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아파트 화재, 완강기만 사용했더라면…

본보 기자가 직접 이용해 보니

수정: 2015.01.13 14:51
등록: 2015.01.13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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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화재 때 사용하는 비상 피난기구, 보관함 설명서로는 설치도 쉽지 않아

미리 숙지해 둬야 사고 때 대피 가능, 의정부 피해자들 "있다는 거 몰랐다"

완강기 이용한 주민은 1명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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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짜리 오피스텔 6층에서 혼자 살고 있는 직장인 박모(29ㆍ여)씨는 의정부 아파트 화재 소식을 접하고 난생 처음 집에 있던 간이 완강기 보관함을 열어 보았다. 완강기는 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만든 비상용 피난기구다.

화재로 주민들이 건물에서 뛰어내리다 부상을 입는 모습을 지켜본 박씨는 완강기 사용법을 사전에 숙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완강기를 설치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보관함 바깥에 그려진 그림 설명서를 유심히 살폈지만 그림만 봐서는 설치 및 사용법을 알기 어려웠다. 박씨는 “10분 간 끙끙대다 인터넷에서 사용법을 찾은 후에야 방법을 알 수 있었다”며 “이게 화재 때 상황이었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말했다. 기자가 12일 서울 강서소방서의 도움을 받아 업무용 오피스텔 3층에서 완강기 사용법을 배우고 직접 사용해보니, 완강기 사용 방법을 미리 숙지해 놓지 않으면 위급한 사고 상황에서 완강기를 이용해 대피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서울 강서소방서의 도움을 받아 완강기 사용법을 익힌 본보 사회부 채지선 기자가 12일 오후 강서구 가양동에 위치한 한 업무용 오피스텔 3층에서 완강기를 이용해 지상으로 탈출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k.co.kr

박씨의 경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자신이 사는 건물에 완강기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당시에도 완강기를 이용해 대피한 주민은 거의 없었다.

경기 의정부소방서에 따르면 화재가 난 의정부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아파트, 해뜨는마을아파트 등 3곳에는 각각 3~10층의 공용복도 끝에 완강기가 설치돼 있었다. 피난기구의 화재안전기준 등 소방관계 법령에 따라 공통주택의 경우 3층부터 10층까지는 완강기와 같은 피난기구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재 당시 완강기를 이용해 대피한 주민은 1명 정도에 그친 것으로 파악됐다.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이번 화재 피해자들도 완강기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알고 있었더라도 상황이 다급해 완강기를 사용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해뜨는마을아파트 5층에 거주하는 박재호(24)씨와 드림타운아파트 4층에 사는 이모(29ㆍ여)씨를 비롯해 주민 상당수는 “완강기가 설치돼 있는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고 답했다.

드림타운아파트 7층에 거주하는 이동우(39)씨는 “완강기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화재가 나니 막상 생각나지 않았다”며 “생각났어도 사용법을 몰라 이용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봉그린아파트 4층에 사는 양승준(33)씨도 “경황이 없어 완강기를 생각해내지 못했다”며 “불이 난 걸 알고 계단을 통해 내려갔는데 2층까지 갔을 때 이미 연기가 많이 올라와 위험하지만 2층에서 뛰어내려야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번 화재에서는 1층 출입구로 나가지 못하자 놀란 주민들이 가스관을 타고 내려오거나 건물에서 뛰어내려 부상자가 속출했다.

소방전문가들은 평소 완강기의 위치를 확인해두고 사전에 사용법을 숙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영대 강서소방서 구조대장은 “몇 초, 몇 분의 투자가 유사시 생명을 살린다”며 “사용법을 알아두는 것은 물론 어디를 방문하든 비상구와 피난기구의 위치를 파악해두는 습관을 들이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한형직기자 hj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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