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보수…세월호 심판이 살린 야당

등록 : 2014.06.05 20:24수정 : 2014.06.05 23:58

재선에 성공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5일 오전 청사 집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박 시장은 이날 출근길에 “새 기분, 첫 마음 그대로 원칙과 기본이 살아 있는 반듯한 시정을 펼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뉴스분석]
겉으로 보면 여야 무승부지만
여, 세월호 참사 악재에서도
광역단체장 늘고 정당득표 앞서
‘읍소’ 전략에 보수층 막판 결집
무기력한 야당, 심판론 믿다 낭패

새정치민주연합은 6·4 지방선거에서 서울과 강원·충청, 호남에서 9명의 광역단체장을 당선시켰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 7곳(인천·강원·충남·충북·광주·전남·전북)에 견줘 ‘선전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싹쓸이’까지 기대했던 수도권에서 새정치연합은 서울 한곳만을 건지는 데 그쳤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5일 트위터에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도, 기대했던 최상의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는 소감을 띄웠다.

그러나 한 단계 더 깊게 들어가 보면 ‘보수 약진’이 보인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은 2010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은 6명에서 만족해야 했지만, 올해는 8명으로 늘었다. 2010년 당시 무소속으로 승리한 경남과 제주 당선자가 야권 성향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비새누리당 광역단체장은 10명에서 9명으로 줄어든다.

기초단체장에서는 새누리당 약진이 더 뚜렷하다. 전국 기초단체장 226개 선거구 가운데 새누리당이 117곳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80곳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당선자가 82명, 민주당(현 새정치연합) 당선자가 92명이었다. 무소속 당선자는 36명에서 29명으로 줄었다. 새누리당 당선자 수는 42.6% 늘어난 것이다.

또한 정당 지지층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광역비례 정당득표율을 보면 새누리당은 호남과 대전·세종을 제외한 모든 광역 단위에서 새정치연합을 앞섰다. 심지어 박원순 새정치연합 후보가 56%의 표를 얻은 서울에서도 정당득표수는 새누리당(220만1146표, 45.38%)과 새정치연합(220만901표, 45.38%)의 표는 엇비슷했다. 한국 사회의 보수 우위 구도가 다시 확인되는 결과다. 지병근 조선대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과도한 기대를 걸 만큼 여론이 움직인 건 사실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실책을 저질러도 변함없이 지지를 보내는 35~40%의 지지층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에 따르면 한국의 ‘보수 대 진보’ 이념 분포는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2002년 이후 보수 쪽으로 꾸준히 기울어져왔다. 정당학계에선 2002년 당시 ‘5 대 5’로 팽팽했던 구도가 현재는 ‘6 대 4’ 정도의 보수 우세로 변화한 것으로 본다.

이런 기반 위에서 새정치연합 후보들이 광역단체에서 그나마 선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인물 중심 구도 덕분이었다. 광역단체장 개표 결과에서 새누리당 후보들과 무소속을 포함한 ‘비새누리당’ 후보들이 얻은 총 득표수를 보면, 17개 광역단체 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이 얻은 득표수는 1072만1551표인 반면, 비새누리당 후보가 얻은 표는 1125만9959표로 표 차이는 53만8408표다. 상대적으로 ‘비새누리당 후보’들이 인물론을 바탕으로 당 차원의 득표보다 더 많은 표를 받은 셈이다.

선거에서의 표심은 이념에 대한 유권자의 주관적 확신이 아니라, 인물·구도·정책에 따라 좌우된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이념적으로 견고한 유권자층은 ‘35(보수) 대 25(진보)’ 정도다. 관건은 40%의 중위 유권자층을 누가 효과적으로 끌어오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결국 광역단체장 선거에서는 후보 중심의 운동이 상대적으로 성공했지만, 다른 부문은 모두 여당의 승리로 돌아간 것이다.

실제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벌어진 격전지 여론조사는 세월호 참사와 새누리당의 ‘읍소 캠페인’을 전후해 크게 요동친 것으로 나타난다. 새누리당 지지층이 세월호 참사 이후 크게 위축됐다가 읍소 캠페인이 시작된 선거일 3~4일 전 빠른 속도로 결집한 것과 달리, 야당 지지층은 뒷심을 발휘하지 못하고 정체되면서 역전을 허용했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의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세월호 참사 뒤 당은 무공천 파동에 발목잡혀 선거 준비는 물론 이슈 대응도 제대로 못하고, 막판엔 ‘심판론’에 기댄 것 말고는 한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이번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이 대거 약진한 것에서 보듯 이제 유권자들은 경쟁과 개발보다 생명과 안전, 인간 존중의 가치가 더 중요하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 정당이 이러한 유권자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심판론 같은 정치 구도 설정만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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