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이강인이 전반 패널티 킥을 성공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이 U-20 월드컵 결승에서 우크라이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U-20 축구 대표팀이 16일(이하 한국시각) 폴란드 우치의 우치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에서 우크라이나에게 1-3으로 역전패했다.
한국 남자축구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결승에 진출하며 크게 선전한 한국은 우승을 향한 마지막 관문에서 우크라이나를 넘지 못하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사실 이번 결승전에서 한국은 해외 베팅 사이트와 언론 등에서 우크라이나에게 뒤질 것으로 예상됐다. 물론 예상을 뒤집는 반전의 결과를 만들진 못했지만 한국은 선제골을 기록하고 후반에도 우크라이나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등 인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비록 우승컵을 들어 올리진 못했지만 정정용호가 만들어낸 준우승은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을 결과다.
전반 2분 페널티킥 선제골 지키지 못하고 동점 허용
▲16일 오전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를 가득 메운 축구팬들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월드컵 결승 한국과 우크라이나 경기에서 한국 이강인이 첫 골을 터트리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축구 U-20 월드컵 한국과 우크라이나의 결승전 경기가 열리는 16일 새벽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시민들이 응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은 이번 대회 4강까지 6경기를 치르면서 남미팀과 2번(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아프리카팀과 2번(남아공, 세네갈) 그리고 아시아팀과 한 번(일본) 격돌했다. 4강신화를 달성했던 2002 월드컵 대표팀이 7경기 중 미국전을 제외하고 유럽팀만 6번 만난 것과는 대조적인 일정을 보낸 셈이다. 유럽팀과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포르투갈을 만난 것이 전부였는데 한국은 이번 대회 시작과 끝에서 유럽팀과 만나게 됐다.
이번 대회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과감하고도 다양한 전술로 한국을 결승으로 이끈 정정용 감독은 이날도 가장 익숙한 3-5-2 시스템을 들고 나왔다. 에콰도르와의 4강전과 비교하면 중원의 정호진(고려대)과 고재현(대구FC) 대신 김정민(FC리퍼링)과 조영욱(FC서울)이 먼저 선발 출전했다. 뛰어난 침투능력을 가진 조영욱과 빠른 스피드의 김세윤(대전 시티즌)을 먼저 투입한 공격적인 라인업이었다.
여느 때처럼 우렁차게 애국가를 부르며 경기에 나선 한국은 경기 시작 2분 만에 김세윤이 측면 돌파를 하면서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세네갈과의 8강전에서 페널티킥으로 대회 첫 골을 기록했던 '막내형' 이강인(발렌시아CF)은 이번에도 우크라이나 골키퍼를 완전히 속이는 킥으로 선제골을 기록했다. 이번 대회 6경기에서 단 3실점을 기록할 만큼 수비 조직력이 뛰어난 우크라이나이기에 초반 선제골이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이강인이 전반 패널티 킥을 성공하고 있다.ⓒ 연합뉴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릴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이강인이 전반 패널티 킥을 성공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제골을 허용한 우크라이나는 만회골을 위해 라인을 대폭 끌어 올렸지만 한국은 유기적인 협력수비를 통해 큰 위기를 허용하지 않았다. 점유율에서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밀렸지만 우크라이나는 측면으로 연결하는 패스가 번번이 밖으로 나가면서 인상적인 슈팅장면을 만들지 못했다. 결승전을 관장한 이스마일 엘파스 주심은 전반 26분, 30℃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경기를 치르는 선수들에게 물을 마실 시간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은 우크라이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전반 32분 혼전 상황에서 흘러 나온 공이 페널티 박스 안쪽으로 향하면서 한국은 우크라이나의 블라디슬라프 수프라하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동점골을 내준 한국은 전반 막판 오세훈(아산 무궁화)과 김세윤이 좋은 기회를 만들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한국은 전반 추가시간 오세훈이 왼발슈팅을 통해 우크라이나를 위협했지만 앞서가는 골을 기록하지 못한 채 1-1로 전반을 마쳤다.
충분히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젊은 태극전사들의 준우승 성과전반 2분 만에 얻은 페널티킥에 의한 선제골은 한국에게는 분명히 커다란 행운이었다. 한국은 선제골을 기록한 후에도 동점이라는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경기를 풀어가야 했지만 수비적인 운영으로 우크라이나에게 많은 공격 기회를 허용했고 결국 전반 중반 동점골을 내주고 말았다. 실제로 한국은 전반 볼점유율에서 38:62로 우크라이나에게 크게 뒤졌다(물론 이번 대회 한국은 점유율을 중시하는 축구를 하는 팀은 아니다).
정정용 감독은 후반 시작과 함께 김세윤 대신 엄원상(광주FC)를 투입하고 김현우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올리며 승부수를 걸었다. 하지만 한국은 후반 7분 공격 흐름이 끊어진 후 수비가 미처 정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에게 뒷공간을 노출하며 동점골을 기록했던 수프라하에게 역전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역전에 성공한 우크라이나는 막심 체흐와 다닐로 시칸을 차례로 투입했다.
역전을 당한 한국은 공격비중을 늘리며 동점 기회를 노렸고 후반 24분 이강인의 크로스를 이재익(강원FC)이 강력한 헤더로 연결했지만 안드리 루닌 골키퍼의 선방에 막혔다. 한국은 후반 중반 이후 일방적인 공격을 펼치며 여러 번 슈팅을 시도했지만 우크라이나의 뛰어난 수비 조직력에 막혀 동점골을 기록하지 못했다. 결국 한국은 후반 43분 헤오르히 치타이슈빌리에게 추가골을 내주며 1-3으로 우승컵을 우크라이나에게 내주고 말았다.
▲15일 오후(현지시간) 폴란드 우치 경기장에서 열린 2019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에서 한국이 두 번째 골을 허용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대표팀의 에이스이자 '막내형' 이강인(발렌시아CF)은 대회 MVP에 해당하는 골든볼을 수상했다. 이강인은 이번 대회 뛰어난 개인기와 정확한 패스, 그리고 팀의 막내임에도 선배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며 한국의 결승진출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로써 이강인은 디에고 마라도나(1979년), 리오넬 메시(이상 아르헨티나, 2005년), 폴 포그바(프랑스, 2013년) 같은 슈퍼스타들이 받았던 U-20 월드컵 골든볼의 영광을 이어가게 됐다.
흔히 큰 국제대회를 앞둔 감독과 선수들은 "국민들의 성원을 알고 있기에 경기장에서 쓰러져 죽는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는 식의 비장한 각오를 전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 U-20 대표팀은 한국 남자축구 역대 최초의 FIFA 주관대회 결승이라는 큰 경기를 앞두고도 여유가 넘쳤다. 필요 이상의 부담으로 경기를 그르치기 보다는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즐기는 긍정적인 마인드가 바로 한국 축구를 결승으로 이끈 비결이었다.
물론 결승 한 경기만 놓고 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았지만 한국은 이번 대회 내내 뛰어난 조직력과 '즐기는 축구'를 통해 수차례 명승부를 연출하며 축구팬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안겼다. 물론 지금의 U-20 대표팀 선수들 중에서 몇 명이나 한국축구의 기둥으로 성장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2019년 6월 폴란드에서 21명의 젊은 태극전사들이 보여준 뛰어난 경기력과 투지는 한국 축구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