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에 불 떨어진 각국 정부 "언제라도 다수의 생명 위협"
주요국 방어시스템 개발 박차… 미국, 대응훈련 13년 만에 공개
기업도 골치 앓긴 마찬가지, 민간 항공사 고민도 커져
얼마 전 영국 남서부 도싯의 스터드랜드 나체해변을 이용하던 관광객들은 수상쩍은 기계음을 듣고 깜짝 놀랐다. 벌거벗은 몸 위로 무인기(드론) 한 대가 쏜살같이 지나고 있었던 것. 경찰은 누군가 드론을 이용해 ‘몰래 카메라’를 찍으려 한 것으로 보고 조사에 착수했지만 이미 어딘가로 사라져버린 드론의 임자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봉변을 당한 피해자들에겐 안됐지만, 사실 이 정도 ‘사고’는 드론이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재앙들에 비하면 ‘장난’ 수준이다. 2013년 8월 드론 한 대가 영국 해군 잠수함을 생산하는 공장 위로 날아들어 일대에 비상이 걸렸고, 올 1월엔 조작자의 실수이긴 하지만 레저용 드론이 백악관 관내에서 추락했다. 4월엔 정체를 알 수 없는 드론들이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소 10여 곳 위를 저공비행, 관계 당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같은 달 일본에선 원자력에 반대하는 반핵단체가 보낸 것으로 보이는 방사성물질이 담긴 상자가 드론에 의해 총리 관저로 ‘배달’되는 일도 있었다. 언제라도 다수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으로 드론이 변모하고 있는 것. 이쯤 되면 드론은 몰래 카메라를 찍는 장난감을 넘어 전술용 무기들과 경쟁하는 수준에 달했다고 볼 수 있다.
소형 드론 주의보…뜨거워진 드론 방어 기술 경쟁
400m 이상 상공까지 올라가 소형 폭탄 또는 화학무기 공격 성능을 갖춘 드론을 수백만원이면 누구나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15년 동안 미국은 무장 드론(Armed Drone) 장비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왔다. 하지만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2015년 상반기 현재 80개국 이상이 자체 기술로 무장 드론을 생산하거나 중고제품을 수입해 실전에 사용할 만큼 보편화됐다. 여기에는 물론 헤즈볼라, 이슬람국가(IS) 등 테러단체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 드론 개발 기술이 아닌, 드론을 적절하게 방어하는 기술이 절실한 시점이 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프랑스 영국 등 주요국 군 당국과 항공기술 업체들은 통상 드론이라 불리는 무인비행물체(Unmanned Aerial Vehiclesㆍ UAV) 방어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문은 프랑스 전자군수업체인 탈레스가 레이더로 공중에서 날아오는 드론을 재빠르게 잡아내 고속촬영장비로 관계당국의 허가제품 여부를 수 초 안에 확인 후, 곧바로 정교한 전파방지 장치를 가동해 추락시키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라고 소개했다. 탈레스의 도미니크 가이아르도 부회장은 “각종 시험 단계를 마치고 내년 말에는 시제품을 내놓을 계획이다”고 말했다.
지난주 정보당국이 “IS가 드론을 사용해 군중이 모이는 페스티벌 현장에서 폭탄테러를 계획 중”이라고 발표해 긴장에 휩싸인 영국과 유럽방위청도 무기용 드론 차단기술 개발 열을 올리고 있다. 영국 국방과학기술연구소 관계자는 “영국의 주요 시설을 목표로 삼은 잠재적 적들이 드론을 통해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라며 “소형 무인기에 응전할 방공 시스템의 장애여부를 긴급히 체크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 국방부, 소형 드론 방어 최적화 훈련 연례 실시
세계 최고 수준의 드론 기술을 보유한 미군도 무장 드론을 방어하기 위한 훈련과 장비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 국방부 국방정보국(DIA)은 2002년부터 비공개로 매년 ‘블랙 다트(Black Dart)'라 불리는 드론 공격 대응 훈련을 진행해 왔다. 그런데 DIA는 돌연 지난해 7월 27일 14번째 블랙 다트 훈련 현장을 미디어에 공개했다. 당국 관계자는 “미국이 무장 드론 방어를 위해 얼마나 공을 들이고 있는지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DIA는 지난해 훈련부터 대형 드론이 아닌 5㎏ 이하 소형 무장 드론에 대해 특화된 요격 기술을 중점적으로 연마하고 있다. DIA 관계자는 “올해 훈련에선 총 6대의 소형 드론을 가상 적기로 띄우고 지상에서 레이저, 미사일, 대공포 등을 이용해 요격하는 과정과 함께 첨단 레이저기술로 빠르게 이들을 무력화하는 기술의 시범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미 육군은 최근 혁신적인 차세대 드론 대비 스마트 미사일 발사시스템도 개발해 시험 중이다. 이 시스템은 55mm 포신과 소형 드론 포착에 포커스를 맞춘 레이더와 조준경, 이동경로추적 장치를 장착했다.
우연한 ‘사고’방지하기 위해 민간기업들도 고민
드론의 ‘공습’방어를 위해 발벗고 나선 곳은 군 당국만이 아니다. 항공관제당국, 민간항공사들도 같은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어 해결책 마련에 애를 쓰고 있다. 영국 민항기 관제당국의 관계자는 “공항이야말로 소형 드론에 의한 공격 위험성이 높은 곳으로 대응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에어버스그룹, 영국 국영항공우주기업인 BAE시스템즈가 속한 유럽군수업체컨소시엄(MBDA)은 올 5월 레이저를 사용해 500m 상공에서 날아오는 소형 드론을 한 번에 격추하는 시범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WSJ은 “해를 끼치지 않는 새와 적기를 구분하는 기술은 이미 갖추고 있지만 새와 비슷한 크기의 드론을 골라내는 작업은 굉장히 힘든 일”이라며 “자칫 새로 착각해 놓칠 경우 드론에게 방공망이 곧바로 뚫리게 된다”고 전했다.
적의를 품은 경우가 아닐지라도 드론이 난무하면서 생길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기업들의 방지책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최근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이 미 항공우주국(나사) 주최 회의에서 무인기 비행구역 개설을 제안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WSJ은 “무인기에 식별을 위한 전자칩을 심어 다른 무인기나 항공기와 충돌하지 않게 거리를 두도록 하고 무인기의 용도에 따라 비행 고도를 특정하는 방식 등이 논의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홍주기자 yanghong@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