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쇄신 한다는 한나라당 똑같은 사람끼리만 싸워
당헌·당규 따지는 민주도 시대 변화 모르는 사람들
박근혜 경제공부 더 필요 친박계 자진 불출마 해야
정치 관심 없다는 안철수 대통령감 여론몰이 안돼
대담= 온종훈 정치부장 jhohn@sed.co.kr
정리=고광본기자 kbgo@sed.co.kr
유병온기자 rocinante@sed.co.kr
사진=김동호기자 dhkim@sed.co.kr
- 입력시간 : 2011.12.15 17:36:46
- 수정시간 : 2011.12.15 20:54:29
김종인(72ㆍ사진)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말에는 날이 잔뜩 서 있었다. 김 전 수석은 군부 권위주의 시대인 노태우 정부 시절 우리나라 경제를 총괄 지휘하면서 대기업의 유휴부동산 4,800만평을 매각하도록 하는 등 재벌개혁론을 주창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에도 국회에 진출, 여야를 가리지 않고 기성권력을 향해 쓴소리를 해 '큰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 전 수석은 이 같은 독특한 캐릭터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안철수ㆍ박근혜 모두의 멘토'라는 모순적인 별칭까지 얻었다.
김 전 수석은 특히 지난 1987년 개헌 당시 경제민주화를 담은 헌법조항 119조 2항을 만든 인물로도 유명하다. 요즘처럼 양극화 등 사회 경제적 불균등이 정치 문제화하고 있는 시점에서는 더욱 시사하는 점이 크다.
이 때문에 여야 모두에서 삼고초려(三顧草廬)를 해서라도 영입해야 되는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이 나이에 구차하게 욕 얻어먹어가면서까지 정치를 할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의 직선적인 성격은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나왔다. 내년 대선의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는 "(경제에 대해)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고 여전히 공부를 더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두고서는 "(정치의 기능과 역할을 잘 몰라) 대통령 감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선 내년 대선 전망부터 말씀해주시죠. 최근 안 원장과 박 전 대표가 가장 높은 지지율을 얻고 있는 상황인데요.
▦우선 안 원장에 대해서는 얘기하기가 싫습니다. 답을 안 하기로 했어요. (정치에) 관심도 없다는 사람을 무슨 대통령 감이라고 언론이 여론 조사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언론이 국민을 상대로 장난치는 겁니다.
지금 현재로서는 박 전 대표가 제일 유리한 여건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의미가 없어요. 2002년 때도 노무현 후보의 지지도가 1.5%였고 이회창 후보는 40%였는데요 뭘…. 지금 야당에는 노무현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 꽤 있어요. 그리고 판 자체로만 본다면 야권이 유리하잖아요. (여권과 1대1을 형성할) 단일후보로 야권 단일화만 하면 그 후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지요.
-박 전 대표가 경제 공부 등 대선 준비를 많이 해왔다고 합니다.
▦옛날에 비하면 (경제공부는) 엄청나게 나아진 거지요. 그런데 아직 초보적인 수준이고 자기가 얘기하는 것이 다 알고 얘기하는 것 같지는 않고 옛날보다 나아진 건 있지요. 그나마 쭉 공부하면서 준비해온 사람은 박 전 대표밖에 없어요. 그런데 지금 한나라당이 저 꼴이 나서야 쉽지 않을 겁니다. 여든 야든 지금은 창조적 파괴를 하지 않으면 유권자에게 외면을 받는다고 수차례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박 전 대표가 쇄신을 위해 한나라당 전면에 나선다 한들) 똑같은 사람들 가지고 무슨 변화가 있겠어요. 이런 사람들 가지고 무슨 매력이 있겠어요. 친박(친박근혜 의원들)들은 자진해서 불출마 선언을 많이 해야 합니다.
-현재의 야권 통합 과정은 어떻게 보시나요.
▦(11일 전당대회와 관련해) 지금 같은 시기에 당헌ㆍ당규 따지는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지금 광주ㆍ전남에서도 민주당이 인기가 없어요. 더욱이 (폭력으로 얼룩진) 저 꼴을 보였으니 더 난리지요. (전대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은) 원래 당비도 안 내요. 국민 경선을 하더라도 당원지분이 있으니까 그 지역 위원장들이 당원들 당비까지 다 내주는 겁니다.
법원에 (전대 무효) 가처분 신청을 냈다고 하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겁니다. 박지원(전 원내대표)은 이것 때문에 완전히 망했어요. 이 사람들은 시대가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내년 총선은 어떻게 보세요.
▦지역에서 명망 가진 무소속이 많이 될겁니다. 민주당, 한나라당 다 쇄신한다면서 생판 알지도 못하는 젊은이들 다 내보낼 것이라는 말입니다. 근데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안 됩니다.
-요새 여야 모두 '복지강화'가 추세입니다. 복지전문가이기도 하신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지금의 복지는 구심점이 없어요. 한쪽은 무조건 복지를 많이 하자는 쪽이고 한쪽은 가급적 덜 하자는 쪽이니까. 논쟁만 하다 말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말하지도 못하고.
-현 정부도 영유아 예산 등 복지 예산을 꽤 확충하려고 하는데요.
▦영유아 예산이나 보육예산은 복지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지금 우리나라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저출산 극복인데 그것(영유아ㆍ복지 예산)을 안 하면 저출산이 해결됩니까. 우리나라 성장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일 시급한 과제가 그것인데. 복지 개념을 (그렇게) 광범위하게 잡아 이것도 복지, 저것도 복지라고 하면 예산이 감당할 수가 없지요.
무상급식 문제도 그래요. 정부가 무상급식을 하려면 부자나 가난한 사람 따지지 말고 다 해줘야 합니다. 안 하려면 아예 다 안 하든지. (그렇게 하려면) 세입을 확대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현재 예산구조로 조정할 수 있는 게 있는지 보고 그것 가지고도 안 되면 예산 증액을 해야 하는데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닙니다.
지금 이런 것을 체계적으로 인식하고 얘기하는 사람이 정치권에는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한쪽에서는 모두 다 무상, 또 한쪽에서는 재정 핑계 대면서 안 된다고만 하는 거지요. 기본적으로 경제ㆍ사회 정책에 대해 공부를 제대로 안 한 사람은 복지를 할 수가 없어요.
복지는 일시적으로 중단되는 게 아니라 지속성을 가져야 해서 경제 정책과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 (이것을) 아는 사람 하나도 없이 정치권에서 떠들기만 하고 있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경제 정책은 (복지 공급을 늘리는 게 아닌) 복지수요를 줄이는 쪽으로 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복지 수요가 무한대로 늘어날 수밖에 없어요.
-최근 청년실업 등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데요.
▦일자리는 결국 경제가 제대로 성장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명확히 알아야 해요. 예를 들어 정부가 인구 30만~50만명이 되는 곳에 롯데마트나 이마트를 허용하면 중소상인이 다 죽어요. 그러면 또 거기서 고용 문제가 생겨나는 겁니다. 영세민도 늘어나는 것이고. 그러면 또 복지 수요가 늘어나죠. 이런 걸 사전에 차단을 못하기 때문에 사회 구조가 이 꼴이 된 겁니다.
이렇게 된 데에 가장 큰 죄가 김영삼 전 대통령한테 있어요. 국제통화기금(IMF)을 가져오게 했기 때문에 경제 사회 구조가 이상하게 됐거든요. 그 다음에 김대중 대통령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나타나서 (문제를) 쉽게 해결한다고 완전히 재벌 위주로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러고 나선 꼼짝을 못해요. 이 사람들(재벌) 이익에 반하는 제도를 못 만드는 겁니다.
-노태우 정부 때 재벌개혁을 강력히 추진했던 입장에서 지금 상황을 어떻게 보세요.
▦참 불공평한 게 지금 큰 재벌들은 부모로부터 물려 받을 적에 세금을 전혀 안 냈어요.
우리나라가 과거 압축성장을 하면서 재벌 구조가 만들어졌어요. 그것을 어느 한때 재조정했어야 하는데 어느 정권도 못하고 지금까지 온 겁니다. 그러면서 정치 권력이 재벌 세력에게 꼼짝도 못하게 됐습니다. 내가 노태우 정부 때 굉장히 힘이 센 사람이었는데 그런 나한테도 (재벌들이) 협박을 하는데 장관들은 눈에 띄지도 않지요. 내가 이름까지 밝혀서 어떻게 협박했는지 곧 자서전을 낼 겁니다.
재벌은 무소불위입니다. 법 위에 있어서 법의 적용을 안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내가 헌법 119조 2항(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취지가 여기에 있어요. 그걸 안 만들어 놓으면 재벌을 나중에 제어할 방법이 없거든요.
우리나라 역사에서 소득분배가 가장 공정하게 이뤄졌던 기간이 1988년부터 1992년도까지입니다. 그때는 민주화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노조의 힘이 셌거든요.
-퇴임 1년을 앞둔 이명박 정부에 할말이 있다면 해주시죠.
▦내일모레 되면 대통령을 끝낼 사람인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다만 다음 대통령은 과연 한국 사회를 어느 정도로 제대로 인식하고 있느냐, 인식했으면 어떤 방법으로 해결할 복안을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것도 없이 대통령만 하고 싶어 하면 또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가 강조하는 게 무엇을, 어떻게 누구와 함께 하느냐입니다. 그것을 사전에 다 노출시켜야 합니다. 투명하게.
-우리 사회에 편가르기 현상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진보ㆍ보수를 나누면 안 됩니다. 언론이 근데 진보ㆍ보수를 너무 강조합니다. 특히 중요 언론이 그렇습니다. 그것을 원하는 게 아니고 미국도 최근 공화당의 티파티, 민주당 강경파들 그것 때문에 국가가 마비돼 움직이지를 않잖아요. 내년에도 (총선 이후) 국회가 형성되고 난 다음에 얼마만큼 혼란이 올 것이냐가 걱정이에요. 국회가 여소야대 되면 그 국회가 절대 조용하지 않을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보면 보수ㆍ진보 따지는 나라 치고 잘되는 나라가 없어요.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후에는 보수ㆍ진보 개념이 없어졌는데….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언론 환경은 어떻게 보세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논란도 있고요.
▦미국이 나라가 엉망이 될 뻔하다가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들어와서 공화당 출신 대통령임에도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했어요. 당시 루스벨트는 젊은 나이에 대통령이 된 사람인데, 그런 걸(진보 정책) 어디서 알고 그랬냐고 하니 당시 미국 주간지가 기업 횡포를 낱낱이 쓴 내용을 대통령이 되기 전 많이 읽었대요. 그런 걸 인식하고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그 유명한 록펠러의 스탠드오일 독점도 깨지고 그런 겁니다.
오늘날 일본이 어려운 상황에 빠진 게 뭐냐면 지난 40~50년 동안 비판이 없는 사회가 됐기 때문이지요. 자유당 정권 50년 동안 국익을 내세워 (비판을 억누르고) 언론도 찬사만 보내다 보니까 저렇게 된 겁니다. 우리나라도 걱정스러운 게 일본을 닮아가려는 습성이 있어요.
종합편성채널 등이 허용되면서 이제 우리나라도 주요 영향력 있는 신문이 비판 기능을 잃었어요. 정부가 SNS를 규제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망신입니다. 망신. 한쪽에서는 ITㆍ디지털 강국이라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걸 막는 것을 해서는 정당성을 찾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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