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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도 인정했다 "최강희 김신욱, 상하이 선화 1년만에 극적 반전시켰다"

기사입력 2019-12-07 07:11:00

 

축구

토트넘의 무리뉴 연봉 230억원, 클롭·포체티노의 2배+TOP 2

기사입력 2019-11-21 13:02:28

김밥 먹고 맨땅서 헤딩 연습…‘꼴도청’이 왕중왕 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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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오디세이] 축구 FA컵 결승 진출 코레일 FC

지난 6일 대전 한밭운동장에서 열린 2019 FA컵 결승 1차전에서 대전 코레일 장원석(왼쪽)과 수원 삼성 타가트가 볼 다툼을 하고 있다. 두 팀은 득점 없이 비겼다. [뉴스1]

지난 6일 대전 한밭운동장에서 열린 2019 FA컵 결승 1차전에서 대전 코레일 장원석(왼쪽)과 수원 삼성 타가트가 볼 다툼을 하고 있다. 두 팀은 득점 없이 비겼다. [뉴스1]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인 축구 클럽은 어디일까. 1943년에 창설한 조선철도국 축구단이라는 게 정설이다. 이 팀은 광복 후 철도청-한국철도로 이름이 바뀌면서 명맥을 이어 왔다. 현재 명칭은 대전 코레일 FC다.
 

FA컵 정상 도전
3부리그 실업팀 사상 첫 우승 노려
프로팀 수원 삼성과 내일 끝장 승부

이현창 전 감독
패배의식에 찌든 꼴찌 팀 확 바꿔
“힘든 걸 해낸 선수들 보면 눈물 나”

김승희 현 감독
구장 없어 한강 둔치 농구장서 훈련
“축구 하면서 행복하고 성공했으면”

대전 코레일은 2019 FA(축구협회)컵 결승에 올라 있다. FA컵은 프로-아마추어-대학 팀까지 강호들이 모두 나와 매 경기 토너먼트로 ‘한국축구 왕중왕’을 가리는 대회다. 코레일의 상대는 프로축구 K1(1부리그) 수원 삼성이다.
 
코레일은 실업축구리그를 계승한 내셔널리그(3부리그) 소속이다. 코레일은 32강에서 K1 선두 울산 현대를 꺾었고, 8강(강원 FC), 준결승(상주 상무)에서도 K1 팀을 잇달아 무너뜨렸다. 홈앤드어웨이로 치러지는 결승전 1차전(11월 6일·대전 한밭종합운동장)은 0-0으로 끝났다.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코레일이 골을 넣을 경우 비기기만 해도 우승한다. 원정 골에 가중치를 주는 규정 때문이다. FA컵 사상 첫 ‘3부리그 팀 우승’이라는 종착역을 향해 코레일은 달린다.
 
코레일이 원래 강팀은 아니었다. 90년대 초반까지 별명이 ‘꼴도청’이었다. 대회 나가면 꼴찌를 도맡고, 하도 골을 많이 먹어서 붙은 오명(汚名)이었다. 무기력과 패배의식에 절어 있던 팀이 프로들도 겁을 내는 강호로 변신한 스토리의 주인공은 이현창(71) 전 감독과 김승희(51) 현 감독이다. 두 사람을 만나러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코레일 본사가 있는 대전으로 내려갔다.
 
조기축구 팀이 “한 게임 합시다” 도전
 
2000년 한국철도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든 이현창 전 감독(오른쪽)과 지난해 내셔널선수권 우승 트로피를 든 김승희 감독. 김성태 객원기자

2000년 한국철도의 첫 우승 트로피를 든 이현창 전 감독(오른쪽)과 지난해 내셔널선수권 우승 트로피를 든 김승희 감독. 김성태 객원기자

대전시 가양동에 코레일 선수단 숙소가 있다. 깨끗하고 아담한 5층 건물을 선수단이 통째로 쓴다. 트로피와 상패로 벽면을 장식한 1층 로비에서 이현창 전 감독과 반갑게 인사했다. 그와의 첫 만남은 20년 전인 1999년. 당시 한국철도 선수단 숙소는 경기도 안양시 인덕원역 근처 허름한 연립주택이었다. 장마철엔 비가 새고, 냉난방도 제대로 안 되는 곳이었다. 식당도 조리사도 없어서 이 감독이 직접 장을 봐서 요리를 했고, 부인이 반찬을 만들어 날랐다.
 
이 전 감독은 “선수들을 보면 다 자식 같고, 고맙고 기특해서 눈물이 납니다. 내셔널리그에서 프로팀 다 꺾고 결승까지 온 걸 ‘어쩌다 운이 좋아서’ 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우리는 알아요. 얼마나 힘든 걸 해냈는지 말이죠”라며 환하게 웃었다. 94년 감독이 된 그는 팀을 정상에 올려놓는 동안 몸이 많이 상했다. 위암 수술 두 차례, 갑상샘암 수술도 한 차례 받았다.
 
90년 입단한 김승희 감독은 주장과 코치를 거쳐 2007년 지휘봉을 넘겨받았다. 그는 “선생님 병은 100% 화병입니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모기업이 관심 안 갖고 방치했던 팀이라 남모르는 마음고생이 심했어요. 95년부터 99년까지 7번 결승에 올랐는데 한 번도 우승을 못했어요. 매번 경기 막판에 석연찮은 판정으로 지곤 했죠. 오죽하면 제가 ‘감독님, 이런 식이면 우린 영원히 우승 못할 겁니다’라며 펑펑 운 적도 있어요”라고 회상했다.
 
경기도 이천에서 축구를 한 이 감독은 고교 때 무릎을 크게 다쳐 대학에도 가지 못했다. 어렵사리 철도청에 들어가 선수 생활을 이어갔고, 은퇴 후에는 서울역 역무원, 노동조합 간부를 맡았다. 40대 중반에 감독으로 돌아온 철도청은 여전히 답이 없는 팀이었다. 실패했거나 낙오했거나 부상 중인 선수들이 모여 있었다. 감독 이전에 철도 선배로서 다가갔지만 쉽지 않았다.
 
“한번은 강릉에 합숙훈련을 갔는데 밤에 우리 애들이 숙소 담을 넘고 있더라고요. 방을 뒤졌더니 전부 나가고 김승희 혼자 책을 보고 있어요. 승희를 앞세워 남대천변 포장마차를 덮쳤는데 거기 다 모여 있는 겁니다. ‘축구 하기 싫은 놈들은 다 나가라’고 불호령을 내렸죠. 고참들이 대거 빠져나간 뒤 4년차였던 승희를 불러서 ‘우리도 좋은 팀 만들어 보자. 네가 도와줘야겠다’면서 주장을 맡겼어요. 그 뒤로 분위기가 잡히기 시작했죠.”
 
김 감독은 “자체 운동장이 없어 한강 둔치에서 연습을 많이 했어요. 조기축구 팀이 게임을 하고 있으면 그 옆 농구장에서 5대2 패스게임을 하다가 하프타임에 잠시 들어가 발을 맞추곤 했죠. 조기회한테서 ‘볼 좀 차는 것 같은데 한 게임 할까요’라고 도전을 받기도 했어요(웃음). 구단 버스가 없으니 강원도에서 게임을 하면 승용차 가진 사람이 지역별로 선수들을 태우고 출발합니다. 경부고속도로 만남의광장에 모여 집에서 싸준 김밥에 휴게소 라면 먹고 경기하러 갔죠”라며 웃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선수들은 이 감독의 ‘큰형님 리더십’ 아래 똘똘 뭉쳤다. 큰 실패를 겪고 죽어 있던 선수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김찬석은 황선홍·유상철을 키운 정종덕 감독이 건국대로 스카우트한 대형 공격수였다. 그는 프로에서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해 축구를 그만뒀다가 한국철도에 들어왔다. 트라우마로 인해 소심해진 그를 이 감독은 “부상 부위가 한번 더 부러질 각오로 뛰어라”고 다그쳤다. 김찬석은 팀의 주득점원으로 거듭났고, 현재 수석코치를 맡고 있다.
 
‘2002 월드컵 히어로’ 이을용도 한국철도에서 부활했다. 강릉상고(현 강릉제일고) 시절 특출났던 그는 석연찮은 이유로 대학 진학을 못했다. 낙담한 그는 충북 제천으로 내려가 나이트클럽에서 일했다. ‘무장공비’라는 별명으로 맥주병을 나르던 이을용은 이 감독의 설득으로 다시 축구화 끈을 맸고, 시련의 세월을 이겨냈다.
 
나이트클럽서 일하던 이을용 부활시켜
 
대전 코레일 이현창 전 감독(오른쪽)과 김승희 현 감독이 2000년 한국철도의 첫 우승 기념공을 앞에 놓고 힘겨웠던 지난 시절을 얘기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대전 코레일 이현창 전 감독(오른쪽)과 김승희 현 감독이 2000년 한국철도의 첫 우승 기념공을 앞에 놓고 힘겨웠던 지난 시절을 얘기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이현창의 아이들’이 첫 우승을 한 건 2000년 6월 춘계 실업연맹전이었다. 11개 팀이 풀리그를 벌인 이 대회에서 한국철도는 국가대표급 진용의 상무, 국민은행 등을 맞아 7승3무, 무패 성적으로 챔피언이 됐다. 모기업에서 축구단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구단 버스가 생겼고, 비 새던 숙소도 리모델링했다. 그 후 전국체전(2000, 2001, 2011년) 우승, 내셔널리그(2005, 2012년) 우승 등 빛나는 업적을 쌓았다. 축구단에 기여한 고참 선수들은 정규직으로 전환돼 코치가 되거나 본사로 발령받았다. 철도 축구단은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팀이 됐다. 이현창 감독의 꿈이 이뤄진 것이다.
 
이 전 감독은 “이 친구들 만나 행복했죠. 내가 대학을 제대로 나왔나, 국가대표를 했나…. 그래도 여기서 받아줘 감독 맡고, 이 친구들과 함께 엄청난 걸 해냈으니까요. 10년 넘게 세 사람(김 감독, 김찬석·이광진 코치)이 매달 각자 10만원씩 모아서 보내줍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김 감독이 지도자 교육에서 들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저 감독은 아무것도 한 게 없어. 우리 스스로 해낸 거야’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위대한 지도자라고 합니다. 군림하고 끌고가는 게 아니라, 선수가 스스로 해냈다는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거죠. 선생님의 그런 경지에 저도 도달하고 싶습니다.”
 
코레일 선수단에는 늘 활기가 넘친다. 코치들이 “우리 땐 고속버스에 이불 싣고 합숙훈련 가서 20명이 한방에서 잤다”고 하면 선수들은 “에이, 설마” 하고 웃는다. 그렇지만 선배들이 고통 속에서 일궈놓은 탄탄한 전통을 잇겠다는 각오는 단단하다.
 
인터뷰를 마치고 한밭종합운동장에서 사진을 찍었다. 2000년 첫 우승 트로피와 최근(2018 내셔널선수권) 우승 트로피를 앞에 놓았다. 스승 감독이 말했다. “FA컵 우승하면 좋겠지만 너무 결과에 신경 쓰지 말아라. 건강이 제일 중요한 거야.” 제자 감독이 말을 받았다. “우리 선수들이 성공하면 좋겠지만 축구를 하면서 행복했으면 더 좋겠습니다. 선생님도 건강하게 저희와 오래 함께해 주세요.”
 

 

(이강의 영재센터 31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극찬한 청주FCK 이재현, 진짜 볼 잘찬다~!

 

(이강의 영재센터 26화) 처음으로 소름 돋았습니다. 전 오늘부터 이 친구 팬입니다.

(11 years old ‘Korean Neymar’ Kim Yegeon)

U-20 형들 이어… 월드컵 베이비들, 반란의 8강

입력 2019.11.07 03:00

2002·2003년생 U-17 대표팀, 유명 감독도 스타 선수도 없이 역대 3번째 월드컵 8강 진출
'유소년 전담' 김정수 감독 지휘… 상대 쥐고 흔드는 축구 펼쳐
11일 멕시코·일본전 승자와 격돌… 성인 대표팀 이어 4강 신화 도전

2002년 여름은 한국 축구에 길이 빛날 계절로 남아 있다. 성인 월드컵 4강 신화가 창조됐고, 한국 축구 역사가 바뀌었다.

뜨거웠던 그때를 전후로 태어난 2002, 2003년생 소년 21명이 세계무대에서 대형 사고를 쳤다. 한국 U-17(17세 이하) 축구대표팀은 6일 새벽 열린 브라질 FIFA U-17 월드컵 16강전에서 앙골라를 1대0으로 꺾고 8강에 올랐다. 1987년 서정원·신태용 세대, 2009년 손흥민·김진수 세대 이후 사상 세 번째 8강 진출이자 역대 최고 성적 타이기록이다.

김정수 U-17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6일(한국 시각) 앙골라전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김정수 U-17 남자축구 대표팀 감독이 6일(한국 시각) 앙골라전에서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톱 공격수 최민서가 전반 33분 역동적인 발리슛으로 선제골을 넣었고, 주장인 골키퍼 신송훈이 후반 막판 상대 소나기슛을 모두 막아냈다. 아프리카 3위로 올라온 복병 앙골라를 상대로 공수에서 짜임새 있는 경기를 했다.

유명 감독도, 스타 선수도 없는 팀이 이뤄낸 묵묵한 반란이다. 상황이 바뀌길 기다리기보단 먼저 변수를 만들어내는 능동적인 축구가 국제무대에서 통했다.

전에 없던 '자기 주도형 축구'

대한축구협회 김판곤 부회장은 이번 17세 대표팀을 두고 "국민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능동적인 축구를 하는 팀"이라고 표현했다. 상대를 쥐고 흔들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있고 자부심을 가질 만한 팀이란 얘기다.

실제로 대표팀은 경기 시작하자마자 전 선수가 라인을 올려 세우고 상대를 압박한다. 공수 전환 속도가 매우 빨라 대부분 주도권을 갖는다. 16강전까지 4경기를 치르는 동안 6골을 넣었는데, 이 중 프랑스전(1대3 패)을 제외하고 5골을 전반에 터뜨렸다. 하도 일찍부터 뛰어다녀 후반 되면 체력이 일찍 떨어진다는 약점이 있지만,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잘 버텨내고 있다.

그동안 한국 축구에서 보기 힘들었던 형태의 축구다. 한국은 연령대를 막론하고 국제 대회에만 나가면 '전반에 버티고 후반에 승부 보기' 전략을 선호했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처지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올해 U-17 대표팀은 이 관습을 거부했다.

선수들도 자기 주도 학습이 익숙하다. 16강전 전날 선수들은 마사지실에서 자율적으로 비디오 분석 미팅을 열어 상대 에이스 봉쇄법을 토론했다. 6일 경기에서 무실점 승리한 원동력이었다. 2002 멤버 이을용 제주 코치의 아들로 아버지와 포지션이 같은 좌측 수비수 이태석은 "동료들과 얘기한 뒤 왼발이 강한 지투를 오른발만 쓰도록 유인했던 게 잘 통했다"고 했다.

준비된 '무명' 김정수 감독의 반란

리틀 태극전사들의 각오 

 

리틀 태극전사들의 각오 - 위 사진은 16강전 결승골을 넣은 최민서의 각오. '팀 성적 4강 이상'이란 문구 아래 '4강 50만원, 우승 500만원(엄마가 보내준대)'이란 글도 있다. 오재혁은 '개인보다는 팀으로 뛰기' 등 문구를 썼고 한국이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그림을 그렸다(아래 사진). /KFA 인스타그램
별다른 기대를 받지 못했던 팀을 '미운 오리'에서 백조로 탈바꿈시킨 일등 공신은 김정수 감독이다. 그는 1997년 프로축구 대전에 입단해 2005년 부천(현 제주)에서 은퇴했다. 선수로선 큰 족적을 남기진 못했다.

이후 코치 생활을 시작해 2014년 협회 유소년 전담 지도자가 됐다. 2015 U-17 월드컵 등에 코치로 참가한 그는 '선수비 후역습'으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내기 쉽지 않다고 판단해 이번 대회를 앞두고 '공격적인 수비'를 다듬는 데 주력했다. '공격이 최선의 수비'라는 쉽지 않은 금언을 이행하며 8강 성적을 냈다.

그는 선수들 심리 관리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지도자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에게 A4 용지에 목표와 각오를 적고, 상상하는 모습 등을 그려 넣도록 했다. 16강전에서 골을 넣은 최민서는 '항상 생각하고 빠르게 판단하자' '엄마표 골 수당 있다(10만원)' 등 문구를 썼다. 대회 기간 21명 전원이 방문 에 붙여놓고 보고 있다. 김 감독은 지난해 월드컵 예선 격인 AFC 챔피언십에선 선수 부모들의 응원 메시지를 받아 영상으로 틀어줬다. 선수들이 울고 웃으며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대표팀은 오는 11일 오전 멕시코-일본전 승자와 8강전을 치른다. 김 감독은 "누구와 붙어도 상관없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끝까지 도전하고 모험하겠다"고 말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1/07/2019110700103.html

FIFA 통계, 세계인구 4% '축구로 밥벌이'

입력 2007.06.01 12:12


 공 하나로 전세계를 지배하는 '축구 제국'의 백서가 나왔다.


 2억7000만명이 축구와 연관된 일에 종사하고, FIFA(국제축구연맹) 회원국은 208개로 늘어났다. FIFA은 1일(한국시각)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제57회 연차총회 후 이같은 통계 자료를 발표했다.


 이 자료(2006년 전반기 기준)에 따르면 전세계 축구 종사자는 2억7000만명. 전세계 인구의 4%가 축구와 관계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2억7000명 가운데 선수가 2억6500만명이고, 500만명은 심판과 코치, 각국 축구협회와 프로연맹 관계자다. 2억7000만명은 러시아(약 1억5000만명, 이하 2006년 기준) 인구보다 많고, 서유럽의 핵심국가인 독일(8200만명)과 프랑스(약 6100만명), 이탈리아(약 6000만명), 영국(약 6100만명) 인구를 모두 합친 것과 비슷하다.


 등록 선수는 꾸준히 늘었다. 지난 2001년 2억4200만명에 비해 10%, 2000년 이후 3800만명이 증가했다.


 지역별로는 AFC(아시아연맹) 소속 축구관계자가 8500만명으로 가장 많았다. 세계 축구를 리드하고 있는 UEFA(유럽연맹)가 6200만명으로 뒤를 이었고, CAF(아프리카연맹)가 4600만명이었다. CONCACAF(북중미ㆍ카리브해연맹)가 4300만명, CONMEBOL(남미연맹)이 2700만명, OFC(오세아니아연맹)가 50만명으로 뒤를 있다.


 또 전세계 축구클럽은 모두 30만1000개였고, 2000년 조사 때와 비슷했다. 또 전세계 축구팀의 총 수는 2000년에 비해 20만개 증가한 170만개였다.


 이번 총회에선 제프 블래터 회장이 단독출마해 3선에 성공했다. 한편, 구 유고연방의 6개 공화국 중 하나였던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에서 분리, FIFA 정식 회원국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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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6/01/2007060100530.html

'이래서 세계 최강'…독일축구협회 등록선수 700만명 돌파

한국은 1천개 팀에 등록선수 3만여명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차지하고 기뻐하는 독일 선수들[AP=연합뉴스 자료사진]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 차지하고 기뻐하는 독일 선수들[AP=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최송아 기자 =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 우승팀이자 최근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도 우승한 독일이 '축구 인구'에서도 강국의 면모를 드러냈다.

독일축구협회가 4일(현지시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21개 지방 협회에 등록한 선수 수는 총 704만3천964명이다.

이는 지난해보다 7만4천493명이 늘어난 것으로, 전체 인원이 700만명을 넘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독일축구협회는 밝혔다.

남성 성인이 407만2천513명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15∼18세 유소년이 52만1천602명, 14세 이하가 135만4천603명이었다. 18세 이하 유소년만 187만명을 넘는다.

 

여성 성인은 77만2천837명, 16세 이하 유소녀는 32만2천409명으로 집계됐다.

가입 클럽 수는 2만4천958개, 팀은 15만7천313개였다.

독일은 국가대표팀이 이달 3일 막을 내린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 월드컵 우승 멤버 대신 신예 선수를 대거 내세우고도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7월 FIFA 랭킹에서 1위 복귀가 유력하다.

21세 이하(U-21) 대표팀도 지난주 유럽축구연맹(UEFA) U-21 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올랐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여자 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했다.

한편, 대한축구협회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현황을 보면 지난해 11월 기준 등록선수는 3만2천676명, 팀은 1천282개다.

이는 각 학교·클럽, K리그·실업·대학축구·풋살 등 전문 선수 위주의 통계다.

대한축구협회 생활축구본부엔 2천861개 클럽이 등록돼 있다.

song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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