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 천안함 스크루에 감긴 어망 의심쩍다
러시아 보고서 공개되면 MB-오바마 곤란할 것"
[신년인터뷰 ①]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말하는 '천안함'과 '김정은'
12.01.13 09:11 ㅣ최종 업데이트 12.01.13 14:51 최경준 (235jun)
도널드 그레그(84) 전 주한 미국대사
ⓒ 최경준
도널드 그레그

6·25 전쟁에서부터 천안함 침몰 사건까지, 한국 현대사에 그만큼 깊숙이, 그리고 오랫동안 개입한 미국인이 또 있을까? 1951년 CIA(미국 중앙정보부) 요원이 된 그는 사이판에서 탈북자들을 훈련시켜 북한으로 투입하는 일을 했다. 1968년 처음 한국 땅을 밟은 뒤, 박정희 유신정권 시기인 1973년 CIA 한국지부 총책임자로 다시 돌아왔다.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지에서 두 번이나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다. 당시 전국대학생협의회 소속 대학생 6명이 미 대사관을 점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후 19년 동안 뉴욕에서 한미 간 친선을 도모하는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과 이사장이라는 명함을 가지고 살고 있다. 그 사이 북한을 5번이나 다녀온 북한통이 됐다. 지난해 4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 북한의 소행이라는 한국과 미국 정부의 발표를 반박하고 나서면서 다시 한 번 그는 한국 문제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도널드 그레그(84) 전 대사 얘기다. 그는 지난 9일(현지시각)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러시아 조사단은 천안함 스크루가 어망에 감겼고, 어망이 배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도중에 유실된 기뢰 하나가 천안함과 부딪쳐서 침몰시켰다고 생각한다"며 거듭 '북한 공격설'을 부정했다. 그는 또 "2009년 바이든 부통령에게 (김정일 후계자인) 김정은을 미국으로 초청할 것을 권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레그 전 대사와의 인터뷰는 미국 뉴욕주 북쪽 아몽크에 위치한 그의 자택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일문일답 요지 중 일부이다(인물의 호칭은 생략한다).

"잘못된 천안함 조사보고서에 서명한 미국 등 곤란할 것"

-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는 합동조사단의 조사결과를 인용해 북한이 천안함에 고의로 어뢰공격을 하여 침몰시킨 것으로 결론지었다. 당신은 이 발표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근거가 무엇인가?

"두 가지 측면이 있다. 우선 이 문제가 더 이상 남북대화의 장애가 되지 않게 퇴장했으면 좋겠다. 다른 한 가지는, 나는 내 나라가 채택한 공식입장을 의심쩍게 본다.

미국은 매우 좋은 해군을 보유하고 있다. 당시 미 해군은 한국 해군과 공동작전 중이었다.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는 것은 북한 소형잠수정이 해군 작전해역 한복판까지 와서 한 방의 어뢰로 천안함을 침몰시키고 아무도 몰래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난 미군 해군이 그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또한 나의 의구심은 러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지난 2010년 6월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 내에 거치된 천안함 배 밑바닥 부분. 침몰한 천안함 엔진과 스크루를 잇는 샤프에 그물과 밧줄이 감겨 있다.
ⓒ 유성호
천안함침몰

- 러시아의 천안함 진상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알고 있나?

"그렇다. 러시아 조사단은 천안함 스크루에 감겨 있었던 어망의 흔적을 발견했다. 그리고 선체의 움푹 들어간 부분들도 발견했다. 러시아 조사단은 천안함이 어망에 감겼고, 어망이 배를 바닥으로 끌어당기는 도중에 그 지역의 많은 기뢰들 중 유실된 기뢰 하나가 천안함과 부딪쳐서 천안함을 침몰시켰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조사단은 한국 조사단에게 이런 식의 문제제기를 했지만 듣지 않았고, 그래서 (조사단을 떠나) 귀국했다.

러시아 조사단이 귀국할 당시, 나와 매우 친한 러시아 친구가 모스크바에 있었는데, 그들에게 왜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느냐고 묻자, 그들은 '그것을 공개되면 오바마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이 곤란해질 것 같아서 공개치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의심하는 것이다. 난 이명박 정부 내에서 인기가 없다. 내 한국 친구에 따르면, 일부 한국 사람들은 내가 늙어서 총기가 떨어졌다고 한다더라(웃음). 천안함 문제가 이제는 퇴장했으면 한다. (월남전을 촉발시켰던) 통킹만 사건이 기억난다. 미국이 완전히 잘못한 사건이다. 그런 식의 사건이 일어날 때 북한 탓을 하는 것은 편한 일이다. 북한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북한 탓으로 돌리는 일은 쉬운 일이다."

- 보고서를 공개하면 오바마가 곤란해진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한마디로 당혹스런 일이지 않나? 미국뿐만 아니라 합동조사단의 모든 국가들이 곤란하지 않겠나? 한마디로 잘못된 보고서에 서명한 셈인데. 그래서 이 문제가 퇴출됐으면 한다. 남북, 북미 대화가 시작될 수 있도록 말이다."

- 지난해 한국 민주당이 당신을 국회 천안함 국정감사 증인으로 부르려고 했고, 당신도 오겠다고 했다던데.

"아니다. 난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 식의 청문회가 준비된다고 들었고, 나를 불러들이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비공식적 방법으로 난 출석치 않겠다고 밝혔다. 한국 국회에 출석한다고 한 적도, 천안함에 대한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한 적도 없다.

내가 가장 강력하게 얘기한 것은 2010년 8월 언론 기고문에서 러시아가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 것뿐이다. 그게 내가 말한 것의 전부이다. 그 탓에 이명박 정부에서 나는 인기가 없다. 한 마디로 말해, 나의 의구심이 천안함 사건이라는 남북대화의 장애물을 제거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총명함과 어머니의 심장 물려받은 박근혜"

- 북한이 김정은 체제 출범 직후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고 공언하면서도 신년사에서는 미국 비난이나 핵 언급을 하지 않았다. 김정일의 죽음이 향후 남북 관계, 북미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하는가?

"나는 사실 지난 2008년 김정은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관심을 가졌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는 김정일 뒤를 이을 후계자로 지명 받은 것이 분명했다. 내가 관심 있게 본 사실은 김정은이 스위스에서 학교를 다녔고, 스포츠, 특히 농구를 좋아한다는 점, 그리고 마이클 조던의 팬이었다는 것이었다. 2009년 바이든 부통령에게 김정은을 미국으로 초청해 구경시킬 것(orientation tour)을 권했다.

당시 김정은은 아직 공식승계자가 된 상태는 아니었고, 미국을 구경시키면서 그도 미국을 알게 하고, 미국도 그를 알게 하자는 취지였다. 나중에 듣기로는 시작도 되지 않고 무산됐는데, 공화당의 비판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성사됐으면 좋았을 뻔했다. 왜냐하면, 그는 상당 기간 북한을 통치할 것이고, 내 경험상–난 북한을 5번 방문했다- 북한이 가장 원하는 것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이다. 그들의 으뜸 목표이다. 그러나 미국은 어처구니없게 북한과 장기적이고 진지한 대화를 갖지 않았다."

▲ 박근혜-김정일 면담 지난 2002년 5월 13일 오후 방북중이던 박근혜 당시 한국미래연합 대표가 평양 백화원초대소를 찾아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박근혜

- 김정일 사후 영국 <BBC> 방송 인터넷 판에 기고한 글에서 "한국의 다음 대통령은 이명박 현 대통령보다 북한에 대해 더 유화적인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인가?

"한국 언론을 통해 여론 추이를 보고, 한국과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해 보면서 나름대로 분석한 결과,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북한에 대해 긍정적 관계를 맺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박근혜 얘기를 하자면, 2002년 임동원 말에 의하면, 정상회담 직후 김정일이 그에게 인터넷을 통해 청와대 홈페이지를 흥미롭게 봤다고 말했다. 그 중 역대 대통령 약력을 다 읽어봤는데 가장 감명 깊은 대통령은 박정희였다고 했다. 김정일은 임동원에게 박정희 딸이 국회의원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녀가 평양을 방문하여 나와 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물어봤다고 한다. 그래서 (박근혜가) 평양에 가지 않았나.

2002년 월드컵 개막식장에서 박근혜를 만났다. 사실 나는 그가 소녀일 때 CIA 한국책임자로 처음 만났다. 그의 어머니가 암살당했던 그 비극적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개막식장에서 나는 박근혜에게 북한을 기꺼이 간 것에 대해 경하한다고 말했다. 그때 그가 나에게 한 말을 절대 잊지 못하고 있다. 그는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봐야지 쓰라림을 안고 과거를 봐서는 안 된다(we must look to the future with hope, not to the past with bitterness)'고 말했다."

- 박근혜에 대해 높이 평가하는 것 같은데.

"2004년경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에 초청해서 그의 연설을 들었다. 감동적이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도 연설했다. 그것도 감동적이었다. 사람들이 그가 박정희의 딸이어서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현 위상이 궁금하다. 그녀가 보수쪽 대선후보가 될 것 같나? 그녀의 장래가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나?"

- 지난해 '안철수 바람'이 불기 전까지 박근혜의 대세론이 계속 이어져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했다.

"박근혜의 어려움을 가늠할 수 있다. 아버지가 한 일은 자식의 이미지에 영향을 끼친다. 내가 처음으로 북한에 갔을 때, 김계관(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첫 질문이 '어찌하여 아들 부시는 아버지 부시와 그렇게도 다른가'였다(웃음).

유교사회에서는 자식이 아버지와 닮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에게는 어려운 문제다. 반면에,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의 아버지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난 박근혜가 아버지의 총명함과 어머니의 심장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리더십 출범하는 금년이 전환기"

도널드 그레그(84) 전 주한 미국대사
ⓒ 최경준
도널드 그레그

- 김대중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면서도 박정희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한다는 말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린다.

"한국에는 3명의 중요한 대통령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노태우, 김대중이다. 세 명 다 훌륭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 상관치 않겠다. 난 이 세 명의 대통령이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정희가 베트남에서 미국을 도운 이후 느낀 (미국에 대한) 배신감도 이해할 수 있다. 박정희는 한국을 새롭게 건설할 수 있는 사람을 잘 선택한 놀라운 지도자다. 얼마 전 타개한 포스코의 박태준이나 나와 친했던 현대의 정주영이나. 그런데 지나치게 장기 집권했다. 마지막 임기에 나서지 않았다면, 아직도 살아서 위대한 한국인으로 추앙받고 있을 것이다."

- 박정희가 사람을 잘 써서 위대하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후락이나 차지철 같은 사람은 뭔가?

"아버지 부시 쪽 사람들이라고 다 좋은 사람인가? 항상 다수가 섞여 있는 것이다. 아들 부시의 경우, 국방장관 콜린 파월은 훌륭한 사람이지만, 부통령 딕 체니는 재앙이었다. 그런 식으로 섞여 있는 것이다. 박정희가 부인과 사별한 후 그와 골프를 친 적이 있다. 그는 매우 고독해 보였다. 그의 부인은 좋은 사람이었다. 부인과 사별 후, 차지철과 어울려 음주도 많이 한 것 같더라. 불행한 일이었다."

-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이후 북미관계의 개선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는데.

"나도 실망스럽다. 오바마는 북한에 손을 뻗쳐야 했다. 그가 취임하자마자, 북한은 2차 핵실험도 하고, 인공위성도 발사했다. 그런 것이 오바마를 실망시켰을 수도 있을 것이다.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북한도 형편없는 실수를 했다. 연평도를 포격했다. 그리고 천안함 사건이 있었다.

내가 북한과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믿는 이유는 김정일이 연평도와 천안함 문제를 무덤으로 같이 갖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젊고, 신인이다. 김정은의 바디 랭귀지가 괜찮다. 그가 이희호를 맞이할 때나 아버지의 운구차를 보낼 때의 모습 등이 인상적이었다."

- 하지만 김정은이 너무 어려서 내부 조직을 장악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럴 수도 있지. 외부 세계가 어떻게 그에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김정은이 그의 권력을 안정화하고 확대할 수 있을지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금년은 전환기다. 한국도 새 대통령을 뽑고, 중국과 러시아도 새로운 리더십이 출범한다. 오바마가 미국에서 재선되기를 희망한다. 그 이후에 대북 관계의 중대한 개선을 위한 무대가 형성될 것이다. 6자 회담이 새로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 아직 세상에 자신의 비망록을 내놓지 않았는데.

"(비망록을) 현재 쓰고 있다. 앞으로 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북한이 고립에서 벗어나 국제사회 일원으로 나서고, 핵무기를 포기했으면 좋겠다. 그런 것이 이뤄질 수 있도록 오는 3월 즈음에 뉴욕에서 북한, 러시아, 중국 측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비공개 컨퍼런스를 조직하려고 한다. 대화 환경을 개선하는 게 그 컨퍼런스의 목적이다."

ⓒ 2012 OhmyNews
[스크랩] (펌) 천안함의 진실 - 놀라울 따름입니다..|◈ 동영상 자료모음 ◈
낙무아이707 | 조회 170|추천 0 |2011.11.20. 12:27 http://cafe.daum.net/707/BDI/787

미권스 미래권력 칼럼방에서 퍼왔습니다

영상이 좀 긴데,, 대략 요약하면 천안함이 좌초되어서 5키로정도 헤메고 있는동안 미군 잠수함과 부딛혀서 두동강이났고

미군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린 후 우리쪽 인양이 시작되었다는 법정공방을 기초로한 브리핑입니다.

대단하신 가카 ! 북한이 아닐거라고는 생각했지만 미국이 관련되었을줄은,,,,

http://www.youtube.com/watch?v=7QFrm2QzAxE&feature=player_embedded


천안함사고 시 미군 잠수함 침몰 증거 속속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1/12 [00:2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천안함사고 합동조사위원이었다가 해군 당국의 고발에 의해 현재 군 당국과 재판을 진행중인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의 지난 9일 재판과정에 천안함 사고 당시 미군 관련 잠수함 추정 구조물도 함께 침몰했을 가능성을 더욱 확증해주는 증언이 나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필자도 천안함 사건 초기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바이다.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5932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5790

그 함미 인양을 위한 크레인을 동원했던 '88수중개발'의 관련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인양한 함미는 바로 떠서 바지선에 능히 실을 수 있었음에도 군 당국의 일방적이 지시로 절단부위에 그물망만 씌운채 다시 바다에 넣어 용트림바위 앞으로 이동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하루라도 빨리 함미 안의 시신을 수습해야할 상황에서 건져올린 함미에 그물망만 씌운채 바다속에 다시 넣어 꽤 먼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질문하자, '88수중개발' 관계자는 군 당국의 지시라서 그렇게 했다고 진술하면서도 사실 그정도 무게의 함미를 바지선으로 떠서 올리는 일은 부산 사투리로 말해서 '같잖은 일'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결국 군 당국은 시신 부패 우려, 수중이동 과정에 시신 유실 우려, 하루라도 빨리 시신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유족들의 열망, 혹시 모를 생존가능 장병들에 대한 국민적 기대 등 이 모든 것을 저버리고 와이어를 한 줄 더 걸어야하는데 좀더 안전한 얕은 바다로 옮겨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함미를 기어이 용트림바위 쪽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상악화를 이유로 작업을 중지하겠다며 '88수중개발' 관계자들 중 크레인 조종사 1인을 제외하고 13-14일 이틀간이나 철수시켜 누구도 함미 근처에 접근을 못하게 하였다.

신상철 대표의 조사에 따르면 그 이틀간 미군은 이 용트림바위 앞에서 무척 바쁘게 뭔가를 인양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8655

미군 잠수요원들의 잠수작업은 물론 수많은 링스헬기들이 수도 없이 떠서 뭔가를 연이어 날랐다.


▲ 함수 침몰 지점 인근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미군과 한국 유디티 대원 합동 수색팀이 심해 구조작업 막바지 훈련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담긴 사진, 그리고 13-14일 이 훈련을 한 대원대들이 용트림 바위 앞에 대거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함미는 이미 12일 건져올렸기 때문에 이들이 함미에 투입하여 할 일은 더 없는 상황이었고 12일 함미 인양작업도 이런 심해장비를 장착한 군인들이 아니라 '88수중개발' 민간잠수요원들이 진행했다. 우리 유디티 대원들도 건져올린 함미에 그물망을 씌운 일을 했을 뿐 심해잠수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 훈련은 함미가 아닌 다른 심해에 침몰한 구조물을 수습하기 위한 훈련이었던 것이며 함미를 그 위치로 이동시켜 함미를 잡고 있던 크레인도 그 작업을 도왔을 가능성이 높다. © 자주민보, 플리커에서 복사


▲ 천안함 구조 관련 작전도의 붉은 점의 38이라는 숫자는 희생된 미군 관련 숫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천안함 함수도 저기서 사고가 난 것은 아니었다. ©자주민보


▲ 14일 미군이 해난구조활동을 전개했던 제3부표지점에서 뭔가를 실어나르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미군의 수송헬기들이 숱하게 떴다. 의료헬기도 뜬 것을 보니 미군 관련 희생자들을 옮기는 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높다. ©자주민보

▲ 12일 건져올린 천안함 함미를 용트림바위 앞으로 옮긴 후 기상악화를 이유로 수습작업을 중단한 대신 그 용트림 바위 앞에서 13일과 14일 미군은 이렇게 바쁘게 움직였다. 이 미군의 작업을 함미인양 크레인이 도왔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함미수습작업을 한다는 명분을 위해 함미를 이 작업을 하던 용트림바위로 끌고 온 것인가. © 자주민보

신상철 대표는 이번 재판 후기 글에서 이 용트림 바위 앞바다에 함미와 함수 위치가 발견되기도 전에 벌써 투입되어 구조 수습 활동을 진행했던 한주호 준위 잠수팀이 사건 초기 9시뉴스에 밝힌 내용을 언급했는데, 한주호 준위 잠수팀이 이 지점에서 잠수해 들어가보니, 거대한 구조물이 있었고 그 구조물에 솟은 국기봉과 같은 관을 잡고 해치를 열고 들어갔더니 그 안에 복잡한 호스들이 널려있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복잡한 호스가 들어있었다면 잠수함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기봉과 같은 관은 디젤엔진을 수중에서 가동할 때 공기흡입을 위해 바다 위로 내미는 관이거나 잠망경 관일 가능성이 높다. 신상철 대표는 관련 9시뉴스 기자와 한주호 준위 팀 잠수요원을 다음 재판의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이다.

결국 38명이 타고 있는 잠수함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38명이라면 209급 디젤잠수함일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 잠수함이라면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돌핀급이다.


그렇다면 천안함 침몰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이 잠수함과 천안함이 불의에 충돌로 천안함을 두동강 나고 잠수함이 침몰했을 경우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미군 잠수함이(이스라엘 잠수함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당시 이스라엘대통령의 뜬금없는 한국방문도 이와 관련이 깊다고 판단됨) 서로 오인 사격을 했건 내부 사고가 났건, 북과의 수중전이 벌어져 북 인민군 해군에 당했건 두 대가 침몰했는데 이를 구조하기 위해 천안함을 미군 엘이이급 핵잠수함이 급부상으로 들이박아 두동강을 낸 후 이를 인양한다면서 사실은 침몰 잠수함의 시신과 내부의 위험한 미사일 무기 등을 수거하는 일을 진행했을 가능성이다.


그 나머지 한 대의 잠수함 추정 선박은 지금도 초기 함미가 침몰했던 바다 아래 수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문순 의원과 함께 이를 조사했던 알파잠수팀에서는 60년전 침몰한 상선이라고 주장했지만 본지의 분석결과 그 형태가 상선이 아닌 잠수함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를 조사해보기 위해 좀더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잠수업체와 상의해보았지만 국내 모든 잠수업체에 이미 정부에서 관련 해상에 대한 조사를 못하게 공문을 보낸 상태였다.
알파 잠수팀에서도 최문순 의원이 동행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최문순 의원 측에 대해서 협조를 구했지만 이상하게도 보좌관이 아예 어렵다고만 할 뿐 그 이유에 대한 답변조차 해주지 않아 본지에서는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6038


결국 상황이 진행될수록 본지에서 보도했던 천안함 사건 당시 미군과 이스라엘 잠수함 침몰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결론은 그렇다.

이 잠수함 침몰이 내부기관고장에 의한 것이건, 우발적 충돌에 의한 것인건, 김명철 소장의 주장대로 훈련과정 오폭에 의한 것이건, 아니면 일부 인터넷 북 무기 전문가들이 주장했듯이(필자는 이들의 주장이 나오기 전, 사건 초기부터 그 가능성을 주장해왔다.) 북의 첨단무기 공격에 의한 것이건 분명한 사실은 한반도에서는 지금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정말 얼마나 위험천만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정말 북미평화협정이 체결되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조만간 사단이 나도 대형 사단이 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두려운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도대체 이스라엘 잠수함이 키리졸브-한미합동독수리 훈련에 비밀리에 왜 참가하였겠는가. 미국과 그 연합세력도 이제 더는 북을 두고 볼 수 없다고 결단을 내렸기 때문 아니겠는가.
지난해 미군이 했던 훈련을 생각해보면 모두 북으로 치고 올라가 북의 미사일기자와 핵기지를 점렴해체하겠다는 것이었다.
북은 이런 미국의 사소한 도발도 묵과하지 않고 전면 반격으로 쓸어버리겠다고 지난해 내내 성명, 논평을 통해 밝혀왔다.

이제 한반도는 이 힘의 충돌이냐 아니면 대화를 통한 대타결이냐 그 마지막 고비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다음은 신성철 대표 재판 관련 미디어오늘의 보도이다. 조현오 기자도 이 사건을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추적 보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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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조현오 기자, 12. 01. 09] 천안함 침몰 사고 관련 재판에서 새로운 의혹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천안함 침몰 이후 구조인양 작업 중 인양업체에서 최초에 함미를 체인 두 줄로 감아 수면까지 끌어올린 뒤 인양해 바지선으로 탑재할 계획이었으나 해군이 돌연 천안함을 수면 아래로 내리고, 함미를 침몰지점에서 백령도 해안 부근으로 옮겨 사흘간 지체하면서 체인 한 줄을 더 걸도록 한 배경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함미를 이동시킨 뒤 세 번째 체인을 부착하는 작업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양업체의 체인설치팀이 함미 선체로부터 벗어나 아예 대청도(육상)로 나가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함미 이동부터 함미 인양한 날까지 사흘간 함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함미를 인양했던 88수중개발의 체인 등의 설치준비작업을 지휘했던 권만식씨는 9일 오후 천안함 의혹제기를 했다가 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민군 합조단 민간위원)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유상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5차 공판기일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애초 현장에서 지시를 받은 것은 ‘함미에 체인 두 줄을 걸라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권씨는 지난 2010년 4월 3일부터 백령도에 합류해 함미 인양을 위한 체인설치 등의 지휘를 했으며, 같은 회사인 88수중개발의 정성철 대표가 모든 인양작업의 지휘를 하며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미


권씨는 함미를 최초로 수면까지 올렸던 지난 2010년 4월 12일까지 함미에 체인을 두가닥 걸어놓은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당시 88수중개발은 함미(선체와 물의 무게 포함)의 무게가 1000톤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고, 이를 들어올리려는 해상크레인은 2200톤급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들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함미 선체 무게와 들어있는 물, 물먹은 나무 등을 합쳐 넉넉히 계산했을 때 무게가 1000톤 안팎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진술은 지난해 11월 13일 천안함 4차 공판 때 김진황 해난구조대장이 당시 함미의 무게를 선체 624톤, 물 무게 1160톤 등 모두 1800톤에 이를 것으로 판단했다는 진술과 배치된다. 특히 권만식씨는 당시 작업 현장에서도 김진황 대장의 증언과 같이 함미 무게(총 1800톤)가 나갈 것이라는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체인 두 줄을 걸어놓은 상태에서 4월 12일 함미를 수면까지 들어올리기 전까지 한 줄 더 걸라는 지시를 받은 일도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권만식씨는 “(최종 지시는) 두줄(을 걸라는 것)이었다”며 “세줄 걸라고 지시했으면 세줄을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은 지난 2010년 4월 13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와이어 두 줄로도 충분히 인양이 가능한 상황”, “일반 상선이었다면 와이어 두줄로 바로 들어 (바지선에) 올리면 된다…1000톤 이상 되는 상선을 인양할 때도 보통 이런 식으로 한다…부산말로 같잖은 일(너무 쉬운 일)…(이는) 인양업계의 상식”이라고 밝혔었다.
권만식씨는 재판에서 이를 두고 “현장 상황이 바깥과 틀리다. 사고가 났기 때문에, 완벽하게 인양하려고 했고, 날씨도 안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과 (실제가) 상반된다는 것이냐’는 재판장의 추궁에 권씨는 “올릴라고만 하면 올린다. 하지만 유족 문제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고, 날씨도 좋지 않아 더 좋은 조건으로 하자고 한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함미를 인양하려 했던 4월 12일 수면까지 들어올렸다 내린 경위에 대해 권씨는 “너무 많이 들면, 저항 때문에 톤수가 많이 늘어나고, 파도가 치니 다시 낮추라고 해서 낮췄다”며 “수면 아래로 조금 더 낮추라고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애초 함미를 인양하려 했던 함미 침몰지점에서 용트림 바위 쪽으로 이동한 것과 관련해 권씨는 “(4월 11일 저녁 때) 날씨가 안좋다고 해서 수심이 낮고 파도가 안치는 곳으로 이동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재판에서 해군과 해난구조대장(김진황씨)는 파고가 높고, 기상상태가 안좋아 저수심 지대인 백령도 용트림바위 앞으로 옮겼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역은 고 한주호 준위가 사망했다는 제3의 부표(KBS 보도) 지점과 인접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4월 12일 해군과 민간인양업체 등이 천안함 함미를 함미 침몰지점에서 동남방 2.6마일 지점(백령도 용트림 바위 부근)으로 이동시킨 상황도. ⓒ국방부 천안함백서


그렇게 함미를 이동시킨 뒤 세 번째 체인을 걸게 된 경위에 대해 권씨는 “두 줄 걸고 난 뒤 천안함 함미를 이동시킨 날(12일)과 들어올린 날(15일)의 공백기간에 한 줄 더 보강하자고 어디선지 연락이 와서 보강했다”며 “아마 13일엔 기상악화 때문에 안한 것 같고, 14일에 작업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씨는 이런 작업을 할 때를 빼놓고는 함미를 이동시킨 이후 작업팀이 아예 대청도 육상에 가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함미를 옮겨놓은 뒤 우리(88수중개발팀)는 대청도 섬으로 피항갔고, 산에도 올라갔다. 작업자들은 섬으로 갔고, 바지선과 크레인 작업팀은 대기했다”며 “함미는 용트림 바위 부근 저수심지대(25m)에서 바닥으로부터 한 1~2m 떨어진 위치에 체인으로 걸어서 지탱하도록 해뒀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양작업을 담당했던 88수중개발팀이 함미가 이동한 이후 모두 빠진 채 현장에는 해군과 해상크레인(삼아해운)팀만 사흘간 남아있었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두 줄로 걸었다해도 4월 12일 끌어올렸을 때 곧바로 바지선에 싣고 시신수습한 뒤 평택으로 가면 되는 일”이라며 “그런데 해군이 ‘체인(케이블)을 한 줄 더 걸어야 안전하다’면서 굳이 저수심 지역으로 끌고가려한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의심이 짙게 든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왜 저수심지대로 끌고 가려 한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그 저수심지대에서 해상크레인의 작업을 필요로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0년 4월 12일 해상크레인이 천안함 함미를 이동시키고 있는 장면. ⓒ국방부 천안함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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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만년전 인류조상 얼굴 복원해보니…
입력: 2012.01.07 ㅣ 수정 2012.01.07 14:08

▲ 고대 인류 얼굴 공개
사헬란트로푸스 차덴시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 루돌펜시스,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호모 에르가스테르, 네안테르탈인, 호모 에릭투스, 오스트랄로티테쿠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등 인류 조상으로 추정되는 고대 인류의 모습은 어떻게 생겼을까. 독일 드레스텐에서 개최되고 있는 한 전시회에는 700만년 전부터 6만년 전까지 인류의 조상으로 여겨지는 호미니드의 얼굴을 과학적으로 복원한 모델을 공개하고 있다고 6일(현지시각) 영국 데일리메일이 전했다.

공개된 인류 조상의 얼굴은 실제 두개골 화석을 활용하는 법의학 복안법을 사용해 복원됐다. 전시회는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약 700만년 전 최초의 인류로 추정되는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부터 현생인류와 가장 가까운 네안데르탈인까지 총 27개의 모델 보여준다.

법의인류학자들은 유골을 복원하는 경찰 과학수사팀과 비슷한 컴퓨터 기술을 사용해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 같은 호미니드의 두개골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다.

여기서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는 중앙아프리카 차드에서 발견된 약 700만 년 전의 초기 인류 화석으로 인류와 유인원이 처음으로 나눠진 시점으로 분석되고 있어 최초의 원인으로도 알려졌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사헬란트로푸스차덴시스를 비롯해 약 200만년 전 산 호모 루돌펜시스와 파란트로푸스 보이세이, 그리고 널리 알려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또 약 100만년 전 살던 호모 에릭투스와 약 150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으로 알려진 호모 에르가스테르, 그리고 현생인류와 가장 가까운 6만년전 네안데르탈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박물관 측은 “복원한 인류의 다양한 얼굴은 어디에 살았고 무엇을 먹었으며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 좀더 개인적인 특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사진=데일리메일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기독교 자폐증

인간 자폐증은 그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기독교 자폐증은 분명한 원인이 있다.
원인을 알고 그 원인을 제거하면 한국교회 자폐증은 치료 될 수도 있다.
그 원인은 아주 간단하다.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잃을 것이 너무 두렵기 때문이다.

313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으면서,
교회는 하루아침에 부와 권력의 핵심이 되어 버렸다.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이 되면서 소망교회는 문전성시를 이루게 되었다.

가난한 자, 굶주린 자, 핍박 받는자의 종교에서
부자의 종교, 배부른 자, 핍박하는 자의 종교로 변질 되었다.
주기 위해 믿었던 종교에서 가지기 위해 믿는 종교가 되었다.
평화를 위한 종교에서 전쟁을 위한 종교가 되었다.
이웃을 살리기 위한 종교에서 내가 살기 위한 종교로,
사랑하기 위해 믿는 종교에서 사랑 받기 위해 믿는 종교가 되었다.

예수는 “하늘을 나는 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했지만,
예수의 교회는 하늘 보다 높은 종탑을 쌓았고, 황금으로 치장 된 제단을 세웠다.
제사를 위해 바쳐졌던 제물은 제물을 위한 제사가 되어버렸고,
오늘도 교회는 헌금 봉투에 적힌 이름을 줄줄이 읽어대며

헌금 액수를 주보에 떡 하니 적어놓고 있다.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걸어 놓은 교회는

넘쳐나는 재물로 치장 되어 버렸고,
교회 안에서 예수는 아직도 벌거벗겨진 채 피를 흘리고 있지만,
피 흘리는 예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두꺼운 비단 옷을 걸친 채,
주체하지 못하는 비만의 기름을 흘리는 존재들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교회의 성벽은 높아만 간다.
그럼에도 예수 믿고 천당만 가면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교회 밖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는 분명 한국 교회가 처한 심각한 자폐증 증상이다.

한국 교회의 자폐증은 치료 되어야만 한다.
치료법은 오직 한 가지이다.
버려야 한다.
돈을 버려야 한다.
권력을 버려야 한다.
그리하지 못하면 결국 한국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지게 될 것이다.

돈과 권력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버림을 받을 것인가?
심각한 자폐증에 빠진 한국 교회를 향한 절박한 외침이다..

- 장호준 목사 -
(스토어스 한인교회, 장준하 선생님 자제)

한 검사의 사직서 “양심에 비춰 이해할 수 없는 수사…”

한겨레신문 | 기사전송 2012/01/04 14:36

[한겨레]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일했던 박성수(48) 울산지검 형사1부장 검사가 검찰을 떠나며 검찰 내부게시판에 ‘사직의 변’을 올렸다. 박 부장검사는 이 글에서 이명박 정권 들어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검찰의 자기반성과 편향수사 논란의 중심에 섰던 대검 중수부 폐지를 주장했다.

 박 부장검사는 ‘사랑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연이어 불거진 검찰 관련 문제들을 묵과하며 검사의 직분을 버티어 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좀 더 참아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감이 떨어지기를 그저 기다리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거니와 장부로서 취할 태도는 아닌 듯합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검찰도 이제, 정치적 시비나 국민적 비판에 아랑곳없이 서슬 퍼렇게 질주해 나가던 집권 초중반기의 모습을 잠시 멈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힘 빠진 실세 관련 수사나 저축은행 비리·재벌 관련 비리 등 국민으로부터 그나마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사건들을 진행하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 정부가 임기 말에 접어든 것은 분명 사실인 것 같습니다”라며 현재 검찰의 모습을 이렇게 진단했다.

 박 부장검사는 정치권과 여론이 지지하고 있는 ‘검찰 개혁’ 움직임과 관련해 “늘 그래 왔듯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국민과 국가의 장래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조직의 명운을 걸고 이를 막아야만 되는 상황에 다시 직면할지도 모르겠다”며, 먼저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 위한 검찰의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그가 꼽은 첫 번째 방책은, ‘검찰권이 무리하게 남용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자기반성이다.

 “법률가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지고, 법원에서 여지없이 무죄가 선고되었는데도 상소권을 행사함으로써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조차 계속적인 고통을 주고 있는 사건은 없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인간이기에 실수하거나 오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당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었다면 당연히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박 부장검사는 대검 중수부의 폐지도 주장했다. “(중수부가) 정치권력이나 시장권력의 부정부패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간 무소불위 검찰권력의 상징으로서 그 정치적 편향성 시비로 인하여 검찰 전체로 봐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많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총장에게 집중된 수사권을 분산시킴으로써 권력의 사유화 및 정치권력의 개입 유혹을 방지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의의 회복과 개혁추진의 기반은 인사로부터 출발”한다며 “그동안의 검찰 인사가 말 그대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 왔는지, 지연이나 학연 등에 의해 지나치게 편중된 인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는지, 정치적 편향성은 띠지 않았는지 등에 관하여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검사장에 대한 인사는 대통령이, 검사의 인사는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법무장관이 행사하는 현실을 상기시키며 “대통령이 자의적 인사권을 통해서 검찰을 장악하려 하여서는 아니 되지만, 반대로 검찰권이 남용되는 경우 인사권을 통한 견제는 주권재민의 원리에 따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집권자로서 수사 불개입·불간섭 원칙을 지킴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고, 선출된 권력의 인사권과 입법권을 통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들임으로써 검찰권의 남용이 견제되는데 동의할 수 있는 인물들이 선택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사를 통해 검찰을 장악하려고 드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말자는 얘기다.

 후배검사들에게는 “‘정치검사, 편파검찰’이라는 말 대신에 ‘국민검사, 개념검찰’이라는 말이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 잡도록 모두 힘을 합쳐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른 것을 얻고 제대로 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拿得定 見得透 事無不成)”는 중국의 경구를 인용하며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함부로 검사직을 던지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갖고 용기 내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법의 지배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롭고 안정된 민주사회를 구현(검사윤리강령)’하는 검사 본연의 자세를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박 부장검사는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연수원 23기)하고 검사로 임관했고, 수원지검에서 근무하던 2005년 청와대 법무행정관으로 기용됐다. 참여정부 임기 말인 2007년에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승진’했고, 2008년 검찰로 복귀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아래는 사직서 전문사랑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며- 검찰을 떠나면서 - 박성수   1. 서언 검사로서의 꿈은 꿈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저는 이제 2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길로 나서려 합니다.

 “박비서관, 나중에 검찰로 돌아가면 왕따 당하는 것 아니에요? 나를 도와준 것 때문에…·”, 2007년 6월 11일 대통령 관저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부부와 오찬 중 대통령께서 웃으시며 하신 말씀이 문뜩 떠오릅니다.

 참여정부에서 2년 6개월간 청와대 행정관, 법무비서관으로 봉직한 후,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쳐 5년 만에 일선 검찰로 복귀하였지만, 연이어 불거진 검찰 관련 문제들을 묵과하며 검사의 직분을 버티어 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좀 더 참아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감이 떨어지기를 그저 기다리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거니와 장부로서 취할 태도는 아닌 듯합니다.

 나가는 사람으로서 그 진정성에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았고,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검찰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많이 저어되어 말없이 떠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한 등애(godfly)의 심정으로, 미래의 검찰을 짊어지게 될 후배들과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을 위하여 제 나름의 소회와 당부를 남겨놓는 것도 선배로서 일종의 책임이라 생각되어 몇 글자 적어봅니다.

   2.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검찰을 위하여 검찰도 이제, 정치적 시비나 국민적 비판에 아랑곳없이 서슬 퍼렇게 질주해 나가던 집권 초중반기의 모습을 잠시 멈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힘 빠진 실세 관련 수사나 저축은행 비리·재벌 관련 비리 등 국민으로부터 그나마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사건들을 진행하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 정부가 임기 말에 접어 든 것은 분명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세 좋게 검찰권을 맘껏 휘두르면서 수사·기소했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하여 법원에서의 무죄를 뒤집기 위해 공소유지에 진력하거나 애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지기를 기대하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한 이제야말로 ‘정치검찰, 무소불위의 검찰’을 ‘확 바꿔야 한다’라는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늘 그래왔듯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국민과 국가의 장래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조직의 명운을 걸고 이를 막아야만 되는 상황에 다시 직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능력이 출중했든지, 배경이나 처세술이 좋았든지, 아니면 관운이 좋았든지 간에 중앙무대에서 요직을 오고가며 승승장구하는 검사들에게는 ‘최고의 사정기관, 권력기관, 무소불위의 검찰’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실감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고소사건, 송치사건 처리와 허울뿐인 수사지휘 등에 허덕이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데도 별다른 관심이나 대접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일선 지방청 검사들에게는 위와 같은 용어나 ‘정치검찰, 편파검찰’ 등이라는 말에 허탈감이나 자괴감만 느끼게 합니다.

 검경수사권조정과 관련하여 총장까지 물러난 마당에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형국이고,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에 관하여는 이미 끝난 얘기라며 그와 같은 주장이 세력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검사 직접 조사 확대, 고소사건의 보다 완벽한 처리’ 등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는 것 이외에 다른 해결책은 특별히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첫째, 과거부터 현재까지 검찰의 공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반성 및 사과, 둘째, 인사와 제도 혁신을 통한 검찰의 제자리 찾기, 셋째,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등 민주적 조직문화와 의식의 개혁이 요구되며, 이것이 바로 우리 검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3대 개선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가. 검찰도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여야 합니다.

 우선 검찰도 지난 시절부터 현재까지 공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통해서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냉철하게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사과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고 빨리 고칠수록 좋습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제 한번쯤은 정리할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정원이나 경찰, 사법부도 과거의 잘못을 일정부분 정리하고 반성하였는데 유독 검찰만이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몇 가지 정치적인 사건 처리에 있어서 검찰권이 무리하게 남용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형평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현 정부 들어 축소·부실·봐주기 수사라고 거명되거나 반대로 과잉·표적·보복수사라는 국민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사건들이 참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온 몸을 던져버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황을 몰고 간 박연차 관련 수사에 있어서는 “해도 너무 한다”거나 “치졸하고 패륜적이기까지 하다”라는 분노어린 시선도 많았습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트위터 등 SNS에서의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마저 재갈을 물리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수사의 착수시기와 대상, 방법과 범위, 절차 등이 자의적이지는 않았는지, 합법과 법치라는 이름하에 법전을 들이대는 것만으로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졌다고 자임할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법률가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지고, 법원에서 여지없이 무죄가 선고되었는데도 상소권을 행사함으로써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조차 계속적인 고통을 주고 있는 사건은 없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사건 중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특히 당해 사건의 수사검사들로서도 할 말은 많을 것입니다. 즉, 수사관련 정보가 독점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실 수사팀 이외에는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기에 함부로 추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팀도 모르게, 제공된 정보가 불순한 의도 하에 조작되거나 생산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공명심에 이끌려 성급하게 판단함으로써 일을 그르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유무죄에 관한 최종적 판단 기관인 법원의 판결이나 당사자들의 주장, 사건을 둘러싼 사회 여론이나 국민적 평가를 전혀 도외시할 수도 없는 것이겠지요. 인간이기에 실수하거나 오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당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었다면 당연히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와 제도 개혁입니다.

   - 정의의 회복과 개혁추진의 기반은 인사로부터 출발합니다.

 “인사가 만사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국가기관이나 사회조직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검찰도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검찰의 경우는 힘깨나 쓸 수 있는 요직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평검사나 부장검사, 심지어 대검검사(검사장급)들 간에도 보직간의 우열이나 편차가 심하고, 지방기피현상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 인사가 다른 어떤 국가기관보다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그동안의 검찰 인사가 말 그대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 왔는지, 지연이나 학연 등에 의해 지나치게 편중된 인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는지,정치적 편향성은 띠지 않았는지 등에 관하여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검찰 조직의 특성상 내부에서의 과거사 정리든 보직 배치든 제도개혁이든 이는 결국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 등 지휘부나 주요 보직 검사들이 어떠한 스탠스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휘부가 어떠한 정치철학이나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장관이나 총장, 대검검사급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그 이하 검사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장관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이 어떠한 정부를 선택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대통령이 자의적 인사권을 통해서 검찰을 장악하려 하여서는 아니 되지만, 반대로 검찰권이 남용되는 경우 인사권을 통한 견제는 주권재민의 원리에 따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집권자로서 수사 불개입·불간섭 원칙을 지킴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고, 선출된 권력의 인사권과 입법권을 통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들임으로써 검찰권의 남용이 견제되는데 동의할 수 있는 인물들이 선택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사건처리에 있어서 국민들의 비판대로 검찰권이 남용된 과오가 있다면 일정부분 이를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순리이겠지요. 보다 근원적으로는 올바른 역사인식과 민주적 소양을 갖춘 검사들이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시대정신에 맞는 개혁적 인사를 실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개혁추진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 신념과 의지가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검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때가 어서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 대검 중수부는 폐지하고 지역검찰제를 실시하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제도개혁과 관련하여 한 말씀 드립니다. 그동안 검찰권력 견제를 위해서 대검 중수부 폐지, 공수처 신설, 검경수사권조정 등과 같은 굵직한 문제들이 거론되어 왔습니다. 현재의 검찰에서는 위와 같은 논의가 검찰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는 움직임이라 하여 논리적,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에 불과하므로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도 얼마든지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공수처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되, 우선 대검 중수부는 한시적으로라도 과감하게 폐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이나 시장권력의 부정부패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간 무소불위 검찰권력의 상징으로서 그 정치적 편향성 시비로 인하여 검찰 전체로 봐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많았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획·조정·지원하는 선에서 그 역할을 담당할 부서를 새로 만들고, 기존의 중수부 기능은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지검이나 고검에 넘겨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일선 지검에 맡기는 것이 현저히 부적절할 경우, 국민적 요구가 있을 경우, 검사나 직원들 관련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특별수사본부 형식의 예비적·임시적 기구를 설치하여 독립적으로 처리케 하는 것도 검토해볼만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나누어줄 때 더 커지고 오래 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총장에게 집중된 수사권을 분산시킴으로써 권력의 사유화 및 정치권력의 개입 유혹을 방지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질 것입니다. 자칫 위임받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 위에 서서 나라를 좌지우지하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역검찰제(소위 향검제)도 이제는 점진적, 단계적으로 시행할 때가 되었습니다. 검사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여 지방고검 단위로 안정적으로 복무케 하고 가급적 해당 지역에서 오래 근무한 검사들 중에서 간부진도 배출시킴으로써 지역검찰의 사기도 진작시키고 검찰 내에서의 위상과 권한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역시 장관이나 총장에게 집중된 인사권과 수사권을 민주적으로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전문성 제고로 사정기능이 훨씬 강화되는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시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엄정한 감찰권 행사를 통해서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검경수사권조정에도 보다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검찰편이라던 현 정부에서 수사권 관련 형사소송법 규정이 개정되었습니다. 검찰의 입장에서야 득 될게 없었겠지만 어찌되었든 입법권자인 국회의 권한 행사와 기관간의 조정에 의한 것이므로 마땅히 존중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또 바뀌어 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또한 국민의 선택이겠지요.

 첨언하면, 앞으로도 수사권을 확대하고 검사로부터의 수사지휘에서 벗어나려는 경찰의 노력은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경찰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겠지요. 또 한편으로는 현행법상 명문화된 경찰의 수사 개시·진행권을 확대해석하거나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최대한 약화시켜 검사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경찰 간부들의 움직임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 먼저 자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우리 스스로 변하지 않고, 국민을 향하여 경찰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니 인권보장이니 하는 말들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지 의문입니다. 국민들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왜 검찰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우군들이 그다지도 적은지 그 근본원인을 냉철하고 솔직하게 분석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설령 국민의 또 다른 선택에 의하여 경찰이 수사권을 좀 더 행사한다 해도,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다 해도, 공수처가 신설된다 해도, 현행법상 고유의 수사권과 기소권 등을 보유하고 있고, 국가를 대표하는 법률가인 검사의 역할과 존재가치가 무너지기야 하겠습니까. 국민을 상대로 실력으로 당당하게 경쟁하고 승부하겠다는 배짱도 필요합니다.

   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등 민주적 조직문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외부로부터의 검찰개혁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검찰 내부에서도 진지하게 그 발전방향을 고민해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수중심, 서열중심의 조직문화로 인하여 획일적이고 폐쇄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요소는 여전히 검찰 내에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검사 및 직원들과의 회식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활동, 검찰에 우호적인 50-60세대 중심의 검찰 외곽 단체와의 만남도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것만으로 검찰내외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에 어렵습니다.

 우선 이프러스나 검사회의 등을 통하여 검사나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명하고,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다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검사들도 위축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소리를 한다면 누가 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일방적 지시나 형식적 토론회를 거칠 것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을 통하여 검사나 직원들의 진심은 무엇인지, 그 의사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검사들이 올바른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을 할 수 있도록, 검사이기 이전에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민주적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그에 걸맞게 검사들에 대한 교육 체계 및 컨텐츠 등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3. 국민검사·개념검찰로 거듭나야 1%를 위한 검찰이 아니라 99%를 위한 검찰로 거듭나야 합니다. 소수의 검사들에 의한, 그들만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다수의 검사들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검찰이어야 합니다. 대다수 검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일선 부장검사로 복귀한 이후 저는 검사들과 함께 부대끼고, 이프러스에 게재되는 젊은 검사들의 용기 있고 충정어린 글들을 읽으면서 검찰의 미래는 생각보다 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폼 나는 부서에 있지는 않지만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고, 또 검사로서 정의감과 자긍심을 갖고 잘 해보려는 검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치관이나 철학이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훌륭한 인품과 실력을 갖춘 선배 검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 변하듯이 세상도 변할 것이고, 머지않아 시대도 다시 바뀔 것입니다. ‘정치검사, 편파검찰’이라는 말 대신에 ‘국민검사, 개념검찰’이라는 말이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 잡도록 모두 힘을 합쳐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시계가 일시적으로 뒤로 갈 수는 있어도 역사의 진보를 믿기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있기에, 안팎에서 그 뜻을 모은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중국의 어느 현인은 “바른 것을 얻고 제대로 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拿得定 見得透 事無不成)”고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함부로 검사직을 던지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갖고 용기 내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법의 지배」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롭고 안정된 민주사회를 구현(검사윤리강령)”하는 검사 본연의 자세를 지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머지않아 미래 검찰을 책임지게 될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때도 많았지만 검사라는 신분 덕분에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과 과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소중한 인연을 맺었던 선후배님, 동료 및 직원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들 행복하시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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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은 빚더미..은행은 돈더미

 은행들이 지난해 올린 막대한 규모의 순익으로 성과급과 배당잔치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국민여론과 금융당국이 돈잔치에 제동을 걸자 잠시 기부금과 사회공헌 활동을 쏟아내는 등 여론 달래기에 나서다 해가 바뀌면서 다시 잔치에 나선것.

 ■새해 일제히 성과급·배당잔치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은 지난해 말 기본급의 150% 성과급을 지급했다. 여기에 들어간 돈은 산술적으로 800억원 내외로 추산된다. 하나은행은 100%의 성과급을 이미 지급했다. 공적자금이 투입돼 있는 우리은행은 노조가 "지난 6년간 성과급을 받지 못했다"며 100%의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당초 200~300%에 이르는 고액의 성과급을 지급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개인별, 부서별로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 측은 연말에 지급되는 성과급은 제도상 없으며 아직 당해연도 결산도 끝나지 않아 확정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주주들에 대한 고배당도 여전한 논란거리다. 지난해 사상 최대 수준의 이익을 올린 금융지주사들이 올해도 수조원 규모의 배당을 검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금융감독당국은 줄기차게 금융지주, 은행 등에 배당 자제를 권고했다. 그런데도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이익의 30% 내외를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지급했다. 이들이 내놓은 배당 근거는 '주주들의 이익'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논란이 뜨거워지자 각 지주사들은 조심스러운 입장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있다. KB금융지주 어윤대 회장은 최근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을 지키면서 최대한 (배당을) 많이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서민 이자·수수료부담 눈덩이

 지난해 은행들의 예상 순익은 사상 최대규모인 16조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히 KB, 우리, 신한, 하나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사들의 지난해 당기순익은 10조원대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관련, 은행권 관계자는 "오랫동안 성과급을 받지 못한 은행들도 있고, 이익을 많이 냈으니 은행 임직원들에 대한 동기부여 차원에서라도 성과급을 주는 게 꼭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은행들의 대규모 이익에 서민들의 대출이자와 수수료가 크게 한몫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은행권의 총 수수료 수입은 2010년에 7조78억원, 작년엔 상반기에만 3조6009억원을 기록했다. 또 지난 2007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국내 은행들이 대출이자로 거둬들인 수익은 315조5892억원에 달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대출 이자부담 총액은 56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금융소비자연맹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은행들의 수수료 인하 문제도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수수료를 찔끔 인하한 것에 불과했다"며 "대출과 수수료에 은행들이 지나치게 기대어 있는 상황에서 서민들이 힘겹게 낸 이자와 수수료로 벌이는 돈잔치가 곱게 보일 리 없다"고 지적했다.

ahnman@fnnews.com 안승현 황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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