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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ㅁㅗㅁ짱

엄지발가락을‥두고 왔습니다

입력 2015-10-16 09:48:54 | 수정 2015-10-16 11:49:59
뉴스래빗의 새로운 인터뷰 [ㅁㅗㅁ짱] 3회

"왜 아픈 다리로 산에 오르나요?" 
"좋아서, 산이 거기 있으니 간다"
# <편집자 주> 그와 알고 지낸 지 7년이 넘었네요.

새카만 얼굴로 귀국할 때마다 그의 히말라야 원정기를 들었습니다. 취업에 줄줄이 고배를 마시던 때였죠. 

그는 제게 '인생의 산'을 오르는 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실패야말로 인생의 자산이다."

세월이 흘러 기자가 된 제가 이제 그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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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의 ㅁㅗㅁ짱] 3회 주인공은 산악인 엄홍길(55) 대장의 '잃어버린 발가락'입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장충동에서 엄홍길 대장을 만났습니다.

물었습니다.  

"왜 아픈 다리로 아직도 산에 오르시나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그는 답했습니다.

"그냥 좋아서 간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간다."

그는 두려웠지만 오르고 또 올랐습니다.
여전히 두렵지만 오르고 또 올라야 합니다.

1993년 안나푸르나 등정 중 사고를 당했습니다.

동상에 걸린 두 발.  
골절된 발목.
 

실패는 곧 죽음을 뜻합니다.  

그는 죽음에 문턱에서 기도했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세요." 

움직이지 않는 두 발로 3일을 기어 산에서 내려왔습니다.

모두 38번의 도전 그리고 18번의 실패.

안나푸르나는 도전 다섯 번 만에 
칸첸중가는 세 번 만에야 올랐습니다.

꼭 기억하세요. 성공은 정상 정복이 아닙니다.
정상에 올랐다고 오만하면 실패하기 쉽습니다.


겸손함은 최대 무기이자 힘이라는 걸 산에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새로운 꿈을 찾아 나섭니다.

그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를 정복한 산악인 엄홍길(55·사진)입니다.

마지막으로 엄 대장이 '뉴스래빗' 독자분들께 희망 메세지를 전합니다.
그가 묻습니다. 무엇이 두렵냐고요. 내일도 뉴스래빗 !.!

[영상] "여러분, 무엇이 두렵습니까?"


# [김현진의 ㅁㅗㅁ짱]이란?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은 상처 투성이에 울퉁불퉁 못생겼습니다. 사람들은 이 발을 '아름답다' 말합니다. 예술적 경지에 오르려 인고의 시간을 버틴 몸의 흉터이자 훈장입니다. 발레리나로 태어난 몸은 없습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발레리나의 몸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김현진의 ㅁㅗㅁ짱]은 그 세월이자 훈장 같은 '아름다운 몸'를 찾아갑니다.

'뉴스래빗'은 한경닷컴 뉴스랩(Newslab)이 만드는 새로운 뉴스입니다. 토끼(래빗)처럼 독자를 향해 귀 쫑긋 세우겠습니다. '뉴스래빗'의 실험은 계속됩니다.

@ 뉴스래빗이 만드는 다른 실험적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책임=김민성 기자, 연구=김현진 장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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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리의 뒷담화] 직원들 앞에서 女대리와 티격태격 C부장님, 그래서 권위가 서겠습니까

  • 회사원 K(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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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 2015.10.08 03:06

    K대리는 유능한 여성 인재다.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맡은 일은 밤을 새워서라도 완수해내고, 어지간한 남자 직원보다도 책임감이 강해 동료들 사이에 신망도 두텁다. 다만 터프한 성격 탓에 상사에게 곰살맞게 굴지 못하고, 똑 부러지는 말투로 입바른 소리를 마다하지 않으니 상사들에겐 편하지만은 않은 부하 직원이다.

    C부장은 회사에서 '정치'의 상징인 사람이다. 업무적으로 이렇다 할 성과가 있는 건 아니지만, 좋은 학벌과 사내 인맥이 그를 지금의 부장 자리에까지 오르게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부장이지만 회사의 고위직에게는 신입사원처럼 재롱(?)을 부리기도 하는데, 그는 이것이 회사의 상하 관계에서 당연한 문화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자신이 상사에게 하는 만큼 부하 직원들도 자신에게 절대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김대리의 뒷담화] 직원들 앞에서 女대리와 티격태격 C부장님, 그래서 권위가 서겠습니까
    그런 C부장에게 K대리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소위 '짬밥'도 되지 않는 조카뻘의 직원이 회의를 할 때마다 자신의 말에 토를 달거나, '감히' 부장의 의견에 반대를 늘어놓으니 언젠가 한번 자신의 권위를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다. 언젠가부터 그는 사무실에서 K대리를 직급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권위를 드러내는 C부장만의 방법이었다. 추석 연휴 전날, 사소한 의견 충돌이 있자 C부장은 사무실에서 "야, 너 회의실로 들어와!"라고 K대리에게 고함을 질렀다. C부장의 반말을 오랫동안 참아 왔던 K대리도 직원들이 다 보는 곳에서 모욕을 당하고 나니 결국 폭발했다. 회의실에서는 부장과 대리의 대화가 아닌, 인간과 인간의 고성방가가 이어졌다. K대리는 모든 화력을 집중시켜 오랫동안 참아온 울분을 폭발시켰고, 회의실에서 들려오는 고함 소리가 커질수록 망신을 당하는 것은 '대리와 말싸움을 벌이고 있는' C부장이었다.

    꼬여버린 상황에 당황한 C부장의 문자와 전화가 계속 걸려오자, 추석 연휴 내내 K대리는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K대리는 동기인 나에게 사직 결심을 털어놓았다. 연휴 기간 내내 그녀는 커피숍 창업 고민을 했다고 한다. 이제 바보 같은 권위를 참고 사는 데에 한계가 왔다고 한다. C부장의 낡은 권위의식은 C부장의 권위도 앗아갔고, 유능한 사원도 잃어버리게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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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리콘밸리의 체험--혁신, 파괴, 창조의 인스피레이션
    페이스북 구글, 애플 삼성의 미래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
     
    운영자   기사입력  2015/06/14 [20:33]

    [여원뉴스=북리뷰]

    손재권의 파괴자들

     

          

                  실리콘밸리의 체험--혁신, 파괴, 창조의 인스피레이션 

                       페이스북 구글, 애플 삼성의 미래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

     

                        창의와 모험심 가득한 젊은 독자들을 흔드는 모티베이션

    만약 이 책 파괴자들을 읽고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는 듯한 기분을 느끼는 독자라면 창조를 위한 파괴의 첫 단계에 들어섰다고 감히 말 할 수 있다. 만약 이 책을 읽고도 겨드랑이에 수믈수믈 날개가 돋는 기분을 느끼지 못했다면, 다시 한 번 읽기를 권한다. 

     

    ▲ IT 분야, 또는 벤처 분야의 젊은 start up,들에게 인스페레이션의 폭풍을 선물할 손재권의 파괴자들 표지     © 운영자



    필자는 이 책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참으로 오랫만에 밑줄 긋고 싶은 책을 만난 것이다. 김난도의 트렌드 2015등 매년 1권씩 나오는 트렌드 관련 저서가, 우리들 속에 이미 들어와 있으나 미쳐 느끼지 못한 트렌드를 발견케 해주는 가이드북 같은 것이라면, 손재권의 파괴자들들은 그런 트렌드를 만들거나 엮거나, 다시 말해 그런 트렌드를 창조해 갈 수 있는 인스피레이션을 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대의 변화를, 그 감(感)을 확실하게 잡아서 경영에 적용하고 싶은 CEO 뿐 아니라, 새로운 START UP을 준비하는, 창의와 모험심 가득찬 젊은 IT 종사자나 벤처맨들이, 자기 자신이 선 현재의 위치를 재확인하고, 바로 액션 플랜을 짤 수 있는 모티베이션으로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이 책 파괴자들은 목차를 흘낏 살펴 보고,  프롤로그  은은한 혁명을 맞이 하라 의 1장  왜, 어떻게 세상은 바뀌었나에서부터 독자를 긴장시키는 순서로 진입한다. 모든 것은 재정의 된다에서 시작하여 모바일은 왜 현재이자 미래인가를 경유하면서 부터 책의 내용은 템포가 빨라지는 기분이다. 

    ▲ 저자 손재권은 혁신을 주제로 하는 강사로서 많은 CEO교실의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월 생산성본부 최고위과정에서 강의하는 손재권     © 운영자

     

              창조를 위한 파괴를 선동하는 저자의, 탄탄한 인문학적 바탕

    본문을 인용하면서 이 책을 음미하는 것도 독자게에는 친절한 리뷰가 될 것 같다. 

    "얼마전 미국을 대표하는 전통의 워싱턴 타임즈가 아마존 창업주 제프 베조스 개인에게 매각되는 일이 일어났다. 세계 최대 규모의 서점 반스앤노블도 연이어 적자를 내며 파산위기에 몰리는 등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수십 년동안 전세계 필름의 대명사로 군림해왔던 코닥은 더 이상 회사 이름이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파산에 이른다는 의미의 동사가 되고 있다. 기업도, 조직도, 개인도 ‘코닥’되는 시기다. 반면 전기차 업체 ‘테슬라’는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뿌리에서부터 뒤흔들고 있으며 ‘넷플릭스’는 모바일 스트리밍 시대를 열면서 방송 및 미디어 산업 변화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불과 4, 5년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일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내일은 또 어떤 기업이 사라질지, 혹은 어떤 기업이 생각지도 못한 제품과 기술을 선보이며 시장의 판도를 뒤바꿀지 알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내일이 오늘, 오늘이 곧 미래인 세상인 셈이다. "

     

    문장 자체가 어지간히 독자를 선동하고 긴장시킨다는 것도, 이 인용문에서부터 체감된다. "수십 년동안 전세계 필름의 대명사로 군림해왔던 코닥은 더 이상 회사 이름이 아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파산에 이른다는 의미의 동사가 되고 있다. 기업도, 조직도, 개인도 ‘코닥’되는 시기다. "

     

    이처럼 저자 손재권은 코닥이라는 사명(社命)에도 만만치 않은 의미를 부여한다. 코닥은 이미 명사가 아니고 동사라는 데서, 코닥의 흥망을 아는 독자는 긴장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코닥되는 시기다, 라며 코닥을 명사와 동사로 동시에 사용하고 있다. 필자의 언어 감각과 문장력이 돋보이기 시작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많은 IT 관련 서적, 벤처 관련 서적들이 기술적인 것에 치중돼 있고, 저자의 언어감각도 IT적인 쪽에만 딱딱하게 발휘되는 데 비해, 손재권은 단단한 인문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우선 그의 전공이 IT나 과학이 아니라 문과대학에서 한문학을 전공한 데서 그의 인문학적 소양이 짐작된다. 그러니까 그가 과학, IT 등을 얘기하고 창조를 위한 파괴자가 되기를 선동(?)하는 데서도 인문학의 바탕이 들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론이 아니라 손에 잡힐 듯 실감 있는 언어와 실증으로

    지금껏 서적을 비롯한 수많은 미디어에서 이러한 변화를 분석하고 가까운 미래를 조망하는 작업을 지속해왔다. 그러나 한 다리 건너서 취합한 정보가 아니라 변화와 혁신, 창조와 파괴의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저자만의 인사이트를 통해 이를 재해석한 경우는 손으로 꼽기 어렵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투여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매일경제신문의 현직 기자로 미국 스탠퍼드 아태연구소의 방문연구원으로 1년간 몸담으며 실리콘밸리의 혁신과 파괴의 현장을 목도하였다. 십수 년간 산업의 최전선에서 온갖 기업의 흥망을 목격한 저자였지만, 현장에서 직접 경험한 그것은 충격 그 자체였다. 애플과 구글, 페이스북과 삼성전자 등이 생존과 진화를 위해 시도하고 있는 혁신과 파괴의 실체는 상상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책은 왜 그 현장에서 혁신적인 스타트업이 끊임없이 태동되고 변화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가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제시한다. 미래를 향한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손재권은 이론이 아니라, 손에 잡힐듯이 실감 있는 언어와 실증(實證)으로 독자를 이끌어 간다. 

     

    ▲ 21세기의 파괴-장조를 이끌고 있는 빌게이츠와 스티브잡스..두 사람은 서로 마주 앉으면 험담도 잘하고 팽팽한 경쟁자로서...     © 운영자



              손재권이 권하는 문샷 싱킹은 급진적, 개혁적, 과부하 등을 요구하지만

    "달나라로 가기 위한 생각, ‘문샷 싱킹MoonShot Thinking’은 10%보다 10배 혁신(진화, 성장)하게 하는 급진적인 생각을 말한다. 이를 회사에 적용하면 제품을 지금보다 10% 정도 좋게 만들거나 10% 정도 매출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단기간에 10배를 비약적으로 진화시키거나 매출을 늘리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결코 쉽지 않은 도전 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려가야 한다. 개인에 적용하면 반에서 10등 하던 학생이 한 단계 올려 9등을 목표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1등을 목표로 달려가는 생각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듯이 손재권은 창조를 위해서는 점진적이 아니라,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정신을 요구하는 21세기를 하나하나씩 끄내어 독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구글은 혁신을 창조하지 않으면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고 저자는 말하지만, 사실은 저자 자신의 생각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저자가 가장 강력하게 권하고 있는 것은 가치창조자가 되라는 메세지일 수도 있다. 또한 10배 혁신하는 급진적인 생각으로서의 문샷 싱킹이 어쩌면 저자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한 마디로 축약한 것일 수도 있다.  


    원본 기사 보기:yeowonnews.com

    고독의 즐거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보관소/문화사 &시사 2014/01/01 00:36


    고독을 사랑한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

    1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그에게서 건네진 '고독을 즐기는 법'


    소로가 건네는 찬란하며 풍성한 삶의 방식
    "사과나무나 호두나무처럼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아직 봄인데 서둘러 여름으로 가려 하지 말자."

    160여 년 전, 삶의 참된 진리와 마주하고자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간 이가 있다. 생태문학의 고전이라고 불리는 불후의 명작 <월든>을 낳으며, 간디와 마틴 루서 킹을 움직인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다. 


    1817년 미국 북동부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에서 태어난 소로는 현대에 이르러 19세기를 대표하는 자유로운 사상가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소로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후, 1845년 7월부터 월든 호숫가에서 2년 2개월간 자급자족의 생활을 한 바 있다. 


    사계절에 따른 자연의 변화, 동식물의 생태, 독서와 사색의 시간 등 그곳에서의 생활은 그야말로 소박함과 평화로움 그 자체였고, 방대한 사유를 이끌어내는 데 충분했다.


    그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월든 호숫가에서의 생활을 기록한 <월든>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국가 권력의 의미를 성찰한 <시민의 불복종>이 있다.


     이 책 <고독의 즐거움>은 이렇듯 많은 독자에게 깊은 감명과 울림을 선사한 소로의 대표 작품을 비롯해, 그간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에세이를 한데 모아 현대인의 시선과 온도에 맞추어 새롭게 엮었다. 세계를 변혁시킨 위대한 말과 사상은 숲에서 생활하는 '고독한 시간'을 통해 태어난 데에 주목한 것이다.


     이 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 소로의 말과 사상을 전한다. 각각의 장은 그가 몸소 실천한 고독을 즐기는 삶의 방식, 정직한 노동을 통한 자급자족의 생활, 풍요로운 사색과 절대적 자유의 추구, 소유하지 않는 것에서 맛보는 기쁨, 경이로운 자연을 통해 세계를 바라보는 인생의 원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사상가이자 작가이며, 환경운동가이자 시민운동가로서의 삶을 향유한 소로의 깊은 사색과 성찰은 혼탁한 시대의 서두르는 시간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간소하고 현명한 삶의 방식에 대해 깊은 깨달음과 안식을 건넨다. 


    진정한 지식은 오로지 자유롭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하며 소로는 묻는다. "우리가 자랑하는 자유란 노예가 되기 위한 자유인가, 아니면 자유로워지기 위한 자유인가."


     소로야말로 개인과 사회를 바꾸고자 노력한 진정한 혁신가며, 보다 나은 사회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 여기저기서 분투하고 있는 '소셜 앙트프레나'의 원조라 해야 하지 않을까.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155개의 문장은 몽롱한 하루를 살아가는 대신, 새로운 힘과 내면에서 솟구치는 커다란 욕망으로 더 고양된 생활을 꿈꾸며 깨어날 것을 권유한다.


     독자는 책장을 여는 것과 동시에 숲 속을 걸으며 상쾌하고 숭고한 고독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파릇파릇한 새싹이 약동하며, 혼돈으로부터 우주의 창조와도 같고, 모든 것을 용서하는 ‘인생의 봄’을 발견하게 될 단 한 권의 책이다.


    본문중에서 TOP

    01 하루에 한 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치스런 고독의 시간을 갖다.
    열차가 세상 모든 시끄러운 것을 실어 가버리고 
    호수의 물고기들도 이제 굉음에서 벗어날 때 나는 더욱 고독하다. 
    앞으로의 긴 오후 동안 나의 명상을 방해하는 것은 
    저 멀리 길을 지나가는 짐마차의 희미한 울림뿐이다
    (/ p.10)

    36 살아간다는 것, 생활한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인간에게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인생을 고양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만큼 고무적인 진리는 없다.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해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우리 주위를 가득 채우며 무언가를 바라볼 때 
    매개체가 되어 주는 공기 그 자체를 그리고 조각하는 것이 
    훨씬 더 위대하며 
    분명 인간은 그것을 할 수 있다. 
    하루의 본질을 고양하는 것, 그거야말로 최고의 예술이다.
    (/ p.82)

    83 생활의 끝자락에 잠이 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세상은 새롭게 시작된다.

     우리는 하루하루 새로운 세상을 만나거나 만들어간다. 그것이 인생이다.
    아침이란 
    하루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각성된 시간이다. 
    졸음은 완전히 사라진다. 
    낮에도 밤에도 몽롱하던 몸의 어떤 부분조차 
    적어도 이때의 한 시간 정도는 깨어 있다. 
    만일 내면의 수호령이 아니라 
    가정부가 어깨를 흔드는 손길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다면, 
    또는 공장의 사이렌 소리 대신에 
    천상의 음악이나 대기에 가득한 향기에 감싸여 
    새로운 힘과 내면에서 솟구치는 커다란 욕망으로
    더 고양된 생활을 꿈꾸며 깨어나는 게 아니라면,
    그것을 하루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할 때 
    거의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날인 것이다.
    (/ p.178)

    112 집을 갖지 않아도 된다. 많이 먹지 않아도 된다. 일하지 않아도 된다.

    왜 인간은 이렇게나 고뇌하는가. 
    먹지 않으면 일할 필요도 없다.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러워 사색도 할 수 없는 집에 
    살고 싶어 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귀찮은 집안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햇살 찬란한 날에 투박한 문손잡이를 번쩍번쩍 
    빛이 나게 닦고 욕조를 청소해야 한다니! 
    그럴 바에는 집 같은 거 없는 게 좋지 않은가. 
    그래, 나무 구멍에라도 살면 된다. 
    그러면 오직 딱따구리만이 문을 두드릴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태어난 후로 줄곧 생활에 푹 파묻혀 산다. 
    난 도저히 거기에 따를 수 없다. 
    샘에서 길어온 물 한 잔과 
    선반 위에 검은 빵 한 조각만 있으면 난 그만이다.
    (/ p.238)

    121 우주는 이 지구에도 많다. 나는 그런 우주의 한 구석에서 산다.

    세상에 드물게 즐거운 장소란 
    세상의 잡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우주 저편 신비로운 
    한 구석에 있다고 상상할 법하다.
    그러나 내가 사는 집이야말로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영원히 새롭고 더럽혀지지 않은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았다. 
    만일 플레이아데스 별자리나 히아데스, 알데바란, 견우성 
    가까이에 사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면 
    나는 그야말로 그런 장소에 있었다. 
    내가 버린 생활에서 저 별들의 거리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 
    가장 가까운 이웃의 눈조차 달이 뜨지 않은 어두운 밤에만 
    희미하게 빛나는 작은 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그런 우주의 한 구석에서 살았다.
    (/ p.258)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 



    생년월일 : 1817.07.12~1862.05.06출생지: 미국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매사추세츠 주의 콩코드에서 태어나 그곳을 영구 거주지로 정했다. 그는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아주 적은 돈으로도 독립성을 유지했다. 


    본질적으로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중요한 경력으로 만들었다. 불순응주의자였던 그는 항상 자신의 엄격한 원칙에 따라 살려고 노력했는데, 이것이 그의 글 다수의 주제였다. 


    소로우의 대작인 [월든, 혹은 숲속의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1854)은 소로우가 에머슨이 소유하고 있던 월든 호숫가 땅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1845년부터 1847년까지 그곳에서 보낸 2년 2개월 2일 동안의 생활을 그린 것이다. 



    여행 서적을 좋아하고 또 몇 권을 저술한 바 있는 소로우는[월든]을 통해 역설적으로 그때까지 미국 책들이 접근한 적이 없는 자기발견이라는 내적인 개척 분야를 파헤친 반反여행 서적을 우리에게 남기고 있다. 


    소로우의 금욕적인 생활처럼 매우 소박한 이 작품은 좋은 삶이라는 고전적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한 지침서나 다름없다.[월든]에서 소로우는 초월주의 이론을 직접 시험해볼 뿐만 아니라 19세기의 총체적인 미국 경험, 즉 변방 개척지에서의 생활을 재현하고 있다.

     

    [월든]은 열정적인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에게 영감을 주어[이니스프리의 호도(The Lake Isle of Innisfree)]라는 작품을 쓰도록 했다. 또한 소로는 사회문제에도 항상 참여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1846년 7월 멕시코전쟁에 반대하여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 죄로 투옥당했으나, 다음날 친척이 대납해주어 감옥에서 풀려난다. 


    이때의 경험을 기초로 쓴 수필[시민불복종(Civil Disobedience)]은 부당한 법에 대해 합법적인 개인이 불복종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필요하다는 수동적 저항 이론을 담고 있으며, 이는 20세기에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 및 마틴 루터 킹의 흑인 민권운동에 영감을 주었다. 


    소로우는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던 중 1861년 폐결핵 진단을 받고 11월 3일에 매일 기록하던 [저널]을 마지막으로 기록하고 1862년 콩코드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밖에 [콩코드 강과 메리맥 강에서의 일주일] [메인 주의 숲] [코드 곶](1865) 등의 저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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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경영의 신 “이윤만 좇다간 위기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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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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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세라그룹의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83·사진) 명예회장은 ‘일본 경영의 3대 신(神)’으로 불린다. 마쓰시타 전기를 설립한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와 혼다자동차를 만든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가 세상을 떠나 이나모리는 ‘살아 있는 경영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글로벌 혁신 기업인 미래 50년을 말하다
    이나모리 교세라 명예회장, 미국식 성과주의 한계 지적
    “주식회사는 주주 소유지만 인간중심 배려·나눔 경영을”

     이나모리 회장을 지난 18일 일본 서부 교토(京都)의 본사에서 만났다.

     먼저 그는 “10년, 30년 뒤 교세라를 비롯한 기업의 성패는 ‘이타적(利他的) 가치’에 기반한 ‘철학 경영’에 달려 있다”고 예견했다. ‘단기 성적’에 치중하는 미국식 경영으로는 머잖아 한계에 직면한다는 경고와 반성이었다. 그는 “미국을 중심으로 다양한 ‘경영 테크닉’을 가진 기업가들은 ‘이윤’의 관점에서 모든 일을 생각한다”고 꼬집었다. 이윤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이타의 생태계’를 만들라는 주문이다. 그의 성찰은 반복적인 ‘세계 경제위기’와 궤를 같이한다. 대표적인 게 2008년 미 월가에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앞서 1997년엔 ‘아시아 외환위기’가 휩쓸고 갔다. 핫머니·첨단금융공학의 확산 아래 위기가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상황이 고착되고 있다. 글로벌 비즈니스 생태계의 공존은 무시하고 절대 수익만을 좇는 극단적 자본 이기주의가 주범인 셈이다.

      또 그는 “경영은 노하우나 기술로 만들어 나가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타심·직원 행복 같은 가치를 담은 인간 중심의 ‘경영 원칙’이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 주식회사는 주주의 소유”라며 “하지만 진정한 경영 목적이란 사원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 언젠가 이런 의식이 약해지면 그때가 바로 우리의 위기가 시작되는 순간”이라고 했다.

     거장의 시계는 ‘100년 뒤’ 삶의 변화에까지 맞춰져 있었다. 그는 “장차 100억 명으로 불어날지 모를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부족한 자원·에너지를 나눠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도래할 것”이라며 ‘배려·나눔’ 등을 키워드로 하는 경영법에서 답을 찾았다.

    교토(일본)=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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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6일 일본 동부 요코하마(橫濱)시의 파시피코 요코하마 국립대홀. 이나모리 가즈오(稻盛和夫·83) 교세라그룹 명예회장이 행사장에 들어섰다. 그가 젊은 기업인에게 경영철학을 전파하기 위해 만든 ‘세이와주쿠(盛和塾)’ 모임의 세계 대회가 열린 날이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벤처 기업을 세운 뒤 재치와 능력이 있고 기지를 발휘하면 10년이나 20년은 회사를 발전시키고 존속시킬 수 있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원초적 경영철학이 몸에 배지 않으면 결코 번영을 지속할 수 없다”며 그의 ‘필로소피(philosophy·철학) 경영’을 설파했다.

     미국식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첨단 경영학 지식과 신기술만으로는 수십~수백 년 가는 ‘일류 장수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미래 사장학(社長學)’을 역설한 것이다. 이날 대회엔 미국·중국·브라질 등에서 4600명의 경영인이 모여 들었다.

     이틀 뒤인 18일 서부 간사이(關西) 지방의 교토(京都) 본사 19층에서 이나모리 회장을 따로 만났다. 그는 “요즘 가장 열성을 다하는 일이 바로 세이와주쿠 모임에서 중소기업 경영인들에게 경영 방침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를 짊어질 더 많은 ‘필로소피 경영인 군단’을 배출하겠다는 취지다. 그는 “단지 경영 공부뿐 아니라 회식 자리까지 마련해 4600명이 함께 치열하게 의견을 나눴다”고 했다.

     교세라 필로소피는 ▶개별 직원의 경영자화(化) ▶직원의 기(氣)를 북돋는 7개 열쇠 ▶노력·반성·감성 등 인생과 일에서 추구할 6개의 정진(精進) 대상 ▶목표의식·투혼을 포함한 경영 12개 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다양한 ‘경영 테크닉’을 지닌 경영자들이 ‘어떻게 하면 회사가 이윤을 얻을 것인가’라는 관점에서 모든 일을 생각해 나간다”며 “이런 배경 속에서 나는 어떤 마음을 가지고 기술을 이용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나모리 회장이 ‘필로소피 경영’에 천착한 결정적 계기는 반세기 전 깨달음 때문이었다. 기술 하나만 믿고 교토세라믹을 창업한 지 3년째인 1961년 봄. 당시 29세의 이나모리에게 고졸 사원 11명이 정기 승진, 보너스를 요구하며 단체협상을 제의했다. 당시 이나모리 사장은 “회사가 성장하면 열매를 나누자”고 달랬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사흘 밤낮을 대화한 끝에 “약속은 못하지만 최선을 다하겠다. 내가 속인다면 자네들 손에 죽겠다”고 말해 설득에 성공했다.

     이때 그는 기술력만으론 좋은 기업을 만들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직원과 함께 번영해야 회사도 존재한다”는 철학을 가슴에 새긴 것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기자에게 “이런 신조는 수십 년 뒤에도 통용되는 경영 원리”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물론 경영에는 전술·전략 같은 기술적 노하우도 필요하다”며 “하지만 근본적으로 인간으로서 올바른 것이 뭔지 철학적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도리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경영 기술’을 남용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젊은 경영인은 현재 9000명에 이른다. 모두 세이와주쿠 모임 회원이다. 정보기술(IT) 업계의 거물인 손정의(58) 소프트뱅크 회장도 그에게 한 수 배우려 했을 정도다. 손 회장은 83년 모임이 설립된 뒤 초기 멤버였다.

     이나모리 회장은 “필로소피 경영을 실천하려면 ‘혈육화(血肉化)’하라”는 주문도 했다. 그는 “지식으로 외우는 게 아니라 육체에 스며들게 만들어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미국식 ‘이윤 중심’ 경영을 비판하고 ‘필로소피 경영’의 시대가 온다고 예견한다고 해서 자본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이나모리 회장은 “사원을 행복하게 만들고, 사회에 공헌하려고 해도 실적과 이익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면 고매한 목표를 실현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교세라 필로소피’엔 구체적인 경영 지침도 많다. ‘경영은 매출을 키우고, 경비를 줄이는 것”이라는 지침을 포함한 ‘이나모리의 7대 회계학’ 원칙이 그렇다. 전표·입금 처리는 두 명 이상이 점검해 투명성을 높이고, 필요 없는 자산(군살)을 없애는 근육질 경영도 마찬가지다. 그가 제시한 원칙 중에 “벡터(vector·힘의 방향)를 맞추라”는 것도 있다. 벡터가 나뉘면 회사 전체의 힘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원이 같은 방향으로 결집하면 ‘1+1=10’을 만든다”고 했다. 경영진·종업원이 한 묶음으로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는 59년 창업 직후 TV·라디오 제품을 본 뒤 ‘전자시대(電子時代)’가 올 것으로 예견하고 교토세라믹을 창업해 큰 성공을 거뒀다. “앞을 내다볼 수 있는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이나모리 회장은 “미리 예측해 거둔 성과가 아니다. 엄청난 천재가 아니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고선 ‘자벌레’이론을 꺼냈다. 그는 “자벌레처럼 지금 일을 한 걸음 한 걸음씩 충실히 나아갈 때 비로소 자연스럽게 앞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인터뷰 말미에 미래든 현재든 결국엔 ‘사람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나는 가고시마 시골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이 부유하지도 않았다. 일류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다. 평범한 나는 사회에 나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여기까지 왔다.”

    교토(일본)=김준술 기자 jsool@joongang.co.kr

     

     

    조직 잘게 쪼개 쾌속 의사결정 … 직원이 주인 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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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나모리 명예회장이 직접 써준 교세라 사훈 경천애인(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은 한국 기업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그에게 “한국 기업들의 강점과 약점을 짚어달라”고 묻자 “많이 알지 못해 답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의 경우 ‘재벌 기업’이 국가를 이끌고 나간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고 했다. 교세라도 세라믹·태양광·전자제품 등 다양한 산업에 촉수를 뻗고 있다. 한국식 그룹 시스템이다.

    글로벌 혁신 기업인, 미래 50년을 말하다 <2> 이나모리 교세라 명예회장
    이나모리의 100년 기업 조언
    아메바처럼 소조직화해 권한 분배
    현장 직원까지 사업계획에 참여
    일본 600여 개 기업서 도입 실천

     하지만 ‘이나모리 경영법’엔 다른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아메바(Amoeba) 경영’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조직을 단세포 동물인 아메바처럼 작은 소집단으로 나눈다”며 “각 아메바 지도자가 중심이 돼 업무 계획을 세우고 조직원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목표를 달성한다”고 밝혔다. 그는 “현장 직원이 주인이 되는 ‘전원 참가 경영’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끊임없이 분화(分化)해 새로운 생명을 얻는 특성처럼 ‘아메바 체제’는 ‘미래형 조직’이다. 갈수록 권한이 분산되고 업무가 전문화되는 조류에 맞춰 쾌속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600여 개 기업이 도입해 실천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는 지난해 5월 이와 유사한 ‘셀(Cell) 조직’을 도입했다. 6개월 넘게 걸리던 신규 서비스 출시를 한 달 반으로 줄이는 효과를 봤다. 금융업을 하는 메리츠화재도 조직을 쪼개 채산성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7월엔 이나모리 회장이 빚더미 일본항공(JAL)의 구조조정을 맡아 회생시킨 과정을 담은 『1155일간의 투쟁』이란 책을 임직원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이나모리 회장의 ‘아메바 경영’과 직원 중심의 ‘필로소피 경영’은 미래 먹거리를 고민하는 다른 국내 기업에도 시사점이 크다. 포스코경영연구소 천성현 수석연구원은 “국내 기업은 조직 규모의 적정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 막연히 일이 많아지면 사람·부서를 늘린다”며 “독립 채산이 가능해지면 개별 직원이 자신의 수익성을 파악할 수 있어 관료주의 병폐를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인간 위주 경영법에 대해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직원 훈련·교육 등은 비용처럼 보이지만 결국 내부 구성원 성장을 이끌면서 미래에도 살아남는 기업을 만드는 비결이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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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기찬(가톨릭대 경영학 교수) 세계중소기업협의회 회장은 “직원을 도구화하면 실패한다는 깨달음이 최근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이라며 “사람(직원)을 통해 사람(소비자)을 만족시키려는 시도가 있어야 창의성이 담긴 제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근는 "특히 미국식 경영학은 수익이 회사 외부의 산업구조에 따라 결정된다고 보기에 내부 직원은 원가 절감의 대상으로 여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조직행동론·리더십’에서 세계 최고의 석학으로 꼽히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의 제프리 페퍼(69) 교수는 “무능한 종업원도 춤추게 하라”며 구성원 존중의 경영법을 강조했다. 페퍼 교수는 저서 『지혜 경영』에서 이나모리 회장의 ‘필로소피 경영’과 비슷한 직원·공동체 중심 전략을 강조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김현기 연구위원은 “낙오자·갈등을 부르는 ‘개인 차등’의 성과주의 대신 팀워크·협업을 이끄는 방식으로 경영이 진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식 필로소피 경영’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산엔 동신유압이란 사출성형기 업체가 있다. 이 회사 김병구(48) 대표는 ‘거리 경영’을 모토로 내걸었다. 직원들에게 ‘웃을거리·즐길거리·희망거리’를 주려 노력했더니 매출이 4년 만에 두 배가 됐다. 김기찬 회장은 “한국인 특유의 ‘흥’과 ‘꿈’을 접목해 미래 100년 기업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 특유의 가치에 직원 중심, 협업 정신을 살린 ‘K 경영학’(코리아 경영학) 개척에 미래 먹거리가 달려 있다.

    김준술·임지수 기자

    계영배와 거상 임상옥

     

     

    조선말엽 정조대왕때인 을묘년 3월 열이렛날,평안도 의주땅에 사는 거상 임상옥의 저택에서는 고관대작이 모여 성대한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임상옥의 회갑연이었다.귀빈들만 해도 평안감사,병사,군수들이 초대 되었고 서울을 비롯하여 경상도,충청도,전라도에서 귀빈들이 모여 들었다.

     

    정조 3년 (1779) 12월 10일 평안도 의주에서 출생한 임상옥, 그는 18세때 부터 상업에 나서서 온갖 고생을 한 끝에 국제 무역상으로 대성한다.

     

    그가 어느정도 거부였는가 알수있는 좋은 자료가 있다. 그의 문집인 가포집에 의하면 그가 38세 되던 해에 백마산성 서쪽 삼봉산 밑에 선영을 모시고 그 이듬해 선영 밑에다 수백간의 집을 짓고 살았는데 의주부윤등 일행 700명이 찿아 갔을때 한꺼번에 음식과 요리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관원을 대접하는 주부식이며 그 주부식을 담은 그릇들의 어마어마함은 족히 알고도 남음이 있다. 

     

    역시 청나라를 상대로 국제무역을 하던 부친을 일찍 여의고 홀로 남은 어머니에 대한 임상옥의 효성은 지극했다. 임상옥은 그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어린애 돌때 입는 색동옷을 입고 복건을 쓰고는 어머니 앞에 잔을 올렸다. 그 옆에는 아리따운 기생들이 헌수하는 노래가 곁들여 졌다.

     

    "어머님, 소년 과수의 외로운 몸으로 이 불초자식을 기르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여년을 만수무강 즐겁게 사십시요" 

     

    이윽고 사랑으로 나간 임상옥은 집사를 불러 한양에서 가져온 물건을 대령하라고 명했다. 곧 집사가 오동나무 상자를 임상옥 앞에 대령했다. 임상옥이 상자에서 꺼낸 것은 아주 작은 술잔이었다.

     

    임상옥은 술잔을 평안감사에게 올렸다.

    "명기(名器)라 하여 한양에서 가져온 술잔입니다. 한잔 드시지요."

    기생들의 권주가가 울려 나오고 임상옥은 그 술잔에 술을 따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평안감사는 놀랍다는듯이 그 술잔을 바라 보며 말했다.

    "보시요, 임곽산 영감.. 영감이 따른 술이 다 없어졌소."

    54세때 곽산현감을 역임했고 55세때 구성부사를 역임했기 때문에 빈객들은 임상옥은 영감이라고 불렀다.

    "아니,, 술이 다 없어지다니오?"

    과연 술잔에는 술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변이었다.하지만 임상옥은 침착하게 말했다.

    "제가 술을 잘못 따른것 같습니다."

    임상옥이 재차 술을 따랐다.

    "어허,, 술이 또 없어졌구려.."

     

    그랫다 분명히 술잔 가득히 따랐는데 감쪽같이 없어진 것이었다.

    그렇게 대여섯번을 되풀이 했는데 번번히 술이 없어지는 것이었다.

    하는수없이 다른 술잔을 가져오게 해서 술을 따르니 술이 가득 넘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이날의 잔치는 무사히 넘어갔다.

     

    며칠이 지난 후 임상옥은 문득 생각이 나서 그 술잔을 가져와서 실험을 해 보았다.

    한잔 가득 부었다, 역시 술은 없어졌다.

     

    "고 술잔 못쓰겠다, 무슨 요기가 뻤친게야,,,"

     

    임상옥은 옆에 있는 목침을 들고 그 술잔을 내리쳤다,쨍그렁 두동강이 났다. 그런데 깨어진 술잔에 촛불이 어리더니 무슨 글자 같은 것이 보였다. 

     

    "계영기원 여이동사(戒盈祈願 與爾同死)

    (가득차게 따라 먹지 말고, 너와 같이 죽기를 원한다)

     

    임상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술을 가득 따르지 말라,, 그럼 내가 잘못했구나,,조금씩 따라 마실걸,,

    다음순간 깨진 술잔을 집어서 들여다 보았다. 다음과 같은 글자가 깨알같이 씌여져 있었다.

     

    을묘 4월 8일 분원(汾院) 우명옥(愚明玉)

    그러고 보니 오늘이 4월 8일  이 잔을 만든자는 이 잔이 오늘 깨질걸 알고 있었어..

    희안한 일이었다.

     

    이튿날 아침 임상옥은 하인과 길을 떠났다. 우명옥이란 사람을 만나면 술잔에 대한 내막을 알수가 있을것 같아서 였다.

    여러날 만에 임상옥 일행은 광주분원에 도착하였다.우명옥의 집은 분원 근처의 다 무너져가는 초가집이엇다. 그때 나이 70이 다된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며 오랫동안 아는사람인양 반갑게 맞았다.

     

    "어휴,,의주 임곽산 영감께서 오셨습니다그려,,,"

    노인의 집으로 간 임상옥은 수인사를 마쳣다.

    "나는 보신대로 임상옥입니다만, 영감은 우명옥어른이시오?"

    "아니오 나는 성이 지가올씨다.명옥이는 내 제자지요.10여일전 바로 4월 8일 술시쯤 한많은 이세상을 떠났지요.그때 명옥이가 유언을 남겼는데 임영감께서 오시리라는것과 초종범절을 일러 주실것이라 하여 시체를 감장도 않고 영감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잇었습니다"

     

    임상옥은 지노인의 말을 듣고 즉시 우명옥의 시체를 후하게 장사지낸뒤 지노인의 집에서 2~3일을 거하며 우명옥과 술잔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술잔이라면 아,, 그거 계영배 올씨다.하지만 임영감께서 깨버리셨다니 그 계영배를 다시 볼 수 없어 한이올씨다."

    이로부터 지노인은 계영배에 얽힌 얘기를 늘어놓앗다.

     

    우 명 옥

    우삼돌(禹三乭) 우명옥의 본명이다.그는 강원도 홍천 산골에서 질그릇을 구워내며 살고 있었다.어느듯 나이 스물셋,하루는 사기로 유명한 분원으로가서 깨끗한 사기를 만들 생각으로 집을 떠나 광주분원 외장으로 있는 지영감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삼돌이는 여러 동료들의 구박과 학대를 받으면서 새벽부터 밤까지 흙반죽에 그릇모양 만드는 일을 열심히 하였다.그러는 사이 기량도 일취월장하여 보는사람마다 눈을 크게 뜨고 혀를 내둘렀다.

    이해 봄, 삼돌은 나라에 진상바칠 반상을 전담해 만들게 되엇다.스승 지외장은 옷한벌을 해 입히고 관례를 시키면서 이름을 명옥으로 고쳐주었다.

     

    그러나 우명옥에 대한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는 나날이 심해져 갔다.

    지성이면 감천. 우명옥이 만든 반상은 임금께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아 많은 상금을 하사하셨다. 지외장도 기뻐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명옥을 칭찬하는 동료들으 어떻게 하면 명옥을 곤경에 빠뜨릴까 노심초사 하고 있었다.

     

    마침내 동료들의 음모가 무르익었다.어느 날 동료들은 명옥에게 뱃놀이를 가자고 꼬득였다. 몇번을 거절하던 명옥은 하는수없이 따라나서 기생들의 수발에 즐겁게 놀았다. 한번 맛들인 기생의 풍류,그 후로 명옥은 기생집에 파묻혀 시간가는줄 몰랐다.날이 갈수록 수중의 돈은 줄어들고 이젠 술집에 갖다줄 돈이 없어지자 상사발, 상대접같은 그릇을 만들어 돈을 만들어 기생집에 갖다 바쳤다.

     

    더 큰돈이 필요해진 명옥은 나쁜동료들과 전라도 지방으로 행상을 나갓다.과욕이었다.태풍을 만나고 해적을 만났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돌아왓다.

    간신히 돌아온 분원도 폭풍우에 떠내려가 폐허가 되어 있었다.살아 돌아온 사람들과 마을 사람들을 격려해가며 마을 복구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런데, 날이 가면 갈수록 명옥은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했고 스승인 지외장도 걱정이 심했다.

    그로부터 몇달이 흐르고 명옥이 뚜레박으로 물을 길러 자신의 몸에 들이 붓고 있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세상사람들을 망치는 술을 조금만 마시게 하는 술잔을 만들게 해 주시옵소서, 그러면 이놈은 그 술잔과 함께 목숨을 내놓겠습니다.이놈의 소원을 한가지만 이루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외장은 비로소 우명옥의 비장한 결심을 목격하고 안심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명옥은 지외장 앞에 조그만 술잔 하나를 내어 놓았다.

    "선생님 그동안 보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 조그만 술잔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앙증맞은 술잔이엇다. 명옥은 그 술잔에 물을 가득 부었다.

    "선생님 물을 가득 부으니 물이 없어졌습니다."

    "정말 그렇구나"

    지외장도 놀랐다.

    "하지만 술잔에 술을 부었는데 술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하지만 보십시요"

    명옥은 술잔에 7,8부쯤 물을 부었다.

    "이제는 물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이술잔에 제가 계영배(戒盈杯)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지외장은 계영배를 만든 명옥의 기술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그 계영배는 우명옥의 손에 의해 중앙 높은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 진상 되었고 그 계영배는 임상옥의 육순잔치의 선물로 전해지게 된 것이었다.

     

    "참 아까운 사람을 잃어 버렸소이다.선생되시는 지외장의 마음은 다시 말할 것도 없소이다만 계영배의 참뜻을 진즉 알았더라면 계영배를 깨뜨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우리나라의 명인 한 사람을 내가 죽였소이다. 자 이것으로 약소하나마 우선생의 대소상이나 섭섭지 않게 지내도록 하시오. 그리고 이 근처의 지내기 어려운 양반들에게 조금이나마 성의를 베풀고 가겠소이다."

     

    당대의 거상 임상옥은 철종 6년(1855) 5월 29일 77세의 나이로 의주 본제(本第)에서 장서(長逝)하였다.

     

     

    임상옥의 문집인 가포집에 다음과 같은 만시(輓詩)가 있다.

                         財上平如水  人中直似衡

                         재상평여수  인중직사형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고, 사람은 바르기가 저울과 같다.

    (4) 대를 잇는 호암의 성공 DNA

    [이병철 회장 탄생 100년 ‘호암을 기리다’]

    • 입력 : 2010.01.18 16:35 | 수정 : 2010.01.18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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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1970년대 당시 동양방송 이사로 재직중이던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은 아버지 호암 이병철 회장에게 반도체 사업 진출을 건의했다. 호암은 망설였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건희 이사의 생각은 달랐다. 다가올 시대는 전자의 시대이고 반도체가 전자산업의 핵심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결국 이 이사는 사재를 털어 부천에 있는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이 회사가 삼성 반도체 산업의 모체가 됐다.

     

     

    호암 이병철로부터 시작된 삼성의 ‘성공 유전인자(DNA)’는 아들인 이건희 전 회장으로 넘어오면서 꽃을 피우게 된다. 오늘날 삼성이 전자산업에서 일본을 비롯한 세계 유수의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최고 업체로 등극할 수 있었던 것도 이병철-이건희 부자로 이어지는 ‘성공DNA’가 결정적이었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도쿄선언’과 ‘프랑크푸르트선언’

     

    1959년 말 호암은 미국을 방문한 뒤 일본 도쿄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오다 서울에 갑자기 폭설이 내리는 바람에 도쿄에 머물게 된다. 당시 1960년대 새해을 맞아 일본의 TV방송은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전망하는 좌담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 프로그램을 유심히 본 호암은 세계 경제흐름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기술이나 차관 도입방법이 있다는 사실도 이 때 처음 알게 됐고 미국보다 유럽 쪽이 차관 도입에 유리하다는 정보도 얻었다. 당시 비료공장 건설계획에 몰두해있던 이 회장으로선 천금같은 정보였다.

    이후 호암은 해마다 정초가 되면 도쿄를 찾았다. 도쿄에서 세계의 변화를 읽고 정보를 얻었으며 새로운 사업을 구상했다. 이를 ‘도쿄 구상’이라고 불렀다. “전자·반도체·항공산업 진출 등도 ‘도쿄 구상’을 통해 나온 사업이었다”고 당시 삼성물산 도쿄지점장을 지냈던 이길현 경원 대표이사 회장은 삼성그룹 60년사에서 회고했다.

    이건희 전 회장은 호암이 타계하고 열흘 남짓 지난 1987년 12월 1일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전 회장은 호암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인 ‘경청’을 마음 깊이 새기며 그룹을 면밀히 뜯어봤다. ‘우물안 개구리’를 벗어나기 위해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1993년 6월 프랑크푸르트에서 “처, 자식 빼고는 다 바꿔라. 변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프랑크푸르트선언’을 전격 발표했다. 그는 7월 30일 후쿠오카 강연까지 48차례나 직원들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위기의식으로 ‘신경영’에 돌입했다.

    신경영은 선언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졌다. 1995년 3월 경북 구미에서는 삼성휴대폰 15만대가 불태워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삼성 임직원에게 ‘신경영’이 얼마나 엄중한 과제인지를 깨우치게 한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는 품질을 우선시 하는 경영에 본격 착수하게 됐다.

    ■‘창업’보다 어려운 ‘수성’

    1단계 ‘신경영’이 끝나고 이건희 전 회장은 2단계로 ‘창조 경영’에 착수했다. 이 전 회장은 지난 2006년 9월 뉴욕에서 열린 삼성전자 사장단 회의에서 “20세기 경영과 21세기 경영은 다르다. 20세기엔 물건만 잘 만들면 1등이 됐지만 이제는 품질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 21세기에는 디자인과 마케팅, 연구개발(R&D)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창조적인 것을 만들어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창조 경영을 역설했다.

    창업보다 수성이 더 어렵다고 한다. 호암이 한국 재계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것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황무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에서 경공업부터 중공업까지 빠른 기간에 다양한 사업을 펼쳐 사업보국을 이뤘기 때문이다.

    이 전 회장의 수성도 쉽지 않았다. 안팎의 끊이지 않는 도전과 역경을 헤치면서 삼성이 ‘수성’을 넘어 제2 창업에 버금가는 도약을 이룬 것은 선대 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성공DNA’를 시대에 맞게 새로운 시각으로 발전시켰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호암의 두가지 선물, ‘경청’과 ‘목계(木鷄)’

    ▲ 1980년 서울 태평로 삼성본관 집무실에서 서예 연습 중인 호암 이병철 선대 회장(왼쪽)과 이건희 당시 부회장. 삼성의 창업자인 이병철 선대 회장과 후계자인 이건희 전 회장은 각각 삼성을 탄생시키고 삼성을 도약시키며 ‘성공DNA’를 이어가고 있다.

     

    이 전 회장은 아버지인 호암으로부터 두 가지 선물을 받았다. ‘경청’이란 휘호와 ‘목계’다. 호암은 이 전 회장이 삼성에 처음 근무하던 날 마음의 지표로 삼으라는 뜻으로 ‘경청’이란 휘호를 선물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상대방의 의견을 귀중하게 여기라는 의미다. 호암의 휘호 ‘경청’은 대를 이어 이 전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마음속에도 깊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선물인 ‘목계’는 장자의 달생편에 나오는 우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목계는 싸움닭이 경지에 오르면 상대 닭이 아무리 덤벼도 조금도 동요되지 않아 마치 나무로 만든 닭처럼 느껴진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힘을 뽐내지 말고 아무리 약한 적이라 해도 함부로 대하지 않으며 상대가 싸움을 걸어와도 목계처럼 초연한 마음으로 평상심을 유지하라는 의미에서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이 전 회장은 ‘경청’과 ‘목계’의 가르침을 통해 수성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제2의 창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호암은 ‘호암어록’을 통해 모든 일의 기본은 국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것은 나라가 기본이 된다. 나라가 잘되고 강해야 모든 것이 잘된다. 참다운 기업인은 보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기업을 발전시키고 국부 형성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참다운 기업정신이다.”

    이같은 ‘기업의 기본은 국가’라는 호암철학은 후대에 더욱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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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전 회장이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2010’에서 “10년 전 삼성은 지금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한 구멍가게 같았다. 까딱 잘못하면 삼성도 그렇게 된다”며 “사회 모든 분야에서 자기 위치를 쥐고 가야 변화무쌍한 21세기를 견뎌낼 수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중국, 인도 등 후발 국가들의 추격과 선진국들의 견제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위기의식을 갖고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로 선대 회장으로부터 받은 ‘나라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다’는 철학이 이어진 것이다.

    /yhj@fnnews.com 윤휘종기자

    <논어>는 리더십의 바이블


    공자가 가르치던 교과목은 ‘육례(六禮)’라는 6가지 분야의 현실교육이었는데, 윤리와 인간관계론에 관한 예절, 예술과 관련된 음악, 체육과 관련된 활쏘기, 전쟁에 해당하는 말 타기, 언어 및 국어에 해당하는 글쓰기, 수학에 해당하는 셈하기 등 6가지 전문 과목을 분류하여 거의 오늘날 교육과목의 형태를 완성하였다.

    그는 자신의 지식을 당시 제자들에게 완전히 개방하였으며, 그의 뒤를 이어 중국 문명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제자백가(諸子百家)라는 사상적 개화가 이루어졌다. 그저 교양 정도로 여겨졌던 고대 지식의 상품화에 성공한 공자의 이런 안목과 전략은 가치의 혁신을 통해 당시 틈새시장을 개척한 블루오션 전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고전 중에 리더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책을 꼽으라면 단연 <논어>다.

    역사 속에서 과거시험의 가장 중요한 과목 중 하나였고, 리더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명구절들의 출처를 파고들면 <논어>에서 나온 것이 의외로 많다. 리더들의 철학과 삶의 방식에 대하여 <논어>는 무한한 콘텐츠를 제공해 준다. 나아가 서구문화 발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책이 <성경>이라면, 동양문화의 배경에는 <논어>가 있다. <논어>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동양 고전 중에서 단연 베스트셀러다.

    동아시아 250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인 공자와 그 제자들이 당시 난세의 생존에 대한 수많은 이슈들을 토론하고 이야기한 대화 모음집이 바로 <논어>다.

    동양의 리더들은 <논어>를 읽었고, <논어>에서 지도력을 키웠다. <논어>는 연구실에서 한 사람이 고민하고 쓴 책이 아니다. 다양한 현장에서 공자와 당시 리더들, 그리고 공자의 제자들이 난세의 고민을 풀어낸 불후의 대화 모음집이다.  

     

     

    이상적 인간형, 군자


    그 중에서 가장 돋보이는 내용이 ‘군자(君子)’라는 <논어>에서 제시하는 이상적 인간형이다.

    군자는 요즘으로 말하면 조직의 리더요, 경영자다. 공자가 살던 시대의 군자는 글자 그대로 임금(君)의 아들(子) 정도의 의미였다. 세습된 지위를 가지고 권력을 소유한 일부 귀족을 지칭하여 군자라고 불렀다. 그런데 공자는 이 세습된 군자의 모습을 혁신하여 새로운 리더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논어>에서 말하는 공자의 새로운 군자는 열정과 노력에 의해서 자신의 모습을 새롭게 만들어 나가는 위대한 리더의 모습이었다. 공자 스스로가 어려운 출생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 나갔듯이, 군자는 이미 만들어져 나온 완성형 인간이 아니라 만들어 나가야 할 진행형 인간이었다. 비록 역사 속에서 군자의 모습이 부정적인 면으로 퇴색하기도 하였지만 공자가 당시 제시한 뉴 리더인 군자의 정의는 오늘날 리더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공자의 출생에 대한 기록 중에 ‘야합이생(野合而生)’이라는 기록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면 공자는 들(野)에서 합(合)해서 태어난 인물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공자의 출생은 누구보다도 처절했다.

    송나라 출신 퇴역 군인인 숙량흘(叔梁紇)과 안(顔)씨 집안의 셋째 딸인 젊은 무녀 안징재(顔徵在) 사이에 정식 혼인을 거치지 않고 태어난 공자는 엄밀한 의미에서 당시 속칭 집안 좋고 학벌 있는 군자가 아니었다. 공자는 3세 때 아버지를 잃었고 24세에 어머니마저 잃었다. 공자는 젊었을 때 다양한 밑바닥 생활을 경험하였다.

    계손(季孫)씨 집안의 하급관리인 위리가 된 적도 있었는데, 오늘날로 말하면 창고 출납을 관리하던 하급직이다. 또한 계씨 집안에 사직리가 되어 근무하기도 하였는데 직책은 가축을 관리하던 하급직이었다.


    <논어>에는 공자가 자신의 어린시절을 술회하는 글이 나온다. 누군가 자신을 다능(多能)이라고 평가하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나는 어렸을 때 천하게 인생을 살았다. 그래서 비천한 일에 대하여 많은 능력이 생겼다.(吾少也賤, 故多能鄙事!)’

     

    공자의 군자는 능력이 많은 사람(多能)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자는 천한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의 노력에 의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바꿀 줄 알았던, 요즘으로 말하면 자수성가형 리더였다.

    영국에는 신사(gentleman)가 있고, 한국에는 선비가 있듯이 <논어>에는 군자가 있다.

    <논어>에서 말하는 뉴 리더, 군자의 모습 속에서 오늘날 리더의 모습을 찾아보자.

     

     

    학이시습(學而時習) 학습형 리더


    군자는 행복한 사람이다. <논어>의 첫 구절은 공자가 꿈꾸던 군자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평생 학습하는 일이야말로 군자의 가장 기쁜 일이다(學而時習之不亦說乎!).

    같은 뜻을 가진 동지(同志)들과 함께 인생을 사는 것이야말로 군자의 가장 행복한 일이다

    (有朋自遠方來不亦樂乎!).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군자다(人不知而不不亦君子乎!).’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는 행복한 사람이다. 군자의 행복은 부귀와 명예를 얻은 자가 아니다. 늘 새로운 지식으로 나를 혁신하고, 함께 뜻을 같이하는 친구들과 교류하고,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비굴하거나 소침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삶이야말로 군자의 삶이다.


    ‘군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근심한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군자여! 학습하라. 동지(朋)와 함께 꿈을 꾸어라. 당신의 평가에 대하여 연연하거나 성내지(不) 말라.

    일명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삼락(君子三樂)’이다.

    공부하는 리더는 미래의 환경을 이해하고 생존의 답을 찾아낸다. 학습과 실천이야말로 평생의 프로젝트임을 잊지 않고 사는 사람이 진정한 군자의 삶이다.

    붕(朋)과 우(友)는 다르다.

    술집에서 만나고 비즈니스로 만나는 친구는 우일 뿐이다. 붕은 삶의 가치가 같은 친구다. 친구를 넘어서 동지라고 해야 한다. 그들을 만나 담론을 즐기며 내 삶의 방식을 긍정하는 힘을 얻는 것은 놓칠 수 없는 인생의 행복이다.  

     

     

    주이불비(周而不比) 친화형 리더


    군자는 패거리를 짓지 않는 친화형 리더다.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대왕은 신하들의 당파 싸움을 완화하기 위하여 탕평책을 쓰면서 국립대학인 성균관 정문에 비각을 세워 <논어>의 글귀를 인용해 이렇게 새겨 놓았다.

     

    ‘남과 두루 친화하고 편당 짓지 않는 것(周而不比)이 군자의 공된 마음이다(乃君子之公心).

    남과 편당만 짓고 친화하지 못하는 것(比而不周)은 소인의 사사로운 뜻이다(寔小人之私意).’


    학맥과 지역색으로 편당 짓지 않고 보편성을 추구하는 리더의 모습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조직 내에서 끼리끼리 편당을 짓고 상대방을 헐뜯으며 자신들의 사적 이익만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다.

    군자는 보편성(周)을 추구하지 편당(比)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리더는 꿈을 제시하고 그 꿈을 공유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차별하고 구별하는 리더는 더 이상 조직을 이끌 자격이 없다.

     

    ‘군자는 공적인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기에 의를 중시한다(君子喩於義). 그러나 소인은 사사로운 이익을 우선으로 여긴다(小人喩於利).’

     

    의(義)보다 리(利)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그 이익을 위하여 편당 짓고 끼리끼리 뭉친다. 

     

     

    눌언민행(訥言敏行) 실천형 리더


    군자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실천형 인간이다.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이다(欲訥於言而敏於行)’.

    <논어>에서 말하는 군자의 실천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옛날 사람들은 말이 좀 어눌한 눌변(訥辯)을 군자의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군자는 말보다 실천이 앞서야 한다는 의미다.

    ‘군자는 먼저 그 말을 실천하고 이후에 말을 하는 사람이다(先行其言而後從之).’

    조직을 위해서 몸소 실천하지 않고 말만 앞세우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이야기다.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며 말보다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이 이 시대의 진정 군자다.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라(入則孝). 밖에 나오면 공손하라(出則悌). 모든 일에 부지런하고 한마디라도 실천할 수 있을지를 돌아보라(謹而信). 널리 타인을 사랑하라(汎愛衆). 따뜻한 사람과 함께 하라(而親仁). 그리고 힘이 있으면 그때 형식(文)을 배워라(行有餘力則以學文).’

     

    문(文)은 문(紋)이다. 문(紋)은 세련됨이요, 형식이요, 화려함이다. 군자는 신사(紳士)다운 세련됨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외형적인 군자의 모습은 실천을 전제로 한다.

     

    부모와 이웃에게 최선을 다하고, 조직의 구성원들을 배려하고 존중할 때 그 군자적 세련됨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군자는 말을 잘하는 자가 아니다. 실천을 통해 군자의 모습이 드러나야 한다.

     

    ‘군자는 네 가지 실천해야 할 일이 있다(君子之道四焉).

    행동은 공손해야 하며(其行己也恭),

    윗사람을 모실 때는 공경해야 하며(其事上也敬),

    백성을 돌볼 때는 은혜로워야 하며(其養民也惠),

    백성들을 부릴 때는 의로워야 한다(其使民也義).

    공경혜의(恭·敬·惠·義)를 행하라’.

     

    이것이 진정 군자가 가야 할 길이다.

    백 마디 말보다 현장에서 고민하고 실천하는 리더가 진정 군자다.

     

     

    화이부동(和而不同) 포용형 리더


    군자는 화합을 추구하되 다름(不同)을 인정하는 리더다. 일명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리더다.

    반면 소인은 ‘오로지 같음만 추구하고 화합하지 않는 인간이다(同而不和).’

    화(和)는 중요하다.

    남의 의견을 경청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화야말로 군자의 기본 정신이다. 군자는 화를 강조하여 동(同)을 요구하지 않는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사람이 군자다.

    일명 ‘따로(不同)’ 또 ‘같이(和)’, 이것이 화이부동의 정신이다.

    자신의 정당한 의견을 구부려 남의 옳지 않은 생각에 동화되지 않는 것이 진정 군자의 모습이라면 나와 다른 의견을 낸다고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거나 해하지 않는 것도 군자의 모습이다.

    남이 ‘함께’ 하라고 할 때 ‘노’라고 외치며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외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군자의 모습이다. 나아가 ‘노’라고 외치는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것도 군자의 모습이다. 

     

    매출액이 많다고 명문기업이라 하지 않고, 돈이 많다고 명문가라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위가 높다고 군자라 하지 않는다. 군자는 지위나 학력, 자격증 몇 개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남의 비난과 칭찬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 학습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늘 배우고 실천하는 사람, 동료와 인생의 기쁨과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사람, 말보다 행동을 먼저 보여주는 사람, 편 가르지 않고 남과 화합하여 조직의 인화를 만들어 나가는 사람, 남과 두루 친화하면서도 ‘따로 또 같이’의 철학을 갖고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면 진정 21세기의 군자라 할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는 자하(自夏)라는 제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희는 군자다운 리더가 되어야 한다(汝爲君子儒). 소인 같은 리더가 되어서는 안 된다(無爲小人儒)’.

     

    자신을 수양하여 남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脩己安人) 21세기형 군자의 모습을 <논어>에서 찾아(探) 얻어(得) 본다.

     

    목계지덕(木鷄之德)… 최고의 싸움닭은 뽐내지 않는다

    17호(2008.09.15) / 박재희 필자 소개  PDF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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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대한 리더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지 않다. 눈초리는 부드럽고, 외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완전히 통제할 줄 알고, 상대방에게 매서운 눈초리나 빛나는 광채를 보여 주지 않더라도 무언가 근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보여 주는 사람이다.
     
    동양에서는 이런 사람을 목계지덕(木鷄之德)을 지녔다고 말한다. 목계는 나무로 만든 닭이란 뜻으로, 나무로 만든 닭처럼 완전히 자신의 감정을 제어할 줄 아는 능력을 말한다. 장자 ‘달생(達生)’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왕이 투계(싸움닭)를 좋아해 기성자(紀子)라는 사람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구해 최고의 투계로 만들도록 훈련을 맡겼다. 맡긴지 열흘이 지나고 나서 왕이 물었다.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 사육사는 단호히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신이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 교만을 떨치지 않는 한 최고가 될 수 없습니다.” 헛된 교만과 기운을 믿고 뽐내는 자세를 버리지 못하였다는 대답이었다.
     
    열흘이 또 지나 왕이 물었을 때 사육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조급함을 버리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열흘이 더 지나 왕이 또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상대방을 질시하는 공격적인 눈초리를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열흘이 지나고 또 묻자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마음의 평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木鷄)가 됐습니다. 이제 어느 닭이라도 모습만 봐도 도망갈 것입니다.”
     
    이 고사에서 말하는 최고의 투계는 목계다. 자신이 제일이라는 교만함을 버리고, 남의 소리와 위협에 쉽게 반응하지 않으며, 상대방에 대한 공격적인 눈초리를 버린 나무와 같은 목계는 인간으로 말하면 완전한 자아의 성취와 평정심을 이룬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한 광채와 능력을 상대방에게 드러내지 않기에 그 빛은 더욱 빛날 수 있다. 노자가 말하는 ‘자신의 광채를 누그러뜨리고 이 풍진 세상의 눈높이와 함께 하라’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의 겸손함이다.
     
    상대방의 행동에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강자의 여유로 맞이하기에 그 여유는 조직을 든든하게 한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태산처럼 움직이지 않는 부동여산(不動如山)의 여유다. 함부로 상대방을 위협하는 눈초리를 보이지 않기에 그 마음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외경을 느끼게 만든다. 노자가 이야기하는 ‘부드러움과 유약함이 결국 강하고 센 것을 이길 것’이라는 유약승강강(柔弱勝强剛)의 부드러움이다.
     
    교만과 조급함과 공격적인 눈초리를 완전히 평정한 사람, 세속과 하나가 되기도 하지만 움직이지 않기가 태산과 같으며 부드러운 감성까지 지니고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진정 위대한 리더라 할 수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버럭버럭 화를 내는 사람, 부와 지위에 발목이 잡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어깨를 세우는 사람, 누구를 만나든 그 자리에서 경쟁하여 위아래가 결정되어야 속이 풀리는 사람이라면 목계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교환 교수, 성균관대 유학대학원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를 지냈다. 저서로는 <21세기 경제전쟁시대, 손자와 만나다> <손자병법으로 돌파한다> 등이 있다. taoy2k@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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