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백남기씨 사인을 '병사'로 적은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를 둘러싼 논란이 큰 가운데, 30일 오후 서울대 의과대학 학생 102명이 사망진단서에 문제제기를 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병원 안팎에 성명 내용을 담은 대자보를 붙였다.
서울대 학생들은 이 성명에서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의 내용은 저희가 배운 것과 달랐다"면서 "직접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은 국가고시 문제에도 출제될 정도로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버젓이 기재되었고,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표기되어 있었다"라고 밝혔다.
또한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저희는 이토록 명백한 오류가 단순한 실수인지, 그렇다면 왜 이를 시정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하다. 만약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면 어떤 이유에서 이런 논란이 빚어지게 되었는지 해명을 듣고 싶다"라고 전했다.
이들은 선배인 서울대병원 의사들을 향해 "저희가 소명으로 삼고자 하는 직업적 양심이 침해받은 사안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 주시기를 간절히 청한다. 저희가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보여달라"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성명 전문이다.
선배님들께 의사의 길을 묻습니다.
故 백남기 씨는 지난해 11월 시위 도중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혼수상태로 사경을 헤매다 9월 25일 사망하였습니다. 환자가 사망하였을 때 사망의 종류는 선행사인을 기준으로 선택하게 되며, 질병 외에 다른 외부 요인이 없다고 의학적 판단이 되는 경우만 '병사'를 선택합니다.
외상의 합병증으로 질병이 발생하여 사망하였으면 외상 후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더라도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입니다. 이것은 모두 저희가 법의학 강의에서 배운 내용입니다. '물대포'라는 유발 요인이 없었다면 故 백남기 씨는 혼수상태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므로 고인의 죽음은 명백한 '외인사'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故 백남기 씨 사망 직후 언론에 보도된 서울대병원 사망진단서의 내용은 저희가 배운 것과 달랐습니다. 직접사인으로 '심폐정지'를 쓰면 안 된다는 것은 국가고시 문제에도 출제될 정도로 기본적인 원칙이지만 버젓이 기재되었고, 사망의 종류는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오류는 의학적, 법적으로 명백했던 고인의 사인을 모호하게 만들었습니다.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 있는 사체의 경우'에만 필요한 부검의 영장이 사망진단서의 오류를 이유 삼아 청구되었습니다.
전문가란 오류를 범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오류를 범했을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학생인 저희의 눈에 이토록 명백한 오류를 선배님들께서도 인지하고 계셨으리라 짐작합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은 이 오류에 대해 전문가 집단으로서 걸맞지 않은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토록 명백한 오류가 단순한 실수인지, 그렇다면 왜 이를 시정할 수 없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만약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면 어떤 이유에서 이런 논란이 빚어지게 되었는지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
故 백남기 씨는 서울대병원의 환자였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환자를 우선으로 하라는 것이 저희가 선배님들께 받은 가르침이었습니다. 인류, 종교, 국적, 정당, 정파 또는 사회적 지위 여하를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노라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는 이야기합니다.
사망진단서는 환자와 유족을 위한 의사의 마지막 배려라고 저희는 배웠습니다. 전문가 윤리를 지켜오신 선배님들께서 이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소명으로 삼고자 하는 직업적 양심이 침해받은 사안에 대해 침묵하지 말아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저희가 어떤 의사가 되어야 하는지 보여주십시오. 저희는 선배님들께서 보여주신 길을 따르겠습니다.
YTN 해직기자 노종면은 지난 27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31초 vs. 6분 7초, MBC 뉴스데스크가 9월 26일 보도한 두가지 뉴스(?)의 할애 시간입니다. 고 백남기 농민 관련 뉴스는 단신으로 달랑 31초, 바로 이어서 '삽결살 먹고 체중을 30㎏이나 줄였다'는 뉴스(?)를 붙였는데 무려 6분 7초짜리였습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뉴스 분량 차이도 문제지만 사람이 죽었는데, 그것도 공권력에 의해 분하고 원통한 죽임을 당했는데, 그 뉴스 바로 다음에 삽결살 타령을 붙인 MBC의 편집은 비인간적인, 언론임을 포기한 악마의 편집입니다. 이런 맥락 모르고(당연히 모르셨을 겁니다만) 'MBC의 삼결살'을 공유하는 분들이 계셔서 적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이 글을 접한 한 누리꾼들은 "고의적인 사악한 행태" "가끔 썩은 정치인들보다 노란 언론이 더 끔찍하게 싫어요" "깨우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유합니다" 등의 댓글을 통해 공감을 나타내고 있다.
앞서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 25일 보도에서도 '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씨 사망'이라는 제목으로 26초 단신 처리해 빈축을 샀다. 고 백남기 농민이 지난해 11월 제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지 317일 만에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고인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지던 당시 장면마저 배제된 채였다.
더욱이 이날 백남기 농민 사망 보도는 14번째로, 앞선 보도들이 교통사고 등 사건·사고였다는 점에서 "백남기 농민의 사망을 통상적인 사건·사고 보도보다 가볍게 다뤘다"는 비판을 받았다.{RELNEWS:right}
‘비공개 단식’에 이어 ‘내 단식은 다르다’ 발언으로 연일 도마에 오르내리는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이번에는 세월호 모금 관련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했습니다. 재계가 미르·K스포츠재단에 단기간 770억여원을 모금해 준 것을 변호하면서 ‘세월호 때는 900억원 모금을 금방 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네티즌들은 ‘모금의 성격과 방법이 다른데 어떻게 세월호 때와 비교할 수 있느냐’며 아우성입니다. 28일 페북지기 초이스입니다.
문제가 된 발언은 이날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나왔습니다.
이정현 대표는 박근혜 정권 실세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K스포츠재단이 전경련에서 단기간 770여억원을 모금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세월호 때에도 거의 900억원 모금을 금방 했다고 한다”고 일축했습니다.
그는 “전경련 산하에 많은 대기업이 있는데 1년에 사회공헌으로 쓰는 돈이 3조원”이라면서 “문화예술만 1조원이 넘는다. 돈 많이 벌고 하는 기업이 때론 연말에 불우이웃 성금할 땐 200억원씩도 내지 않나”라고도 했는데요.
그러니까 대기업들이 세월호 사고 당시 900억원을 손쉽게 모금했으니 체육문화 분야 육성을 위해 770억여원의 돈을 걷은 것 또한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입니다.
이정현 대표는 아울러 “과거 대북 지원 할 때도 전경련은 신속하게 돈을 걷어 많은 사회 공헌 활동을 해왔다”면서 “문화융성의 시대, 이건 박근혜 정권 4대 국정지표 중 하나”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정현 대표의 발언이 보도되자 네티즌들은 발끈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모금과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은 모든 면에서 다른데 어찌 이를 대비시킬 수 있느냐는 비판입니다.
포털사이트에 걸린 기사에는 이정현 대표의 발언을 비판하는 댓글이 쉴 새 없이 달리는 상황입니다.
한편 SNS에서는 23일 표결 당시 새누리당과 국무위원들의 지연작전을 편집한 동영상이 “김밥 천국, 불신 지옥”, “필리밥스터”, “밥먹자 국회 떼쓰기 풀영상”, “정진석 국회 난동 액기스 8분”, “개콘보다 더 재미난 필리밥스터 영상~” 등의 제목으로 확산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정진석 인생짤, ‘밥은 먹여야 할 것 아니냐’”, “새누리당의 운동권 코스프레”, “정진석의 헐리웃액션은 최순실게이트 국정조사 막으려는 꼼수”, “정진석 분노조절 장애 있는듯. 국회의장한테 야 라고 부르질 않나. 나이차도 열 살 나더만”, “세월호 유가족 단식할 때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새누리당이 국무위원들 김밥 달라고 난리” 등의 반응을 보였다.
가수 이승환씨도 “필리밥스터!”라며 해당 영상을 공유하고 “추천곡 (아재 개그 유의)”라며 핸슨(Hanson)의 ‘음밥(MMMBop)’을 배경음악으로 추천했다.
8분 16초짜리 민중의소리 편집영상은 25일 오후 1시 현재 2만5천여건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오마이뉴스의 그래픽과 함께 편집된 <김밥 천국, 불신 지옥(feat. 정진석)> 영상도 관심을 모았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신경성 위염 증상이 도져 약을 먹어도 가라앉지 않는다”며 “국회 본회의 장면을 시청하면서 내내 열받은 후유증인 듯하다”고 호소했다.
유창선씨는 “꼭 김밥 먹고 해야겠다는 정진석, 그리고 필리버스터 답변에 나선 총리와 장관들을 보니 마음이 뒤틀려 버렸다”며 “내가 모욕당한 듯한 기분을 아직도 지울 수가 없다. 진단서 떼서 위자료 청구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분노했다.
고 백남기 농민의 사망과 관련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소속 김경일 전문의(신경외과)는 25일 “놀라운 사실은 수술을 집도했던 그 팀이 사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라고 쓴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문의는 이날 오후 백씨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말 획기적인 일”이라며 이같이 놀라움을 표했다.
김 전문의는 “사인은 뇌좌상(뇌타박상)·뇌출혈·뇌부종 등 뇌와 관계되는 ‘외인사’가 너무나 분명하다”며 “그런데 이것을 병사라고 사망진단서를 쓴 분들이 있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부검을 통해 확인하고 싶기 때문에 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명백한 사인을 두고 치료한 분들이 외인사냐 병사냐를 고민하고 있는 건 신경외과 의사로서 할 것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 <사진출처=김근수 카톨릭프레스 편집인 페이스북>
우석균 인의협 공동대표는 “서울대병원에서 급성경막하출혈이라고 했는데 외상에 의해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백남기 농민의 사망은 ‘외인사’에 해당한다”며 “물대포에 의한 경찰 폭력으로 뇌출혈이 생겼고 너무나 분명하게 이미 확인됐기에 더 이상 부검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우 대표는 “급성심부종증은 중간사인이고 원 사망 원인은 외상에 의한 뇌출혈과 급성 경막하출혈”이라며 “이런 (사망진단서) 결과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유족이 건네준 사망진단서를 공개하며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망진단서를 끊은 사람이 레지던트이고 사망 원인이 병사이다”고 의구심을 보였다.
정 전 의원은 “일부 의학계에서는 지금 상태로 사망원인을 진단할 수밖에 없기에 병사로 기록하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의원은 “백남기씨가 지병으로 돌아가셨는가”라며 “처음에는 외인성 격막하출혈로 진단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 과정을 써주든가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관련 인의협 소속 이보라 전문의는 페이스북에서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사망한 경우 사망진단서 쓰는 법, 예시”라며 백남기씨의 사망진단서와 비교했다.
1년 2개월전 버스에 치여 두개골 골절이 된 34년 여자 식물인간 상태로 병원 치료 중 4일전부터 상태가 안 좋아지면서 폐렴 진단받고 치료받던 중 사망함
가) 직접사인 : 폐렴 나) 가)의 원인 : 두개골 골절 다) 나)의 원인 : 교통사고 사망의 종류 : 외인사
▲ <사진출처=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보라 전문의 페이스북>
이어 이 전문의는 “이 정도 힌트를 주면 백남기 어르신 사망진단서는 어떻게 써야 하는지 초등학생도 알 수 있겠죠?”라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에 의문을 제기했다.
주진우 시사IN 기자는 “무엇이 두려운가, 사망 원인마저 조작하려 하나”라며 “명백한 사고사이다. 전문 용어로 외인사”라고 지적했다. 주 기자는 “그런데 서울대병원에서는 병사라고만 한다”며 “백남기 농민이 질병 때문에 죽었다고요?”라고 분노했다.
우병우(사진 가운데), 진경준(왼쪽), 김형준. 2016년은 세 사람 때문에 ‘검찰 치욕의 해’로 기억될지 모른다. 지난 4월 진경준 검사장의 넥슨 비상장주식 특혜 매입 사건으로 시작된 검찰의 위기는 지난여름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각종 비리 의혹과 최근 김형준 부장검사의 ‘스폰서’ 사건을 거치면서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있다. ‘공익의 대변자’라는 수식어를 무색하게 만드는 이들 세 검사의 사익 추구 행위는 검찰의 위기를 넘어 우리 사회의 근간마저 흔들고 있다. 그동안 검찰은 정치권력 눈치보기와 재벌 봐주기 논란 등으로 불신을 받아왔다. 여기에 더해 출세지상주의에 빠져 정의와 공익은 뒷전인 조직으로 비친다. 그만큼 일선 검사들의 동요는 훨씬 심각하다. 든든한 배경으로 승승장구한 0.1%의 ‘금수저’ 검사들이 나머지 99.9%의 검사들을 소외시키고 허탈하게 만들고 있다. 검찰 내 양극화가 위기의 양상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어서다. 위기의 극복은 더이상 ‘금수저’들의 득세를 허용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검찰은 과연 ‘그 어려운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글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청와대사진기자단, 연합뉴스 hyopd@hani.co.kr
2016년은 대한민국 법조 기자들에게 매우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검찰의 대형 비리 수사를 취재하느라 바빴던 여느 때와 달리 검찰이 직접 수사 대상이 된 사건들을 잇달아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들도 모두 중량급이다. 촉망받던 부장검사에서부터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 그리고 사정 권력의 정점에 있는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검찰 안팎의 실력자들이 이처럼 약속이나 한 듯 나란히 비리에 연루된 때가 또 있었을까.
일선 검사들은 허탈감에 빠져 있다. ‘스폰서 의혹’으로 23일 대검 특별감찰팀에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를 받은 김형준 부장검사와 넥슨 주식을 뇌물로 받은 혐의로 지난 7월 구속된 진경준 전 검사장, 그리고 각종 비리 의혹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 내 0.1%에 해당하는 ‘금수저’들이었다. 혼맥이나 권력자와의 인연을 배경으로 검찰에서 잘나가던 검사들이었다. 특혜란 특혜는 다 챙겼던 이들이 역설적으로 지금 검찰 조직을 존폐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매일 사건 기록과 씨름하면서 묵묵히 일만 하던 검사들은 이들의 행태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검찰 내 ‘금수저’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체로 금수저들은 자기 관리에 철저해 구설에 오른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우병우, 진경준, 김형준은 달랐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악덕 검사’의 모습을 현실에서 고스란히 재현하고 있다. 외부의 시선에는 관심도 없다는 듯 거침없고 태연하게 검사와 범죄자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이들이 연루된 사건 취재 기록을 뒤져 ‘세 검사’의 과거와 현재를 추적했다.
‘심재륜·안대희 사단’엔 못 끼어
우병우 수석에게 지난여름은 평생 잊지 못할 악몽의 계절이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그와 그의 처가를 둘러싼 비리 의혹을 연일 보도했다. 하지만 한 달 가까이 이어진 보도에도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석수 대통령 특별감찰관이 그를 검찰에 수사의뢰하면서 최대 고비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되레 이 감찰관으로 하여금 검찰 수사를 받게 만드는 절묘한 ‘되치기’로 위기를 벗어났다. 검찰은 여전히 그의 눈치를 보고 있다. 우 수석 관련 수사를 하고 있는 특별수사팀(팀장 윤갑근 고검장)은 수사에 착수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마치 세상에서 잊히기를 바라는 듯 감감무소식이다.
우 수석의 버티기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에 기반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버티기가 완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를 잘 아는 지인들은 그의 강한 ‘멘탈’에서 해답을 찾는다. 차돌처럼 단단한 자존심이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우 수석은 대학교 3학년 때 사법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연수원 동기들에 비해 2~3년 빨리 검사로 임관했다. 사법연수원 성적도 좋아 초임이 서울지검(현 서울중앙지검)이었다. 스스로 강한 프라이드를 가질 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는 셈이다.
정작 평검사 시절에는 동기들에 비해 그리 큰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그는 검찰 안에서 ‘특수통’(권력형 비리 수사를 전담하는 특별수사부 근무 경력이 많은 검사)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정통 특수통’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와 비슷한 연배에 검찰에서 특수통으로 이름을 날린 검사들은 대체로 ‘심재륜(전 부산고검장) 사단’이나 ‘안대희(전 대법관) 사단’에 차출된 경력이 있다. 심재륜 전 고검장은 대검 중수부장 시절 한보그룹 비자금 사건 재수사를 지휘해 김영삼 당시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를 구속시켰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을 구속시킨 것은 당시 검찰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안 전 대법관도 2003년 역시 대검 중수부장을 지내면서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던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지휘했다. 안 전 대법관은 당시 ‘국민검사’라고 불릴 정도로 대중적 인기도 좋았다. 수사 좀 한다는 평을 듣던 검사들은 당시 ‘심재륜 사단’이나 ‘안대희 사단’에서 일하기를 열망했고, 그 경험을 마치 무공훈장처럼 자랑스럽게 여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 수석은 두 사단 어디에도 끼지 못했다.
연이은 검사 스캔들로 얼룩진 2016년 검찰 안팎 실력자들 줄줄이 비리 연루 검찰 내 0.1%에 해당하는 ‘금수저’들 특혜 누리다 검찰조직 위기로 내몰아
능력보다 출세욕 앞세운 성향에다 ‘소년등과’ 했다는 자존심도 닮은꼴 ‘공익의 대변자’ 이미지 훼손 주역 일선 검사들의 허탈감만 높아져
그가 본격적으로 ‘특수통’의 길로 접어든 것은 2001년 김대중 정부 당시 ‘이용호 게이트 특검’(차정일 특검)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이용호 게이트 특검’은 당시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을 구속하는 등 커다란 수사 성과를 올렸다. 현직 총장의 동생이 연루된 사건이라 당시 검사들은 특검팀 차출을 꺼렸지만, 우 수석은 특검에 자원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됐다. 2003년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으로 있으면서 당시 특수2부장이었던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함께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을 수사했다. 이 사건은 에버랜드의 전·현직 경영진을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에 기소함으로써 주범 격인 이건희 회장의 시효를 중단시킨 아이디어로 주목받았던 수사다.
그는 2009년 대검 중앙수사부 중수1과장에 발탁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이인규 중수부장, 홍만표 수사기획관(‘정운호 게이트’로 구속기소돼 재판 중)과 함께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를 하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다. 당시 수사팀은 피의사실 공표 논란을 무릅쓴 적극적인 언론 플레이로 노 전 대통령을 압박했다. 여론도 노 전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수사팀은 목적을 달성하는 듯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수사는 전면 중단됐고, 이인규 중수부장이 사표를 내는 등 수사팀은 풍비박산이 났다. 우 수석의 전성기도 함께 끝나는 듯했다.
‘경북고 출신 아니라 불이익’ 푸념
이때 그를 구해준 이가 김준규 전 총장이다. 임채진 전임 총장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 뒤 총장이 된 김 전 총장은 우 수석을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발탁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에 대한 책임을 묻기는커녕 오히려 승진시킨 셈이다. 김 전 총장은 이에 대해 “당시 중수부장이 책임지고 사표를 낸 상태였기 때문에 중수과장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지나치다는 내부 조언이 있었다. 지방으로 보내면 좌천성 인사로 보일 것 같아 차라리 내 참모로 두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 전 총장 밑에서 그는 대검 수사기획관까지 지냈다. 평검사 시절 자신을 앞섰던 동기들과 검사장 승진 경쟁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스펙이 드디어 갖춰진 것이다.
그러나 우 수석은 검사장이 되지 못했다. 10명의 동기들이 자신을 제치고 검사장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는 크게 낙담했다고 한다. 그를 잘 아는 한 법조인은 “자존심이 센 그에게 검사장 탈락은 큰 충격이었다. 사석에서 ‘나보다 못한 놈들도 다 검사장이 됐다’고 푸념했다”고 말했다. 최근 시사월간지 <신동아>가, 우 수석이 민정수석 취임 3개월 뒤인 지난해 4월 사석에서 기자들과 나눴던 얘기를 보도한 기사에도 그의 ‘검사장 콤플렉스’가 잘 드러난다. 그는 “(검찰이) 일만 있으면 나를 불러서 부려먹고는 승진은 다른 놈 시켜주고. 검찰총장처럼 한 자리뿐이면 이해하지만 한 기수에 10명을 시켜주면서 나만 안 시켜주니까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했다. 일만 시켜먹고 승진 때는 빼고. 그게 더 억울하다”고 말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들은 그의 검사장 탈락이 동기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것이라고 말한다. 우 수석을 비롯한 연수원 19기는 박근혜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에 대거 검사장으로 승진했는데, 우 수석은 당시 같은 티케이(대구·경북) 출신의 김강욱 현 대전고검장에게 밀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고검장은 경북고 출신으로 검찰 안에서 주류로 통하는 정통 티케이 출신이다. 영주고 출신인 우 수석도 티케이로 분류되면서 김 고검장과 경쟁하게 됐다. 그는 사석에서 자신이 경북고 출신이 아닌 티케이라서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우 수석이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한 것은 그의 수사 스타일 탓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는 수사를 독하게 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2004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 시절 안상영 당시 부산시장 관련 일화가 대표적이다. 우 수석은 안 시장이 당시 한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아 챙긴 혐의를 잡고 당시 부산구치소에 별건으로 수감돼 있던 그를 서울구치소로 불러 올렸다. 하지만 우 수석은 안 시장을 단 한 번도 조사하지 않고 구치감에 하루 종일 내버려둔 뒤 다음날 부산구치소로 돌려보냈다. 안 시장은 부산구치소에 내려온 뒤 하루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시 검찰 안팎에선 안 시장이 구치감에서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는 말이 나돌았다.
당시 법무부는 조사를 벌인 뒤 “안 시장의 건강 등을 고려할 때 서울로 호송하기보다 수사팀의 부산 출장조사가 더 바람직했다”고 결론 냈다. 또 안 시장의 서울구치소 이송을 지휘한 우 수석의 책임을 물어 서울중앙지검에 ‘기관 경고’ 조처가 내려졌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서영제 변호사는 지난해 펴낸 회고록 <누구를 위한 검사인가>에서 “당사자인 우 검사는 ‘내가 왜 징계를 받아야 하느냐’고 울분을 표시했다”며 “가장 가벼운 경고 조치로 마무리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으나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우 수석의 가장 든든한 배경은 그의 장인인 고 이상달 정강중기건설 회장이었다. 경남 합천 출신인 이상달 회장은 1980년대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동향임을 내세워 각종 이권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벌었다. 특히 경찰 수뇌부의 후원자 역할을 하면서 경찰 간부 인사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탄탄한 인맥을 쌓았다. 이 회장은 1990년대 초 기흥컨트리클럽 운영권을 퇴직 경찰관들의 조직인 경우회로부터 양도받아 골프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는 골프장 사업이 번창하면서 90년대 중반부터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쪽으로도 발을 넓혔다. 검찰 출신의 한 원로 변호사는 “이 회장이 당시 몇몇 검찰 간부들의 후원자 역할을 한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얘기였다”고 말했다. 이 회장이 우 수석을 둘째 사위로 맞이한 것도 이 무렵이다. 슬하에 아들이 없었던 이 회장은 네 명의 사위들 가운데 우 수석을 가장 아꼈다고 한다.
든든한 재산, ‘스폰서 유혹’에서 자유
우 수석은 장인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기흥골프장을 잘 ‘활용’했다.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기흥골프장은 법조인들에게 큰 인기가 있었다. 우 수석은 검찰 요직에 있는 선배들과 동료 검사들의 기흥골프장 부킹을 자주 도와줬다고 한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당시 잘나가는 검사들 가운데 우 수석과 함께 기흥골프장을 이용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고 말했다. 우 수석은 골프장을 찾은 동료 검사들한테 마치 골프장 경영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고 한다. 우 수석은 최근 기흥골프장 관련 비리 의혹에 대해 ‘처가의 일이라 잘 모른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우 수석이 장인의 덕을 가장 크게 본 것은 그가 물려준 재산이다. 우 수석은 재산공개 대상이 된 2015년에 405억원, 2016년에는 393억원의 재산을 신고해 정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든든한 재산은 그를 ‘떡값’과 ‘스폰서’의 유혹으로부터 자유롭게 만들었다. 그는 삼성에버랜드 사건 수사 당시 삼성 쪽 인사들을 사석에서 일절 접촉하지 않은 일로 화제가 됐다. 엄청난 재산이 그를 강직한 이미지의 검사로 만든 셈이다.
우 수석에 대한 검찰 내 평가는 엇갈린다. 일처리만큼은 깔끔하게 잘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실제보다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한 특수통 출신 변호사는 “우 수석이 수사를 잘했다고 하지만 검찰에서 그 정도 수사 능력을 갖춘 검사들은 많다. 우 수석의 출세가 온전히 그의 업무 능력만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에 대한 검사들의 부정적 평가는 그의 ‘이중 잣대’에 집중된다. 우 수석은 지난해 말 검찰총장 인사 때 한 유력 후보의 위장전입을 문제 삼아 비토를 놨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후보는 연수원 17기 선두 주자로 검찰 선후배의 신망이 두터웠다. 우 수석은 배우자의 상속 재산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가족회사를 만들어 법인 소유 차량을 사적으로 사용하는가 하면 통신비 등 생활비용을 회사에 떠넘긴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남의 허물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자신의 범죄에 가까운 비위에는 눈감고 있는 셈이다. 서울 지역 검찰청 소속의 한 검사는 “우 수석 관련 의혹 보도를 보면서 검사 시절 그의 강직한 이미지가 사라진 것 같다. 좋은 검찰 선배를 잃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넥슨 비상장 주식을 뇌물로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진경준 전 검사장은 우병우 수석과 닮은 점이 있다. 진 전 검사장도 우 수석과 마찬가지로 대학교 3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한 ‘소년등과’ 출신이다. 그는 이듬해인 대학 4학년 때 행정고시에도 합격해 우 수석보다 스펙을 더 쌓았다. 당연히 그도 우 수석 못지않게 자존심이 강했다.
진 전 검사장은 그에게 120억원대의 주식 대박을 안겨준 김정주 전 대표보다 더 든든한 ‘빽’이 있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위 이상주 변호사와 절친 관계다. 또 미국 연수 시절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씨와도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이명박 정권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파견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인사였다.
그는 ‘일개’ 인수위원이 아니었다. 엠비 정부 2년째인 2009년 임채진 당시 총장이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사표를 낸 뒤 후임 총장 인선 작업이 진행되던 때였다. 검찰 안팎에선 권재진 당시 서울고검장(민정수석을 거쳐 법무부 장관에 임명됨)이 후임 총장에 임명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천성관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발탁됐다. 애초 청와대 안에서는 권 고검장을 낙점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막판에 천 지검장으로 바뀌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 과정에서 진 전 검사장이 대통령의 사위와 아들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천 후보자는 ‘스폰서 의혹’이 불거져 총장 의자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낙마했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진경준이 당시 천 후보자를 세게 밀었다는 건 거의 정설에 가깝다. 이 때문에 권재진 장관이 그를 못마땅하게 여겼다는 말도 나왔다”고 말했다. 실제로 권 고검장이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된 뒤 진 전 검사장은 지방검찰청으로 좌천성 인사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 가족과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닌다는 이유로 괘씸죄에 걸렸다는 말이 나왔다.
‘소맥’ 대신 고급 위스키만 주로 즐겨
하지만 그는 2011년 취임한 한상대 총장에 의해 다시 중용되면서 엠비 정부에서 검사장 승진에 필요한 스펙을 모두 갖췄다. 그는 박근혜 정부 첫 인사 때 인천지검 2차장에서 의정부지검 차장으로 밀렸다. 그가 다시 기사회생한 것은 공교롭게도 우병우 민정비서관이 민정수석으로 승진한 때와 겹친다. 진 전 검사장은 2015년 2월에 검사장으로 승진하면서 법무부 요직인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됐는데, 당시 이 인사는 우 수석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진 전 검사장이 120억원대의 수상한 ‘주식 대박’을 신고했는데도 무사히 인사검증을 통과했다. 이 때문에 진 전 검사장과 우 수석이 사적인 인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지난여름 <조선일보>가 ‘우병우 처가의 강남 땅을 넥슨이 매입할 때 진 전 검사장이 거간꾼 노릇을 했다’고 보도한 건 이런 배경을 바탕으로 했다.
그는 초임이던 1996년 서울지검 형사부 근무 당시 6000원짜리 열차표를 1만원에 판 회사원을 구속기소한 일이 드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큰 화제가 됐다. 이 회사원은 앞서 같은 혐의로 두 차례나 처벌(구류와 벌금)을 받은 전과가 있었다. 진 전 검사장은 동종 전과를 이유로 관련법에 따라 그를 구속했다. 검사로서 법대로 처리한 것이었지만 누리꾼들의 비난 댓글이 쇄도했다. 남에겐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이중성을 질타하는 글이 대부분이었다.
23일 검찰에 피의자로 소환돼 조사를 받은 김형준 부장검사는 박희태 전 국회의장의 사위다. 박 전 의장은 김영삼 정부 때 법무부 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검찰 원로다. 그는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검찰 내 피케이(부산·경남) 세력의 대부 역할을 하며 검찰 인사 등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김 부장검사는 그런 장인의 ‘인적 네트워크’를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가 검찰 안에서 비주류로 분류되는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임에도 화려한 스펙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을 장인의 후광으로 해석하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그는 검찰 안에서 증권·금융 비리 수사에 능통한 ‘금융통’으로 꼽힌다. 2006년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1부와 2007년 삼성특별수사감찰본부 등 경제 사건 전담 부서에서 주로 일했고, 2009년엔 외교부 유엔대표부 법무협력관으로 해외 파견 근무를 하기도 했다. 주요 보직을 맡다 보니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던 사건 수사에도 이름이 자주 오르내렸다. 2013년에는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환수팀장을 맡아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의 지인들은 그를 능력있고 성격 좋은 검사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의 ‘밤문화’는 전혀 딴판이었다. 최근 불거진 고교 동창 사업가(구속)와의 ‘스폰서 관계 의혹’의 전모는 영화에서 조롱거리로 등장하는 ‘구악 검사’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는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 일대의 허름한 술집에서 ‘소맥’(소주와 맥주를 섞은 술)을 즐기는 검사들과 달리, 고급 위스키와 접대부가 나오는 서울 강남의 고급 술집에서 접대를 받았다. 술값만 150만~200만원에 이르는 비용은 ‘스폰서’가 냈다. 그에게 정기적으로 술 접대를 한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은 한 기업인은 <한겨레>와 만나 “그는 자신의 단골 술집을 지정해 그곳에서 만나자고 했다. 제대로 마시면 비용이 300만~400만원에 이르는 고급 술집이었다. 검사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곳이라서 나도 그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버티기·되치기의 우병우 민정수석 ‘정통 특수통’이라 불리긴 힘들어 에버랜드·노 대통령 수사 등 관여 심한 모멸감 주는 수사스타일 입길
진경준, MB 사위와 절친관계로 유명 괘씸죄 걸렸다가 우 수석 덕에 회생 검찰 내 ‘금융통’ 꼽히던 김형준 장인 박희태 영향인지 정치권 기웃
김 부장검사는 최근 검찰 수사로 예금보험공사 본부장을 그만두기 전까지 거의 매일 저녁 약속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검찰 선후배를 비롯한 법조인과 기업인들이 많았지만 정치인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진경준 전 검사장과 단골 술집에서 술을 마신 적도 있다고 한다. 또 지인들에게 우병우 수석과의 친분을 과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장인의 영향을 받은 듯 정치에도 관심이 많았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술자리에서 내게 자신이 총선에 나가면 승산이 있는지, 어느 지역구가 유리한지 등을 자주 물어봤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유엔 법무협력관 파견 때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맺은 인연으로 반 총장의 대권 도전 여부에도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다고 한다.
국감장 놀라게 한 김형준의 ‘본립도생’
그는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전두환 추징금 특별환수팀장 자격으로 나왔던 2013년 국정감사장에서 그가 꺼낸 ‘본립도생’(本立道生)이라는 말은 지금도 검찰 간부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본립도생은 ‘법과 원칙의 기본을 세워 길을 만든다’는 뜻으로 공자의 제자인 유자가 한 말이다. 당시 김 부장검사는 전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내 환수하는 등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이 말을 썼다. 하지만 당시 국정감사장은 ‘국정원 수사 외압’ 논란이 불거져 조영곤 서울중앙지검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간부들이 매우 침통해하는 분위기였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초상집 분위기였는데 그 와중에 김 부장검사가 자기 자랑을 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 부장검사도 지난해 증권범죄합수단장을 맡아 ‘여의도 저승사자’라고 불릴 정도로 강직한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고교 동창 스폰서 등에게 뇌물성 접대를 받아 검찰에 구속될 위기에 놓였다. ‘금수저’ 검사로 혜택을 본 만큼 검찰 조직을 위해 봉사해야 했지만 오히려 조직을 위기에 빠뜨렸다.
우병우, 진경준, 김형준 ‘세 검사’의 가장 큰 잘못은 검찰을 ‘출세만능주의 집단’으로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공익의 대변자’와는 거리가 먼 사익 추구 집단으로 말이다. 일선 검사들은 더 이상 정의와 인권을 입에 담지 못하게 될까 두렵다.
‘살인 가습기 살균제’ 속의 폐 손상 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유사한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이 가정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항균필터에 함유된 사실이 드러났다. 싼타페와 쏘렌토, 제네시스와 티볼리 등의 일부 모델의 차량 에어컨 항균필터에도 독성물질 OIT가 함유돼 있다고 환경부가 밝혔다. 정부는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장시간 가동했을 경우 공기 중으로 OIT가 방출돼 위해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회수 권고’ 조치를 내렸지만 안이한 결정이다.
환경부는 OIT를 2014년 유독물질로 지정하고도 OIT를 함유한 항균필터에 대해서는 정부 어느 부처에서도 관리하지 않았다. 정부의 독성물질 관리에 아직도 구멍이 뚫려 있다는 얘기다. 이번에도 차량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에 쓰이는 항균필터에 유독물질인 OIT가 함유됐다는 지난달 보도가 나온 뒤에야 환경부는 부랴부랴 위해성 평가를 벌였다. 정부 공식집계만도 146명의 희생자를 낸 옥시 등의 가습기 살균제 충격이 가시지도 않았는데 환경부는 달라진 게 없다.
OIT가 검출된 항균필터는 대부분 미국의 다국적기업인 3M 제품이다. 3M사는 지난달 자사 필터에서 OIT가 검출된 뒤에도 공기 중에는 방출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가 정부의 위해성 평가가 나오자 ‘자발적 회수’를 밝혔다. 그러나 안 쓰면 그만인 가습기 살균제와 달리 가정용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 자동차 에어컨의 항균필터는 모델명 확인조차 쉽지 않다. 문제의 필터로 가정용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시판한 삼성전자 LG전자 쿠쿠 위니아 등 7개 가전제품 회사와 차량용 에어컨을 만든 현대모비스 두원 등 7개사가 회수 권고를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도 없다.
정부와 기업들은 OIT의 위험에 노출된 제품들의 정확한 판매 실태와 인체 유해성을 신속히 조사해 정직하게 공개해야 한다. 3M이 OIT 함유 항균필터를 한국에만 공급한 경위와 이 과정에서 관계 당국의 잘못은 없었는지도 규명돼야 한다. 국회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대상에 항균필터 문제도 포함해 함께 다루는 방안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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