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최근 오만전에서 2개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윤빛가람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윤빛가람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무척 좋은 선수입니다. 특히 기술이 일품이죠. 벼락슈팅, 킬 패스, 안정적인 볼키핑력, 축구센스 등 많은 걸 겸비한 테크니션입니다.
그가 축구팬들 앞에 처음으로 나선 것은 2007년 17세 이하 월드컵이었죠. 그는 당시 대표팀의 간판 선수였습니다. 그는 당시 "K리그에는 본받을 만한 선배가 없다"고 말했죠. 당돌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었습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건방지다는 뒷말도 나왔지만요.
그 대회에서 한국은 16강에도 못갔습니다. 대회를 주최한 개최국으로 24개팀 중 16위에도 들지 못한 거죠. 한국은 페루(0-1), 코스타리카(0-2)에 연패한 뒤 마지막 토고를 2-1로 꺾은 게 전부였습니다. 그 때 후반 35분 결승골을 넣은 게 윤빛가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윤빛가람은 또 욕을 먹었습니다. 와일드 카드로라도 16강에 오르려면 한골이라도 더 넣어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윤빛가람은 너무 기쁜 나머지 골 세리머니를 '확실하게' '오래' 했고 그게 팬들의 눈에 거슬린 거죠. 이래 저래 윤빛가람은 등장부터 숱한 화제를 뿌렸죠.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프로선수가 된 윤빛가람은 국가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을 오가며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조광래 감독 부임 초기에는 황태자로 떠올랐지만 지금은 이용래, 김정우, 기성용에게 밀린 후보에 머물고 있죠. 물론 올림픽대표팀에서는 명실상부한 주전입니다. 그걸 오만전에서도 보여줬고요. 골, 어시스트 뿐만 아니라 패스, 드리블 등 공격적인 플레이에서는 그의 기량은 확실히 한수 높았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큰물(국가대표팀)에서 노는 윤빛가람은 역시 다르다"고 평가했죠.
골 장면, 어시스트 장면은 말할 필요도 없이 훌륭했죠. 공격적인 측면에서 그가 보여준 기량은 별로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만을 상대한 정신 자세에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서 수비하려는 의욕이 부족했죠. 찬스를 마지막 순간까지 살리려는 근성도 약해보였습니다. 윤빛가람은 연령제한이 있어 인력풀이 한정된 올림픽에서는 뛰어난 기량 덕분에 주전으로 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해외파 등 좋은 선수들이 많은 국가대표팀에서 조커에 그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느슨한 수비 때문이죠. 윤빛가람이 수비력을 보강하지 않는다면 시간이 갈수록 만만치 않은 상대와 맞붙어야하는 월드컵 예선, 우리보다 강한 팀을 상대해야하는 월드컵에서도 조커로 머물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기성용이 셀틱 초기 주전경쟁에서 밀린 것도 수비 때문이었습니다. 공을 예쁘게 멋있게만 차려고 했을 뿐 상대 선수와 강한 몸싸움을 하면서 끈질기게 압박하는 수비에서 근성이 부족했었죠. 그런데 지금 기성용은 당당한 주전입니다. 천문학적인 몸값을 받고 빅 리그로 진출할 거라는 보도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수비에서 근성을 보여주면서 싸움닭으로 변한 게 비결이었습니다. 윤빛가람도 기성용처럼 변화해야하는 이유죠. 그래야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습니다.
윤빛가람은 오만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했습니다. 하지만 수비에서 활약은 미비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세컨드 볼을 따내지 못한 게 역습으로 연결된 게 쉽지 않은 경기를 한 이유"라고 했죠. 윤빛가람은 오만 선수들과 헤딩경합을 기피했습니다. 그래서 오만이 볼을 따내기도 했고요. 홍감독의 발언이 윤빛가람만을 향한 것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윤빛가람도 수비에서 만큼은 홍감독의 마음을 사지 못한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전반 중반 윤빛가람은 또 다른 아쉬운 장면을 연출했습니다. 윤빛가람은 오만 오른쪽 페널티지역 근처에서 상대와 볼을 다투다 넘어졌죠. 그리고 볼은 코너 플랙 근처로 향했습니다. 그 볼을 우리 선수가 살려낸 뒤 공격을 계속 하려고 했지만 윤빛가람은 그 때에도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볼이 아웃될 거로 예상하고는 그냥 주저앉은 채 아쉬운 웃음을 짓고 있었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려는 끈기가 부족한 걸 고스란히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볼이 죽기 전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은 모든 구기 종목 선수들이 갖춰야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특히 희소성이 무척 높은 소수의 골로 큰 승부가 갈리는 축구에서는 순간을 놓치면 이길 경기를 비기고 비길 경기를 잃기 쉽습니다. 윤빛가람도 쓰러지자마자 벌떡 일어나 볼을 살린 동료의 패스를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전문가들이 전반에 보여준 윤빛가람의 플레이에 프리킥골을 제외하고는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윤빛가람은 수비 마크 없이 편안한 상태에서 공을 차는 걸 선호합니다. 수비 등 궂은일을 기피하는 성향도 있고요. 매순간 자신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기를 원합니다. 물론 이런 것들은 거의 모든 공격수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로 축구가 그렇게 진행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금은 공격수의 적극적인 포워체킹, 끈질긴 수비가담이 요구되는 시대죠. 특히 월드컵,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우리보다 강한 강호들과 맞서야하는 우리로서는 공격수의 수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올림픽 대표팀에서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모두가 만족하는 더 좋은 선수가 되려면, 국가 대표팀에서 기성용, 김정우, 이용래를 체지고 주전으로 뛰고 싶다면, A매치와 월드컵 등에서 인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여 유럽으로 진출하고 싶다면 윤빛가람이 갖춰야할 게 있습니다. 그게 공격적인 수비와 끈질긴 근성입니다. 수비와 근성은 재능으로 하는 게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 겁니다. 없는 기술을 익히기는 힘들어도 수비는 그냥 열심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면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마음만 고쳐먹으면 누구나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게 수비죠. 뛰어난 기술을 이미 갖고 있는 윤빛가람이 공수에서 모두 끝까지 포기를 모르는 터프가이로 변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가 지금 꾸는 큰 꿈,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될 겁니다. 저도 "싸움닭으로 변한 테크니션 윤빛가람, 드디어 빅리그에 입성하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써볼 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