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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전사 707특임대의 추풍령 인질극 사건
2012-09-19 02: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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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 "국가가 부를땐 군복이 수의" 707특수임무부대

09/03(목) 11:36

한겨울 새벽 칼바람이 부는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해병대 서용운 중사가

 

시외버스 승객 19명을 인질로 잡고 ‘귀신 잡는’ 해병대요원과 숨쉬기도 어려운 팽팽한

 

대치를 하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해 극도로 흥분한 서 중사는 버스안에 크레모아를 설치

 

해놓고 한손에는 크레모아 격발기를, 또 한손엔 장전된 M16소총을 들고

 

“도망간 아내를 데려오라” 고 소리를 질러댔다. 서 중사나 서울진입을 막고 있는

 

해병대원 모두 탈출구는 없었다. 


정적을 깨듯 통제된 고속도로를 통해 허름한 봉고차 한대가 나타나 머리부터 온통 검은색의

 

복장을 한 10여명을 내려 놓았다. 서두르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트렁크에서

 

망원렌즈가 달린 저격용소총, 기관단총 권총 등 온갖 무기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잠시후 작전개시를 알리는 ‘저격’ 명령이 떨어지자 행동이 기민해지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출발” 검은 복장의 2명이 허리를 90도로 꺽고 지그재그로 시외버스 앞쪽으로

 

내달리자 버스창밖으로 소총이 난사됐다. 서 중사의 시선이 앞쪽으로 쏠리는 틈을 이용해

 

다른 한켠에 있던 2명이 버스밑으로 신속하게 숨어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버스후미의 범퍼를

 

밞고 올라서 있었다. 한발의 총소리를 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86년 12월3일 있었던 소위

 

‘추풍령 무장탈영병 사건’ 의 전말이다.(당시 일반인에게 서 중사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말 없이 왔다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영화의 한장면처럼 사라진 검은 베레모에 칡흙같은

 

검은 옷을 입은 대원들이 바로 국군 대테러부대인 ‘707특수임무대대’ 요원들이다. 



주간한국 정덕상·사회부기자 
[테러리즘] "국가가 부를땐 군복이 수의" 707특수임무부대

09/03(목) 11:36

한겨울 새벽 칼바람이 부는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해병대 서용운 중사가 시외버스 승객 19명을 인질로 잡고 ‘귀신 잡는’ 해병대요원과 숨쉬기도 어려운 팽팽한 대치를 하고 있었다. 이미 술에 취해 극도로 흥분한 서 중사는 버스안에 크레모아를 설치해놓고 한손에는 크레모아 격발기를, 또 한손엔 장전된 M16소총을 들고 “도망간 아내를 데려오라” 고 소리를 질러댔다. 서 중사나 서울진입을 막고 있는 해병대원 모두 탈출구는 없었다.

 

정적을 깨듯 통제된 고속도로를 통해 허름한 봉고차 한대가 나타나 머리부터 온통 검은색의 복장을 한 10여명을 내려 놓았다. 서두르지는 않았지만 이들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트렁크에서 망원렌즈가 달린 저격용소총, 기관단총 권총 등 온갖 무기로 무장하기 시작했다.

 

 잠시후 작전개시를 알리는 ‘저격’ 명령이 떨어지자 행동이 기민해지기 시작했다. “셋, 둘, 하나, 출발” 검은 복장의 2명이 허리를 90도로 꺽고 지그재그로 시외버스 앞쪽으로 내달리자 버스창밖으로 소총이 난사됐다. 서 중사의 시선이 앞쪽으로 쏠리는 틈을 이용해 다른 한켠에 있던 2명이 버스밑으로 신속하게 숨어드는가 싶더니 어느새 버스후미의 범퍼를 밞고 올라서 있었다. 한발의 총소리를 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다. 86년 12월3일 있었던 소위 ‘추풍령 무장탈영병 사건’ 의 전말이다.(당시 일반인에게 서 중사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전사경력 5년이상의 최정예 요원들

아무말 없이 왔다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영화의 한장면처럼 사라진 검은 베레모에 칡흙같은 검은 옷을 입은 대원들이 바로 국군 대테러부대인 ‘707특수임무대대’ 요원들이다.

 

81년 4월17일 창설된 707특임대는 철저히 비밀에 싸여있다가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때 요인경호 등에 일부 참여하면서 조금씩 알려졌다. 그러나 아직도 이 부대의 정확한 임무와 조직 등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단지 대테러를 담당하는 2개 대대와 특전사로도 채울 수 없는 전술의 공백을 메우는 1개씩의 고공및 해상특수작전대대로 편성돼 있다는 정도이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부대 관계자는 “우리의 얼굴 자체가 2급비밀이다.

 

우리는 전시작전 대테러, 신속대응 이외에도 X파일이라고 부르는 특수임무를 수행한다” 고 짧게 말했다.

 

‘특전사속의 특전대’ 란 명칭에 걸맞게 707특임대 소속대원의 능력은 무시무시하다.

 1, 3, 5특전여단에서 경력 5년이상 최정예요원으로만 선발된 707대원들에게 고공낙하와

침투, 사격 대검술은 기본이다. 한 사람의 부진이나 나태가 곧바로 팀전체의 생사를 가를 수 있어 팀원 모두가 고르게 1,000㎙거리에서 목표를 정확히 저격하고 기관단총을 동물적으로 발사해 적을 제압하는 특등사수들이다. 석궁 독침은 물론 젓가락도 언제든 살상무기로 활용할 수 있으며 특공무술이 최하 5단이다.

 

‘국가가 부를때 군복이 수의임을 알고 기꺼이 임무를 받아들인다’ 는 부대훈처럼 707대테러부대의 임무와 작전은 경찰특공대와 확연히 구분된다. 경찰특공대가 테러발생때 원점보존을 주임무로 하는데 반해 특임대는 실질적으로 테러진압과 인명구출을 담당한다. 국내국적의 항공기가 해외에서 납치되는 등 국가적인 테러사건의 해결도 이부대의 임무.

365일 실전훈련의 반복, 여성대원도

엄청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365일은 실전훈련으로 반복된다. 섬광탄을 터뜨려 테러범들이 시력을 상실하는 5초동안에 작전을 완수하지 못하면 인명과 자신의 목숨을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테러에 대비해 특임대에는 남자 대여섯명은 한순간에 내동댕이 칠 수 있는 여성대원도 여러 명 있다. 구보때 상의를 벗지 않는 것만 제외하고 남자대원과 똑같은 혹독한 훈련을 받은 여성대원은 간호원 스튜어디스 등 연약한 여자로 위장, 순간적으로 살인병기로 돌변하는 한국의 ‘니키타’ 들이다.

 

특히 707특임대는 수년전부터 미국의 델타, 독일의 GSG-9등 세계의 대테러부대와 연합전지훈련을 통해 역량을 극대화, 외국의 특수부대들이 요원들을 파견해 전수해 갈 정도로 정평이 나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국가는 물론, 오스트레일리아의 특수부대가 특임대를 거쳐갔다.

특임대는 한 장교는 “사회이목이 집중된 사건외에도 90년 한강대홍수때 뚝섬의 누수공을 발견해 사전에 붕괴를 막은 것도 특임대다. 우리는 국가재난을 막는데도 눈에 보이지 않게 기여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정덕상·사회부기자

 

 

두 탈영병 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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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낮 서울신림동


[출처: 중앙일보] 두 탈영병 자살
오색여인숙(주인 김옥희·44·여)을 점거, 총을 난사하며 군·경과 대치했던 무장탈영병 권외식상병과 신종식일병은 경찰관과 시내버스승객·행인등 4명을 숨지게하고 군·경 3명과 행인6명등 모두 9명에게 중경상을 입힌뒤 이날 하오7시15분쯤 모두 자살했다.

이로써 이들에게 희생된 사망자는 방범대원1명을 비롯, 모두 5명으로 늘어났다.

여인숙점거기관단총난사|경관등 4명피살 9명부상|군경과 6시간 대치끝에

<발견·신고>

권상병등은 8일 낮12시50분쯤 서울 신림5동1433 오색여인숙지하실에 숨어있다 주인 김옥희씨에게 처음 발견됐다.

김씨는 1층에서 지하보일러실로 내려가는데 지하실에서『덜커덩』하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군복차림에 총을멘 권상병과 신일병이 서있고 실내엔 담배연기가 자욱했다.

권상병등을 간첩으로 오인한 김씨는 『잠복근무를 하느라 수고한다』며 이들을 2층으로 유인. 음료수를 대접한뒤 밖으로 빠져나왔다.

김씨는 이웃 김길자씨(40·여)집으로 달려와 『지하실로 간첩이 들어왔다』며 신고를 부탁, 김길자씨가 전화로 서울관악경찰서 신북파출소 오제철순경(30) 에게 신고했다.

<버스에도 난사|점거·난사>

신고를 받은 오순경이 동료 허병철순경(46) 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7백m가량 떨어진 여인숙에 도착, 오순경이 카빈을 들고 여인숙으로 들어서는 순간 3층으로 자리를 옮긴 권상병과 신일병은 객실창문틈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이들은 하오1시30분쯤 오색여인숙앞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세풍운수소속 서울5사2842호 시내버스를 향해 총을 난사했다.

총소리가 나자 버스운전사 송인선씨 (29) 는 안내양 이정희양(20) 에게 『손님을 빨리 하차시키라』고 고함쳐 버스에 타고있던 20여명의 승객들이 앞을 다퉈 차에서 내려 버스 뒤쪽으로 몸을 피했으나 이때 승객인 서경천군(19)과 이은정씨 (24·서울신림7동104)가 총에맞아 서군은 그자리에서 숨지고 이씨는 옆구리관통상을 얻었다.

10분후인 하오1시40분쯤 권상병등은 여인숙앞에 주차해있던 관악경찰서소속 292호 순찰차에 다시 총을 난사, 운전석에 타고있던 서정환순경(32)이 가슴에 총을 맞고 강남성심병원으로 옮겼으나 하오3시30분쯤 숨졌다.

하오2시15분쯤에는 여인숙 맞은편 인도를 지나던 변정애씨(37·여·서울당산동4가73)를 쏴, 변씨는 왼쪽 어깨밑에 관통상을 입었고 같은시간 오토바이를 타고가던 배종호씨(32·건축업·서울봉천본동616의89)도 배에 총을 맞았으나 다행히 총알이 허리띠 철제버클부분을 스치는 바람에 경상을 입었다.

또 하오 2시20분쯤에는 여인숙앞에서 출동경찰관들을 지휘하던 관악경찰서 경비주임 조백환경위(38)가 오른쪽 어깨에 관통상을 입었다.

이어 대치중이던 육군모부대소속 한홍수·정영규하사가 각각 복부와 다리에 총상을 입었다.

<아내도 설득|설득>

사건현장에는 8일하오 2시40분 상경한 신일병의 아버지(전남장성군삼서면보생리)와 어머니(44), 신일병의 아내(20)등 가족이 여인숙에 접근, 핸드마이크로 자수할것을 호소했으나 신일병등은 이에 아랑곳하지않고 10여분 간격으로 3∼4발씩 총을 난사하며 난동을 부리다 하오4시쯤에는 수류탄1발을 여인숙앞 빈터에 내던져 터뜨리기도했다.

<옥상에서 자살|자살>

하오7시15분쯤 군·경특공대가 이들을 덮치기위해 2층까지 올라갔을때 3층에서 갑자기 1번의 총성이 울렸고 신일병은 3층옥상입구 문간에 쪼그린채, 권상병은 3층301호 문간에 엎드린채 숨져 있었다. 301호에서 숨진 권상병은 하오 4시쫌 여인숙 3층 뒤편창문을 열려다 때마침 여인숙뒤편 조명단씨(42·신림5동1434의145)집 안방에서 잠복중이던 관악경찰서 신북파출소소속 허병철순경이 쏜 카빈 1발을 가슴에 맞아 중상으르 신음하다 하오7시15분쯤 특공대가 여관에 들어오자 총을쏘아 자살한것으로 경찰은 보고있다.

◇사망자▲서정환(32·관악경찰서교통계순경) ▲서경천(19·서울신림5동1436의4·공원) ▲김지달(37·서울신림8동1131) ▲박진용(29·무직·서울봉천8동1521의12)

◇중상자 ▲변정애(37·여·서울당산동4가73) ▲김덕겸(26·서울신림5동1447의2) ▲김형주(24·서울봉천9동102) ▲조백환(37·서울관악경찰서 경비주임) ▲서현진(27·남부경찰서 방범대원) ▲이은정(24·여·회사원·서울신림7동104) ▲한흥수 (25·육군하사) ▲정영규 (24·육군하사)

◇경상자▲배종호(32·건축업·서울봉천본동616의89)

<서순경 1계급특진>

서울시경은 9일 탈영병과 대치하다 순직한 관악경찰서 경비과 서정환순경을 경장으로 특진시키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키로 했다. 서순경의 장례식은 10일 상오l0시 관악경찰서장으로 치러진다

[출처: 중앙일보] 두 탈영병 자살

 

 

무장 탈영병들 7명 인질 대치

[출처: 중앙일보] 무장 탈영병들 7명 인질 대치

 

https://news.joins.com/article/1798665 

 

 

 

 

 

제707특수임무단

 

https://namu.wiki/w/%EC%A0%9C707%ED%8A%B9%EC%88%98%EC%9E%84%EB%AC%B4%EB%8B%A8



707 특수 임무 대대!

 

 

안녕하세요. 곰신 기자 정윤정입니다 :-D

 

여름 즈음에 특전사 관련 기사를 한 번 쓰고 이번이 두 번째인데요.

이번에는 특전사 중에서도 가장 들어가기 어렵고, 외국의 특수부대들과 맞먹는 정도의 부대에 대해

소개드릴까 합니다.

 

 

바로 707 특임대입니다!

 

여러분도 707 특임대에 대해 한번쯤은 들어보셨을 거에요!

707 특임대는 개개인 얼굴이 2급 기밀일 정도로 철저히 비밀 속에 가려진 대대였는데,

최근 행사나 훈련 공개 등으로 점차 민간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출처: MBC 시사매거진 2580 - 707특임대 " 2010. 6. 6. 방영분">

 

PART 1. 707 특수 임무 대대 창설 계기

 

1968년 1월 21일, 청와대에 비상 사태가 발생했었습니다.

바로 북한에서 남파된 무장공비 김신조 일당이 대통령 암살 임무로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인데요.

 

이 사건을 계기로 66특수부대에서 180명의 전투 병력을 차출해 대통령 경호실장 직속의 606특임대를
창설
하게 됩니다.

 

그 후 1979년 10월 26일,

606 특임대는 박정희 대통령이 측근 김재규의 총에 살해당하고 난 뒤 27 특임대로 이름이 한 번 바뀌게

됩니다.

 

그리고 또 얼마 되지 않아,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는 12. 12 사태에서 3공수 여단장이 특전사령관에게

반기를 듭니다.

 

이처럼 속 시끄러운 사건들로 인해, 특전 사령관이 입을 열게 됩니다.

비록 특전 사령관에게 특수부대들에 대한 총 작전 지휘권이 있더라도 이런 쿠테타 등이 발생했을 때

직접 운용이 가능한 직속 부대가 없는 점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합니다.

 

즉, 간부 위주로 편제되어 있던 사령부에서 그들을 호위할 전투병력을 느끼게 되어 창설하게 된

이죠!

 

더불어 1982년에 88올림픽의 개최지가 서울로 확정되면서 대테러 부대 등의 특수부대의 필요성이 부가되어

27특임대는 특전 사령관 직속의 707특임대로 한 번 이름이 더 바뀌게 됩니다.

 

 

707 특임대는 창설 당시 철저한 비밀 속에 만들어졌으나

1988년 여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처음 민간에 공개되고, 영화 '쉬리' 에 나오면서 널리 퍼지게

됩니다.

 

 

 

<출처: MBC 시사매거진 2580 - 707특임대 " 2010. 6. 6. 방영분">

 

 

PART 2. 707 특수 임무 대대의 지원 자격과 구성

 

 

707특임대에 지원을 하기 위해서는

 

특전사 산하 여단에서 부사관으로 최소 2년 이상 복무를 해야 하고, 엄격한 선발 기준을 통과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특전사 경쟁률도 높게는 10:1인데, 이 경쟁률을 뚫고 뽑힌 사람 중에서 또 다시 뽑는다고 하는데요.

정말 상위 1%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네요.

 

 

이렇게 선발되면 6개월간의 훈련을 거쳐 707특임대의 산하 여단(현재는 대테러로 통함) 중 하나에 배속된다고

합니다.

 

 

707의 첫 탄생 배경은 사령부 친위대의 성격이었지만, 후에 대테러와 채상척후조, 고공강하조 등으로

재편되었다고 하는데요.

 

특전사 중에서도 최고인 정예요원들로 구성된 707특임대는 대테러 진압부대입니다.

 

707특임대는 대대, 여단이 아닌 특임대라는 구분 단위로 불립니다.

또한 대대가 중대로 나뉘듯 특임대는 지역대로 분리되는데요.

707특임대의 경우 1개의 고공 지역대와 해상 지역대, 2개의 특공 지역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 이외에도 세계적으로 707 특임대를 특별하고 특이한 특수부대로 만드는 특징이 있는데요.

바로 여성 대원이 있다는 점입니다.
외국의 유명한 특수부대들에는 일반 전투요원뿐 아니라 헬기조종사까지도 여성대원의 입대를 금지하고

있지만, 707특임대의 경우에는 여성대원이라는 점이 필요할 경우가 있으므로 이를 허용했다고 합니다.

 

 

 

<출처: MBC 시사매거진 2580 - 707특임대 " 2010. 6. 6. 방영분">

 

 

특임대는 선발이 된다고 해서 절대 끝이 아닙니다.

 

 

정기적으로 체력 검사를 하여 체력 기준이 떨어지면 특전사대 다른 부대나 일반 보병 부대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방출이라는 단어는 707 특임대원들들에겐 억장이 무너지는 느낌이라 보통 우울증으로

 1년은 넘게 고생하신다고 하더라고요.

 

방출만 되지 않는다면 동료들과 십수년을 함께 동거동락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런 까다로운 체력 검사와 든든한 전우애가 707특임대의 전투력의 기반이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PART 3. 707 특수 임무 대대의 훈련

 

미국의 NAVYSEAL, 영국의 SAS, 프랑스의 G.I.G.N  델타포스, 그린베레 등 한 번씩들 들어보셨을 거에요.
외국의 정상급 특수부대 이름들입니다.

영화에 다른 나라의 이름 높은 특수부대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는 유명한 부대가 없다며 한 번씩 한탄해보신 분들도 계실 텐데요.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707특임대는 위에서 언급한 정상급 특수부대들과 동급으로 취급받습니다.
또한 합동 훈련을 하기도 하고, 전술 등의 교류를 한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707특임대에게 훈련을 '받는다' 고도 합니다.

 

 

 

 

707 특임대의 실제 훈련 모습입니다.

 

위 사진은 테러를 대비하여 실제 건물에서 훈련을 하는 모습이고요.

아래 사진들은 실탄 사격 훈련입니다.


모든 훈련은 실탄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그만큼 위험하다고 합니다.

동료가 위험할 수도 있을 정도의 훈련 강도라서, 88올림픽을 앞두고 훈련 중 순직하신 분도 계시지요.

기관단총과 권총사격까지 이동하면서 총을 쏘는데도 백발백중이네요.

최대 3발 이내에는 모든 표적이 제압된다고 하는데요. 1km 떨어진 거리의 표적도 맞춘다고 하는데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야간에는 야투경을 끼고 야간사격 훈련에 임한다고 합니다.

 

 

 

낙하 훈련입니다.

 

50kg의 군장을 메고 훈련에 임한다고 하는데요.
그것도 훈련 때는 3km 높이에서 훈련하고, 전시에는 10km 높이에서 강하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여군 중에서 최고 많이 뛴 사람이 2300회 강하했다고 할 정도입니다.

 

 

그 외에도 무술 훈련, 방호복만 입고 맨 손으로 수류탄 해체하기 등의 목숨을 걸고 하는 훈련들이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707특임대하면 연상되는 것, 바로 흑복입니다.

 

"한마디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흑복은 저희한테는 죽음입니다.
입고 가서 임무를 수행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그런 뜻으로 저희는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한 특임대원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단어 하나 하나에서 국방의 의무에 대한 각오와 의지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테러로부터 저희를 지켜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기사를 마지막으로 저는 이제 1년 간의 곰신 기자 생활을 정리합니다.
늘 부족한 기사로 찾아뵀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길 바라는 마음으로 물러가겠습니다.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취재 : 청춘예찬 정윤정 곰신기자>

 

https://www.youtube.com/watch?v=EZoEAwPZyGw

 

 


'영록바' 신영록이 드디어 일어났습니다. 경기장에 쓰러진 지 50일 만에 몸은 야위었지만 그래도 팬들의 간절한 바람대로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신영록이 입원해 있는 제주한라병원 측은 27일 오후, 신영록이 의식을 되찾았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아직 부분적인 장애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만큼 회복할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의료진의 추가 설명도 있었습니다. 지난 달 8일, 부정맥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경기 도중 갑자기 쓰러진 뒤 약 1달 반 만에 신영록은 그렇게 우리 곁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신영록의 회복 소식에 많은 축구팬을 비롯한 네티즌들은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정말 반가운 소식이다" "축하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다시 일어난 신영록. 박경훈 제주 감독과 손을 꼭 맞잡았다. (사진= 제주 유나이티드)

 

신영록이 쓰러진 뒤, 축구계의 온정, 관심은 대단했습니다. 신영록의 소속팀인 제주 유나이티드 선수들은 골을 터트릴 때마다 신영록의 회복을 기원하는 골 세레모니를 펼치며 온몸으로 동료 선수의 쾌유를 바랐습니다. 박경훈 제주 감독은 틈날 때마다 신영록을 찾아 회복 상태를 확인하고 병문안을 했으며, 전 제주 소속 선수였던 구자철도 신영록의 쾌유를 빌며 직접 병원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제주를 비롯해 다른 팀 서포터들이 신영록의 쾌유 문구가 담긴 플래 카드를 걸어 응원하기도 했고, 각계 각층, 일반 팬들로부터 응원 편지, 메시지가 쏟아졌습니다. 심지어 넥센 히어로즈의 마스코트 턱돌이까지 신영록을 응원하는 문구를 얼굴 부위에 붙였고, 일본, 호주 등에서도 쾌유를 비는 플래카드, 편지가 이어져 감동을 자아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거의 전 국민적인 관심 속에 신영록의 쾌유를 기원하는 마음, 손길이 끊이지 않았고, 결국 그 간절한 마음이 하늘에 닿았는지 기적같은 의식 회복을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신영록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은 그가 워낙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 모습을 자주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대표 시절 코뼈가 부러진 가운데서도 마스크를 쓰고 활발한 몸놀림을 보이며 골을 넣은 그의 모습은 여전히 강렬함 그 자체로 남아 있습니다. 자신의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팀을 위해 헌신하고, 고비 때마다 다시 일어서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신영록의 당찼던 모습은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이길 것이라는 굳은 믿음을 갖게 했습니다. 그 믿음, 바람대로 신영록은 또 한 번 기적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이제 싸움에서 완전히 이겨 다시 그라운드에 당당히 서는 모습까지 보여주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영록이 다시 그라운드에 나서기까지 앞으로 더 힘든 관문을 거쳐야 할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고 벌떡 일어선 그였기에 그라운드에서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다시 보여 주는 '또 하나의 기적'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를 응원한 팬, 그리고 동료들, 박경훈 감독을 비롯한 지도자들, 가까이 있는 부모님, 가족을 위해서라도 신영록은 반드시 완전하게 일어서서 그라운드에서 힘찬 질주를 보여줘야 합니다. 늘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보는 이들을 유쾌하게 했던 신영록의 '인간 승리' 드라마가 해피 엔딩으로 완결지을 수 있기를, 다시 태극 마크까지 달고 활발한 몸놀림을 보여주며 골까지 넣는 모습을 또다시 볼 수 있기를 많은 팬들은 바라고 있습니다.

 

언제나 신영록은 강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강한 정신력으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영화보다 더 진한 감동적인 '인간 승리' 스토리를 신영록은 스스로 썼고, 이제 완결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라운드에 완전하게 다시 서는 데까지 그야말로 새로운 도전을 앞둔 신영록. 그의 도전이 외롭지 않기를,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큼이나 더 많은 팬들의 응원이 필요할 때입니다.

 

다시 일어난 신영록 선수,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더 회복해서 그라운드에서 멋진 활약을 보여주십시오. 많은 팬들은 당신이 병상에서 털고 일어나 그라운드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꼭 이겨내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부활한 신영록(지난 5월 K리그 경기중 심장마비로 쓰러진 제주 유나이티드 선수), 생명의 은인에 공로상을 주다

입력 : 2011.12.07 03:08

경기 종료 직전 쓰러진 그를 김장열 트레이너가 응급조치… 조금만 늦었다면 생명 못건져, K리그 특별공로상 직접 수여

6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1 프로축구 K리그 대상 시상식에 참석한 신영록. /뉴시스

6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1 프로축구 K리그 대상 시상식. 한 해 프로축구를 빛낸 주역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이는 MVP 이동국도, 우승팀 사령탑 최강희 감독도 아니었다. 특별공로상 시상자인 신영록(24)이 무대를 향해 천천히 한 걸음씩 뗄 때마다 감독과 선수, 팬들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자신의 소속팀인 제주 유나이티드의 모자와 머플러를 하고 단상에 선 신영록은 오랜만에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이 긴장됐는지 심하게 떨었다. 어눌한 말투로 그가 수상자를 호명했다. "김장열 재활 트레이너."

무대에 오른 김장열(45) 제주 유나이티드 재활 트레이너 팀장은 상을 받기 전 신영록의 손부터 잡았다. "영록아, 천천히 숨을 쉬어. 괜찮아." 신영록은 그의 말을 듣자 이내 편안한 표정이 됐다.

신영록에게 김장열 트레이너 팀장은 '생명의 은인'이다. 지난 5월 8일 대구FC와의 K리그 홈 경기에서 후반 37분 교체 투입된 신영록은 경기 종료 직전 운동장에서 갑자기 고꾸라졌다. 이때 김장열 팀장이 바로 그라운드로 뛰쳐나갔다. 트레이너 생활 20년 만에 처음 실제로 쓴 심폐소생술에 신영록의 멈췄던 심장이 다시 뛰었다. 신영록이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9분 동안 신영록의 생명을 지킨 사람이 그였다. 2000년 프로야구 롯데의 임수혁은 잠실야구장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지만 응급처치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못하는 바람에 10년간 식물인간으로 살다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신영록은 지난 1월 수원 삼성에서 제주로 이적했다. 그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팀원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신영록은 선수 재활을 주로 담당하던 김장열 팀장에게 "빠르게 피로를 푸는 방법을 가르쳐달라"며 먼저 다가갔다. 김장열 팀장에게 신영록은 '붙임성 좋은 친구'였다.

김장열 팀장은 이날 K리그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그는 "그때 구급차 기사가 평소 12분 걸리는 거리를 4분 만에 주파하는 등 여러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했다.

김장열 제주 유나이티드 재활 트레이너팀장이 지난 5월 K리그 대구FC와의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진 소속팀 선수 신영록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제민일보 제공

심장마비로 쓰러진 신영록은 제주 한라병원에 입원한 뒤 한동안 의식불명 상태였다. 목숨은 건졌지만 뇌 손상을 입어 언제 의식이 돌아올지 기약이 없었다. 김장열 팀장은 '할 일을 제대로 못 했다'는 자책에 매일 병원을 드나들었다. 그는 병상에 누워있던 신영록의 이름을 끊임없이 부르며 그가 깨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렇게 50일이 흘러 지난 6월 27일 신영록이 눈을 떴다. 의식을 회복한 신영록은 "축구가 하고 싶다, 그라운드에 다시 서겠다"며 삼성서울병원에서 본격적인 재활을 시작했다. 지난 9월 퇴원한 그는 이번 시상식에는 휠체어를 타지 않고 두 다리로 걸어 시상대에 오를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되찾았다.

이날 김 팀장은 준비해왔던 수상 소감을 미처 말하지 못했다. 그는 신영록에게 '그라운드에서 바로 뛸 수 있게 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라는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긴장한 신영록을 진정시키느라 두 손을 잡고 그냥 내려와야 했다.

무사히 무대 뒤로 내려온 김 팀장이 신영록을 들쳐 업은 뒤 휠체어에 앉혔다. 신영록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걸렸다. "선생님, 이젠 정말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신영록 의식불명[[신영록 여전히 의식불명 스포츠 끄적끄적

2011.05.09.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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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록 여전히 의식불명이라고 하네요.

안타깝네요 신영록 선수 정말 멋진선수인데

신영록 선수 빨른 쾌유를 바랍니다.

신영록 화이팅

제주 유나이티드는 신영록 선수의 공백을 어떻게 메울지..

 

 

프로축구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의 공격수 신영록이 8일 대구FC와의 경기에서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신영록 선수는 이날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열린 대구FC와의 경기에 출전한지 3분 만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긴급히 병원으로 후송됐다.

병원에 동행한 제주 스태프 관계자는 “신영록이 경기 후반 37분 교체출전해 슛을 하고 돌아서는 순간 쓰러졌다”고 전했다.

심장마비 증세 등을 보인 신영록은 현재 제주한라병원 중환자실에 입원 중이며 아직까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다.  정확한 진단 결과는 9일 오후쯤 나올 예정이다.

신영록 선수는 2003년 수원에서 데뷔해 2009년 부르사스포르(터키)에서 뛰다 지난해 7월 수원으로 복귀, 이번 시즌 제주로 이적해 주전 공격수로 활약해 왔다.

 











 

신영록 선수가 경기중 쓰러집니다.

 

안타까운 신영록 선수.



 

이때까지만해도 신영록선수 정말 좋았는데.



















신영록 예전영상

 

 

신영록 “엄마”…눈물로 부른 그 이름

스포츠동아

입력 2011-06-28 07:00:00 수정 2011-06-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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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공격수 신영록이 심장마비로 쓰러진 뒤 40여 일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추후 재활치료에 따라 일상생활 복귀도 가능하다는 긍정적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신영록 40여일만에 의식 회복 

21일 자가호흡…일반병실 옮겨 
박경훈 감독과는 손 마주잡기도 
꾸준히 재활치료하면 일상 복귀
 

경기도중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신영록(24·제주)이 40여일 만에 깨어났다.

의식을 되찾았을 뿐 아니라 병상에도 앉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이 회복했다.

신영록의 치료를 담당해온 제주한라병원은 27일 “신영록이 완벽하게 의식을 회복했다”라고 발표했다. 신영록은 지난 24일 의식을 되찾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겼으나 의료진은 환자의 안정을 위해 발표 시기를 며칠 늦춘 것으로 알려졌다.

병원측은 “신영록의 현 상태는 무산소뇌손상에 의한 기저핵 부위 손상으로 사지의 세밀한 움직임에 장애가 있으며, 각성상태는 명료해 의사소통에 자유로운 상태로 호전되어 가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마비증상도 없으므로 추후 재활치료에 따라 일상생활로의 복귀도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신영록은 기관지 절개부분을 막으면 말도 할 수 있는 단계에 있다. 

지난달 8일 대구와의 홈경기 도중 쓰러진 신영록은 저체온수면요법을 통해서 치료를 받아왔다. 

의식을 찾은 신영록이 27일 병실을 찾은 제주 박경훈 감독의 격려를 받고 있다(위). 신영록의 아버지 신덕현 씨가 아들의 쾌유를 기원한 팬들에게 감사편지를 직접 썼다(아래).

다량의 수면제를 투여해 의식을 되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간혹 눈을 뜨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자극에 반응했지만 그럴 때마다 의료진은 “세미 코마 상태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반응들이기 때문에 의식 회복과는 거리가 있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신영록은 지난 21일부터 자가 호흡이 가능해졌고, 부모를 알아보는 등 조금씩 의식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24일에는 대소변 등 본인의 욕구를 직접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이 돼 병실을 일반실로 옮길 수 있게 됐다. 

 
신영록은 이날 병원을 찾은 제주 박경훈 감독과 만났다. 박 감독을 또렷하게 알아본 신영록은 부모님의 도움으로 병상에 앉아 손도 마주 잡기도 했다.

전종은 제주한라병원 신경과 과장은 “운동의 세밀한 부분을 조장하는 기저핵에 대한 손상으로 운동 장애 등 후유증이 생길 수 있지만 꾸준한 재활치료가 이뤄지면 충분히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다”라며 “재활 치료는 본인 의지가 중요한데 신영록은 자기 상황에 대한 인식과 재활 의지가 강해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라고 말했다.

사진제공|제주 유나이티드 
최용석 기자 (트위터 @gtyong11) gtyong@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인천공항 탑승동에 설치된 AED (Photo by R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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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 2만명 심장이 갑자기 스톱… 살릴 사람은 바로 옆 당신뿐입니다

이위재 기자  

 

입력 : 2011.11.07 03:07

[심폐소생술이 생명을 살립니다] [上] 119 기다릴 시간 없어요
4분내 심폐소생술 해야 - 늦어도 8분까지는 희망
119 구급차 도착은 평균 13분… 아래 그래픽 오려서 지갑에 넣자
故 임수혁 선수와 신영록 선수 - 11년 전 임 선수 심장마비 땐
경기장 3만명이 발만 동동… 올해 신 선수는 3분만에 살려

지난 5월 8일 경기 도중 쓰러진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신영록 선수에게 팀 관계자와 의무진이 몰려들어 심폐소생술을 하고 있다.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혼절했던 그는 신속한 응급조치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 /제민일보 제공

2000년 4월 1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쓰러진 프로야구 롯데 임수혁 선수(2010년 2월 사망)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심폐소생술'이란 단어는 중요하다. 당시 갑자기 심장이 멎었던 그를 살릴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 어찌 보면 간단한 이 '심폐소생술(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을 현장에 있던 선수, 심판, 구단 직원, 관중 등 수만명 중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던지 발만 동동 구르는 가운데 임 선수는 살아날 기회를 놓쳤고 병상에 누워있다가 10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임 선수 옆에 모인 동료가 한 일은 신발과 양말을 벗기고 허리띠를 풀고서 구급차에 태운 것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또는 심정지)로 누군가 쓰러졌을 때 4분 안에 응급조치에 들어가야 살 수 있다. 몸속 혈관에 4분 정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산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늦어도 8분까지는 희망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서둘러 119 신고를 하더라도 구급차가 도착하기까지 평균 13분 걸린다. 그래서 "결국 생명을 구하는 것은 의사도, 구조대도, 간호사도, 경찰도 아닌 쓰러진 환자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주변 사람"이라는 말이 나왔다.

지난 5월 8일 제주종합경기장에서 부정맥에 따른 심정지로 쓰러진 프로축구 제주유나이티드 신영록 선수는 발 빠른 응급조치(심폐소생술)와 신속한 병원 후송으로 임수혁과 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었다. 임수혁에게 첫 조치가 이뤄진 건 수십 분 만이었지만, 신영록은 3분 만에 심폐소생술, 12분 만에 구급차에 실려 병원 침대에 누웠다.

임수혁 사고를 겪고 체육계는 모든 경기장에 심장제세동기(AED)와산소호흡기 등을 갖춘 구급차, 심폐소생술 자격증을 갖춘 의료진을 두도록 했다. 신영록을 살린 건 의료진이 아니라 임수혁이란 말이 그래서 나온다.

◇심폐소생술은 어떻게

누군가 갑자기 쓰러지면 우선 ▲쓰러진 환자를 똑바로 눕힌 후 ▲머리를 젖히고 턱을 들어 올려 기도를 유지한 상태에서 ▲정상 호흡을 하는지 5~10초간 확인하고 ▲호흡이 없다면 바로 심폐소생술로 들어가야 한다. 그전에 119 신고는 필수다.

심폐소생술은 흉부압박을 30회, 이어 인공호흡을 2회 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양쪽 가슴 사이 정중앙을 두 손으로 누르는 것이다. 인공호흡이 꺼려지거나 자신이 없으면 흉부압박(분당 100회)만 해도 된다. 압박 깊이는 성인·어린이는 5㎝, 영아는 4㎝가 적당하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국내 심정지 환자 발생 건수는 1년에 인구 10만명당 40~42명꼴. 매년 2만명가량이 갑자기 심장이상으로 쓰러지는 셈이다. 그러나 병원이 아닌 곳에서 심정지 환자가 나타나면 생존퇴원율이 2.4%로, 미국 8.4%, 일본 10.2%에 비해 크게 낮다.

올해 심폐소생술 보급 운동을 본격적으로 펼치는 소방방재청은 "전체 심정지 환자 중 주변에서 이를 목격하는 경우가 40.1%에 이르지만, 일반인이 그 자리에서 심폐소생술을 시도한 사례는 1.4%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중의 대한심폐소생협회 교육위원장(서울의대 응급의학과 교수)은 "평소 심폐소생술 교육이 효과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자신감이 떨어지고 혹시 괜히 실수해서 상황이 악화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때문에 시행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나면 최대한 빨리 제세동(除細動·심장 전기 충격)으로 넘어가야 한다. 지난해부터 정부에서 50억원을 들여 전국 주요 공공장소에 자동제세동기를 보급, 지난해 말 현재 4119대를 비치했고, 올해도 1000여대를 추가 공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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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마비 환자 60%는 집에서 발생… 가까운 소방서에서 미리 배워두세요

이위재 기자

 

 

 

입력 : 2011.11.08 03:04 | 수정 : 2011.11.08 03:56

[심폐소생술이 생명을 살립니다] <下> 소방방재청 등 관련기관 범국민 교육 나서
전 국민이 알 때까지 - 청소년 대상으로 경연대회, 환자 살린 소방관·일반인엔 '하트세이버' 배지도 제공
"잘못돼도 형사 책임 없으니 쓰러진 사람 외면 마세요"

지난 4월 20일 오전 8시쯤 서울 강남구 개포동 대치아파트에 사는 이형우(52)씨는 가슴이 갑갑하면서 통증이 오는 것을 느꼈다. 서둘러 아내 윤미권(50)씨와 함께 병원에 가려고 차에 타다 쓰러졌다. 아내 윤씨는 침착하게 119에 전화를 걸고, TV에서 봤던 어렴풋한 기억과 전화를 받은 구급대원이 알려주는 지침을 토대로 심폐소생술을 시도했다. 가슴을 누르고 인공호흡 하기를 수차례. 남편 이씨가 약하게 숨을 내쉬는 가운데 13분 만에 구급차가 도착했다. 이씨는 강남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응급조치를 받았다. 자칫 호흡 정지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아내의 재빠른 행동 덕에 20일 만에 병원 문을 나설 수 있었다. 윤씨는 "그때는 오로지 남편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뭐든 기억나는 대로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부부 사례는 일반인도 얼마든지 생사의 갈림길에 선 심정지 환자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때문에 119를 운영하는 소방방재청을 비롯, 보건복지부와 관련 기관들은 심폐소생술(CPR·cardiopulmonary resuscitation)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소방방재청은 지난 3일 대한심폐소생협회, 대한적십자사,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등과 심폐소생술 전 국민 보급을 위한 MOU(양해각서)를 맺고, 각종 캠페인·홍보·세미나·강연·교육프로그램 등을 통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을지로6가 국립중앙의료원에서는 제3회 전국 고등학생 심폐소생술 경연대회가 열려 전국 300여개 고교에서 선발된 32개 팀이 나와 모의로 상황을 설정, 심폐소생술을 얼마나 정확하게 해내는지 겨뤘다. 국립중앙의료원은 "청소년 때부터 심폐소생술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응급의료정보센터(전화 1339)도 전국 곳곳에서 심폐소생술 체험 행사와 경연 대회를 수시로 열고 있다.

서울 강동구는 매달 2·4주 토요일 구 보건소에서 심폐소생술 교육을 펼치고, 주민센터를 돌며 순회교육도 벌인다. 구청 공무원은 의무적으로 교육받도록 했고, 18개 모든 동 주민센터와 강동아트센터·구민회관·해공도서관 같은 공공건물에 자동제세동기(AED)를 비치했다.

하지만 아직도 심폐소생술이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아 거리와 가정에서 아까운 생명이 숨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방방재청은 일반인들이 심정지 환자를 보고도 심폐소생술을 선뜻 해주지 못하는 까닭으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혹시 잘못되면 법률적 책임을 져야 할까 봐 ▲인공호흡하면 감염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 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지난달 28일 서울 국립의료원에서 열린 3회 전국 고등학생 심폐소생술 경연대회에서 2인 1조로 구성된 고교생 팀이 심폐소생술을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지 점검받고 있다. /주완중 기자 wjjoo
그러나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법'으로 불리는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5조 2항에는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하여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死傷)에 대해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해당 행위자는 민사 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 책임을 지지 않고 사망에 대한 형사 책임은 감면한다'고 나와 있다.

심폐소생술 교육도 전국 209개 교육센터와 가까운 소방서에 가면 간단히 받을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요령을 익힐 수도 있다.

소방방재청은 작년부터 호흡이나 심장이 멈춰 죽음의 위기에 놓인 환자를 심폐소생술이나 자동제세동기 등으로 살린 소방관이나 일반인에게 '하트 세이버(heart saver)' 배지를 주고 있다. 교육이 효과를 발휘한 덕인지 이 배지를 받은 인원은 작년 454명(구급대원 431명·일반인 23명)에서 올 3분기까지 555명(구급대원 519·일반인 36)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김태원 한나라당 국회의원은 민방위대원·공무원·청소년 및 음식점·항공업 종사자 등에게 심폐소생술을 의무적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내용의 법률안 10개를 발의해 놓고 있다. 이기환 소방방재청장은 "심정지 환자 중 60% 이상이 가정에서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심폐소생술을 익히는 것이 가족 사랑의 시작"이라며 "심폐소생술만 알고 있어도 심장마비 환자 생존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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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칼럼] '제세동기'? 그게 뭐야?

김철중 의학전문기자·의사   입력 : 2010.08.02 23:11

 

공항·철도역 등에서 발생하는 '길거리 심장마비'를 대비해 응급현장에서 즉시 쓸 수 있는 '자동 제세동기'가 도처에 깔리는데, 일반인들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도 몰라서 활용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기사를 얼마 전에 냈다. 그랬더니 '자동 제세동기'라는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자동'(自動)은 알겠는데, '제세동'은 도통 모르겠다는 것이다. 제세동기(除細動器)는 '세동'을 제거하는 기계란 뜻이다. '세동'은 심장마비 직전에 발생하는 부정맥 중 하나를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해도 의료인이 아닌 일반 대중은 그 개념이 여전히 와 닿지 않을 것이다. 심장 박동을 되살리는 '전기 충격기' 정도로 했으면 더 쉽게 다가갔을 듯싶다. 차라리 영어 표현에 익숙한 요즘 세태를 감안, 사람이건 기계건 심장을 구하는 일이면, 미국식으로 '하트 세이버'(saver)라는 별칭을 썼어도 좋을 뻔했다. '제세동기'는 너무 어렵다.


이처럼 의학용어 중에는 대중과 동떨어진 것이 많다. 전문지식을 가진 의료인끼리만 쓰는 용어를 대중에게도 그대로 강요하는 식이다. 팔뼈가 부러진 환자에게 의사들이 종종 쓰는 말이 있다. "도수정복술을 해야겠습니다." '도수정복술'이라…, 난데없이 무슨 수학 과목 하나를 정복해야 한다는 식으로 들린다. 하지만 이말은 손으로 어긋난 뼈를 제 위치로 돌아가도록 맞춰보겠다는 뜻이다. 손을 이용한 뼈 맞추기라도 하면 될 것을, 참으로 불친절하다.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의학용어는 현대의학이 들어온 경로대로 영어를 그대로 옮겼거나, 일본에서 쓴 말이 넘어온 것들이다. '제세동기'도 'defibrillator'를 직역한 것이고, '도수정복술(徒手整復術)'은 일본식 한자 표현이다. 그러다 보니 한참 설명을 들어야 알아듣게 되는 용어들이 많다. 언어가 되레 소통을 방해하는 꼴이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의학용어를 순수 우리말로 바꾸려는 시도가 일고 있다. 하지만 이것도 혼란을 일으키기는 마찬가지다. 퀴즈를 몇 가지 내보겠다. ①막창자꼬리염 ②깔때기콩팥염 ③관상동맥 덧대 ④구슬 알 균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는가. 정답은 이렇다. ①맹장염 또는 충수돌기염 ②신우신염 ③관상동맥 스텐트 ④연쇄상구균이다. 현재 상당수 의대생들은 '민족주의' 분위기 속에서 이런 식으로 의학용어를 배우고 있다. 기존 의료인도 알고, 대중도 이해할 만한 의학용어마저 굳이 생뚱맞은 우리말로 바꾸다 보니 또 다른 불통(不通)을 자초하고 있다.


의학용어의 대중화는 국민 건강과 의학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과학의 발달이 대중의 관심과 과학 지식의 확산을 통해 이뤄지고, 정보통신기술(IT)이 전문 용어를 공유하는 사람이 늘면서 급속히 뻗어나갔듯이, 의학 지식의 일반화는 국민 건강 증진과 올바른 의료 행태로 이어진다. 쉬운 의학용어가 그 발전의 촉매 역할을 할 것이다.


기상용어 중에 '꽃샘추위'라는 말이 있다. 3~4월에 발생하는 일시적인 저온(低溫)현상을 날씨가 봄을 시샘한다고 하여 붙인 이름인데 가슴에 와 닿는다. 이 얼마나 근사한 공중(公衆) 친화적인 과학 언어인가. 의학용어는 일반 대중이 꼭 알아야 할 말들이다. 왜 딱딱하고 어려워야 하는가. 제발 친절한 용어 부탁드린다.

 

길거리 심장마비 환자 살리는 '자동 제세동기'

김철중 의학전문기자 doctor@chosun.com         입력 : 2010.07.24 03:05

'멈춘 심장' 다시 뛰게 해… 작동법 쉬워
'시작' 누르면 안내방송 나와 전기충격으로 심박동 되살려
'제세동기'란 용어 어려워, 대부분 무슨 물건인지 몰라…
"위급할 때 누구나 사용해야 허망한 죽음 막을 수 있어"

휴가철을 맞아 행락 인파가 늘면서 길거리나 야외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고 있다. 지난 18일에는 김승년 현대자동차 구매총괄본부장이 야외 운동을 하다가 심장마비 증세를 보인 지 1~2시간 만에 사망하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유동 인구가 많은 공공장소에 간단한 장비로 전기 충격을 주어 심정지 환자의 심박동을 회생시키는 자동 제세동기(除細動器·AED)가 깔리기 시작했다. AED는 의료인이 아닌 일반인도 쓸 수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홍보와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병원 밖에서 심장마비가 발생해 구급대로 이송된 환자는 약 2만명이다. 2006년에는 1만9477건, 2007년에는 2만356건 발생했다(질병관리본부 자료). 하지만 목격자에 의한 심폐소생술 실시율은 1.6%에 그쳤다. 미국의 16%에 비해 극히 저조하다. 이 때문에 국내 길거리 심정지 환자의 생존율은 2.5%로, 미국의 8.4%에 비해 현저히 낮다(대한응급의학회). 심폐소생술과 AED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할 이유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자동제세동기

인천공항 대합실을 걷다 보면 곳곳에 소화전처럼 유리 박스 형태로 보관된 자동제세동기를 볼 수 있다. 심장을 상징하는 '빨간 하트' 문양의 표지가 있고, 영어로 자동제세동기를 뜻하는 'AED'라는 글씨가 크게 쓰여 있다. AED는 서울역 대합실과 각 승강장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의 태반은 AED가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는 실정이다.

서울역에 있는 자동 제세동기 모습. 심장마비 환자에게 전기 충격을 주는 장비라는 의미의 하트 문양과 영어로 제세동기를 뜻하는 AED 글씨가 보인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AED는 사용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중학생 정도의 지적 수준이면 박스에서 나오는 안내 방송에 따라 작동시킬 수 있게 만들었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환자를 방치하지 말고, 일반인 목격자가 AED를 빨리 환자에게 갖다대 심박동을 되살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심정지 후 4분이 지나면 혈액 순환 부족으로 뇌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는다. 따라서 심장마비 목격자는 구급대가 오기 전에 주변에 AED가 있는지 확인해 즉시 사용해야 한다. 더욱이 심장마비는 뇌졸중, 뇌출혈 등과 달리 적절한 응급조치만 취하면 큰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다.

가천의대 길병원 이근 응급의학과 교수는 "설사 AED를 심정지 환자가 아닌 무의식 환자에게 갖다 대더라도 아무런 해가 없다"며 "누구나 AED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귀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스에서 꺼내 안내방송대로

목격자는 먼저 주변 사람에게 119 신고를 부탁하고 환자의 의식 상태와 심장 박동을 확인한다. 심박동은 목젖 옆으로 손가락 두 개 너비 떨어진 곳을 검지로 10초 이상 눌러 확인할 수 있다. 심정지로 판단되면 AED가 비치된 박스를 열어 AED를 꺼낸다. 이때 알람이 울릴 수 있으나 이는 환자 발생을 외부에 알리는 신호이다.

AED를 환자 머리맡에 두고 시작 버튼(또는 1번 버튼)을 누르면 안내 방송이 시작된다. "패드를 환자 가슴에 붙이세요."(두 개의 패드 겉면에는 부착 위치가 그려져 있다) → "패드 커넥터를 점멸등 옆에 꽂으세요."(커넥터를 전구가 반짝거리는 곳의 구멍에 꽂으면 된다) → "분석 중입니다. 접촉금지"(10~20초 동안 환자의 심전도를 분석하니 손을 떼고 기다리라는 뜻) → "제세동(전기 충격)을 해야 합니다. 환자에게서 떨어지세요." → "충격 버튼을 눌러주세요." → 버튼을 누르면 전기 충격이 발사된다.

이후 환자에게 AED 패드를 그대로 붙여 놓으면 2분마다 환자의 심전도를 분석한다. 그때 충격 버튼을 또 누르라고 하면 다시 누르면 된다. 목격자가 심폐소생술을 할 줄 알면, AED가 심전도 분석을 위해 환자에게서 떨어지라고 할 때를 제외하고, 흉부 압박 30회와 인공호흡 2회를 구급대가 올 때까지 반복하면 된다. 만약 AED에서 심전도 분석 후 "제세동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이 나오면, 환자는 심장마비 상태가 아니거나, 회복된 경우다.

유동인구 많은 곳에 AED 더 깔아야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난해부터 터미널, 경기장, 경마장 등 다중이용시설은 AED를 비치해야 한다. 그러나 올해 6월 말 현재 전체 대상지 1만3623곳 중 AED가 있는 곳은 2647곳으로 아직 19.4%에 머물러 있다(보건복지부 실태 조사). 한 대에 약 300만원 하는 AED 구매 비용이 자비(自費) 부담인 데다, 설치하지 않을 경우 처벌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AED 관리 지침을 강화하고, 8월부터 예산 30억원을 투입해 AED 구비 지원과 홍보 사업을 시행할 계획이다.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지하철역, 호텔, 수영장, 박물관, 골프장, 간이역 등에도 AED를 비치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회 유인술(충남대 의대) 기획이사는 "공공시설에 AED 비치를 점차 늘려가면서 해당 기관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AED 사용법과 심폐소생술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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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폐소생술 할 줄 모르면 흉부압박만 해도 효과"

심정지 후 8분 이내는 체내에 산소 남아있어…

 

"심폐소생술을 할 줄 모르면 흉부압박만이라도 하세요."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은 목격자가 심장마비 환자에게 흉부압박만 제대로 해도 소생률이 급격히 올라간다고 말했다.

심정지 후 8분 이내는 체내에 산소가 남아 있기 때문에 흉부압박만 해도 흉부압박 30회와 인공호흡 2회를 반복하는 원칙적인 심폐소생술과 큰 차이 없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심정지 환자를 발견하면, 119에 먼저 신고를 한 후, 구급대원이 올 때까지 흉부압박만은 꼭 해야 한다.

압박 요령은 이렇다. 먼저 환자를 바닥이 딱딱하고 평평한 곳으로 옮기고 나서 윗옷을 벗긴다. 목격자는 환자 상체 옆에 가슴을 바라보고 앉는다. 압박 위치는 성인의 경우 양쪽 젖꼭지를 이은 선과 가슴뼈 중앙이 만나는 지점이다. 대개 명치에서 손가락 두개 넓이 위쪽이다.

압박은 왼손바닥을 밑으로 하고 오른손을 위로 덮고 손가락은 깍지를 낀다. 양팔이 환자의 가슴뼈와 수직이 되도록 쭉 편 후, 팔을 굽히지 말고 엉덩이와 허리 반동으로만 누른다. 왼손바닥의 두툼한 부분이 환자의 가슴뼈 밑으로 4~5㎝ 깊이까지 내려갈 정도로 힘 있게 눌러야 한다.

누르는 속도는 60초에 100번이다. 매번 누르고 나서 원래 위치로 충분히 돌아오고, 다시 그 깊이만큼 눌러야 효과가 좋다. 자칫 누르는 위치가 바뀔 수 있으니 왼손바닥은 항상 환자 가슴뼈 압박 위치에 닿아 있어야 한다.

 

☞자동 제세동기 (除細動器·AED: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

자동으로 '세동(細動)'을 제거하는 기계라는 뜻. 심장은 일정한 전기 신호에 따라 박동하는데, 심장마비가 오면 심장은 바르르 떨듯이 '미세한 진동(細動)' 상태로 있다가 결국 심정지 상태에 이른다. 그 단계에서 외부 전기충격을 주면 심장박동이 정상적으로 돌아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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