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센트 완전 해부 4편] 기사회생, 투자로 새로운 생명을 얻다

Filed under: 01. MAIN SLIDE,기획 특집,기획연재 |

QQ 메신저의 이용자 증가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마치 신세계를 경험한 것처럼 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QQ를 사용했다. 심지어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혹은 비즈니스에서 상대방의 메신저 ID(QQ의 경우 ID Number)를 묻는 일이 전화번호를 묻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마화텅과 직원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로 놀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새로운 고민이 머리를 들고 있었다. 수익모델이라고 하는 아귀는 텐센트의 뒤를 지옥 끝까지 쫓아갈 요량으로 텐센트의 목을 옥죄기 시작했다.

 

 

실패로 끝난 텐센트의 넷이즈모델 

텐센트는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이용자를 감당하기 위해 서버를 확충해야 했지만 대당 2,000위안이나 하는 서버 관리비를 감당하기에는 당시 자금이 충분하지 않아 다른 서버에 기생하듯 의존하여 서비스를 운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자 1999년 텐센트는 넷이즈(Netease)가 선보였던 서비스 매각 방식을 통해 OICQ의 시스템과 이용자 DB를 매각하기로 결정하였다. 마화텅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각 지역의 이동통신 업체와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게 OCIQ과 사용자 DB를 약 300만 위안에 매각하기로 마음먹었다.

텐센트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친구이자 라이벌인 넷이즈의 CEO 딩레이 였다. 마화텅은 딩레이를 찾아가 ‘OICQ를 매입하면 앞으로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 될 것’이라고 간곡하게 그를 설득했다. 하지만 당시 딩레이는 IM보다는 이메일 사업에 모든 관심을 쏟아 붓고 있었던 데다 텐센트의 기술 수준이 아직 낮다고 판단하여 마화텅의 제안을 거절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땅을 치고 후회할 짓이지만 당시에는 넷이즈의 이메일 서비스와 텐센트의 OICQ(QQ) 모두 인지도나 기술적으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기업은 차이나 텔레콤(中国电信)의 자회사이자 중국 화남지방(광둥성 일대) 최대 통신업체인 21CN이었다. 당시 광저우 텔레콤은 IM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21CN에 입장에서는 텐센트와 손잡는다면 경쟁자를 견제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하지만 21CN 입장에서 이제 갓 사용자 100만 명을 넘긴 인스턴트 메신저는 그들에게 별다른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고, 끝내 매각은 불발에 그쳤다. 이들 기업 외에도 차이나닷컴(中华网, china.com), 선전텔레콤(深圳通信), 중베이 호출기(中北寻呼) 등 여러 회사에 매각 제안을 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끝났고, 결국 텐센트는 제자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텐센트의 QQ 메신저 매각 시도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전까지 중국에서 IM 프로그램의 성공사례가 없다는 것이 텐센트가 실패한 가장 큰 요인이었다. 인스턴트 메신저는 대화하는데 있어서는 메일보다 효과적이었지만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중국인들에게는 여전히 생소한 서비스였고, 이들 사용자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조차 구비가 되지 않은 업체들에게 텐센트의 100만 유저는 그저 그림의 떡 아니 먹지 못하는 떡에 지나지 않았다.

 

고심하는 마화텅

1999년 11월 OICQ가 이용자 100만 명을 달성할 동안에도, 텐센트의 통장잔고는 늘어나기는커녕 1만 위안(한화 약 180만 원) 정도에 그칠 뿐이었다. 텐센트는 서버 유지비용을 비롯해 지출로 충당되는 비용으로 인해 자금난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에 텐센트는 자금 마련을 위해 홍콩에서 저렴한 노트북을 가져다가 중국에 팔기까지 하는 등 생존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다. 이는 투자유치 없이 텐센트를 성공시키고자 했던 마화텅의 결단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하지만 아사지경에 이르게 되자 결국 텐센트는 어려운 상황에도 고수했던 투자유치 거부입장을 철폐하고 외부의 지원을 받기로 결정하게 된다.

 

 

텐센트를 도운 대천사 류샤오송

당시 텐센트에서 기업자금 업무를 담당하던 마화텅은 고질병인 허리통증이 재발하면서 투자유치를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화텅은 투자유치업무를 같은 창업멤버이자 COO인 정리칭(曾李青)에게 위임하게 된다. 당시 마화텅과 정리칭은 텐센트의 회사 벨류를 550만 달러로 설정하고, 투자유치 한도금액을 전체의 40%인 220만 달러로 설정하였다.

투자유치를 위임 받은 정리칭은 투자자를 물색하던 도중 텐센트의 창업멤버와 친분이 있는 리우샤오송(刘晓松)을 찾아가게 된다. 텐센트 창업멤버인 장즈동(张志东)과 이전 직장동료였으며, 정리칭과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인물인 류샤오송은 텐센트가 초기 자본금 50만 위안에서 100만 위안으로 증자할 때도 흔쾌히 돈을 대출해 주었던 인물로 텐센트와는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그 역시 신리더(信力德)라는 금융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기업을 설립한 CEO로, 창업 3년만인 1997년 500만 위안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텐센트의 은인 류샤오송(刘晓松) A8 CEO

 

정리칭은 류샤오송을 찾아가 회사의 사정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류샤오송은 평소 자신과 투자 얘기를 나누던 미국의 IDG를 정리칭에게 소개해 주었다. 텐센트와 IDG는 1999년 중국국제신기술성과교류회에서 투자유치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미 투자와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를 일찌감치 나눈 바가 있었다. 류샤오송은 IDG에게 텐센트의 가능성과 경쟁력에 대해 열변을 토하며 텐센트를 투자대상업체로 강력히 추천하였고, IDG는 텐센트의 성장가능성과 수익성에 대해 집중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텐센트의 성장 가능성을 비교적 높게 점친 IDG 아시아 쿼터 책임자인 숑샤오거(熊晓鸽)는 마침내 텐센트에 110만 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하였다.

정리칭이 다음으로 찾아간 사람은 친구이자 홍콩에서 통신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린지엔황(林建煌)이다. 정리칭이 린지엔황에게 텐센트의 상황을 설명하자, 린지엔황은 당시 자신이 속해있던 홍콩잉커(香港盈科, 현 香港电讯盈科-PCCW)를 추천하였다. 홍콩잉커는 통신 서비스 공급업체로 홍콩에 본사를 두고 있었으며, 중국 내륙 통신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협력파트너를 찾고 있었고, 텐센트가 바로 이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라 내다봤다. 이에 따라 홍콩잉커는 중국으로 진출할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110만 달러를 텐센트에 투자하게 되었다.

텐센트는 투자를 유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류샤오송과 린지엔황에게 감사의 표시로 각각 1% 회사 지분을 나누어주었다. 또한 220만 달러의 투자자금을 서버 확충과 네트워크 환경 개선에 할애했다. OICQ 프로그램 업데이트와 소프트웨어 개발에도 많은 자금을 투입시켰다. 이로써 텐센트는 당시 인스턴트 메신저 성역에 도전하는 2위권 업체들과의 간격을 벌릴 수 있게 되는 한편, 자금난과 생활고에서 다소 벗어날 수 있었다.

 

 

텐센트의 최대 주주 MIH

2001년 QQ로의 변신에 성공한 텐센트는 동시 접속자 10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신문에 대서특필 되었고, 마화텅은 회사 전 직원들과 함께 축하행사를 여는 등 텐센트가 앞으로 성공할 일만 남은 듯 했다. 하지만 이용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에도 불구하고 해결하지 못한 수익모델의 한계는 여전히 텐센트의 뒤를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텐센트는 IDG와 PCCW로부터 투자 받은 투자금 220만 달러를 모두 사용하게 되자 또 다시 자금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경영권 보유와 투자유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원하는 텐센트, 그리고 자금난으로 인한 지분매각과 투자지분 유지라는 두 갈림길에서 고민하고 있는 두 투자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한 가운데 놓이게 된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텐센트를 구원한 빛이 하나 있었으니 그가 바로 MIH.

미국 나스닥과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인 MIH는 아프리카, 동남아, 중국 등의 이머징 마켓 인터넷 기업을 전문투자대상으로 하는 글로벌 투자기업이다. 1997년 중국에 처음 들어온 MIH는 마이보왕(脉搏网)등 여러 인터넷 기업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텐센트는 MIH가 투자를 원하던 인터넷 기업 가운데 하나였다.

2000년 9월, MIH의 중국 지역 부대표였던 왕다웨이(网大为)는 중국에서 투자할 기업을 찾던 중 전국 어느 곳을 가던 PC방이라면 공통적으로 QQ의 메신저 아이콘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많은 중국인들이 QQ를 사용해서 사람들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텐센트의 무한한 잠재력을 점쳤다. 그 후로 텐센트를 주도면밀하게 지켜보고 있던 MIH는 이용자 수가 3개월 마다 배로 늘어나는 모습을 보며 텐센트에 투자하려는 마음을 굳혔다.

 

텐센트와 MIH의 만남은 순조롭게 이루어 질 것 같았지만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MIH는 텐센트 창업멤버 다음가는 2대 주주가 되기를 원하였지만 텐센트는 경영권 확보를 위해 이전 두 개 회사에 매각하였던 40%지분 이외에는 더 이상 매각하려 하지 않았다. IDG와 홍콩잉커 보유 중인 텐센트 지분을 매각할 의사가 없었다. 하지만 2001년 6월, 샹강잉커는 홍콩전신(香港电讯)과 합병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하게 되었고, 하는 수 없이 텐센트의 지분을 MIH에 양도하게 되었다.

MIH는 홍콩잉커가 텐센트에 대해서 보유하고 있던 20%의 지분 전부를 1,260만 달러에 매입하고, IDG가 소유하고 있던 지분 중 12.8%의 지분을 800만 달러에 매입하며 총 32.8%의 지분을 가진 텐센트의 2대 주주가 되었다. 이 후 2002년 6월 MIH는 텐센트가 보유하고 있던 13.5%의 지분을 추가 매입함으로써 텐센트 46.5%, MIH 46.3%, IDG 7.2%의 지분 구조를 나타내게 되었다. 2003년 8월에는 IDG가 가지고 있던 7.2% 지분을 텐센트와 MIH가 공동으로 매입하며 텐센트와 MIH 지분은 거의 동일한 보유비중을 나타냈다. 하지만 여전히 텐센트는 50%가 넘는 지분을 보유하며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텐센트 홍콩에 상장하다

텐센트는 약 1년여간에 걸친 지분 소유 구조 재편과 이에 따른 투자를 바탕으로 텐센트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 갈 중요한 순간을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2004년 6월 16일, 마화텅, 장즈동, 정리칭, 쉬천화(许晨哗), 천이단(陈一丹) 총5명의 공동 창업자와 정전궈(曾振国) CFO는 홍콩연합거래소의 중앙에 서서 대형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고 “홍콩연합거래소에 상장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텐센트 홀딩스(腾讯控股有限公司, 00700.HK)의 홍콩 상장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텐센트는 주당 3.70 HKD의 가격에 총 4억 2,000만 주의 주식을 발행하였다. 상장 당일 텐센트의 최고주가는 기존 발행 가격보다 25% 치솟은 4.625 HKD를 기록하였으며, 발행가격보다 12.16% 상승한 4.15 HKD로 장을 마감하였다. 이날 시장에서는 총 19억 HKD의 텐센트 주식이 거래되며 텐센트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대부분의 인터넷 기업들이 미국 나스닥 상장을 준비한 반면 텐센트만이 유일하게 홍콩주식시장에 상장했다. 비록 수익률이나 브랜드 이미지 제고 등 여러면에서 홍콩주식시장이 미국보다는 그 효과가 상대적으로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마화텅은 본사가 위치한 선전과 지리적으로 가까이에 있는 홍콩과의 소통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 하에 최종적으로 홍콩행을 택했다.

텐센트의 주식상장으로 이들 공동창업자는 모두 돈방석에 오르게 되었다. 불과 5년전만 하더라도 직원들 월급 챙겨주기가 힘들어 돈이 되는 일이라면 모든 해야만 했던 이들에게도 드디어 쨍하고 해뜰날이 오게 된 것이다. 마화텅의 주식보유비중은 14.43%로 장부상으로만 기재된 재산만 8억9,800만 HKD, 장즈동은 6.43%로 4억 HKD, 나머지 3명의 공동 창업가인 정리칭, 쉬청화, 장즈동은 총 9.87%의 주식을 가지게 되었으며 3인의 총 재산 합계는 6억 1,400만 HKD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외 7명 임원진은 6.77%의 주식을 보유하며 4억 2,200만 HKD의 자산을 보유하게 되었다.

텐센트의 공동창업자 외에 상장으로 가장 큰 수혜를 본 이는 역시 MIH다. MIH 발표에 따르면 당시 IDG와 홍콩잉커가 보유한 텐센트 지분 매입을 위해 4,000만 달러를 투자하였지만 텐센트가 상장과 함께 MIH가 보유한 텐센트 주식가치가 23억 3,300만 HKD로 3년새 천문한적인 액수가 되어 돌아오며 MIH를 일약 최고의 투자회사로 만들었다.

홍콩잉커와 IDG는 회사 내부적인 자금사정으로 인해 보유하고 있던 텐센트의 주식을 매각해야만 했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이지만, 만약 IDG와 홍콩잉커가 보유하고 있었던 텐센트 주식을 지금까지 팔지 않았더라면, 그 두 회사가 얻을 수 있었던 투자수익은 70배 또는 그 이상이었을 것이다.

상장 이후 텐센트의 순항은 이어졌다. 2004년 4억 4,100만 위안의 순수익을 거두며 2004년 최대 수익을 기록한 인터넷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한때 자금 부족으로 허덕이던 하루하루를 보내던 텐센트는 주식상장으로 일약 중국 최고의 인터넷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홍콩잉커(香港盈科): 홍콩을 근거지 한 통신업체로 홍콩전신(香港电讯)과 합병하여 현재의  PCCW(香港电讯盈科)가 되었음.

왕이모델(网易模式):넷이즈의 전형적인 초창기 수익모델로 자사의 기술이나 정보를 다른 기업에게 매각하여 수익을 얻는 것을 말함.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China.(www.duduchina.co.k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