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검사의 사직서 “양심에 비춰 이해할 수 없는 수사…”

한겨레신문 | 기사전송 2012/01/04 14:36

[한겨레]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일했던 박성수(48) 울산지검 형사1부장 검사가 검찰을 떠나며 검찰 내부게시판에 ‘사직의 변’을 올렸다. 박 부장검사는 이 글에서 이명박 정권 들어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검찰의 자기반성과 편향수사 논란의 중심에 섰던 대검 중수부 폐지를 주장했다.

 박 부장검사는 ‘사랑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며’라는 제목의 글에서 “연이어 불거진 검찰 관련 문제들을 묵과하며 검사의 직분을 버티어 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좀 더 참아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감이 떨어지기를 그저 기다리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거니와 장부로서 취할 태도는 아닌 듯합니다”라고 운을 뗐다. 그는 “검찰도 이제, 정치적 시비나 국민적 비판에 아랑곳없이 서슬 퍼렇게 질주해 나가던 집권 초중반기의 모습을 잠시 멈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힘 빠진 실세 관련 수사나 저축은행 비리·재벌 관련 비리 등 국민으로부터 그나마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사건들을 진행하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 정부가 임기 말에 접어든 것은 분명 사실인 것 같습니다”라며 현재 검찰의 모습을 이렇게 진단했다.

 박 부장검사는 정치권과 여론이 지지하고 있는 ‘검찰 개혁’ 움직임과 관련해 “늘 그래 왔듯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국민과 국가의 장래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조직의 명운을 걸고 이를 막아야만 되는 상황에 다시 직면할지도 모르겠다”며, 먼저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 위한 검찰의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를 위해 그가 꼽은 첫 번째 방책은, ‘검찰권이 무리하게 남용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자기반성이다.

 “법률가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지고, 법원에서 여지없이 무죄가 선고되었는데도 상소권을 행사함으로써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조차 계속적인 고통을 주고 있는 사건은 없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인간이기에 실수하거나 오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당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었다면 당연히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박 부장검사는 대검 중수부의 폐지도 주장했다. “(중수부가) 정치권력이나 시장권력의 부정부패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간 무소불위 검찰권력의 상징으로서 그 정치적 편향성 시비로 인하여 검찰 전체로 봐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많았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검찰총장에게 집중된 수사권을 분산시킴으로써 권력의 사유화 및 정치권력의 개입 유혹을 방지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정의의 회복과 개혁추진의 기반은 인사로부터 출발”한다며 “그동안의 검찰 인사가 말 그대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 왔는지, 지연이나 학연 등에 의해 지나치게 편중된 인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는지, 정치적 편향성은 띠지 않았는지 등에 관하여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도 검사장에 대한 인사는 대통령이, 검사의 인사는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법무장관이 행사하는 현실을 상기시키며 “대통령이 자의적 인사권을 통해서 검찰을 장악하려 하여서는 아니 되지만, 반대로 검찰권이 남용되는 경우 인사권을 통한 견제는 주권재민의 원리에 따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집권자로서 수사 불개입·불간섭 원칙을 지킴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고, 선출된 권력의 인사권과 입법권을 통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들임으로써 검찰권의 남용이 견제되는데 동의할 수 있는 인물들이 선택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사를 통해 검찰을 장악하려고 드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지 말자는 얘기다.

 후배검사들에게는 “‘정치검사, 편파검찰’이라는 말 대신에 ‘국민검사, 개념검찰’이라는 말이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 잡도록 모두 힘을 합쳐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바른 것을 얻고 제대로 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拿得定 見得透 事無不成)”는 중국의 경구를 인용하며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함부로 검사직을 던지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갖고 용기 내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법의 지배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롭고 안정된 민주사회를 구현(검사윤리강령)’하는 검사 본연의 자세를 지켜나가시기 바랍니다”라고 덧붙였다.

 박 부장검사는 1994년 사법연수원을 수료(연수원 23기)하고 검사로 임관했고, 수원지검에서 근무하던 2005년 청와대 법무행정관으로 기용됐다. 참여정부 임기 말인 2007년에는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승진’했고, 2008년 검찰로 복귀했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아래는 사직서 전문사랑받는 국민의 검찰로 거듭나기를 소망하며- 검찰을 떠나면서 - 박성수   1. 서언 검사로서의 꿈은 꿈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저는 이제 20년 가까운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길로 나서려 합니다.

 “박비서관, 나중에 검찰로 돌아가면 왕따 당하는 것 아니에요? 나를 도와준 것 때문에…·”, 2007년 6월 11일 대통령 관저에서 당시 노무현 대통령 부부와 오찬 중 대통령께서 웃으시며 하신 말씀이 문뜩 떠오릅니다.

 참여정부에서 2년 6개월간 청와대 행정관, 법무비서관으로 봉직한 후,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쳐 5년 만에 일선 검찰로 복귀하였지만, 연이어 불거진 검찰 관련 문제들을 묵과하며 검사의 직분을 버티어 나가는 것이 그리 쉽지 않았습니다.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좀 더 참아볼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감이 떨어지기를 그저 기다리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거니와 장부로서 취할 태도는 아닌 듯합니다.

 나가는 사람으로서 그 진정성에 의심을 받고 싶지 않았고,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검찰에 누를 끼치는 것 같아 많이 저어되어 말없이 떠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말한 등애(godfly)의 심정으로, 미래의 검찰을 짊어지게 될 후배들과 묵묵히 소임을 다하고 있는 직원들을 위하여 제 나름의 소회와 당부를 남겨놓는 것도 선배로서 일종의 책임이라 생각되어 몇 글자 적어봅니다.

   2.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검찰을 위하여 검찰도 이제, 정치적 시비나 국민적 비판에 아랑곳없이 서슬 퍼렇게 질주해 나가던 집권 초중반기의 모습을 잠시 멈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힘 빠진 실세 관련 수사나 저축은행 비리·재벌 관련 비리 등 국민으로부터 그나마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사건들을 진행하면서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 정부가 임기 말에 접어 든 것은 분명 사실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기세 좋게 검찰권을 맘껏 휘두르면서 수사·기소했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하여 법원에서의 무죄를 뒤집기 위해 공소유지에 진력하거나 애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지기를 기대하여야 하는 상황입니다. 또한 이제야말로 ‘정치검찰, 무소불위의 검찰’을 ‘확 바꿔야 한다’라는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늘 그래왔듯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국민과 국가의 장래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조직의 명운을 걸고 이를 막아야만 되는 상황에 다시 직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능력이 출중했든지, 배경이나 처세술이 좋았든지, 아니면 관운이 좋았든지 간에 중앙무대에서 요직을 오고가며 승승장구하는 검사들에게는 ‘최고의 사정기관, 권력기관, 무소불위의 검찰’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 실감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고소사건, 송치사건 처리와 허울뿐인 수사지휘 등에 허덕이면서 야근을 밥 먹듯이 하는데도 별다른 관심이나 대접도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일선 지방청 검사들에게는 위와 같은 용어나 ‘정치검찰, 편파검찰’ 등이라는 말에 허탈감이나 자괴감만 느끼게 합니다.

 검경수사권조정과 관련하여 총장까지 물러난 마당에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은 없다며 배수의 진을 치고 있는 형국이고,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에 관하여는 이미 끝난 얘기라며 그와 같은 주장이 세력화되는 것을 경계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검사 직접 조사 확대, 고소사건의 보다 완벽한 처리’ 등에 충실할 것을 주문하는 것 이외에 다른 해결책은 특별히 제시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저의 생각은 좀 다릅니다. 국민의 신뢰와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첫째, 과거부터 현재까지 검찰의 공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반성 및 사과, 둘째, 인사와 제도 혁신을 통한 검찰의 제자리 찾기, 셋째,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등 민주적 조직문화와 의식의 개혁이 요구되며, 이것이 바로 우리 검찰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3대 개선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가. 검찰도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여야 합니다.

 우선 검찰도 지난 시절부터 현재까지 공과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통해서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냉철하게 반성하고 국민들에게 진솔하게 사과를 하여야 할 것입니다. 잘못이 있다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하고 빨리 고칠수록 좋습니다. 어려움은 있겠지만 이제 한번쯤은 정리할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정원이나 경찰, 사법부도 과거의 잘못을 일정부분 정리하고 반성하였는데 유독 검찰만이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몇 가지 정치적인 사건 처리에 있어서 검찰권이 무리하게 남용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형평성과 공정성이 확보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멀리 볼 것도 없습니다. 현 정부 들어 축소·부실·봐주기 수사라고 거명되거나 반대로 과잉·표적·보복수사라는 국민의 호된 비판을 받고 있는 사건들이 참으로 적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온 몸을 던져버릴 수밖에 없을 정도로 상황을 몰고 간 박연차 관련 수사에 있어서는 “해도 너무 한다”거나 “치졸하고 패륜적이기까지 하다”라는 분노어린 시선도 많았습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트위터 등 SNS에서의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표현마저 재갈을 물리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수사의 착수시기와 대상, 방법과 범위, 절차 등이 자의적이지는 않았는지, 합법과 법치라는 이름하에 법전을 들이대는 것만으로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졌다고 자임할 수 있었는지 의문입니다. 또한 법률가의 양심에 비추어 보아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수사와 기소가 이루어지고, 법원에서 여지없이 무죄가 선고되었는데도 상소권을 행사함으로써 당사자들은 물론이고 국민들에게 조차 계속적인 고통을 주고 있는 사건은 없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그와 같은 사건 중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특히 당해 사건의 수사검사들로서도 할 말은 많을 것입니다. 즉, 수사관련 정보가 독점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실 수사팀 이외에는 사건의 진상을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기에 함부로 추단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사팀도 모르게, 제공된 정보가 불순한 의도 하에 조작되거나 생산되었을 가능성도 있고, 공명심에 이끌려 성급하게 판단함으로써 일을 그르친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유무죄에 관한 최종적 판단 기관인 법원의 판결이나 당사자들의 주장, 사건을 둘러싼 사회 여론이나 국민적 평가를 전혀 도외시할 수도 없는 것이겠지요. 인간이기에 실수하거나 오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하여 당사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었다면 당연히 반성하고 사과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와 제도 개혁입니다.

   - 정의의 회복과 개혁추진의 기반은 인사로부터 출발합니다.

 “인사가 만사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모든 국가기관이나 사회조직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검찰도 예외는 아닙니다. 특히 검찰의 경우는 힘깨나 쓸 수 있는 요직이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평검사나 부장검사, 심지어 대검검사(검사장급)들 간에도 보직간의 우열이나 편차가 심하고, 지방기피현상도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 인사가 다른 어떤 국가기관보다 민감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그동안의 검찰 인사가 말 그대로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루어져 왔는지, 지연이나 학연 등에 의해 지나치게 편중된 인사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는지,정치적 편향성은 띠지 않았는지 등에 관하여 냉정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검찰 조직의 특성상 내부에서의 과거사 정리든 보직 배치든 제도개혁이든 이는 결국 법무부장관이나 검찰총장 등 지휘부나 주요 보직 검사들이 어떠한 스탠스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많이 좌우되는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휘부가 어떠한 정치철학이나 가치관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장관이나 총장, 대검검사급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그 이하 검사에 대한 인사권은 대통령의 위임을 받은 장관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결국은 국민이 어떠한 정부를 선택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수밖에 없겠지요. 대통령이 자의적 인사권을 통해서 검찰을 장악하려 하여서는 아니 되지만, 반대로 검찰권이 남용되는 경우 인사권을 통한 견제는 주권재민의 원리에 따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집권자로서 수사 불개입·불간섭 원칙을 지킴으로써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보장되고, 선출된 권력의 인사권과 입법권을 통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들임으로써 검찰권의 남용이 견제되는데 동의할 수 있는 인물들이 선택되기를 바랍니다.

 만일 사건처리에 있어서 국민들의 비판대로 검찰권이 남용된 과오가 있다면 일정부분 이를 정리하고 넘어가는 것이 순리이겠지요. 보다 근원적으로는 올바른 역사인식과 민주적 소양을 갖춘 검사들이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시대정신에 맞는 개혁적 인사를 실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개혁추진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 신념과 의지가 있는 인물들이 등장하여 검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때가 어서 빨리 오기를 기대합니다.

   - 대검 중수부는 폐지하고 지역검찰제를 실시하여야 합니다.

 다음으로 제도개혁과 관련하여 한 말씀 드립니다. 그동안 검찰권력 견제를 위해서 대검 중수부 폐지, 공수처 신설, 검경수사권조정 등과 같은 굵직한 문제들이 거론되어 왔습니다. 현재의 검찰에서는 위와 같은 논의가 검찰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는 움직임이라 하여 논리적, 심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고,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에 불과하므로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도 얼마든지 잘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공수처에 대한 논의는 별론으로 하되, 우선 대검 중수부는 한시적으로라도 과감하게 폐지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권력이나 시장권력의 부정부패를 효율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순기능이 있음을 인정하지만, 그간 무소불위 검찰권력의 상징으로서 그 정치적 편향성 시비로 인하여 검찰 전체로 봐서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많았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획·조정·지원하는 선에서 그 역할을 담당할 부서를 새로 만들고, 기존의 중수부 기능은 서울중앙지검 등 일선 지검이나 고검에 넘겨야 할 것입니다. 다만, 일선 지검에 맡기는 것이 현저히 부적절할 경우, 국민적 요구가 있을 경우, 검사나 직원들 관련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하여 특별수사본부 형식의 예비적·임시적 기구를 설치하여 독립적으로 처리케 하는 것도 검토해볼만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권력은 나누어줄 때 더 커지고 오래 갈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총장에게 집중된 수사권을 분산시킴으로써 권력의 사유화 및 정치권력의 개입 유혹을 방지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질 것입니다. 자칫 위임받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 위에 서서 나라를 좌지우지하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는 길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역검찰제(소위 향검제)도 이제는 점진적, 단계적으로 시행할 때가 되었습니다. 검사들의 의사를 최대한 반영하여 지방고검 단위로 안정적으로 복무케 하고 가급적 해당 지역에서 오래 근무한 검사들 중에서 간부진도 배출시킴으로써 지역검찰의 사기도 진작시키고 검찰 내에서의 위상과 권한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역시 장관이나 총장에게 집중된 인사권과 수사권을 민주적으로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전문성 제고로 사정기능이 훨씬 강화되는 장점이 있을 것입니다. 시행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엄정한 감찰권 행사를 통해서 충분히 해소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검경수사권조정에도 보다 대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검찰편이라던 현 정부에서 수사권 관련 형사소송법 규정이 개정되었습니다. 검찰의 입장에서야 득 될게 없었겠지만 어찌되었든 입법권자인 국회의 권한 행사와 기관간의 조정에 의한 것이므로 마땅히 존중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다면 얼마든지 또 바뀌어 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이 또한 국민의 선택이겠지요.

 첨언하면, 앞으로도 수사권을 확대하고 검사로부터의 수사지휘에서 벗어나려는 경찰의 노력은 계속 진행될 것입니다. 경찰 입장에서 보면 당연히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겠지요. 또 한편으로는 현행법상 명문화된 경찰의 수사 개시·진행권을 확대해석하거나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최대한 약화시켜 검사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경찰 간부들의 움직임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에 대한 옳고 그름을 떠나서, 우리 먼저 자성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우리 스스로 변하지 않고, 국민을 향하여 경찰수사에 대한 사법적 통제니 인권보장이니 하는 말들을 외치는 것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지 의문입니다. 국민들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왜 검찰의 주장에 손을 들어주는 우군들이 그다지도 적은지 그 근본원인을 냉철하고 솔직하게 분석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설령 국민의 또 다른 선택에 의하여 경찰이 수사권을 좀 더 행사한다 해도, 대검 중수부가 폐지된다 해도, 공수처가 신설된다 해도, 현행법상 고유의 수사권과 기소권 등을 보유하고 있고, 국가를 대표하는 법률가인 검사의 역할과 존재가치가 무너지기야 하겠습니까. 국민을 상대로 실력으로 당당하게 경쟁하고 승부하겠다는 배짱도 필요합니다.

   다.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의사소통 등 민주적 조직문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외부로부터의 검찰개혁에 수동적으로 반응할 것이 아니라 이제는 검찰 내부에서도 진지하게 그 발전방향을 고민해보고 선제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시점인 것 같습니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수중심, 서열중심의 조직문화로 인하여 획일적이고 폐쇄적이며 권위주의적인 요소는 여전히 검찰 내에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검사 및 직원들과의 회식이나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활동, 검찰에 우호적인 50-60세대 중심의 검찰 외곽 단체와의 만남도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없겠지만 그것만으로 검찰내외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기에 어렵습니다.

 우선 이프러스나 검사회의 등을 통하여 검사나 직원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표명하고, 현안에 대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보다 개방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 검사들도 위축되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당하게 의견을 개진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바른 소리를 한다면 누가 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일방적 지시나 형식적 토론회를 거칠 것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을 통하여 검사나 직원들의 진심은 무엇인지, 그 의사를 어떻게 존중할 것인지를 고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급변하는 현실 속에서 검사들이 올바른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을 할 수 있도록, 검사이기 이전에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민주적 소양을 갖출 수 있도록, 그에 걸맞게 검사들에 대한 교육 체계 및 컨텐츠 등을 획기적으로 바꾸어야 할 것입니다.

   3. 국민검사·개념검찰로 거듭나야 1%를 위한 검찰이 아니라 99%를 위한 검찰로 거듭나야 합니다. 소수의 검사들에 의한, 그들만을 위한 검찰이 아니라, 다수의 검사들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검찰이어야 합니다. 대다수 검사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일을 할 수 있는, 그럼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일선 부장검사로 복귀한 이후 저는 검사들과 함께 부대끼고, 이프러스에 게재되는 젊은 검사들의 용기 있고 충정어린 글들을 읽으면서 검찰의 미래는 생각보다 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폼 나는 부서에 있지는 않지만 맡은 바 소임을 묵묵히 수행하고, 또 검사로서 정의감과 자긍심을 갖고 잘 해보려는 검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치관이나 철학이야 조금씩 다를 수 있겠지만 훌륭한 인품과 실력을 갖춘 선배 검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모든 사물이 변하듯이 세상도 변할 것이고, 머지않아 시대도 다시 바뀔 것입니다. ‘정치검사, 편파검찰’이라는 말 대신에 ‘국민검사, 개념검찰’이라는 말이 국민의 가슴속에 자리 잡도록 모두 힘을 합쳐 혼신의 노력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역사의 시계가 일시적으로 뒤로 갈 수는 있어도 역사의 진보를 믿기에,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있기에, 안팎에서 그 뜻을 모은다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생각합니다.

 중국의 어느 현인은 “바른 것을 얻고 제대로 보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拿得定 見得透 事無不成)”고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힘들더라도 함부로 검사직을 던지지 말고, 꿈과 희망을 갖고 용기 내어, “범죄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법의 지배」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자유롭고 안정된 민주사회를 구현(검사윤리강령)”하는 검사 본연의 자세를 지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머지않아 미래 검찰을 책임지게 될 여러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돌이켜보면, 부끄러울 때도 많았지만 검사라는 신분 덕분에 국가와 사회로부터 많은 혜택과 과분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동안 소중한 인연을 맺었던 선후배님, 동료 및 직원 여러분들에게도 진심으로 고마웠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들 행복하시고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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