 돈만 넣었다면, 크게 터져 돈은 벌었겠지만 ‘넥스트'를 기대할 수는 없었겠죠. 뮤지컬 ‘디셈버'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어요. 그 분야에 아무것도 몰랐지만, 일단 김광석 음원으로 판을 크게 벌였죠.”

    김우택의 사무실. 가족 사진과 십자가, 그리고 장인인 한완상 전 통일부 장관이 준 서적과 영화인으로서 받은 영광스러운 트로피가 자리하고 있다. NEW는 곧 사옥 이전을 앞두고 있다./사진=김지호 기자
     김우택의 사무실. 가족 사진과 십자가, 그리고 장인인 한완상 전 통일부 장관이 준 서적과 영화인으로서 받은 영광스러운 트로피가 자리하고 있다. NEW는 곧 사옥 이전을 앞두고 있다./사진=김지호 기자
    -대개 처음 하는 결정은 보수적이기 마련인데, 대단히 공격적이군요.

    “리스크를 책임지는 건 리더가 할 일이죠. 첫 시작은 적어도 배울 수 있는 프로젝트여야 해요. 그리고 시장의 기존 틀을 바꿀 수 있을 만큼 도전적이어야 하죠. 남이 하는 걸 따라 하거나, 안전하게 지분만 태우고 옆에서 배우자, 이런 말은 다 ‘뻥'이예요. 그런 정도로 주저할 거면 하지 말아야죠.”

    -새로운 영토를 개척하고자 하는 개척자 기질이 강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출신도 아니고, 경영학도에 M&A 전문가였던 걸로 알고 있어요.

    “젊을 때는 회사를 크게 하고 싶은 욕심이 정말 강했어요. 미디어라는 업을 즐긴 건 아니었지요. 40대가 돼서야 회사 크기나 시장점유율보다 더 중요한, 대중과 소통하는 기쁨을 알게 됐죠. 내가 가진 철학을 나누고 싶다는 소명이 생긴 거죠.”

    -철학이 생겼다…

    “대단한 건 아니에요. 가족에 대해, 사랑에 대해, 정의에 대해, 통일에 대해 건강한 상식을 나누고 싶다는 거죠. ‘변호인'이나 ‘그대를 사랑합니다' 같은 영화를 한 이유도 그런 거죠. 쇼박스 시절에 배급했던 ‘웰컴 투 동막골'같은 영화가 제 취향의 절정이었어요. ‘태양의 후예'를 결정한 것도 그 이야기가 대단히 보편적인 상식을 담고 있어서예요.

    애국주의를 조장한다는 둥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분들도 많지만, 군인이 나라에 충성하고 의사가 사람을 살리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에요. 대사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은데, 시청자들은 송중기의 “사과할까요? 고백할까요?”를 좋아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유시진 대위가 국가에 관해 얘기할 때, 강모연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할 때, “아! 이 드라마 잘했다 느껴요(웃음).”

    -비즈니스 스타일은 공격적인데, 작품은 보편타당한 것을 추구하는군요.

    “지극히 상식적인 가치를 추구해요. 새로운 걸 요구하지 않아요(웃음).”

    -박찬욱 감독 작품 같은 상식을 뒤엎는 센세이셔널은 맞지 않겠군요(웃음). 한때 한국에서 제작을 거부했던 김기덕 감독의 손발이 되어 걸작으로 남을 영화 ‘피에타'를 제작하기도 했지요?

    “김기덕 감독 작업에 참여하고 그 일원이 된 건 좋은 경험이었어요. ‘풍산개'로 인연이 됐지요. ‘피에타'는 세계 3대 영화제 중의 하나인 베니스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는 데, 말할 수 없이 뿌듯했어요. 한국 문화가 영화 예술계에서 제대로 인정을 받았으니까요.”

    영화인으로 받은 영광의 트로피./사진=김지호 기자
     영화인으로 받은 영광의 트로피./사진=김지호 기자
    -하나의 프로젝트를 할 때 어느 정도 관여합니까?

    “저는 구조를 짜주는 일까지만 해요. 아이템을 가져와서 자본을 만들어주는 일까지. 콘텐츠에는 특별히 관여하지 않습니다. 저보다 잘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요.”

    -2013년엔 CJ, 쇼박스, 롯데 대기업 3강 체제를 깨고, 중소기업인 NEW가 영화 투자 배급 분야에서 1위를 해서 영화계에 파란을 일으켰어요. ‘변호인' ‘7번 방의 선물' 등 천만 영화가 두 편이나 나왔지만, 이후 2년 동안은 ‘대호' 등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영화들로 위기 상황을 겪었던 거로 압니다.

    “2년간 타격이 있었지요. 하지만 필요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그 동안 새로운 시도를 준비할 수 있었어요. 업계에서는 제가 새로운 걸 한다고 하면 많이들 말립니다. 영화만 해라, 하던 것만 하기도 버겁다. 그런데 제가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건 생존의 문제예요.

    미디어 사업은 개인이 하기가 쉽지 않아요. 비용이 들더라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은 해나가야 하죠. 새로운 확장이 생존과 직결돼 있어요. 힘든 2년 동안 언젠가는 뮤지컬을 해야지, 언젠가는 드라마를 해야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체력을 만들어 가요. 체력은 곧 사람과 자원을 확보하는 일이고요. 그렇게 준비하다 보면 기회가 왔을 때 주저 없이 스타트 할 수가 있어요.”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아침 7시 정도에 출근해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요. 가장 중요한 시간이에요(웃음). 간단히 기도하고 차 마시고 생각을 정리하고, 아침 9시 반부터 본격적인 일과를 시작해요. 그 뒤부터는 계속 결정하는 일이에요.”

    -조직이 급격하게 커지고 있는데, 내부 소통은 잘 되는 편인가요?

    “외부적으로 돈을 많이 벌고 조직이 주목받고 그런 건 덜 중요해요. 진짜 중요한 건 회사 내부의 분위기예요.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 ‘태양의 후예'가 하나의 샘플로 확신을 줬다고 봐요. 조직이 잘 가고 있다는 자신감 같은 건 돈으로 살 수가 없거든요. 한편으로는 드라마가 잘 되니까 영화팀이 주눅이 들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자극을 받아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직원들에게 보고서 만드는 것도 못하게 한다는 김우택. 작은 조직일수록 비효율을 줄여야 한다는 의식이 확고하다./사진=김지호 기자
     직원들에게 보고서 만드는 것도 못하게 한다는 김우택. 작은 조직일수록 비효율을 줄여야 한다는 의식이 확고하다./사진=김지호 기자
    -2014년에 중국 화처미디어에서 513억 원을 투자 받아 이어 주식 시장에 상장했고 2015년엔 합자 법인 화책 미디어를 설립했는데, 올해 중국 시장을 염두에 둔 치밀한 사전 계획이었습니까?

    “그것도 계획적이었다기보다 그냥 우연히 기회가 왔어요. 그쪽 회장님이 방문하겠다고 해서 인사를 했는데, 우리 회사를 좋게 본 모양이에요. 작지만 경쟁력이 있다고 같이 해보자고, 투자 계약도 한 달 안에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어요. 미디어 업이 자본 집약적인 비즈니스라 큰 회사도 경기를 잘 못 만나면 휘청거려요. 그런 상황에 튼튼한 자본을 갖춘 파트너로 갖게 된 건 행운이죠.

    저는 무언가를 정교하게 의도하고 계획하진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준비했고, 사람과 돈이 준비되니까 도전적으로 펼칠 수 있었던 셈이에요.”

    -3~5년 향후 사업 계획을 따로 세우진 않았다는 건가요?

    “창사 이래 사업 계획을 세워본 적이 없어요. 물론 큰 틀은 있죠. 멋진 미디어 그룹이 돼야겠다는(웃음). 그런데 미디어 사업 하면서 한 번도 제 사업 계획과 맞은 적이 없어요. 많은 기회가 흘러갈 때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뿐이에요. 큰 그룹이 되면 언젠가는 사업 계획을 세울 날이 올까요(웃음).

    아무튼, 현재는 저는 직원들에게 보고서 만드는 것도 못하게 해요. 작은 조직은 효율적으로 일해야 하고, 상대적으로 비효율을 줄여야 하는데, 사업계획이나 보고서 만드는 것만큼 낭비가 없어요(웃음). 말로 몇 마디만 설명해도 다 알잖아요.”

    -한류와 함께 미디어 업이 날로 발전하고 있어요. 콘텐츠 비즈니스는 많은 청년이 원하는 일이기도 하죠. 주목하는 인재상이 있습니까?

    “똑똑한 사람 안 좋아해요(웃음). 똑똑한 사람은 오래 있지 않아요(함께 앉아 있던 홍보팀 직원들이 난처해 한다. “그럼 저희는 똑똑하지 않아서 여기 있다는 얘기?”). 저는 스펙도 안 봐요. 스펙이 좋으면 대기업에 가겠죠(홍보팀 직원들이 또 첨언하길 “우리 회사는 사장님 스펙이 가장 좋죠.”). 저는 꿈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꿈을 이루는 과정을 저와 함께하고, 배워서 나갔으면 좋겠어요.

    저희 직원들 맨파워가 좋다고 하는데, 좋아서 하는 사람의 맨파워를 당할 수는 없어요.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이 모이면 그 시너지가 엄청나죠. 저희는 음악팀도 5~6명 스포츠팀도 2명, 드라마팀 인원은 아예 없어요(웃음). 뮤직 앤 뉴(Music & New), 쇼 앤 뉴(Show & New)… 사업 분야는 많지만 적은 인원으로 프로젝트 그룹으로 가요.”

    -얼마 전 신도림 테크노마트 판매동 4개 층을 300억 원에 인수했는데, 멀티 플렉스 극장 사업을 염두에 둔 시작인가요?

    “물론입니다. 다들 CJ와 롯데, 메가박스가 90%를 장악한 환경에서 극장 사업 하는 게 맞냐고 하지만, 저는 계획이 있어요. 가진 게 없으면서 재벌인 척하고 싶진 않아요. CJ는 CJ답게, NEW는 NEW답게 그렇게 가는 게 맞다고 봐요.”

    부드러운 곰의 표정에 대호의 기운을 지닌 김우택./사진=김지호 기자
     부드러운 곰의 표정에 대호의 기운을 지닌 김우택./사진=김지호 기자
    -경쟁력이 대체 뭔가요?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모르면 잘 물어본다는 거예요. 새로운 분야에 들어가면 일단 초보자의 포지션에서 자연적인 질문들이 생기고, 그걸 물어보면서 기존 답습되던 관행이 깨지게 돼요.

    드라마도 그랬죠. 저희는 영화를 하던 회사라 사전 제작이 익숙해요. 영화는 다 만들어 놓고 개봉하잖아요.
    그리고 드라마 구조를 연구해 보니 돈을 못 벌게 돼 있어요. 제가 보기엔 그건 말이 안 돼요. 그래서 설사 흥행이 안 돼도 손해는 안 보는 상태로, PPL 수익이라든가 중국에 선판매 형식으로 구조를 짰죠.

    현재 왜곡된 산업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앞으로 갈 수가 없어요. 중국 판권 문제며, 다 사전에 노하우가 있어서 가능했지만 말입니다. 어쨌든 드라마 산업을 창작자의 입장에서 공격적으로 판을 짠 것에 대해서는 보람을 느껴요.”

    -세기의 조합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쾌’가 잘 맞아들어갔다고 보입니다.

    “그렇죠. 방송국과 영화제작사, 김은숙 작가와 김원석 작가, 한국과 중국, 송중기와 송혜교… 운이 정말 좋았어요. 송중기가 군대에서 대본을 보고 결정해준 것도 정말 고마워요. 기획과 대본을 처음 제안한 영화제작자 서우식 대표가 그래요. 모든 사람이 행복해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하다니 큰 행운이라고요.”

    -아내(한완상 전 통일 부총리의 딸)가 큰 결정을 할 때 많은 도움을 준다고 들었습니다.

    “네. 상의를 많이 하죠. 아내가 세계 YWCA 부회장인데, 저랑 꿈과 가치관이 비슷해요. 다만 저보다 배포가 세고 더 정의로워요. 저는 가끔 타협도 하는데, 아내는 그런 거 없어요(웃음). 예전에 중국 회사에서 큰돈을 제시하며 회사를 산다고 해서 잠시 고민한 적이 있는데, 아내가 “당신 꿈을 생각하라"고 호통을 쳤어요(웃음). 꽤 큰돈이었는데(웃음).

    -리더로서 가진 가장 능력 중 어떤 부분이 커지고 있죠?

    “공감하는 능력이 확실히 커졌어요. 맞고 틀리고 보다 일단 편견 없이 차분하게 들으려고 해요. “그럴 수도 있겠다"가 제 주제어예요. 공감 능력이 생기니까 그렇게 눈물이 많아져요(웃음). 집사람 말로는 여성 호르몬 분비가 활성화되는 것 같다고 하는데, 좋은 변화라고 봐요. 다만 그다음 판단은 냉정하게 하죠.”

    ”30대는 성공을 위해, 40대는 명예를 위해, 50대는 비로소 꿈을 위해 일합니다.”/사진=김지호 기자
     ”30대는 성공을 위해, 40대는 명예를 위해, 50대는 비로소 꿈을 위해 일합니다.”/사진=김지호 기자
    -슬럼프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슬럼프는 우리 회사의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2013년에 너무 잘 됐을 때, 저는 곧 슬럼프가 올 거라는 걸 알았어요. 영화에서 많이 배웠으니, 그 코스트를 지불해야 할 때가 됐다고요. 옛날 같으면 안절부절못했겠지만, 짧게 극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죠. 그래서 그동안 다른 일을 준비할 수 있었고요.”

    -30대, 40, 50대를 거치면서 점점 진화해 간다고 느낍니까?

    “30대는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성공하기 위해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40대는 그 성공이 좀 더 명예로워지기 위해서 일했고요. 50대는 꿈을 위해 일하고 있어요.”

    -항상 청년처럼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일합니까?

    “네. 언제나 이 모습 이대로가 저예요. 전 미디어에 의해 해석된 저 자신이 달갑지 않아요(웃음).”

    -존경하는 기업인이 있습니까?

    “일 잘하고 똑똑한 CEO들을 만나면 멋있긴 해도 부럽진 않아요. 새로운 기법으로 돈 버는 사람을 봐도 신선하긴 해도 존경스럽진 않죠. 저는 기업인이든 말단 직원이든 꿈이 있는 사람과 얘기할 때 엔도르핀이 솟구칩니다.”

    -마지막으로 NEW의 정식 사명이 넥스트월드엔터테인먼트인데, 다음 드라마는 계획하고 있습니까?

    “없어요(웃음). 넥스트는 생각한 게 없어요. 공격적으로 할 때가 오겠지만, 우리 회사 체력에 맞게 또 기회가 올 거라고 봐요. 뮤지컬 할 때도 ‘디셈버' 다음에 3년 만에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을 했어요(웃음). 항상 다음이 뭔지는 모르는데, 뭘 던져도 할 수는 있는 상태가 바로 저희예요(웃음).”

    http://home.ebs.co.kr/humanandclassic/replay/3/view?courseId=BP0PHPK0000000050&stepId=01BP0PHPK0000000050&prodId=10316&pageNo=120&lectId=3101269&lectNm=&bsktPchsYn=&prodDetlId=&oderProdClsCd=&prodFig=&vod=A&oderProdDetlClsCd=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162876




    꿈과 비전에 관한 100대 명언_142618.pdf


    리더십에 관한 100대 명언_144747.pdf


    열정과 노력에 관한 100대 명언_14520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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