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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조광래 “대표팀 선수 선발, 외압 있었다”


"작금의 상황은 한국축구의 위기가 아니다. 대한축구협회의 위기일 뿐이다. 이제 축구협회도 합리적인 조직으로 변해야 한다."

최근 사령탑에서 물러난 조광래(57) 전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에 쓴 충고를 던졌다. 후임자로 지휘봉을 잡은 최강희 감독에게 조언을 던지기 위해서다. 26일 서울 강남의 모 호텔에서 취재진과 만난 조 감독은 "축구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축구협회가 지도자에 대해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한다"면서

"내가 지휘봉을 잡고 있던 기간 중 축구협회 고위층으로부터 특정 선수를 뽑아달라는 외압을 받았다. 전임자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고 들었다. 국내파 지도자들이 선임될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누가 소신 있게 대표팀을 이끌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조 감독은 "협회 고위층의 요구를 거부한 이후 대표팀 운영과 관련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조별리그 상대인 레바논과 쿠웨이트에 대한 전력 분석 요청을 거절당했고, 중동 원정 2연전을 앞두고 선수 엔트리를 1~2명 늘리는 방안도 결국 무산됐다"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해당 선수의 컨디션을 분석했지만, 대표팀에 선발할 정도는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면서 "축구협회와의 관계를 위해 요구를 받아들일 수도 있었지만, 지도자로서의 양심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해임된 코칭스태프의 잔여 연봉 지급을 거부한 점을 보더라도 축구협회의 일처리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언급한 그는 "감독을 경질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다. 한국축구의 성장과 발전에 기여할 수 없다면, 축구협회를 이끌고 있는 선배들이 젊고 유능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결단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광래 감독은 "새로 부임한 최강희 감독이 중심을 제대로 잡고 대표팀을 이끌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음 속에 묻어두려던 이야기를 꺼낸 것"이라고 밝히면서 "여전히 혼란스럽고 마음이 아프지만, 축구를 너무 사랑하기에 용기를 냈다"고 이번 발언의 취지를 설명했다.

다음은 조광래 감독이 언급한 내용 전문.

요즘 정신이 혼란스러워 후임 감독인 최강희 감독에게 축하 인사도 제대로 못한 것 같아 뒤늦게나마 축하의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뿌린 씨앗을 거두지 못해 아쉽다. 그 점을 최 감독이 떠안게 돼 미안하게 생각한다. 최 감독은 평소 아끼는 후배다. 장점이 많은 지도자다. 대표팀 감독도 충분히 잘 해낼 자질을 갖추고 있다. 나는 중도에 하차했지만 최 감독은 성공한 대표팀 감독이 될 수 있도록 기원하겠다.

뚝심 있는 후배라 잘 해낼 것으로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협회 수뇌부가 전폭적인 힘을 실어줘야 한다.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대표팀 감독이 외부의 바람에 흔들린다면 더 이상 미래는 없다. 최 감독도 외압에 흔들려서는 안 된다. 부끄러운 한국 축구의 자화상이지만, 외압은 존재했다.

세 명의 협회 수뇌부가 한 선수의 대표팀 발탁을 요청했다. 선수 이름은 밝힐 수 없다. 선수 선발은 감독의 고유 권한이지만 거리가 멀었다. 상부의 이야기였기 때문에 나 또한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그 선수에게 눈길을 주고 코치들과 논의도 했다.

소속팀 감독과도 상의해 상태를 점검했다. 그러나 모두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아직은 아니다'였다. 대표팀에 발탁하기엔 컨디션이 떨어져 있다는 평가였다. 그런 상황에서 외압과 타협할 순 없었다. 그냥 눈 딱 감고 한 명 정도 뽑아줄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추천은 할 수 있지만, 면밀한 평가에 이은 최종 결정은 감독의 몫이어야 한다. 원칙과 소신이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릴 수는 없다. 한 명이 두 명, 세 명이 될 수 있다. 대표선수 선발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컨디션과 경기력, 전술 이해 능력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후 코치들과 토의해 최대공약수를 도출해낸다.

기술교육국장을 겸직하고 있는 황보관 기술위원장도 잘 알고 있는 문제다. 그 선수를 추천할 때 옆에 있었다. 그도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선수를 뽑지 않은 후 축구협회의 시선이 더 차가웠다. 이후에는 협조도 잘 되지 않았다.

지난달 아랍에미리트와 레바논 원정에 앞서 기술위원회에 3차예선 최종전 상대인 레바논과 쿠웨이트의 경기 분석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예산 문제 등을 이유로 들며 난색을 표명했다.

당시는 당장 아랍에미리트전 준비가 급한 상황이었고, 시간도 촉박해서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았지만 전체적인 예선전 일정을 보면 레바논과 쿠에이트의 전력 분석은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었다.

또 중동 원정 2연전에 경고 누적과 부상에 대비해 25명의 선수로 원정단을 꾸릴 계획을 짰다. 변수가 많아 23명에서 두 명을 늘려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협회에서 거부해 그 계획은 무산됐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기성용이 장염으로 합류하지 못했다. 박주영은 아랍에미리트전에서 옐로카드를 한 장 더 받아 경고누적으로 레바논전을 뛰지 못했다.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코치진의 잔여 연봉 문제는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된다. 계약기간이 존재했고, 파기한 것은 축구협회다.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한 쪽에 책임이 많다. 코칭스태프나 선수가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할 경우 재취업 여부와 상관 없이 전 소속팀이 잔여 계약기간에 대해 연봉을 지급하는 것이 계약의 필요성이다.

가마 코치는 외국인이라 차별을 받고 있다. 박태하, 서정원 코치는 새로운 팀이 생겨 잔여연봉을 지급받지 못하겠다고 하는데, 이치에 맞지 않는다. 계약기간을 파기한 축구협회가 책임을 지고 새 직장을 알선해 준 것도 아니다.

박태하, 서정원 코치는 능력이 출중해 곧바로 새로운 길을 찾았다. 잔여 연봉을 문제 삼는 것은 신의의 문제다. 감독을 버린 후 아무 죄 없는 코치들까지 짓밟는 것 같아 억장이 무너진다.

특히 박태하 코치가 잔여 연봉을 해결하기 위해 김진국 전무와 면담했을 때 나의 퇴임 기자회견에 코치진이 참석한 부분에 대해 상당히 불쾌하다며 왜 참석했느냐고 따져 물었다고 한다. 이런 점을 본다면 지금의 연봉 문제는 결국 코치들에게 괘씸죄를 적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안타깝다.

축구협회 선배님들께는 미안하지만, 감독을 경질하는 것만이 용기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이제는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 줄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 내 마음은 무척 혼란스럽다. 지금의 심정으로는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바친 나의 열정이 무상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축구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 지 결정을 하지 못하겠다.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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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팀 감독, 왜 최강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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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기사





지난 8일 조광래 감독이 축구국가대표팀 사령탑에서 경질된 이후 2주 가까이 이어졌던 '안개정국'이 걷히고 있다. 안개를 뚫고 뚜벅뚜벅 걸어나오고 있는 인물은 '봉동 이장' 최강희 전북 감독이다. 대한축구협회는 21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술위원회를 열고 차기 대표팀 사령탑 선임건을 논의한다. 기술위에서는 최강희 감독이 단독 후보로 상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최 감독이 차기 대표팀 사령탑으로 내정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유1: 실력으로 검증된 국내파 지도자,이론의 여지가 없다


최 감독은 최근 3년 사이 K리그에서 2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해에도 정규리그 3위였다. 3년동안의 순위가 1위~3위~1위이다. 국내파에게 대권을 맡길 때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당초 축구협회 고위 관계자도 조 감독 경질 직후 "최 감독이 맡아만 준다면 우리로서는 최선의 카드"라고 말했다. 조 감독의 전격 해임이 몰고온 축구계내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은 것을 고려하면 축구협회에서도 실력으로 확실히 검증된 카드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최 감독과 함께 유력한 국내파 후보로 거론됐던 홍명보 올림픽팀 감독과 김호곤 울산 감독은 이런 저런 이유로 제외됐다. 홍 감독은 내년 2월과 3월 런던올림픽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을 치르는 일정상 겸직이 어렵고 본인도 "사상 첫 올림픽 메달에 도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강력하게 피력했다. 김 감독은 정몽준 축구협회 명예회장이 회장으로 재직할 때 전무이사를 지냈던 것이 오히려 약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자칫하면 지금같은 상황에서 '코드 인사'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축구계 한 인사는 "한동안 김 감독이 진지하게 검토되다가 백지화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유2: 어수선한 대표팀 분위기를 일신시킬 수 있는 카드다


대표팀은 조 감독의 갑작스러운 경질로 어수선한 분위기다. 비록 대표팀이 소집된 상태는 아니지만 심리적인 위기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여러 선수들이 조 감독에게 아쉬움을 담은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축구협회가 조 감독 경질의 한 이유로 들었던 것도 팀워크 붕괴였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사이,선수와 선수 사이에 균열의 틈이 컸다는 것이 축구협회의 판단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일신시킬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다. 최 감독은 프로 지도자 가운데 선수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심리적인 관계를 밀고 당기면서 자기편으로 만드는데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다. 이동국이 올해말 해외 클럽에서 더 좋은 조건의 러브콜을 받았음에도 "내가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신 최 감독님과 더 있고 싶다"면서 잔류를 선택한 것이 좋은 예이다. 선수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재활 공장장'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이유3: 협회 집행부와 '팬심'을 동시에 사로잡을 수 있다


현대(지금의 울산)에서 프로생활의 대부분을 보낸 최 감독은 광의의 '현대 인맥'으로 분류된다. 그러면서도 '친여 인사'로 통하지는 않았다. 축구계 현안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평소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 덕분이었다. 하지만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현대 시절 사제지간이었고 수원에서 코치직을 물러난 어려운 시절에도 조 전무(당시)의 주선으로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됐다. 이런 이유로 최 감독은 평소 "어려운 때 큰 힘을 줬던 조 회장님이 요청하는 것이라면 구렁텅이라도 들어가야 하는 입장"이라고 말해왔다. 최 감독은 축구협회 수뇌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이른바 '팬심'도 사로잡을 수 있는 양수겸장의 카드다. 스폰서와 축구팬의 선호도도 고려해야 하는 축구협회로서는 최적의 카드다.



위원석기자 batman@sportsseoul.com

서귀포시, 전지훈련 예약 '순조'

축구, 야구 등 인기종목 전지훈련 예약 마감

2011년 12월 07일 (수) 14:12:11

  • 서귀포시는 내년 1월 서귀포 전지훈련 예약이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시에 따르면 훈련 공간 부족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맞춤형 총량제’를 실시하는 축구종목에 중학교 15개 팀, 고등부 20개 팀, 초등부 16개 팀, 대학부 12개 팀 등 1월 중 수용 가능한 팀 수를 모두 채웠다.

    시는 이에 예약문의를 설날연휴가 끝난 시점부터 2월까지로 시기를 조정해 수용할 계획을 세웠다.

    또 야구종목도 대학교 3개 팀과 리틀 야구 5개 팀 등 총 9개 팀의 예약과 농구종목 30개 팀의 예약을 마무리했다.

    육상종목은 현재 22개 팀이 1월중 전지훈련을 가질 예정이다.

    시는 “인기종목이 1월 중 예약이 끝나감에 따라 전지훈련팀의 훈련여건 강화와 인센티브 제공 등에 차질이 없도록 준비 중”이라며 “서귀포시 훈련시설의 활용도 제고를 위해 2월중 전지훈련 여건에 대한 홍보를 서두르고 있다”고 말했다./뉴시스


    문의) 서귀포시 스포츠지원과 스포츠마케팅담당 760-3611.

타협 모르는 고집센 장인 조광래와 김성근의 닮은꼴 인생

기사입력 | 2011-12-08 18:00



자기 색깔이 확실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 간다. 소신이 또렷하다보니 주위 사람들과 충돌하기도 하지만 굽히지 않는다. 빛나는 성과, 밝은 미래를 향한 가능성을 갖고 있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하기도 한다. 자기 분야에서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누구보다 뛰어나고, 누구보다 비범하지만 타협을 모르기에 늘 주류에 편입될 수 없는 비주류다.

이쯤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7일 축구대표팀 사령탑에서 전격 경질된 조광래 감독(57)과 지난 8월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지휘봉을 놓은 김성근 감독(69·현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감독)은 타협을 모르는 닮은꼴 인생이다. 굴곡이 있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났다가 다시 좌절을 맛봤다. 정작 중요한 순간, 두둔하고 옹호해줄 방패막이가 없었다.

40년 넘게 축구와 씨름해온 조광래는 가장 굴욕적인 모습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대한축구협회는 "조광래 체제로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예선을 통과하더라도 앞으로 한국축구가 힘들 거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지난 1년 5개월 간 내세웠던 짧고 정확한 패스와 빠른 템포를 앞세운 조광래의 '만화축구'에 사망선고를 내린 것이다. 조광래는 "한 경기도 기다려줄 수 없는 거냐"며 분노했다.

'야신' 김성근도 큰 상처를 안고 팀을 떠나야 했다. 2007년부터 특색없는 야구를 하던 SK를 세 차례나 한국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았다. 처음 우승했을 때 고마워하던 구단 프런트는 자기 주장이 김성근을 부담스러워했다. 전지훈련 때면 김성근은 좀 더 많은 선수를 데려가고 싶어했고, 좀 더 긴 일정을 원했다. 그때마다 구단은 비용을 얘기했다. 한쪽에서는 성적은 내도 재미없는 야구를 한다고 수근거렸다. 짧게 끊어치고, 많이 뛰며, 작전에 따라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조직력 야구를 스케일이 작다고 했다. 결국 김성근은 재계약 문제로 구단과 갈등을 빚으면서, 한참 후배인 이만수에 밀리는 모양새로 팀을 떠나야 했다. 김성근은 "내가 SK를 떠나면서 달라진 것은 인천에서 서울로 이사간 것 밖에 없다"고 했다.

조광래와 김성근은 외로웠다. 때로는 한국축구와 한국야구의 중심에 있기도 했지만 외톨이였다.

2000년 프로축구 K-리그 FC서울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끈 조광래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야인이었다. 서울에서 경질된 후 불러주는 데가 없어 축구판 외곽을 맴돌았다. 그래도 한국축구가 흔들릴 때마다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일시적인 공백이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2008년 배고픈 시민구단 경남FC 지휘봉을 잡은 조광래는 윤빛가람 이용래 김동찬 등 무명에 가까웠던 선수들을 국가대표급 선수로 키워냈다. K-리그의 비주류 경남을 빅클럽들이 겁내는 팀, 6강을 넘보는 팀으로 변화시켰다. 조광래는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게 너무 재밌다"고 했다.

서울 사령탑 때 중학생 이청용(잉글랜드 볼턴)의 재능을 알아보고 발굴한 조광래다. 한국축구계에서 어린 선수를 발굴해 최고의 선수로 키워내는 능력은 조광래가 최고라는 데 물음표를 다는 이들은 별로 없다. 2년 반 동안 경남에서 이룬 성과는 조광래를 A대표팀 감독으로 이끌었다.

사실 감독 취임 때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조광래에게는 늘 축구협회와 대척점에 있는 '야권인사'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이런 핸디캡을 실력으로 당당히 이겨낸 것이다.

2002년 LG 트윈스를 준우승으로 이끈 김성근도 그해 LG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김성근은 선수들을 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요구했다. 때로는 프런트의 안일함을 질타했고, 비효율성을 비판했다. 팀 전력 강화를 위해 좀 더 많은 지원을 바랐다.

이로 인해 김성근에게는 선수 육성 능력이 탁월하고 좋은 성적을 내지만 끊임없이 불평을 토해내는 고집불통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다. 김성근은 한동안 기피인물이었다. 그런데 김성근의 진가를 아는 이들은 달랐다. LG에서 경질된 2002년 말 김성근 아래에서 꽃을 피운 선수들이 모여 스승을 위해 환갑잔치까지 열어줬다.

김 감독은 야구를 위해 태어난, '야구 마스터'였다.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야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뛰어갔다. 야인 시절 고등학교, 대학교 야구부를 찾아가 지도했다. 2005년 김성근이 이승엽이 뛰던 일본프로야구 지바 롯데에 합류했을 때 신분은 순회코치였다. 경기가 시작되면 김성근은 덕아웃에 들어가지 못하고 관중석에서 게임을 지켜봐야 했다. 젊은 선수들의 타격을 지도하던 김성근은 이듬해 정식 코치로 승격됐다. 팀 타격이 좋아지자 일본인들도 그를 인정한 것이다.김성근은 그때를 떠올리며 "야구는 어디를 가나 똑같다. 나는 야구와 함께할 때 가장 기쁘다"고 했다.

조광래는 항상 한 발 앞서갔고, 김성근은 철저했다. 조광래는 힘과 근성을 강조하는 한국축구에 세밀한 패스와 빠른 템포, 영리한 축구를 심고자 했다. 당장의 성적도 중요하지만 좀 더 앞을 내다보고 싶어 했다.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하려면 근성, 힘이 아닌 머리를 쓰는 축구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런 구상을 대표팀에 불어넣고자 했다. 어린 선수들을 뽑아 테스트를 하고 지도했다. 선수들이 버거워할 만큼 많은 것을 요구했다.

한때 찬사가 쏟아졌다. 지난 6월 유럽의 강호 세르비아전(2대1 승), 아프리카축구의 맹주 가나전(2대1 승)에서 조광래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역동적인 움직임과 빠른 공수전환, 정교한 패싱게임을 선보였다.

물론 비판도 많았다. 지나치게 해외파 위주로 대표팀을 운영하고, 젊은 선수에 집착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조광래는 자신의 소신을 바꾸지 않았다. 축구인 모두 방법론에서는 이론이 있었지만 그가 제시한 방향을 옳다고 했다. 그러나 기다려주지는 않았다.

현실과의 타협을 거부한 조광래와 김성근은 이제 야인이다. 그러나 한국축구와 한국야구가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 같다. 선수 육성에 일가견이 있는 조광래는 한국축구의 자산이다. 그를 방치하는 것은 한국축구의 손실이다.

조광래의 경질 소식을 전해 듣은 김성근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 번 보고싶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다.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조광래호성적표

[인터뷰]고졸 최강희의 K-리그 정복기 "대학졸업장은 아무것도 아니다"

기사입력 | 2011-12-05 09:07

4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K리그 2011 챔피언십 챔피언결정전 2차전 전북현대와 울산현대의 경기가 열렸다. 전북이 울산에 2대1 승리를 거두며 최종우승을 확정했다. 우승을 차지한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이 우승트로피를 들어보이고 있다. 전주=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최강희박항서
국가대표팀에서 코치로 함께 일했던 최강희 감독(오른쪽)과 박항서 감독. 둘은 매우 가까운 사이다. 스포츠조선DB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2011년 K-리그 최고 명장에 오른 최강희 전북 현대 감독(52)은 대학 졸업장이 없다. 고졸(우신고) 출신이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대학 진학에 실패했다. 실업팀 한일은행과 군팀 충의에서 국가대표 수비수로 성장했다.

최강희는 교육자 집안에서 자랐다. 2006년 작고한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두 형은 학창시절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했다. 최강희는 그런 형들 밑에서 기죽어 지냈다. 성적 차이가 너무 커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했다. 대신 친구들과 놀러 다녔다. 담배를 일찍 배웠고, 싸움을 자주 해 유치장에 끌려가기도 수차례 였다.

그랬던 최강희는 지금 축구로 형들 보다 더 이름을 날리고 있다. 28세에 국가대표가 됐다. 2005년 전북 사령탑에 오르면서 K-리그 감독이 됐다. 2006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 감독이 됐다. 2009년 K-리그 첫 우승에 이어 올해 2년 만에 다시 전북에 두 번째 K-리그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스포츠조선이 최근 최강희 감독을 전북 완주군 봉동읍 소재 구단 숙소에서 단독으로 만났다.

▶K-리그 우승하는데 대학졸업장이 필요없다

최 감독은 축구 명문 건국대 졸업장을 딸 수 있었다. 실업팀에서 뛰고 있을 당시 정종덕 건국대 감독으로부터 입학 제의를 받았다. 최 감독이 정중하게 사양했다. 축구 감독이 되고 싶었던 그에게 대학 간판은 필요가 없었다. 그는 "만약 프로팀 감독이 되는데 대학졸업장이 필수요건이었다면 대학에 들어갔을 것이다"라고 했다. 최 감독은 지금도 대학에 대한 미련이 없다고 했다.

대신 그는 현재 최고 축구 지도자 과정에 해당하는 P급 코스를 밟고 있다. 울산과의 챔피언결정 2차전을 앞두고도 파주NFC까지 와서 시험을 치르고 돌아갔다.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훌륭한 문장을 찾기 위해 독서를 한다. 축구 전술서가 아닌 야구로 성공한 김성근 감독, 바둑으로 이름을 날린 이창호 얘기가 담긴 책을 최근 읽었다. 성공한 사람들의 스토리를 읽으면서 선수들에게 해주고 싶은 좋은 글귀를 메모한다.

최 감독은 "나는 공부하는 지도자라고 얘기하지 않는다. 남들 모르게 공부한다"라고 했다. 경기장 벤치에서 메모하는 걸 싫어한다. 그는 다른 감독들 처럼 메모를 많이 하지만 공개하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난 집에서 하숙생이었다

최 감독이 축구에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 건 가족이다. 그는 아내(이명성씨), 딸(최혜린씨)과 자주 떨어져 지냈다. 서울 목동 집에 하숙생 처럼 들락날락했다. 아내는 뒤늦게 학구열에 불타 있다. 대학에서 아동심리학, 노인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골프선수를 꿈꿨던 딸은 호주 유학 이후 현재 골프 레슨 일을 시작했다. 온 가족이라고 해봐야 달랑 3명이다. 1주일 정도 휴가를 받아서 집에 가도 온 가족이 함께 식탁 앞에 앉을 시간이 없다. 아내는 간만에 집에 온 남편을 위해 아침부터 진수성찬을 차려놓는다. 밤에 친구들을 만나서 술을 마신 최 감독에게 아내는 쇠고기와 생선을 구워 한상을 올린다. 입맛이 없어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남편의 표정을 보고 아내가 신이 날리가 없다. 그러면 최 감독은 다시 가방을 들고 전주로 내려온다.

최 감독은 "요즘 딸이 전북 현대가 좋은 성적을 내면서 축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집 거실 달력에 전북 경기 일정을 체크하면서 아내도 축구장을 찾는다"고 말했다. 축구 감독들은 집안 일에 등한시할 때가 많다. 특히 지방에 거주하며 가족과 떨어져 있을 경우 이사한 새 집을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주소 찍고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최 감독에게 가족은 항상 미안한 존재로 남아 있다.

▶중동 클럽의 러브콜과 벼락 맞은 사연

축구에만 매달린 최 감독은 최근 3년 사이에 K-리그 두 번 우승과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준우승 한 번을 했다. 놀라운 성적이다. 특히 올해에는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로 내용과 성적 모두를 만족시켰다. 최강희 축구란 이런 것이라는 걸 제대로 보여주었다. 축구 에이전트들에 따르면 보기드물게 최근 중동 클럽에서 최강희 감독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한다. 최 감독이 올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보여준 인상적인 공격축구에 매료된 것이다. 최 감독의 몸값(연봉)이 10억원 이상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최 감독과 전북은 내년말까지 계약돼 있다. 최근 전북은 최 감독과 계약을 연장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가 있다. 2015년말까지 3년 연장 계약 얘기가 나오고 있다.

최강희는 2005년 7월 전북 이철근 단장(당시 사무국장)의 전화를 받고 독일에서 귀국, 전북 감독 계약서에 사인했다. 벌써 7년 전 일이다. 이번 재계약에 사인할 경우 전북에서만 10년 이상 지휘봉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최 감독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좋은 일이 있기 전에 꼭 전조가 있었다. 전북 감독이 되기 전에는 독일에서 친한 박항서 전 전남 감독과 골프를 치다 홀인원보다 힘들다는 알바트로스(한홀에서 파보다 3타 적게 홀인하는 것)를 했다. 알바트로스를 하던 그날 이 단장의 전화를 받은 것이다. K-리그 우승했던 2009년에는 골프장에서 골프치다 벼락을 맞기도 했다. 벼락이 모자에 꽂아둔 마크를 타고 내려왔다. 잠깐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충격을 받았지만 멀쩡했다.



'봉동이장' '재활공장장' '강희대제' '2대8 카리스마'. 이처럼 최 감독의 별명은 세련되지 않다. 구수하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다. 속에선 더 강해지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인다. 남들이 모르게 강한 내공을 쌓아가는 중이다. 최강희를 아는 사람들은 그의 성실한 준비자세에 놀란다. 말수가 적고 느린 건 위장이다. 알면 알수록 지도자 최강희는 무서운 사람이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KBS 특별기획 2부작 '스포츠는 권리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KBS 1TV는 3-4일 밤 10시30분 특별기획 2부작 '스포츠는 권리다'를 방송한다.

1부 '고3이 달린다'에서는 대학입시에 매몰된 학교체육의 현실과 그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프로그램은 한국, 미국, 일본의 평범한 세 고교생의 일상을 비교하며 우리나라 학교 체육 활성화의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2부 '행복을 달린다'에서는 우리나라 생활체육의 현주소와 활성화 방안을 찾는다.

열혈 스포츠마니아인 40대 평범한 직장인 현호 씨의 꿈은 푸른 잔디밭에서 아이와 함께 실컷 야구를 즐겨보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잔디구장은커녕 야구장조차 구하지 못해 해체된 사회인 야구팀의 전직 감독이다.

프로그램은 일본의 할머니 배구단과 사실상 무료나 다름없는 유럽 각국의 스포츠클럽을 소개하며 국가가 지원하는 생활체육 현장의 모습과 그 의미를 돌아본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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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낙동강 잇는 자전거길 열렸다

입력: 2011-11-27 17:22 / 수정: 2011-11-27 17:22
'새재 자전거길' 개통 … 연말 국토종주시대
日 총무성 차관 "친환경 길 인상적" 극찬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자전거길이 개통됐다.

행정안전부는 27일 오전 충북 충주시 세계무술테마파크에서 맹형규 행안부 장관을 비롯해 이시종 충북도지사, 이주석 경북도 행정부지사, 이종배 충주시장 등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충주시민, 자전거 동호회 회원 1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재 자전거길’ 개통식을 가졌다.

총 사업비 108억여원이 투입된 ‘새재 자전거길’은 충주시 탄금대에서부터 경북 상주시 상풍교까지 총길이 100㎞다. 이번 새재 자전거길 완공으로 연말에 낙동강 자전거길만 개통되면 인천 서해갑문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702㎞의 국토종주 자전거길이 열린다.


◆자연을 그대로 살린 자전거길

기암절벽을 휘감아돌며 흐르는 남한강과 울창한 송림이 만나는 충주시 칠금동 세계무술테마파크. 이곳에서 힘차게 페달을 밟자, 강 옆으로 폭 2.5m 규모의 아스콘으로 포장된 길이 시야를 사로잡았다. 자전거길의 출발점인 이곳에서 탄금대를 지나, 달천을 따라 난 천변로를 달리자 울창한 솔숲의 절경에 온갖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김경희 씨(충주시 성내동)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자전거를 즐길 수 있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 조성돼 너무 기쁘다”고 반겼다.

새재 자전거길의 백미는 충북 괴산과 경북 문경을 잇는 이화령 고개. 이 고개를 넘을 때는 숨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탁 트인 전경과 가을색으로 물든 산천은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가파른 곳곳에 설치된 안전펜스는 간벌재로 만들어 자전거길과 주변 경관이 조화를 이뤘다. 18곳의 쉼터에는 휴게소, 화장실, 의자가 마련돼 쉬어갈 수 있었다.

길을 따라 달리자 곧바로 문경 시내에 도착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자전거길 곳곳에는 가드레일, 야광판, 새 안내판 등이 설치돼 있다. 계속해 고모산성, 영강을 지나 달리다 보니 어느새 낙동강이 도도히 흐르는 상풍교에 다다랐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스쳐 지나가기 쉬운 지역의 명소들을 자전거를 타고 구석구석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며“지역 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연말 국토종주 자전거길 개통

연말이면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하는 시대가 열린다. 지난달 8일 남한강 자전거길이 개통돼 인천에서부터 충북 충주댐까지 224㎞ 구간이 연결됐다. 이날 새재 자전거길 개통에 이어 안동댐에서부터 낙동강 하굿둑에 이르는 낙동강(378㎞) 자전거길도 막바지 공사 중이다. 내달 초에는 금강(110㎞), 영산강(131㎞) 자전거길도 열린다. 4대강 자전거길 총연장은 1592㎞에 이른다. 이 가운데 기존에 만들어진 구간이 405㎞, 4대강 사업을 통해 새로 조성한 자전거길이 1187㎞다.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새재 자전거길 개통으로 국토 종주 자전거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다”며 “이제 자전거길을 통해 우리 국토가 하나되고, 국민이 하나되는 화합과 지역 간 소통의 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ㆍ일 지방자치단체 간 협력확대를 위해 최근 방한한 오카모토 다모츠 일본 총무성 차관은 친환경적으로 건설된 남한강 자전거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오카모토 차관은 “폐철도를 자전거길로 조성한 점과 시설물에 공공디자인을 접목한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충주=김덕용/김태철 기자 kim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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