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나쁜나라' 본 관객들 티켓 나눔 행렬 출처 노컷뉴스 | 작성 CBS노컷뉴스 유연석 기자 | 입력 2015.12.20. 18:51 | 수정 2015.12.20. 18:51

기사 내용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의 1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쁜 나라'가 지난 18일 관객수 1만 명을 돌파하며 그 저력을 입증한 데에 이어, 이번에는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의 티켓 나눔 행렬이 이어지고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시작은 ‘대구 오오극장’이었다.

지난 15일 오후 ‘대구 오오극장’ 페이스북에 “'나쁜 나라'를 보신 관객 한 분께서 영화를 보고 난 후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12월17일 목요일 오후 8시 '나쁜 나라' 전석을 구매하시고 55장의 표를 오오극장에 맡기셨다. 아직 '나쁜 나라'를 안 보신 분들이 있다면 꼭 보셨으면 좋겠다며 전석을 구매하신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관객 분의 작은 바람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지난 12월 17일 진행된 대구 오오극장에서의 티켓 나눔 현장 (출처 : 대구 오오극장)
지난 12월 17일 진행된 대구 오오극장에서의 티켓 나눔 현장 (출처 : 대구 오오극장)

17일 티켓 나눔 당일에는 긴 줄이 생길 정도로 많은 관객들이 극장을 방문하였다. 55개의 좌석이 금새 매진이 되는 바람에 돌아가는 관객들이 생길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는 후문.

영화 '나쁜나라' 중. (제공 사진)
영화 '나쁜나라' 중. (제공 사진)
뒤이어, 지난 15일 '나쁜 나라' 공식 페이스북에도 “세월호를 기억하는 독립PD들이 '#‎나쁜나라'와 함께합니다! 영화를 보다 많은 관객들과 나누고자 티켓을 후원해주었습니다! 선착순 160명의 관객 분들께 관람기회를 선물하고자 합니다.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한 뜻 깊은 자리에 함께 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와 화제를 모았다.

이는 독립PD들이 십시일반으로 극장 한 관을 전 석 대관하여 관객들에게 무료관람 기회를 제공하는 취지에서 진행된 것으로, ‘세월호’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고 있는 시민들의 열띤 신청으로 매진을 이룰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영화 '나쁜나라' 중. (제공 사진)
영화 '나쁜나라' 중. (제공 사진)
이러한 행렬에 힘입어 부산에서도 익명의 관객이 티켓을 기부하여 훈훈한 풍경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 국도예술관은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오는 19일 낮 12시 타임의 티켓 40매를 익명의 관객 분이 기부한다고 밝혔다.

“국도에서 일하는 8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순간 고민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리 작은 영화라도 어떤 방식이 되었든 무료로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것이 국도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기에 예매를 한 좌석이기는 하나 불특정다수에게 무료로 보여준다는 것에 순간 멈칫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컸고 아픔을 함께하고 싶어하시는 기부자 분의 마음을 관객 분들에게 전하고 싶기에 티켓 나눔 진행합니다”라는 메시지였다.

영화 '나쁜 나라' 중. (제공 사진)
영화 '나쁜 나라' 중. (제공 사진)
이러한 티켓 나눔 행렬은 또 한번 이어져 ‘크리스마스 이브’날인 오는 24일 19시 30분 인디스페이스 티켓 100석을 구입한 익명의 관객이 티켓 나눔을 약속했다.

관객의 연락을 받은 배급사 시네마달은 '나쁜 나라' 공식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익명의 관객에게, 그리고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있는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던 그 약속을 '‪‎나쁜 나라' 티켓나눔으로 실천해주시는 분들이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번엔 '세월호'와 함께한다면 더욱 따뜻해질 '크리스마스 이브'날 진행됩니다. 익명의 관객 분께서 배급사로 100명의 관객들께 티켓을 나누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로는 이 마음을 전부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감사합니다.”
‬‬
이처럼, 열악한 상영관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마음으로 극장을 찾고 있는 관객들과 꾸준히 함께하고 있는 '나쁜 나라'는 관객들의 티켓 나눔 행렬으로 또 한번 의미 있는 행보를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CBS노컷뉴스 유연석 기자] yooys@cbs.co.kr

주차단속알림서비스’ 77개 지자체 통합… 문자 하나로 알림 받는다

  • 입력:2015.12.20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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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차단속알림서비스’ 77개 지자체 통합… 문자 하나로 알림 받는다 기사의 사진
[쿠키뉴스=이은지 기자] 주차단속알림서비스가 전국적으로 통합된다.

행정자치부·국토교통부·교통안전공단은 20일 정부3.0 정책과제로 ‘주정차 단속구역 사전 알림 서비스’(주차단속알림서비스)의 전국 일괄신청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전국 77개 자치단체는 주차단속에 앞서 차를 이동하라고 알려주는 문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지만, 문자알림을 받으려면 자치단체마다 따로 신청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후로는 한 번 신청으로 77개 자치단체의 서비스를 모두 받을 수 있게 된다. 

광명시, 수원시, 의왕시, 당진시, 부여군, 영등포구, 구로구 등 7곳이 서비스 신청 통합을 완료했으며, 여주시와 창원시 등 9개 지자체도 통합 작업을 진행 중이다. 나머지 지자체들도 통합 문제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주차단속알림서비스 통합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앱 ‘주정차 문화 지킴이’를 다운로드 받거나 교통안전공당 웹사이트에 가입하면 된다. 교통안전공단 콜센터에서도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안내된다. rickonbge@kmib.co.kr 
안철 수는 누구인가?
12/03/2011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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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그는 누구인가?

 

 

[구미뉴스]=안철수는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대 본과에 재학중이던 1982년, 같은 방에서 하숙하던 친구가 가지고 있던 애플 컴퓨터를 구경하면서 처음으로 컴퓨터와 접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생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그는 생리학 실험에 쓰이는 기계를 컴퓨터와 연계시켜보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 언어인 기계어를 공부하다가 1988년 컴퓨터 바이러스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프로그램 '백신'을 개발해 '컴퓨터 의사'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어 국내에서 발견되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해 연구를 계속한 그는 '백신'을 개정해 '백신2'(V2)와 '백신2+'(V2+)를 내놓았고, 박사과정을 마치고 해군 군의관으로 입대하던 1991년에는 '백신3'(V3)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들을 모든 사용자에게 공개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다.

1995 년 안철수는 결국 의사의 길을 버리고 안철수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 설립 후 그는 곧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을 공부하고 돌아왔다. 미국에서 유학하던 1997년 실리콘밸리에 머물던 중 현재의 경쟁회사인 네트워크어소시에츠(당시 맥아피사)로부터 최소 1,000만 달러에 인수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하기도 했다.

안철수는 1998년 초대 소프트웨어벤처협회 회장, 2003년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KISIA) 회장을 지냈다. 회사 설립 10주년이 되는 2005년 그는 CEO 자리에서 물러나고 이사회 의장으로만 활동했다.

저서로는〈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1995)·〈바이러스 예방과 치료〉(1997)·〈영혼이 있는 승부〉(2001)·〈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2004) 등이 있다.


 

 

안철수(安哲秀, 1962년 2월 26일 ~ )는 대한민국의 의사, 프로그래머, 벤처 사업가이자 대학 교수이다.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의학 석·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990년에는 당시 최연소인 만 27세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3] 의대 재학 중에 컴퓨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후 대한민국 최초의 백신 프로그램인 V1, V2와 V3를 만들었다.[4] 이후 7년간 의사 생활을 하면서 백신을 무료로 제작·배포했다.

1995년 2월엔 의대 학과장을 그만두고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백신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5] 이후 2005년 3월까지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이후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MBA를 취득한 뒤, KAIST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2011년에는 서울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차세대융합기술원장을 맡았다. 차세대융합기술원장 직은 2011년 10월 28일 사임했다.[6]

2011년부터 안철수의 행보는 정치적으로 해석되기 시작했다. 안철수는 2011년 중순부터 최측근으로 알려진 의사 박경철과 함께 전국을 누비는 ‘청춘콘서트’를 했다. 청춘콘서트 일정 도중 안철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의사를 내비쳤고, 결국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안철수의 등장 이후 한나라당, 민주당 등 정치권은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안철수 영입 의사를 밝혔다. 안철수 본인이 2012년 대선 출마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철수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여러 언론과 전문가들은 2011년 하반기 안철수의 등장 이후 바뀐 정치, 사회적 현상을 ‘안철수 현상’으로 불렀다.

한편 이러한 사회와 정치권의 '안철수 현상'에 대해 다음의 시각도 있다. 보수진영의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근혜와 안철수를 대척점에 두고 분석한 이상윤저 '안철수등의 한판승부-박근혜벗기기'(높은새출판사 ISBN 978-89-93989-04-5) 의 안철수편에는 안철수의 인기는 사실상 거의 같은 시기에 전국을 강타한 애플사 스티브잡스 죽음의 영향을 받은 것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현재의 취업난과 승자독식구조의 경쟁구조에 내몰린 한국의 청년들은 안철수를 한국판 빌게이츠나 스티브잡스로 오버랩하면서 같은 IT선도기술자로서 그리고 자신의 노력으로 엄청난 부까지 이룬 점에서 본받을 인물로 꼽게 되었고 이것이 청춘콘서트에서 확인되면서 이른바 안풍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며 정치권의 영입노력으로 이어졌다는 시각이다[7].

 

 

목차

 

[편집] 생애

[편집] 학창 시절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며 부산동성초등학교, 부산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학창 시절에 60명 중 30등을 할 정도로 평범했으며 운동 등 특별히 잘하는게 있는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8] 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의 책을 매일 몇 권씩 읽어 결국 도서관에 있는 책은 거의 다 읽게 됐다. 도서관 사서는 매일 몇 권씩 대출과 반납을 하는 안철수가 장난치는걸로 의심해 대출을 거부할 정도였다. 안철수는 “당시 책의 페이지수, 발행 년월일, 저자까지 모두 다 읽고, 바닥에 종이가 떨어져 있으면 그것마저도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활자 중독증이었 것 같다”라고 회고했다.[9] 그러나 교과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과학책과 소설책을 좋아해 주로 읽었는데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지 사춘기도 없었다고 말했다.[10]

중간정도의 성적을 유지하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면서 1등을 차지하고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많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다른 학생들과 경쟁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편집] 의사 생활과 백신 개발

1986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이후 서울대학교 대학원 의학과 생리학 교실에서 기초의학을 전공했다. 1988년 《동방 결절 내에서의 흥분 전도에 미치는 Adrenaline, Acetylcholine, Ca++ 및 K+의 영향》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11] 1991년 《토끼 단일 심방근 세포에서 Bay K 8644와 Acetylcholine에 의한 Ca2+ 전류의 조절기전》이라는 논문으로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12]

의대 대학원에서 심장 부정맥을 연구하는 ‘심장 전기 생리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을 때 처음으로 바이러스를 발견했다.[13] 그가 컴퓨터를 공부한 이유는 의사로서 전공 실험을 더 잘하고 특기를 쌓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컴퓨터 잡지에서 컴퓨터 바이러스가 한국에 나왔다는 기사를 보고 자신의 컴퓨터와 50장 가량의 디스켓을 검사해보니 3장의 디스켓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었다.[14] 프로그램의 세부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해보니 프로그램에 누군가 (c)Brain이라고 써놓은 것이었다.[15] 그 바이러스는 최초로 파키스탄에서 나온 것이었다.[16] 어떤 형제 둘이 컴퓨터 가게를 차려 자기들이 만든 프로그램을 팔아 가게를 운영하려 했는데 하나만 팔아도 불법 복제가 되어 가게가 망하자 이 형제들이 화가 나 불법 복제를 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만든 것이었다. 이것이 바이러스의 시작이었다. 이 바이러스의 원본에는 만든사람의 이름, 주소, 집전화까지 모두 표시되어 있었으나 국내에 유입된 바이러스에는 그 부분이 누군가에 의해 지워져 있었다.[17] 이 바이러스는 한국까지 오는데 3년이 걸렸다. 그 당시엔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손에서 손으로 파키스탄에서 미국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바이러스 때문에 디스켓이 파괴되는 일이 많았으나 당시 사람들은 바이러스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에 누구도 원인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전철을 타면 디스켓이 깨진다”,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옮긴다”는 등의 괴소문이 퍼지기도 했다.[18] 안철수는 전공실험을 위해 열심히 배워두었던 컴퓨터 언어 공부를 막 끝낸 참이어서 절묘한 시기에 바이러스를 만난 것이었다. 그러던 중 후배가 안철수에게 찾아와 바이러스를 치료할 방법을 묻자 안철수는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나 후배가 이해하지 못하자 본인 자신이 직접 백신 프로그램을 만들게 되는데 밤을 세워 분석한 끝에 1988년 6월 10일 바이러스가 감염된 과정을 반대로 하면 치료할 수 있겠다 생각하여 ‘백신’(Vaccine)이란 이름의 앤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만들어 치료에 성공했다. 이것이 V3 최초 버전인 V1이다.[19]

처음으로 문서화된 컴퓨터 바이러스 제거 프로그램은 1987년에 발표된 번트 픽스(Bernd Fix)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20][21][22], 안철수는 “세계 최초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인 V1을 만들게 되었다”고 밝혔고[23] “미국의 백신 대기업들도 V1보다 1년 늦게 만든 것들이었다”라고 말했다. 바이러스 치료가 된다는 소식을 들은 많은 사람들은 안철수에게 도움을 요청해오기도 했다. 그 뒤로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혼자서 만든 백신을 무료로 배포했다. 이후 당시 악명을 떨친 LBC, 예루살렘 바이러스 등을 치료하는 기능이 추가된 ‘V2’, ‘V2Plus’ 등을 차례로 발표하면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를 하였다. 그렇게 낮에는 의사, 밤에는 백신 제작자로 7년간 이중 생활을 했으며[24] “다른 사람들에게 받은 만큼 나도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의사 생활과 백신제작을 모두 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그래서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6시까지 백신 제작을 하고, 의대에 가서는 박사 과정으로 생활했다.[25] 당시에 한국에는 안철수 말고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돈벌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안철수는 2009년 6월 한 유명 방송(무릎팍도사)에 출현해 자신이 군대에 갈 무렵 미켈란젤로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렸는데, 이에 대한 백신을 만들어 두지 않으면 3개월동안 피해가 확산될 것을 우려했다고 말하며[26], “V3 최초 버전을 군대가는 날 1991년 2월 6일에 만들어서 PC통신으로 전송하고, 입대를 했다. 내무반에서 다른 사람들이 입대 전날 가족들과 헤어진 얘기를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가족들한테 군대 간다는 말을 안하고 나왔다”[27]고 말했다. 그러나 안철수의 아내는 한 언론인터뷰에서 안철수의 군입대에 대해 "기차 태워 보내고 혼자 돌아오는데 무지 섭섭했다." [28]고 밝히며 가족에 군대 간다는 말 안해와 는 거리가 먼 답변을 했다.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는 치료하였으나 그 바이러스를 만든 범인은 끝내 잡지 못했는데 당시엔 자기 이름을 과시하기 위해 장난으로 바이러스를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일부는 취직하기 위해 일부러 바이러스에 허점을 만들어놓아 검거된 후 회사에 스카웃되기도 했다. 이후 해군 군의관(대위)으로 복무하다가 전역했다.

대학생때 만난 부인은 1년 후배로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이었다.[29] 처음에는 봉사 진료를 하다가 우연히 만났는데 같이 도서관에서 자리 잡아주는 사이로 지냈고 쉬는시간에 커피도 마시면서 사랑을 키웠다. 안철수는 “당시에는 몰랐으나 나중에 알고보니 의과 대학교에서 굉장히 유명한 커플이 되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전혀 신경쓰지 않고 함께 대학 생활을 했고 당시 궁핍한 학생이었던 안철수는 아무것도 없이 같이 살자며 프로포즈를 했다. 생각과 가치관도 비슷했고, 같은 공부에 같은 의료봉사 동아리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됐다.[30]

[편집] 벤처기업 CEO 생활

의사 생활과 백신 개발을 하는 생활을 7년 정도 했는데[31]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왔다. 컴퓨터 바이러스는 매년 2배씩 증가해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게다가 의대 교수로 재직하려면 지도 학생을 받아야 하는데 지도 교수가 학생 몰래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학생은 불행한 것이라 생각하였고, 반년간의 고민 끝에 의사 생활을 포기하고 더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백신 제작에 모든 것을 걸게 된다. 그러나 돈벌이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7년 동안 모아놓은 모든 백신 자료들을 가지고 비영리 공익 법인을 만들어 무료로 배포하려고 정부 부처를 다니며 관계자들을 설득하였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특히 삼성 소프트웨어 관련에도 찾아가 삼성 로고를 달고 배포한다고 약간의 돈과 인력을 지원해달라고 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32] 그러던 중 소프트웨어 업체 관계자가 찾아와 기업을 만들라는 조언을 해왔고 안철수는 그 의견에 동의하여 1995년 3월 15일 창업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안철수연구소이다.[33]

기업을 만들더라도 백신을 개인에겐 무료로 보급하고, 기업들에만 사용료를 받아 기업을 운영해야겠다는 생각을 굳게 가졌으며, 개인적 사용자들에 한해서 1999년 부터 도스백신 소프트웨이V3+ 네오라는 백신을 무료 제공하였다. 이후 V3+ 네오는 시그니처 수의 증가로 인해 당시 가장 보편적인 저장매체인 3.5인치 디스켓 2장이 필요하는 등 실제 이용이 매우 어렵고 제한되게 되었다. 결국 한동안 무료백신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안연구소는 알약 등의 경쟁 무료 제품의 확산을 막기 위해 빛자루 제품을 유료에서 무료로 바꾸고 V3 라이트라는 무료 제품을 연이어 출시한다. V3+ 네오V3 라이트 출시 이후 단종되었다. [출처 필요] 안철수는 사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4년 간은 많은 고생을 했다.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월급날은 매월 25일이었는데 월초부터 직원들의 월급 걱정을 해야 하는 지경이었고 자신이 월급을 받지 않고 직원들의 월급을 줄 때도 있었다.[34]

회사를 세우고 몇 개월 지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공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였다.[35] 보통 CEO들은 회사를 창립하고 회사를 키우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인 반면에 안철수는 회사를 창립한지 몇 개월 만에 유학을 갔다. 그후 한국에 남은 직원들이 2년 동안 회사를 열심히 키운 덕분에 안철수가 미국 유학 중 1997년 미국의 거대 백신업체 맥아피에게 1000만 달러에 인수 제의가 들어왔다[36]

당시 안철수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에 갔다. 보통 재벌그룹 회장 정도가 되면 직접 발표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당시 인수에 의욕을 가졌던 맥아피 회장은 안철수 앞에서 직접 발표를 하며 인수를 제안했으나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자 회장은 이전에 자신에게 회사를 매각했던 일본인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통화를 시켜줬다. 일본 대표는 “당시 회사가 적자나서 힘들었으나 많은 돈을 받고 회사를 팔고난 후 걱정도 없이 잘 지낸다”라며 안철수에게 회사를 팔라고 설득했으나 안철수는 끝내 거절했다.[37] 당시 맥아피는 전세계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었는데 안철수연구소 때문에 한국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인수한 후 안철수연구소를 폐기하고 미국 백신으로 한국 사업을 독점하기 위해서 이러한 인수를 제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안철수는 회사를 매각한다면 그 후에 직원들이 해고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또한 한국의 백신이 맥아피같은 해외 업체에 의해 장악당하는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던 것이었다. 그 결정에 대해서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고 감정을 소비하는 후회는 원래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38]

그러던 중 1999년 4월 26일 CIH 바이러스(체르노빌 바이러스) 사건이 일어나면서 적자가 나던 회사는 흑자로 전환됐다.[39] CIH 바이러스로 인해 30만대 가량의 컴퓨터가 파괴되어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수천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40] 이로 인해 바이러스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변화하게 되어 백신에 대한 관심도가 급증했다. 당시 안철수연구소는 직원이 50명 가량이었는데 하루 종일 전화가 걸려와 업무가 마비될 수준이었고 컴퓨터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매출은 급증했고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체로는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원을 돌파했고 이후 세후 순익 100억원 돌파는 안철수연구소가 최초로 달성했다.[41]

[편집] 유학·교수 생활과 이후

2005년 당시 회사의 경영 사정은 매우 좋았으나 다른 벤처 기업들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있었다. 안철수는 자신의 능력을 산업 전반에 쓸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1년 간 고민했고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여 회사를 창립한지 만 10년이 되는 날인 2005년에는 안철수연구소의 대표이사직을 사임했고 대신 이사회 의장 자리를 맡았다.[42] 당시 발표날까지 직원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안철수는 2000년에도 안철수연구소 전 직원 125명에게 각각 650주씩, 자신의 지분에서 총 8만주 (전체 발행 주식수의 1.5%)를 나눠준 바 있다. 그는 “전체가 잘될 수 있다면 개인적 이해타산과 상관없이 어떤 선택도 할 수 있는 마음 자세를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43] [44]

CEO를 그만두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교 벤처 비즈니스 과정을 거쳐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MBA 2년 과정을 밟았다.[45] 같은 시기에 딸도 미국에서 유학했는데 그 이유는 안철수의 부인이 나이 마흔에 ‘법’을 배우고 싶다며 의사를 그만두고 미국 로스쿨에 유학을 갔기 때문이었다. 5년을 공부한 아내는 캘리포니아 주뉴욕 주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안철수도 뒤늦게 미국 MBA 석사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를 마치고 가족이 도서관에 모두 모여서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하기도 했는데[46] 그 때가 가장 소중했던 기억이라고 말했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2008년 4월 30일 귀국한 안철수는 KAIST 경영학과 교수로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다가[47] 2011년 6월부터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대학원장으로 부임하면서 현재 재직 중에 있다.

2005년에는 포스코의 사외이사가 되기도 하였으며, 2010년에는 포스코 이사회 의장에 선임되었다. 또한 2010년부터 안철수연구소의 사내벤처로 출발한 소셜 네트워크 게임 업체인 노리타운스튜디오의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으며, 2010년 6월부터 현재까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제2기 민간위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2011년에는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의 이사로 선임되었다.

[편집] 철학

[편집] 일상 생활

안철수는 모든 사람들에게 나이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댓말을 쓴다. 다른 사람들에게 반말을 못하는 안철수는 심지어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에도 병사들에게 반말을 하지 못해 애를 먹기도 했다.[48] 간호사와 안철수연구소 직원과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처럼 사회적인 지위가 자신보다 낮은 사람들과 가족에게도 존댓말을 쓴다는 점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른 안철수는 부부싸움을 하느냐는 질문에 “존댓말로 한다”며 “어린 시절 자신에게 늘 존댓말을 쓰시던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라고 말했다.[49] 어머니는 안철수에게 매번 존댓말로 대해주었으며 혼낼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동안 어머니의 존댓말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고등학교 1학년 때 늦잠을 자서 택시타고 등교할 때 어머니가 “학교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자 택시기사가 처음에는 사촌이나 친누나로 착각하고 “누나가 참 착하네요” 라고 하였으나 후에 어머니라고 밝히면서 “어떻게 어머니가 존댓말을 할 수 있느냐”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의 존댓말이 평범하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됐다고 한다.

모범적인 사생활로도 유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재학 시절엔 술을 자주 마셨으나 회사를 경영하던 시절에 과음으로 건강이 크게 악화된 이후부터 술을 끊어 전혀 마시지 않고 있으며 흡연도 하지 않는다(참고로 안철수는 과음과 과로로 입원한 상태에서도 회사를 경영하다가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었다).[50] 그리고 직원들이나 남들 앞에서 화를 내본 적도 한 번도 없으며 욕을 해본 적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안철수에게 청교도적인 삶을 산다고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은 뭔가를 참아본 적도 없고 오히려 마음 편한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고 돈보다 명예가 중요하며, 명예보다 자기 마음 편한게 중요하며 그렇게 살아왔다고 말한다.[51] 매순간 재미있고 의미있는 생활을 해왔다고 자부했는데 “의사로서 계속 생활을 했다면 훨씬 단순하고 집중할 수 있는 생활을 했겠지만 의사를 그만둠으로 인해서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에 의미를 두므로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효율성 측면에서만 본다면 안철수는 자신이 가장 비효율적인 사람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이 효율성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에게 맞는 분야를 찾기 위해서 쓰는 시간은 값진 시간”이라고 하였고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기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52]

한편 안철수는 자신이 크게 성공한 것에 대해 시기가 잘 맞았다고 말한다.[53] 바이러스는 기계어를 알아야 분석할 수 있는데 적절한 시기에 기계어를 배운 상황에서 바이러스를 만나게 되어 이런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운이라는 것은 기회가 준비와 만난 순간이다”라고 하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기회가 오지만 준비된 사람만이 그 기회를 자기 것으로 가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공한 사람은 재능과 노력, 운이 모두 맞아떨어진 것이며 사회가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준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며 사회적 성공이 혼자서 이룬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편집] 경영

안철수는 CEO는 제일 높은 사람이 아니라 단지 역할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수평적인 관계에 있으며 CEO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는게 기본 철학이다.[54] 그는 회사를 경영할 때 영혼을 불어넣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인 회사지만 이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믿는 가치관이 있으면 자신이 없거나 구성원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고 계속 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55]

과거에는 바이러스가 장난의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최근의 바이러스는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바이러스 유포를 통해 개인정보를 알아낸 후 중국 등에서 한국인들의 개인정보를 암거래 하는데 사용되며 러시아마피아가 동원되는 등 조직범죄로 발전했다. 안철수는 “백신 회사는 범죄율(바이러스)이 높을수록 이익이 높아지는 아이러니한 수익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명감이 높아야 한다”고 말한다.[56] 그는 또 “돈벌이 수단으로 백신 사업을 시작한다면 오히려 사회에 해악이 된다”고 강조했는데 경찰과 군인 등도 마찬가지에 해당된다. 이를 위해 상류층의 사람들의 노력이 중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일례로 미국에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때도 사건의 핵심 인물 상위층으로 올라가면 명문 대학교를 나온 엘리트 출신들이 많으며 이들이 문제의 원인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안철수는 “사회에 똑똑한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회의감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가 와튼스쿨 MBA에서 법학 강의를 들을 때 담당 교수는 “A학점을 줄 수밖에 없는 똑똑한 학생들이 있었는데 10년 후에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감옥에 가 있었다”고 말했다며 똑똑하지만 개인적인 성공만 추구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57]

안철수는 자신과 빌 게이츠를 비교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고 말했는데 “분야도 다르고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식도 다르며, 회사 규모 차이도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58]

2011년 12월, 안철수는 자신의 안철수연구소 주식 37.1%의 절반을 저소득 가정의 자녀 교육을 위해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말했다. 2011년 12월 9일 기준으로 그가 기부할 주식의 가치는 약 2500억 원이다.[59]

[편집] 교육

“부모가 자녀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만 하고 자신은 책을 읽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그것을 따라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모범을 보이지 않고 강요만 한다면 아이들은 책읽는 흉내만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이의 독서습관을 키워주기 위해선 부모의 솔선수범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60]

[편집] 벤처와 중소기업

안철수는 “대한민국의 벤처기업 95%는 망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혹자는 “요즘 세대들은 너무 안전지향적이다. 도전정신이 없다”고 말을 하는데 안철수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카이스트에서 학생을 가르쳐온 안철수는 학생 개개인이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학생들은 도전 정신을 가지고 있고 호기심이 왕성하다”며 “다만 그런 도전정신이 강한 학생들을 사회가 더 큰 힘으로 안전지향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몰아붙이는 사회 구조가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61]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성공의 요람이라고 하는데 안철수는 “실패의 요람”이라고 바꿔 말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실리콘밸리에서는 100개의 기업이 나타나면 99개는 망하고 1개만 생존한다. 실패한 기업에게 도덕적인 문제가 없고 최선을 다했다면 계속 기회를 주는 것이다. 99번 실패를 하더라도 1번 성공하여 1,000배의 성공을 하게 된다면 그동안의 실패를 전부 갚고도 남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이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모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실패한 사람에게도 계속 기회를 주는게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살리는 길이며 벤처와 청소년을 살리는 길이라고 이 같은 말을 했다.[62]

[편집] 서울시장 선거 출마 관련

안철수는 여야 정치권에서 정치 입문 제의를 많이 받아왔다. 젊은층의 지지로 인해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것을 제의한 적도 있고, 참여정부에서 정보통신부 장관직 제의를 받은 적도 있으며 청와대 수석, 국회의원 출마 제의 등등 종류별로 다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63] 안철수는 “정치를 잘할 자신이 없고 힘(권력)을 즐기지 못하기에 거절했다”며 “실무적인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64]

이처럼 안철수는 일관되게 정치 입문을 부인해왔으나 2011년 8월 이후로 윤여준이 “안철수가 서울시장 (재보궐선거[65]) 출마 가능성이 있다”고 언론에 알리면서 화젯거리가 됐다. 이전에 정치 입문에 대해 단호하게 부인해왔던 안철수의 입장도 애매하게 바뀐 것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됐으며 9월 실시된 ‘청춘콘서트’에는 수십 여명의 기자가 몰려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안철수의 출마설은 한나라당민주당 모두를 긴장시켰고 젊은층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비정치인 인물로써 정당들이 그동안 안철수 영입에 노력해왔음에도 매번 실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66]

안철수는 ‘무엇인가 도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을 세 가지 들었다.

(1) 내가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지
(2)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할 수 있는 일인지
(3) 실제로 내가 일을 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인지[67]

이 중에서 안철수는 “의미 (1)를 느꼈는데 (2)와 (3)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아 (출마를) 거부했다”며 “그런데 최근 들어서 세 번째 의문이 풀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을 조율하는것에 대해서도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으나[66] 일각에서 제기된 행정경험 부족에 대해 “그동안 대학원장과 대기업 CEO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에 행정운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충분히 할 수 있을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정서상 한나라당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66]

안철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면서 “내가 생각할 때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것은 현재의 집권세력이다. 한나라당은 응징을 당하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래야 역사가 발전한다”라며 “그럼 답은 명료하다. 나는 현 집권세력이 한국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 내가 만일 어떤 길을 선택한다면 그 길의 가장 중요한 좌표는 이것(한나라당이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68] 그는 또 “나는 (박정희 독재정권 시대인) 1970년대를 경험했다. (현 집권세력이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이거 거꾸로 갈 수도 있구나 생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69]

서울시장 출마 고민에 대해 안철수는 “행정이기 때문에 고민을 시작한 것이라기 보다는.... 당장 이렇게 여러 일 때문에 (서울시장) 자리가 열려있는데 이걸 또 이상한 사람이 망치면 분통 터지는 일이다. 그게 고민의 시작점이었다. 정말로 자격 없는, 정치적 목적으로 시장 일을 하면 안 된다는 뜻이에서다”라고 말했다.[67] 안철수가 이러한 인식을 드러내면서 민주당은 안철수 영입을 적극 추진하기도 했다. 민주당이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로 시민운동을 한 박원순 변호사를 서울시장 후보로 영입중인 가운데 안철수는 박원순과의 대결에도 부담을 갖고 대화를 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70][71]

서울시장 출마를 확답한 적이 없으며 여론조사 등을 더 지켜본 후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행정 운영을 통해 서울시를 바꾸려면 최소한 10년은 해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도 고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된 ‘윤여준 멘토설’에 대해 안철수는 “개인적으로 따로 윤여준을 만난 일은 없었다. 솔직히 석 달 전 윤여준을 처음 뵙기 전까지는 이름도 몰랐다”라며 “그 분이 제 멘토라면 제 멘토 역할을 하시는 분은 한 300명 정도 되고, 또 저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김제동씨나 김여진씨도 제게 멘토라 할 수 있다”라며 부인했다.[72] 그는 “정치인인 국회의원은 혼자서 바꿀 수 없는게 많지만 대통령이나 서울시장같은 행정가는 자신 혼자서 바꿀 수 있는게 많기 때문에 의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국민일보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35%를 넘어 2위인 나경원(13~17%)을 두 배 이상 제쳤다.[73]

자신의 지지율이 높은 것에 대해서 “지금 사람들의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비교가 안 된다. 건국 이래 역사상 가장 심하다. 아직 만으로 40대인 나 같은 사람이 아직 (출마를) 할지 말지도 결정 안했는데, 저렇게 역사가 오래된 당들이 한꺼번에 흔들리면 그게 민심이다. 나에 대한 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74]

안철수는 서울시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하드웨어에 치우친 행정을 문제로 꼽았는데 구체적인 개선사항에 대한 의견도 내비쳤다.[67]

(지금 서울시는)완전히 하드웨어에만 매몰돼서 남에게 보이는 사업만 (진행)돼왔다. 여러 가지 소프트웨어, 실제로 사는 사람의 불편함, 위기 관리는 도외시 되고 있다. 소프트웨어의 예를 들면, 도로 표지들이 무원칙하다. 직진하다가 갑자기 좌회전이 생기고 이런 것들이 통일이 안 되어 있다. 교통 막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관심도 없다. 주차난도 굉장히 심각하다. 그런 걸 해결할 방법 중 하나가 노상 주차장 등에 요즘 같으면 센서를 설치할 수 있다. 이것을 공공 데이터로 만들면 서울시에서는 그것을 이용해서 스마트폰 앱이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어디에 자리가 비는지 (시민에게) 정보를 제공해 줄 수 있다. 에너지 문제, 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정부가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선진국은 다 공개한다. 그러면 데이터를 시민들이 가공해서 좋은 정보를 만들어 창업한다. 국가 보완과 상관 없는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알리면 일자리가 생긴다. 저 사람들(정치인들)은 그런 아이디어가 하나도 없다. 평생 자기만의 전문 분야를 갖지 않으면 그런 아이디어를 갖기 쉽지 않다.

 

기존 정치세력들의 분열조장에 대해서도 비판을 제기했는데 “대북문제에 대해서 보수적인 입장을 갖고, 교육문제에 대해서 진보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면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것은 나눌 수가 없다. 그것을 나누고 분열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라고 지적했다.[66]

안철수는 또한 정치인으로서의 고민도 이렇게 내비쳤다.

사람들한테 대접받으면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자기 발전도 중요한 사람이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도와주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로 들어서면 자기 발전의 기회보다는 내가 가진 걸 소모하면서 도와줘야 한다. 지금껏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 10년 간 그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고민이다. 또한 나는 수평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정부 조직은 내가 아무리 수평적인 리더십을 갖고 있어도 조직이 수평이 되면 곤란하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10년 이상 그게(유지하는게) 가능할까.[67]

 

[편집] 각계 반응

안철수의 서울시장 출마설에 대해 정치권과 각계 인사들은 관심을 보이면서 안철수에 대해 평가하기도 했다.

  • 이회창은 “안 원장 같은 분은 유능한 과학자로,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유능한 사람이니 그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게 해줘야 한다. 정치권이 부추겨서 망가뜨리는 것은 안타깝지만, 본인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고 있다”라며 안철수 출마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75]
  •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조국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서 “정치와 분리된 행정, 글쎄? 안철수 교수는 과기부장관감으로는 검증되었으나 서울시장감인지에 대해서는 안의 ‘친구들’이 누구인지, 이들과 무엇을 하려는지 검증해야 한다. 그의 비전 정책 수행능력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최종적으로 안 교수가 후보가 된다면 그를 도울 것이며 지혜를 모아 제2의 오세훈이 시장되는 것은 막을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76]
  • 한나라당 정몽준 의원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지향한다고 이해를 하는데 그렇다면 한나라당하고 같이 일할 수 있다. (안철수 영입 제의는)당연한 일로 당에서 노력하는 분들이 있지 않을까 싶다”라고 말했다.[77]
  •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관전자 입장에서 현실정치로 들어올 때 얼마나 순도를 유지할지 팬으로서 걱정”이라고 말했다.[77]
  • 정장선 민주당 사무총장은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물론이고 안 원장도 통합후보군에 들어오기를 기대한다. 반한나라 진영이 모여 통합후보를 선출하는 지혜를 짜내야 한다”라고 말했다.[77]
  •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안철수 원장의 꿈은 혼자 꾸는 꿈이어서는 안된다. 특정 보수 인사가 출마설에 관여하고 있다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도리다”라고 말했다.[77]
  • 송영선 미래희망연대 의원은 “안철수 교수는 진정한 보수다. 보수의 핵심가치가 봉사에 있기에 안 교수의 공적 헌신은 진정한 보수 가치의 실현이다”라고 말했다.[77]
  •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누구라도 꿈을 펼치겠다고 나오는 것은 자유지만 탈정치, 무채색을 들고 나왔을 경우 반(反)MB, 반한나라당 심판 여론을 희석시킬 수 있다”라고 말했다.[77]
  •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과거 정치인 중 단기간에 치솟고 꺼지는 경우가 있지만 안 원장은 다르다. 안철수 개인에 대한 신뢰와 감동이 있고 그게 뿌리이므로 쉽게 꺼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77]
  • 이상돈 중앙대학교 교수는 “내가 경기도민인데, 서울시민이라면 안철수를 찍겠다. 집권 세력이 꼴보기 싫어서 민주당 찍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안철수에게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77]
  • 언론사 편집국장들도 안철수 열풍을 나름대로 분석했다. 서울신문 편집국 고위간부는 “여야를 막론하고 기성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가 얼마나 깊은가를 충격적으로 확인해주었다”라고 말했고, 강호원 세계일보 편집국장은 이번 안철수 현상을 두고 “안철수 원장의 사회적 영향력이 상당하고, (기성 정치권과 별도로) 그동안 쌓아온 새로운 지지기반이 상당함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광덕 한국일보 정치부장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안철수 백신’이라는 사회적 기여, 그 성과에 대한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강덕 KBS 정치부장은 “안 원장에 대한 국민들의 인상비평 정도로 볼 수도 있겠다”며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식상함과 반감 때문에 안 원장의 참신함이 호감으로 나타나고 있는 면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용마 문화방송 노동조합 홍보국장은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반감이 강하다는 게 다시 한번 확인된 만큼 제2, 제3의 안철수가 나올수도 있겠고, 그러면 정치판의 유동성은 더 커질 것”이라면서도 “안 원장이 성공해도 정치권의 근본적인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78]

[편집] 불출마 선언

안철수의 서울시장 선거 출마 여부에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던 9월 4일에 주요 언론사들은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모든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압도적이었지만 안철수와 오래전부터 각별한 관계였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발표하자 안철수는 다음날 9월 5일 박원순에게 출마를 양보할 수도 있다고 했고 그 다음날인 9월 6일 오후 4시에 박원순과 만나 불과 17분 동안의 대화 끝에 박원순으로 단일화했음을 발표하였다. ‘누가 출마하느냐’, ‘단일화가 되느냐’ 등이 모두 선거지형에 큰 변화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에 또 다시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안철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오늘 존중하는 동료이신 박원순 변호사를 만나서 그 분의 포부와 의지를 충분히 들었다. 우리 사회를 위해 헌신하면서 시민사회 새로운 꽃을 피운 분으로서 서울시장을 누구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훌륭한 분이다. 저에 대한 기대도 우리 사회 변화의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중한 우리 미래 세대들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격려하겠다. 지금까지 심정적으로 가장 오랫동안 이해해준 박경철 원장님께도 감사하다. 단일화에 대한 아무런 조건도 없다. 출마 안 하겠다. 방금 말씀하신 대로 꼭 시장 되셔서 그 뜻 잘 펼치시기 바란다.[79]

 

박원순은 단일화에 대해 “두 사람 모두 시장직 자리를 원한 게 아니다. 진정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결론이 나온 것”라고 말했다. 박원순은 또 안철수에 대해 “아무리 신뢰관계가 있다해도 저보다 10배나 더 되는 지지도를 갖고 있던 분이 정말 아무 조건 없이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는 (내 말) 한마디로 양보한다는 게 사실 또 믿기 어려운 그런 일”이라며 “안 교수가 개인의 이익보다 사회의 어떤 공공적인 이익을 위해서 해왔던 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태도였다고 본다”라고 말했다.[80] 이후 박원순, 한명숙, 문재인 등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과 1:1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박원순-한명숙 두 사람은 범시민 야권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이후엔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다”라며 결의를 다졌다.[81]

안철수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는 “(안 원장은)50%대의 지지율을 가지고도 5%대의 지지율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했다. 그것은 조중동과 이명박 정권이 그토록 핍박하고 무시하던 시민사회의 상징과 가치에 대한 공개적인 인정이었다.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커밍아웃이다”라고 극찬했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의 조국 교수는 “우월한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교수 양보. 큰 박수를 보낸다. 이 분의 ‘쓰임’은 또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를 계기로 정치판이 바뀔 조짐이다. 통큰 단결로 서울시장 선거, 총선, 대선을 맞이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진중권은 자신의 트위터에서 “안철수, 과연 ‘인물’이군요. 이 정도 열풍이면 보통 사람 같으면 정신이 멀쩡해도 취할 텐데, 50%의 지지율에도 흔쾌히 양보. 이번에 박 변호사 도와주시고, 그보다 더 큰 물에서 뜻을 펼치세요”라고 말했다.[82]

안철수의 아버지 안영모는 “안철수가 서울시장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집사람이 매일같이 전화를 해서 ‘안 나가는 게 좋겠다’고 말렸다”고 말했고 대선출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이유로 말릴 생각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들 나이도 50이 넘었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지 우리가 말려서 되겠나. 이제부터는 일절 말 안 하고 지켜만 보려고 한다”라고 말했다.[83]

이명박은 ‘떠오른 안철수 열풍’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정치권에 올 것이 왔다.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국민들은 많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고 특히 정치권에 대한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 변화욕구가 아마 안 교수를 통해 나온 것이 아니겠느냐고 생각한다. 이것을 여러 시각에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이것을 정치권이 발전적으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84]

 

이명박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민주당은 “모든 문제에 남탓만 해 실망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85]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요동치는 정치판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남 얘기하듯 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답답함을 더했다. 대통령은 정치판의 구경꾼이나 평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안철수 바람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마땅하다”라고 지적했다.[86]

박근혜는 기자들이 안철수의 지지율이 자신을 넘어섰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병 걸리셨어요?”라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민주당은 사과를 요구했고 이후 박근혜는 “지나가는 식으로 농담을 했는데, 표현이 부적절 했던 것 같다”라며 유감을 표명했다.[87]

하지만 한나라당은 안철수가 반(反)한나라당을 천명한 만큼 반감을 드러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안철수에 대해서 “IT 전문가라고 해서 정치를 잘 하겠느냐”면서 “안 원장이 뭐가 검증이 됐느냐. 예전 운영하던 회사 내에서도 내분이 있어 몇 분이 물러섰다지 않느냐”, “화려하게 타오르는 불꽃은 금세 사라진다. 정치를 너무 순진하게 보는 것 같다”, “안 원장이 너무 건방지다는 생각도 든다. ‘역사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다’고 했는데 이번에 좌파라고 선언한 것 아닌가 싶다. 이념적 좌파라기보다는 강남 좌파에 가까운 것 같다”라며 성향과 검증에 대한 공세를 예고했다.[88] 한나라당이 “안철수와 박원순 단일화는 정치쇼”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 박원순은 “그런 쇼는 더 많이 하는 게 좋은 것 아니냐”라며 반박했다.[89] 그러나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정치에 대한 불신,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겹치면서 안철수 교수의 태풍현상이 있지 않았느냐. 기존의 정치권에서의 기득권, 그리고 어쩌면 달린 식솔이 없으니까 그렇게 흔쾌히 홀가분하게 던질 수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은 바이러스 백신 무료배포, 대기업 독식 비판과 분노 등 안철수 교수의 공적 헌신을 했던 모습의 연장선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라며 안철수를 호평하기도 했다.[90]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안철수를 최근 인기몰이 중인 꼬꼬면에 비유하면서 “꼬꼬면이 ‘품절면’이 됐듯이 안철수도 정치권에서 ‘품절남’”이라며 “꼬꼬면과 안철수는 많은 것이 닮았다”라고 말했다. 이어 “꼬꼬면이 그간 시장의 대세였던 ‘신라면’의 후광을 입고 나타난 ‘신라면 블랙’의 생산중단과 절묘하게 매치가 된 점” 등을 들어 박근혜를 신라면에 비유하기도 했다.[91]

안철수와 박원순은 단일화했으나, 이전까지 박원순의 서울시장 후보 지지율은 5%에 불과해 ‘안철수의 지지층을 박원순이 흡수하는지’, ‘민주당에 입당하는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92] 단일화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박원순은 안철수와의 단일화에 힘입어 지지율이 대폭 상승하여 나경원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93] 집전화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에서는 보수적인 사람들의 답변이 많았으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을 수 있는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는 박원순이 51.6%를 얻어 32.5%의 나경원을 압도했다.[94]

안철수가 출마할 가능성이 제기되자 안철수연구소의 주가가 상승하다가 다시 불출마 선언을 하자 주가도 같이 떨어지는 등 경제계에도 영형을 미쳤다.[95]

[편집] 유력 대권후보

안철수에 대한 여론의 관심에 대해 언론들은 ‘안철수 신드롬’, ‘열풍’ 등의 표현으로 보도했다. 안철수가 서울시장 후보에서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인 이후 언론은 차기 대선 여론조사 대상에 안철수를 포함시켰다. 안철수는 박근혜와의 1:1 가상대결에서 43.2%를 기록해 40.6%를 기록한 박근혜를 이겼다. 이명박 정부 들어 박근혜가 차기 대선 지지율 2위를 기록한 것은 처음이다.

휴대전화 여론조사에서는 안철수 59.0%, 박근혜 32.6%로 나와 차이가 더 벌어졌다.[96] 특히 야권 후보들 중에는 지지율 31%를 기록해 2위를 차지한 문재인(16%)보다 두 배 가량 많았다.[97]

안철수는 20~30대 젊은층, 대학생, 화이트칼라, 호남지역에서 60% 이상의 높은 지지를 받았으며 서울지역에서도 54%의 지지율을 보여 박근혜를 넘어섰다.[98] 하지만 안철수는 2012년 대선 출마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다. 2011년 9월 7일 안철수는 출근길에서 차기 대선 출마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가당치도 않죠. 사실. 생각해볼 여유도 없고...”라고 말했다. [99][100] 이어 서울 강남지역 총선 출마설이 돌자 2011년 12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제3당 창당이나 강남 출마설 등 여러 가지 설들이 많은데 분명한 것은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가능성도 없다”고 말했고 대선 출마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101]

또한 일각에서는 안철수가 2011년 11월부터 대선을 겨냥한 ‘과외’를 받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문제에 관해서는 햇볕정책 지지자인 김근식 경남대학교 교수가 안철수를 돕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 야당 중진의원 등 전문가들이 경제, 국제관계 등 각 분야에서 안철수를 돕고 있다고 알려졌다. [102] 김근식 교수는 언론사와의 전화통화에서 “안철수에 대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는 말이 있는데 실제로 제 시각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편 안철수와 전문가들의 만남을 주도한 것은 김효석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이다. 안철수의 지인인 김종인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은 “지난 10월부터 민주통합당 중진들이 아이디어를 내서 안 원장이 공부모임에 들어간 것”이라고 말했다.[103]


[편집] 대권후보및 정치참여에 대한 비판

민주통합당 문성근 최고위원은 25일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 대해 "대선 후보로 뛸 생각이 있다면 민주통합당 경선에 나와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104]

안철수의 이름을 팔고 있는 나철수 사람들을 비판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의 자정능력이 너무 취약한 것은 아닌지 성찰해볼 일이다.[105]

강용석의원은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 안철수연구소가 1999년 발행한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안 원장이 헐값에 인수해 최고 700억원의 이득을 취하면서 세금을 탈루했다고 주장하는 등 블로그에 ‘안철수 문제점’이란 코너를 만드는 등 지속적으로 안 교수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검찰은 강용석 고발 '안철수 BW 인수' 수사를 개시했다. [106]

[편집] 평가

안철수는 강력한 추진력과 기업가 정신, 도덕성, 차분한 성격, 성공한 사람으로써는 드물게 겸손한 이미지로 기존의 기득권층과 전혀 다른 느낌을 주어 젊은이들의 가장 대표적인 멘토로 손꼽히고 있다. 그는 교수직에 임하면서 동시에 박경철과 함께 ‘청춘 콘서트’라는 강의를 해오고 있다. 박경철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이 강의는 1년에 3천건의 강의 의뢰가 들어올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일정 문제로 1년에 80여 건밖에 하지 못한다. 안철수는 돈을 많이 주는 기업들의 강의는 되도록 하지 않으며 사람이 많이 오는 무료강연을 많이 하는데 강의할 때마다 적게는 1500명에서 많게는 3천명 정도까지 몰린다.[107]

                                
                 

천정배 신당, 베일 벗었다…누가 참여하나 봤더니

  • 라오스전 맹활약, 손흥민은 또 한 번 웃는다

참여정부 정관계 인사, 시민사회 인사들 이름 올려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추진위원회 출범식이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가운데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인사말을 마치고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18일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추진위원회' 출범식을 열고 본격적인 야권 지형 개편에 뛰어들었다.

천 의원은 이날 오후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창당추진위 출범식에서 "한국 정치를 지배하는 양대 정당은 총체적 무능에 빠져있다. 한마디로 야당은 그 수명을 다했다"며 "이제 국민들은 근본적인 변화를 갈망하고 있으며 새로운 개혁 정치세력의 등장은 피할 수 없는 역사의 요구"라고 밝혔다.

이어 "민심은 새로운 정치세력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담대하고 씩씩하고 유쾌하게 새 길을 가자"며 "우리는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 희망으로 우뚝 서고, 내후년 대선에서 새 세상을 열어갈 정부를 만드는 중심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창당추진위원장은 천 의원이 직접 맡기로 했으며 김대중 정부에서 비서실장과 경제부총리를 지내고 참여정부에서 감사원장을 역임한 전윤철 김대중노벨평화삼기념관 이사장과 윤덕홍 전 교육인적자원부 부총리, 전홍준 광주전남민주화운동지회 대표 등 3명이 고문을 맡기로 했다.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추진위원회 출범식이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가운데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좌측 두번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좌측),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와 손을 맞잡고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회복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참여정부에서 참여혁신수석비서관을 지낸 박주현 변호사와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을 지낸 한국외대 이주헌 교수 등 전직 정·관계 인사들도 다수 이름을 올렸다.

시민사회 인사들도 힘을 보탰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과 통상전문가인 한신대 이해영 교수, 전홍준 굿뉴스의료봉사회장, 이동현 미실란 대표, 양미강 한백교회 목사 등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도 대거 참여했다.

지난 새정치민주연합 2·8 전당대회 때 당시 이인영 후보의 캠프 대변인을 맡았던 장진영 변호사도 이번 신당에서 창당추진위원 겸 대변인으로 발탁됐다.

장진영 변호사는 "오늘 오전 1차 추진위 회의를 통해 추진위원장 1명과 고문 3명, 상임추진위원 12명 등을 모셨다"며 "남은 명단은 나중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안철수 멘토'로 유명한 서울대 한상진 명예교수와 새정치연합 경기 김포시 지역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두관 전 경남지사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한 교수와 김 전 지사는 축사를 통해 천 의원의 신당 창당 추진에 힘을 보탰다.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 추진위원회 출범식이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서울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가운데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좌측 두번째)과 김두관 전 경남지사(좌측),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가 지지자들을 향해 손을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한상진 교수는 "(신당 창당으로) 야권이 분열되고 이런 파산상태가 집권여당에게 어주비리를 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일말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느끼는 분들이 있겠지만 정치변혁을 위해서는 전진과 후퇴가 필요하고 2보 전진을 위해 1보 후퇴가 필요하다"며 신당 창당에 힘을 실어줬다.

그러면서 "(신당이)적대적 공존과 국민분열을 일삼는 정치에 침묵하는 다수를 대변해 정당정치의 체질을 바꾸는 개혁의 깃발을 내거는데 앞장서야 한다"며 "내년 총선에서 여권을 지지하는 고정세력 30%, 야당을 지지하는 15%를 제외한, 상식을 갖추고 있지만 동원되지 않는 침묵하는 다수를 수용해 그들의 희망과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개혁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향후 신당의 비전을 제시했다.

김두관 전 지사는 "저는 개혁적 국민정당 창당이 야권 분열이 아닌 야권 재편, 야권 재구성 통해서 야권의 총선 승리와 2017년 정권교체를 위한 몸부림이라고 이한다"며 "신당이 잘 되는 것이 새정치민주연합이 포용하지 못하는 야권의 많은 지지자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이를 통해 야권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라고 신당 창당에 의미를 부여했다.

천 의원은 다음달 13일 창당발기인대회를 개최해 창당추진위원회를 창당준비위원회로 전환하고 내년 1월에 중앙당 창당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날 창당추진위 출범식은 천정배 의원이 지난 4·29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지 6개월이 지나 현실화됐지만 준비기간을 감안하면 '눈에 띄는 새로운 인물 영입'은 없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여서 창당발기인대회나 중앙당 창당 때까지 당을 대표할만한 새로운 인물을 얼마나 수혈할 수 있을지 여부가 향후 신당 성패의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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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수와 노란 리본 "나도 자식 키우는 사람" 출처 스포츠서울 | 배우근 | 입력 2015.11.16 09:27 | 수정 2015.11.16 13:18

기사 내용

[스포츠서울 배우근기자] 추신수는 미국메이저리그(MLB)를 대표하는 한국인 스타 플레이어다. 지난 2013시즌 후에 텍사스와 7년간 총액 1억 3000만 달러에 계약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입증했다. 아시아 출신 야구선수 중에 최고의 금액이었다. 올해는 초반 부진을 딛고 일어나는 저력으로 팀을 지구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추신수는 MLB 스타이기 전에 한 사람의 아버지이고 아픔을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지난 4월 12일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휴스턴과의 경기에 노란 리본을 달고 경기장에 나섰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4월 16일 LA에인절스와의 경기에서는 선수들과 함께 유니폼에 노란리본을 달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MLB사무국은 승인받지 않은 리본 등의 부착을 금지하기에 추신수는 선수단의 벌금까지 낼 각오로 추진했지만, 아쉽게 무산되기도 했다.

추신수는 11월 15일 2년만에 가족과 함께 국내로 돌아와 당시 노란리본을 달았던 이유를 밝혔다. 추신수는 지난해엔 재활 때문에 귀국하지 못했다. 그는 누가 시켜서 한게 아닌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었다고 했다.

추신수는 “그런 일이 생겨 너무 마음이 아팠다. 누가 시켜서 리본을 알지 않았고 내 마음이 시켜서 달았다. 나도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다. 너무 슬펐다. 그리고 잠재력과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친구들이 제대로 꿈을 펼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는데, 쉽게 잊혀지는게 안타까웠다”라며 “그런 여러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추신수는 2주 일정으로 찾은 한국에서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서 도와드리고 싶다”며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란리본은 무사귀환을 의미한다.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나 가족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뜻에서 나무에 노란리본을 묶으면서 유래됐다. 국내에서는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노란 리본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kenny@sportsseoul.com
‘추추 트레인’ 추신수(33·텍사스 레인저스)가 15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주상기자.rainbow@sportsseoul.com

<단독> 허벌라이프 'GMO 검사' 해보니 충격

전 국민이 속고 있는 건강식품의 불편한 진실①

기사승인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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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경제2팀] 임태균 기자 = 최근 미국허벌라이프가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미국 및 기타 시장에서 일부 허벌라이프 제품은 GMO 작물에서 유래된 성분을 사용한다”고 밝힌 것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인 건강식품회사가 자사 제품에 유전자변형 원료를 사용하고 있음을 인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전자변형 원료를 뜻하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는 인위적으로 병충해, 살충제, 제초제, 추위 등에 강한 성질을 가진 유전자를 분리 또는 재조합해서 목적하는 특성을 갖도록 한 농산물을 말한다. 

   
 

GMO 작물은 아직 그 안정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두려움을 주고 있는 상태다. 공정위 산하 한국소비자원이 연구보고서에서 “GMO는 인류가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식품이라는 점에서 수천년 간 섭취를 통해 검증된 다른 식품들과는 달리 근본적인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제초제 내성
유전자 성분”

막연한 불안감이 아니다. 이미 전 세계를 경악시킨 광우병 사태를 보면 풀이 아닌 동물성 사료를 먹인 소에게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10년, 다시 동물성 사료로 키운 소고기를 섭취한 인간에게 광우병이 발생하기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 바 있다. 단기간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특성물질이 체내에 장기간 축적되면 예상치 못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GMO를 바라보는 세계의 시각에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GMO에 대한 여러 연구와 동물실험 결과 잠재적 암세포 성장, 면역체계 손상, 불임, 간·신장 손상, 심장이나 뇌 등 주요 장기의 축소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안전성 논란이 분분하다. 이유 없는 불안감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미국허벌라이프가 일부 자사 제품에 아직 검증되지 않은 식품인 GMO 작물을 원료로 사용했다고 한 발표는 파문이 클 수밖에 없다. 몸에 좋으라고 먹는 건강식품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는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는 회사의 고백을 허투루 들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질문 두 가지. 첫째는 허벌라이프가 말한 ‘미국 및 기타시장’에 한국은 포함되어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고, 둘째는 ‘일부 제품’이라고 밝힌 제품은 어떤 것들인지에 대한 궁금증이다.

한국허벌라이프의 답변은 이렇다.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모든 허벌라이프 제품은 유전자 재조합이 없는(Non-GMO)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본사에서 말하는 91개 ‘기타시장’ 중에 포함되고 있지 않으며, 어떤 제품이라고 할 것도 없이 ‘모든 제품’이 GMO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상품은 자체적으로 원재료를 수급하여 한국에서 생산한 것일까? 이 대목에 대한 한국허벌라이프의 답변은 “한국에서 판매 중인 상품은 미국에서 생산되어 완제품으로 수입된다”는 것. “완제품으로 수입되는 것인데 한국 수출용 제품은 GMO 작물이 아닌 재료로 생산한다”는 설명이다.

미국본사 GMO 작물원료 사용 시인
현지 파문 일파만파…한국은 과연?

이 답변이 <일요시사>가 직접 허벌라이프 제품에 대한 PCR검사(제품에 GMO 유전자가 있는 지 없는 지를 확인하는 성분검사)를 하게 된 배경이 됐다. 허벌라이프가 내 식구(미국소비자)에게는 안정성이 입증되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고, 다른 식구(기타 국가)에게는 안정성이 입증된 재료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는 식의 해명을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성분검사는 식품의약품안전처 공인검사법에 따른 PCR검사로 식약처에서 인증한 복수의 공인검사기관을 통해 각각 2회 이상 진행했다. 검사대상 제품은 ‘포뮬러1 뉴트리셔널 쉐이크 믹스 쿠키앤크림맛’(이하 쉐이크믹스)을 선정했다. 쉐이크믹스를 선정한 이유는 한 가지. 식사대용으로 최소 100만개 이상이 팔린 제품이기 때문이다. 작년에만 약 640억원 어치가 팔렸다.

   
 

함께 복용하기를 권하는 ‘퍼스널 단백질 파우더’ 매출 540억원을 포함하면 매년 1000억원 상당이 소비된 제품인 것이다. 체중조절을 원하는 사람에게 밥 대신 꾸준히 먹기를 권하는 제품인 만큼 향후 ‘특성물질이 체내에 장기적으로 누적되었을 때’의 영향을 파악할 때도 주요 평가대상이 될 만한 제품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검사에 사용된 제품은 한국허벌라이프 공식 온라인 쇼핑몰과 오프라인 사업자를 통해 구입했다. 일반 소비자가 쉽게 접근하는 경로를 따른 것이다. 시험결과를 받는 데까지 3∼10일이 소요됐다.

식약처 인증 검사기관인 한국식품과학연구원과 ㈜코젠바이오택에 의뢰하여 받은 검사결과는 주목할 만했다.

두 검사기관의 검사결과 모두에서 미국 몬산토사에서 개발한 GMO 콩 ‘RRS’유전자와 ‘MON89788’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두 유전자는 제초제 내성을 갖도록 변형된 유전자다. 이는 곧 쉐이크믹스 성분 42.1%를 차지하고 있는 분리대두단백이 인위적으로 제초제 내성을 갖도록 유전자 변형된 GMO 작물임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모든 제품은 유전자 재조합이 없는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던 한국허벌라이프의 답변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과다.

“쉐이크믹스 PCR검사에서 제초제 내성 변형 유전자가 검출됐다”는 결과를 통보하자 한국허벌라이프는 검사결과의 진위 여부를 의심했다. 그러면서 “설사 PCR검사에서 GMO가 검출됐다 하더라도 유통과정에서 비의도적으로 섞여 들어간 ‘비의도적 혼합치’에 해당하는 양이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반박했다. 인근의 유전자 변형 작물 재배지에서 날아온 종자가 일부 섞여서 자란 경우에도 성분검사를 하면 GMO 유전자가 발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 약간의 GMO 성분이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소량이면 관계없다는 입장이다.

먹는 것으로 장난?
소비자 기만 행위

그렇다면 관건은 쉐이크믹스에 과연 얼마나 GMO가 포함되었는가에 대한 사안으로 옮아간다. 복수의 기관에서 검사한 결과 쉐이크믹스에서 GMO 유전자가 발견된 이상 ‘GMO 원료가 사용됐다, 안 됐다’는 사안은 결론이 났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일요시사>는 두 검사기관에서 실시한 성분검사의 시험성적서를 근거로 허벌라이프가 보유한 함량검사 자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국허벌라이프는 “쉐이크믹스는 제품에 대한 ‘구분유통증명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식약처로부터 유전자변형식품 표기를 면제받았으며, 검사를 실시하지 않았다”고 답변을 해 왔다.
 

   
▲ 코젠바이오텍 검사결과

그러나 이 같은 답변은 한국허벌라이프가 ‘비의도적 혼합치에 해당하는 양에 불과하다’는 해명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무슨 근거로 제품에 함유된 GMO 함량이 ‘비의도적 혼합치에 해당하는 양’이라고 주장하는 지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가 들었는지 90%가 들었는지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으면서 무작정 ‘미미한 양’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국허벌라이프가 구분유통증명서를 공개하지 않은 탓도 있다.

한국법인 “한국의 모든 제품은 안전” 장담
쉐이크믹스 검사결과 ‘유전자변형 콩’ 검출

그러면서 분리대두단백에 대한 구분유통증명서를 거듭 강조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독립 검사기관의 구분유통증명서에 의해 식약처로부터 제품유통을 승인받았다”는 것. 문제의 구분유통증명서란 종자구입, 생산, 보관, 운반, 선적 등 취급과정에서 유전자변형 식품들과 구분해서 관리했음을 증명하는 서류다.

일종의 원산지 증명과 같은 성격의 문서인데 이런 증명서는 정부당국이 국내로 수입되는 모든 농수산물을 파종단계부터 수확, 보관, 유통 과정에 일일이 개입해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도입한 일종의 검증장치다.

문제는 이 구분유통증명서의 신뢰성이다. 공정위 산하 한국소비자원은 구분유통증명서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다. ‘구분유통증명서가 대부분 일부 민간기업에서 발행하는 것으로 확인 과정에서 객관성 및 신뢰성 담보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 건강기능식품을 수입 판매하는 업계 관계자는 구분유통증명서에 대한 불신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구분유통증명서라는 것이 결국 원료상이 제공하는 증명서다. 사가는 사람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질 수밖에 없다. 특히 미국은 GMO 작물이 아닌 것을 찾기가 힘든 것이 현실이다. 미국에서 발행한 구분유통증명서를 믿는 사람이 바보다.”

식약처 승인 왜?
구분유통서 논란

여기에 한국허벌라이프와는 달리 미국허벌라이프는 자사제품에 GMO에서 유래한 성분을 사용한다고 인정하고 있는 상황임을 고려해 보면 식약처에 제출된 구분유통증명서의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을 거두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구분유통증명서를 덮어놓고 불신하기도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구분유통증명서의 신뢰성과 별도로 제기되는 문제는 또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고시 제114호 ‘유전자변형식품 등의 표시기준’ 8조 표시사항의 적용특례에 대한 논란이 바로 그것이다. 현재 식품위생법 상에는 원재료의 5순위 안에 드는 성분이 유전자변형 식품일 경우 제품에 GMO 표시를 하도록 되어 있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표시를 생략해도 되는 예외규정이 있다.
 

   
▲ 한국식품과학연구원 검사결과

유전자변형농산물이 3% 이하로 포함된 경우다. 이 경우 구분유통증명서나 정부증명서, 검사성적서로 갈음할 수 있다. 한국허벌라이프가 ‘콩’이나 ‘옥수수’를 수입하는 업체일 경우라면 이 조항에 근거하여 적용특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쉐이크믹스와 같은 가공식품일 경우는 식약처 고시 114호 8조 2항에 근거해야 한다. 8조 2항의 내용이다.

「수입하고자 하는 식품 또는 식품첨가물이 GMO 표시관리대상 식품(냉동식품, 음료, 식용유, 과자, 빵, 조림식품, 건강기능식품 등)이지만 구분유통증명서, 정부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로서 해당제품을 검사하여 유전자변형 DNA가 전혀 남아있지 않음을 입증하는 검사성적서를 제출한 때에는 ‘유전자변형식품’ 표시를 생략할 수 있다.」

이 조항이 논란의 핵심이 되고 있다. 가공식품에 대한 표시적용 특례는 검사성적서에 의해 유전자변형 DNA가 남아있지 않음이 증명될 때 적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분유통증명서나 정부증명서를 제출하지 못하는 경우로서’라고 전제를 건 부분이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 전제는 곧 가공식품이라도 원재료에 대한 구분유통증명서만 제출하면 GMO검사를 생략해도 된다는 해석과 행동을 불러오고 있다.

그 결과 PCR검사결과 GMO 유전자가 검출됐지만 GMO 제품이라고 고지하지 않는 제품들이 유통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허벌라이프 쉐이크믹스가 바로 이런 케이스다.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단체가 “GMO원료가 들어간 제품에 대해서는 완전표시제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식품은 명백히 GMO 표시관리대상 식품이다. 그러나 구분유통증명서 제출만으로 검사성적서를 생략한 채 표시사항 적용특례를 받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같은 상황은 법률이 보다 정확히 개정되거나 식약처의 적극적인 개선의지가 보이지 않는 한 ‘GMO 성분이 검출되고도 GMO 표시를 하지 않는 제품’은 국민들을 상대로 꾸준히 판매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국허벌라이프는 다단계사업자들에게 “쉐이크믹스를 비롯한 모든 상품에 Non-GMO 콩 원료를 사용하고 있다”고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제품 자체를 Non-GMO라고 하지는 않지만 원료는 Non-GMO라는 것이다. 나름의 접근방법으로 건강식품의 이미지를 쌓고 있는 중이다.

회사에 배신감
집단행동 역풍?

그러나 이러한 한국허벌라이프의 행보가 앞으로도 순탄하게 지속될 지는 미지수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사업자들이 쉐이크믹스에서 GMO 유전자가 검출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크게 분노했기 때문이다. 경기도 안양에서 허벌라이프 샵을 운영하는 사업자 김모씨는 “고객도 고객이지만 당장 우리 아이들이 먹고 있는 상품인데 걱정이 앞선다. 회사와 스폰(상위사업자)이 GMO로부터 안전하다고 해서 믿었는데 배신감이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사업자 최모씨는 “그동안 회사가 우리를 속인 거라면 집단소송이라도 해야 되지 않느냐”면서 “조만간 집단소송 카페라도 만들어서 사업자들의 의견을 모아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식에게 이유식으로 쉐이크믹스를 먹여왔던 박모씨는 10개월 된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부터 터뜨렸다. “미안해, 미안해 우리 아들… 엄마는 몰랐어.”

 

※예고
<건강식품의 불편한 진실②> '몸에 좋으라고 먹었다가 큰일날 뻔한 사람들' 편이 공개됩니다.

 

<text123@ilyosisa.co.kr>

[영상] 대학생들 “국정교과서 반대” 서울 시내 곳곳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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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한 나라의 역사는 몇몇 사람이 바꿀 수 없다

헬조선은 교과서가 아니라 노동개악이 만든다”


때 이른 가을 추위와 중간고사 기간이라는 압박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열기를 꺾지 못했다. 단단히 점퍼를 여미고 나온 학생들은 31일 오후부터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외치며 행진을 이어갔다.

각 대학 총학생회 등 대학생 단체들은 이날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과 이화여대 앞 대현공원 등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 대학생 대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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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2시부터 마로니에공원에서 열린 서울 동·북부지역 대학생 집회에는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대학생 400여명이 참여했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외대인 모임’, ‘한국사 국정화 저지 고려대 네트워트’ 등의 깃발 아래 모인 이들은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습니까’, ‘친일과 독재를 정당화하는 역사교육 강요하지 말라’는 손팻말을 들고 “역사를 되돌리고 민주주의를 퇴보시키는 국정교과서를 거부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가 시작되자 참석자들은 “대학생들이 앞장서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를 막아내자”고 강조했다. 고려대 부총학생회장 강민구(23)씨는 “학계와 대학생, 시민단체 모두가 반대하는 국정교과서를 어떻게 강행할 수 있는지 안타깝다”며 “4·19와 5·18, 6월 항쟁 등 우리 역사에는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위해 피와 땀을 흘린 이들이 많다. 이런 자랑스러운 역사를 되돌리려는 국정 교과서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성신여대 총학생회장 한연지씨도 “정부 여당은 전국민이 반대하는 국정 교과서를 만들기 위해 색깔론까지 덧입히려 하고 있다”며 “정부의 검인정까지 통과한 교과서를 편향적이라고 몰아세우면서 이 정부가 만들고자 하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는 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동덕여대에 다니는 김소연씨는 “권력자의 뜻대로 바꾸는 역사는 부끄러운 것”이라며 “한 나라의 역사는 몇몇 사람이 바꿀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대현공원에도 경기대, 명지대, 이화여대, 연세대, 서강대, 항공대, 홍익대 등 서울 서부지역 대학교 학생 200여명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하는 자유발언을 하고, 삼삼오여 둘러 앉아 손팻말로 쓸 문구를 만들었다.

스케치북으로 만든 손팻말에는 ‘전국민 노예교육 국정교과서 반대해요’, ‘헬조선은 현행 교과서가 아니라 노동개악이 만듭니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동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의 가사를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국정교과서 반대한다 국정교과서 반대한다 외쳐보겠네 외쳐보겠네~”로 바꿔 부르기도 했다.

연세대 행정학과 1학년 홍용희(19)씨는 자유발언에서 “정부와 여당은 현행 역사교과서가 ‘좌편향’되어 있어 학생들이 ‘자학사관’을 배우고 있고, 이 때문에 청년층이 우울해지고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과 정신질환으로 이어졌다고 하는데, 그들이 말하는 좌편향과 자학사관이 뭔지 의문이다”라며 “36년 동안 일본 제국주의에 맞써 목숨을 걸고 싸운 우리 선조의 이야기가 좌편향이냐? 독재를 몰아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선배들의 이야기가 좌편향이냐?”고 반문했다.

그는 “청년들이 우울한 이유는 자학사관 때문이 아니라, 끝없는 내신성적 경쟁, 학점 경쟁, 스펙 경쟁, 치솟기만 하는 등록금, 해결책이 보이지 않은 청년 실업 때문”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역사는 국민들의 집단적 기억이다. 그 집단 기억을 권력이 선별하고 획일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온 재일 한국인 김성헌(20)씨는 “일본에서도 부끄러운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가 있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일본에서도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 미안하다고 하는 것이 지는 게 아닌데, 왜 미안하다고 못하냐고 이야기 해왔다. 같은 생각에서 한국의 교과서 국정화에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음악을 만든다는 그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는 뜻을 담아 노래를 하나 지었다며, 후렴구 가사를 들려줬다. “슬픈 역사는 바꿀 수 없습니다. 지울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배울 수가 있고 다시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는 “부끄럽고 슬픈 역사일수록 남겨서 후손들이 다시 그런 일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동국대·서울대·성공회대·숙명여대·숭실대·한신대 등 서울 남부지역 대학생들도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 모여 국정화 반대 집회를 열었다.

세 곳에서 사전 집회를 마친 학생들은 국정 교과서 반대 펼침막과 손팻말 등을 들고 ‘전국대학생공동행동’ 이 주최하는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대학생 대회’가 열리는 청계광장까지 거리행진에 나섰다.

글·사진·영상 방준호 권승록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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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뉴스] 대학생이 만든 언론순위 ‘우리도 평가하겠다!’

입력 2015-10-31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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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뉴스] 대학생이 만든 언론순위 ‘우리도 평가하겠다!’ 기사의 사진
사진=경희대 총학생회 ‘오늘의 경희’ 홈페이지 캡처
대학생들이 언론사 평가 순위를 발표했습니다. 언론에서 대학 평가 순위를 발표하던 기존의 관습을 재치있게 비꼰 건데요. 언론사들이 한방 먹었습니다. 

경희대 총학생회는 홈페이지(jaju.khu.ac.kr/stu)에 언론사평가 순위를 29일 공개했습니다. 이들은 대학서열화를 부추기는 언론사의 행태에 반발해 이런 기획을 선보였는데요. 

총학이 선정한 언론사 순위는 한국대학신문은 1위, 시사인 2위, EBS 3위, 연합뉴스 4위, 경향신문 5위, 오마이뉴스 6위, 뉴시스 7위, 뉴스1 8위, 한겨레 9위, 프레시안 10위 등의 순이었습니다. 종합 일간지 중에서는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이어 국민일보가 12위를 차지했는데요. 한국일보가 15위, 문화·세계·중앙·조선·동아가 18위부터 22위까지를 차지했습니다. 

기준은 신뢰도(5점), 호감도(5점), 언론사고(10점), 피인용률(10점), 관점평가(15점), 취재적극성(10점), 사설평가(10점), 대학서열화 기여도(20점), 교육여건 기여도(15점) 등입니다. 정성평가에 근거를 둔 평가인데요. 주로 정성평가에 치중을 두는 언론의 대학 평가를 풍자하는 듯 합니다. 

이들은 ‘누구를 위한 대학평가입니까’라는 성명서에서 “모 언론사의 평가지표에 기술이전 건당 수입액과 산학협력 지표 등이 신설됐다”며 “대학은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교육을 하는 곳임을 이야기했다”고 밝혔습니다. 

김동우 기자 love@kmib.co.kr 

“내년에도 정치권은 시끄럽지만 많은 나랏일들 결실있을 것”

허문명 기자

입력 2015-10-26 03:00:00 수정 2015-10-26 14: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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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사람이야기]미수 맞은 주역 대가 대산 김석진 옹

《 간밤에 내린 비로 미세먼지들이 싹 씻겨 나간 후 가을 하늘이 맑게 열린 반가운 주말이었다. 토요일이었던 24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SC컨벤션센터(한국과학기술회관 12층)에는 이색적인 미수(米壽) 잔치가 열렸다. ‘주역(周易)의 대가’로 불리는 대산(大山) 김석진 옹의 여든여덟 삶을 기념하는 잔치였다. 서울 부산 대구 대전 제주 등 전국에서 올라온 제자 300여 명이 부모의 미수연(宴)에라도 온 듯 들떠 있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전국에서 행해졌던 대산의 강의를 들은 사람은 1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산에 따르면 주역을 일독하려면 1년 2개월가량 걸리는데 일독을 마친 제자만 4000여 명에 이른다.》



검은색 두루마기를 단정하게 걸친 선생이 들어서자 너도나도 주위로 몰려들었다. 휴대전화를 치켜들고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았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등 법관들의 모습도 보였다. 축사를 위해 연단에 오른 박 소장은 “예기치 않은 축사를 하게 됐지만 누구보다 스승님의 미수연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그의 말이다.

“20여 년 전 헌법재판관 연구관 시절 판결을 내리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다 주역 공부를 하게 되었는데 너무 어렵고 힘들어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흥사단에서 대산 선생님이 강의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빠지지 않고 들었습니다. 고비 고비마다 개인적 국가적으로 나아갈 방향, 극복의 지혜와 영감을 주역으로부터 얻어왔는데 스승의 가르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더 오래오래 사셔서 늘 큰 산으로 계셔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날 많은 제자는 선생을 ‘맑은 사유와 겸손한 행동을 보여주시는, 학(鶴)처럼 고고하시면서도 휴머니즘으로 가득한 고운 향기가 나는 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미수 기념집 ‘易(역)과 人(인)’ 헌정까지 1시간 동안 이어진 행사를 보고 나오며 기자는 선생을 만나 인터뷰했을 때와는 또 다르게 그의 삶이 훨씬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은 혼돈 그 자체 
대산 선생과의 인터뷰는 미수연 전날인 23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선생의 장남 집에서 이뤄졌다. 다음 날 행사 참석을 위해 대전에서 막 올라온 길이라고 했다.

기자는 선생과 초면이었다. ‘현존 최고의 주역학자’이니 ‘이 시대 몇 안 되는 참스승’이니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던 터라 혹시 기 센(?) 도인(道人)의 풍모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웃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고 소박하고 겸손했다. 하긴 도인인 체하는 사람치고 도인다운 도인은 별로 없다.  

―목소리도 힘이 넘치시고 귀와 눈도 밝으셔서 미수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비결이라도 있으신지요.  

“주역의 기운을 받아 그런 것 같습니다. 주역에 ‘자천우지(自天祐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지요. 주역을 연구하고 주역에서 시키는 대로 세상을 살다 보니 건강도 따라오는 것 같습니다. 주역을 공부하면 바르게 살 수 있고 앞을 내다보는 예지력도 길러집니다.”  

선생의 말이 이어졌다.  

“나는 심장도 약하고 위장 수술도 한 병자(病者)였습니다. 스승이셨던 야산 이달(也山 李達·1889∼1958·역사학자 이이화의 부친으로 근대 주역의 태두로 불린다) 선생으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남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이 뜻을 펴지 못하고 세상을 뜨는구나 생각했지요. 그러다 58세 때인 1985년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 몇이 찾아와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주역 이야기만 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기운이 납니다. 주역의 이치를 경험하면서 세운 계획들은 모두 이뤄졌고 그때마다 하늘이 돕고 있음을 실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제주에 숱하게 강의를 다닐 때도 태풍 때문에 비행기 결항이 있을 때마다 신기하게도 내가 예약한 비행기만큼은 결항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결강도 없었지요. 다 주역을 가르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주역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이며 가장 난해한 글’이다. ‘공자가 생전에 진중하게 여겨 받들었으며 주희(朱熹)가 ‘역경(易經)’이라는 이름으로 숭상한 이래로 오경의 으뜸으로 손꼽힌다’고도 돼 있다. 한때 기자도 주역 독파를 시도하다 덮어버린 적이 있다. 너무 어려웠다.  

“세상이 혼돈스럽니다. 뭐가 옳고 그른지도 헛갈리고 말이지요.”

“허허허… 세상은 원래 혼돈스러운 겁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 뒤 더이상 말이 없었다. 경전에 나온 글을 나열하며 장황한 이론적 설명이라도 나올 줄 알고 한마디 한마디 받아 적겠다며 온 신경을 모으고 있던 기자는 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곧 편안함을 느꼈다. ‘맞다, 세상이란 게 혼돈이 본질일지 모른다. 나만, 내가 속한 시대만 어지러운 것이 아니리라’란 생각이 스쳐갔다.



오전서 오후로 넘어가는 후천개벽
 
―지금 세상은 주역으로 보면 어떻게 설명될 수 있나요.

“혼돈 속에 대변혁이 용틀임하는 시대이지요. 하루로 치면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양(陽)의 시간에서 음(陰)의 시간으로 넘어가는 중입니다. 역학(易學)에서는 이를 선천시대에서 후천시대로 넘어간다고 하며 후천개벽이라고 합니다.”

―후천개벽이 시작된 시기에 대해 말이 많던데 언제부터 후천개벽, 즉 음의 세상이 시작된 건가요.  

“1948년 무자(戊子)년부터 열렸습니다. 남자의 시대가 가고 여자의 시대, 임금의 시대가 가고 백성의 시대, 독재의 시대가 가고 민주주의의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 그 후 새로운 세상으로 빠르게 변해 가는데 왜 아니 혼돈스럽겠습니까. 그 내용을 잘 이해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가 지금입니다.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말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고 개혁해야 합니다. 여기서 역학의 지혜가 필요한 거지요. 역학을 공부하면 매일 매일 한해 한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지혜가 생깁니다.”  

선생은 “후천개벽 시대는 모든 것이 밝아지고 투명해지는 시대이고 국가나 사회, 가정에서도 여성과 젊은이들의 역할이 더 높아지는 시대”라면서 “기업들도 오너들이 명령하면 직원들이 따라가는 방식으론 더이상 안 됩니다. 기술, 지식도 중요하지만 정신적 가치를 중시해야 합니다”고 말했다. 선생의 말을 들으며 주역 같은 동양철학과 민족사상을 우리 교육에 더 많이 반영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산 선생은 매년 새해가 되면 각계각층에서 한해 국운(國運)을 주역으로 풀어 달라는 요청을 많이 받는다. 신문 지상에도 빠짐없이 ‘대산이 본 한해’ 전망이 실리곤 한다. 선거가 있는 해엔 더 그렇다. 그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을 확신하고 계셨느냐”고 묻자 빙그레 미소를 띤 뒤 이렇게 말했다.  

“스승님은 늘 ‘주역 공부를 하기 전에 (알면서도) 말하지 않는 공부부터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대선이 임박하면 많은 사람이 내게 찾아와 누가 대통령이 될 것 같으냐 묻지만 그건 쉽게 말씀드릴 내용이 아니므로 신중해야 합니다.”

기자가 “그래도 한마디 해달라”고 하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좋은 지도자 나오기 어려운 시대 
“(대선이 있던 해인) 2012년 음력 정초에 대구에 특강을 간 적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올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 것 같으냐’ 묻습디다. 참석자들과 함께 괘를 쳐보니(작괘) 천풍구(天風구)의 구이효(九二爻)가 변하는 괘가 나왔습니다. 새 대통령을 만난다는 뜻과 꾸러미 안에 물고기가 들어 있다(包有魚)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꾸러미라는 건 투표함이고 그 속에 물고기가 대통령을 상징하는 거지요. 질문자가 이어서 ‘고기가 수컷이냐, 암컷이냐’ 물어요. 대통령이 여자(음)냐 남자(양)냐를 물은 거지요(웃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산에 사는 짐승은 양, 물에 사는 짐승은 음이라고 본다.’ 물고기는 음이라고 할 수 있지요. 더이상은 묻지 마세요(웃음).”

―올해는 어땠습니까.  

“2015년 을미(乙未)년은 땅이 아래에 있고 물이 위에 있는 택지취(澤地萃)괘로 풀이됩니다. ‘취’는 모인다, 쌓인다는 뜻입니다. 헌데 물이 위에 있으면 쏟아져 물난리가 날 수 있고 전염병도 생길 수 있습니다. 다행히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극복하는 비(比)괘운으로 이어져 힘을 모아 극복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메르스 창궐도 이 괘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사람들이 도와 막아낸다고 나와서 별로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학회가 매년 300∼400명씩 수련대회를 하는데 올해 계룡산 갑사에서 하기로 했던 6월 6, 7일에도 메르스로 난리가 나서 걱정들을 하길래 ‘이 늙은이도 가니 걱정 말라’고 했습니다. 마침 갑사가 옛날에 역질이 퍼지면 제사를 지내던 곳이었는데 모두 축문을 쓰고 정신을 모아 극복을 기원하면서 즐겁게 행사를 마쳤습니다.”  

―내년 운은 어떻습니까.  

“2016년 병신(丙申)년은 화천대유(火天大有)괘로 모든 것을 크게 갖는다는 괘입니다. 경제도 발전하고 외교도 성장하고 결실이 있는 해입니다. 대통령도 변하려고 노력할 겁니다. 하지만 염소가 뿔로 울타리를 들이받다가 걸린다고 되어 있어 나라가 좌충우돌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는 정치인들로 시끄러울 겁니다.… 박근혜 정부 임기 5년 중 전반부인 2년 반은 어렵고 장애가 많지만 후로 갈수록 차차 나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2017년엔 대선이 있는데 누가 유력합니까.  

“다음 대통령을 말할 때는 아닙니다. 다만 정치가 너무 여론에 휩쓸리고 네 편, 내 편 나뉜 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해서 좋은 대통령이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양보다는 음의 시대이니 정치 지도자보다는 국민의 역할 비중이 점점 높아질 것입니다. 젊은층과 여성 청소년, 양지보다는 음지에서 일하는 일반 국민과 지도자가 어떻게 합심하느냐가 점점 중요해질 것입니다.”  

―88세가 되시니 뭔가 세상일에 도통했다는 게 느껴집니까.

그는 답 대신 손가락으로 무릎에 여덟 팔(八)자 두 개를 한자로 쓰면서 이렇게 말했다.

“미수의 미(米)는 八자 두 개에 열십(十)자가 들어간 것으로 벼를 심어 쌀이 나오기까지 88일이 걸린다고 해서 나온 글자입니다. 볍씨는 88일이 지나면 알찬 쌀이 되지만 나는 여든여덟이 되도록 아직 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이만 주워 먹은 거지요.”

이날 인터뷰에는 소문난 춤꾼이자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예능보유자 서울대 이애주 명예교수도 함께 했다. 이 교수는 2000년대 중반 대산이 창립한 주역 연구모임 동방문화진흥회에 초빙돼 월례특강을 하다 “강의 내용 절반이 주역”이라며 함께 공부할 것을 제안한 대산 제자들의 소개로 입문해 애제자가 되었다.

29일 오후 7시부터 서울 대학로 흥사단 404호에서 대산 선생의 강의 동영상을 교재로 한 이애주 교수의 강의가 시작된다. 동방문화진흥회 사무국 02-2237-9137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PD수첩′ 1023회, 비싼 통신비와 ′호갱′의 비밀…′통피아′ 리스트 공개한다

2015-01-27 14:01

′PD수첩′ 1023회, 비싼 통신비와 ′호갱′의 비밀 [사진=MBC ′PD수첩′]
′PD수첩′ 1023회, 비싼 통신비와 ′호갱′의 비밀…′통피아′ 리스트 공개한다

[뉴스핌=양진영 기자] ′PD수첩′ 1023회에서 비싼 통신비의 비밀, 국민 호갱이 나오는 이유를 밝힌다.

 

2014년 10월 1일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이 시행됐다. 투명한 유통질서를 확립하여 소비자들의 차별을 막는 것이 주요 골자다. 단통법 시행 100일 후, 미래창조과학부는 고가요금제 가입률이 하락하고 부당한 차별이 서서히 없어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정말 단통법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일까.

′PD수첩′은 서울, 경기, 대전, 대구, 부산 등 5개 지역 89개의 휴대폰 판매점을 긴급 점검했다. 과연 단통법이 미래부의 주장대로 효과를 거두고 있을까. 긴급 점검 내용을 전격 공개한다.

단통법은 번호이동, 신규가입, 기기변경 등 가입 유형에 따라 고객을 차별하는 판매 행위를 금지하고 하고 있다. 공시된 이외의 지원금을 고객에게 주는 것 역시 허용되지 않고 있다. 단말기 유통구조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겠다는 취지다. 과연 단통법은 그 취지대로 단말기 유통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고 있는 것일까?

서울, 부산, 인천, 대구 등 주요 도시의 판매점 89곳을 직접 찾아가보니 기기변경과 번호이동에 차별을 두는 곳은 총 80곳. 90%의 판매점들이 번호이동 시에만 최신 기종을 판매하고 있었다. 그 중 10곳에서는 페이백까지 존재했다. 

공시지원금 이외에 소비자에게 제공되는 페이백은 5만원에서 무려 17만원. 미래부의 평가와는 달리 단말기 유통시장은 여전히 혼탁했다. 즉 단통법이 시장에서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PD수첩′은 단통법 100일에 즈음하여 명동에서 휴대폰 단말기 가격과 요금제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했다. 470명 가운데 441명, 약 94%가 휴대폰 요금제가 비싸다고 응답했다. 휴대폰 단말기 가격에 대한 불만은 더욱 높았다. 457명 중 446명, 약 98%가 휴대폰 단말기 가격이 여전히 높다고 했다.

또 단통법은 우리나라 소비자 사이의 상대적인 차별을 해소시켰을 뿐, 외국 소비자와 국내 소비자의 차별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휴대폰 단말기 가격과 요금제를 합친 통신비에 관한한 여전히 이동통신사들의 ‘호갱’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PD수첩′은 외국에서 구매하는 휴대폰 단말기 가격과 한국에서 구매하는 휴대폰 단말기 가격을 비교하기 위해 미국, 독일, 일본 이동통신 시장을 취재했다. 미국 32만원, 독일과 일본 12만원. 그에 비해 한국은 무려 68만원이었다. 

게다가 외국 소비자들이 한국 소비자들보다 누리는 또 다른 편익이 있었다. 최신 폰을 갖기 위해서 무조건 고가 요금제를 가입하지 않아도 되는 다양한 선택권이었다. 

허술한 요금 인가제의 실태도 살펴봤다. 2005년 이후 이동통신사가 정부에 제출한 요금 인가 신청은 353건. 이 중 몇 건이 인가를 받았을까? 답은 100%. 2G가 3G로 다시 LTE로 기술 사향이 높아지면서 30~40%씩 높아진 요금이 미래부에 의해 거절된 절은 단 한 번도 없다. 

국민들은 통신비가 더 저렴해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통신비가 세계 최고 수준인 것에 대해 정부는 소비자가 알뜰해져야 한다고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통신관료와 기업이 유착된 소위 통피아 때문에 정부의 통신 정책이 기업 편향되었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과연 통피아는 실재하는 것일까?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 

′PD수첩′은 금융감독원에 공시된 이동통신 3사, 즉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지난 10년 동안의 분기보고서 통해 500명 이상의 임원 명단을 입수했다. 또한 국회를 통해 통신부서 퇴직자들의 취업 현황도 입수했다. 이 자료들을 분류하고 분석하여 통피아로 의심될 수 있는 퇴직 공직자 리스트를 작성하였는데, 그 규모가 작지 않았다. ′PD수첩′이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리스트를 전격 공개한다.

한편 통신비의 비밀이 공개되는 ′PD수첩′은 27일 밤 11시15분 방송된다.

[뉴스핌 Newspim] 양진영 기자 (jyyang@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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