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스물 두명의 神, 3억명의 信者, 그리고 하나의 공
[지상 최대의 '축구 결승전' 현장을 가다]
전세계 3억명 시청… 바르샤, 중계권료 등 1000억원 챙겨
"역사에선 약자였던 바르셀로나, 축구로 세계를 정복했다"
팬들 '성지순례' 온 듯 - "볼 수만 있다면 영혼 팔겠다" 암표 1장에 300만~400만원
9만 관중 함성에 귀가 먹먹 - 전반 4분 박지성 공 잡자 맨유 응원석에선 '개고기송'
압도적 전력차로 진 맨유 - 경기후 팬들 기자에 다가와 "박지성은 오늘 잘했다" 위로
28일 오후 2시(현지시각) 영국 런던의 중심가 피카디리 서커스. 지하철에서 내려 땅 위로 올라온 뒤 맞닥뜨린 풍경은 런던이 아닌 스페인 바르셀로나였다. 런던 시민들이 약속 장소로 애용한다는 에로스 동상은 이미 FC바르셀로나(스페인)의 원정 팬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7시 45분(한국시각 29일 오전 3시 45분)부터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우승컵을 놓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와 '별들의 전쟁'을 벌일 바르셀로나를 응원하기 위해 수만명이 런던을 찾았다. 전 세계 3억명이 TV로 지켜보는 '세기의 대결'이 '축구의 성지' 웸블리 구장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상금과 TV중계권료, 입장권 수익 등 우승팀이 챙기는 돈만 1000억원에 달하는 빅매치다. 29일 주요통신사들이 쏟아낸 경기사진만 수천장에 달했다.
- ▲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올 시즌 지구촌 축구의 최고 흥행 카드였다. 맨유의 웨인 루니가 전반 34분 1―1 동점골을 터뜨리고 있다. /로이터 뉴시스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카탈루냐 깃발을 몸에 두른 원정 팬들은 쉬지 않고 응원가를 불렀다. 1936년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를 기반으로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프랑코 독재 정권은 바르셀로나를 주도(州都)로 하는 카탈루냐를 탄압했다. 카탈루냐는 한때 고유의 언어와 문화까지 빼앗겼다. 그들에게 바르셀로나 팀은 축구 그 이상의 존재다. 기자에게도 함께 노래를 부르자고 청하던 바르셀로나 팬 세르지오 루케는 "카탈루냐는 비록 역사에선 약자였지만 축구로 세계를 정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 중심가는 바르셀로나와 맨유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넘실댔다. 맨유 유니폼을 사러 축구 용품점에 들렀다. 유니폼은 동나기 직전이었다. '박지성'이라고 유니폼에 새겨 달라고 하자 점원은 "그 경기를 직접 본다니 당신은 엄청난 행운아"라고 했다.
웸블리 구장 근처엔 '500파운드(약 80만원)에 표를 구합니다', '제발 저에게 표를 주세요'란 피켓을 든 팬들이 눈에 띄었다. 맨유 팬이라는 피츠 휴잇은 "경기장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했다. 경찰 단속 때문에 암표상이 대놓고 호객행위를 하진 않았지만 이날 암표 값은 300만~400만원에 달한다고 했다.
경기 한 시간 전 양 팀의 선발 명단이 발표됐다. 박지성은 예상대로 베스트11에 이름이 보였다. 지나가던 영국 기자 한명이 어깨를 툭 치며 "축하한다"며 웃었다.
식전행사가 끝나고 챔피언스리그 주제가가 울려 퍼졌다. 헨델이 영국 조지 2세의 대관식을 위해 만든 'Zadok, the Priest(사제 사독)'을 편곡한 노래. 현장에서 들으니 그 웅장함에 소름이 돋았다. 선수들이 입장하자 9만여 관중은 거대한 카드섹션으로 자신의 팀에 힘을 실어주었다. 맨유 팬들이 펼친 내용은 'spirit of 68(1968년의 정신)'이었다. 1958년 비행기 사고로 주축 선수 8명을 잃었던 맨유는 시련을 극복하고 1968년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를 처음 들었다. 바르셀로나는 "우리는 축구를 사랑한다(we love football)"는 카드 섹션을 펼쳤다.
경기가 시작되자 양팀 응원가가 요동쳤다. 전반 4분 박지성이 공을 잡자 맨유 응원석에선 박지성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박지성, 네가 어디에 있든 너희 나라에선 개를 먹지. 그래도 괜찮아. 쥐를 먹는 리버풀 녀석들보다는 나으니까'란 가사의 '개고기송'은 맨유 팬들이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 중 하나다.
박지성 응원가가 계속 이어지길 기대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1―1 상황에서 후반 9분 리오넬 메시가 중거리슛을 꽂아 넣자 웸블리는 순식간에 캄프 누(바르셀로나의 홈구장)로 변했다. 골을 넣은 메시가 바르셀로나 팬들을 향해 달려가자 응원석은 광란에 빠졌다. 후반 24분 비야의 쐐기골이 터진 순간엔 바르셀로나 팬들의 함성으로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반면 맨유 응원석은 초상집 분위기였다. 3대1 바르셀로나의 승리가 확정되자 맨유 팬들은 썰물처럼 관중석을 빠져나갔다. 훌리건의 난동도 없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이에 맨유 팬들도 기가 죽은 듯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엔 낙담한 표정의 맨유 팬들만 곳곳에 보였다. 바르셀로나 팬들은 승리에 취해 중심가로 이미 이동한 후였다. 박지성 유니폼을 입은 기자를 보고 한 무리의 팬이 다가와 "다음 기회가 있잖아. 박지성은 오늘 잘했다"며 위로했다. 그리고 그들은 '개고기송'을 소리 높여 불렀다. 뜨거웠던 하루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특한 철학으로 축구를 예술로 만들다 (0) | 2011.07.11 |
---|---|
자전거 (0) | 2011.07.09 |
조광래 감독 “내 롤모델은 모-벵-과” (0) | 2011.06.26 |
베컴 프리킥 (0) | 2011.06.25 |
[주목! 이 게임]명작이 돌아왔다 `스페셜포스2` (0) | 2011.05.30 |
바르샤, 챔스 우승으로 1000억원 가까이 받을듯 (0) | 2011.05.30 |
챔스결승 바르사 vs 맨유 (0) | 2011.05.29 |
양준혁의 야구인생 세 가지 키워드 (0) | 2011.05.21 |
심영성, 신영록과 엇갈린 운명...`이젠 내가 기다릴게` (0) | 2011.05.21 |
제2회 제주 국제자전거 챌린지대회 (0) | 2011.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