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분만에 5골, 역전 드라마 쓴 '김병수 매직'

조선일보
입력 2019.06.25 04:04

0대4로 끌려가다 역전승
"포항이 역습작전 쓰는 것 보고 정조국 투입한 게 유효했다"

K리그 경기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김병수 강원 감독.
K리그 경기에서 선수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는 김병수 강원 감독. /프로축구연맹
"보시는 팬들은 짜릿했겠지만 (4실점을) 당한 저희는 어땠겠어요. 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죠."

24일 전화로 만난 김병수(49) 강원FC 감독의 목소리엔 전날 겪은 역전 드라마의 흥분이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강원은 23일 K리그 17라운드 홈경기에서 포항에 0―4로 끌려가다 후반 25분 조재완의 만회 골을 시작으로 다섯 골을 연속으로 터뜨리며 기적 같은 5대4 역전승을 거뒀다. 후반 추가 시간에만 세 골을 넣었다.

"솔직히 4―4가 되는 동점골 때만 해도 그냥 무덤덤하게 벤치에 서 있었는데, 후반 50분 정조국의 역전 골이 터졌을 땐 나도 모르게 그라운드 쪽으로 달려나가고 있더라고요. 라커룸에 돌아와선 태연한 척하느라 고생 좀 했습니다. 하하."

4골 차 승부를 뒤집은 건 1983년 국내 프로축구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유럽 축구에서도 드문 일이라 외신들도 이날 경기를 집중 조명했다.

영국 매체 '스포츠바이블'은 "강원은 축구 역사상 최고의 역전승을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영국 '기브미스포츠'와 독일 'TAG24'도 "스포츠 역사를 통틀어 가장 짜릿한 경기"라고 평가했다. 강원(조재완)과 포항(완델손) 두 팀에서 모두 해트트릭(한 선수가 한 경기에 3득점) 기록이 나온 것도 K리그 통산 세 번째다. 김 감독은 "K리그 흥행에 조금이나마 기여한 것 같아 기쁘다"고 했다.

23일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포항에 5대4 역전승을 거둔 강원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라커룸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23일 춘천 송암스포츠타운 주경기장에서 포항에 5대4 역전승을 거둔 강원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라커룸에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강원FC

김 감독은 2008년부터 9년간 영남대 감독을 맡아 김승대·이상기(이상 포항) 등을 길러냈다. 영남대는 포항 스틸러스의 '유망주 화수분' 역할을 했다. 누구보다 포항 선수단을 잘 파악하고 있는 김 감독은 "포항이 후반전 들어 역습 형태로 변환하는 것을 보고 스트라이커 정조국을 투입하며 공격에 박차를 가했는데 다행히 골이 제때 터져줬다"며 "선수들이 이제 능동적으로 경기하는 법을 알아가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강원은 포항전 승리로 K리그1 12개 팀 중 5위(승점 24·7승3무7패)를 기록 중이다. 2부리그 소속이던 강원은 1부리그에 승격한 뒤 2017년 6위로 선전했다. 하지만 2018년 8위로 부진했고, 시즌 도중인 8월 김병수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전술에 큰 변화를 주지 않았던 김병수 감독은 시즌 후 팀 색깔을 바꾸면서 올해 상승세를 이끌고 있다.

김 감독의 축구 철학은 간단하다. '공을 우리 마음대로 다루는 것'이다. 그는 포항전 직전에도 "내가 축구를 잘한다고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공을 원하는 곳에 보낼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라며 "천재는 원 터치로 공을 다루고, 그냥 준수한 선수는 투 터치, 스리 터치를 해야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낸다"고 했다. 김 감독은 "그런 면에서 이강인은 '축구 천재'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볼 컨트롤' 능력을 강조하는 김병수 감독은 훈련의 90%를 공을 가지고 진행한다. 김 감독이 '티키타카(탁구공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짧은 패스 위주로 전개하는 축구를 일컫는 스페인어) 전술'을 쓰는 이유도 짧은 패스 중심의 플레이가 공을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고교 시절 '천재' 소리를 들었지만 지독한 발목 부상 때문에 선수 생활을 일찍 마감했다. 그는 "선수 김병수는 불행했지만 축구인 김병수는 불행하지 않다"며 "언젠가는 감독으로 성공해 유럽에 진출하는 꿈을 꾸고 있다"고 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25/2019062500368.html

[김태륭의 원사이드컷] 서울이랜드FC 신임 감독, '축구 천재' 김병수를 아시나요?

김태륭 입력 2017.01.11. 02:17 수정 2017.01.11.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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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축구 천재의 K리그 감독 입성기

 

천재 (天才)

[명사]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

“천재를 가까운 곳에서 본 적 있는가?”

정확히 15년 전, 고려대학교 축구부 신입생 시절 동계훈련 시작을 앞두고 나는 천재를 만났다.

 

“반갑다. 나는 오늘부터 너희들과 함께할 코치, 내 이름은 김병수다. 내 꿈은 미래에 한국인 최초로 유럽 팀의 감독을 맡는거야.”

나는 신입생답게 잔뜩 긴장했지만 처음 만나는 코치의 첫 인사가 마음 속에 그대로 박혔다.

“한국 최초로 유럽 팀의 감독이 꿈이라고? 이 사람은 도대체 뭘까?”

 

2017시즌 서울이랜드FC의 감독 '김병수'

 

그날로부터 15년이 지났다. 2017년 1월 9일, ‘천재’ 김병수는 서울 이랜드FC의 감독이 되었다. 2003년 포항 스틸러스 코치를 거쳐 2008년 영남대학교 감독으로 부임한 김병수는 지난 시즌 대학무대 4관왕을 통한 대학 최초의 그랜드슬램(U리그 챔피언십, U리그 권역우승, 춘계연맹전, 추계연맹전, 전국체전)달성을 비롯하여 9년 간 무려 7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이 기간 동안 이명주, 김승대, 손준호, 신진호, 임채민 등이 배출되며 영남대는 2010년 이후, 한국 대학축구에서 가장 우수한 성적을 기록한 팀이 되었다.

 

최근 2~3년 간 K리그 클럽 감독직에 공백이 생길 때 마다 몇몇 이름들이 거론됬다. 용인대 이장관, 성균관대 설기현, 고려대 서동원, 그리고 영남대 김병수. KBS 한준희 해설위원은 대학 축구 중계 때 마다 “U리그의 시메오네는 용인대 이장관, 과르디올라는 영남대 김병수” 라고 말할 정도로 확실한 색깔을 갖고 있었다.

그동안 해마다 여러 링크와 설이 난무했지만 김병수 감독은 영남대에 남았다. 아니 떠나지 못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그 사이 K리그 클럽의 감독 자리는 대중에게 익숙한 ‘레전드’들이 차지했다. 신임 감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팀의 수뇌부들은 명성과 선수 경력에 보다 높은 점수를 줬다. 그래서 축구계 한 편에서는 김병수 감독의 프로 행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도 있었다.

 

 “실력은 인정하지만 아마 어려울거야.” 라는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K리그 챌린지에서 창단 후 세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서울 이랜드FC는 과감한 선택을 했다. 구단의 공식발표가 나온 후, 축구팬들 사이에서 "김병수 SEFC"에 대한 많은 의견이 오가고 있지만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이 그림을 보는 것이 꿈이었다.

 

은둔하던 ‘천재’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직 김병수가 누구인지, 왜 그를 천재라고 부르는지 대부분 공감하지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지난 15년 간 내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감정들이다. 거짓도 과장도 없는 만화 같지만 현실에서 일어난 천재의 이야기이다. ‘천재’의 이야기를 믿으려면 우선 그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몇 가지 거짓말 같은 이야기를 믿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이 글을 빌어 하나씩 꺼내보려 한다.

 

국가대표 시절 김병수

# 선수 김병수

차범근, 김주성, 최순호처럼 축구 선수들은 주로 현역 시절의 업적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젊은 축구팬들은 축구선수 김병수가 낯설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은퇴하는 순간까지 그는 항상 소속팀의 왕이였지만 고려대 재학 4년 간 그가 출전한 공식전은 단 4경기, 몇 년의 올림픽 대표팀 경력과 일본 2부리그에서 4년 간 100경기 출장, 70골을 기록한 것이 현역 시절 업적의 전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축구인들은 그를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천재’로 기억하고 있다. 선수는 현역 시절의 업적으로 평가되지만 김병수는 그 업적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본능적인 재능이 뛰어났다. 하지만 경신고 시절부터 시작된 발목 통증은 선수 시절 내내 그의 아킬레스건이 되었다. 발목 통증으로 인해 1년간 제대로 된 훈련을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대학 시절 고연 정기전에서 교체 출전한 후반 20분 동안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경기를 끝내 버리기도 했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대표팀을 지휘한 독일의 명장 크라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내 축구 인생 50년 동안 처음 만난 천재다. 독일로 데려가고 싶다.”

 

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총 감독 고(故) 데트마르 크라머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일본 전에서 추가 시간 터진 김병수의 결승골로 한국은 올림픽 본선 행을 확정했다. 하지만 또다시 재발한 발목 부상 때문에 본선에서는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없었다.

 

대학 졸업 후 부상으로 축구를 떠나 방황하던 무렵, 94년 미국월드컵 예비명단에 자신의 이름이 난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김호 당시 대표팀 감독을 찾아가 자신의 발목 상태를 설명한 뒤 스스로 대표팀에서 나오게 된다. 당시 김호 감독은 사라진 김병수의 근황을 찾지 못했지만 과거에 확인한 그의 천재성을 믿고 아무 연락없이 대표팀 명단에 그를 올렸다고 말했다. 김

 

병수의 발목 상태는 심각했다. 넉넉지 않은 환경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고 성인이 되었을 때, 양 쪽 발목은 이미 만신창이 상태였다. 대학 4학년 때 비로소 처음 받은 수술은 28살의 이른 나이에 일본 오이타에서 은퇴할 때까지 무려 다섯 차례나 더 진행됬다. 보통 축구 선수들은 발목 인대가 0.1~0.3인치 늘어나도 큰 통증을 느끼는데 김병수는 첫 수술 당시 0.9 인치가 늘어난 상태였다.

 

한국 축구에는 늘 ‘천재’가 있었다. 때로는 언론에서 먼저 언급하기도 했고 김병수 처럼 그를 경험한 사람들이 자연스래 그렇게 부르기도 했다. 김병수를 천재로 부르는 이유는 그가 단순히 재능만을 타고 난 것이 아니라 동화나 신화에서 천재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지는 고난과 방황, 좌절과 상처를 의연하게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과거 ‘선수 김병수’의 은퇴 무렵, 한 축구인의 인터뷰 문구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김병수의 은퇴로 인해 한국 축구는 50년 이상 후퇴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병수 감독은 해체 위기에 놓여있던 영남대 축구부를 9년 동안 전국 최강의 팀으로 변모시켰다.

# 지도자 김병수

1997년 일본 오이타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끝으로 김병수는 선수에서 지도자로 진화했다. 모교 경신고를 시작으로 1999년부터 포철공고에서 본격적인 코치 업무를 시작했다. 사실 당시 포철공고는 고교 무대에서 특별한 팀 이였다. 당시 고교 및 학원 축구는 지금과 같은 리그 제도가 아니였다. 연중 6~7개의 전국 대회가 있었는데 그 중 3월에 개최되는 전국 춘계 고교연맹전이 전국 150여개 팀이 총출동하는 가장 큰 대회였다.

 

그리고 2001년 춘계 고교연맹전에서 내가 소속된 서울체고는 3위를 차지했다. 8강 경기를 마치고 결승전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포철공고의 경기를 동료들과 지켜봤는데 숙소에 들어와서 모두 한동안 말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 팀들은 스위퍼 시스템을 사용했고 맨투맨으로 수비를 하며 압박 또는 라인 컨트롤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게 뭔지도 몰랐다. 시즌이 개막하기 전부터 포철공고가 특이한 축구를 구사한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경기를 실제로 본 후, 우리는 모두 충격을 받았다. 전방 압박, 빌드업, 삼각형 형태의 패싱플레이, 포백을 기반으로 한 라인 컨트롤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축구와 전혀 다른 것으로 경기를 하며 상대를 압도했다.

 

이듬해인 2002년, 나는 고려대로 진학했고 그곳에서 때마침 고려대로 자리를 옮긴 김병수(당시 코치)를 만났다. 2002년은 모두에게 한일 월드컵 4강으로 기억되겠지만 나에겐 월드컵보다 스승 김병수와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딱 1년, 개월 수로 따지면 12개월도 채 되지 않는다. 동계 훈련 시작 무렵에 와서 11월 마지막 대회 직후 포항 코치로 떠났으니까.

영남대 감독 시절 김병수 감독

 

하지만 지도자 김병수는 1년 동안 선수들의 마음을 훔쳤다. 나 뿐만 아니라 당시 고려대학교 축구부 소속의 모든 선수들은 특별한 것을 경험했다. 당시 고려대 축구부에는 스타 플레이어가 많았다. 차두리, 이천수가 대학생 신분으로 월드컵에 출전했고 김정우, 최성국, 김영삼, 박병규 등 청소년 및 올림픽 대표 선수들도 대거 포진해있었다. 한창 자신감 넘치고 멋도 부리며 자신의 축구에 대한 고집도 생길 시기였지만 김병수 코치의 말은 법이였다.

“그가 알려준대로 그라운드에서 행동하면 완벽한 승리가 따라왔기 때문이다.”

 

훈련은 하루에 한 차례, 정말 길어도 2시간을 넘기지 않았다. 훈련 프로그램도 매일 조금씩 달랐다. 우리는 밤이 되면 몰래 숙소를 탈출하려는 노력 대신 최대한 빨리 눈을 감아보려 했다. 잠을 빨리 자야 내일이 빨리 오고, 내일이 빨리 와야 또 훈련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은 무슨 훈련을 하게 될까?”

스무살이 넘은 선수들이지만 축구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의 기분으로 돌아갔다.

 

15시에 훈련이 시작하면 한 시간 전 부터 미리 운동장에 나왔다. 1분 이라도 빨리 훈련을 시작하고 싶었다. 훈련이 끝나면 선수들은 아쉬워했고 한 세트만 더 하자는 선수들의 아우성을 뒤로 하고 김병수 코치는 웃으며 유유히 운동장을 빠져나갔다. 훈련 분위기는 항상 집중되어 있었고 우리는 서로 잘 보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김병수 코치는 선수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았다.

 

나 역시 '스승'김병수 감독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 번은 내가 전술 훈련 도중 실수를 했다. 누가봐도 왼쪽으로 공을 보내야 하는데, 볼 터치가 좋지 않아 타이밍을 놓쳐 어쩔수 없이 오른쪽으로 공을 보냈다. 곧바로 김병수 코치는 크게 ‘스톱!’을 외치며 나에게 다가왔다. 모두가 제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봤고 나 때문에 흐름이 끊겼기에 창피하고 두려웠다. 혼이 날 각오를 하고 고개를 들었는데 김병수 코치가 내게 말했다.

 

“태륭, 방금 선택한 오른쪽도 나쁘지 않았어. 그런데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왼쪽으로 한번 보내봐. 그럼 더 다른게 보일거야.”

‘나쁘지 않았어!’

 

지금도 경기 해설 할 때, 내가 자주 쓰는 말이다. 이 말이 담고 있는 의미와 힘을 직접 경험했기에 자연스럽게 자주 사용하게 된다. 김병수 감독의 걸음걸이를 보면 여섯 차례 수술의 흔적이 느껴진다. 가끔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선수들과 가벼운 패싱 게임을 함께 진행했다. 그리고 그 아픈 발목으로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볼터치와 발목 스냅만으로 꼼짝 못 하게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공을 뺏지 못한 두리 형(차두리)이 김병수 감독을 힘으로 밀어내기도 했다.

 

지도자 김병수는 말그대로 축구에 미친 사람이였다. 노트북 크기의 작전판을 펼치면 4~5시간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작전판을 응시하며 자석 알을 바둑을 두는 것처럼 움직일 때 그는 진심으로 행복해보였다.

 

팀 미팅이 많진 않았지만 한 번 할 때마다 많은 명언들이 탄생했다. 그의 말에 우리는 귀를 기울였고 미팅이 끝나면 저녁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 공을 들고 운동장으로 향했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 부글부글 타올랐기 때문이다.

 

“내 축구는 휴머니즘이다. 축구도 인간이 하는거라 감동이 있어야 한다.”

“개인은 평범하게, 팀은 특별하게.”

‘나’를 버리고 ‘우리’안에 들어오면 축구는 더욱 특별하고 재밌어진다.

“축구는 발도 머리도 아닌 가슴으로 하는 것.”

 

그가 포항 코치로 떠난 후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다시 얼굴을 마주보고 인사를 나눈 건 그후 로부터 9년이 지난 2011년 이였다. 영남대학교 감독 김병수와 고려대학교 코치 김태륭으로.

그가 팀을 떠난 후 오랜 시간동안 우리 모두 그를 그리워했다.

 

"병수 쌤이 있었으면...“

“병수 쌤이였다면...”

 

내가 대학 3학년 때, 한밤 중 갑자기 김병수 선생님이 기분 좋게 취한 모습으로 숙소에 나타났다. 그 날 애들은 김병수 선생님을 놔주지 않았다. 그 중 몇 명은 울었다. 분명 기억난다.

 

내가 고려대 코치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해설을 시작할 무렵, 스승이자 영남대 감독 김병수가 조금은 편하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20살 때 김병수 축구를 경험한 것이 오히려 어려움이 되기도 했다. 그의 후임으로 온 코치나 대학 졸업 후 활동한 모든 팀에서 지도자에 대한 나의 갈증은 해소되지 않았다. 내 축구 철학의 모든 기준은 김병수 축구에 맞춰져 있었다. 2012년 여름 무렵, 다짜고짜 용감하게 대구로 찾아가서 술 한잔 사달라고 했다.

 

그 자리에서 10년 동안 못한 얘기, 그동안의 그리움을 다 쏟아내며 갈증을 해소했다. 김병수 감독님은 새벽에 유럽 축구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제는 내가 새벽 중계를 하면 하프타임에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의견을 주고 받는다. 중계한 경기에 흥미로운 요소가 나오면 경기 종료 후 전화로 수다를 떤다. 나는 집으로, 감독님은 학교로. 아, 이제 감독님은 클럽 하우스로 가시겠지만.

 

영남대학교는 2008년 김병수 감독 부임 이후 대학 무대의 강호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김병수 감독은 해체 위기였던 팀을 맡아 2010년 춘계/추계 연맹전 우승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대학팀이 차지 할 수 있는 모든 대회의 우승을 차지했다. 또한 FA컵에서는 내셔널리그 팀들을 꺾고 3년 연속 성남FC를 상대로 접전을 치르며 이슈가 되기도 했다.

 

프로팀을 상대로 해마다 다른 경기 스타일과 전략으로 성남을 곤란하게 했고 특히 2016년 FA컵에서 선보인 ‘멀티 포메이션’ (공격 시 포백, 수비 시 스리백)은 세계 축구의 트렌드를 오히려 앞서나간 전략이였다. 경기 후 영남대 출신의 성남 수비수 임채민이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얘네(영남대)랑 경기하면 꼭 한 명이 비어요.”

아마 그 때 나와 내 동료들이 느꼈던 감정을 영남대 선수들도 느끼며 성장했을 것이다.

“병수 쌤 밑에서 축구를 새로 배웠어요.” 라고 영남대 선수들이 인터뷰에서 얘기 할 때 나도 모르게 살짝 질투가 났다. 이제는 서울이랜드FC 선수들이 그 느낌을 경험 할 차례다. 어쩐지 조만간 그 선수들이 부러워 질 것 같다.

FIFA 강사, 리차드 베이트는 김병수 감독을 극찬했다.

# 서울 이랜드FC의 감독, 김병수

어느 분야에서나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다른 경우가 많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 받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20살 때 김병수 감독을 알게 된 이후, 지금까지 지도자 김병수의 지도력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축구인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비주전급으로 김병수 감독과 함께 했던 선수도 그의 지도 능력에 대해서는 엄지 손가락을 들어올린다. 그를 경험하지 못한 선수들에게 어쩌면 그는 동화 속에 존재하는 인물 같을 수도 있다. 아! 아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했던 상황에서 서울 이랜드FC 감독이 된 지금 이 현실이 이미 동화 같은 이야기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까지 적은 모든 이야기는 100% 실화다.

 

작년에 K리그에서 이슈가 된 P급 지도자 자격증. 지도자 라이센스 중에 가장 레벨이 높은 것이 P급이다. 4년 전, 김병수 감독이 P급 라이센스를 취득 할 때 세계적으로 유명한 베테랑 강사 리차드 베이트가 강습회를 진행했다. FIFA에서 주로 활동하며 전 세계에서 P급 강습회를 진행한 리차드 베이트가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사람이 바로 김병수다.

 

“전 세계에서 지도자 강사로 40년 활동했지만 김병수는 특별한 재능을 갖고 있다.” - 리차드 베이트

 

지난 15년 간 김병수는 지도자로 활동했다. 그의 첫 제자들 중 몇몇은 이미 선수에서 은퇴하여 스승처럼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고 성남에 입단한 김윤수처럼 이제 막 프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제자도 있다. 해설을 하며 K리그 현장을 찾을 때 자연스럽게 선수들과 인사를 나눈다. 재미있는 사실은 ‘김병수 축구’를 경험한 김병수의 제자들은 초면에도 불구하고 유독 말이 잘 통한다. 시대와 팀은 달랐지만 같은 철학의 축구를 배웠고 그것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으며 감독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선수 시절, 김병수 감독의 지도를 받은 이성규 (현 인천 유나이티드 유스 감독)는 김병수 감독의 프로 행 소식에 SNS로 소감을 전했다.

‘그라운드에서 순종만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한 선수 중 한 명입니다. 김병수 감독님 존경합니다. 감독님의 축구를 맘것 펼쳐주십시오. 응원합니다.’

 

'뭔가 가슴찡한! K리그에 앞으로 새롭고 재밌는 일이 생길 것' - 신진호 선수 sns

신진호(상주 상무)를 비롯한 옛 제자들도 자신들의 SNS으로 소감을 전했다. 재미로 하는 이야기지만 김병수 감독의 제자들로만 팀을 꾸릴수 있다면 어마어마한 스쿼드를 만들 수 있다.

김병수 감독은 첫 공식 인사 영상에서 자신의 포부를 간단하게 밝혔다.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것이 경력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길 희망합니다. 볼을 소유하고 경기를 통제하며 신명나는 축구를 하도록 특별한 노력을 하겠습니다.“

 

서울이랜드FC는 3대 감독으로 김병수 감독을 선택했다. 구단의 권성진 지원실장은 "팀의 방향성과 가장 잘 맞는 김 감독을 선택했다. 서울 이랜드는 사람을 가장 중요시한다. 직접 경기를 하는 선수와 관람하는 팬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축구를 펼칠 수 있는 사람이 김 감독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전술적으로 뛰어난 축구, 기존 한국 축구에서 볼 수 없었던 참신한 축구를 보여줄 수 있을 것" 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서울 이랜드FC의 세번째 시즌, 이제는 스타일을 갖춰야한다.

김병수의 SEFC’는 이번 겨울을 바쁘게 보내야 한다. 서울이랜드는 새 시즌을 앞두고 전력의 변화가 크다. 주민규, 김동철, 김동진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했고 아직까지 큰 이슈가 되는 영입 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외국인 선수 역시 전면 교체 대상이며 김병수 감독은 대폭 젊어진 선수단으로 프로 첫 시즌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시기는 썩 좋지 않다.

 

서울이랜드 선수단은 동계 프리시즌 훈련 둘째날 새로운 감독을 맞이했고 대구에서 영남대의 새로운 시즌을 구상하던 김병수 감독은 이제 남해에서 처음부터 새롭게 팀을 구상해야 한다. 또한 영남대 초창기부터 호흡을 맞춘 김현준 코치도 감독 이적에 따른 영남대의 혼란을 최소화 하기 위해 영남대에 남아 지휘봉을 이어 받을 예정이다. 사무국 역시 바쁘다. 새로운 팀에 팔요한 적합한 재료를 빠르게 찾아 식단 구성을 완료해야 한다.

 

이미 재정비를 마치고 프리 시즌에 돌입한 다른 팀들에 비해 스타트는 늦은 감이 있다. 2017시즌 K리그 챌린지는 과거 어느 해보다 치열한 경쟁이 예상된다. 클래식에서 강등된 성남FC은 박경훈 감독을 영입하여 강력한 전력을 구축했다. ‘조리뉴’ 조진호 감독을 영입한 부산 역시 탄탄한 스쿼드로 성남과 함께 리그 내 가장 강한 구성으로 평가된다. 나머지 8개 팀의 전력은 사실상 차이가 없다. 박경훈, 조진호를 비롯하여 김종부, 조덕제, 이흥실 그리고 김병수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3년 차 서울이랜드, 그리고 김병수 감독의 프로 데뷔 시즌이 궁금해진다. 김병수 감독이 스스로 말한것처럼 서울이랜드는 그의 경력에 끝이 아닌 시작이 되길 기원한다.

 

“축구는 감동입니다. 선수들을 먼저 감동시키고 그 원동력으로 팬들을 감동시키는 축구를 하 겠습니다.” - 서울이랜드FC 감독 김병수


첨부: 2002년 12월, 코치 김병수 고려대학교를 떠나며 제자들에게 남긴 편지

나 김병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참 웃기는 일이 많았어. 내가 난데라며 잘난척 하던 너희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단다. 정규 알지? 광윤이는 어떠했고, 정우또한 어떠했냐. 그리고 성용이의 투정. 또 광현이는 심각하게 선생님에게 얘기했지. 대체 무엇이 잘못 되었느냐고....

 

명청하게 말이 없던 기원이 보다는 기특했다. 묵묵히 발전했던 영근이는 대견했어. 진우의 순진함에 가슴이 아프기도 했고, 재완이가 뇌가 부었다고 할 때는 어이가 없기도 했다. 석근이의 당당함은 나에게 기쁨을 주기도 했단다. 낙영이의 성장을 보면서 미래를 기도했고, 무엇보다도 모범생이었던 영삼이와 병규에 대한 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아 기쁘기 그지 없다.

 

얼굴로 잘난척하는 수진이는 아직도 걱정이 태산이니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늘 자기들끼리만 어울려 다니는것도 마음에 안들고... 경환이는 머리 잘라라. 동헌이 성민이 그리고 용형이는 일년간 수고했다. 성국이는 마지막 수업을 기억하고, 길훈이 효진이는 경쟁력을 갖길 바란다. 민행아 용찬아 부디 열심히 해라. 병민이 승환이는 팀에 합류하는 정신이 부족한것 같아 걱정이다.

철호야 너는 스스로가 알거야 ....착한 철호야...... 그리고 착한 태륭이 작전판 만들어 주어서 고마워.

 

후 힘들다. 너희들을 통제하면서 힘이 들었고, 적어도 언젠가는 나의 뜻을 이해할거라 믿으며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려 노력했단다. 실수와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우리들의 기대치 즉 너희들의 발전을 나는 숨죽여 지켜 보면서 때론 나 역시 힘이 많이 들었었단다.

너희들은 모르거야 내가 가지고 있었던 사랑을 말이야. 가슴 절이며 구애했던 나의 열정을 너희들은 아마 모를거야. 항상 머리로 생각하지 말고 가슴으로 느끼길 기대하마.

 

내년에는 문제 없을거야. 너희들은 모르겠지만 이미 나는 너희들에게 축구를 하면서 나아갈 방향을 몸으로 느끼게 만들어 주었어. 절대로 용기를 잃지말고 정진하길 바래.

 

우리가 올해에는 성적을 못내었지만 그것은 예견된 일이었고 나는 너희들에게 미래를 위하여 근본적인것을 교육시켰기에 후회는 없어. 언젠가 먼 훗날에 우리가 다시 만날때에는 서로가 부끄럽지 않도록 각별한 노력 하기를.... 적어도 나는 너희들을 사랑했었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섰다는것을 잊지않길 바래.

그리고 언젠가 너희들이 잘난척하는것을 몸소 보고 싶기도 한 밤이야. 멋대가리 없는 자식들아 잘 있어...... 응제 현호 성민아 유종의 미를 거두었으면 좋겠다. 내게 있어 첫 졸업생인 너희들을 사랑한다. 정형이는 열심히 해라.

'저세상 몸값' 네이마르, 이적료+5년 연봉= 7,893억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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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풋볼] 윤경식 기자= '거대 구단' FC바르셀로나가 감당할 수 있을까 궁금한 네이마르의 몸값이 공개 됐다.

스페인의 '마르카'는 22일(한국시간) "네이마르의 바르셀로나 입단이 진짜 가능성이 있다. 파리 생제르맹이 네이마르 이적 제의를 들어볼 의사가 있다. 그러나 그는 절대 저렴하지 않다"라면서 "바르셀로나의 호셉 마리아 바르토메우 회장은 5년 동안 6억 유로(약 7,893억 원)를 써야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적료는 2억 5천만 유로의 이적료에 5년 동안 연봉이 3억 5천만 유로가 사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풋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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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마르는 지난 2017년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기록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생제르망(PSG)으로 이적했다. 세계 최고 이적료인 2억 2,200만 유로를 기록했다.

곧바로 팀에 녹아들며 적응을 마쳤지만, 네이마르를 둘러싸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두 시즌 연속으로 파리 생제르맹이 유럽 대항전에서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을 기록했고, 본인 역시 부상으로 제대로 경기에 나설 수 없자 그가 스페인 무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보도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최근에는 PSG의 알 켈라피 회장은 "선수들이 연예인처럼 행동하는 건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발언하며 네이마르의 이적을 암시하기도 했다. 또한, 스페인의 '문도 데포르티보'는 프랑스 '레퀴프'를 인용해 네이마르가 PSG의 나세르 알 켈라피 회장에게 "더 이상 PSG에서 뛰고 싶지 않다. 난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 곳은 떠났으면 안됐던 곳 이었다"라 말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바르셀로나 역시 네이마르의 복귀를 반기는 분위기다. 최근 리오넬 메시는 인터뷰를 통해 "어떤 선수가 네이마르와 뛰고 싶지 않겠는가?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여기에 더해 '스포르트'는 바르셀로나 내부 소스를 인용해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네이마르의 복귀를 환영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구단 관계자는 이 매체와 인터뷰서 "우리 모두가 실수를 할 수 있으며, 네이마르는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 곳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며, 이곳에서 다시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라고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네이마르의 복귀에 필요한 금액이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이다. '마르카'는 "바르셀로나의 바르토메우 회장이 감액이 없다면 거래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바르셀로나가 예상하고 있는 이적료는 2억 유로(약 2,631억 원) 선이며, 3,600만 유로(474억 원)에 해당하는 연봉 역시 삭감 요구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Copyright ⓒ 인터풋볼.

게임처럼 재미있는 ‘스포츠 테크’ 뜬다

IoT, AI 등 접목해 운동에 흥미 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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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보건기구(WHO)가 2017년에 펴낸 보고서에 의하면, 전 세계 비만 어린이 및 청소년의 수는 지난 40년 동안 10배 이상 늘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초중고생 10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2018년도 학생건강검사 표본 통계에 의하면 2014년에 21.8%였던 비만군이 25%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의 비만 증가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은 바로 게임이다. 실감 나고 풍부한 콘텐츠를 가진 게임으로 인해 아이들은 운동과 스포츠로부터 멀어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운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운동능력이 저하되고 대신 체중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운동을 하지 않는 이유는 게임보다 재미가 없고 단조롭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사물인터넷(IoT)과 인공지능(AI) 등의 첨단 기술을 접목해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운동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스포츠 테크(Sport Tech)’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화제다.

 

‘2019 KSPO 인도어 사이클링’ 대회의 예선전 장면. 최근 들어 IoT 등의 기술을 운동기구에 적용해 흥미를 부여한 스포츠 테크가 인기를 끌고 있다. ⓒ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총괄본부

‘2019 KSPO 인도어 사이클링’ 대회의 예선전 장면. 최근 들어 IoT 등의 기술을 운동기구에 적용해 흥미를 부여한 스포츠 테크가 인기를 끌고 있다. ⓒ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총괄본부

 

지난 4월 6일 광명 스피돔에서는 국민체육진흥공단 경륜경정총괄본부 주최로 ‘2019 KSPO 인도어 사이클링’ 대회가 열렸다. 인도어 사이클링 대회란 스마트 트레이너와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활용한 실내에서의 자전거 경주로서, 실제로 자전거를 타는 것처럼 시속 및 RPM 등의 데이터가 나와 승부를 겨루는 것을 말한다.

 

빙판과 추위 등으로 인해 실외 라이딩을 즐기기 어려운 겨울철을 위해 실내에서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것이 트레이너다. 그런데 기존 트레이너의 경우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무료함으로 인해 금방 싫증을 느끼기 십상이다.

 

이 같은 단점을 보완한 것이 바로 스마트 트레이너다. 각종 측정장비가 내재돼 있어 최고 속도 등의 기록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것은 물론 전 세계 유명 자전거 라이딩 코스가 실제처럼 자전거 앞의 모니터에 펼쳐지기도 한다.

 

실제 라이딩 코스처럼 즐기는 스마트 트레이너

자전거 속도에 따라 영상이 움직이는 것은 물론이며, 오르막길 경사에 따라 페달을 밟는 강도도 달라진다. 심지어 같은 코스를 달린 전 세계 자전거 마니아들이 기록과 자신의 기록치를 비교할 수도 있다. 덕분에 미세먼지나 우천 등으로 밖에서 자전거를 타기 어려운 경우에도 실내에서 실감 나게 라이딩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지난 4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월드 IT쇼 2019’에서는 스탭퍼나 실내자전거 등의 실내운동기구에 간단히 부착하는 것만으로도 가상현실(VR) 피트니스를 즐길 수 있는 IoT 센서가 출품돼 눈길을 끌었다.

 

엠투미라는 VR운동기구 업체가 만든 이 제품은 고가의 VR 장비 없이 IoT 센서를 부착하기만 하면 기존의 실내 운동기구를 훌륭한 VR 피트니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유산소운동 및 근력운동이 얼마큼 진행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으며, 사용자의 운동 데이터가 통계로 저장되어 자신에게 적합한 운동의 맞춤 분석이 가능하다.

 

내년에 도쿄올림픽이 개최되는 일본에서도 기발한 스포츠 테크 제품들이 출시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반다이 사가 지난해 12월에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판매를 개시한 IoT 스포츠 운동화 ‘언리미티브(ULIMITIV)’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제품은 운동화 깔창 속에 가속도 센서를 내장한 유닛을 넣음으로써 발바닥으로 지면을 두드리는 것만으로 블루투스를 통해 앱과 연결된다. 앱에는 걷기, 달리기 등의 도보 수를 포인트화할 수 있는 ‘필드 모드’와 좌우 반복 달리기, 점프 등 6개의 훈련 동작 포인트를 쌓는 ‘얼티메이트 모드’가 있다.

 

이렇게 쌓은 포인트로 친구나 다른 유저들과 내기를 하거나 측정치의 랭킹을 확인함으로써 운동 동기를 부여해 신체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 이 제품의 특징이다. 초등학생 시기는 운동신경이 발달하는 때이므로 이 시기에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은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

 

구속이나 회전수를 알려주는 IoT 야구공

한편, 일본의 소프트웨어 회사와 스포츠용품 회사가 공동 개발한 IoT 야구공 ‘SSK 테크니컬 피치’는 일본 프로구단 중 8개 구단이 시험적으로 도입할 만큼 야구선수들에게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일본 도쿄 무역관의 자료에 의하면, 이 제품은 야구공 중심부에 3개 축의 가속센서와 지자기 센서, 각도, 속도 센서 등 9개 센서를 내장한 IoT 야구공이다. 따라서 공을 던지기만 해도 스마트폰에 구속이나 회전수, 회전축, 구종, 변화량 등의 투구 데이터가 전송된다.

 

이 같은 데이터는 야구선수와 지도자 간의 신뢰를 향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투수의 투구폼이나 타격폼 등은 비디오 촬영을 통해 객관적 분석이 가능하지만 공의 궤도나 회전 상태 등의 정보는 지도자의 감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지도자의 지도법에 신뢰하지 못하는 선수들도 간혹 있었다. 하지만 IoT 야구공에 의한 수치화는 지도자와 선수 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알기 쉬운 지도 및 효율적 연습에 도움이 된다. 이 제품은 프로구단뿐만 아니라 어린이 야구단 및 중고생의 특별활동 연습에도 활발히 도입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올림픽 등 각종 스포츠 이벤트를 앞두고 있는 일본은 IoT나 AI 등에 의한 스포츠 테크를 비롯해 스포츠산업 진흥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일본이 스포츠 진흥에 힘쓰는 이유 중 하나는 초고령 사회를 맞아 날로 증가하고 있는 의료비에 있다. 일본은 초고령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스포츠 테크 분야의 지원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이성규 객원기자다른 기사 보기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9.06.21 ⓒ ScienceTimes
그립다! 2002 한일월드컵 형님들, 요즘 어디서 뭐 하셈?(下) 
  • 김의겸 기자
  • 승인 2019.06.20 11:02
  • 댓글 0

 

[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어느덧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신화’ 주역들은 국내 축구계의 주요 인적 자원으로 곳곳에서 터를 잡고 중요한 역할과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대한민국 땅이 좁다며 해외로 나가 맹활약을 펼치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국축구의 상징인 국가대표 팀에서 후배 양성을 위해 피땀을 흘리는 이들도 있다. 

이번에는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 2002 월드컵 당시 한국은 8강에서 스페인을 꺾고 4강에 진출하는 신화를 이룩했다. [사진=연합뉴스]

 

◆ 해외파 : 지도자로서 아시아 전역에 떨치는 한국 축구 위용?

△ NO.1 이운재(GK) : 지난해까지 2시즌 동안 수원 삼성에서 골키퍼 코치를 역임하다 올해 들어 중국 U-25 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부임했다. 2013~2016년 U-23 대표팀, 2016년 성인 대표팀 골키퍼 코치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특히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660분 무실점의 견고한 수비라인을 구축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는 평가다. ‘청춘FC’ 방영 당시 안정환, 이을용과 코칭스태프로 함께하기도 했다. 

△ NO.3 최성용(MF) : 2002 월드컵 직후 2006년까지 5년간 수원 삼성에서 활약했던 그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도 수원에서 오랫동안 몸담았다. 2010년 J3리그(일본 3부) 자스파구사츠 군마를 끝으로 축구화를 벗은 뒤 2011년 강원FC 리저브 팀에서 지도자로 출발했다. 2013~2018년 6년 간 서정원 전 수원 감독을 보좌하다 김태영, 이운재 코치 등과 함께 물러났다. 2019시즌을 앞두고 최강희 전 전북 현대 감독이 지휘봉을 잡게 된 CSL 다롄 이팡에 코치로 합류했다.

 

△ NO.4 최진철(DF) : 현재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함께하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올해부터 중국 U-23 축구 대표팀 코치로 히딩크 감독을 돕고 있다. 2007년 12년 동안 뛰었던 전북에서 은퇴해 같은 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신생팀 강원에서 수비 코치로 경력을 시작했다. 2014년부터 한국 U-17 대표팀 감독을 맡았는데 당시 이승우 등 바르셀로나 유스 자원들을 데리고 AFC U-16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하고 U-17 월드컵 16강에 올랐다. 이후 포항 스틸러스 지휘봉을 잡았지만 결과가 좋지 못했다. 

 

△ NO.17 윤정환(MF) : 일본에서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2007년 사간 도스에서 은퇴한 뒤 이듬해 그 팀에서 유스 코치로 첫 걸음마를 뗐다. 2009년 코치로 승격하고, 2011년부터 4년간 감독으로 팀을 이끌었다. 부임 첫 해부터 사간 도스를 사상 최초로 J1리그로 승격 시킨 뒤 1부리그에서도 경쟁력 있는 축구를 선보였다. 이후 2년 동안 울산 지휘봉을 잡았다가 다시 일본으로 떠나 당해 승격 팀 세레소 오사카에서 리그컵 우승을 견인, J리그 감독상(2017)을 수상했다. 올해 태국 명문 무앙통 유나이티드에 부임했다 두 달 만에 해임되는 아픔을 맛봤다. 

 

△ NO.18 황선홍(FW) : 최용수 감독 못잖게 지도자로서 명성을 쌓고 있다. 2003년 은퇴 직후 전남에서 코치로 4년 재직했다. 부산 아이파크에서 3년 동안 감독으로 내공을 쌓은 뒤 2011~2015년 포항에서 전성기를 구가했다. 부임 첫 시즌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더니 2012년 FA컵을 들어 올렸다. 2013년에는 K리그, FA컵 더블을 달성했다. 2016년 서울에서 다시 한 번 K리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기도 했다. 올 시즌 중국 갑급리그(2부) 옌벤 푸더 사령탑으로 부임했지만 팀이 갑작스런 재정난으로 해체돼 감독직을 내려놓게 됐다.

 

△ NO.23 최은성(GK) : 현재 최성용과 함께 다롄 이팡 골키퍼 코치로 전북 현대 시절 은사 최강희 감독 곁을 지키고 있다. 대전 시티즌에서 달고 뛰던 21번이 영구 결번 지정될 정도로 레전드 대우를 받았지만 은퇴는 전북에서 했다. 2014년 은퇴 직후 5년 동안 골키퍼 코치로 전북이 K리그 1강으로 군림하는 데 일조했다. 현재는 최강희 감독을 따라 CSL로 넘어갔다.

 

▲ 거스 히딩크(왼쪽 첫 번째) 감독은 현재 중국 U-23 축구 대표팀 감독을 맡고, 최진철 코치와 함께하고 있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 국대파 : 떼려야 뗄 수 없는 태극마크 

△ NO.8 최태욱(FW) : 현재 한국 축구 대표팀 코치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지난해 9월 부임하면서 새롭게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발탁됐다. 8명의 코칭스태프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2014년 울산에서 은퇴한 뒤 울산 유소년 스카우트로 활동하며 지도자로서 안목을 키우기 시작했다. 2015년부터 K리그2 신생팀 서울 이랜드FC 유소년 코치로 일하다 2018년 코치로 승격했다. 그리고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고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 NO.9 설기현(FW) :  2015시즌 개막을 앞두고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갑작스레 은퇴한 직후 성균관대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말도 탈도 많았다. 1급 지도자 자격증이 없었던 터라 경기 중에는 광운대 출신 후배 홍복표 코치가 대신 지시를 내려야만 했다. 2016년 팀에 정식 부임해 U리그 권역 1위, FA컵 16강 등 나름 좋은 성적을 거뒀다. 2017년 2월 울리 슈틸리케 전 전 감독의 부름을 받고 대표팀 코치를 겸하다 현재는 성균관대를 떠난 상태다. 

 

△ NO.15 이민성(DF) : 현역 시절 ‘샤프슈터’라는 별명을 가졌던 김은중과 함께 코치로 한국 U-23 축구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다. 지난해 김학범 감독을 도와 아시안게임 금메달 영광을 함께했다. 2010년 내셔널리그(3부리그 격) 용인시청에서 플레잉코치로 활약한 뒤 광저우 헝다, 용인시청, 강원, 전남, 울산, 창춘 야타이까지 착실히 코치로 경험을 쌓았다. 지난해부터 U-23 대표팀에 소속돼 현재 2020 도쿄 올림픽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 NO.16 차두리(FW) : 2016년 슈틸리케 감독의 호출을 받고 대표팀에 전력분석관으로 합류했다. 2015년 아시안컵까지 선수로 함께했던 만큼 선수들과 가교역할을 기대 받았지만 코치가 갖춰야 할 A급 자격증이 없어 논란이 됐다. 2017년 4월 사퇴했다가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 김남일과 더불어 한국 축구 대표팀 코치로 부임, 러시아까지 함께했다. 월드컵 당시 경기 분석관을 맡아 기자석에서 헤드셋 무선 교신 장비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신태용 감독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현재는 아버지 차범근 전 감독의 유망주 육성 프로젝트 ‘팀차붐플러스’를 도우며 ‘한국축구 뿌리부터 튼튼히’를 모토로 후배들을 응원하는 데 힘쓰고 있다.

 

△ NO.20 홍명보(DF) : 현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공식 석상에 가장 자주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2005년 대표팀 코치를 시작으로 U-23 대표팀 코치, U-20 대표팀 감독, U-23 대표팀 감독, 성인 대표팀 감독까지 지도자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동메달을 목에 거는 역사를 썼다. 하지만 2014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2017년부터 행정가로 변신, 협회 체질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 NO.21 박지성(MF) : ‘해버지(해외축구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가진 박지성은 행정가를 준비하고 있다. 2002 4강 신화를 함께 일군 동료들 대부분이 지도자로 제2 인생을 꾸려가고 있는 반면 행정가로 한국 및 아시아축구를 발전시키기 위한 역량을 쌓는데 집중하고 있다. 2017년 11월부터 협회 유스전략본부장을 맡았지만 1년 만에 사임했다. 2016년 행정가 코스인 FIFA 마스터스 과정을 수료했고 국제축구평의회 자문위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앰버서더를 겸하고 있다. 

 

 

사실 2002 월드컵 신화는 23인의 태극전사들뿐만 아니라 히딩크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가 함께 이룬 성과다. 그렇다면 그들은 요즘 뭘 하고 있을까. 

히딩크 감독은 현재 중국 U-23 축구 대표팀 감독, 박항서 당시 수석코치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활약 중이다. 핌 베어벡 당시 코치는 올해 아시안컵까지 오만 감독을 역임했다. 정해성 코치는 베트남리그 호치민FC 감독으로 또 다른 열풍을 일으키고 있고, 압신 고트비 당시 전력분석관은 이란리그 풀라드 쿠제스탄FC 감독으로 부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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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호 '눈물의 데뷔전', 벤투도 극찬한 '포스트 기성용' [한국 이란 축구 하이라이트]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9.06.12 00:04
  • 댓글 0

[서울월드컵경기장=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손힘찬 기자]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는 함께 울었다.”

100점 짜리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백승호(22·지로나)가 경기 후 인터뷰 도중 돌연 눈물을 흘렸다. 그만큼 자신과 가족 모두에게 간절했던 경기였다.

유연성이 약점으로 지적됐던 파울루 벤투 감독이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고 성공을 거뒀다. 그 중심엔 백승호(22·지로나)가 있었다. A매치 데뷔전에 나선 선수답지 않은 노련함과 담대함으로 놀라운 공세를 가능케 했다.

 

▲ [서울월드컵경기장=스포츠Q 안호근 기자] 백승호가 11일 한국 이란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을 마친 뒤 인터뷰 도중 눈물을 보이고 있다.

 

◆ 노련했던 데뷔전, ‘초짜’ 티는 없었다 

백승호는 1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킥오프 된 축구 국가대표 친선경기(평가전)에서 선발 출전해 77분간 피치를 누볐다. 

아쉬운 실점으로 1-1로 비겼음에도 이란전 공포증을 날린 공격적인 경기 내용을 보였다. 백승호를 중심으로 한 전술 변화에 그 답이 있었다. 

지난 3월 축구 국가대표팀에 첫 발탁된 백승호는 볼리비아, 콜롬비아와 2연전에서 아쉽게 벤치를 지켰다. 지난 7일 호주전에서도 백승호에게 기회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벤투 감독을 향해 선수를 뽑고도 활용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따랐다.

지난 7일 호주전에서 스리백을 내세워 수비일변도 전술에 맞서는 방법을 찾는데 주력했지만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벤투 감독은 백승호를 중심으로 한 변형 4-4-2 포메이션을 들고 나왔다. 백승호는 익숙하지 않은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섰다. 

한준희 KBS 축구 해설위원은 “백승호 출전이 빌드업과 관련이 깊을지 모른다. 황인범과 백승호가 중요한 몫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황인범은 공격 시에 상당히 전진한 좌우 풀백과 달리 센터백 라인까지 내려서 빌드업의 시작을 맡았다. 

 

▲ 백승호(오른쪽)은 한국 이란 축구 평가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해 발군의 탈압박 능력을 보였다.

 

A매치 데뷔전에 긴장할 법 했지만 상대의 강한 압박 속에도 노련하게 공을 지켜냈고 좁은 공간 사이로도 공을 잘 뿌렸다. 때론 전진한 좌우 측면을 향한 정확한 롱패스로 한 번에 공격 기회를 열었다. 

강점 중 하나인 탈압박 능력도 발군이었다. 문전에서 공을 잡은 백승호는 좁은 틈 속에서도 2명의 수비를 달고 화려한 드리블을 펼쳤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이 뜨거운 함성에 휩싸였다. 한준희 “빼앗기기는 했지만 대단한 기량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고 평했다.

공격적인 능력 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상대의 공격 루트를 사전에 차단하며 기여했다. 후반 32분 주세종과 교체 될 때에도 팬들은 뜨거운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데뷔 무대인데도 전혀 긴장하는 기색이 없다”던 한준희 해설위원은 “성공적인 데뷔전이었다”고 촌평했다.

◆ 벤투 극찬과 눈물, ‘포스트 기성용’ 거론까지  

백승호 카드는 성공적이었다. 1-1로 무승 징크스는 6경기까지 이어졌지만 한국은 근 몇 년 간 이란을 상대로 가장 발전된 경기력을 보였다. 

경기 후 벤투 감독은 “백승호는 우리가 원하는 바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라고 말할 수 있다”며 “백승호는 중앙에서 뛸 때 더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훈련 때 우리가 기대하는 역할을 설명해줬고 이 과정을 통해 대표팀 2번째 소집 만에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고 밝혔다. 

 

▲ 한국 이란 평가전에서 드리블 돌파를 하고 있는 백승호.

 

이어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다. 특히 공을 가졌을 때 플레이가 좋았다”며 “이란이라는 강팀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했고 피지컬에서도 밀리지 않았다. 좋은 미드필더 조합을 보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데뷔전에서 선발 명단에 오른 백승호가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한 건 어머니.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 뒤 함께 울었다. 지금도 울컥하다”고 밝힌 그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맺혀있었다. “꿈꾸던 무대를 밟게 돼 너무 좋았고 앞으로 더 노력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야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전했다. 

황인범과 동시 기용은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둘 모두 수비적인 면보다는 공격을 풀어가는 데 더 재능이 있다는 평을 받은 중원 자원이었기 때문. “원 볼란치(수비형 미드필더)로 경기를 펼친 것은 처음”이라면서도 “처음부터 벤투 감독님이 이 위치에 설 것이니 잘 준비하라고 했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고 피치 위에서 침착할 수 있었던 비결을 전했다.

 

아시아 최강 이란전에서 선발로 데뷔전을 치른 그는 “자신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얻었다. 앞으로 소속팀에서 어떤 포지션에 설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답했다.

성공적인 데뷔전과 함께 단숨에 ‘포스트 기성용’으로 주목받게 된 백승호. “(기)성용이 형처럼 하는 것은 어렵다. 나만의 스타일을 만들어서 성용이 형만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당당한 각오를 내비쳤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그립다! 2002 한일월드컵 형님들, 요즘 어디서 뭐 하셈?(上) 
  • 김의겸 기자
  • 승인 2019.06.20 10:51
  • 댓글 0

 

[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20세 이하(U-20) 축구대표팀이 한국 남자축구 사상 최초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차지하는 개가를 올렸다. 1983년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당시 최고성적(4위)을 재현하겠다고 나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못잖은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그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그리운 이들이 있다. 17년 전 한국 축구 성인레벨 최고성적을 기록한 ‘히딩크호’ 23인이다. 현재 감동과 과거 감동의 자연스런 오버랩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한국 축구계에 유형무형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2002년 4강신화 주역들이 이번 대회 준우승과 아예 무관하다 할 수 없기도 하다.

▲ 2002 한일 월드컵 4강신화의 주역들은 여전히 한국 축구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안정환은 MBC 축구 해설위원으로 폴란드 현지에서 대회를 중계했고. 김병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골키퍼 이광연의 선방 패턴을 심층 분석했다.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재직 중인 홍명보는 후방에서 ‘정정용호’ U-20 대표팀을 지원했다. 최용수는 FC서울에서, 이민성은 U-23 대표팀에서 간판 공격수 조영욱을 제자로 두고 있다.   

이처럼 2002 월드컵 주인공들은 여전히 축구팬들의 시선 안팎을 오가며 여전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스포츠Q는 익히 잘 알려진 이들 뿐만 아니라 최종명단에 이름을 올렸던 23인 모두 현재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행적과 근황을 추적해 보았다.  

23인을 크게 방송파와 국내파, 해외파, 국대(국가대표팀)파 4개 부류로 정리해봤다.

▲ 안정환(오른쪽)은 방송계에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사진=연합뉴스]

◆ 방송파 : 연예인 못잖은 입담, 시청자를 사로잡다 

△ NO.2 현영민(DF) : 가장 마지막까지 선수 생활을 했다. 2017년 전남 드래곤즈에서 은퇴한 후 현재 JTBC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K리그(프로축구)와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등 주로 국내축구를 중계하고 있고,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을 현장 중계하기도 했다. 선수 출신 해설가가 으레 지적받는 전달력과 상황 설명 등에서 비경기인 출신 못잖게 호평 받으며 차세대 해설로 떠오르고 있다. 

△ NO.10 이영표(DF) : 이영표는 KBS를 대표하는 해설위원으로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확실히 받았다. 현역 때 경기를 읽는 눈과 화려한 발재간을 바탕으로 한 개인전술로 유명세를 탔던 만큼 마이크를 잡은 뒤에도 냉철한 분석력과 날카로운 비판으로 사랑받았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을 시작으로 아시안컵, 올림픽, U-20 월드컵을 거쳐 다시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까지 꾸준히 활동하다 현재는 지도자로서 아카데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 NO.12 김병지(GK) : 유튜브 채널 ‘꽁병지tv’를 통해 크리에이터로 영향력을 발휘 중이다. 인기 유튜브 채널 ‘슛포러브’에 출연하고, 스포티비(SPOTV)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를 중계하는 등 꾸준히 화면에 얼굴을 비추더니 직접 개설한 유튜브 채널이 현재 구독자 30만 명을 돌파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 밖에도 본인 이름을 내건 축구클럽과 스포츠재활센터를 운영하고, 사단법인 한국축구국가대표선수 이사장으로서 ‘팀 2002’를 조직 사회적 활동을 벌이는 등 다방면으로 활약 중이다. 

△ NO.19 안정환(FW) : 2002 4강신화 주역 중 방송인으로서 가장 입지를 굳혔다. 잘생긴 외모 이면에 감춰졌던 입담을 과시하며 수많은 예능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다. 현재 고정으로 출연 중인 프로그램만 6개인데다 수시로 MBC에서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고 있다. 선배로서 따끔한 충고는 물론 따뜻한 격려로 숱한 명언을 탄생시켰다. 현재는 방송에 주력하고 있지만 여러 차례 “추후 지도자로 축구계에 돌아갈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 NO.22 송종국(MF) : 역시 TV조선, MBC에서 축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안정환, 김성주 캐스터와 러시아 월드컵을 현지에서 진행했고, K리그도 중계 했다. 안정환과 마찬가지로 예능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다가 이혼 등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면서 다소 주춤했다. 이후 김병지와 함께 영상 콘텐츠를 생산하다가 현재는 개인 채널을 열고 축구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스포츠 아카데미도 운영 중이다. 

▲ 최용수(사진) FC서울 감독은 K리그를 대표하는 사령탑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국내파 : 한국 축구의 근간 K리그를 지키는 형님들 

△ NO.5 김남일(MF) : 2016년 J2리그(일본 2부) 교토 상가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다. 이후 중국 슈퍼리그(CSL) 장쑤 쑤닝을 거쳐 러시아 월드컵에서 차두리와 함께 한국 축구 대표팀 코치로 신태용 감독을 보좌했다. 대표팀에 부임하며 당시 부진했던 후배들을 향해 “마음 같아서는 ‘빠따’(?)라도 들고 싶었다”는 말로 애정과 책임감을 드러내 화제를 모았다. 2019시즌을 앞두고 K리그2(2부)로 강등된 전남 드래곤즈에 코치로 합류했다.

△ NO.6 유상철(MF) : 지난달 K리그1 최하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으로 부임했다. 2006년 울산 현대에서 은퇴한 직후 KBS 축구 예능 프로그램 ‘날아라 슛돌이’에서 3년 동안 감독 역할을 했다. 당시 이강인이 슛돌이 3기에서 유명세를 탔는데 이후 개인 아카데미에서 1년 간 직접 이강인을 지도하기도 했다. 이강인이 스페인으로 건너가 대성하면서 현재는 ‘이강인 스승’으로도 잘 알려졌다. 2009년 춘천기계공고를 시작으로 2011년 대전 시티즌, 2014년 울산대, 지난해 전남까지 지도자 경력을 축적했다.  

△ NO.7 김태영(DF) : 2005년 11년 동안 몸 담았던 전남에서 은퇴한 이후 관동대, U-20 대표팀, U-23 대표팀에서 코치, 성인 대표팀, 전남에서 수석코치로 착실히 지도자 역량을 쌓았다. 2017년부터 수원 삼성에서 코치로 서정원 전 감독을 지원하다 2019시즌을 앞두고 코칭스태프가 물갈이되면서 팀을 떠났다. 지난 2월 이천수가 진행하는 유튜브 영상에 등장해 “지금은 무직인 김태영입니다. 어디 좋은 자리 있으면 콜해주세요”라는 재치 있는 말을 남겼다. 

△ NO.11 최용수(FW) : FC서울 지휘봉을 잡고 있다. 2011년 감독대행으로 서울 사령탑에 오른 뒤 2012~2016년 서울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K리그 우승(2012), FA컵 우승(2015), ACL 준우승(2013)을 견인하고, K리그 감독상(2012), AFC 올해의 감독상(2013)을 수상하는 등 2002 4강신화 멤버 중 지도자로서 가장 뛰어난 성과를 냈다. 지난해 서울이 부진하자 다시 부임해 올 시즌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SBS에서 특별 해설위원으로 활약하면서 걸쭉한 입담으로 주목 받기도 했다. 

 

 NO.13 이을용(MF) : 현재 제주 유나이티드 수석코치로 재직 중이다. 2011년 고향 팀 강원FC에서 은퇴한 후 강원에서 지도자로 제2 축구인생을 시작했다. 2015년부터 2년 동안 청주대 코치로 선수들을 육성하던 때 잠시 안정환과 축구 예능 프로그램 ‘청춘FC 헝그리 일레븐’ 감독으로 활약하며 진솔하고 담백한 리더십으로 호평 받았다. 이후 FC서울 2군 코치를 거쳐 지난해 4월 황선홍 전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대행으로 서울을 이끌었으나 성적이 좋지 않았다. 최용수 감독에 바통을 넘겨준 뒤 제주에 새 둥지를 틀었다.  

△ NO.14 이천수(FW) : 방송계에서 맹활약했지만 현재는 고향 팀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전력강화실장에 자리하고 있다. 2015년 은퇴 후 JTBC 간판 해설위원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각종 예능과 유튜브 채널에서 솔직한 입담을 과시했다. 2019시즌을 앞두고 인천에 전력강화실장으로 부임해 선수 영입에 직접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용호 코치, 양준아 영입 등에 입김을 행사하며 반신반의했던 팬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 현재도 여러 유튜브 채널에서 활동하며 축구계 전반에 비판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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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0 세계 2위 쾌거, 대표팀 선수 86% 배출한 K리그의 힘

  • 뉴시스
입력 2019.06.16 03:44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사상 첫 결승진출이라는 쾌거에 K리그가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정정용호 21명의 선수 가운데 총 18명의 선수를 배출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20 축구대표팀은 16일 오전 1시(한국시간) 폴란드 우치에서 열린 우크라이나와 대회 결승전에서 1-3으로 역전패했다. 트로피는 품에 안지 못했지만 한국 남자 축구의 FIFA 주관대회 첫 결승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바탕은 바로 K리그다.선수단 21명 중 현재 K리그에 소속된 선수가 15명이다. 유럽(4명)과 대학 팀(2명) 소속 선수의 수를 훌쩍 뛰어넘는다.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 가운데서도 K리그 유스 시스템을 경험한 선수가 두 명이고, 대학 소속 선수인 최준(연세대)도 K리그 유소년 출신이다. 총 18명의 선수가 K리그 또는 K리그 유소년 시스템을 통해 이 자리까지 왔다.

지난 두 대회와 비교해도 큰 수치다. 2013년 터키 대회 당시 K리그 소속 6명, 2017년 한국에서 열린 대회에서 7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배 이상 늘었다. 일본 프로축구 J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포함된 과거 대표팀과 달리 K리그 소속 또는 K리그 유소년팀 출신, 유럽파, 대학선수들로만 이뤄진 점도 눈에 띈다. 가장 많은 선수를 배출한 팀은 울산 현대 유스팀인 현대고다. 차세대 타깃형 스트라이커 재목으로 평가받는 오세훈(아산)과 '반대발잡이 풀백'으로 각광받는 최준, 그리고 크로아티아에서 실력을 쌓고 있는 김현우(디나모 자그레브)는 현대고에서 동고동락한 선수들이다.

개인상 수상 이력도 화려하다. 김현우는 2017년 전국고교축구대회 최우수선수(MVP), 최준은 같은 대회의 우수선수에 선정됐다. 오세훈은 그해 대한축구협회(KFA)가 수여하는 '올해의 영플레이어'를 수상하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공격수 엄원상(광주)과 미드필더 김정민(리퍼링)이 광주FC 유스팀인 금호고, 캡틴 황태현(안산)은 전남 드래곤즈 유스팀인 광양제철고 출신이다. 소속팀 사정으로 이 대회에 참가하진 못했지만, 바이에른 뮌헨 2군에서 활약중인 정우영 또한 인천 유나이티드 유스팀인 대건고 출신이다.

이미 K리그에서 준주전급으로 활약중인 선수들의 이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영욱(서울), 전세진(수원)은 소속팀 공격진의 핵심자원으로 평가 받는다. 특히 전세진은 수원 삼성 유스인 매탄중, 매탄고 출신 최대어로 꼽힌다. 고등 축구리그 왕중왕전 MVP, 중등 축구리그 왕중왕전 득점왕 등을 타냈다.

박태준(성남), 고재현(대구), 이재익(강원) 등도 리그에서 출전 기회를 얻고 있는 유망주들이다.

약 10년 전의 투자가 결실을 맺었다. K리그는 11년 전인 2008년, 각 구단과 리그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유소년 클럽 운영을 의무화했다. 이를 통해 12세, 15세, 18세 팀 등을 운영하며 유망주 육성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8년부터는 K리그 주니어, 2015년부터 하계 토너먼트 대회인 K리그 유스 챔피언십을 열어 선수들이 보다 많은 출전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했다.

단순히 선수를 키워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소년 시스템 전체의 발전에도 힘썼다. 2013년부터는 매년 K리그 산하 유소년 팀의 지도자 해외 연수 및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고, 시스템 구축에 있어 정확한 평가와 진단을 위해 유소년 클럽 평가 인증제를 도입하는 등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에는 준프로계약 제도를 도입, 유소년 클럽 소속 선수가 리그에 출전하지 못하는 제도를 보완했다. 박지민, 김태환(이상 수원)이 사상 첫 준프로계약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오현규, 김상준(이상 수원) 등도 이 제도를 통해 이번 시즌 K리그를 누비고 있다.

대표팀 뿐만 아니라 K리그 전체에서도 유스팀 출신 선수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K리그 1과 K리그 2를 합쳐 유스팀 출신인 선수는 총 244명으로 전체의 29.3%에 해당 한다. 2018시즌 209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35명이나 늘어난 셈이다. 클럽 유스팀 출신 선수가 그대로 승격한 경우도 138건에 이르러, 지난해 108건에서 30건 증가했다.

K리그 측은 "유소년 클럽 시스템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지 10여 년만에 K리그 유스 출신 선수들이 자리를 잡았다"고 평했다. K리그가 없었다면, 한국 축구의 역사적인 쾌거도 없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6/16/2019061600176.html

21명의 젊은 태극전사들,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2019 U-20 월드컵] 우크라이나와의 결승전에서 1-3 역전패... 이강인, 골든볼 수상

19.06.16 03:28최종업데이트19.06.16 03:29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이강인이 전반 패널티 킥을 성공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이강인이 전반 패널티 킥을 성공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U-20 월드컵 결승에서 우크라이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축구 대표팀이 16일(이하 한국시각) 폴란드 우치의 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에서 우크라이나에게 1-3으로 역전패했다.

한국 남자축구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진출하며 크게 선전한 한국은 우승을 향한 마지막 관문에서 우크라이나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이번 결승전에서 한국은 해외 베팅 사이트와 언론 등에서 우크라이나에게 뒤질 것으로 예상됐다. 물론 예상을 뒤집는 반전의 결과를 만들진 못했지만 한국은 선제골을 기록하고 후반에도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등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비록 우승컵을 들어 올리진 못했지만 정정용호가 만들어낸 준우승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결과다.

전반 2분 페널티킥 선제골 지키지 못하고 동점 허용
 
 16일 오전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를 가득 메운 축구팬들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월드컵 결승 한국과 우크라이나 경기에서 한국 이강인이 첫 골을 터트리자 환호하고 있다.

16일 오전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를 가득 메운 축구팬들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월드컵 결승 한국과 우크라이나 경기에서 한국 이강인이 첫 골을 터트리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축구 U-20 월드컵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결승전 경기가 열리는 16일 새벽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민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축구 U-20 월드컵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결승전 경기가 열리는 16일 새벽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민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이번 대회 4강까지 6경기를 치르면서 남미팀과 2번(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아프리카팀과 2번(남아공, 세네갈) 그리고 아시아팀과 한 번(일본) 격돌했다. 4강신화를 달성했던 2002 월드컵 대표팀이 7경기 중 미국전을 제외하고 유럽팀만 6번 만난 것과는 대조적인 일정을 보낸 셈이다. 유럽팀과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만난 것이 전부였는데 한국은 이번 대회 시작과 끝에서 유럽팀과 만나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과감하고도 다양한 전술로 한국을 결승으로 이끈 정정용 감독은 이날도 가장 익숙한 3-5-2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에콰도르와의 4강전과 비교하면 중원의 정호진(고려대)과 고재현(대구FC) 대신 김정민(FC리퍼링)과 조영욱(FC서울)이 먼저 선발 출전했다. 뛰어난 침투능력을 가진 조영욱과 빠른 스피드의 김세윤(대전 시티즌)을 먼저 투입한 공격적인 라인업이었다.

여느 때처럼 우렁차게 애국가를 부르며 경기에 나선 한국은 경기 시작 2분 만에 김세윤이 측면 돌파를 하면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 페널티킥으로 대회 첫 골을 기록했던 '막내형' 이강인(발렌시아CF)은 이번에도 우크라이나 골키퍼를 완전히 속이는 킥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번 대회 6경기에서 단 3실점을 기록할 만큼 수비 조직력이 뛰어난 우크라이나이기에 초반 선제골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이강인이 전반 패널티 킥을 성공하고 있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이강인이 전반 패널티 킥을 성공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이강인이 전반 패널티 킥을 성공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이강인이 전반 패널티 킥을 성공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제골을 허용한 우크라이나는 만회골을 위해 라인을 대폭 끌어 올렸지만 한국은 유기적인 협력수비를 통해 큰 위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점유율에서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밀렸지만 우크라이나는 측면으로 연결하는 패스가 번번이 밖으로 나가면서 인상적인 슈팅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결승전을 관장한 이스마일 엘파스 주심은 전반 26분, 30℃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에게 물을 마실 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은 우크라이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반 32분 혼전 상황에서 흘러 나온 공이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향하면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의 블라디슬라프 수프라하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동점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 막판 오세훈(아산 무궁화)과 김세윤이 좋은 기회를 만들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한국은 전반 추가시간 오세훈이 왼발슈팅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위협했지만 앞서가는 골을 기록하지 못한 채 1-1로 전반을 마쳤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젊은 태극전사들의 준우승 성과

전반 2분 만에 얻은 페널티킥에 의한 선제골은 한국에게는 분명히 커다란 행운이었다. 한국은 선제골을 기록한 후에도 동점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했지만 수비적인 운영으로 우크라이나에게 많은 공격 기회를 허용했고 결국 전반 중반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실제로 한국은 전반 볼점유율에서 38:62로 우크라이나에게 크게 뒤졌다(물론 이번 대회 한국은 점유율을 중시하는 축구를 하는 팀은 아니다).

정정용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김세윤 대신 엄원상(광주FC)를 투입하고 김현우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리며 승부수를 걸었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7분 공격 흐름이 끊어진 후 수비가 미처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게 뒷공간을 노출하며 동점골을 기록했던 수프라하에게 역전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역전에 성공한 우크라이나는 막심 체흐와 다닐로 시칸을 차례로 투입했다.

역전을 당한 한국은 공격비중을 늘리며 동점 기회를 노렸고 후반 24분 이강인의 크로스를 이재익(강원FC)이 강력한 헤더로 연결했지만 안드리 루닌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한국은 후반 중반 이후 일방적인 공격을 펼치며 여러 번 슈팅을 시도했지만 우크라이나의 뛰어난 수비 조직력에 막혀 동점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결국 한국은 후반 43분 헤오르히 치타이슈빌리에게 추가골을 내주며 1-3으로 우승컵을 우크라이나에게 내주고 말았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한국이 두 번째 골을 허용하고 있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한국이 두 번째 골을 허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막내형' 이강인(발렌시아CF)은 대회 MVP에 해당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이강인은 이번 대회 뛰어난 개인기와 정확한 패스, 그리고 팀의 막내임에도 선배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한국의 결승진출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로써 이강인은 디에고 마라도나(1979년), 리오넬 메시(이상 아르헨티나, 2005년), 폴 포그바(프랑스, 2013년) 같은 슈퍼스타들이 받았던 U-20 월드컵 골든볼의 영광을 이어가게 됐다.

흔히 큰 국제대회를 앞둔 감독과 선수들은 "국민들의 성원을 알고 있기에 경기장에서 쓰러져 죽는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는 식의 비장한 각오를 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U-20 대표팀은 한국 남자축구 역대 최초의 FIFA 주관대회 결승이라는 큰 경기를 앞두고도 여유가 넘쳤다. 필요 이상의 부담으로 경기를 그르치기 보다는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즐기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바로 한국 축구를 결승으로 이끈 비결이었다.

물론 결승 한 경기만 놓고 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한국은 이번 대회 내내 뛰어난 조직력과 '즐기는 축구'를 통해 수차례 명승부를 연출하며 축구팬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안겼다. 물론 지금의 U-20 대표팀 선수들 중에서 몇 명이나 한국축구의 기둥으로 성장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2019년 6월 폴란드에서 21명의 젊은 태극전사들이 보여준 뛰어난 경기력과 투지는 한국 축구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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