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통령 선거에 이어 6. 4 지방선거에서 시민들은 여전히 선거관리위원회에 높은 불신을 나타냈다. 각종 개표 부정 의혹이 제기되고 선관위의 부실 관리 실태가 곳곳에서 드러났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다음 선거 때부터 선거 후보자들이 수개표 검증을 공동 공약으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선관위에 불신을 표하고 있다.

 

높은 투표율을 보였던 사전 투표는 전산망 오류 문제와 비밀투표 침해 우려 등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달 30일~30일 진행된 사전투표는 투표의 편의성으로 인해 호평을 받았다. 투표율 역시 높게 나오면서 시민들의 투표 참여 문턱을 낮췄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전투표의 부작용이 나오고 있다.

 

우선, 선관위는 사전투표 용지의 QR 코드 정보에 대해 개인 정보를 담고 있지 않고, 코드 정보를 알아내더라도 개인 정보를 역추적할 가능성은 없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지난달 31일 서울 강북구 우이동 주민센터에서 투표용지가 투표자수보다 3표 더 많이 발급된 사실이 발견됐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전산망의 일시적인 오류로 발급내역이 입력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투표용지 3매 중 2매는 유권자를 통해 투표가 진행됐고 나머지 1매는 진짜 투표가 진행된 것인지 투표관리원의 실수인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선관위의 해명은 수많은 유권자 중에 투표용지 2매를 배부 받은 유권자를 특정할 수 있었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사전투표 역추적 의혹을 제기했던 이모씨는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특정해서 용지를 발급해준 것을 알았다는 것은 통합인명부 전산망에서 확인해서 한 것으로 보인다”며 “QR코드에 투표용지를 발행한 시간 등이 기록돼 있을 수 있다. 결국 선거인명부와 QR코드화된 투표용지를 받은 사람의 정보가 매칭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전투표용지를 QR코드화 한 것도 법적 근거가 희박하다. 지난 2월 14일 개정된 공직선거법 158조 6항에 따르면 사전투표 용지는 바코드 형태로 인쇄하도록 명시돼 있다. 선관위는 바코드 형태와 QR코드는 같은 것이라고 하지만 엄연히 다르다. 바코드에 담을 수 있는 일련번호 숫자는 20여개에 불과하지만 QR코드에 담을 수 있는 일련번호 숫자는 30여개가 넘는다.

 

시민들은 공직선거법상 투표 용지를 QR코드화해서 인쇄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지만 선관위는 별다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 전남 여수지역에서 감열지로 된 개표상황표가 검게 그을려 있다. 사진=정병진 제공
 

이번 지방선거부터 개표상황표 인쇄 용지로 사용하고 있는 감열지도 훼손 우려가 제기되는데 현실로 나타났다. 선관위는 개표상황표 인쇄 감열지는 5년 이상 보존할 수 있도록 제작돼 훼손 가능성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남 여수 지역에서 개표 도중 출력된 개표 상황표가 검게 그을려 출력되는 사례가 나왔다. 선관위는 투표지분류기가 과열돼 검게 그을린 현상이 나왔다고 해명했지만 선거 개표 결과의 근거가 되는 공문서인 개표상황표 상태가 훼손됐다는 것 자체로 문제가 크다.

 

전국 곳곳에서 선관위의 부실 관리로 인한 문제도 발생했다.

안양시장 선거 개표 과정에서는 선거 사무원이 박당 1동 투표함 득표수를 입력하지 않고 다른 투표함으로 중복 처리했다. 새누리당 후보에게 지고 있던 새정치민주연합 최대호 후보는 부정개표 의혹을 제기해 재검표 소동까지 벌어졌다.

 

제주시 이도2동 개표 과정에서는 대구 달서구청장 투표용지가 발견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충북도지사 투표함에서도 청주시 차선거구 투표용지가 나와 개표원들이 당황해했다. 서울 동작구에서는 빨간 인주가 찍혀야 하는 서울특별시장선거투표 용지가 파란색으로 돼 있는 용지가 발견됐다. 한 누리꾼은 "일산동구 개표소에서 사전투표 정발산동 1130표가 와야 하는데 746표만 왔다. 거의 400표가 어디론가 사라졌다"며 관내 사전투표용지 교부상황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해 볼 수 있는 투표율 현황 자료에서도 오류가 나왔다. 4일 오후 4시와 5시 사이 충남지역의 사전투표와 거소투표를 합한 표가 20만565명에서 17만7830명으로 투표수가 줄어버렸고 전남지역 사전투표와 거소투표를 합한 투표수도 28만8352명에서 27만7411명으로 줄어들었다.
 

   
▲ 파란 인주로 인쇄된 투표용지
 

경기도 의정부시에서는 이중투표 논란이 일었다. 선관위는 이모씨가 사전투표를 해놓고 선거 당일 투표를 해 이중투표를 했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하지만 결국 선거진행요원이 선거인명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벌어진 일로 밝혀졌다. 선거진행요원이 이모씨와 동명이인을 헷갈려 이중투표를 했다고 한 것인데 사실상 투표를 하기 위해 온 유권자를 범죄자로 몬 것이다.

사전투표 용지를 담은 회송용 봉투에 적시된 바코드를 추척하면 이씨의 해당 투표용지를 찾아 무효화시키겠다고 선관위가 밝힌 것도 논란이 됐다. 비밀투표 보장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관위 스스로 고백한 셈이 됐기 때문이다.

2012년 대통령 선거 투표 용지가 이번 지방선거 투표함에서 나온 것도 심상치 않다. 선관위는 대선 당시 기표를 하지 않고 투표용지를 빼돌렸다가 지방선거 투표함에 넣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기표 후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넣을 때 투표 진행 요원이 앞에 서 지켜보고 있고 설령 투표용지를 넣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각 지역구에서 투표자수와 투표용지의 수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선 투표 용지가 나왔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중앙선관위는 논란이 커지자 5일 보도자료를 통해 “2014. 6. 4. 19시경 울주군선관위 개표소(울주군민 체육관) 제5개함부에서 투표지를 구분하는 작업을 하던 중 발견된 제18대 대선 투표지를 그 당시 투표관리관에게 확인 한 바, 대선 당시에 울주군 삼동면 제1투표구투표관리관으로서 교부한 것으로 구두로 인정하였으며, 개표상황표를 확인한 결과 투표용지 교부수 742매, 투표수 741매로 투표지가 1매 차이가 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