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의원의 2002년 ‘방북’ 건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북한’이라면 앞뒤 안가리고 적대시부터 하는 보수진영에서 보자면 박근혜 의원은 ‘적국’을 방문해 ‘적국의 수괴’와 만나 ‘비밀회담’을 하고 왔기 때문이다. 대략적인 일정 등은 알려진 바 있지만 박근혜-김정일 두 사람의 ‘비밀회담’은 구체적인 발언내용 등 전모가 일반에 공개된 바는 없다. ‘보수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박 의원의 방북은 ‘종북좌파’ 의원 제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문제가 될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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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의원이 지난 2002년 5월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찍은 모습 |
박근혜 의원은 방북하고 돌아와서 ‘방북기’를 남겼다. 이 ‘방북기’는 현재도 박 의원 공식 홈페이지(http://www.parkgeunhye.or.kr/Site/)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이 ‘방북기’는 그가 북한에서 돌아온 지 이틀 뒤인 2002년 5월 16일 00시 00분에 입력한 걸로 돼 있다. 홈페이지 안내문에 따르면, “박근혜 의원이 방북기간에 체험한 분단의 현실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느낀 소회 등을 피력한 방북기”로 “박 위원장이 15일 오후 <연합뉴스> 기자에게 상세히 구술하였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연합뉴스에 게재된 기사내용”이라고 한다.
박 의원의 방북기는 지난 3일 박용진 민주통합당 대변인이 ‘논평’을 통해 박 의원의 ‘국가관’을 거론하면서 인용해 새삼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박 대변인은 박근혜 의원을 향해 “박근혜 의원은 두 가지로 우리 국민을 불안을 주고 있다.”며 말문을 연 뒤 “2002년 방북 당시 했었던 행적에 대해 뭔가 깔끔하지 못한 해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만경대에 갔고 왜 주체사상탑에 방문하였는지에 대해 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경대’는 김일성 주석의 생가가 있는 곳이며, ‘주체사상탑’은 북한의 주체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만든 세계 최대의 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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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의원 공식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박근혜 의원 방북기' 화면캡쳐. |
박 대변인은 3일 논평을 내면서 본문 하단에 박 의원의 ‘방북기’ 일부를 캡쳐 해서 실었다. 여기에는 “오찬 뒤 `평양 8경'중 2경이 있는 모란봉과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길에 나섰다.”는 내용이 분명히 보인다. 그런데 박 의원 홈페이지에 실린 ‘방북기’ 하단에는 ‘관리자 주’를 통해 박 의원이 만경대에는 들르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내용인즉, 박 의원의 구술을 기록하던 연합뉴스 기자가 잘못 받아 적어 이를 수정했는데 관리자가 수정본 대신 고치지 않은 원본을 퍼와 그리 됐다는 것이다. 수정일자는 ‘2006. 11. 7’로 나와 있다. 해명글 전문은 다음과 같다.
(* 관리자 주 : 위의 내용 중 논란이 되었던, “오찬 뒤 ‘평양 8경’ 중 2경이 있는 모란봉과 과 김일성 주석 생가가 있는 만경대 관광길에 나섰다.”라고 되어있던 기사는 잘못 작성되었던 기사였습니다. 기자에 의해 당일 수정되었던 (수정)기사의 내용으로 수정하였습니다. 관리자가 처음 작성되었던 기사를 그대로 인용하였는데, 수정된 기사의 내용을 반영하지 못해 논란을 제공한 점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6. 11. 7)
“이번 북한 방문을 앞두고 많은 기대와 설렘이 교차했다.”로 시작하는 ‘박근혜 방북기’는 별 특이사항은 없다. 그냥 순차적으로 일정을 따라 소개하였고, 방문한 곳에서 느낀 소감과 풍경등을 스케치 식으로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 비밀사항이 될만한 내용이나 처음 듣는 얘기는 하나도 없다. 물론 그런 내용은 구술을 정리한 <연합뉴스> 기자가 1차로 거르고, 2차로 <연합뉴스> 데스크가 거르고 또 3차로 박 의원 주변에서도 외부공개 전에 모니터를 했을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김정일 위원장과의 ‘밀담’ 같은 건 전혀 언급돼 있지 않다.
그 일부가 ‘위키리크스’의 폭로로 공개된 바 있는데, 지난 2008년 11월 주한 미 대사관 관저를 방문했던 박 의원은 당시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와의 오찬 자리에서 그 일부를 언급한 것이 그것이다. 2008년 11월 13일자 서울발 외교전문에 기록된 박 대표의 발언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선친들(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이 평화롭고 통일된 한반도를 위한 맹세를 담아 서명한 7·4 공동성명을 이행하길 원한다”라며 “우리는 모두 위대한 지도자의 자녀이니 선친들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은 우리들에게 달렸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일할 것을 약속하자”고 말했다.
굳이 얘기꺼리로 한 둘을 언급하자면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 전에 김용순 비서가 섭섭함을 토로했다는 ‘금강산 댐’ 얘기, 김정일 위원장이 ‘금강산 면회소’ 설치를 약속했다는 정도가 고작이다. 만약 정식 회담차 갔다면 성과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북한 측의 초청을 받고 간 입장이었으니 북을 택 없이 비방할 수는 없었겠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선전하거나 찬양하는 대목도 별로 눈에 띠지는 않는다. 이 역시 모니터 결과라고 추정되는 데, 그야말로 주마간산식 ‘북한 인상기’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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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북 기간중 박근혜 의원이 김정일 위원장과 단독 대화를 나누며 활짝 웃고 있다. |
필자가 박 의원의 ‘방북기’를 읽으면서 가장 눈에 띤 대목은 평양 일정 이틀째 낮 북한측 안내인으로부터 김정일 위원장과의 면담 일정을 전해 듣고서 “가슴이 뛰긴 했어도 그렇게 긴장되지는 않았다.”고 한 대목이다. 북한 땅에서는 최고 권력자이자 자신을 초대한 사람, 그리고 온갖 평가가 난무하는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볼 수 있게 됐으니 “가슴이 뛰”었다는 것은 솔직한 고백이라고 본다. 다만 이어서 “그렇게 긴장되지는 않았다.”고 했는데 어떤 연유에서 그랬는지, 또 사실 그랬는지 아니면 의도적 표현인지 필자로서는 정확히 알기 어렵다.
박 의원의 ‘방북기’를 읽으면서 한 가지 실망스런 점은 박 의원이 지나치게 정치적인 계산만 하다 보니 이 당시 방북했을 때 가졌던 ‘귀한 생각’들을 모두 강물에 내던져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전인 그 당시만 해도 박 의원은 초선인데다 아직은 ‘정치 땟물’이 덜 묻은 상태였다고 할 수 있다. 박 의원은 ‘방북기’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하였다.
“내가 북한 방문을 마친 뒤 일부에서는 `아웅산 테러, 문세광 사건 등에 대해 북한의 사과를 받지 않고 김 위원장 말만 듣고 왔다'고 하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나의 방북은 사과 받으러 간 것이 아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을 대신해서 말하기 위해 간 것이고, 남북한 공존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간 것이다. 이번 방북을 통해 나의 이 같은 바람이 조금이라도 이뤄졌으면 하는 마음 뿐이다. 3박4일의 북한 방문기간 가슴이 찡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의 현실이 서글펐다. 남북한이 같이 잘사는 날이 오길 손꼽아 기대해본다.”
그러나 박 의원은 이후 정치적 입지가 향상돼 당 대표를 거쳐 대선후보 물망에도 오를 정도가 됐음에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이렇다 할 만한 역할을 한 것도 없거니와 오히려 찬물을 끼얹는 일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핵문제 같은 것이야 주변국에서 어찌 하기 어려운 사안이었다고 쳐도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타계했을 때 ‘조문’조차 반대했다. 인지상정으로 보면 그럴 수 없는 일이다. 좀 파격적으로 생각하자면 박 위원장이 개인자격으로라도 조문할 수 있었고, 또 전사(前事)에 비추어 보면 충분히 그럴만한 명분도 있었다고 본다.
박 위원장의 ‘방북기’는 사실의 기록이라는 차원에서 기록적인 가치가 있는 한편 보수진영의 ‘국가관’ 논쟁에서는 의외로 악재가 될 것임도 부인 못할 사실인 것이다.
박근혜와 김정일
박 비대위원장과 김 국방위원장과의 만남은 2002년 5월13일
반 민주적 독재자 자식들의 만남. 박근혜,김정일(독재정권의공감대형성)
<김정일, 약속 대부분 지켜>
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가 27일 서울 외신기자클럽 기자회견에서 북한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언급을 해 눈길을 끌었다.
박 대표는 이날 회견에서 `김정일 위원장을 믿을 만한 협상대상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지난 2002년 방북시) 김 위원장을 만나 여러가지 약속을 한 사항이 있었다"면서 "이산가족상봉 상설면회소, 국군포로 생사확인문제, 남북 축구대회 등 약속이 거의 다 지켜졌고, 약속을 지키려고 북에서 상당히 노력했다"고 답변했다.
(2005-06-27 연합뉴스)
<북한판 마샬플랜의 경제지원책 필요>
한나라당 박근혜대표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북한판 마샬플랜’이라고 할 만한 대담한 인센티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방미중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현지시각으로 18일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얼마나 미래가 희망적인가를 보여줘야 한다”며 “북한 경제 재건을 위해 북한판 마샬플랜이라고 할 만한 대담한 인센티브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5-03-19 노컷뉴스)
<김정일에게 최첨단 비디오 기기 선물했다>
박근혜 의원이 김정일 위원장에게 받은 인상은 매우 긍정적이었다. 박 의원은 한국미래연합 창당준비위 사무실에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의 인상을 묻는 질문에 "대화하기 편했다"라며 특히 "내 제의에 대해 시원시원하게 답변했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어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달한 '선물' 내용도 공개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이 'IT분야'에 관심이 남다르다고 해서 우리나라에 개발한 최첨단 비디오기기를 선물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판문점 귀환도 "김 위원장이 직접 제안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2002-05-14 오마이뉴스)
걸핏하면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 '색깔론'을 제기했던 박근혜는 자신의 이런 행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박근혜가 이런 일을 하면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것이고 노무현 정부가 하면 친북 좌파 용공이 되는가? 스스로 그런 이중잣대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은 '색깔론'을 빼면 도대체 무엇을 내세울 것이 있는지 참으로 의문이다.
우스개소리를 하였습니다.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간단한 방법이있다. 박근혜를 김정일에게 시집보내면 된다. " 그 이튿날 그 농부는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가진 고초를 겪고 국가보안법...
책. '사람은 꽃보다 아름다운가'.. 중 일부.
국정원이 임의로 공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이 있었다고 허위주장을 펴고 있는 새누리당이 정작 박근혜 대통령의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과의 비밀회담,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의 김일성 생가 방문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박 대통령은 과거 직접 만났던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그의 자서전에서 “솔직하고 거침이 없었다”, “그의 화법은 인상적이었다”,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등 시종일관 호감을 나타냈다. 또한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지난해 9월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위원장이 합의한 서해평화협력지대, 공동어로구역 추진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한 것”이라며 “논의해볼 수 있다”고 밝힌 적도 있다. 그러나 지금에 와선 “(NLL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고 박 대통령은 말했다.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이던 지난 2007년 7월 펴낸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라는 자서전에서 2002년 5월 방북길에 올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과 단독 비밀회담을 한 과정과 경험을 기술했다.박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2002년 5월 11일 베이징에서 김정일 위원장이 보낸 특별기를 타고 평양으로 향한 기억,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하자 공항에 환영인파로 넘쳐난 장면을 묘사했다. 이틀 뒤인 5월 13일 저녁엔 자신이 머물던 백화원 영빈관에 돌연 나타난 김정일 위원장과 대담을 한 상황이 서술돼있다.박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 대해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람이었다”며 김 위원장이 불쑥 1968년 북한의 특수부대가 청와대를 습격했던 사태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 평가했다. 김 위원장이 ‘당시 극단주의자들이 일을 잘못 저질렀습니다.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 일을 저지른 사람들은 다 응분의 벌을 받았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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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5월 13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단독 면담을 하던 모습. ⓒ박 대통령 자서전 |
| 이어 박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언행을 두고도 “김정일 위원장의 화법과 태도는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이 당시 제안한 △이산가족 문제 △6.25전쟁 때 행방불명된 국군과 민간인 생사확인 문제 △이산가족 상설면회소설치에 대해 김 위원장이 흔쾌히 동의했으며, 금강산댐 공동조사 및 남북한 철도연결에 대해서도 긍정의 뜻을 보였다고 전했다. 그는 “한 시간 가량의 대화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과 나는 많은 약속을 했다”며 “그동안 중단됐던 남북축구대회 등 스포츠교류를 통해 서로 화합의 장을 열자는 약속도 얻어냈다”고 말했다.박 대통령은 “답방 요구에 김 위원장은 적당한 기회에 가겠다고 말하면서 방문하면 박 대통령의 묘소에도 참배하겠다고 했다”며 “김 위원장과의 모든 대화 내용을 언론에 투명하게 밝히고 싶다는 뜻을 전하자 ‘알아서 하세요’라며 신뢰감을 나타냈다”고도 평했다.판문점을 통해 육로로 돌아가라는 김 위원장의 제안에 박 대통령은 “생각지도 못한 제의였다”고 놀라워하면서 귀환길에 “‘남과 북이 이렇게 가까운데 먼 길을 에둘러서 오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통일에 대한 염원이 더욱 간절해졌다”고도 회고했다.특히 자신과 한 약속을 북측이 대부분 이행하기 위해 회담 제의를 한 것과 일흔일곱살 고령의 할아버지가 부탁한 자신의 이산가족 생사확인을 북측이 해줬다는 것을 알고는 “너무나 기뻤다”고도 박 대통령을 썼다. 이를 두고 박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에 대해 “서로 마음을 열고 이끌어낸 약속들을 가능한 한 모두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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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박근혜-김정일 회담 후 기념촬영한 사진을 제시하며 대화록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던 모습.
ⓒ연합뉴스 |
| 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이던 지난해 9월 14일에도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서해 평화수역에 대한 의지를 과시하기도 해 현재 불거지고 있는 NLL 회의록 대한 접근과는 사뭇 다른 태도를 드러냈다.당시 박 대통령은 10·4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서해 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설정 방안 등도 북한과 논의해볼 수 있다며 “기본적으로 역대 정부가 약속한 것은 대한민국 정부가 한 것”이라고 ‘과감하게’ 평가했다.또한 박 대통령은 “남북간 합의(남북기본합의서)에 서해에서 기존의 (남북 간) 경계선을 존중한다는 게 분명히 들어있기 때문에 그런 정신만 지켜진다면 10·4남북정상선언 합의에 포함된 (공동어로수역 및 평화수역 설정 방안 등) 여러 가지를 논의해볼 수 있다”고 전향적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NLL 전방위 공세에 이어 국정원의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격 공개 직후인 지난달 25일엔 국무회의에서 “(서해북방한계선, NLL은) 수많은 젊은이들이 피로 지키고, 죽음으로 지킨 곳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한편, 박 대통령 외에도 새누리당 주요 인사들이 과거 북한을 방문한 일도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 명의로 27일 조선중앙통신에 게재한 입장에서 “사실 종북을 내들고 문제시하려 든다면 역대 괴뢰당국자치고 지금까지 평양을 방문했던 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밝혔다. 1년 전엔 이들이 방북해서 한 종북, 친북 발언을 들으면 까무라칠 것이라고도 북한은 경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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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오른쪽에서 두번째) 새누리당 대표와 김형오(가운데)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 임종석 전 열린우리당 의원 등이 지난 2006년 4월 9일 북한 평양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에 촬영한 사진. 김형오 전 대표 블로그에 올랐던 사진. |
| 실제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한나라당 사무총장 시절이던 지난 2006년 4월 8일~11일 북한을 방문, 4월 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취임일에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를 찾은 사실이 있다. 김형오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과거 블로그 사진을 보면, 김 전 대표와 황우여 대표, 임종석 전 열린우리당 의원이 함께 만경대에서 기념촬영한 모습이 담겨있다. 황 대표가 당시 자신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올려놓은 사진엔 황 대표와 임종석 의원 등 ‘고구려역사유물발굴방문단’이 함께 평양 순안공항 도착했을 때 기념촬영한 모습도 있다. 황 대표는 북한 입국비자 사진도 올려뒀다.김형오 전 대표는 월간조선 2006년 4월호 방북기 ‘아 봄은 북경에서 먼저 오는구나’에서 “화면으로 봐왔던 모습 그대로이지만 낯설게 다가온다. 붉은 색의 평양이라는 글자간판과 김일성 주석의 대형 초상화가 첫 방문자를 설레임으로 맞이한다”며 “우리가 탄 버스가 처음으로 내린 곳은 만수대 김일성 동상이었다. 높이 22m의 이 거대한 동상은 40대 청년 혁명가의 모습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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