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마케팅 업계의 신화적 리더 - 덱스터 예거
예거라는 성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난한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덱스터 예거는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학사 학위, 자격증, 자본, 사업 경험 중, 그 어떤 것도 갖추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날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성공한 리더 중의 한 명이 되었다. 그는 꿈의 힘을 발견했고, 또 그것을 체계화하여 널리 퍼뜨렸다. 평범한 한 사람의 피와 땀으로 시작해 거대한 성공을 이룩한 덱스터 예거의 스토리를 통해 성공의 비밀을 찾아본다.
덱스터 예거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한 리더들 중의 한 명으로 꼽힌다. 현재 그는 전 세계적으로 36개가 넘는 주식회사와 합자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백만장자이며,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 분야의 신화적인 존재이다.
그가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을 통해 구축한 예거 패밀리의 독립자영사업가(IBO)들은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이 넘으며, 예거 패밀리에서 일어나는 매출은 수십 억 달러에 이른다.
또한 그는 인기 있는 연사이자 컨설턴트이며 동기부여가 이다. 그리고 100만 부가 팔린 <그 누구에게도 당신의 꿈을 빼앗기지 마라>를 비롯, 열 한 권의 베스트셀러를 쓴 저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과 25년 전만 해도 이와 같은 성공을 덱스터 예거 자신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그 흔한 학사 학위도 없었으며, 가족으로부터의 경제적 지원도 없었다. 자본도 없었고, 각종 자격증이나 사업 경험도 전무했다.
덱스터 예거는 1939년 미국 뉴욕 주의 작은 시골 플톤이라는 곳에서 5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집안의 가업이 배관사업이었고, 대대로 남에게 고용되기보다는 개인사업을 해 왔다. 때문에 덱스터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사업을 가지고 독립적으로 일해야 한다는 말을 가족들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예거라는 성을 갖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항상 이야기했다. 즉 예거 집안의 전통은, 어떠한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개인의 독창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학교는 별 재미가 없었어요”
덱스터는 어린 시절부터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신문 배달이나 잔디 깎기, 겨울에는 삽으로 눈길을 치우는 등 무슨 일이건 꺼려하지 않았다. 그는 남들이 필요로 하는 무엇인가를 해주고 그에 대해 보상받는 일 자체가 신났다.
그런 그에게 학교는 따분하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학교에는 별 재미를 못 붙였어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은 좋아했지만, 나에게는 학교가 지루하게만 느껴졌어요. 어느 해인가 우등생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우등생이 되었는데, 그에 따른 아무런 보상이 없었어요. 그래서 더 이상 공부에 흥미를 갖지 않게 되었지요.”
덱스터는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일에는 열심이었지만 학교 공부는 등한시했다. 고등학교는 졸업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학교에 머물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은 항상 뭔가 이루어낼 것이 있을 것 같은 바깥 세계에 가 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 그가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그의 사업파트너이자 아내가 될 버디를 만났다는 것이었다. 덱스터와 버디는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두 집안이 친하게 지낸 덕에 덱스터와 버디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냈다.
그러나 정작 덱스터가 데이트 신청을 한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였다. 그때부터 연인으로 사귄 그들은 졸업하자마자 열 일곱 살의 나이로 결혼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덱스터는 자신이 가진 역량을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다만 집안 환경에 의해 강하게 자리잡은 전통적인 미국 보수주의 정신이 있었을 뿐이다.
그가 믿는 가치들은 단순하고 비타협적이었다. 그 가치들이란, 열심히 일하고, 구걸하지 말 것, 남에게 신뢰감을 주며, 자신이 한 말은 지킬 것,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책임을 다할 것, 자신의 길을 개척하고, 자유를 지키기 위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을 것 등이었다. 덱스터는 이러한 가치관으로 무장하고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내내 심킨스 의류상점에서 마루를 쓸거나 선반을 치우는 일을 했고, 가끔 점원이 안 나오면 판매도 도왔다. 여름이면 공사장에서 막노동도 했으나, 시간당 수입은 세일즈 일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졸업 후 그는 세일즈에는 자신이 없어서 노동직을 구하려 했다. 마침 동네 시어즈 로벅 백화점에서 자동차 정비공을 모집했고, 덱스터는 신청서를 냈다. 그러나 덱스터가 면접을 보러 갔을 때는 이미 사람을 구한 뒤였다.
돌아서서 사무실을 나서는 순간, 지배인이 불렀다. 지배인은 덱스터에게, 하드웨어 매장에 판매원 자리가 비었는데 해보겠느냐고 물었다. 덱스터는 판매 일은 못한다며 정색을 하고 거절했다.
당시 덱스터는 말을 더듬었고, 고등학교 시절 자동차 세일즈맨이 되려고 했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절대로 세일즈맨으로 성공할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차가운 현실 앞에 꿈은 사라지고
그런 이유로 망설였으나, 일단 시작해서 천천히 배우라는 지배인의 제의에 덱스터는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은 아무 것도 팔지 못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처음에는 금전등록기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덱스터는 하나하나 차분히 배워 나가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마음을 비우고 집중을 하면 말을 더듬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며, 곧 시어즈 백화점 내에서 최고의 실적을 올리기 시작했다. 일년쯤 지나 지배인이 승진을 했을 때는 덱스터가 그 매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그 즈음 아내가 쌍둥이 아들을 낳아 네 식구로 늘어났고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된 덱스터는 시어즈에서 받는 월급 이상의 수입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러던 어느 날, 생활비를 아끼려고 자신의 자가용을 유지비가 적게 드는 픽업트럭으로 바꾸기 위해 포드자동차 영업소를 방문했는데, 그곳 영업소장이 그에게 자동차 세일즈맨이 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덱스터는 고등학교 시절에 도전했다가 거절 당한 기억을 되새기며,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영업소장은 “그 영업소는 이미 망했으며, 자네는 훌륭한 세일즈맨의 자질이 엿보이네”라며 격려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덱스터는 자동차 세일즈맨이 되었으며, 3년이 지났을 때는 그곳에서 최고 세일즈맨이란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는 주위로부터 주목 받는 자신을 보면서, 뭔가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잘 나가던 덱스터에게 곧 제동이 걸렸다. 영업소의 소유주가 죽고 새로운 소유주로 바뀌면서 영업소는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새로운 소유주는 자동차의 주문을 줄이면서 재고를 줄여 나갔다. 직원들은 해고되었으며, 영업소가 팔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 시기에 덱스터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되새겼다. 그것은 결국 ‘자신만의 독립사업을 찾아야 한다’는 예거 집안의 전통을 다시 확인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세일즈를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자신의 사업이 아닌 한 근본적으로 불안하다는 것을 깊이 느낀 것이다.
결국 영업소는 문을 닫게 되었고, 덱스터는 한 순간에 실업자가 되었다. 이때 덱스터의 식구는 더욱 늘어나 아이들이 넷이나 되었다. 경제적으로 더욱 더 어려워지게 됨에 따라 덱스터의 아내 버디도 지방 군부대의 타이피스트로 취직했다.
덱스터는 ‘웨스트 엔드 부루어리’라는 지방 맥주회사에 가까스로 취직이 되어 배달 일을 했다. 두 사람이 번 돈을 합해야 겨우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당시 예거 부부는 뒷골목에 있는 작은 집을 샀다. 지은 지 8년이나 된 집이라 손볼 곳이 많았으나 시간이 없었다. 두 사람 다 늦게까지 일했으며, 보모와 시간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둘은 겨우 얼굴만 마주치는 정도였다. 아무도 즐거운 사람은 없었고, 신혼시절 가졌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조차 흐려져 갔다.
당시 덱스터는 버디가 직장을 그만두려 해서 거의 일주일에 한 번씩 밤새 싸웠다고 한다. 버디는 직장에서 받는 대접에 넌더리를 냈고, 아이들과 함께 있고 싶어했다.
덱스터는 “버디, 우리는 이 집을 샀어. 할부금을 벌어야 한다고!”라고 소리를 질렀다. 어느 날 밤은 너무 화가 나서 주먹으로 침실 벽을 치기도 했다. 단순히 열심히 일하고, 남에게 신뢰감을 주며,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는 올바른 가치관만으로는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 더욱 그들을 암담하게 했던 것이다.
* 성공의 화두 ‘꿈’의 의미를 발견하다
1964년 말, 그들의 삶에 큰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1964년 11월 어느 날 일터에서 돌아온 덱스터는 부엌 식탁 위에 놓인 쪽지를 한 장 발견했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덱스터, 오늘 밤 러스가 네트워크 마케팅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찾아올 거예요. 제발 귀담아 들어보세요. 사랑해요, 버디가.
추신 ; 나는 어머니 집에 가 있을게요.”
당시 덱스터는 갑작스런 아내의 조치에 매우 기분이 나빴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는 이미 네트워크 마케팅에 대해 두 번 정도 들었으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물건 파는 일’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덱스터의 먼 친척인 러스의 설명에서 숫자들의 변화를 이해했고 , 그 숫자 속에서 지금의 자신의 삶으로부터 벗어날 어떤 가능성을 감지했다. 그는 이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덱스터와 버디는 네트워크마케팅의 독립자영사업가로서 첫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자신의 독립된 사업을 가져야 한다는 덱스터의 강한 열망이 이때부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마치 전 인생이 이 비즈니스에 달려 있는 듯이 덤벼들었다. 덱스터는 매일 밤 자기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의 비전과 방법을 설명했으며, 사업에 동참할 수 있도록 안내했다. 심지어 부모님에게도 비즈니스 키트(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의 기본적인 도구)를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었을 정도였다.
당시 덱스터는 부루어리 맥주회사에서 일주일에 60시간을 일하면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사업설명을 하고 다녔다. 마치 신들린 사람처럼 일했다.
“매일 잠자리에 들 때마다 나는 우리 사업가들의 모임과 새롭게 가입시킬 사람들의 이름을 생각했어요.”
그리고 1년이 지났을 무렵 덱스터는 부루어리를 그만두고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네트워크 마케팅을 통해 어느 정도 사업을 일으킬 수 있었고, 수입은 처음 집을 샀을 때의 두 사람의 수입을 합친 것보다 많아지게 되었다.
이 즈음 예거 부부는 편안하고 틀에 박힌 일상생활에 빠져버렸다. 그렇게 되자 수입이 점점 줄어들어, 나중에는 하루하루 생활을 겨우 유지할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결국 예거 부부는 이 사업 역시 자신에게 안정을 줄 수 없다고 여겼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덱스터는 다시 세일즈맨이 되기 위해 면접을 보았다. 한 기업에서 그는, 어떤 자리를 원하느냐는 인사부장의 질문에 ‘언젠가는 당신 자리에 앉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했으며, 가차없이 거절 당하고 말았다.
이것은 오히려 덱스터의 인생에 있어서는 큰 행운이었다. 이때 덱스터는 그 동안 잊고 있던, 예거 가문의 전통인 ‘자신의 사업을 일으켜 세운다’를 떠올렸다. 그리고 마치 길고 긴 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눈을 떴다.
그날 밤 덱스터는 버디와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그는 단잠을 깨우는 전화벨 소리처럼 이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버디에게 말했다.
“나는 그 동안 이리 저리 핑계만 대왔고, 믿음을 버렸으며, 열정도 잃어버렸소.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직장이 아니고 내 꿈을 되찾는 것이오. 우리는 지금부터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이든지, 아무 것도 아니든지 둘 중의 하나라는 것을 깨달아야 하오. 이것이 우리에게 최선이오. 그리고 아마도 유일한 희망일거요.”
덱스터는 이 슬럼프 기간 동안 그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다. 그것은 바로 ‘꿈의 크기가 그 사람의 사업의 크기를 결정한다’라는 것이었다.
예거 부부가 처음 사업을 하게 된 동기는, 단순히 직장을 그만두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즉 그들이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을 통해 얻고 싶은 꿈은, 직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그것을 이루었고, 그것으로 그들은 멈추어 버리고 만 것이다. 이제 그들은 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사업을 키워 나가려면 먼저 꿈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지요. 만일 꿈을 잃어버리면 다른 모든 것들도 함께 잃게 됩니다. 나는 지금 현재 서 있는 자리보다 더 큰 꿈을 갖지 않고서는 도저히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배웠어요.”
덱스터는 다시 밤마다 사업 플랜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또 한달 중 보름을 차에서 지내면서 원거리 원정도 마다하지 않았다. 6개월 만에 덱스터 예거의 독립자영사업가 그룹은 전 세계 네트워크 마케팅 분야에서 가장 큰 그룹이 되었다.
그리고 2년 만에 확고한 성공자의 위치에 올랐으며, 얼마 안 있어 전세계 네트워크 마케팅 분야 최고 등급에 올랐다. 성실한 그의 가치관이 확고한 꿈을 찾음으로써 놀라운 성공을 이루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예거 부부의 성공 스토리는 네트워크 마케팅을 통해 성공한 많은 리더들의 성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예거 부부는 다른 어떤 리더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탁월한 성공을 이루어냈다.
예거 부부의 탁월한 성공 뒤에는 ‘시스템’이라는 교육체계가 자리잡고 있다. 덱스터 예거는 스스로가 경험하고 체득한 것을 몇 가지 원칙으로 체계화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성공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했다. 그것이 오늘날 예거 패밀리 성장의 축인 ‘시스템’이다.
* 예거 패밀리의 정신·시스템을 만들다
그 동안 이 시스템을 통해 수많은 성공자들이 탄생했으며, 전 세계적으로 수십만의 독립 자영사업가들이 이 시스템을 통해 성공의 길을 걷고 있다. 이 시스템은 전 세계 수십만의 예거 패밀리를 하나로 묶는 정신적 울타리가 되었다. 덱스터 예거는 네 가지 원칙을 시스템의 기본으로 하였다.
첫째, 꿈을 가꾼다(Dream Building).
덱스터 예거는, 사람을 열심히 노력하게 만드는 것은 정신이나 이론이 아닌 감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처음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사실과 숫자들을 바탕으로 한 이론적인 설명을 해줌과 동시에, 그 사람 속에 잠들어 있는 정열과 욕구를 깨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크고 야망이 있는 꿈일수록 더 큰 성공을 이루어낸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이다. 이처럼 덱스터는 사업에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꿈’이라고 했다.
둘째, 뿌리를 깊숙이 내린다(Working In Depth).
덱스트 예거는 네트워크 마케팅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큰 독립자영사업가 그룹의 안정성과 지속성은 그 그룹의 넓이보다는 깊이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만 해도 네트워크 마케팅에서는 한 독립자영사업가를 집중적으로 후원하는 것보다는 많은 새로운 독립자영사업가들로 후원 범위를 넓혀 가는 것을 중요시했다.
그러나 덱스터는 전 세계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기업화된 각각의 독립자영사업가 그룹들이 수십 년간의 난관을 견뎌낼 수 있는 탄력성을 갖기 위해서는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깊이가 있어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이 후원하는 사업가 한 사람이라도 철저하게 다지고 다져 튼튼하게 만드는 것이, 여러 사업가를 동시에 얕게 후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때문에 예거 패밀리에서는 그룹 성공의 지표를 각자의 그룹 안에 몇 명의 독립자영사업가 가 있는 가로 삼지 않고, 다지고 다져서 성공에 이른 독립자영사업가가 몇 명이 있느냐 하는 것으로 삼았다.
셋째, 바람직한 자세를 위해 사업보조도구를 사용한다(Tool).
기업가가 성공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기본적으로 그 사람의 자세에 달려 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한 사람은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된다. 때문에 성공이 가시화 되기까지 낙관적이고 밝은 마음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록 선천적으로 잘 견디고 낙관적인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정적인 메시지와 비관적인 환경이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기 마련이다.
덱스터는 모든 부정적인 메시지들을 없앨 해결책으로, 긍정적인 사고를 담은 책과 카세트 테이프의 이용, 그리고 대규모 행사를 통한 다른 독립자영사업가들과의 만남 등을 권장했다. 덱스터는 이런 목적으로 사용하는 여러 가지 자료들을 툴(Tool)이라고 불렀으며, 사업을 키우는 데 중요한 보조도구로 삼았다.
넷째, 대규모 행사(Mass Meeting)
덱스터는 대규모 행사가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독립자영사업가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들의 자세를 바로 잡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활기찬 군중의 열광만큼 고무적인 것은 없으며,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만큼 그 꿈에 힘을 실어주는 것은 없습니다. 꿈을 이룬 사람들은 서로의 힘을 교류하기 때문에, 자주 만날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덱스터는 프리 엔터프라이즈(Free Enterprises), 드림 위크엔즈(Dream Weekends)를 비롯하여 매년 수백 회의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애틀랜타 조지아돔에서는 한 번 행사가 열릴 때마다 7만 명 이상이 모인다.
이런 행사들을 전부 계획하고 집행하자면 업무량이 엄청나다. 덱스터는 몇 년에 걸쳐서 노력한 결과, 독립자영사업가들을 주축으로 이러한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스태프와 하부조직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행사 기획 및 진행을 위한 조직력 자체가 예거 패밀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근간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예거 패밀리의 성장 뒤에는 많은 성공자들을 배출한 네 가지 원칙이 있다. 이 네 가지의 확고한 원칙은 예거 패밀리의 정신적인 축이 되었으며, 예거 패밀리가 다른 어떤 독립자영사업가 그룹보다 단단히 결속할 수 있도록 했다.
전세계 예거 패밀리들은 비록 다른 지역, 다른 풍습, 다른 언어권에서 활동하지만, 네 가지 원칙이라는 공통분모로써 강한 연대감을 형성하고 있다.
덱스터 예거는 사업을 통해 수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러한 깨달음은 결국 몇 가지 안 되는 그의 행동강령에서 비롯된다.
덱스터 예거가 강연장에서 항상 목소리를 높이는 부분이 있다.
“Don’t Let Anybody Steal Your Dream(그 누구에게도 당신의 꿈을 빼앗기지 말라).”
그리고 더욱 목소리를 높여 이렇게 얘기한다.
“Never, Never, Never Quit(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이 단순한 몇 마디는 덱스터의 확고한 신념이 담긴 눈빛에 실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그 힘이야말로 바로 예거 패밀리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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