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센트 완전 해부 2편] 펭귄 아빠, 마화텅의 창업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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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중국의 인터넷 산업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인터넷 관련업체들이 하루에도 수백여 곳씩 생겨났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걸음마 단계였던 인터넷 사업은 미래가 불확실 하여 무턱대고 달려들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마화텅은 불확실한 상황과 예측이 불가능한 미래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자”라는 신념대로, 자신이 열정을 쏟고 흥미 있게 할 수 있는 인터넷 사업을 선택하고 운명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천리 길의 첫 첫걸음

90년대 말 중국에서 통신사업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고 경쟁 역시 무척이나 치열했다. 마화텅이 대학을 졸업한 뒤 처음으로 입사한 선전룬쉰(深圳润迅)은 통신사업에 모든 역량을 투자하여 경쟁력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선전룬쉰은 후이뚜어왕(慧多网)과 선전룬쉰 사이를 오가며 두집살이를 하고 있던 마화텅의 행동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개발팀 팀장이었던 마화텅에게 모든 열정과 시간을 회사에 쏟기를 바랬지만 마화텅과 선전룬쉰은 추구하는 바가 달랐다.

 

1998년 10월, 마화텅은 선전룬쉰에서 떠나 자신이 좋아하는 인터넷과 관련된 창업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마화텅은 인터넷 소프트웨어가 무한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알 수 없어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마화텅의 고민을 한번에 해결해준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마화텅의 술친구이자 현 넷이즈(网易, Netease)의 CEO인 딩레이(丁磊)가 그 주인공이다. 마화텅은 딩레이와 함께 술잔을 기울이면서 딩레이가 넷이즈를 창업하고 1998년 2월 전자메일 시스템인 163.net을 119만 위안(한화 약 2억1,500만 원)에 매각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돈이 되니 일단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하며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

 

마화텅에게 동기부여를 가능케 한 딩레이(丁磊)

 

마화텅은 선전룬쉰에 사직서를 낸 후 1998년 11월 선전대학 동창인 장즈동(张志东)과 함께 텐센트 컴퓨터 시스템 유한공사를 창립하였다. 하지만 창업 초기 텐센트는 계속되는 자금압박에 모아놓은 월급이 점차 바닥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마화텅은 고집스럽게 고상한 척을 하지는 않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마화텅은 소프트웨어 개발과 동시에 선전룬쉰에서 쌓았던 경험과 기술을 활용해 10명도 채 되지 않는 직원들과 함께 선전 텔레콤과 선전 유니온을 오가며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익은 커녕 회사를 운영하기도 벅찼다. 텐센트의 숑밍화(熊明华) CTO는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회상하며 “사무실 임대료, 월급, 각종 공과금을 생각하면 월말이 무서웠다”라고 밝히며 창업 초기의 어려움을 설명하였다.

 

그 후 텐센트는 살아남기 위해 홈페이지 제작, 시스템 통합, 프로그램 제작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였다. 선전 텔레콤의 소싱을 받아 일을 하는 입장에서 이것저것 할 것은 많았지만, 그들이 주력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텐센트는 당시 개발한 자사의 상품을 가지고 여기저기 판촉을 나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기 일쑤였고, 텐센트의 기술을 원하는 기업이 많지 않아 판로를 개척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마화텅은 인터뷰에서 “당시 사람들은 우리를 보지도 않고 거부한 적이 많았다. 그때마다 깊은 좌절감이 들었다.”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텐센트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 좌절하지 않고 서로 격려하며 창업 초기의 어려운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고, 1999년 2월 텐센트는 현재 10억명이 사용하는 인스턴트 메신저(이하 IM) QQ의 전신인 QICQ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텐센트가 개발한 OICQ는 사실 미국의 IM 소프트웨어인 ICQ를 많은 부분이 흡사한 카피 캣 소프트웨어이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했던 창업 초기 텐센트에게 모방이라는 방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텐센트는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기존 소프트웨어의 단점을 보안하고 중국 사정에 맞게 변화시켜 이용자가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로 ICQ를 중국인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 내놓았다. ICQ는 기존에 사용하던 컴퓨터가 아닌 다른 컴퓨터에서 ICQ를 사용하게 되면 저장되어 있는 친구정보가 모두 사라지게 되며 또한 ICQ는 오프라인 상태의 친구에게는 메시지를 남길 수 없는 선천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

 

 텐센트는 이러한 단점을 보안하기 위해 기존 컴퓨터 저장 방법이 아닌 서버에 고객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하여 다른 컴퓨터에서도 편리하게 메신저를 사용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메시지를 서버에 저장하여 오프라인 상태인 친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을 남길 수 있으며, 아이디 만으로 친구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중국어로 서비스하는 메신저가 생겨났다는데 가장 큰 의미가 있었다.

초기 OICQ

OICQ를 알려라

텐센트는 중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 순수 중국 기술로 제작한 IM 소프트웨어이며, 외국 IM 소프트웨어 보다 중국시장에 더욱 적합하다고 판단, OICQ에 대해 강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OICQ 발표한 후 이용자 수가 생각만큼 빠르게 늘어나지 않자, 텐센트는 잠재되어 있는 이용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OICQ를 알려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텐센트에게 녹록하지만은 않았다.

 

1990년대 후반 닷컴 열풍이 중국에까지 전해지면서 일부 해외 투자자들은 중국 인터넷 기업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 중 투자를 유치한 바이두(百度), 시나닷컴(新浪) 등과 같은 중국형 포털 사이트는 투자금액 가운데 일부를 오프라인 광고에 투입하며 이용자 늘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당시 중국의 340개 방송사와 360개 신문사의 광고영역에 이들 기업의 광고가 없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1999년과 2000년, 2년간 2개 인터넷 기업이 신문, 방송사에 퍼부은 돈만 하더라도 1억5,000만 위안(한화 약 270억 원)에 이르렀다. 심지어 옥외광고는 물론 버스 정류장에 있는 광고판도 이 기업들의 광고로 도배되어 있었고,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휴지에 까지 이들의 광고로 도배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당시 중국에서는 광고를 ‘烧钱(큰 돈을 쓰다)’라 불렸고, 광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급증하고 있었다.

 

회사 경영권을 위해 해외 투자자는 생각하지 않고 있던 텐센트는 자금 사정의 압박으로 OICQ를 알릴 다른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텐센트는 회의에 회의를 거듭하였지만 적절한 마케팅 루트를 찾지 못하였고 이용자 증가 속도는 여전히 답보상태였다. 1999년 5월, 텐센트의 한 직원이 대학BBS에 광고를 하자는 의견을 냈다. 텐센트 일부에서는 신문, TV광고와 비교해 노출이 너무 떨어진다며 반대했지만 마화텅은 오히려 이를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에 따라 텐센트는 대학 BBS에 OICQ를 적극적으로 홍보하였고, 이러한 전략은 당시 인터넷 사용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대학생에게 더욱 밀접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텐센트는 BBS광고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자금의 한계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인지도와 이용자 수를 늘려갔고 1999년 11월에는 OICQ 사용자가 100만을 넘기며 일약 껑충 뛰어오를 수 있었다.

 

텐센트와 펭귄의 운명적 만남

텐센트의 또 다른 고민 중의 하나는 자사의 아이텐티티를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였다. 90년대 말, 인터넷 이용자 수가 빠른 속도로 증가하였지만, 이들 중 대부분은 PC방에서 인터넷을 사용하는 인구였다. 메인 화면 속 수많은 아이콘 중에서 사용자의 이목을 끌지 못하면 도태되는 PC방의 사용자 특성 때문에 마화텅은 OICQ를 캐릭터를 사용해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백방으로 찾았다.

1999년 2월, OICQ를 개발한 후 마화텅은 텐센트의 케릭터를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였던 koke와 동물에서부터 식물까지 수많은 캐릭터 후보군을 만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아이콘으로는 사용하기에 무리가 있었고, 결국 마지막에 남은 동물이 바로 펭귄이었다. OICQ99a 버전과 OICQ99b 버전에 팽귄이 사용되었지만 당시 펭귄의 모습은 지금과 달리 삐쩍 말라있어 보기 흉했다. 이에 마화텅은 흔히들 삐삐라 부르는 무선호출기와 펭귄 사이에서 어떠한 캐릭터를 선택할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결정은 사용자들에게 맡겼고, 사용자들이 퉁퉁해 정감이 가는 펭귄을 선호하자 마화텅 역시 펭귄을 텐센트의 최종 마스코트로 낙점하기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OICQ2000버전에 현재의 텐센트 마스코트인 펭귄이 정식으로 등장하였다.

텐센트 마스코트 – 펭귄

텐센트는 자사를 홍보하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펭귄을 상품화 하기로 결심하였다. 2000년 12월 텐센트는 ‘헬로키티’를 생산한 경험이 있는 ‘광저우동리싱(广州东利行)’과 손을 잡고 중국 전역에 펭귄을 홍보하기 시작하였다. 초기 텐센트는 펭귄을 알리기 위해 주요고객이 모여있는 PC방과 문구점을 주 타겟으로 홍보하였고 많은 사람이 흥미를 보이자 2001년 10월 QQ 전문 매장인 Q-GEN을 오픈 하였다. Q-GEN에서 판매되는 제품은 의류, 학용품, 장난감, 회원카드, 컴퓨터 액세서리, 포스터 크게 6개 제품군으로, 총 300가지 종류의 상품이 Q-GEN을 통해 판매되었다. 광저우에 Q-GEN 1호점 오픈 한 후 3개월 만에 49개 도시에 60개 지점을 오픈하는 쾌거를 이루었고 매장이 300개까지 늘어났다. 자사를 홍보하기 위해 시작한 캐릭터 상품화는 의외의 성공을 거두며 수익과 홍보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누가 처음부터 쉽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을까? 텐센트의 첫걸음 역시 일반적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소프트웨어가 무기였던 그들이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이것저것 손을 대야만 했었고,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갈 때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하며 오히려 목표로 가는 첩경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장과정에 겪은 텐센트의 여러 경험들은 현재의 텐센트를 존재하게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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