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완전 해부 3편] 7전8기 마윈의 위대한 출사표 ‘알리바바’
━ 모두 ‘Yes’하는 아이템은 이미 쓸모 없는 아이디어
━ 마윈,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라
사람들은 비즈니스를 논할 때 블루오션을 언급한다. 현재 존재하지 않거나 알려져 있지 않아 경쟁자가 없는 유망한 시장, 하지만 이 블루오션을 찾기 위해서는 수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과 다른, 새로운 것을 하기 원했던 마윈도 언제나 수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한 사건을 계기로 어느 누구의 발이 닿지 않은 블루오션을 발견하게 된다.
1. 블루오션 ‘B2B’
1999년 2월, 마윈은 싱가포르에서 ‘아시아 전자상거래 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하게 된다. 당시 세계 전자상거래를 주름 잡던 거상들은 모두 미국과 유럽에 몰려있었다. 그래서 이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미국, 유럽인들이 대부분이였고, 아시아인이라고는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
아시아에서 열린 대회였지만 모든 관심이 미국과 유럽에 쏠린 것에 화가 난 마윈은 돌연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잡고 아래와 같이 외쳤다.
“미국은 미국이고 아시아는 아시아다. 우리는 이베이 아마존의 모델을 따라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방법으로 시장을 개척할 것이다.”
작고 깡마른 한 아시아인이 외친 한마디에 대회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때 한 사람이 마윈에게 다가와 “그러면 당신이 생각하는 아시아의 전자상거래 모델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고, 마윈은 “이 일은 내가 집으로 돌아간 후 생각할 일이다. 지금은 나도 모른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대회장의 사람들은 마윈을 비웃었다.
그날 이후 마윈은 “아시아에 맞는 전자상거래 모델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고민했다. 이전부터 마윈은 전자상거래에 대해 관심이 많아 미국과 유럽의 전자상거래 모델을 유심히 지켜봤지만, 당시 미국에서 유행하던 온라인 서점, 온라인 마켓 등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는 중국에서 은행 결제 문제, 배송 문제 등 여러 이유로 실행 불가능했다.
마윈은 야후의 창업자인 제리 양(Jerry Yang)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당시 야후는 포털부터 거의 모든 인터넷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고, 업계에서는 독보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제리 양은 “사업은 어떤 것이 성공할지 모르기 때문에 여러 사업에 도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당시 야후의 이러한 사업 방식은 인터넷 업계의 성공 공식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마윈은 제리 양과 생각이 달랐다. 인터넷의 가능성은 무한정한 금맥과 같지만 모든 것을 다하게 되면 나중에는 모든 부분에서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윈은 “90%가 좋다고 말하는 아이디어는 이미 쓸모없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것을 고민했다.
거듭된 고민 끝에 마윈은 경공업 제품 생산 및 유통 중심지인 이우(义乌)를 인터넷으로 옮겨 놓겠다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고안하게 된다. 생산자와 공급자를 잇는 세계 최대의 전자상거래, 중국의 생산력을 전세계에 알릴 수 있는 이 모델이야 말로 미래 중국을 움직일 수 있는 아시아만의 모델이라 마윈은 확신했다. 그리고 마윈은 이 비즈니스 모델의 이름을 ‘알리바바’라 불렀다.
2. 알리바바의 이름을 알리지 마라
1999년 2월 21일 마윈의 20평 남짓한 집에 모인 18명의 창업자, 전자상거래에 대한 마윈의 열정과 확신에 매료된 그들은 마윈의 집에 동고동락하며 알리바바를 준비했다. 월급은 단돈 500 위안(한화 약 90,000만 원), 누구도 그 이상 그 이하로 받지 않았다. 그들은 매일 단돈 6 위안(한화 약 1,000원)으로 밥을 해결했고, 외부 업무가 있을 때 먼 거리도 걸어 다니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들은 회사를 위해 허리띠 졸라매는 것은 기본이고 가정의 대소사를 제쳐놓을 정도로 알리바바에 몰두했다.
창업자 중 한 명은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20평이 안 되는 공간에 18명이 모여 있어 어려움도 많았다. 하지만 그때가 가끔 그립기도 하다.”라고 표현하며 당시 어려웠지만, 열정을 갖고 일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설계 및 운영할 수 있는 전문 IT 기술자가 필요했지만, 한 달 급여를 500 위안(한화 약 90,000원)밖에 줄 수 없어 기술자를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알리바바 창업자들의 열정과 그들의 비전을 눈여겨본 몇몇 기술자들은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어 자진해서 알리바바에 들어왔고, 그들은 서로 의지하며 한 걸음씩 전진해 나갔다.
하지만 알리바바의 열정으로도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게 되는데 바로 광고였다. 당시 바이두(百度), 소후(搜狐)와 같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들은 해외 투자자에게 받은 투자금을 바탕으로 마케팅이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든 투자했고, 당시 광고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지만 알리바바는 자금적인 문제로 마케팅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광고에 대한 알리바바의 회의는 계속되었다. 전단지 배포, 전화 마케팅, 기업 방문 등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결국 무산됐다. 마윈은 그때를 기다렸다는듯 창업자들에게 한가지 안건을 제안했다. “우리는 마케팅을 하지 말자.” 당시 공동 창업자들은 마윈의 말을 완강히 반대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알려야 할 판국에, 마케팅을 하지 말자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마윈의 생각은 달랐다. 다른 사람이 다 광고를 하기 위해 열을 올리면 우리는 오히려 하지 말고 사람들의 궁금증을 유발하자는 생각이었다.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마윈은 직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고, 긴 논의 끝에 6개월 동안 어느 마케팅 활동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후 내부에서는 마케팅에 대해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마윈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고 밀고 나갔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강조한 알리바바의 전통, 물구나무 서기
6개월 이후 반응이 올 것으로 생각했던 마윈, 하지만 그 시기는 예상보다 빨랐다. 1995년 5월, 항저우의 한 미디어가 낸 ‘세계 무역을 꿈꾸는 알리바바, 인터뷰는 거절’이라는 짧은 기사를 시작으로 경제일보(经济日报), 중국경영보(中国经营报), 중화공상시보(中华工商时报) 등 메이저 미디어들이 잇달아 알리바바를 방문했다. 심지어 미국의 한 미디어는 알리바바를 취재하기 위해 중국 저장성(浙江省)과 항저우(杭州)에 직접 연락했다. 당시 알리바바 사이트에는 이메일 주소를 제외한 전화번호, 주소 등등 어느 내용도 없다.
하지만 미디어들이 손수 알리바바를 찾아왔고 알리바바는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마케팅을 할 수 있었다.
중국 최초 인터넷 기업, 중국 최초 B2B 기업 등등 알리바바는 여러 타이틀을 갖고 있었지만,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은둔 고수처럼 몸을 숨겼던 알리바바는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용해 초기 마케팅에 성공했다. 1999년 3월 회원 수 0명, 마케팅 비용 0원으로 시작했던 알리바바, 6개월이 지난 9월에는 회원 수 8만 명에 달했고, 1999년 말에는 이용자 수 10만 명을 돌파했다.
3. 알리바바의 비하인드 스토리
1998년 마윈이 미국으로 출장 갔을 때, 마윈의 머릿속에는 온통 인터넷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날 식당에 앉아 점원을 기다리고 있을 때 문득 인터넷은 우리 생각하는 모든 것을 가진 무한한 보물 상자와 같다고 생각이 떠올랐고,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알리바바가 연속해서 떠올랐다.
가난했지만 마음이 착했던 알리바바는 도적들의 보물을 손에 넣었음에도 자신이 갖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마윈은 알리바바의 이러한 행동이 사업가가 가져야 할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윈에게 알리바바란 이름으로 회사를 세우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고, 전세계 모든 사람이 아는 알리바바라면 모든 사람이 쉽게 부르고 쉽게 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마윈은 다가오는 점원에게 대뜸 “알리바바 있어요?” 물어봤다. 당황한 점원은 “알리바바는 없고 피자는 있다.”라고 말하며,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은 안다”고 말했다. 또한 마윈은 옆자리에 앉은 한 미국 여성에게 “알리바바에 대해서 혹시 아는가?”라고 물어봤고, 그 여성은 “매우 잘 알죠. 매일 저녁 마다 아들에게 그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마윈은 세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세계 모든 사람들이 쉽게 부를 수 있는 이름, “열려라 참깨”라는 주문처럼 고객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생각나는 주문, 알리바바와 같이 제물을 탐하는 것이 아닌 다른사람과 함께 공존하는 철학을 함축한 알리바바라는 이름은 전세계로 뻗어 나가는데 가장 적합한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윈은 이름을 계속 마음에 품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항저우로 돌아온 후 새로운 사업을 생각할 때도 그의 마음속에는 항상 알리바바라는 이름을 염두해 두고 있었다.
이후 마윈은 인터뷰에서 “알리바바라는 이름은 내가 평생 말한 단어 중 최고의 한마디”라고 칭했다.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마윈은 자신이 이전부터 생각했던 알리바바라는 이름을 사람들에게 소개했고 공동창업자들은 그 의미를 듣고 새로운 사업의 이름으로 찬성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곳에서 복병을 만나게 된다. 마윈은 알리바바라는 이름의 도메인을 등록하려 했지만 캐나다의 한 기업이 알리바바라는 이름을 마윈보다 2년 먼저 등록했기 거절됐다. 낙심한 마윈은 알리바바를 도메인으로 사용하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았지만 도메인소유권을 사는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마윈은 해당 기업에 연락해 도메인을 사고 싶다고 전했고 캐나다 기업은 1만 달러를 요구하며 이보다 낮으면 팔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동료의 피 같은 돈을 도메인 하나 때문에 지불할 수 없다고 한 마윈, 하지만 여전히 알리바바라는 이름에 미련이 남아 고민하게 된다.
그때 마윈의 친구 제리 양이 이 소식을 듣고 마윈에게 “당신이 생각하는 알리바바의 가치는 1만 달러인가?”라고 물었고, “전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한 이름인데 1만 달러는 아까운 돈이 아니다. 그리고 캐나다 업체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구매해야 한다.”라고 마윈을 설득했다. 이에 마윈은 고민 끝에 1만 달러를 지불하고 도메인의 소유권을 넘겨받게 되고, 이후 알리바바라는 이름으로 전세계 전자상거래 시장을 호령하게 된다.
누구에게나 창업은 어렵다. 실패를 경험한 마윈에게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비전과 철학을 가지고 또 다른 시장에 도전했고, 동료들과 함께 어려움을 극복했다. 모두가 한 방향으로 갈 때 조금 다른 방향을 선택하며 오히려 목표로 가는 첩경을 발견했던 알리바바, 그 선택이 현재의 알리바바를 있게 한 원천이 되었다.
저작권자ⓒ두두차이나 DuDu China.(www.duduchi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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