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사고 시 미군 잠수함 침몰 증거 속속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2/01/12 [00:25] 최종편집: ⓒ 자주민보
천안함사고 합동조사위원이었다가 해군 당국의 고발에 의해 현재 군 당국과 재판을 진행중인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의 지난 9일 재판과정에 천안함 사고 당시 미군 관련 잠수함 추정 구조물도 함께 침몰했을 가능성을 더욱 확증해주는 증언이 나와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는 필자도 천안함 사건 초기부터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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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ajuminbo.net/sub_read.html?uid=5790

그 함미 인양을 위한 크레인을 동원했던 '88수중개발'의 관련자가 법정에 증인으로 나와 당시 인양한 함미는 바로 떠서 바지선에 능히 실을 수 있었음에도 군 당국의 일방적이 지시로 절단부위에 그물망만 씌운채 다시 바다에 넣어 용트림바위 앞으로 이동하는 조치를 취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변호인단은 하루라도 빨리 함미 안의 시신을 수습해야할 상황에서 건져올린 함미에 그물망만 씌운채 바다속에 다시 넣어 꽤 먼거리를 이동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질문하자, '88수중개발' 관계자는 군 당국의 지시라서 그렇게 했다고 진술하면서도 사실 그정도 무게의 함미를 바지선으로 떠서 올리는 일은 부산 사투리로 말해서 '같잖은 일'이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결국 군 당국은 시신 부패 우려, 수중이동 과정에 시신 유실 우려, 하루라도 빨리 시신을 확인하고 싶어하는 유족들의 열망, 혹시 모를 생존가능 장병들에 대한 국민적 기대 등 이 모든 것을 저버리고 와이어를 한 줄 더 걸어야하는데 좀더 안전한 얕은 바다로 옮겨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함미를 기어이 용트림바위 쪽으로 옮기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상악화를 이유로 작업을 중지하겠다며 '88수중개발' 관계자들 중 크레인 조종사 1인을 제외하고 13-14일 이틀간이나 철수시켜 누구도 함미 근처에 접근을 못하게 하였다.

신상철 대표의 조사에 따르면 그 이틀간 미군은 이 용트림바위 앞에서 무척 바쁘게 뭔가를 인양하는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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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잠수요원들의 잠수작업은 물론 수많은 링스헬기들이 수도 없이 떠서 뭔가를 연이어 날랐다.


▲ 함수 침몰 지점 인근 용트림바위 앞바다에서 미군과 한국 유디티 대원 합동 수색팀이 심해 구조작업 막바지 훈련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 담긴 사진, 그리고 13-14일 이 훈련을 한 대원대들이 용트림 바위 앞에 대거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함미는 이미 12일 건져올렸기 때문에 이들이 함미에 투입하여 할 일은 더 없는 상황이었고 12일 함미 인양작업도 이런 심해장비를 장착한 군인들이 아니라 '88수중개발' 민간잠수요원들이 진행했다. 우리 유디티 대원들도 건져올린 함미에 그물망을 씌운 일을 했을 뿐 심해잠수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 훈련은 함미가 아닌 다른 심해에 침몰한 구조물을 수습하기 위한 훈련이었던 것이며 함미를 그 위치로 이동시켜 함미를 잡고 있던 크레인도 그 작업을 도왔을 가능성이 높다. © 자주민보, 플리커에서 복사


▲ 천안함 구조 관련 작전도의 붉은 점의 38이라는 숫자는 희생된 미군 관련 숫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천안함 함수도 저기서 사고가 난 것은 아니었다. ©자주민보


▲ 14일 미군이 해난구조활동을 전개했던 제3부표지점에서 뭔가를 실어나르며 바쁘게 움직이는 모습, 미군의 수송헬기들이 숱하게 떴다. 의료헬기도 뜬 것을 보니 미군 관련 희생자들을 옮기는 작업을 했을 가능성도 높다. ©자주민보

▲ 12일 건져올린 천안함 함미를 용트림바위 앞으로 옮긴 후 기상악화를 이유로 수습작업을 중단한 대신 그 용트림 바위 앞에서 13일과 14일 미군은 이렇게 바쁘게 움직였다. 이 미군의 작업을 함미인양 크레인이 도왔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함미수습작업을 한다는 명분을 위해 함미를 이 작업을 하던 용트림바위로 끌고 온 것인가. © 자주민보

신상철 대표는 이번 재판 후기 글에서 이 용트림 바위 앞바다에 함미와 함수 위치가 발견되기도 전에 벌써 투입되어 구조 수습 활동을 진행했던 한주호 준위 잠수팀이 사건 초기 9시뉴스에 밝힌 내용을 언급했는데, 한주호 준위 잠수팀이 이 지점에서 잠수해 들어가보니, 거대한 구조물이 있었고 그 구조물에 솟은 국기봉과 같은 관을 잡고 해치를 열고 들어갔더니 그 안에 복잡한 호스들이 널려있었다고 증언했다고 밝혔다.
복잡한 호스가 들어있었다면 잠수함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국기봉과 같은 관은 디젤엔진을 수중에서 가동할 때 공기흡입을 위해 바다 위로 내미는 관이거나 잠망경 관일 가능성이 높다. 신상철 대표는 관련 9시뉴스 기자와 한주호 준위 팀 잠수요원을 다음 재판의 증인으로 신청한 상태이다.

결국 38명이 타고 있는 잠수함이 침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38명이라면 209급 디젤잠수함일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 잠수함이라면 주력으로 사용하고 있는 돌핀급이다.


그렇다면 천안함 침몰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이 잠수함과 천안함이 불의에 충돌로 천안함을 두동강 나고 잠수함이 침몰했을 경우가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미군 잠수함이(이스라엘 잠수함도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음, 당시 이스라엘대통령의 뜬금없는 한국방문도 이와 관련이 깊다고 판단됨) 서로 오인 사격을 했건 내부 사고가 났건, 북과의 수중전이 벌어져 북 인민군 해군에 당했건 두 대가 침몰했는데 이를 구조하기 위해 천안함을 미군 엘이이급 핵잠수함이 급부상으로 들이박아 두동강을 낸 후 이를 인양한다면서 사실은 침몰 잠수함의 시신과 내부의 위험한 미사일 무기 등을 수거하는 일을 진행했을 가능성이다.


그 나머지 한 대의 잠수함 추정 선박은 지금도 초기 함미가 침몰했던 바다 아래 수장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문순 의원과 함께 이를 조사했던 알파잠수팀에서는 60년전 침몰한 상선이라고 주장했지만 본지의 분석결과 그 형태가 상선이 아닌 잠수함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를 조사해보기 위해 좀더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는 장비를 보유한 잠수업체와 상의해보았지만 국내 모든 잠수업체에 이미 정부에서 관련 해상에 대한 조사를 못하게 공문을 보낸 상태였다.
알파 잠수팀에서도 최문순 의원이 동행하지 않으면 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최문순 의원 측에 대해서 협조를 구했지만 이상하게도 보좌관이 아예 어렵다고만 할 뿐 그 이유에 대한 답변조차 해주지 않아 본지에서는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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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상황이 진행될수록 본지에서 보도했던 천안함 사건 당시 미군과 이스라엘 잠수함 침몰 가능성이 점점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결론은 그렇다.

이 잠수함 침몰이 내부기관고장에 의한 것이건, 우발적 충돌에 의한 것인건, 김명철 소장의 주장대로 훈련과정 오폭에 의한 것이건, 아니면 일부 인터넷 북 무기 전문가들이 주장했듯이(필자는 이들의 주장이 나오기 전, 사건 초기부터 그 가능성을 주장해왔다.) 북의 첨단무기 공격에 의한 것이건 분명한 사실은 한반도에서는 지금 보이지 않는 전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정말 얼마나 위험천만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 정말 북미평화협정이 체결되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한다면 조만간 사단이 나도 대형 사단이 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두려운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도대체 이스라엘 잠수함이 키리졸브-한미합동독수리 훈련에 비밀리에 왜 참가하였겠는가. 미국과 그 연합세력도 이제 더는 북을 두고 볼 수 없다고 결단을 내렸기 때문 아니겠는가.
지난해 미군이 했던 훈련을 생각해보면 모두 북으로 치고 올라가 북의 미사일기자와 핵기지를 점렴해체하겠다는 것이었다.
북은 이런 미국의 사소한 도발도 묵과하지 않고 전면 반격으로 쓸어버리겠다고 지난해 내내 성명, 논평을 통해 밝혀왔다.

이제 한반도는 이 힘의 충돌이냐 아니면 대화를 통한 대타결이냐 그 마지막 고비에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다음은 신성철 대표 재판 관련 미디어오늘의 보도이다. 조현오 기자도 이 사건을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추적 보도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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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조현오 기자, 12. 01. 09] 천안함 침몰 사고 관련 재판에서 새로운 의혹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천안함 침몰 이후 구조인양 작업 중 인양업체에서 최초에 함미를 체인 두 줄로 감아 수면까지 끌어올린 뒤 인양해 바지선으로 탑재할 계획이었으나 해군이 돌연 천안함을 수면 아래로 내리고, 함미를 침몰지점에서 백령도 해안 부근으로 옮겨 사흘간 지체하면서 체인 한 줄을 더 걸도록 한 배경에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특히 함미를 이동시킨 뒤 세 번째 체인을 부착하는 작업을 한 것을 제외하고는 인양업체의 체인설치팀이 함미 선체로부터 벗어나 아예 대청도(육상)로 나가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함미 이동부터 함미 인양한 날까지 사흘간 함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지난해 천안함 함미를 인양했던 88수중개발의 체인 등의 설치준비작업을 지휘했던 권만식씨는 9일 오후 천안함 의혹제기를 했다가 군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전 민군 합조단 민간위원)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유상재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5차 공판기일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애초 현장에서 지시를 받은 것은 ‘함미에 체인 두 줄을 걸라는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권씨는 지난 2010년 4월 3일부터 백령도에 합류해 함미 인양을 위한 체인설치 등의 지휘를 했으며, 같은 회사인 88수중개발의 정성철 대표가 모든 인양작업의 지휘를 하며 지시를 내렸다고 밝혔다.

천안함 함미


권씨는 함미를 최초로 수면까지 올렸던 지난 2010년 4월 12일까지 함미에 체인을 두가닥 걸어놓은 상태였다고 증언했다. 당시 88수중개발은 함미(선체와 물의 무게 포함)의 무게가 1000톤 정도일 것으로 예상했고, 이를 들어올리려는 해상크레인은 2200톤급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들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씨는 함미 선체 무게와 들어있는 물, 물먹은 나무 등을 합쳐 넉넉히 계산했을 때 무게가 1000톤 안팎이었을 것이라는 얘기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 진술은 지난해 11월 13일 천안함 4차 공판 때 김진황 해난구조대장이 당시 함미의 무게를 선체 624톤, 물 무게 1160톤 등 모두 1800톤에 이를 것으로 판단했다는 진술과 배치된다. 특히 권만식씨는 당시 작업 현장에서도 김진황 대장의 증언과 같이 함미 무게(총 1800톤)가 나갈 것이라는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체인 두 줄을 걸어놓은 상태에서 4월 12일 함미를 수면까지 들어올리기 전까지 한 줄 더 걸라는 지시를 받은 일도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권만식씨는 “(최종 지시는) 두줄(을 걸라는 것)이었다”며 “세줄 걸라고 지시했으면 세줄을 걸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정호원 88수중개발 부사장은 지난 2010년 4월 13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와이어 두 줄로도 충분히 인양이 가능한 상황”, “일반 상선이었다면 와이어 두줄로 바로 들어 (바지선에) 올리면 된다…1000톤 이상 되는 상선을 인양할 때도 보통 이런 식으로 한다…부산말로 같잖은 일(너무 쉬운 일)…(이는) 인양업계의 상식”이라고 밝혔었다.
권만식씨는 재판에서 이를 두고 “현장 상황이 바깥과 틀리다. 사고가 났기 때문에, 완벽하게 인양하려고 했고, 날씨도 안좋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터뷰 내용과 (실제가) 상반된다는 것이냐’는 재판장의 추궁에 권씨는 “올릴라고만 하면 올린다. 하지만 유족 문제에 신경이 곤두서 있는 상태였고, 날씨도 좋지 않아 더 좋은 조건으로 하자고 한 것 같다”고 답했다.
또한 함미를 인양하려 했던 4월 12일 수면까지 들어올렸다 내린 경위에 대해 권씨는 “너무 많이 들면, 저항 때문에 톤수가 많이 늘어나고, 파도가 치니 다시 낮추라고 해서 낮췄다”며 “수면 아래로 조금 더 낮추라고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애초 함미를 인양하려 했던 함미 침몰지점에서 용트림 바위 쪽으로 이동한 것과 관련해 권씨는 “(4월 11일 저녁 때) 날씨가 안좋다고 해서 수심이 낮고 파도가 안치는 곳으로 이동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지난 재판에서 해군과 해난구조대장(김진황씨)는 파고가 높고, 기상상태가 안좋아 저수심 지대인 백령도 용트림바위 앞으로 옮겼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역은 고 한주호 준위가 사망했다는 제3의 부표(KBS 보도) 지점과 인접한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10년 4월 12일 해군과 민간인양업체 등이 천안함 함미를 함미 침몰지점에서 동남방 2.6마일 지점(백령도 용트림 바위 부근)으로 이동시킨 상황도. ⓒ국방부 천안함백서


그렇게 함미를 이동시킨 뒤 세 번째 체인을 걸게 된 경위에 대해 권씨는 “두 줄 걸고 난 뒤 천안함 함미를 이동시킨 날(12일)과 들어올린 날(15일)의 공백기간에 한 줄 더 보강하자고 어디선지 연락이 와서 보강했다”며 “아마 13일엔 기상악화 때문에 안한 것 같고, 14일에 작업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씨는 이런 작업을 할 때를 빼놓고는 함미를 이동시킨 이후 작업팀이 아예 대청도 육상에 가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함미를 옮겨놓은 뒤 우리(88수중개발팀)는 대청도 섬으로 피항갔고, 산에도 올라갔다. 작업자들은 섬으로 갔고, 바지선과 크레인 작업팀은 대기했다”며 “함미는 용트림 바위 부근 저수심지대(25m)에서 바닥으로부터 한 1~2m 떨어진 위치에 체인으로 걸어서 지탱하도록 해뒀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양작업을 담당했던 88수중개발팀이 함미가 이동한 이후 모두 빠진 채 현장에는 해군과 해상크레인(삼아해운)팀만 사흘간 남아있었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두 줄로 걸었다해도 4월 12일 끌어올렸을 때 곧바로 바지선에 싣고 시신수습한 뒤 평택으로 가면 되는 일”이라며 “그런데 해군이 ‘체인(케이블)을 한 줄 더 걸어야 안전하다’면서 굳이 저수심 지역으로 끌고가려한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의심이 짙게 든다”고 지적했다.
신 대표는 “왜 저수심지대로 끌고 가려 한 것인가가 관건”이라며 “그 저수심지대에서 해상크레인의 작업을 필요로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0년 4월 12일 해상크레인이 천안함 함미를 이동시키고 있는 장면. ⓒ국방부 천안함 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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