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사장 통한 ‘보도 개입’ 파문 사실땐 박근혜 정부에 상당한 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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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겨레] 길사장 퇴진압력 거세져

부장들 이어 팀장 46명도 성명

노조 “윗선 지시받고

지하철사고 확대 보도” 주장도


<한국방송>(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16일 ‘청와대의 방송 장악’ 실상을 구체적으로 폭로함으로써, 길환영 사장의 퇴진 압력은 정점을 향해 치닫는 양상이다. 여기에 청와대가 길 사장을 통해 한국방송의 보도에 깊이 개입한 증언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박근혜 정부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국장은 이날 밤 한국방송 기자 100여명이 참석한 기자협회 총회에 참석해, 청와대와 한국방송의 커넥션에 대해 폭로했다. 먼저 김 전 국장은 세월호 보도와 관련해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직접 전화를 걸어와 “한창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비판을 나중에 하더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면서 비판 자제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방송이 정부 비판을 이어가자, 길 사장의 직접 지시가 이어졌다고 한다. “보도본부장실에 가보니, 사장 주재 작은 모임이 있었다. 사장은 ‘해경에 대한 비판은 하지 말아달라. 청와대 지시가 내려왔다’고 했다”고 전했다.

지난 9일 자신의 자진 사퇴는 청와대 작품이라고 폭로한 대목은 청와대가 한국방송의 인사까지 직접 개입했다는 점에서 한국방송의 현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자들에게 “기자회견 시작을 30분 정도 앞두고 길 사장이 전화로 올라오라 했다.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으니, 회사를 그만두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김 전 국장은 해경과 해수부 비판 이상은 못했다는 기자들의 지적을 받고 “박(근혜) 대통령 비판은 한번도 없었다. 올라가봤자 결국 빠질 것이라는 자기검열이 있었다”고도 했다. 또 “여당 의원이 방송에서 얘기하는 날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든 그 아이템을 소화해라. 야당과 섞어서라도 해라’는 전화가 왔다. 누구인지는 화면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 헤아려보면 금방 알 것이다”고도 했다. 평소 여권에서 광범위한 압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김시곤 전 국장 발언은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이라는 의심을 확인해주는 것”이라며 “김 전 국장 발언이 사실이라면 길환영 사장의 책임이 문제가 아니라 청와대의 책임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노조는 곧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지목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새노조)는 이날 밤 긴급 성명을 통해 “김 전 국장의 사의 표명 과정에 청와대, 아니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개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제 청와대와 박 대통령은 답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사과하라”고 주장했다.

김 전 국장의 폭로로 한국방송의 민낯이 드러나고 있지만 길 사장은 침묵 속에 계속 버티는 모양세다. 보도본부의 부장 18명이 이날 낮 일제히 자진 사퇴하면서 길 사장 퇴진을 촉구했고 보도본부 팀장 46명도 이어 같은 뜻을 밝혔지만, 길 사장은 하루 종일 일체의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특히 길 사장은 이날 임창건 보도본부장을 만난 자리에서 부장들이 자진 사퇴한 것과 관련해 “뉴스가 멈추는 거냐”고 물었고, 임 본부장이 “뉴스가 멈출 수도 있다”고 답하자 “이런 상황은 감수하겠다”고 답했다고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방송본부(새노조)는 전했다. 새노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뉴스 보도가 파행하더라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한국방송 관계자는 “뉴스 중단도 감수하겠다고 발언했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방송 노동조합(1노조)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케이비에스가 지방선거에서 여권 후보를 돕기 위해 서울 상왕십리역 지하철 추돌 사건을 윗선의 지시를 받고 확대 보도했다”고 주장했다. 사쪽은 “대량 인명 피해가 우려되는 지하철 사고를 깊이 다루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선거 개입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이정국 김효실 기자 jglee@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내일 ‘5·18’ 34주년… 피해자와 가해자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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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푼 恨… 못씻은 罪

[동아일보]
동아일보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원했던 건 ‘정의’와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였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는 들불처럼 일어났다가 꽃잎처럼 스러진 수많은 넋이 잠들어 있다. 16일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김재평 씨의 묘비에 따스한 5월 햇살이 비치고 있다. 광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또다시 5월이다. 눈부시게 푸른 5월이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이르는 길도 연둣빛 초록으로 물들었다. 길섶의

이팝나무에 순백의 꽃이 보송보송 피었다. 흰 쌀밥을 나무에 흩뿌려 놓은 것 같은 모습은 34년 전 광주시민들이 함께 나눴던

주먹밥을 떠올리게 한다. 길쭉한 모양의 꽃잎은 자식과 남편을 잃고 지독한 ‘오월앓이’를 해온 어머니들의 눈물 자국 같다.

각시붓꽃, 노랑별꽃이 선들바람에 하늘거리고 층층나무와 아까시나무가 감싸고 있는 묘지는 5월 하늘만큼이나 슬프도록 시리다.


▼ 5·18둥이 김소형씨 “날 보러 오셨던 아버지가 총탄에…” ▼

80세 김현녀씨 “만삭의 내 딸에게 조준사격…내 손자는 어쩔 것이냔 말이오”
70세 김진덕씨 “고교생이던 아들 시신도 못찾아… 묻은 곳이라도 좀 가르쳐 주시오”


동아일보

①아버지 김재평 씨가 숨지기 사흘 전인 1980년 5월 18일 태어난 김소형 씨. 그는 “18일은 슬픈 생일날이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했다.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②1980년 당시 계엄군이었던 사진작가 이상일 씨가 1991년 광주 북구 망월동 옛 5·18묘지에서 촬영한 ‘5월의 신부’ 고 최미애 씨. 최 씨의 유해는 1994년 국립5·18민주묘지로 옮겨져 안장됐다. 이상일 씨 제공 ③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봄이 다시 찾아왔다. 이 한 맺힌 공간을 아는지 모르는지 산까치 한 마리가 날고 있다. 광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묘지번호 1-72. ‘아빠! 내가 태어난 지 3일 만에 돌아가셨지만 제 가슴속엔 언제나 아빠가 살아계셔요. 딸 소형.’

1980년 5월 21일 계엄군의 총탄에 목숨을 잃은 김재평 씨(당시 29세)의 묘비에 새겨진 글귀다. 소형 씨는 아빠가 숨지기 3일 전인 5월 18일 태어난 ‘5·18둥이’다. 그에게 5·18은 세상에 태어난 기쁨보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더 큰 날이다. 해마다 그날이면 아버지를 한 번도 불러 보지 못한 설움에 지독한 ‘홍역’을 치른다.

‘5·18둥이’의 슬픈 생일날

김재평 씨는 1980년 당시 전남 완도수협에서 일하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5월 17일부터 난산 조짐을 보인 부인 고선희 씨(59)는 18일 급히 광주의 한 병원을 찾았고 그날 오전 소형 씨를 낳았다. 김 씨는 결혼 3년 만에 얻은 딸의 얼굴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광주로 달려왔다. 21일 서구 화정동의 작은아버지 집에서 산후 몸조리를 하던 아내, 갓 태어난 딸을 만나 단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였다. 이날 오후부터 계엄군의 집단발포가 시작되면서 귀청이 찢어질 듯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총소리에 놀란 갓난아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아버지는 창문에 솜이불을 걸치려고 일어섰다. 그 순간 ‘쨍그랑’ 소리와 함께 총알이 김 씨를 관통했다. 피투성이가 돼 쓰러진 그는 손 한 번 쓰지 못하고 절명했다.

소형 씨가 아버지의 죽음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게 된 건 초등학교에 입학한 무렵이었다. 5월이면 하얀 소복 차림으로 거리에 나서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치던 엄마의 치맛자락을 잡고 다니면서부터다. 그 전에는 완도군 보길도에서 함께 살던 외할아버지로부터 “아빠가 좋은 일 하시다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은 게 전부였다.

“엄마를 따라다니면서도 왜 우리 국군이 아빠에게 총을 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망월동 묘지에서 신묘역(국립5·18민주묘지)으로 아버지의 유해를 옮길 때 비로소 알게 됐어요. 무고한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많이 희생됐는지….”

소형 씨는 중학교 3학년 때 ‘5·18 전국학생 글쓰기 한마당’에서 아빠를 잃은 슬픔과 5·18에 대한 다짐 등을 담은 ‘오월의 시(詩)’로 대상을 받았다. 그리고 조선대 미대에 입학해 조소를 전공했다. 주위에선 “‘5·18’을 소재로 작품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5·18’을 이용한다는 말을 듣기 싫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에서만 만나는 아빠가 그리울 때면 홀로 묘지를 찾아가 대화를 하곤 해요. 5월 18일은 저에게 슬픈 생일날이 돼 버렸죠. 가끔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아빠가 광주에 올라와 그런 일을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도 하고….”

소형 씨는 엄마와 단둘이 살면서 형편이 어려웠다.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어야만 했다. 결국 대학 2학년을 마치고 휴학을 했다. 그는 요즘 옛 전남도청 인근에서 웨딩숍 플래너로 일하고 있다. 틈틈이 ‘광주 5·18’을 알리는 활동도 한다. 8년 전부터 5·18민주유공자유족회 ‘5월 청년부’에서 5·18 때 아버지를 잃은 자녀들과 매달 18일에 만나 토론회나 봉사를 하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때면 내가 쓴 비문을 하염없이 되뇌곤 해요. ‘아버지 조각상’을 아빠 묘비 옆에 세우고 싶은데, 언젠가는 그날이 오겠죠.”

꽃잎처럼 스러진 ‘5월의 신부’

“타앙!” 순간 날카로운 총성이 거리를 흔들었다. 맨홀 뚜껑 위에 서 있던 그녀의 몸뚱이가 허수아비처럼 퍽 주저앉았다. “의사 좀 얼른 보내 주시오! 애기가 금방 나올라고 한단 말이라우. 사, 산모가 지금 총을 맞고 죽었는디, 여덟 달 된 애기가, 막 뛰어라우! 엄마 배 속에서, 천길 만길, 펄쩍펄쩍 뛰고 있단 말이라우….”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미화의 배가 조용해졌다. “누나! 누나아아!” “으아아아아! 미화야아아! 내 딸아. 내 새끼야아!”

소설가 임철우가 1997년 발표한 소설 ‘봄날’의 일부다. 소설 속의 ‘미화’는 1980년 5월 21일 세상을 떠난 ‘5월의 신부’ 최미애 씨(당시 23세)다. 만삭의 몸이던 그는 그날 오후 전남대 부근의 집을 나섰다. 고교 교사인 남편이 제자들이 걱정된다며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에 갔다가 점심 때가 넘도록 소식이 없어 마중을 나간 참이었다. 전남대 앞에서는 시위대와 계엄군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시위대가 ‘짱돌’을 던지자 군인 하나가 한쪽 다리를 땅에 대고 ‘앉아쏴’ 자세를 취했다. 조준사격이었다. 잠시 후 총소리와 함께 최 씨는 힘없이 쓰러졌다.

하숙집을 운영하던 최 씨의 어머니 김현녀 씨(80)는 숨진 딸을 보는 순간 풀썩 주저앉았다. 딸의 주검은 참혹했다. 총탄이 머리를 관통해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어미의 몸속에서 태아는 거센 발길질을 하고 있었다.

김 씨는 ‘계엄군이 주검까지 뺏어간다’는 소문을 듣고 서둘러 딸을 리어카에 싣고 공동묘지에 가매장했다. 그런데 사태가 잦아든 6월 10일경 계엄사에서 ‘임신부가 죽었다는 소문을 확인하려면 검시를 해야 한다’며 주검을 다시 파오라고 명령했다. 거부하면 ‘유언비어 날포죄’로 집어넣겠다고 협박했다. 그렇게 18일 만에 다시 파헤쳐진 딸의 주검은 검시 후 망월동에 묻혔다. 두 번의 죽음을 당한 셈이었다.

김 씨는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에 나와 ‘피맺힌 한’을 토해냈다. “임신한 우리 딸이 총에 맞았는디 죽은 사람은 있고 왜 죽인 사람은 없는 것이오? 세상에 나와 보지도 못하고 죽은 내 손자는 어쩔 것이냔 말이오? 세상에 임신한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도 총을 쏘는 그런 짐승 같은 놈들이 어디 있느냔 말이오? 뭔 죄가 있어서, 뭔 죄를 지었다고….” 김 씨는 그때 ‘광주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후련했다고 털어놓았다.

내 딸이 왜 죽어야 했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여기저기를 쫓아다닌 지 30여 년. 김 씨는 이젠 학살 책임자 처벌을 외칠 힘도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음력으로) 이달 4일이 제사여서 묘지에 갔다 왔는데, 하얀 면사포를 쓴 영정 속의 딸이 어찌 그리 곱던지…. 이젠 눈물도 안 나와요. 평생 흘릴 눈물을 그때 다 흘려버렸으니….” 팔순의 노모는 가슴에 묻은 딸과 살고자 발버둥쳤던 어린 손자의 넋이 편히 잠들기만을 바랄 뿐이다.

‘시체라도 찾았으면…’

지난해 5월 18일 박근혜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 33주년 기념식 참석에 앞서 행방불명자 묘역을 둘러봤다. ‘아직 유해를 찾지 못해 묘비만 있다’는 관리소장의 설명을 들은 박 대통령은 ‘임옥환의 령’이라고 새겨진 묘비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박 대통령은 묘비를 쓰다듬으면서 “그럼 다 돌아가셨겠네요”라고 혼잣말처럼 되뇌었다.

임 씨는 1980년 당시 조대부고 2학년이었다. 공수부대가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있던 5월 22일 절에서 공부하던 친구와 전남 화순을 거쳐 고향인 고흥으로 가기 위해 새벽에 조선대 뒷산을 넘었다. 대학생 2명도 함께 따라 나섰다. 매복하고 있던 공수부대원이 임 씨 일행을 발견하고 멈추라고 명령했다. 겁이 난 일행이 달아나자 공수부대원들이 무차별 사격을 했다. 대학생 2명은 도망갔고 친구는 붙잡혀 군홧발에 차이고 개머리판으로 두들겨 맞았다. 친구는 임 씨가 총에 맞아 쓰러지는 것을 봤지만 행방을 알 수 없었다.

임 씨 아버지 임준배 씨(80)는 5월 23일 아들의 소식이 끊겼다는 연락을 받고 광주로 올라왔다. 시신을 한데 모아 놓은 전남도청 앞 상무관으로 갔다. 시신들은 하나같이 처참한 모습이었다. 어머니 김진덕 씨(70)는 조선대 뒷산과 가까운 학동으로 갔다. 그곳에서 가마니에 덮여 있는 시체 11구를 보았다. 하지만 아들은 없었다. 나중에 동네사람에게 들으니 “공수부대원들이 시체를 몽땅 트럭에 싣고 가버렸다”고 했다. 김 씨는 아들이 아무도 모르게 어딘가에 묻혀 있을 것으로 확신했다.

5월 29일 ‘광주 봉쇄’가 풀리자 아버지 임 씨는 고흥에서 대형 버스를 빌려 동네사람들을 태우고 아들이 총에 맞았다는 조선대 뒷산으로 갔다. 괭이, 삽으로 흙무더기를 파 보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열흘 뒤 조선대 인근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아주머니로부터 청천병력 같은 말을 들었다. 한 공수부대원이 와서 “어제(22일) 학생 한 명을 죽였다. 내가 서라고 했는데 서지 않아 쏴 버렸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해 6월 30일 임 씨는 학교에서 제적됐다. “반에서 1등, 2등을 다퉜는데….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에 가겠다는 놈이 돌아오지 않으니 내가 눈을 감을 수 있것소.” 아버지는 “아들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몰라 아직도 대문을 열고 놓고 자는 실종자 가족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겠느냐”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는 1990년 아들의 넋이라도 달래기 위해 같은 나이에 숨진 한 처자와 영혼결혼식을 올려줬다. 이승의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고 했다. “생때같은 아들을 보내고 썩어 문드러진 어미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묻은 곳이라도 좀 가르쳐 주시오. 제발 부탁이오.” 어머니의 절규가 5월 하늘에 비수처럼 꽂혔다.

▼ 군종신부 당시 보고서엔… “잔악한 계엄군이 비극 불러”

발포 거부했던 이제원 중령
“신군부 핵심이 강경진압 명령… 명령에 따른 우리에게도 책임”
계엄군 출신 사진작가 이상일씨
“시민들 모습 찍어 ‘불순분자’ 보고… 제대 후 ‘망월동’ 시리즈로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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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오른편에 자리한 유영봉안소.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희생자와 부상 후 숨진 이들의 영정과 위패를 모아놓은 곳이다. 이들의 희생과 헌신이 씨앗이 돼 ‘5월 광주’는 숭고한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광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들 ‘피해자’의 한편에 ‘가해자’가 있다. 1980년 5월 신군부의 ‘화려한 휴가’ 작전명에 따라 투입된 계엄군은 총칼로 광주를

유린했다. 당시 계엄사 상황일지와 전투교육사령부(전교사) 전투상보 등에 따르면 광주진압작전에 투입된 군 총 병력은 8만2000여

명에 이른다. 이들 가운데는 차마 시민에게 총을 겨누지 못한 영관급 장교도 있었고 속죄하는 심정으로 ‘광주의 5월’을 10년

넘게 사진으로 남긴 계엄군 출신 사진작가도 있다. 그들에게 ‘광주 5·18’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발포 거부했던 특전사 장교

“수많은 사람의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했고 가슴을 아프게 했다. 귀중한 생명을 앗아버렸고 평생 불구자로 만들었으며….”

당시 11공수특전여단 ○○대대 ○지역대장이었던 최모 씨(당시 대위)는 1988년 육군본부에 ‘5·18의 회고’라는 자필 문서를

제출했다. 동아일보가 16일 단독 입수한 이 문서에 따르면 최 씨는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도 가슴이 아프다. 죄스러운 마음속에 긴

그림자를 간직하고 있다”고 ‘고해성사’를 했다. 그가 지휘했던 부대는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현장에

있었다. 최 씨는 시위대와 일촉즉발의 대치 상황에서 발포에 반대한 한 대대장의 행동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전남도청 앞에 공수부대원이 몰려 있을 때 대대장끼리 수차례 회의를 했다. 회의 내용은 ‘이대로 있다가는 부하들 다 죽이겠다.

약간의 희생자가 생기더라도 사격을 좀 해 물리치자.’ 그러나 당시 62대대장 이제원 중령만은 ‘무슨 소리를 하느냐. 당치도 않은

말을 한다’며 벌컥 화를 냈다. 지휘봉을 내동댕이쳤다. 우린 좁은 소견에 ‘참 답답한 대대장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만약에

(그가) ‘좋소’라고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 중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날 전남도청 앞에서는 공수부대의 집단

발포로 39명이 숨졌다. 최 씨가 ‘양심적인 군인’이라고 증언한 이 중령은 1995년 서울지검의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조사에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광주사태’의 주된 책임이 신군부 핵심세력에게 있다고 진술했다. 당시 진술 조서에

따르면 이 중령은 “광주사태의 책임은 나를 비롯해 그 당시 광주사태 진압에 참여했던 모든 군인에게 있다. 당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군인들은 하등의 정치적 의도 없이 상관의 명령에 따라 진압 임무를 어쩔 수 없이 수행했다는 점에서 광주사태의 피해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광주에 공수부대를 투입해 강경 일변도의 진압작전을 벌인 배경에 대해 이 중령은 “12·12사건

이후 군권을 장악해 실세로 부각한 전두환, 노태우, 황영시, 정호용 등 신군부 핵심세력들이 자신들의 정권찬탈 기도에 결정적인

장애요인이 될 수 있었던 광주사태를 우리와 같은 공수여단 등 계엄군을 이용해 신속히 평정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력을 좇는 이들의 욕심이 광주의 비극을 불렀다는 것을 당당하게 밝힌 것이다.

광주 진실 알린 군종신부들


계엄군이 광주를 장악한 직후 육군본부는 비밀리에 군종신부들을 광주에 보내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을 상대로 진상 파악에 나선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현장 조사 후 계엄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광주시민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본보가 단독 입수한 ‘광주사태 확인 방문 결과’ 문건에 따르면 육군본부는 광주가 진압된 9일 후인 6월 5일 군수참모부

운영처장(준장·육본 기독장교단 회장)과 1군 군종참모(대령), 군수사 군종장교(중령), 수방사 군종참모(소령) 등 군종신부 3명을

광주에 파견했다. 이들은 일주일 동안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을 상대로 증언을 들었다.

증언자 중에는 윤공희

대주교(89)도 있었다. 군종신부들은 ‘지탄 받고 있는 잔악행위’로 △공중전화를 하고 있는 임신부 두부관통치사 △화물차에 탑승

중인 채소 장수 일가족 3명 총격 △여대생을 브래지어 팬티만 입힌 채 엎드리게 하고 이를 제지하는 노인 구타 행위 등을 들었다.

‘광주사태’의 교훈도 6가지로 정리해 보고했다. 5월 17일 이전의 데모와 5월 18일(전국 계엄 선포) 데모 성격의 차이를

인식시키는 사전 경고 절차 없이 강압적으로 진압했으며 데모 진압 작전 시 여자, 노인에 대한 강압제지 가해행위로 역효과가 났다고

지적했다. 또 초기부터 특수부대의 투입을 지양하고 경찰, 예비군, 향토사단을 단계적으로 활용하며 최종 경고 후 특수부대를

투입했어야 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시설방어 군인에게만 총기, 탄약, 대검을 휴대하게 하고 기타 데모 진압군에게는 진압봉만 휴대하게

했어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진실을 말할 수 없었던 시절 그나마 종교인의 양심이 그날의 한 조각 진실을 알린 것이다.

사진으로 속죄하는 계엄군 출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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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진압군이었던 최모 당시 대위가 육군본부에 1988년 제출한 ‘5·18의 회고’ 육필 원고(위)와 군종신부들이 육군본부의 의뢰로 현장을 조사하고 제출한 방문결과 보고서(아래).


1980년 5월 19일 스물다섯 살이었던 이상일 씨(59)는 계엄군 정보사령부 소속으로 광주에 투입됐다. ‘불순분자 색출’이

그의 임무였다. 사복 차림으로 사진 채증을 하고 시민들의 상황을 보고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그는

제대 후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 사진을 전공했다. 5월의 기억은 그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다시 광주에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게

1985년.

“대구에서 막차를 타고 광주에 도착해 어두워질 때를 기다려 슬금슬금 망월동으로 기어들어갔죠. 그때 제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웠다.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망월동 묘역에는 가로등도 없었다. 제단에 담배

한 개비를 올려놓으면 달빛에 반사된 영정 사진들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장 눈에 밟힌 건 ‘5월의 신부’ 최미애 씨의 영정

사진이었다. ‘저 많은 사람은 왜 여기에 누워 있는 걸까. 나는 그때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는 카메라에 모든

영정 사진을 담기 시작했다. 찍은 필름을 암실에서 인화할 때 그 사람들 얼굴이 서서히 드러날 때면 견딜 수가 없었다. 자책감이

밀려왔다. ‘그래 광주를 알리자. 역사적 소명 같은 거창한 게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몫이라 생각하자.’

그렇게

2000년까지 해마다 5월이면 망월동 옛 묘역과 5·18민주묘지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망월동’ 연작 사진으로 2011년 일본의

저명한 사진상(賞)인 ‘이나노부오상’을 받았다. 지난해 5월 처음으로 부산에서 11명의 사진작가와 함께 ‘5월 항쟁 33주년

기념전시회-그날의 훌라송’을 열었다. 그는 5·18에 대한 역사왜곡을 보면서 여전히 광주는 ‘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광주가 어떤 곳인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이 씨는 부산에서 고운미술사진관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광주에 대한 ‘원죄’를 안고 있다고 했다. “명령에 따라 움직이더라도 인간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거부하지 못한 데 따른 것이 원죄인 거죠.”

그는 지금껏 수만 컷의 ‘5월 사진’을 찍었지만 흑백 사진뿐이다. 컬러 사진은 없다. ‘광주’를 화려함으로 포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엄군 출신 사진작가에게 광주는 여전히 무겁고 어두운 도시였다.

올 5월은 여느 해보다 쓸쓸하다. 세월호 참사 애도 분위기 속에 17일 전야제가 취소됐다. 국가보훈처의 ‘임을 위한 행진곡’

5·18 기념곡 지정 거부로 올 기념식도 지난해처럼 반쪽 행사로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숭고한 ‘민주화의 꽃’으로 피어난 지

34년. ‘자유’와 ‘평화’, 그리고 ‘인권’의 5·18정신이 민들레 홀씨처럼 뿌려지는 5월 하늘을 언제나 볼 수 있을까.

광주=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미국의 은밀하고 치졸한 중국 견제? 근거 있는 '음모론'!

[프레시안 books] 윌리엄 엥달의 <타깃 차이나>

이재봉 원광대학교 한중관계연구원 정치외교연구소장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5.16 20: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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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에서 1등이 2등을 견제하는 것은 당연하다.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다는 국제관계에서야 오죽하랴. 그러나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을 보면 차마 이 정도까지 할까 싶다. "미국이 도전 세력을 제압하는 8가지 전략"이라는 부제가 붙은 <타깃 차이나>(F. 윌리엄 엥달 지음, 유마디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미국의 원로 전략경제학자 윌리엄 엥달(William Engdahl)이 2013년 쓴 책을 <조선일보> 유마디 기자가 옮겨 지난달 메디치미디어에서 출판한 이 번역서는 여러모로 특이하다. 첫째, 독일계이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프린스턴대학에서 공부한 미국인 저자가 미국 지도자들의 입을 빌려 '음모'에 가까운 미국의 음흉한 대외정책을 폭로한 게 흥미롭다. 둘째, 중국의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에서 공부했다지만 극우 편향적인 <조선일보> 소속 기자가 '방일영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이토록 '반미친중(反美親中)'적인 책을 번역한 게 의아하다. 셋째, 이 책의 원본이 중국에서 지난해 <目標中國>으로 번역 출판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점도 놀랍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적어도 한 가지 궁금증은 풀고 싶었다. 10여 년 전부터 <조선일보>엔 글도 쓰지 않고 인터뷰에 응하지도 않는다는 방침을 정해 놓은 터에, 내가 그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다. 유 기자를 찾아 소속 회사 및 지원 재단의 성격과 전혀 다른 책을 번역 출판하게 된 배경을 물었다. 과거엔 미국에서 공부한 선배 기자들이 친미적 기사를 많이 썼다면 요즘은 다른 배경을 가진 젊은 기자들이 그 신문의 색깔을 다양하게 바꾸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타깃 차이나>(F. 윌리엄 엥달 지음, 유마디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 <타깃 차이나>(F. 윌리엄 엥달 지음, 유마디 옮김,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저자 엥달은 지난 4월 쓴 한국어판 서문에서 1997~98년 일어났던 아시아 금융위기에 대한 배경부터 설명한다. 아시아 신흥 산업국들이 미국 달러 체제에서 벗어나려고 하자, 미국이 이들의 경제를 죽이면서 미국의 영향권 안에 묶어두기 위해 헤지펀드와 국제통화기금(IMF)을 앞세워 외환위기를 일으켰는데 한국이 주된 목표였다는 것이다.

이번 목표는 중국이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정부 부채가 급속하게 늘어나면서 2010년 중국이 달러 대신 유로화를 지지한다는 의사를 표명하자,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아시아 회귀' 정책을 발표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이 경제 부흥에 필요한 석유 및 천연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아프리카에 진출하자, 미국은 아프리카사령부(AFRICOM)를 설치해 이 지역을 본격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단다. 2011년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을 무너뜨리는 전쟁을 수행하거나 남수단공화국의 독립전쟁을 지원한 것은 중국의 석유 수입에 타격을 입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우리와 직접 관련된 대목도 있다. 미국이 한미동맹을 강화하려는 것은 한국을 미국의 안보 울타리 안에 더욱 의존적으로 묶어두려는 속셈이라며, 미국이 남북관계 개선을 원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핵무기를 실을 수 있는 전략폭격기로 북한에 대한 폭격공습 훈련을 실시하거나 스텔스전투기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김으로써 북한의 도발을 부추기기도 했다. "만약 북한이 없었다면 일본 근해에 미국 해군을 주둔시키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 같은 존재'를 만들어냈을 것"이란 국무부와 중앙정보국 전직 고위 관리들의 실토는 섬뜩하다. 여기저기서 내가 다음과 같이 주장해온 내용에 미국 학자와 관리들이 힘을 실어주는 것 같아 반갑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라는 북한이 한국전쟁을 법적으로 종결짓자며 미국에 불가침조약이나 평화협정을 맺자고 줄기차게 요구해도, 세계 평화를 지킨다는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정전협정을 고수해야 한다는 역설적 현상이 빚어지는 것은 주한미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할 명분이나 정당성이 사라지고, 주한미군을 철수하면 중국을 견제하는 데 구멍이 뚫리게 된다. 

따라서 미국은 중국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휴전선 근처에서 서해 쪽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 적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1950년부터 '겨우' 3년간 전쟁하고 1953년부터 '무려' 60년 이상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지 못하는 배경이다."


엥달은 서문에서 개구리를 삶아 죽이는 논리를 소개한다. 개구리를 찬물이 담긴 냄비에 넣고 천천히 열을 가하면 뛰쳐나오지 않고 몽롱해져 죽는다는 내용이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장기적 전략을 '개구리 천천히 끓이기'에 빗댄 것이다. 그리고 중국이 반발하지 않거나 못하도록 서서히 압박하며 고사시키는 '중국 죽이기 전략' 8가지를 폭로하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첫째, 중국 화폐를 겨냥한 '통화 전쟁'이다. 미국은 위안화가 달러에 비해 의도적으로 저평가됐다고 주장하며 꾸준한 여론몰이를 통해 중국에 '환율 조작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를 붙였다. 이에 2008년 위안화는 달러에 대해 20% 정도 절상됐다. 또한 중국은 미국의 투기성 공격으로부터 위안화를 보호하기 위해 다량의 달러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에 미국의 부채를 매입해야 한다. 중국이 무역을 통해 벌어들인 자금을 미국 부채에 재투자할 수밖에 없는데, 이야말로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하버드대학 교수의 표현대로 "중국이 미국 제국에 바치는 일종의 조공"이다.

ⓒtechnorat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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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중국의 해외 자원 정책을 겨냥한 '석유 전쟁'이다. 중국은 1994년 석유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변하면서 안정적 석유 확보를 안보의 우선순위로 두게 되었다. 이에 1999년부터 아프리카 수단에 석유를 시추하기 위해 대규모로 투자했는데, 몇 년 후 다르푸르 유전지역에서 무장 첩보 세력들이 살인과 강간 등을 저지르는 이른바 미국의 '다르푸르 종족 학살 작전'이 시작되었다. 미국이 중국의 영향 아래 있는 유전지대에 나토(NATO)군을 끌어들이기 위한 구실을 만든 것이었다. 

2011년 남부 수단에 '남수단공화국' 수립이 선포되었는데, 미국의 막후 지원에 의해 세워진 이 신생 국가 때문에 중국으로 향하던 수단 석유의 공급로가 끊어질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이밖에 2011년 서방국가들의 리비아 군사공격 및 튀니지와 이집트의 정권교체 등에도 미국의 아프리카사령부가 핵심 역할을 했다. 미국은 이런 과정을 통해 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중국으로 향하는 유조선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좁은 해협들을 군사적으로 장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그루지아(조지아), 미얀마 등에서 전개된 정권교체 작전도 미국 국무부와 국방부 그리고 중앙정보국(CIA)이 벌이는 프로젝트이며,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시위와 소요사태도 미국의 조종에 의한 것이다. 모두 석유, 천연가스, 광물 등의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셋째, "식량을 지배하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며 벌이는 '식량 전쟁'이다. 미국이 패스트푸드나 유전자변형 유기체(GMO) 등을 통해 중국의 미래 식량을 통제하려는 전략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당뇨가 거의 없던 나라에서 30년 만에 '세계적 당뇨대국'으로 불릴 정도로 변했다. 또한 중국은 콩 소비량의 60% 이상을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이는 대부분 불임을 유발하는 100% GMO 대두다. 군사적 압력보다 더 심각한 안보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백신을 비롯한 의약품을 이용한 '보건 전쟁'이다. 이는 중국을 무너뜨리기 위한 '매우 위협적 수단'으로,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 인류를 통제하기 위한 무기이기도 하다. 미국 중앙정보국은 의약품을 이용해 인간의 몸과 마음을 통제하는 기술들을 수백 가지 일상 의약품에 은밀하게 적용함으로써, 1840년대 영국이 일으켰던 아편전쟁 때보다 더 심각하게 중국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 백신 접종 프로그램이나 우생학 등을 이용한 세계 인구 감소 프로젝트에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록펠러 그룹 등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거나 미국이 세계보건기구(WHO)를 앞세워 중국을 겨냥한 의약품 무기화 전략을 수행한다는 대목은 몹시 충격적이다.


다섯째, 남중국해와 인도양에서 중국을 위협하는 '군사 전쟁'이다. 이른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으로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이 세계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민주주의와 평화를 지킨다는 구실로 세계 도처에서 군사작전을 실시하는 것 역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은 일본과 한반도에 미군을 계속 유지하며 동남아에도 미군 주둔을 확대해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미얀마와 태국의 민주화 운동이나 권력 교체를 은밀하게 지원했으며, 인도와의 군사동맹도 추진했다. 남중국해에서 영해 문제로 중국과 갈등 관계에 있는 베트남과 필리핀을 편들기도 한다. 모두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다.

여섯째,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경제 전쟁'이다. 미국은 과거 중국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해 세계무역기구 회원국으로 가입하려는 중국에게 미국의 구미에 맞게 만들어진 규정들을 강요했다. 요즘은 한국도 참가하려고 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중국에 타격을 주면서 아시아 무역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 협정은 미국 무역대표부가 평가한대로 "미국의 가치를 우선순위에 둔 조약"으로 중국에게는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는 흉조와도 같은 정책"이다. 2009년부터 미국 및 일본과의 교역액을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의 무역을 중국과 하고 있는 한국이 "미국의 지휘 아래 펼쳐지는 반 중국 무역 활동"에 참가해야 할지 깊이 고민해볼 대목이다.

일곱째, 쉐일가스(shale gas)와 농약 등을 이용하는 '환경 전쟁'이다. 2012년 현재 중국은 인민과 국가 자체의 존망을 위협하는 새로운 전쟁에 직면했는데 너무나 교묘하여 위협으로 인식되지 않을 정도다. 중국 농산물과 토양을 오염시켜 식수와 식량 사슬 및 인체를 위협하는 화학물질을 퍼뜨리는 전략이다. 쉐일가스는 암석층(shale)에 함유된 천연 가스로, 중국에 많이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스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미국이 개발했는데, 다양한 광물이 함유된 암석층에 독성으로 가득한 화학물질을 주입해 가스를 추출하는 방법이 문제다. 화학물질이 지하수에 스며들면 상수도가 오염되고, 시추 과정에서 지반이 약해져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쉐일가스를 추출하는 데는 환경 전쟁을 유발하려는 미국의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이다.

여덟째,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을 앞세운 '미디어 전쟁' 또는 '문화 전쟁'이다. 미국에서 할리우드와 미디어는 국가 전략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활용되어 왔는데, 이러한 미국의 국가 전략과 문화 공세의 조합이 2012년부터 중국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 기반을 둔 인터넷 검색엔진 구글은 중앙정보국의 비밀 자금을 받아 설립되었는데, 2010년 구글이 중국 본토를 떠나 홍콩으로 이전한 데는 미국이 최근 개발한 '가장 중요한 미디어 무기'를 중국이 거부한 측면이 있다.

▲ 2012년, 구글이 중국 사업 철수 가능성을 제기했을 당시 검열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구글을 지지하는 의미로 구글 사무소 앞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theepochtimes.com

▲ 2012년, 구글이 중국 사업 철수 가능성을 제기했을 당시 검열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구글을 지지하는 의미로 구글 사무소 앞에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theepochtimes.com


엥달이 이렇듯 믿기 어려울 만큼 은밀하고 음흉한 미국의 전략을 폭로해놓고 중국이 승리할 수 있는 전략 몇 가지를 결론 삼아 책 뒷부분에 제안한 것은 수상하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한국식으로 치면 국가보안법에 당장 걸려들 가장 심각한 이적 행위를 저지른 셈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직접 읽어보기 바란다.

▲ <세계와 미국: 20세기의 반성과 21세기의 전망>(이삼성 지음, 한길사 펴냄). ⓒ한길사

▲ <세계와 미국: 20세기의 반성과 21세기의 전망>(이삼성 지음, 한길사 펴냄). ⓒ한길사

이와 아울러 미국은 1990년대 초부터 중국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가장 심각한 국가로 간주하고 1990년대 중반부터 나라 안팎에서 '중국 위협론'을 확산시켜 왔는데, 그에 맞춰 나온 다음의 책도 도움이 될 것이다. Bill Gertz, The China Threat: How the People's Republic Targets America, Regnery Publishing, 2002. 미국의 '타깃 차이나'와 정반대로 중국의 '타깃 아메리카'를 내용으로 한 책이다. 영어책이 부담스럽다면 이삼성 한림대 교수가 2001년 한길사에서 펴낸 <세계와 미국: 20세기의 반성과 21세기의 전망>이 미국의 세계 전략을 공부하는 데 제격일 것이다.

참고로, 나는 지난 3월 옌쉐퉁(閻學通) 칭화대학 현대국제관계대학원장이 쓴 <2023년: 세계사 불변의 법칙>(고상희 옮김, 글항아리 펴냄)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중국이 2023년까지 미국의 경제력을 앞서고, 군사력과 문화력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뒤떨어지겠지만, 종합 국력에서 미국과 비슷한 수준이 되리라는 예측을 소개했다. 그 후 <조선일보> 4월 12일자엔 "중국은 세계를 지배할 욕망도 능력도 없는 나라"로 "절대 미국을 못 이긴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이성훈 파리 주재 특파원이 '프랑스 최고의 지성'이라는 자크 아탈리와 인터뷰한 내용이니 이 역시 참고하기 바란다.

[사설] 무전기 쥔 채 발견된 사무장 … 다시 뛸 희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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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무장 양대홍씨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양씨는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 아내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 “ 배가 많이 기울어져 있다. 수협 통장에 돈 있으니 큰놈 등록금으로 써라. 지금 아이들을 구하러 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선체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식당칸에 있던 아르바이트생과 조리담당 직원을 탈출시킨 뒤 한 명이라도 더 대피시키려고 마지막까지 온갖 애를 썼다는 게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결국 세월호 침몰 한 달 만에 한 손에 무전기를 쥔 모습으로 인양됐다.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15일 공소장을 통해 세월호 침몰 순간과 선원들의 탈출 상황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을 두고 먼저 탈출한 이유가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수사본부는 일부 선원에게서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승객이 대기하고 있으면 자기들의 구조가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진다는 점을 알고 먼저 탈출했다는 게 수사 당국의 판단이다. 하지만 사무장 양씨는 정반대로 행동했다. 자신의 목숨보다 승객과 동료를 먼저 챙기기 위해 위·아래가 뒤집어지고 물이 차오르는 위험천만한 선체를 뒤지고 다녔다. 세월호 간부급 선원으로는 유일한 사망자다.

세월호 참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대목은 자신만 살겠다고 도망친 선장·선원의 비겁하고 반인륜적인 행위다. 승객에게는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해놓고 몰래 빠져나오는 모습을 보며 우리 사회는 통렬한 반성을 넘어 집단자학 증상까지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인면수심만 있었던 게 아니다. 의인(義人)이 적지 않았다. 승무원 박지영씨는 학생들의 대피를 돕다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에서 만나 결혼을 약속한 김기웅·정현선 승무원 역시 남은 승객을 구하기 위해 선실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남윤철·최혜정 교사도 끝까지 제자의 탈출을 돕다가 희생됐다. 단원고 정차웅군은 또 어떤가. 구명조끼를 학우에게 벗어주고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들의 모습은 참사 현장에서 피어난 아름다운 꽃과 같다.

그동안 양씨의 가족들은 가혹한 시련을 겪었다. 당국은 실종 상태인 양씨를 한때 출국금지 명단에 올려놓는 실수를 저질렀다. 가족들은 죄인이 된 심정으로 실종자 가족이 머무는 체육관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밖에서 숨죽여 슬픔을 달래야 했다. 정부는 박지영·김기웅·정현선씨처럼 양씨 역시 의사자로 인정해줘야 한다. 아울러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여준 다른 이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최대한 예우를 다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경악과 분노, 자책에 짓눌려 있다. 진심 어린 애도와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갈 채비를 해야 한다. 이때 양씨와 다른 승무원·교사·학생의 의로운 모습은 험한 바다의 등대가 될 것이다. 악이 아니라 선, 이기심이 아니라 이타심이 넘쳐흐르는 세상을 받칠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v2010/power_reporter.asp

[김용민의 그림마당]2014년 5월 16일

"표 올라가는 소리"... 정몽준 '엉엉 영상'에 열광한 앵커

[공정선거보도감시단 12차 보고서] 대놓고 편파성 드러낸 종합편성채널

14.05.16 17:05l최종 업데이트 14.05.16 17:05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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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5일자 TV조선 <뉴스1> 화면 갈무리.
ⓒ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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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에서 만약에 좌파가 이기면 대한민국이 완전히 마비된다."

6·4지방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가 한 말도, 새누리당 6·4지방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서 흘러나온 말도 아니다. 지난 13일 채널A <직언직설>에 출연한 이영작(전 한양대 석좌교수)씨가 꺼내놓은 새누리당 선거 전략 논평의 한 대목이다.

이씨는 이날 방송에서 제3자의 입장인 양 6·4지방선거에 관한 논평을 이어나갔지만,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을 대하는 태도는 엇갈렸다. 그는 새누리당을 향해 "'대한민국을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이고 새누리당'이라는 메시지를 줘야한다"라면서도, 새정치민주연합을 두고는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며 날을 세웠다.

15일 TV조선 <뉴스1>에 출연해서도 이씨는 여전히 새누리당으로 기울어진 논평을 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진다면 나라는 어떻게 되겠느냐, 굉장히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고 경제는 망가지게 돼 있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지 다음 거의 4년을 우리가 헤쳐나갈 수 있는 것" 등의 주장을 이어나갔다.

해당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엄성섭 앵커 역시 이씨의 발언을 제지하거나, 반론을 제시하기보다, "좌파들이 4년 내내 분노 마케팅을 할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 "정권 초기부터 그랬다", "(좌파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다"라며 호응하고 나섰다. 사실상 종편이 뉴스 프로그램을 통해 새누리당 선거운동에 함께하는 꼴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연대해 꾸린 공정선거감시단에서 15일 발표한 12차 보고서에는 이 같은 종편의 편파성이 잘 드러나 있다.

기자와 앵커조차 새누리당 편드는 TV조선

"최근 일주일에서 한 열흘 동안 본격적으로 드러난 건데, '이러다가 정말 여당은 수도권은 전패할 뿐 아니라 이게 잘못해서 지방으로 내려가서 충청, 강원, 부산까지 내려가는 거 아니냐' 이런 걱정이 지금 굉장히 커지고 있습니다. 정말 여권의 위기입니다." (배성규 기자)

"아까 제가 일부에서 '대구 경북 빼고는 다 질 거다' 이렇게 얘기한다고 그랬는데, 이 밸런스를 잡기 위해서 또 다른 일부에서는 '의외로 상당히 뭐 선전할 것이다' 이런 얘기 하는 분들도 있어요." (최희준 앵커)

종편이 대담자의 입을 빌려서만 새누리당 편들기에 나선 것도 아니다. 12일 TV조선 <뉴스쇼 판>에서는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새누리당 지지율을 두고, 기자와 앵커가 직접 나서 여권의 위기를 걱정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나갔다.

이튿날인 13일 방송에서는 더 노골적인 표현도 등장했다. 배성규 기자는 여론조사 결과가 실제와 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저희가 FGI(포커스 그룹 인터뷰), 그러니까 일부 몇 명 사람들을 심층해서 인터뷰를 해보면 정부여당이 잘못했다고는 얘기하는데 그렇다고 지지를 철회한 건 아니"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이 사람들이 침묵하고 가만히 있는데 앞으로 남아 있는 20일 동안 '이만하면 됐다, 이제 좀 정상으로 돌아가자' 이런 생각이 나오고 또 박 대통령 쪽에서 수습책이 나오면 목소리를 점점 높이면서 결집할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마치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 '비정상'인 것처럼 여기는 태도다.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은 보고서를 통해 이러한 종편의 보도태도를 "노골적으로 자신들은 여당의 편임을 대놓고 말하는 형식"이라며, "여권이 이겨야 한다는 주장을 대놓고 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몽준의 눈물'에 열광하는 채널A와 TV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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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12일자 채널A <쾌도난마> 화면 갈무리.
ⓒ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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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새누리당이 12일 서울시장 후보로 정몽준 의원을 확정하자, 채널A와 TV조선은 정 후보가 후보수락 연설에서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부각하고 나섰다. 12일 저녁부터 13일 오후까지 양사의 뉴스와 시사토크 프로그램은 '정몽준의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를 분석하는 데 집중했다.

12일 채널A <쾌도난마> 진행자인 박종진 앵커는 정 후보의 눈물을 언급하며, "진심이 묻어나는 연설이다", "표가 올라가는 소리가 막 들린다" 등의 발언을 내놨다. 채널A는 같은 날 <종합뉴스>에서도 기자를 통해 "눈물까지 흘리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는데 '정말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구나'라는 얘기가 나왔다"며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TV조선에서도 12일 <일도양단>, 13일 <데스크 360>, <뉴스1>에서 정몽준의 눈물이 화제에 올랐다. 특히 <뉴스1> 윤슬기 앵커는 "눈물 흘린 남자 정몽준 후보의 '엉엉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면서 "눈물을 주먹으로 닦는 게 참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덧붙이기도 했다.

정 후보의 눈물에 호의적인 평가를 내놓은 윤 앵커는 박원순 시장이 유세차 동원 등이 없는 '조용한 선거'를 제안하자, 이를 "어떤 문제를 덮고 가자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양 후보를 대하는 엇갈린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홍보에 나선 방송... 담화에는 '예고편'까지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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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조선과 채널A가 방송을 통해 새누리당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면, KBS와 MBC는 박근혜 대통령을 홍보하는 데 치중했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박근혜 대통령 담화가 발표될 예정이라는 예고 기사가 별다른 내용도 없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 공정선거보도감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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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조선과 채널A가 방송을 통해 새누리당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면, KBS와 MBC는 박근혜 대통령을 홍보하는 데 치중했다. 세월호 참사에 관한 박근혜 대통령 담화가 발표될 예정이라는 예고 기사가 별다른 내용도 없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단순히 예고 수준을 넘어서 <박 대통령 '대국민 사과·안전 시스템 개혁' 담화>(KBS, 11일), <"많은 의견 수렴 대국민 담화">(MBC, 13일)처럼 이미 담화가 발표된 듯한 보도 제목도 등장했다.

KBS는 13일 <후속 대책 난상 토론 '시스템'에 초점>라는 보도를 통해서도 "오늘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 발언은 채 2분이 안 됐습니다. 대신 3시간 동안 난상토론 형식으로 세월호 후속 대책이 논의됐습니다"라며, 대통령이 묵묵히 일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데 주력했다.

공정보도감시단은 "정작 담화가 발표된 것도 아니고 담화를 위한 논의 중인 상황을 이렇게까지 매일 예고편을 해주어야 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공정보도감시단 보고서는 이밖에도 '선거보도 사라진 공영방송 KBS'와 '정몽준 후보와 박원순 시장 발언에 대한 불공정한 인용' 등을 지적했다.

네이버 연관검색 '박원순'은 막고 '정몽준'은 풀고?

6.4지방선거 후보 검색 기능 제한 형평성 논란... 네이버 "동명이인 탓"

14.05.16 11:54l최종 업데이트 14.05.16 11:54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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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오전 9시 현재 네이버 검색창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인 '박원순' 자동 완성과 연관검색어 기능에 제한되는 반면 새누리당 후보인 '정몽준'은 허용되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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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네이버 검색이 또다시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15일부터 공식 후보 등록이 시작됐는 데도 여전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예비후보자 등록 명단을 근거로 후보자 관련 검색 기능을 차단하고 있어서다.

16일 오전 10시 현재 네이버 검색 창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인 '박원순'을 입력하면 '연관검색어'와 '자동완성' 기능이 제공되지 않는다. 네이버가 지난달 15일부터 지방선거 기간 예비후보자 검색 관련 서비스를 일부 제한했기 때문인데 정작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인 '정몽준'은 여전히 관련 기능이 제공돼 구설에 올랐다. 

일부 누리꾼은 야당 후보만 연관 검색어를 차단하고 여당 후보만 열어준 게 아니냐면 불공정 의혹을 제기했다. 실제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시작된 15일까지도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인 '김진표' 연관 검색은 차단된 반면, 새누리당 후보인 남경필은 허용돼 의혹을 부추겼다.

야당은 막고 여당은 허용? '동명이인 연관검색어 차단' 해프닝

이에 네이버는 15일 오후 8시쯤 공식 블로그를 통해 "정몽준 서울시장 후보는 선관위에 예비후보자 등록을 하지 않았고,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도 등록을 하지 않았지만 동명이인이 다른 선거 예비후보자로 등록해 자동완성과 연관검색이 제공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동명이인 때문에 벌어진 단순한 해프닝이라는 것이다. 실제 경남 통영시의원 선거 예비후보자 명단에는 무소속 박원순 후보가  포함돼 있다. 또 김진표 후보 역시 예비후보 등록을 한 반면 남경필 후보는 예비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최종 후보 등록일이 16일이고 선관위에서 17일 이후 최종 데이터베이스(DB)를 받아서 18일 저녁쯤 서비스에 반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면서 "이 DB를 반영하기 전까지는 14일에 최종적으로 받은 데이터베이스를 기준으로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밝혔다. .

문제는 지금까지 선관위에 등록된 지방선거 예비후보자 숫자가 1만 명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중앙선관위에 등록된 예비후보자(등록무효 제외)는 시도지사 71명, 시도교육감 84명, 시군구청장 1077명, 시도의회 2257명, 구시군의회 6181명 등 9600여 명에 이른다. 이렇게 숫자가 많다보니 jTBC 사장인 '손석희'처럼 예비후보로 등록하지 않은 유명인과 동명이인도 많아 혼란을 부추겼다.

이에 네이버는 "동명이인의 경우에는 개별 인물별로 자동완성·연관검색을 별도 적용할 수 있는 기술적 방법은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앞서 네이버는 지난달 15일 지방선거 특집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특정 예비후보자 이름과 결합된 일부 자동완성어 및 연관검색어에 대해 선거법 위반 논란이 있음을 감안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작 다음, 네이트 등 다른 포털 사이트는 이 같은 후보자 검색 기능을 제한하지 않고 있다.

친여 누리꾼 "연관 검색어 노출이 정몽준 후보에 더 불리" 

네이버 검색 기능을 둘러싼 논란은 지금까지 끊이지 않았다.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 당시 '실시간 급상승 검색어' 조작 논란을 시작으로 2012년 4월 총선 땐 여당 정치인 관련 부정적인 연관 검색어가 삭제되기도 했다. 급기야 청소년 금기어인 '안철수 룸살롱' 검색 논란이 불거지자 네이버는 지난 2012년 9월 자사 검색어 서비스 시스템 검증을 자청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네이버 "인기 검색어 유지... 대선 땐 중단할 수도" )

결국 이번 조치 역시 선거처럼 민감한 국면에서 검색 기능 조작 논란을 미리 막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하지만 검색어 기능 차단에 대한 의견은 후보 지지 성향에 따라 엇갈리고 있다. 박원순 후보를 지지하는 누리꾼들은 연관 검색어 제한이 박 후보에게 불리하다고 보는 반면,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는 누리꾼들은 정 후보에게 부정적인 연관 검색어가 많아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보수 인터넷 매체인 <미디어워치>는 15일 "네이버 검색창에 '정몽준'을 입력하면 '정몽준 아들', '정몽준 재산', '정몽준 막내', '정몽준 70원', '정몽준 버스요금' 등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에 불리한 연관검색어들이 자동검색 기능을 통해 나열된다"면서 "친노 성향 포털들의 전횡이 도를 넘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원윤식 네이버 홍보팀장은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연관검색어나 자동완성 기능을 악용해 상대방 후보를 비방하거나 음해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어 차단하려는 목적"이라면서 "(검색 기능 제한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건 해석의 차이"라고 밝혔다. 

http://www.ohmynews.com/NWS_Web/event/sewol.aspx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31일째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입구에 실종자 수색에 대한 염원이 담긴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사고 30일째이자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강원 춘천시청 내 세월호 희생자 분향소를 찾은 춘천기계공고 학생들이 희생자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30일째인 15일 오전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오열하며 기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29일째인 14일 전남 진도실내체육관 입구에 실종자 및 희생자들에 대한 메시지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사고 28일째인 13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눈물을 흘리자 수녀가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사고 28일째인 13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방파제에 한 실종자 가족이 아들에게 가져다 놓은 운동화, 트레이닝복, 편지 등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사고 27일째인 12일 오전 전남 진도 임회면 팽목항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울던 한 실종자 가족이 손을 맞잡고 항구를 걷고 있다. [연합뉴스]
11일 오후 청계광장에 설치된 임옥상 작가의 '못다 핀 꽃' 작품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25일째인 10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 한 실종자 가족이 가져다놓은 축구화에 '사랑하는 내 아들. 너를 기다리는 모든 이의 따뜻한 품으로 어서 돌아오렴. 사랑한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연합뉴스]
9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열린 촛불 문화제에서 안산 지역 고등학생들이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일제히 들어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사고 23일째이자 어버이날인 8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 내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 제단 위 국화 사이로 몇 송이의 카네이션이 놓여 있다.[연합뉴스]
7일 오후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계단에 설치된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래핑 위로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발생 22일째인 7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 추모객이 놓아둔 국화가 점점 시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6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주최로 부처님 오신날 봉축 법요식이 열려 행사를 마친 스님과 신도, 가족들이 방파제 주위를 돌며 추모 행진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사고 18일째인 3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16일째인 1일 오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바다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다.[연합뉴스]
입원치료를 마친 침몰 여객선 세월호 생존 학생들이 가족과 함께 30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연합뉴스]
30일 오전 안산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침몰 여객선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에 시민들의 조문이 이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30일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아이 엄마들이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사망자를 추모하며 행진하고 있다.[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9일 오전 경기도 안산시 화랑유원지에 마련된 침몰 여객선 세월호 희생자 정부 합동분향소를 방문, 조문을 마친 뒤 한 유가족으로부터 항의와 하소연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사고 당시 비정한 승무원들의 외면 속에 제대로 사용해보지도 못했던 구명벌(구명뗏목)이 침몰 13일 만인 28일 새벽 사고해역에 스스로 떠올랐다. 세월호 구명벌은 일본서 첫 취항할 때인 1994년에 제작된 것이 태반인 것으로 알려졌다.[연합뉴스]
26일 오후 경기도 안산 고잔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추모객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다. 침몰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올림픽기념관에서 고대안산병원까지 추모행렬이 이어지자 도로 혼잡을 막기 위해 고잔초등학교는 추모객들에게 운동장을 개방했다.[연합뉴스]
26일 오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 해상에 정박한 언딘의 잠수작업 바지선 위로 해군 SSU 잠수사가 잠수를 마치고 잠수헬멧을 착용한 채 오르고 있다.[연합뉴스]
26일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침몰 여객선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에서 관계자들이 영정사진을 올리고 있다.[연합뉴스]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지 11일째인 26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한 스님이 실종자 가족을 껴안고 위로하고 있다.[연합뉴스]
25일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침몰 여객선 세월호 단원고등학교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추모사를 남기고 있다.[연합뉴스]
25일 오후 침몰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역에서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와 관계자들이 다이빙 벨을 점검하던 중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대표는 오늘 중으로 다이빙 벨을 투입하기로 해경과 협의를 마쳤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5일 오전 전남 진도군 실내체육관, 침몰 여객선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구조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4일 저녁 서울 중구 정동 덕수궁 대한문 앞, 시민단체 민주실현시민운동본부 주최로 열린 침몰 여객선 세월호 실종자들 무사생환 염원 촛불집회에서 참석자들이 촛불로 바닥에 ‘미안해’라고 새기고 있다.[연합뉴스]
4일 오전 전남 진도군 병풍도 세월호 침몰 해상, 민간잠수사가 공기공급호스를 문채 바다로 뛰어들고 있다. 민간잠수사들은 길이를 연장한 공기호스를 착용해 깊은 곳에서 수색할 수 있다.[연합뉴스]
24일 오전 학교 정상화를 시작한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에서 3학년 학생들이 노제를 마친 세월호 희생 학생 운구차량 옆으로 등교하고 있다. 단원고 정문에는 희망과 기적을 갈망하는 노란 리본이 달려 있다.[연합뉴스]
23일 오후, 침몰 여객선 세월호에서 희생된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책상 위에 국화 꽃다발이 놓여 있다. 단원고는 24일 3학년부터 학교 정상화를 시작한다.[연합뉴스]
23일 오전 경기도 안산 올림픽기념관에 침몰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를 위한 임시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한 학생이 헌화 후 눈물을 흘리며 분향소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22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강원도청 앞 소공원에서 춘천YMCA 청소년 동아리 회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실종자의 무사생환을 기원하는 노란 리본을 나무에 달고 있다.[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당일인 16일 오전 선원들이 조타실에서 구조되고 있다. 이들은 조타실 바로 옆에 구명벌이 14개나 있었는데 바다에 던지지 않고 자신들만 배에서 빠져나왔다. 해경이 구명벌 2개를 바다에 던지고 있다.(사진 오른쪽) 사진 왼쪽에는 세월호 한 선원이 손에 무전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합동수사본부는 선원들이 무전기로 선원들끼리만 상황을 공유하며 탈출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연합뉴스]
2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문화광장에서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시민들의 촛불이 타오르는 가운데 한 시민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글이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21일 오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여객선 세월호 침몰 사고 해상, 사고 발생 엿새째 잠수부들이 수색 및 구조활동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21일 새벽, 침몰 여객선 세월호에서는 구조됐지만 유서를 남기고 숨진 채 발견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교감의 운구차량이 장례식을 엄수한 후 운동장을 돈 뒤 단원고를 나서고 있다.[연합뉴스]
20일 밤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서 채낚이 어선과 조명탄이 불을 밝히는 가운데 수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연합뉴스]
20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119 구조대원들이 세월호 침몰 사고로 숨진 희생자의 시신을 운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일 오전 진도군 군내면 진도대교 2km 앞, 세월호 침몰 실종자 가족들이 정부의 대처를 믿지 못하겠다며 청와대로 향하다 경찰에 제지당하고 있다.[연합뉴스]
세월호 침몰 나흘째인 19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연합뉴스]
18일 오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서 구조대원들이 물에 잠긴 세월호에 대형 부표를 연결하고 있다.[연합뉴스]
16일 오후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에서 구조된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이 얼굴이 안 보이는 친구들을 찾으며 울먹이고 있다.[연합뉴스]
18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서 구조대들이 수색작업을 벌이는 가운데 뒤쪽으로 인양을 위한 크레인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연합뉴스]
17일 오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서 해군 해난구조대(SSU)가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다.[연합뉴스]
17일 오전 세월호가 침몰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3km 앞 사고 해상에 도착한 한 실종자 가족이 빠른 유속으로 구조작업이 지연되자 눈물을 흘리고 있다.
16일 오전 8시 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사고로 침몰하고 있다.[연합뉴스=해양경찰청 제공]
16일 오전 8시 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사고로 침몰하는 가운데 승객들이 한쪽으로 기울어 버린 배안에서 몸에 중심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연합뉴스=생존자 제공]
16일 오전 8시 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사고로 침몰하고 있다.[연합뉴스]
16일 오전 8시 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사고로 침몰하는 가운데 해양 경찰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해양경찰청 제공]
16일 오전 8시 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사고로 침몰하는 가운데 해양 경찰이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16일 오전 8시 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사고로 침몰하는 가운데 해양 경찰이 승객들을 구조하고 있다.[연합뉴스=해양경찰청 제공]
16일 오전 8시 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사고로 침몰하는 가운데 헬기가 동원돼 구조 작업을 하고 있다.[연합뉴스=독자 제공]
16일 오전 8시 58분쯤 전남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0km 해상, 인천에서 제주로 항해던 6,825t급 여객선 세월호가 사고로 좌초 후 침몰하고 있다.[연합뉴스]

부정선거 개표조작) 득표율 0.93 의 비밀!!!!! [27]

코난 (dae****)

주소복사 조회 2460 14.05.09 09:26 신고신고

(부정선거) 대선 득표율, 단 1초도 0.93 비율을 이탈하지 않았다

 

우선 발견된 결과는 22시 17분부터 방송이 끝난 1시 25분까지, 

방송자료가 없어서 기록은 못해봤지만,

SBS 다음사이트에서 제공한 데이터를 유추해 보면 5시 30분까지

1분간격으로 0.93의 득표율이 어김없이 유지되었습니다.

 

즉, 1분마다, 아니 매초마다라고 해도 당연하겠죠.

박근혜 100, 문재인 93표 의 비율로 득표수가 올라갑니다.

그것도, 6시간 넘게... 이걸 믿어야 하나요?

기계 말고 이걸 사람이 끼워맞출 수가 있나요?

이게 우연일까요??

 



 대선개표율 조작.xlsx

 

 대선개표율 조작 ver97-03.xls

 







'모든 조작은 흔적을 남긴다'


결정적인 개표조작 증거 3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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