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노선의 계승·관리형인가? 아니면 해체·재구성의 유형인가? 지금 출마를 생각하는 대선 후보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정신과 자신의 DNA가 일치하지 않으면 괜히 가족들만 고생시키기 때문이다. 두 유형 중 우열은 없다. 다만 지금 시대의 물결은 후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재차 확인되었지만 다수 시민들은 기득권을 견제하고 공정한 문제해결을 통한 재구성을 원한다.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경선이라는 험난한 벽을 넘어야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만 보면 이재명과 윤석열이 이 시대정신 퍼즐의 일부 조각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재명은 김대중 정부의 레임덕 시기에 전환적 리더십으로 재구성된 질서를 탄생시킨 노무현 시즌 II가 될 수 있을까? 이재명은 기득권 부수기와 문제해결 능력이란 점에서 문재인 행정부보다 낫다. 하지만 그는 그간 당 내부와 본선 민심 간 큰 격차의 곤혹스러운 구조 때문에 기득권 타파의 브랜드가 훼손 중이다. 그럼 윤석열은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의 기대처럼 혜성처럼 무대를 평정한 한국의 에마뉘엘 마크롱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그는 인생의 쓴맛을 겪었기에 풍선처럼 부푼 과잉 자아가 없다는 점에서 기존 제3의 후보들과 다르다. 하지만 경제사기범 수사의 귀재라는 것과 교착된 경제구조의 대안을 만들어가는 건 다른 차원의 업이다.
만약 그들이 천신만고 끝에 최종 레이스에 도달한다면 누가 더 기득권에 맞서 공정과 문제해결자의 상징인지를 놓고 흥미로운 진검 승부를 벌일 것이다. 다만 기존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 패러다임으로 이해하기 힘든 3가지 축의 미래형 이슈에서 그들에게 문제해결력이 있을지 난 아직은 잘 모르겠다. 기후위기, 양극화, 미·중 신냉전 말이다. 대한민국의 향후 30년 운명은 이 3가지에서 주로 결정된다.
기후위기. 아직은 두 인물과 어울리지 않는 느낌의 단어다. 과연 앞으로 이재명은 안타깝게도 기후위기에 전혀 관심이 없는 채 출발했던 문재인 행정부와 얼마나 다를까? 몇 년 남지 않은 2030년까지 현재의 기후악당 국가에서 기후선도국가로의 고통스러운 전환 로드맵을 가지고 있을까? 윤석열은 한국 대기업들이 뒤늦게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소동으로 난리가 난 신기후 체제에 얼마나 관심이 있을까? 과거 미국 프랭클린(진보)과 시어도어(보수) 루스벨트 대통령의 선구적인 환경 보호 노력처럼 이재명과 윤석열의 기후위기와 생명위기 극복 경쟁을 볼 수는 없을까?
양극화. 이 화두에서는 기본소득, 기본주택, 기본대출이라는 브랜드로 이재명이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기승전 기본’의 프레임은 근사한 슬로건이지만 종합적 경제 재구성의 일부 조각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문제해결형 사법 패러다임보다는 강압수사에 더 유능한 윤석열과 양극화란 단어의 조합은 매우 어색하다. 단지 기본 시리즈 대 시장주의의 이분법 경쟁 대신 양극화, 기후위기, 국제질서 격변이 상호 얽힌 고차방정식 해법 경쟁을 볼 수는 없을까?
미·중 신냉전은 인류가 처음 겪는 뉴노멀이다. 이재명은 이 새로운 도전 과제 앞에서 문재인 행정부의 기존 전략적 모호성과 한·일관계 해법의 갈팡질팡에서 얼마나 진화한 노선을 가지고 있는가? 윤석열은 미국이 요구하는 건 그냥 수용하는 기존 보수 노선과 얼마나 다를 수 있나? 최근 그의 절친한 친구가 윤석열의 브랜드로 제안한 ‘애국적 국제주의’ 노선은 어떤 실질적 내용을 가지는가? 윤석열과 이재명은 이 애국적 국제주의 대 다원주의적 국제주의(자유주의 민주주의에 근거한 다문명의 공존 질서)의 제3의 길 논쟁을 본격 전개하면 어떨까?
물론 여야에는 지금 앞서가는 두 인물 말고도 시대정신에 부합하려고 노력하는 걸출한 인물들이 많다. 이들은 기후, 양극화, 미·중 신냉전 이슈에서 이재명과 윤석열을 넘어서는 비전과 실행력으로 경쟁해야 한다. 누가 나오든지 지금은 이들 모든 후보들에게 회초리를 들어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이들을 견제하고 진화시키지 않으면 내년 청와대 입성 후에는 더 어렵기 때문이다. 다음 행정부가 최대한 ‘교만과 어설픔’(망치부인의 성찰적 진단)의 한국정치 고질병의 수렁으로 또다시 빠져들지 않으려면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든 걸 중앙 권력 게임으로 빨아들이는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특성상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부터 슬기로운 1년 생활에 한국사회의 모든 지혜를 모아야 한다.
촛불정부의 숙제는 한시적 촛불연합을 안정적 다수파 연합으로 전환하는 일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1번 갈등’ 자리에 다수의 관심사와 무관한 검찰개혁을 앉혔다. 주권자는 불안을 느꼈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가 당사 개표상황실에서 꽃다발을 들어 올렸다.ⓒ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총선 압승 이후 불과 1년 만에 4·7 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민주당 후보들은 2020년 서울 지역구 49곳을 합쳐 305만 표를 얻었다. 1년 만에 민주당 박영선 후보가 얻은 표는 190만 표로 떨어졌다. 이 정도면 대붕괴다. 집권세력은 어디서 어떻게 무너졌나.
널리 퍼진 오해부터 보자. 2020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으므로 총선 이전에 제시된 문제들, 그러니까 최저임금 정책이나 조국 사태 등에서는 국민들이 민주당 노선을 승인했다는 분석이 있다. 그러므로 이번 보궐선거의 심판은 2020년 4월 총선 이후에 벌어진 일들에서 찾아야 한다는 논리다. 그래서 주로 지목된 게 부동산 정책이다. 부동산 정책 때문에 패배했다는 분석은 다시 한 층 내려가면,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졌다는 함의를 깔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석은 여론의 미묘한 장기 추이를 놓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국선거는 두 차례 있었다.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이다. 둘 다 집권 여당이 압승했다. 그런데 두 압승 직후에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임기 전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대하강기’를 기록했다. 2018년 지방선거 이후에는 79%로 정점을 찍은 국정수행 지지도가 12주에 걸쳐 49%까지, 무려 30%포인트가 훅 빠진다(〈그림 1〉 참조). 2020년 총선 직후에도 쌍둥이 같은 추세가 나타난다. 총선 3주 후에 71%로 정점을 찍은 국정수행 지지도는 이후 10주에 걸쳐 46%로 미끄러진다(〈그림 2〉 참조). 낙폭은 25%포인트다.
매우 이례적이다. 전국선거에서 압승한 정권은 여론의 ‘승자 편승 효과’ 덕분에 강한 지지층 결집을 한동안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놀라운 압승 직후에 어김없이 놀라운 대하강기를 겪었다. 2018년 1차 대하강기는 최저임금 논란이, 2020년 2차 대하강기는 부동산 논란이 원인으로 지목되곤 했다. 그러나 이런 이례적인 구조는 개별 이슈를 넘어서는 어떤 징후다.
4월7일 박형준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가 당선이 확실시되자 배우자와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중도적인 유권자들에게 두 차례 전국선거는 야당 심판 선거 속성이 강했다. 여당에 불만이 있어도 보수 야당은 도저히 찍기 어렵다는 기류가 있었다. 그런데 이 결과를 정부·여당이 ‘압도적 지지와 전면적 승인’으로 해석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중도층이 크게 관심을 갖지 않거나 이념적 이슈로 간주하는 의제들(검찰개혁 이슈가 대체로 그런 평가를 받아왔다)까지 승인받은 듯이 굴면, 이들 유권자는 지지 철회로 경고신호를 보낸다.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 이후 이런 상황이 되풀이해 일어났다. 최저임금과 부동산은 그 자체로 민심 이반의 원인이기도 하지만, 경고신호를 내기 위해 불려 나온 이슈라는 속성도 동시에 갖고 있다. 이렇게 관점을 바꿔보면, 2020년 4월 총선 이전의 통치가 총선으로 면죄부를 받았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불만스러운 지지자’는 두 차례나 회신을 받지 못했다. 불만이 해소되지 않으면 그대로 누적된다.
그렇다면 어떤 불만인가? 문재인 정부의 기본 성격은 ‘촛불정부’였다. 2016년 촛불집회는 대단히 폭발적인 정치행동이었고, 국민의 80%에 해당하는 이례적인 규모가 동의했다. 이 80%는 고스란히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지지율로 이어졌다. 여기서 문재인 정부의 중요한 본질이 나온다. 국민 80%의 지지율로 출범한 정부는 속성상 연합정부일 수밖에 없다. ‘80%가 동의하는 단일노선’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꼭 야당과의 연합을 뜻하지는 않는다. 계층과 처지가 서로 다른 ‘80%’가 공유할 만한 ‘연합 의제’를 어떻게 만들어내고 유지할 수 있느냐. 이것이 문재인 정부가 출발부터 받아든 숙제였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을 선택했다. 어떤 의미로는 납득이 가는 노선이었다. 광활한 80%를 묶어주는 끈은 촛불집회 지지 하나밖에 없어 보였고, 박근혜 정부 적폐 청산은 ‘연합 의제’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용어의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 야당 전체를 적폐 세력으로 몰아갔고, ‘검찰 적폐’ ‘언론 적폐’ 등 대상이 전방위로 확장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내부정보 투기 사건이 불거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적폐 청산”을 외쳤다. 이 장면은 ‘적폐 청산’이 사실상 모든 통치행위를 대체하는 용어로 올라섰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종북의 길 따라간 적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적폐’는 박근혜 정부 시절 ‘종북’이 갔던 길을 따라갔다. 둘 다 최초에는 통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키워드였고, 둘 다 점차 의미의 인플레이션을 겪었으며, 둘 다 결국에는 지나치게 의미가 확장된 나머지 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인플레이션은 적폐 청산을 ‘연합 의제’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종북’이 그랬던 것처럼, ‘적폐’도 좁은 범위에서 제한적으로 휘두를 때만 다수가 동의하는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전방위 적폐 청산은 강성 지지층만 남기고 촛불연합 구성원 대다수를 소외시켰다.
‘80% 촛불연합’의 일원이지만 강성 지지층은 아닌 온건·중도층 여론은 정권 중반기부터 피로감을 호소했다. 적폐 청산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민생과 사회경제 이슈의 우선순위가 계속 밀린다는 데 불만을 표했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도 여러 여론조사에서, 적폐 청산 이슈를 앞세우면 총선이 위태롭다는 경고등이 켜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2020년 총선은 정부·여당에 놀라운 기회를 열어줬다. 유권자들은 총선 성적 기준 180석(민주당+비례위성정당)을 집권세력에 몰아줬다.
적폐 인플레이션이 촛불연합을 흔들고 있었으되, 한동안 촛불연합 붕괴를 막아준 요소는 두 가지였다. 첫째, 선거를 앞두고 정부가 통치 성과로 시의적절하게 국민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2018년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남북관계의 극적인 개선이 있었고, 2020년 총선을 앞두고는 코로나19 대응 성공이 있었다. 둘째, 보수 지지 블록이 구조적으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40~50% 선의 투표연합을 꾸준히 유지하던 한국 보수는 2016년 4월 총선(촛불집회 이전이다)부터 네 차례 전국선거에서 30%대 득표력으로 내려앉았다. 이 두 요인 덕분에, 정부·여당은 임기 중 두 차례 전국선거에서 압승했다. 그리고 이 두 요인에도 불구하고, 압승 직후 ‘불만스러운 지지자’의 급격한 지지 철회를 두 차례 모두 겪었다. 그리고 이 불만을 억누르는 중요한 뚜껑이었던 통치 성과가 뒷걸음질 치자, 누적된 불만은 촛불연합을 해체해버릴 파괴력으로 폭발했다. 그게 2021년 보궐선거였다.
적폐 청산이냐 여야 협치냐. 돌파냐 통합이냐. 이 양자택일의 질문이 집권세력의 노선을 크게 제약했다. 탄핵된 정부를 만들었던 보수 야당을 협치 대상으로 곧바로 받아들이는 건 촛불정부를 내건 문재인 정부에게 쉬운 선택이 아니었다. 여야 협치가 아니라면 적폐 청산 노선 말고는 없어 보였다. 돌파는 촛불정부의 숙명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양자택일을 벗어나는 제3의 길은 임기 초부터 꾸준히 논의됐다. 국민 다수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경제 개혁 프로그램을 가동하여, 한시적 촛불연합을 안정적 다수파 연합으로 전환하는 길이었다.
3월29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7차 공정사회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연합뉴스
사실 이 노선은 제3의 길이라고 부르기도 어렵다.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으로 다수파를 엮어내는 길은 가장 고전적인 의미에서 ‘정치’라고 불리는 일 그 자체다. 20세기 미국의 정치학자 E. E. 샤츠슈나이더가 “정치란 사회갈등을 폭 넓게 조직하고 동원하고 통합하는 일”이라고 썼을 때, 그가 의도한 게 바로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으로 다수파를 엮어내는 일’이다. 그러니 ‘적폐 청산이냐 여야 협치냐’라는 양자택일이 있는 게 아니었다. 적폐 청산이냐, 여야 협치냐, 정치냐. 이 삼자택일이 있었다. 그리고 고전적인 의미에서 정치가 마치 선택지에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버렸다. 대표적 사회경제 프로그램인 최저임금 인상이 좌초한 후로, 문재인 정부는 ‘1번 갈등’ 자리에 먹고사는 문제를 배치할 역량을 소진한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맥락에서 2020년 봄은 문재인 정부에게 주어진 두 번째 기회이자, 2017년 집권 초기보다도 더 활짝 열린 기회의 창이었다. 코로나19 유행으로 공동체가 재난에 직면했다. 재난기는 대단히 압축적인 정치의 공간이기도 하다. 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한다는 압력이 평시와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하다. 그래서 평시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새로운 사회계약이 재난기에는 가능할 수 있다. 집권 4년 차에 이런 기회를 받는 정권은 여간해서는 없다.
정치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작동할 때, 재난은 불평등을 줄이고 공동체를 복원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위기에 등장한 ‘한국판 뉴딜’의 취지도 이것이었다. 지난해 6월9일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을 반드시 깨겠습니다. 위기를 불평등을 줄이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한국판 뉴딜의 궁극적인 목표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말은 정확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었으나, 이후 현실은 반대 방향으로 전개됐다. 지난해 연말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이후 소득격차 확대와 대·중소기업 생산성 격차 확대가 동시에 일어났다고 분석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이 폭등하면서 자산 보유 계층은 재난기에 오히려 부를 불렸다. 영세 자영업자와 불안정노동자는 영업제한 조치와 경기후퇴의 직격탄을 맞았다. 이 대비가 하도 선명하고 인상적이어서, 재난기의 시민들은 격차 확대를 사실상 실시간으로 체감했다.
반년이 지나서 대통령은 “뼈아프다”는 반성을 내놓았다. 지난해 12월14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 “정부의 방역지침에 따라 영업이 제한 또는 금지되는 경우 매출 급감에 임대료 부담까지 짊어지는 것이 공정한지에 대한 물음이 매우 뼈아프게 들립니다. 모두가 고통을 분담해야 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약자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통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정부의 책임과 역할을 높여나갈 방안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6월의 정확한 문제의식은 반년 동안 여전히 문제의식에 머물렀다. 정치를 어느 방향으로 작동시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려면 사회경제적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 코로나19 재난기는 그 프로그램의 부재를 극적으로 드러냈다.
3월31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이 국회에서 연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 뒤에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희소한 자원을 낭비한 사건
보통의 유권자들이 보기에 정부·여당에 우선순위 높은 과제는 따로 있었다. 통치는 엘리트 내부의 관심사로 비치는 검찰 이슈에 집중됐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의 대립을 극한으로 끌고 갔고, 문재인 대통령도 이 흐름에 사실상 동조했다. 문 대통령은 추미애 장관이 올린 윤석열 총장 징계안을 재가했다가, 법원이 징계 효력을 정지하면서 사과 메시지를 내야 했다. 적폐 청산 노선은 거의 희극적인 변형을 거쳐 고립됐고, 이 시간 동안 작동했어야 할 재난기 정치는 실종됐다. 촛불연합에서 강성 지지층을 제외한 광범위한 이탈층이 발생했다. 이는 ‘윤석열 현상’의 토양이 됐다.
이것은 정치인들이 보통 “이슈 관리에 실패했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문제이지만, 실제 벌어진 일은 그보다 훨씬 심대하다. 앞서 만난 샤츠슈나이더로 돌아가보자. 빠르게 고전이 된 그의 책 〈절반의 인민주권〉에서 가장 유명한 표현이 ‘갈등의 전국화’다. 정치란 인간 사회의 숱한 갈등 중에 무엇이 핵심 갈등인지를 결정하는 게임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인종 갈등을 ‘1번 갈등’으로 끌어올려 정권을 잡았다. 그러니까 ‘갈등의 전국화’란 어떤 갈등을 ‘1번 갈등’으로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다. 따라서 ‘1번 갈등’은 엄청나게 희소한 자원이다.
어려운 사람들은 행정부나 입법부의 결정에 직접 개입할 통로가 부족하지만, 대신 머릿수가 아주 많다. 그렇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가 시끌시끌해지고 전국적인 관심사가 되면(‘1번 갈등’이 되면) 어려운 사람들이 크게 유리해진다. 이것이 민주주의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유리한 체제가 되는 경로다. 반면 인권·시민권 문제는 어려운 사람들의 견해나 이해관계가 동질적이지 않다. 그래서 검찰개혁이나 법원개혁 이슈는 구조적으로 ‘1번 갈등’이 되기 어렵다. 2020년 총선 이후 1년 동안 벌어진 일은, ‘1번 갈등’ 자리에 엉뚱한 이슈를 줄기차게 가져다 앉히며 정치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을 낭비한 사건이었다. 집권세력이 검찰개혁의 우선순위를 높게 잡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를 ‘1번 갈등’으로 만들 프로그램의 부재 때문이기도 했다.
최저임금 정책, 조국 사태, 윤미향 파동, 추·윤(추미애·윤석열) 갈등, 부동산 정책에서 정부·여당의 참패 원인을 찾는 분석이 많다.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국면마다의 실패는 줄기에 해당한다. 진짜 문제는 뿌리에 해당하는 세계관이었다. 촛불정부는 헌법에 반하는 통치가 반복되지 않게 하라는 명령과, 80%에 달하는 촛불연합을 꾸려나가라는 명령, 두 요구를 동시에 받았다. 전자는 적폐 인플레이션으로 과잉 수신됐다. 후자는 사실상 인식되지도 않았다. 윤건영 의원은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그는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근무를 마친 2020년 1월에 〈시사IN〉과 인터뷰했다. 국정수행 지지도가 2018년 1차 대하강기 때 크게 하락했다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분명한 건 임기 3년 차에 이 정도 지지율은 전례가 없다.”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와 같은 시점끼리 비교했을 때, 4년 내내 역대 최고 지지율을 놓친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가 촛불연합이라는 대단히 이례적인 토양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인사들은 대체로 이를 ‘곧 사라질 보너스’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원래 우리 지지층이 아닌 유권자가 많이 들어와 있다는 이유였다. 한시적 촛불연합을 안정적 다수파 연합으로 전환한다는 정치가의 비전은 찾아보기 어려웠고, 원상복귀를 당연시하는 방어적 태도가 주류였다. 촛불연합은 이렇게 해서 ‘원래 해체될 운명’ 취급을 받았다. 정치가 실패했으나, 실패 자체를 인식하지 않아버리는(“원래 우리 지지층이 아니었다”) 기묘한 해법이 등장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장 심대한 실패는 이렇게 해서 집권세력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촛불정부는 본질상 연합정부일 수밖에 없다는 조건은 현 집권세력의 세계관과 궁합이 좋지 않았다. 민주화운동에 뿌리를 둔 집권세력은 선명한 선악구도, 도덕과 명분의 우위, 정치를 거악(巨惡)에 맞서는 성전(聖戰)으로 보는 태도 등을 공유한다. 어느 하나 연합정부의 원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촛불정부를 ‘80% 연합정부’로 인식하지 않았던 이유 중 일부는 이것으로 설명된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집권세력의 노선과 세계관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는 총선 압승을 이끌고 당 대표 직무를 끝낸 2020년 9월에 〈시사IN〉과 인터뷰했다. 여기서 그는 이런 말을 한다. “사회 제반 영역이 다 민주화되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강하고, 시민사회가 강하고, 언론이 강해져야 한다. 지금은 제도정치 한 곳에서 정당만 섬처럼 있으니까, 노조·시민사회·언론이 다 취약하니까, 정당이 밀려나면 다 밀려나는 것이다. 민주화는 투표나 직선제 같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투명성이 높아야 하고, 참여의 공간이 있어야 하고, 균형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게 총체적으로 달성되는 게 민주화인데, 지금은 사회 각 영역이 불투명하고 참여가 제약되어 있고, 그 결과로 균형이 무너져 있다.”
2016년 11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제4차 범국민 촛불문화제가 열렸다.ⓒ시사IN 신선영
이 말은 이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사회 각 영역마다 운영원리가 민주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정론이다. 의사결정의 독점과 권위주의 문제는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둘째, 정치권을 넘어 사회 각 영역에서도 민주화 세력이 적폐 세력을 몰아내야 민주화가 완성된다. 이것은 ‘거악에 맞서는 성전’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 두 해석의 갈래 중에 집권세력과 지지층이 어느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서, 정치를 다루는 방식은 극적으로 갈리게 된다. 후자의 길로 접어들 때, 집권세력은 ‘무오류의 태도’로 빠져들어 간다.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3월22일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무오류의 태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나 김영춘 부산시장 후보나 도덕성이 야당 후보를 압도한다.” “지금 부동산 공급 문제는 5년 전 정책의 결과다.” ‘오만’이 이번 보궐선거의 키워드가 되었던 이유 중 일부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정치는 총칼로 하던 전쟁을 말로 하는 싸움으로 순치하는 행위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의회는 내전을 대체하는 기구였다. 정치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규칙 있고 결과에 서로 승복하는 질서 있는 투쟁으로 바꾸는 것이다. 정치를 긍정한다는 것은, 인간이 불완전하고,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의견 차이는 불가피하며, 우리 편이 반대하는 공적 결정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민주주의자에게 통합이란 의견의 통일을 뜻하는 게 아니다. 민주주의자에게 통합이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존중한다는 공통의 합의’를 뜻한다.
상대의 승리가 악의 승리이고, 우리 편의 승리가 선의 승리라고 믿는 사람은 이런 ‘정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거악에 맞서는 성전’의 세계관은 그래서 원리상 정치혐오에 속한다. 정치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를 존중한다는 공통의 합의’ 위에서 작동하는데, 성전(聖戰)의 세계관은 바로 이 공통의 합의로부터 이탈한다. 집권세력이 정치를 작동시키는 데 실패한 이유 중 일부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성전의 세계관에 뿌리를 둔 무오류의 태도는 참패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 무오류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참패를 설명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이번 선거 결과를 부동산 자산 증식을 원하는 ‘욕망의 투표’로 규정한다. 이러면 ‘정의 대 욕망’의 구도를 짤 수 있으므로 참패를 오류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국민의 욕망을 인정하자”라고 점잖은 결론을 내리고 부동산 정책을 바꾼다 해도, 무오류의 태도는 손상 없이 지킬 수 있다. 둘째, 집권세력에 오류가 없었는데도 주권자가 심판 투표를 했다면, 집권세력과 주권자 사이를 연결하는 경로 어딘가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언론이다. 무오류의 태도에서는, 참패 이후의 대책은 언론개혁이라는 결론이 그래서 나오게 된다. 참패 이후의 해석투쟁은 곧 있을 대선 경선 구도에도 영향을 주는 급박하고 중대한 전장이다. 무오류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참패를 설명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욕망’보다는 ‘불안’
언론을 문제로 지목하는 논리는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의 압승 앞에 궁색해진다. 언론 환경이 1년 전과 크게 달라진 징후는 없다. ‘욕망의 투표’는 부동산 이슈와 맞물려서 좀 더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이번에 유권자들이 보여준 결집력과 특히 민주당 지지 블록의 붕괴는 욕망보다는 더 부정적인 에너지, 분노와 심판으로 더 잘 설명된다. 왜 분노하고 왜 심판했는가라는 질문에 “욕망 때문에”라는 답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욕망’보다 주권자들의 정서를 더 잘 포괄하는 키워드는 ‘불안’이다. 불안정노동자와 자영업자는 소득 안정성이 낮아서 불안하다. 중장년은 노후가 불안하다. 무주택자와 1주택자는 널뛰는 부동산시장에서 주거가 불안하다. 급격하게 벌어지는 자산 격차를 보고 있으면 자산 증식의 막차를 놓치는 게 아닐까 불안하다. 저성장 시대에 청년은 기회 자체가 사라져가는 것 같아 불안하다. 저출생 고령화 시대의 청년은, 윗세대의 노후를 자신이 부양하고 자기 노후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 같아 불안하다. 불안의 종류는 처한 상황마다 다양하기 때문에 요구하는 해법도 다양하다. 하지만 저성장·저출산·고령화로 사회가 수축하고 쪼그라든다는 감각, 기회와 미래와 안전망이 사라져간다는 감각은 공동체 구성원 대부분이 공유한다. 주권자들은 실제 피부로 느끼는 불안을 정치의 ‘1번 의제’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는데 정치가 딴짓을 할 때, 내 불안과 무관해 보이는 의제를 ‘1번 갈등’으로 밀어붙이려 들 때, 집권세력이 내 불안을 알고 해결하려 노력한다는 믿음은 사라진다. 이럴 때 불안은 분노가 된다. 분노는 투표율을 끌어올린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투표율은 58.2%로, 보궐선거 사상 최고치다.
성전의 세계관과 사회경제 프로그램의 부재가 만나면, 이중의 의미로 정치가 작동을 멈춘다. 정치의 작동을 멈춘 정치가들은 정치의 가장 큰 이벤트인 투표로 심판받는다.
코로나19 이후 큰정부가 귀환하고 증세의 시대가 열렸다. 부자증세는 불평등을 교정하고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경제의 미래는 결국 정치에 달렸다.
불평등은 정치의 문제이며 그 치열한 싸움의 전장은 역시 세금이다. 1980년대 이후 선진국들에서 보수 정치의 득세와 감세의 물결은 불평등 심화로 이어졌다. 불평등에 대한 우려가 높아졌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치적으로 쉽지 않은 증세를 실현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재정 확장으로 ‘큰정부’가 귀환했고 증세의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바이든 정부는 1.9조 달러의 경기부양에 추가로 4조 달러에 달하는 공공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로 인한 막대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증세 계획도 내놓았다. 그 대상은 역시 부자와 기업이다. 트럼프가 인하한 법인세와 최고소득세율을 인상하고 상속세를 강화하며 자본이득세도 올릴 전망이다. 불황과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돈을 쓰고 부자에게 세금을 더 걷겠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팬데믹이 심화시킨 불평등이 부자증세를 정당화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충격에도 고소득층은 타격을 받지 않았고 고통은 저소득층에 집중되었으며, 특히 자산가격 상승으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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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세를 지지하던 논리도 무너지고 말았다. 보수파는 세금을 높이면 노동과 투자에 대한 유인에 악영향을 미쳐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소리를 높였다. 낙수효과가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경제학에 기초하여 선진국들은 평균적으로 1981년 62%에서 2015년 35%로 최고소득세율을 인하했다. 성장은 촉진되지 않았고 불평등은 심화되었다. OECD 18개국의 주요 부자감세 사례를 분석한 최근의 실증연구는 감세로 인해 성장이 촉진되었다는 증거가 없다고 보고한다. 감세는 상위 1%의 소득집중도를 높인 반면 성장과 실업에 미치는 효과는 없었다.
그렇다면 부자증세가 불평등을 교정하고 재정지출을 지지하여 성장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미 미국의 정가와 경제학계에서는 최고소득세율을 인상하고 거대 부자들의 자산에 대해서도 누진세를 매기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세금을 얼마나 올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최적의 최고소득세율에 관한 경제학에서 핵심은 세금이 높아질 때 최고소득층이 노동을 얼마나 덜 해서 과세대상소득이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를 의미하는 탄력성이다. 여러 연구들은 이 탄력성이 별로 높지 않다고 보고하며, 따라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다이아몬드 MIT 교수는 미국의 최적 최고소득세율을 약 70%로 높게 추정했다.
또한 피케티(파리경제대학)와 사에즈(UC 버클리) 교수 등은 높은 세금이 최고소득자들의 지대 추구를 억제하기 때문에 노동 공급만 고려한 경우보다 최고소득세율이 높아야 하며, 세금이 높으면 세전소득의 불평등도 줄어들 것이라 강조한다. 최근 조세재정연구원의 연구는 한국에서도 최고소득층의 과세소득탄력성이 상당히 낮다고 보고한다.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 세금 이데올로기 바뀌나
경제성장률이 높고 불평등은 낮았던 1950년대에 미국의 최고소득세율은 90%가 넘었고, 1970년대에도 70%였다. 한국도 1970년대 박정희 정부 때 70%까지 높아졌고, 1980년대에도 50%였다. 이후 감세로 세율이 계속 낮아져왔지만 최근 문재인 정부는 최고소득세율을 45%까지 인상했다. 이자나 배당과 같은 종합소득에서 상위 0.1%의 집중도가 최근 몇 년간 높아졌음을 고려하면 최고소득세율을 더 인상하는 노력이 요구된다. 세수와 재분배 효과를 고려하면 과도한 소득세 공제를 축소하여 중상위층까지 포함하는 증세를 추진해야 할 것이다.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사회는 저마다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내며 모든 사회의 역사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역사라고 썼다. 그는 또한 불평등 변화의 주된 원인이 정치라는 점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이제 자본주의의 심장 미국에서 세금을 둘러싼 이데올로기 지형이 변하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부자증세와 포스트코로나 시대 경제의 미래는 결국 정치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필요한 것은 새로운 세금의 경제학과 증세를 위한 정치적 노력이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다.
올 2월 열린 기본주택 컨퍼런스에서 이재명(가운데) 경기지사와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기도 제공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핵심 정책인 ‘기본주택’ 법안들이 국회에 연이어 제출되면서 '반값 아파트' 실현이 가시화 하고 있다.
18일 경기도에 따르면 지난 2월 8일 노웅래(서울 마포갑)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토지분리형 분양주택 공급촉진 특별법(분양형)’ 제정안을 시작으로 2월 25일 이규민(안성)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주택 특별법(장기임대형)’ 개정안, 3월 19일 박상혁(김포을) 의원이 대표 발의한 ‘토지임대부 기본주택 공급촉진을 위한 특별법(분양형)’ 제정안, 4월 14일 이규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주택 특별법(분양형)’ 개정안 등 기본주택 관련 법안 4건이 계속해서 국회에서 발의됐다.
앞서 도는 공공주택 정책의 패러다임을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복지’에서 ‘보편적인 주거권 보장’으로 바꾸겠다며 지난해 7월과 12월 각각 경기도 기본주택 장기임대형과 분양형을 발표한 바 있다.
기본주택 장기임대형은 무주택자에게 아무런 자격조건 없이 적정 임대료로 30년 이상 안정적인 거주공간을 공급하는 주택 유형이다.
기본주택 분양형은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주택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형태로 거주의무기간 10년, 주택 양도 시 사업시행자에게 환매를 의무화하는 내용 등 분양자가 사실상 평생 거주할 수 있는 주택 유형이다. 싱가포르처럼 공공이 소유한 토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반값 아파트가 가능하는 평가다. 경기도가 지난해 시뮬레이션 해본 결과 조성원가가 3.3㎡당 2,000만원인 토지에 1,000세대(용적률 500%)를 조성하면 전용면적 74㎡(30평)의 분양가는 2억7,700만원이었다.
국회에 제출된 4개 법안은 경기도 기본주택 정책의 법적 근거 확보와 연결된다. 이규민 의원의 법안 2건은 공공주택 범주에 기본주택 분양형과 장기임대형을 신설하고, 그 성격을 무주택자 대상 공급 등으로 규정하는 내용이다. 노웅래ㆍ박상혁 의원의 법률안은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주택만 분양하는 토지임대부 형태의 공공주택을 공급하는 내용으로 경기도의 기본주택 분양형 정책과 연계가 가능하다.
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입주 자격(소득·자산·나이) 제한이나 입지, 임대주택 투기 등 기존 공공임대주택의 문제점들이 해소돼 도가 추진하는 기본주택 정책이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도는 기대하고 있다.
홍지선 경기도 도시주택실장은 “이번 법률안이 공공주택 정책의 패러다임을 보편적인 주거권 보장으로 바꿀 첫걸음이라 생각한다”며 “보편적 주거권 보장과 부동산 가격 안정화를 위해 법안 통과에 중앙부처 및 국회의원 등과 적극 협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안병진 교수는 추락한 집권당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하나의 '테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상정했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가치에 충실하겠다는 선언이나 인사다. 그를 통해 견제와 균형, 개인 인권의 보호, 법치의 가치를 회복하겠다고 할 만하다는 것이다. 국민이 그 진정성을 알아볼 계기는 검찰총장 임명이라고 했다. 친문을 임명한다면 문재인 정권은 답을 찾기가 힘들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친문(문재인 대통령 적극 지지자)이 이 지사 대선 길의 최대 복병으로 보십니까.
"이 지사는 야권의 공격도 받지만 당내 친문들로부터도 공격받고 있거든요. 친문들이 아직 결정을 못했잖아요. 엊그제부터 유시민 씨 발언에 대한 미묘한 파장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발언은 재보선 직후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교수가 집필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라는 책을 읽고 유 씨가 왜 야당이 현 정부를 비판하며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하는지 알겠다고 한 부분이다. 유 씨는 야당이 '국민에 의해 선출된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파시즘이 다수결의 미명 하에 은밀하고 부드럽게 진행된다'라는 문장을 갖고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것 같은데, 야당 주장은 근거 없다고 했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 그가 내년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친문으로서 민주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홍영표 의원은 15일 한 방송에 나와 유 씨의 대선 출마설에 대한 질문에 "(출마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면서도 알아보겠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2013년 정치 은퇴를 선언하고 정치 현장과 거리를 유지해왔다.
-유시민 씨는 친문 핵심인데, 만약 유시민이 이재명을 인정하면 무게 추는 이재명으로 기울까요.
"글쎄요. 단순히 정치공학적으로만 생각하면, 저는 진보니까 여권이 이기길 바랍니다만, 민주당이 이기려면 '노무현시즌2'를 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재명은 민주당이 아니라 그냥 기득권과 싸우는 사람으로 인식돼야 이깁니다. 기억나세요? 박근혜 대표가 천막당사 이전을 결정했을 때 당시 진보들이 굉장히 짜증을 냈어요. 이명박의 반대가 자기들인데, 이명박과 박근혜간 구도가 돼버렸단 말이에요. 지금 만약 그렇게 구도가 짜이면 여권이 이길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등 돌린 국민 여론도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인가요.
"일부 여권에서 정권이 넘어간다는 시각을 갖고 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다이내믹한 나라인데요, 아직 모릅니다. 구조적으로 민주당이 이기려면 이재명의 반기득권에 민주당이 최대한 동참해주고 그러면 이재명이 자유롭게 포지션을 중도 진영으로 폭넓게 나갈 수 있어요. 저 같으면 김동연을 비롯해서 광폭 행보를 하겠어요. 그리고 보수의 훌륭하신 분들을 영입하는 겁니다. 진보의 경제노선이 꼭 옳은 것은 아니거든요. 지금은 혁신이 필요한데 그건 보수보다 진보가 잘 할 수 있다고 봐요."
-교수님은 현 상황에서는 윤석열이나 안철수 대 이재명을 대표로 빅 텐트가 쳐질 것으로 보시는군요.
"지금으로선 그 가능성이 높아요. 진보도 여전히 만만치 않아요. 한국의 30·40대는 여전히 촛불세력으로 한국의 보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는 심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 점에서 한국 민주당과 미국 민주당의 결정적 차이가 있어요. 미국의 민주당이라고 해서 왜 조금 더 보수적, 중도적 분파가 없겠어요. 잘 보시면 미국은 실사구시의 나라 아닙니까. 미국의 진보가 망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작년에 바이든이 후보가 됐을 때는 안 된다는 예상이 많았거든요. 저는 초기부터 바이든이 된다고 했어요. 시대의 결을 이해하는 촉이 좋아서 중도라 하더라도 시대적 흐름이 진보로 가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낮출 줄 알아요. 한국의 보수가 오랫동안 집권해온 비결은 바로 그런 걸 갖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민주화 이후 보수의 집권기간이 2배 정도 길지요.
"시대의 결이 우리 쪽에 불리하면 우리가 총질을 멈춰야 할 때고 단결해야 할 때라는 것을 보수들은 90년대만 하더라도 알았어요. 진보들은 그것을 몰라서 계속 망했고요. 그런데 이제 진보도 역의 트라우마, 분열하면 진다는 교훈을 너무 새겨서, 초선 5명의 올바른 지적을 진압하는 것에서 보듯, 너무 가버렸지요. 저 같으면 조국사태에 대해 진심으로 비판을 안 한다 하더라도 겉으로는 비판하는 척은 할 거 같아요.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할 것 같아요. 돌아서서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런데 이들은 그것마저 안 하잖아요. 그게 현실정치거든요. 왜? 저 사람들은 아직도 위기라고 생각을 않는 겁니다."
-교수님은 민주당 진영에 직간접으로 이론적 전략을 제공하는 걸로 알려졌는데요, 요즘은 조언을 안 하십니까.
"제가 외국에서 공부 마치고 돌아와서 민주당이 '자영업자' 신세였을 때 무수한 강연과 어드바이스를 했어요. 그 당시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민주당 분들과 접촉이 좀 있었어요. 지금 그 때의 악몽이 다시 살아나요. 그게 뭐냐면, 계속 쓴소리를 하니까 멀어지는 겁니다. 보수는 저를 '빨갱이'라 생각하고요.(웃음) 진보는 저를 경원시 하고요. 당시 민주당 사람들이 저한테 한 말이 있어요. "안 교수님, 제발 이제 위기라는 말 좀 하지 마세요." 자신들도 알고 있다고. 그 후에 민주당이 대선에서 패배했지요."
-진보와 보수를 극복하고 생태 민주주의로 가야한다는 주장을 하시는데, 양 극단을 극복하고 지구생태와 공존하려면 중용의 민주주의로 가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그게 당분간은 힘들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은요. 제가 왜 문재인 정부에 대해 강하게 비판적인 사람으로 돌아섰느냐 하면 두 가지 측면인데요, 하나는 제가 아는 한 문재인이라는 분은 윤리적인 분이에요. 개인 문재인은 비교적 깨끗하게 살아오신 분이에요. 그리고 한국 진보의 주류가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 민정수석 시절에 경희대 동문들 중에서 상당수가 문 수석을 싫어했어요. 왜 싫어한 줄 아세요, 청와대 근처에도 못 오게 했어요. 한국의 정치인들을 많이 아는데, 여야를 통틀어서 자기가 수석을 맡고 있는 시절에 동문을 근처에도 못 오게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사연(私緣)을 멀리했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많은 사람들이 학연, 지연의 영향을 받습니다. 최소한 당시 문재인은 안 그랬어요. 그러나 공적으로 윤리적이냐는 것은 다른 문제지요. 아무튼 윤리적 리더십에서는 강점을 갖고 있었고 노력을 했다는 겁니다. 이런 분이 대통령이면 측근들이 건달 같은 짓을 하면 야단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게 무너진 거잖아요, 지금. 윤리적 리더십이 토대가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겠지요.
"예, 대학 강단에서 표절하는 인간들, 공직에서 비윤리적인 짓을 하는 인간들, 이런 인간들이 발을 못 붙여야 대한민국이 보수정부가 되든 진보정보가 되든 살아남을 겁니다."
-제도적 혁신도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언론의 자유, 법의 지배, 제한된 정부, 개인의 책임이 강조되는 민주주의) 가치의 토대를 단단히 뿌리내리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 오해를 살 거 같아서 학문적 용어로 리버럴 디마크러시를 저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칭하는데요,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면 마치 보수주의의 전유물처럼 인식이 돼 피하려 이렇게 부릅니다. 보수신문을 보시는 분들이 불쾌할 수 있지만, 왜 한국에 진보의 주류가 욕을 먹느냐 하면 일차적으로는 보수 때문에 그래요. 한국의 보수가 박세일 선생처럼 합리적 보수로 발전해왔다면 진보들도 '우리도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대해서 좀 더 생각을 깊이 해야 되는구나'라고 했을 텐데요. 그간 보수가 이끈 민주주의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아니거든요."
-반공적 '냉전 자유주의'였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자의적 민주주의라고 할까요. 자의적 지배, 반 공화주의입니다. 한국의 보수 집권세력들이 자의적으로 탄압해온 거 아닙니까. 한국이 서울공화국 아닙니까. 저는 '서울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서울왕국'입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진보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얼마다 위대한 가치인가를 깨달을 기회가 없었던 거지요. 물론, 그렇다하더라도 진보는 스스로 성찰하면서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가치를 가지려고 노력했어야 하지요. 일부, 그런 훌륭한 진보의 흐름이 있긴 있었어요. 김근태, 유인태, 김부겸, 노회찬 등입니다. 노회찬도 저와 옥살이를 같이 하면서 그랬어요. '이제 진보가 선거라는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 선거 속에서 사회민주주의를 하자'는 것이 노 선배의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정의당이 그런 가치를 충실히 구현하고 있는가? 아니 조국을 지지하는 인간이 그게 자유주의자인가요?"
-현재의 정의당 지도층은 어떤가요.
"여영국 대표는 비판의식이 있는 것 같아요. 진보와 보수가 무엇을 놓고 경쟁해야 하냐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속 토대에서 진보는 어떻게 진보적 자유민주주의로 갈 것인가, 보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가져갈 것인가 하는 싸움을 해야지요."
-실제 그런 깊이 있는 고민을 하는 정치세력이 있습니까.
"지금 이재명 계파에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토대 위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좀 적어요. 이재명 지사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한계를 가질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윤석열 쪽은 아직 진영이 형성되지 않았으니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윤석열이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어요. 그의 검찰 이력을 보면 문제가 있어요. '두 프로세스'(do process), 제가 생각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가장 중요한 가치가 적법한 절차인데, 그 점에서 윤석열이 과연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윤석열 총장이 검사시절에 적절한 절차에 대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강했었나요? 별건수사, 강압수사, 프레임 정해놓고 수사하는 것이 적절한 절차인가요?"
-총장이 된 후 그런 퇴행을 뿌리 뽑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요.
"글쎄요. 윤석열 총장이 모겐소(로버트 모겐소, 미국 뉴욕 맨패튼 지방검찰의 지검장에 9연임 선출되면서 부패 척결에 나섰던 전설적 지검장)를 얘기하던데, 그들은 직업윤리가 자신의 이념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김영란 전 대법관 같은 인물이 그와 비슷한 공직의 직업윤리를 가졌다고 생각해요. 그가 진보인가요? 아니에요. 하지만 저는 존경해요. 진보와 보수 이전에 자기의 직업윤리에 투철하잖아요. 그 다음에 정은경(질병관리청장) 씨도 이념보다 자신의 직업윤리에 투철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내년 대선은 누가 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봐야겠군요.
"저는 지금 대선 후보들에게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어떻게 성숙시킬 것인가를 놓고 진검승부를 벌였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공화주의(共和主義)입니다. 이게 너무 학문적인 얘기인데, 한국 대선 후보들이 다음 달부터 차차 등장할 텐데, 이 걸 갖고 싸웠으면 좋겠어요. 진보공화주의와 중도적 또는 보수적 공화주의, 박세일 선생의 공동체 자유주의는 학문적 분류로 따지면 우파 공화주의인데, 이걸 갖고 자웅을 겨루는 겁니다. 바이든과 오바마 같은 경우는 조금 더 진보적 공화주의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 센 것으로는 과거 사회주의자 중에 유진 뎁스라는, 센더스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사회주의자가 있었어요, 그 사람은 빨갱이가 아니라 공화주의적 가치가 있는 사회주의자입니다."
-사상적 쟁투가 국민들을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오히려 앞으로 1년간 후보들을 모두 도마에 올려놓고 사상적 이념적 검증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유승민 같은 사람이 공화주의적 문제의식이 강한 거 같아요.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 때 여당 대표연설에서 합리적 보수를 지향하는 그런 연설이 나올 수 있었던 겁니다. 보수 대선 후보들은 공화주의적 가치, 또는 과거 천민자본주의와 결별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보수 버전을 내 걸고 겨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여기서 연설문에만 내걸라는 게 아니라 구체적인 각론과 가치를 구현할 실천방안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그게 잘 될까요? 원칙과 이상은 멀리 있고 포퓰리즘은 가까이 있는데.
"제가 누구라고 말씀 드릴 수는 없는데, 전에 대선 후보들에게 공화주의를 강연한 경험에 비춰보면, 이 사람들은 어떤 가치와 구체적인 것을 일치시키지 못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연설문에만 담으려고 해요. 문제는 구체적 법안, 예를 들어 기본소득 같이 구체적인 실행방안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문재인 정부도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는 멋진 연설문과 레토릭을 가졌으면서도 겉돌고 있지 않습니까."
-현 정권이 민주주의를 '다수주의'로 착각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잘못한 것을 1년 남은 기간에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이 사람들이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는다 해도 어떤 테제는 만들 수 있지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가치에 충실하겠다, 다수주의가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니까 견제와 균형, 개인 인권의 보호라든지, 법치라든지 이런 것들이 조화를 이루는 나라를 만들어보겠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도 그런 에씩(ethics)을 지키는 사람으로 임명을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나올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고 있고 곧 있을 검찰총장 임명도 현재로선 이성윤 서울지검장이나 김오수 전 법무부차관 등 친정권 사람으로 임명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검찰총장에 누구를 임명하느냐에 따라 자기들이 제시한 테제에 맞게 가느냐 아니면 그건 그냥 형식뿐인 것이냐가 결정되겠지요. 그리고 민주당 원내대표도 친문이 되느냐 아니면 비문이 되느냐도 진정성을 엿볼 기준이 될 겁니다."
-정치인들의 의도를 읽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최근 인문사회학의 학문적 트렌드는 과거에는 제도, 개헌 이런 것을 주로 얘기하다가 최근의 트렌드는 문화, 마음, 사유의 구조 등 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는 주제로 옮아오고 있어요. 즉 마음의 공간을 바뀌지 않으면 무얼 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이런 트렌드는 인문사회학 뿐 아니라 최신 과학적 연구에도 나타나고 있어요. 인지심리학이라든가 선스타인의 넛지(nudge) 행동경제학이 그런 것이라고 봅니다."
-정치인들에게 사유의 구조를 바꾸길 바랄 수 있을까요.
"저는 기존 정치세력들한테서 그걸 기대하기 어려워서 그 세력들을 견제할 수 있는 새로운 블록이 나타나길 바랍니다. 보수든 진보든. 진보에서만 나타나서는 힘이 약하고 보수도 나타나야지요. 왜? 우리나라 정치지형은 적대적 상호의존형 나라니까. 보수가 '똥볼' 찰 텐데, 뭣 하러 개혁을 해요? 윤석열 친구 이철우 교수(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윤석열 총장한테 그랬다고 하지 않습니까. '날파리들' 조심해야 한다고. 한국은 권력의 냄새가 나면 아사리판이 됩니다. 두고 보세요. 윤석열 씨가 좋은 선구안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왜 자꾸 보수 쪽을 비판을 하냐면, 보수가 바뀌지 않으면 진보 안 바뀌기 때문입니다."
-진보와 보수가 대치하는 분야가 대북정책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과연 '진보적 가치'를 반영하는 건가요.
"김대중 정부와 현 문재인 정부의 평화번영 노선은 비슷해 보입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물론 보수는 제 말씀에 동의 안 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 좀 지나치게 온건했을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북한체제를 조금씩 바꿔나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지금보다 훨씬 강했던 겁니다. 한국의 보수들이 재평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당시 대북정책이 100% 옳았다는 건 아닙니다. 이제 진화해야죠.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미·중 신냉전으로 가고 있잖아요. 신한반도 체제를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데 연속성은 있는 것 같지만 전환이 없어요.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와 맞서 싸우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동맹과 연대는 적극 참여해야지요. 이것마저 모호성을 띠어서는 안 됩니다."
-생태민주주의가 국민들에게 생소해서 좀 더 여쭙고 싶은데요.
"세계는 온실가스 증가에 대해 앞으로 7년~10년 내에 래디칼한 전환을 안 하면 보수와 진보 모두 티핑포인트 이후엔 이념이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어요. 환경과 생존의 문제만 남게 될 수밖에요. 그 속에서 진보와 보수가 싸워봤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래서 최근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기후, 시민, 의회라는 어젠다를 내놨어요. 김종인 대표가 참 탁월한 게 마크롱 대통령을 주목하더라고요. 그런데 마크롱의 기후, 시민, 의회는 한계가 있습니다. 정부가 소집한 거니까. 하지만 아래로부터 기후, 시민, 의회는 한국의 여야 대선 주자들, 대표들이 제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미래세대가 자유주의를 넘어선 의회를 제대로 실현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중국의 '기후독재'가 세상을 평정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의 '기후독재'란 무슨 의미인가요.
"저는 미중 신냉전에서 전략적 모호성은 위험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전략적 모호성2.0'으로 진화해야 한다고 봐요. 전략적 모호성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라는 전제를 깔고 있지요. 왜냐하면 삼성은 이제 많이 탈중국을 했는데, 다른 기업들도 탈중국을 해야되거든요. 그래서 완전한 전략적 모호성을 버릴 수는 없는 겁니다. 중국의 '기후독재'란 앞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기후변화와 바이러스 팬데믹에서 중국을 앞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에서 나온 겁니다. 중국 전체주의가 집행력은 뛰어나거든요."
-현재 우리의 준비 상태는 어떻게 평가하세요.
"예를 들어 호주의 브레이크쓰루(breakthrough)라는 싱크탱크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었는데, 기후위기가 티핑포인트를 넘어서게 되면 아시아난민이 생길 텐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고민한 내용을 발표했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난민에 우리, 서울에 사는 우리도 포함돼 있었다는 겁니다. 6·25 때 흥남부두의 철수가 재현될 수 있는 거예요. 이건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다행인 것은 우리 기업들이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겁니다. 최근 기업들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파급되는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이젠 '이익 자본주의'에서 '그린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는 겁니다."
-생태 위기라는 공통의 과제 앞에서 진보와 보수는 더욱 더 협력의 필요성이 높아졌다고 봐야겠네요.
"진보가 기본소득 대 전국민고용보험제 갖고 싸우고, 보수는 누가 더 시장주의적이냐를 갖고 싸우는데 그건 앞으로 닥칠 위기와 관련이 없죠. 저는 앞으로 열심히 싸우라고 하고 싶어요. 하지만 누가 집권을 하든 공통의 대타협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넘어 생태 민주주의로 전환이 이뤄집니다. 여기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새마을운동이에요. 새마을운동본부는 생태적 조직으로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앞서갑니다. 이걸 전임 정성헌 회장이 만들었어요. 김부겸 장관이 삼고초려해 모셔온 정말 리더십이 뛰어난 분이었는데 지난 2월 그만두셨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자른 셈이지요. 새마을운동을 완전히 생태적 조직으로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새마을운동을 초당적 조직으로 만들었어요."
-앞으로 1년 동안 중요한 정치일정이 있는데, 국민들이 판단을 내릴 때 무엇을 중요하게 봐야 할까요.
"저는 누가 더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가치에 충실할 수 있느냐 봤으면 좋겠어요. 자유, 인권, 견제와 균형, 법치의 문제도 고려해야 하고요. 또 중요한 것은 절망적 양극화, 기후위기, 갈수록 약해지는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과 미중 신냉전이란 국제질서에서 대한민국의 안전, 나약해지는 삶과 생명의 기반을 걱정하는 지도자를 뽑으라고 하고 싶어요."
"진보든 보수든 윤리라는 공통분모가 있습니다. 그 점에서 제대로 된 진보와 보수라면 서로 의심할 여지가 없어요. 그 기반 위에서 사회개혁을 위해 겨룹니다. 그것이 사회의 토대인데 진보라고 주장하는 현 집권세력은 그것을 무너뜨렸습니다. 대한민국의 근간을 무너뜨린 겁니다. 그 출발이 조국사태였고 제가 심각하게 분노했던 이유입니다.(…) 사실 80년대 학생 운동은 순수했고 또 인간적 사회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하지만 기득권 사회구조를 타파하는 것 못지않게 자신들의 마음을 항상 깨끗이 해나가야 하는데,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너무 없었어요."
진보주의 정치학자로서 저술, 강연, 언론 칼럼 등으로 활발한 활동을 펴오고 있는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현 정권의 문제를 윤리의 타락으로 꼽았다. 익히 들어온 지적이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현 집권층의 세력화 과정에서 진보적 가치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해왔던 이론가 중 한 사람이 내린 평가는 무게감 있게 다가온다.
안 교수는 진보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는데, 윤리·공감능력·혁신의지라고 했다. 지금 그 세가지가 모두 허물어졌다고 한다. 안 교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한 TV토론에 나와 자영업자들한테 '왜 그것 밖에 임금을 줄 수 없냐'고 다그치는 모습을 보면서 진보는 '허공에 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놨다.
안 교수는 "그것은 지금 진보 주류들이 가지는 멘탈리티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 모습이었다"고 했다. 자기 지지층 밖 사람들에 대한 이런 편협한 시각, 민주화 투쟁으로 과대포장된 선민의식, 기업에 대한 싸디 싸면서도 거만한 '채권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했다. 그에 대한 국민의 답이 지난 재보선에서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안 교수는 현재로선 내년 대선이 이재명 대 윤석열 구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하지만 이재명은 친문의 관문을 넘어야 하고 윤석열은 정치의식을 검증받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대선을 계기로 대한민국이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의 성숙을 넘어 양극화 해소, 기후위기 극복, 생명 존중의 생태민주주의 나아가길 바란다는 꿈도 소개했다.
인터뷰는 지난 12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본사 대회의실에서 가졌다.
대담=이규화 논설실장
-4·7 재보선 결과는 그간 참았던 국민들의 분노가 표출된 거로 봐야겠지요.
"그렇죠. 저는 이번 여당의 패인이 사실상 조국사태에서 출발한다고 봐요. 내로남불, 오만, 독선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여권의 일부 논객들이 조국사태 이후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았냐고 하는데, 그게 견강부회인 것이 표피적인 현상이었거든요. 예를 들어 권투 링에서 심각한 잽을 맞는다고 그 자리에서 다운되는 건 아니잖아요. 조국사태가 첫 번째 강한 잽이었지요. 여권이 그것을 빨리 눈치 챘어야 했는데 못한 거죠. 여당 초선의원들이 성명서를 냈잖아요. 조국의 '내로남불'을 못 본 채 해 반성한다고. 결국 씨앗은 그때 뿌려진 거죠."
-교수님은 90년대 사로맹(사회주의로동자동맹)에서 조국 전 장관과 같은 시기에 활동한 걸로 알려졌는데요.
"소속된 분과는 달랐고요, 저는 주로 학생파트 사로맹의 전위조직에 관계된 일을 했고요 국이형(조국 전 장관)은 연구소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알았습니다. 사실 80년대 학생 운동을 성찰적으로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그 당시 저희는 순수했고 또 나름대로 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단 부족했던 점은 사회 구조를 타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들의 마음을 항상 깨끗이 해나가면서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너무 없었어요."
-사회와 국가를 바꾼다고 했지만 실은 자신의 허물은 못 본 건가요.
"서구는 진보이든 보수이든 훌륭한 합리적 진보와 보수는 이념은 달라도 그 근저의 공통분모인 윤리에서는 서로 의심할 여지가 없거든요. 가령 제가 좋아하는 미국의 존 매케인이라는 공화당의 걸출했던 인물은 부패에 대한 싸움을 민주당보다 더 철저히 했습니다. 금권선거 타파를 위한 '매케인법'을 만들었어요. (윤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토대인데 조국사태에서 제가 당시 심각하게 분노했던 이유는, 지금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은 단지 진보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진영에 따라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다를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미국 건국의 시조들을 떠올릴 때 제도적인 정교한 디자인 속 건국의 시조들만 생각하는데, 그들의 핵심 문제의식은 제도의 토대로서 윤리적 리더십이었어요. 이에 대한 메디슨, 제퍼슨, 해밀턴 등의 공통분모가 있었는데, 조국사태는 근간을 붕괴시킨 용서할 수 없는 죄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수님 같이 생각하시는 진보진영의 사람들이 극히 적거나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반성이나 변화가 없는 건 아닐까요.
"진중권 씨나 우석훈 씨는 진보진영의 가장 뛰어난 이론적 정책적 논객들인데, 어느 순간 진보진영에서는 마치 안티처럼 여기고 있거든요. 아시겠지만 우석훈 씨는 지난 번 문재인 대통령 대선 때 중요한 기여를 한 분이거든요. 저는 이런 상황이 초현실적이에요. 보수적인 분들이 저를 중도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여전히 진보이고 죽을 때까지 진보의 가치를 버리지 않습니다. 단 제가 생각하는 것이 '진짜 진보'인데,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자기들이 진보라고 하거든요."
-심지어 문 정권을 진보를 참칭한 '이익집단'이라고 혹평하는 사람도 있는데요.
"그런 측면이 강합니다. 단순하게 가치, 이해관계 두 가지 측면에서 진보가 절대로 버려서는 안 될 진보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있거든요. 그 두 가지가 윤리와 공감이에요. 진보진영에서 대선에서 이기는 것, 간단합니다.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공감을 지키면서, 안정이라든지 하는 보수가 더 잘하는 가치를 최대한 가져오거나 아니면 균형을 유지하면 이기는 겁니다. 아주 단순합니다."
-하지만 재보선에서 패한 것은 공감하지 못해서잖아요?
"민주당의 위기가 이번에 처음 온 건 아닙니다. 과거에 더 길었던 적도 있었어요. 그때 사람들이 비판했던 것이 대체 민주당 저 사람들은 김대중과 노무현의 가치를 잃어버린 '자영업자 집단' 아니냐는 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다시 자영업자 집단 같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어요. 바로 그들의 기본 자산인 윤리와 공감을 포기하는 상황인 겁니다."
-낮은 자세로 소외계층을 위한다는 진보가 공감 능력을 잃은 것은 뼈아픈데요.
"예를 들어서 유시민 씨가 어느 TV토론에 나와서 한 말이 기억나는데, 자영업자 분한데 그러더라고요. '당신은 아직도 알바생들에게 그 정도 돈밖에 못 주냐.' 저는 굉장히 분노했어요. 대부분의 자영업자 분들은 가족들의 피와 땀을 '갈아 넣으면서' 겨우겨우 애들 대학 보내는데, 그런 말을 해선 안 되지요, 더구나 코로나까지 닥친 상황에서. 자기가 그들의 인생을 얼마나 안다고 공감할 줄 모르고 계몽군주처럼 가르치려고 해요?"
-유시민 씨는 노무현과 문재인의 가치를 잇는 진보의 성골인데요.
"유시민 씨한테 분노한 이유는 그게 하나의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에요. 지금 진보 주류들이 갖고 있는 멘탈리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에요. '한국의 자영업자, 당신들은 후진 사람들이야. 당신들은 왜 노동자들에 대해 훌륭한 대우를 안 해?' 이런 편협한 시각, 그리고 기업에 대해서도 싸디 싼 시각을 갖다 대는 겁니다. 윤리와 토대, 그건 진보와 보수가 다 같이 가져야 하는 거고요, 그 다음에 진보의 가장 강한 자산인 공감, 그리고 아까 제가 빠뜨린 게 있는데, 사실은 진보가 잘 할 수 있는 혁신을 내세워야 하는 겁니다. 그게 유시민 씨한테는, 진보를 자칭하는 현 정권 사람들에게는 없습니다."
이 부분에서 안 교수는 "기업에 심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것은 자신"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은 기업들의 위대한 성취에 대해서는 평가를 많이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관념적 진보가 아닌 실용적 진보를 일컫는다.
-그래서 그들은 진정한 진보가 아닌 겁니까.
"제가 한국의 진보주의자들한테 자주 들려주는 말이 있어요. 미국은 민주당 정부의 백악관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실리콘밸리 CEO가 되면 잘 해요. 기본적으로 진보는 물질먹인 가치 측면에서 훨씬 앞서가는 경향이 있거든요. 불가능한 것들을 이뤄나가는 혁신의 에너지가 있어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민주당 백악관과 실리콘밸리가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민주당에 정세균 총리처럼 산업생태계에서 일해 본 사람과 풀무원의 원혜영 전 의원 같은 분들도 있지만, 지금의 청와대의 경제수석이 판교밸리에서 김범수 수준의 CEO가 될 수 있을까요? 그런데 회계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 낙하산 타고 공기업의 감사로 가있는 실정입니다. 이게 한국의 진보라는 겁니다."
-현 집권세력에 선민의식이 있다는 지적도 있어요. 욕인데 그들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더 우쭐하는 거 같아요.
"흔히 80년대 민주화 투쟁의 선봉에 섰다는 생각에서 마치 훈장처럼 여기는데, 역사가 명암이 있잖아요, 저는 그 분들을 비판하진 않아요. 좋아요, 뭐 저도 그 일원이었으니까. 그 당시 학생층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사회의 특징이 있잖아요. 당시엔 대학생들이 엘리트였으니까요. 얼마든지 다른 길로 잘 나갈 수 있는데 포기했잖아요. 제가 당시 10년 형을 받았을 때 집안 심정이 어떠했겠어요? 물론 나중에 선고는 2년6개월로 낮아졌지만. 이건 하나의 예로서 든 것이고, 당시 민주화 투쟁은 나름대로 역할은 한 것은 분명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안타깝게도 동전의 양면 같은 거죠, 자기들이 세상을 주도한다는 생각이 그 당시 고착화되다 보니까 '우리는 선한 사람, 우리는 세상을 주도해야 할 사람' 이런 고정관념이 생긴 거지요.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에요. 그 중의 일부는 굉장히 성찰적입니다."
-당연합니다. 586이 모두 똑같진 않으니까요.
"586을 일반화 하면 위험합니다. 586 중에서 정치권에 들어간 엘리트층, 그 중에서도 특히 주류 엘리트층이 문제의 그 사람들이지요. 그리고 회사나 시민사회 등 각 영역에서 586세대이지만 자기가 희생하고 젊은 세대에게 조금 더 힘을 실어주려는 조력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이철승 교수(서강대 사회학과)가 최근에 굉장히 좋은 책(쌀 재난 국가-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문학과지성사, 쌀·재난·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분석)을 냈는데, 이 책에서 화두가 된 게 역시 586 세대였어요. 그런데 보수층이 이해돼야 할 게, 인생은 회색빛, 복합성을 띤다는 거예요. 양자역학이 그런 거거든요. 지금 진보주의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해서 저러고 있는 겁니다."
-사회를 이해하는데 양자역학이라? 어렵습니다.
"사회는 다양성이 층층이 겹친 곳입니다. 가령 이어령 선생 같은 분은 항상 사물을 다양한 면을 보잖아요. 왜 양자역학과 이어령 선생을 얘기하느냐 하면 복잡하게 얽힌 이 구조를 선과 악의 구조로 단순화한다든지 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겁니다. 이철승 교수의 책도 586은 다 기득권이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하는 겁니다. 회사에서 자영업에서 생업을 영위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기득권이라 할 수 있나요."
-그건 맞는 말씀인 거 같아요.
"지금 20대들에게 '꼰대'는 누구인지 아세요? 586이 아니에요. 40대입니다. 586은 20대들이 직접 대면하는 상사가 아니에요. CEO나 임원이 됐거나 은퇴하는 시기거든요. 은퇴하면서 부모세대처럼 자식세대들한테 다 바쳤고 이제 자기는 별로 가진 게 없어요. 그런데 자신들의 젊은 시절에 공감을 가졌던 민주화 정부에 대한 실망, 권력이 자신들의 손에서 빠져나간다는 느낌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겁니다. 보수가 그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무조건 당신들은 나쁜 세력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된다는 거죠. 마치 진보가 보수를 적폐로 보듯이."
-진보와 보수가 서로 좋은 점을 배우려는 자세를 갖고 있으면 극한 대치를 피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조봉암 씨를 들여서 토지개혁을 했던 것은 정말 훌륭한 일입니다. 이건 진보들이 한국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이승만 대통령은 공이 없다고 하는데, 토지개혁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모르는 겁니다. 북한이 결국 체제경쟁에서 졌잖아요.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조봉암 같은 사민주의자(社民主義者)를 기용한 것을 보면 보수가 열려있었거든요. 반면에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예를 들어 김대중 대통령이 김중권 씨를 비서실장으로 기용한 거라든지, 그러면 왜 안 되는 건지…."
-최근 여야와 진보·보수 진영에서 그동안 서로 적으로만 보았다는 반성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로 선과 악으로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한국사회의 비극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민주화운동 586들이 갖는 명암이 있고 보수는 그것을 이해하면서 서로 좀 더 나은 세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죽비를 들어야 한다고 봐요. 우선 문재인 정부가 협치를 말하면서 적폐로 몰아붙인 원인을 제공했지요. 그런데 탄핵을 자신들이 한 건가요? 사실은 거기에 편승한 거잖아요."
-'촛불혁명' 정부라고 합니다.
"제일 먼저 광화문 촛불에 동참한 여의도 세력은 사실 안철수 대표 쪽이었어요. 놀랍죠? 당연히 일반의 상식은 문재인 당시 대표였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실은 신중한 분이니 안철수 대표에 한 수 뒤떨어진 거죠.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안철수 대표가 일찍 결합한 겁니다. 이렇게 역사라는 게 복합적으로 진행되는데 자기들이 탄핵을 주도한 것처럼 얘기하는 건 잘못된 거지요. 위선이지요"
-당시와 비교하면 안철수 대표는 보수로 돌아선 것으로 보이는데요. 보궐선거에서도 보수와 야권 통합을 했잖아요.
"변한 측면도 있지만, 제가 이해하는 안철수 대표는 안철수 현상 때부터 지금까지 중도입니다. 보수가 아니에요. 미국 정치에 비교하면, 미국 민주당이 빅 텐트이지 않습니까. 중도적인 사람들이 주류잖아요. 예를 들어 바이든 대통령이 지금 가장 골치 아픈 사람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은 상원이 현재 민주 대 공화가 50:50 구도거든요. 웨스트버지니아 출신의 민주당 상원의원인 조 맨친 의원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잠을 못 이룬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공화당과 손을 잡으면 바이든 대통령은 아무 것도 못해요. 그래서 일각에서는 진짜 미국 대통령은 조 맨친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예요. 안철수 대표도 원래 조 맨친 같은 분입니다. 다만, 그 당시 민주당이 안철수 대표를 끌어들였던 건 미국 민주당처럼 빅 텐트가 돼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곧 민주당과 다른 길을 갔습니다.
"안철수 대표의 잘못도 있고 문재인 대표의 잘못도 있는데, 헤어지는 과정에서 둘 다 유연하지 못했어요. 이후 안철수 대표는 좀 더 보수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지형이 형성된 거지요. 결국 한국은 양당제로서 구심력이 워낙 세니까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왜 그리 안철수 대표를 '디스'(평가절하)하는 겁니까.
"저는 김종인 대표에 대해 탐탁지 않은데요, 정말 장점은 많은 분이죠. 국민들의 상식과 대한민국의 특성을 이해하고 있잖아요. 연륜이 있죠. 진보주의자들은 정세인식에서 자주 틀립니다. 제가 '김종인 대표를 과소평가하지 마라.' '당신들보다 인생을 더 잘 안다.' 했을 때 비웃었는데, 지금 어떻게 됐습니까. 지금 킹메이커가 누구입니까?"
-윤석열 전 총장이 갑자기 부상한 데는 정권이 키워준 부분이 많지요?
"국감자리였던가요, 국회에서 당시 박범계 의원한데 그랬잖아요. '옛날에는 안 그러셨잖아요?' 저는 그걸 보면서 '야, 이 사람 진짜 탁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말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정서와 정확히 부합하는 거였거든요. 그 때 '의원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란 무엇이냐면요'라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게 되면 윤석열은 그냥 평범한 사람인 거죠. 그런데 당시 여권에서 누가 그랬습니다. '야, 역시 윤석열은 후졌네.' 후진 게 아니라 탁월했던 겁니다."
-거기서 드러난 게 윤석열 모습의 다는 아닐 텐데요.
"이 사람은 우직한 사람이에요. 이런 표현 쓰면 어떨지 모르지만, 약간 '건달기' 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김종인 대표가 윤석열과 손을 잡는다면, 중도적인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포용하면서 합리적 보수로 전면 재편되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꾸 개인적 감정이 있는 듯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는 버렸으면 좋겠어요. 비교되는 것이 돌아가신 박세일 선생 같은 분은 그러지 않았거든요."
-칼럼에서 이재명·윤석열에 회초리를 들 때라고 하셨는데요.
"이재명 지사에게 기본소득, 기본대출, 기본주택 등 '기본'밖에 없지 않느냐고 비판하는데, 저는 좀 다르게 봐요. 굉장히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겁니다. 기본 시리즈는 탁월한 대선전략입니다. 경기도지사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쉽지 않거든요. 대한민국은 서울중심이거든요. 손학규 지사, 김문수 지사도 실패했거든요. 그 두 분이 역량이 부족한 분들은 아니잖아요. 그러나 이재명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요. 왜냐하면 기성 엘리트와 다른 실용주의적 면을 잡았거든요."
-그것만 갖고는 부족하지 않나요.
"약삭빠르게도 이재명 지사도 그걸 잘 알고 있다는 겁니다. 대통령이 되는 데는 부족하지요. 본인이 진심으로 대통령이 되고자 한다면, 대한민국의 이 다양한 교착상태를, 과거 산업주의 모델이 해결할 수 없는, 과거 산업주의와 싸운 민노총 중심의 반발이 해결할 수 없는 이 교착을 실용주의적 진보로써 털고 갈 수 있는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경선에서 이겨야 하거든요. 초선 의원들이 그렇게 센 것도 아닌데, 보선 패인으로 조국의 내로남불을 지적하자 들고 일어나는 거 보세요. 친문들의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이 지사도 매우 곤혹스러울 겁니다. 그래서 이 지사가 보폭을 넓힐 수 없는 겁니다. 이 지사라고 왜 광폭 행보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기사 2부로 이어집니다>
[이슈, 단체장에게 듣는다] 이재명 경기지사 기본소득은 복지와 경제 더해진 융합정책 로또 분양 없애는 기본주택 '공포 수요' 줄일 것 '약자에게 기회' 기본대출은 결국 국가에도 이익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달 29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견을 밝히고 있다. 경기도 제공
이재명 경기지사가 지난해 펼친 정책 중 계곡 정비와 신종 코로나 대응, 수술실 폐쇄회로(CC)TV 설치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이 지사가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정책은 기본소득을 필두로 한 ‘기본’ 시리즈다. 선별적 지원 방침을 밝힌 지자체와 보편적 지원을 강조한 경기도의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 “기본소득은 복지와 경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정책”이라는 이 지사의 입장은 더욱 도드라졌다. 이 지사는 대선 출마와 관련해선 "공직자의 역할은 국민이 정하는 것이다. 맡은 소임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이 지사를 만나 자신의 대표 정책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인가, 경제정책인가.
“두 가지 성격 모두 갖고 있다. 특히 소멸성 지역화폐와 결합하기 때문에 경제정책 성격이 더 강하다고 봐야 한다. 소득 지원 측면에선 복지정책이 분명하지만 소멸성 지역화폐와 결합하면서 지역에서 매출이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 부분을 감안하면 기본소득은 경제정책 성격이 더 강하다. 그러나 제기되는 비판을 보면 한쪽 측면만 바라본다. 위협 요인이지만 동시에 기회 요인이기도 하다. 융합적 정책이라 결국엔 양쪽을 설득하기에 용이하다고 본다."
-모두에게 지급하자면 문제는 결국 예산이다.
“기본소득을 지역화폐와 연결 지은 이유다. 복지정책이라면 현재 재원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지원하는 게 맞다. 문제는 복지정책을 계속하기 위해선 재원을 추가로 계속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자면 재원을 부담하는 측(고액납세자)에도 혜택이 제공돼야 공평하다. 재원 확보와 동시에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선 지역화폐형 기본소득 도입이 불가피한 것이다. 양극화 완화는 물론 경제 선순환 확대 효과도 있다. 모두가 혜택을 보고 경제에도 기여하면 고액납세자의 조세 저항도 낮아질 것이다.”
-기본소득을 이 지사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연관 짓기도 하는데.
“당시엔 모두가 어려웠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고, 기회도 많아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저성장 시대에다 일자리는 줄어들어 예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양극화도 매우 심하다. 내 어린 시절과는 관련이 없다.”
-기본소득이 양극화 해소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지금은 과거와 비교해 공급이 풍부한 시대다. 그러나 저성장 양극화로 공급을 소비해 낼 수요가 크지 않다는 게 문제다. 때문에 정부가 가계소득 지원을 통해서 골목경제의 매출 확대를 유도하는 것은 소상공인뿐 아니라 대기업도 살리는 일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완전고용이 불가능한 시대가 오고 있다. 물질적 풍요를 누구나 함께 누리는 게 자본주의의 선순환이고, 이것이 시장경제의 지속 성장에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기본소득을 넘어 기본대출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신용등급 10등급 사람들 중 다수는 연 20%대의 높은 이자를 부담하고 있다. 그런데 대부업체에서 평균 890만 원을 빌리고 있는 이들의 연체율은 4~5%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도 가난하다는 이유로 신용 등급이 낮다는 이유로 높은 이자를 부담시키는 것은 공리에 맞지 않다. 그래서 도덕적 해이가 없는 금액을 싸게 빌려줘서 기회를 주자는 것이다.”
-은행권에서 난색을 보이지 않나.
“그것은 잘못 알려졌다. 5개 은행이 경합 중이다. 기본대출을 통해 은행은 장기 고객을 확보할 수 있다. 경기도가 지급보증을 서지 않아도 대출하겠다는 곳까지 있다.”
-기본대출도 복지정책으로 들린다.
“복합적이다. 복지 측면에서 보면 복지대상자 한 명에 연간 1,000만 원 가까이 들어간다. 이 대출을 통해 생활보호 대상자에 편입되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본전인 정책이다. 그중 한 명이 탈출하면 수십 년 동안 지원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정부 입장에선 결국 이익이 크다.”
-기본주택도 화제다. 그러나 공급이 많지 않아 효과는 의문이다.
“신규 주택을 ‘로또’ 분양해서 개발이익을 건설사와 일부 분양자가 독점할 필요가 있냐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정책이다. 좋은 위치에 충분한 면적의 초장기 공공임대주택을 짓고, 그곳에서 평생 살 수 있게 해준다면 최소한 ‘공포 수요’는 줄일 수 있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가능하고 필요한 일이란 것을 증명하고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확보한 3기 신도시 부지에 기본주택을 85%까지 짓겠다고 했는데, 국토부가 사업권을 주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국토가 모두 투기장이 됐다.
“부동산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은 대한민국 발전을 해칠 것이다. 부동한 투기는 정책 의지가 뚜렷하고 정책의 정교함만 있으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실주거용은 철저하게 보호하고, 투기로 돈을 못 벌게 하면 누가 필요하지 않은 부동산을 사겠나.”
-지금도 저항이 만만치 않다.
“불로소득을 불가능하게 하는 세제 및 금융 정책에 저항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권한은 그런 저항을 극복하라고 준 것이다. 설득해서 할 거면 권한이 무슨 필요가 있나.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정책이 아니다. 모든 정책은 저항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토지를 다 사들여서 80% 정도를 공공에서 공급하니 투기 안 하고 다른 것 열심히 하지 않나. 우리도 그 길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공정을 내세웠지만, 역풍을 맞고 있다.
“제일 큰 이유는 공직자가 책임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이익을 추구하는 건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다. 문제는 합리적으로 경쟁하도록 규칙을 만들고 감시하는 게 공공의 역할인데, 공직자가 그 역할을 포기하고 스스로 부정부패를 저질렀다. 그러면 될 일도 안 된다.”
-사실상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공직자는 주어진 역할을 하는 자리다. 그 역할은 국민이 정하는 것이다. 정말로 작은 기회를 놓고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 젊은 세대 입장을 이해하고 탈출구를 만들어 주는 게 지금 필요한 역할이다. 지금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해서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
[파이낸셜뉴스]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의 호언장담과 달리 집값이 되레 고공행진하면서 우울과 절망을 토로하는 젊은이의 청원 글이 화제다.
지난 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20대 청년의 호소문] 문재인 대통령님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극단적 선택을 고민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을 20대 후반 청년이라고 소개한 작성자는 “요즘 불안한 미래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운을 떼며 “너무 올라버린 집값으로 안락한 집과 행복한 가정은 ‘꿈’이 되었다”고 적었다. 그는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집마련’을 위해 오늘도 불안을 안고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작성자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실망감도 내비쳤다. 그는 “촛불정부를 표방하고, 집권 초기부터 부동산 안정화를 호언장담했고 오랫동안 쌓인 폐단을 끊겠다고 외치며 전방위적인 개혁을 약속한 이번 정부만큼은 다를 줄 알았다”며 “하지만 문재인 정부를 향한 국민의 믿음은 얼마 안 가 산산조각 났다. 부동산 가격은 정부와 대통령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반대 곡선을 그리며 끝을 모르고 우상향했다”고 분노했다.
그러면서 그는 “제 가족도 집값을 안정화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말을 믿고 ‘내집마련’을 미뤘는데, 제 가족은 어느 순간 벼락 거지가 됐다”며 “그것이 곧 불행의 시작이었다”고 푸념했다. 이어 “그 한번의 선택이 부모님 노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후회하고 또 후회했다”며 “정부의 말을 믿은 제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다”고 울분을 토했다.
작성자는 “흔히 ‘부동산 블루’'라고 불리는 부동산 (문제에 따른)우울증을 앓게 되었고 고통스러운 나날은 2019년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성자는 “집값은 하루하루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연일 신고가”라며 “이제 근로소득을 통한 ‘내집마련’은 불가능해졌고, ‘내집’이라는 단어는 신기루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짚었다.
또 그는 “극소수의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대한민국 청년의 꿈과 미래와 희망은 처참히 짓밟혔다”며 “이로 인해서 현재 대한민국 청년들은 꿈이 아닌 돈을 좇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작성자는 “정부와 여당은 현재 주식·비트코인에 투자하거나 결혼을 미루는 2030을 욕하지 마시라”며 “국민의 마음을 돌리는 길은 진심 어린 사죄와 책임 있는 행동밖에 없다. 거짓과 위선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막으려고 하지 마시라”고 날을 세웠다.
지난 11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있다. /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