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질주를 멈춰 세울 묘수는 없는 걸까?

등록 :2019-09-20 19:46수정 :2019-09-20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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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윤석열 검찰총장이 지난 7월25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임명장 수여식에 참석해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여름 시작된 ‘조국 검증’ 공방은 계절이 바뀌면서 여러 대치 전선으로 분화했다. 그중 가장 위태롭고도 격한 싸움은 ‘집권세력 대 검찰’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다. 언젠가는 터질 화약고 같다. 검찰총장이 자신을 임명한 세력과 갈등을 빚는 일 자체가 드문데다, 이번엔 판이 커질 대로 커졌다. 청와대와 윤석열 총장 사이의 신뢰 관계는 이미 박살이 났다.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공식적인 지휘·소통 창구인 법무부 장관은 수사 대상이어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다. 어느 한쪽은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양쪽 모두 패자로 남을 수도 있다.

검찰의 수사 의도는 현시점의 변수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검찰 수사 타이밍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일단 수사가 시작됐으니 당분간 ‘검찰의 시간’이다. 말 그대로 칼자루를 검찰이 쥐고 있다. 집권세력이 가진 인사권, 조직·제도 개편, 개혁 입법 등의 무기는 방향이 옳더라도 둔하고 더딜 수밖에 없다. 여당과 법무부가 ‘수사 방해’ 비판을 우려해 이런 권한 행사를 조국 장관 수사 이후로 미뤄둔 것만 봐도 그렇다.

반면 검찰의 칼은 단기간에 빠르고 날카롭다. 검찰이 필요에 따라 흘리는 피의사실에 언론이 분주하게 반응한다. 여야는 보도 내용을 보고 매일 아우성이다. 조만간 예상되는 조 장관 부인 소환 조사, 이후 구속영장 청구, 법원의 영장심사 등은 다시 온 나라의 시선을 잡아끌 사안이다. 그다음 검찰은 조 장관을 직접 조사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주장할 테고, 결국 조 장관을 기소하는 수순으로 간다고 보는 이들도 꽤 많다.

곧 다가올 이런 시나리오의 주요 장면에서 여론은 또 요동치고 엇갈릴 것이다. “부인이 구속되면 사퇴해야 한다” “구속이나 기소가 곧 유죄는 아니다” “장관 자리 내놓고 떳떳하게 조사받아야 한다” “정치적 수사에 굴복해선 안 된다. 그게 검찰의 노림수다”….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정답이 있을 리 없다. 아무튼 조 장관이 직접 실행한 확실한 범죄가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면(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우리가 다음주부터 지켜봐야 할 예고된 풍경들이다.

이런 장기 대치를 끝내는 일은 정치의 몫이지만, 정치는 언제나 이를 검찰에 맡겨왔다. 여야는 처지에 따라 순번을 바꿔가며 고발장을 써 들고 검찰로 내달렸다. 이번엔 조 장관이지만, 다음엔 패스트트랙 사태 때 고발당한 자유한국당 의원들 순서다. 양손에 떡을 들었으니 검찰은 두려운 게 없다.

‘조국 파문’만 하더라도 수많은 이들이 지난 한달여 동안 그 속에 담긴 정치적, 사회적 의미와 문제를 분석하고 성토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한 것은 법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청와대나 여당은 그런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다. 사태를 수습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전체 민심을 돌봐야 할 이들이 지지층의 의견을 너무 살핀다.

냉정하게 돌아보자. 지금껏 이뤄놓은 정부의 성과는 무엇인가. 남북관계가 좋아졌다지만 가시적 성과를 내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 간판급 성과는 적폐청산이다. 그 적폐청산을 대부분 검찰이 했다. ‘다스는 엠비(MB)의 것’이라는 사실도 검찰이 밝혔다. 두 전직 대통령보다 처벌이 어렵다던 전직 대법원장도 못 피했다.

조 장관은 민정수석 때 현 검찰 체제를 유지하며 적폐청산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검찰의 힘이 너무 세졌다는 경고에도 특수부 확대를 받아들이며 적폐 수사를 적극 지지했다. 당시엔 그게 당연했다. 적폐 수사를 이끌었던 윤석열 검사를 총장 후보로 가장 열심히 밀었던 사람도 당시 조 수석이었다.

검찰을 활용한 적폐청산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니, 정부가 이제 사냥개를 삶겠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그래야 한다. 검찰개혁은 현 정부 최우선 공약이었다. 그런데 출전한 선수가 같다. 윤석열과 발맞췄던 적폐청산 대표선수 조국이 이번엔 무대를 바꿔 검찰개혁의 아이콘이 되려고 한다. 못할 것도 없지만 잦은 등판으로 선수의 약점이 너무 많이 노출됐다. 토사구팽 하기엔 상대가 꽤나 사나운 맹수라서 모두가 길을 잃고 있는 느낌이다. 이루려는 목표를 새로 설정했다면, 선수도 상황과 필요에 따라 과감히 교체할 수 있어야 한다. 더구나 검찰개혁은 개인전이 아닌 정교한 작전과 팀워크가 필요한 단체전에 가깝다. 아프지만 경기를 이대로 방치하지 말고 멈춰 세워 판을 갈아엎고, 종목도 바꾸고, 룰도 바꿔야 한다. 선출된 권력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통제하기 위해 그렇게 할 수 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석진환 정치팀장 soulfat@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910354.html?_ns=r2#csidx808c3eababb34ec82232fe640e2024c

검찰이 흘리고 언론이 받아쓰는 정보독점 고리 끊기

등록 :2019-09-21 14:05수정 :2019-09-21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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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슈
검찰·언론 공생이 만든 피의사실 공표

피의사실 공표죄 둘러싼 논란
피의자 인권 보호 대 국민의 알 권리
가치충돌 넘어선 정치적 맥락 고려해야

검찰, ‘언플’하며 수사를 정치적 활용
언론, ‘단독’ 경쟁하며 검증책임 회피

두 권력기관의 ‘공생’ 가능하게 하는
정보의 독과점 해소할 제도적 방안은
중대 범죄 피의사실 공개브리핑
공개 여부도 시민이 결정하도록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 조국 법무부 장관 가족 관련 수사 과정에서 달아오른 ‘피의사실 공표죄 ’ 논란은 피의사실 공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공보준칙 개정·시행이 연기되면서 한풀 가라앉았다 . 하지만 검찰 수사 보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 이에 대한 답을 찾지 않으면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로 인한 시민권 침해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이고, 검찰에 대한 정보는 언론으로부터 나온다. 사회 갈등이 여의도 국회의사당이 아니라 서초동 검찰청으로 수렴되는 나라에서 검찰은 무소불위의 권력집단으로 자리잡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두 개의 칼을 쥐고, 기소편의주의와 기소독점주의라는 날개까지 달고 있다. 이런 검찰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다.

이토록 중요한 검찰을 우리는 언론을 통해 만난다. 우리가 아는 검찰은 언론이 전하는 검찰이다. 그럼에도 검찰에 대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는다. 검찰 수사를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어도 강고하게 유지되는 ‘검찰 공화국’의 비밀은 여기에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8일 ‘사법개혁 및 법무개혁 당정협의’에서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금지하는 ‘형사사건 수사공보 개선 방안’을 자신의 가족 관련 수사가 마무리된 뒤에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개정안이 ‘조국 지키기’를 위한 것이라는 공격이 쏟아지는 마당에,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타이밍’ 논란에서 벗어나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져볼 시점이 됐다. 피의사실 공표는 당략과 정쟁의 제물로 삼고 치우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피의사실 공표죄 1953년 제정…수사관계자 처벌은 0명

형법 제126조에 규정된 피의사실 공표죄는 수사기관 종사자가 직무 수행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 청구 전 외부에 알릴 경우 처벌하는 조항이다. ‘피의자’는 수사기관으로부터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는 사람’을 말한다. 공소가 제기된 ‘피고인’과 달리 아직 형사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수사기관은 판관이 아니다. 그저 혐의를 의심할 뿐이다. 법정에서 무죄가 나오면 그 의심은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검사의 의심을 받는다고 해서 피의자가 범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시민의 눈에 피의자는 곧 범죄자를 의미한다.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혐의 내용이 마치 확정된 사실인 양 언론에 보도되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공소 제기 전부터 수사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며 피의사실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여론으로부터 유죄를 선고받게 되면 이후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되기 어렵다. 판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여론의 기대를 뒤집는 판결을 내리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고, 언론 보도로부터 유죄의 심증을 갖게 될 수도 있다. 피의사실 보도가 비판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일정한 수준의 피의사실 보도는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종류의 범죄에 대한 수사 정보는 그 자체로 공익성을 띤다. 고위공직자의 비리,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의 근간을 뒤흔드는 범죄, 국민의 안전에 직결된 범죄의 경우가 그렇다. 가령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수사 과정을 언론이 보도하지 않고 지나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뿐 아니다. 형사소송 절차를 독점하는 검찰이 정치인과 재벌 등 권력 집단을 수사할 때 국민들은 수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신뢰하지 못한다. 시민사회가 검찰 수사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면, 언론이 수사 과정에 대한 보도를 통해 그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다. 검찰이 국민에게 알리지 않고 중대한 사건을 덮으려 할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힘은 언론에 있다.

이 때문에 피의사실 공표 문제의 본질은 흔히 ‘피의자 인권 보호’와 ‘국민의 알 권리’라는 두 가지 상반된 가치 사이의 충돌로 이야기된다. 법 논리 차원에서는 정확한 분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절반의 진실만이 담겨 있을 뿐이다. 문제가 놓여 있는 한국 사회의 특수한 정치적 맥락에 대한 고려가 배제된 진단이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에도 변화 없어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와 보도 관행이 고착화한 원인은 검찰과 언론의 공생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급소는 권력의 공백을 틈타 검찰과 언론이 스스로 권력의 자리에 올라섰다는 데 있다. ‘언론 권력’과 ‘검찰 공화국’이 차례로 탄생한 것이다. 권력화된 검찰과 언론은 자신의 영향력을 확대재생산하기 위해 손을 잡고 서로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검찰과 언론의 밀월관계는 각자가 독점하는 것을 주고받는 형태로 맺어졌다. 검찰은 수사에 관한 정보를, 언론은 정보를 시민에게 제공하는 채널을 독점한다. 정보는 있지만 전달을 할 수 없었던 검찰과, 전달은 할 수 있지만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 언론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거래는 성사된다. 언론은 보도의 소스를 얻고, 검찰은 여론에 접근할 수 있는 채널을 얻는다.

검사들은 흔히 ‘수사는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말한다. 죽은 수사가 살아나는 비결은 언론플레이에 있다. 검찰은 언론에 정보를 흘리며 수사를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조직에 득이 되는 수사는 여론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키웠고, 조직에 해가 되는 수사는 여론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려 덮었다. 대개 전자는 ‘죽은 권력’을 겨냥한 수사요, 후자는 ‘살아있는 권력’을 겨냥한 수사였다.

언론을 움직여 자신들의 일방적 주장을 ‘기정사실’로 만듦으로써 피의자를 압박하고 재판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도 했다. 언론이 피의자에게 범죄자라는 낙인만 찍어주면 법원으로부터 유죄를 받아내기가 한결 쉬웠다. 검찰 권력화의 싹은 과도한 권한을 부여한 제도의 맹점에 숨어 있었지만, 그 싹에 물을 주어 키운 것은 분명 언론이었다.

상업주의에 매몰된 언론은 검찰로부터 남들이 알지 못하는 정보를 제공받아 한발 먼저 보도함으로써 치열한 단독 경쟁에서 앞서나가고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 검찰은 때로는 언론사의 입맛에 맞게 수사의 방향과 속도를 조절해주었고, 언론 기업의 부정을 눈감아주기도 했다.

나아가 언론은 검찰에 의존하게 되면서 힘겨운 사실 확인과 검증의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게 됐다. ‘검찰의 말이 곧 팩트’라고 주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언론은 그저 검찰의 입만 바라보고 ‘받아쓰기’만 하면 됐다. <뉴스타파> 김용진 대표의 말대로, 검찰과의 관계에서 언론은 ‘우리에 갇혀 사육사가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며 생존하는 동물’과 다름없었다.

검찰과 언론의 공생이 빚어낸 최악의 비극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였다. 그를 겨냥한 수사 기간 내내 보수언론들은 검찰보다 한발씩 앞서가며 혹독한 수사를 재촉했고, ‘논두렁 시계’ 등 수많은 피의사실이 아무렇지 않게 언론에 오르내렸다. 검찰과 언론이 한배를 탈 때 내버려지는 것은 시민들의 기본권이다. 그 권리의 사각 안에서는 대통령을 지낸 사람조차 자유로울 수 없었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큰 희생을 치르고도 윤리적 각성이나 제도적 개선은 이뤄지지 않았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 사후인 2010년 기소 전 수사 내용 공개를 제한하는 ‘인권보호를 위한 수사공보 준칙’을 마련했지만, 끝내 구두선에 그쳤다.

1953년 제정 이래 현재까지 피의사실 공표죄로 수사 관계자가 기소돼 처벌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피의사실을 공표한 사람을 색출해 처벌하는 주체가 검찰인 점을 고려하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검찰은 제 머리를 깎을 의사가 조금도 없어 보인다.

법무부의 수사공보 개정안은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피의사실 공표를 엄격히 제한해 인권 침해를 막겠다는 취지다. 개정안의 문제의식과 개선 방향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옳다.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를 계속 방치할 수 없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모든 형사사건에 대한 정보 공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지극히 예외적으로만 허용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더 신중한 검토와 섬세한 준비가 필요해 보인다. 피의사실 공표가 범람하게 된 한국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외국의 법령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하거나 소박한 법 논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시도는 자칫 의도하지 않은 위험을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과도한 정보 통제가 검찰과 극소수 언론의 정보 독점을 오히려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과 언론을 ‘내부자들’로 만든 것이 정보의 독과점이다. 권력을 향한 검찰의 욕망은 그대로 둔 채 수사 정보의 공개만 막는다면, 검찰은 자신에게 집중된 정보를 지렛대 삼아 새로운 형태의 흥정을 시도할 수 있다.

노 전 대통령 사후에 만든 공보준칙도 편의적으로 악용해온 검찰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보는 입맛대로 흘리면서 불리할 때만 피의사실 공표죄를 방패 삼아 침묵하는 식이었다. 검찰은 조직의 이해관계에 따라 예외적 공개 규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정치적 무기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현실적으로 정보가 온전히 통제되기는 어렵다. 노 전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보도들은 대부분 공식 브리핑이 아닌 은밀한 취재원, 즉 ‘빨대’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피의사실 공개의 전면적 통제는 ‘빨대’를 통한 교묘한 정보 유출을 부채질할 수 있다.

언론이 수사 정보에 공식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차단당한 상태에서는 ‘단독’ 경쟁이 더 심화할 수밖에 없다. 피의사실 보도는 계속 쏟아질 것이다. 언론이 ‘빨대’를 통한 파편화된 정보 추구에 나서면서 추측성 보도와 오보로 인한 인권 침해가 더 심각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밀실 간담회는 이제 그만…정보 유통 투명해져야

무분별한 피의사실 공표를 근절하려면 근본적으로 검찰과 언론이 유착하는 고리를 끊어야 한다. 지금과는 반대로 되도록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도록 공유해 검찰과 언론의 정보 독과점을 해소해야 한다. 유통 가능한 모든 정보를 양성화하여 권력기관들이 물밑거래를 할 만한 자원을 고갈시키자는 것이다.

예컨대 중대 범죄 수사의 경우 피의사실 일부를 원칙적으로 공개하는 방향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때 피의사실의 공개는 검사와 기자들만의 밀실 간담회가 아닌, 생중계되는 공개 브리핑을 통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어떤 정보를 어떻게 공개할지를 검찰 지휘부의 판단과 재량에 맡겨서는 안 된다. 공개 범위는 검찰의 비중이 최소화된 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해야 한다. 비검찰 법조인과 시민으로 위원회를 구성하고, 검찰은 위원회 결정에 무조건 따르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검찰에 대한 문민 통제다.

핵심은 검찰과 언론이 상호 의존하는 구도를 상호 견제하는 구도로 바꾸어내는 것이다. 정보의 투명성이 높아질수록 검찰과 언론이 은밀히 만나야 할 동기는 줄어든다. 서로가 견제의 대상이 된다면 피의사실을 주고받으려는 유혹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워질 것이다. 권력기관들 간의 거리는 멀수록 시민들에게 좋은 법이다.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6월12일 이인규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인 2009년 6월12일 이인규 당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박연차 게이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모습.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910380.html?_ns=t1#csidxce8f43632c22181b569b2a81f52d1e8

[B급통신] 5만원 장난감 선물 받았다가 사임한 獨 대통령

[스포츠서울] 대한민국이 최순실 게이트로 혼란스러운 가운데 몇 년 전 독일의 대통령이 사임했던 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최근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난 2012년 독일의 크리스티안 볼프 대통령이 취임 2년 만에 사임한 일이 회자되고 있다.

당시 볼프 대통령은 여러 가지 특혜성 협찬을 받고 지위를 남용한 혐의로 대통령직을 내려놓게 됐다.

볼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니더작센주 총리 시절 주택구입을 위해 재벌 친구에게 돈을 빌렸다. 이 때 빌린 50만 유로(약 6억 원)은 2년 뒤에 갚았고 이자는 은행 이자보다 1% 낮은 수준이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볼프 대통령의 각종 특혜가 드러났다. 2007년 뮌헨 맥주 축제 휴가지에서 호텔 업그레이드 비용으로 400유로(약 60만 원)을 주며 특별대접을 부탁한 일, 아내 차를 살 때 할부 이자를 0.3% 할인받은 일까지 드러났다.

나중에는 자동차 판매원이 볼프 대통령의 아들 생일 선물로 30~40유로(약 5만 원)짜리 장난감차를 선물 했는데 이것조차 비난의 대상이 됐다.

볼프 대통령은 당시 "친한 친구에게 돈도 빌릴 수 없는 나라에 살기 싫다"고 말했으나 시민들은 역으로 "독일은 비리를 폭로해야만 하는 대통령과 살 수 없다"고 일침을 놓았다.

결국 여론은 나빠질 대로 나빠져 볼프 대통령가 사임해야 한다는 의견이 85%에 달했다. 결국 그는 대통령직에 오른 지 2년 만에 스스로 물러나는 선택을 했다.

한편, 네티즌들은 독일 사례와 최순실 게이트를 비교하며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뉴미디어국 news@sportsseoul.com>

사진 | 온라인 커뮤니티
언론이 눈 감은 청와대 국민청원의 한 게시물
전 언론사 세무조사 요구 게시물 이틀 만에 6만 명…언론에 대한 불신 드러낸 내용이라지만 정권 보복 조치로 볼 수도
  • 이재진 기자 jinpress@mediatoday.co.kr 이메일 바로가기
  • 승인 2019.09.12 15:54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언론사 세무조사를 요구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게시글은 헌법 제1조를 언급하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국세청장에게 전 언론의 세무조사를 실시할 것을 명령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언론사들은 가짜뉴스를 양산하여 여론을 호도하는 찌라시 언론으로 전락하였습니다”라고 시작한다.

그러면서 “조선일보 일본판에 매국적 기사 제목(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에 투자를 기대하나)을 난발하였고, 중앙일보 일본판에는 (닥치고 반일’이라는 우민화정책=한국) 등등 이런 매국적 기사를 쓰고, 연합뉴스는 300억이라는 국가보조금을 받는 언론사이지만 대통령의 소식을 전하면서 인공기를 TV영상에 내보내는 등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언론사들이 국익보다는 현 정부에 맹목적 비판만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국세청장에게 전 언론사의 세무조사”를 요청하는 내용이다. 언론 보도에 대한 불신을 극단적으로 드러내면서 언론개혁의 조치로서 세무조사라는 방안을 제시하는 내용이다. 

관련 게시물은 언론보도에 대한 비평과 검증이 강화되고 있는 현실의 단면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자정적인 언론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면서 정권 차원에서 공평 과세라는 명분으로 개혁 조치를 이끌어야 한다는 강한 의지가 반영돼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정권 차원에서 언론사 세무조사는 정권과 대척점에 있는 언론에 대한 보복 조치 혹은 언론과의 전쟁 선언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문제에 해당한다. 

관련 게시물은 지난 10일 올라왔고 이틀 만에 동의 숫자가 6천2백 명을 넘어섰다. 게시물에 공감하는 속도로만 보면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이슈에 해당하지만 이런 청원 내용을 소개하는 언론 보도는 찾을 수 없다. 냉담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시물 내용을 다루는 것 자체만으로도 주목을 받으면서 논란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권 차원의 언론사 세무조사는 대표적으로 김대중 정부를 들 수 있다. 2001년 2월 국세청은 중앙지와 방송, 통신사 등 23곳에 대한 정기 법인세조사를 하겠다고 통보했다. 정권과 언론의 전쟁이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세무조사는 그해 6월까지 진행했다. 탈루 소득만 1조3594억 원으로 드러났고 5065억 원 세금을 추징하기로 했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과 김병관 동아일보 명예회장, 조희준 국민일보 회장이 구속됐다. 

▲ 언론사 세무조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
▲ 언론사 세무조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물.

언론은 집단 반발했다. 세무조사의 정당성을 보도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한겨레는 “국세청이 이번에 거의 전 중앙 언론사를 조사해 언론사뿐 아니라 사주 등 대주주의 탈세 비리까지 확인하고 거액의 세액을 추징하기로 한 것은 공평과세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 “언론자유 침해를 내세우며 세무조사 예외의 특혜를 누려온 언론사들은 이번 조사를 계기로 기업으로서 투명한 경영 방침과 정당한 납세 관행을 세워나가야 국민들로부터 잃어버린 신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은 정권의 칼날이 자신들에게 향했다면 날선 보도를 내놨다. 세무조사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면서 당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발언을 근거로 해서 청와대가 보수언론을 손보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북에서도 언론사 세무조사는 김대중 정부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당시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역대 군사정권 하에서 비대해진 보수언론들이 오늘에도 반민주적이며 반통일적인 체질을 유지, 안하무인격의 횡포를 저지르고 있는 속에서 진행되는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는 남조선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화해. 단합으로 나아가는 북남관계 여론의 추이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고 보도했다.

언론사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과세를 공표하는 문제는 정권에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2009년 4월 재일한국인 강상중 도쿄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올바른 언론은 목숨 걸고라도 지키고 존중하지만 옳지 않은 언론에 대해서는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며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를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있을 때 어떤 신문사의 탈세 문제를 다루는 어려운 국면에 맞닥뜨린 적이 있습니다. 나는 모든 사실을 밝혀내서 공평하게 재판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의 힘은 강력하기 때문에 보복이 예상되었습니다. 이때만은 나도 좀 주눅이 들었지요”라고 털어놨다. 김 전 대통령은 “아니나다를까 엄청난 반격을 받았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다”면서 “그러나 재판에 의해 그들의 죄는 폭로되고 유죄가 확정되었다”고 말했다. 

한 일간지 기자는 “세무조사라는 것은 일반기업이라면 정기적으로 실시해 기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는지 정당하게 세금을 내는지를 검토하는 당연한 조치”라면서 “청원 게시글은 특별 세무조사를 얘기하는 것인데 기존 언론에 대한 불신이 가중돼 게시물이 등장한 것은 일면 이해하지만 특별하게 언론사들을 타깃 삼아 대대적으로 진행하는 세무조사는 공정경쟁을 위축시키거나 언론 본연의 사회적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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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칼럼] 군부 쿠데타, 검찰의 ‘반란’

등록 :2019-09-11 13:51수정 :2019-09-11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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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수

1961년 5월16일 새벽, 서울 도심의 중앙방송국(현 KBS)을 장악한 반란군은 아나운서에게 왜 봉기했는지를 담은 성명서를 읽게 했다.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성명에서 이렇게 쿠데타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쿠데타를 주도한 박정희 소장은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택한 이 방법이 조국과 겨레에 반역이 된다면, 우리들은 국민 앞에 사죄하고 전원 자결할 것입니다.” 목숨 걸고 한강 다리를 건넌 쿠데타 주도세력에게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한줄기 붉은 단심이 없었다고 보긴 힘들다.

한때 ‘군사혁명’으로 칭송되던 반세기 전의 군사반란을 떠올린 건, 지금 윤석열 검찰총장 심정도 그때 그 청년 장교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정국은 혼란스럽고 여야는 갈라져 싸우고 국민 여론은 분열됐는데, 법과 정의를 수호해야 할 검찰이 가만있어서 되겠는가, 수많은 의혹과 논란에 휩싸인 사람이 법무부 장관으로 가는 게 정당한가, 이런 나름의 사명감이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기도 전에 대대적 압수수색에 나서고 한차례 조사도 없이 후보자 부인을 기소하는 전격적인 행동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물론, 군부 쿠데타와 검찰의 행동을 단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쿠데타는 ‘헌정질서 유린’이지만, 검찰은 ‘헌법’에 근거해 수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군부가 총칼로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결정할 수 없듯이,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으로 ‘법과 정의’의 심판자가 되려는 건 오만한 생각이다. 때론 명분이 있는 것 같고, 국민 지지를 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은 민주주의 기본인 ‘국민주권’을 심각하게 해치는 것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민주주의 체제가 민간 정부에 대한 군부의 항명을 용납치 않고 문민 통제를 엄격하게 확립한 이유가 여기 있다. 우호적인 것처럼 보이는 여론이 국민의 위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1961년 군사 쿠데타 직후에도 여론의 반응은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 시절 학생단체 가운데 군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가장 먼저 낸 건 서울대 총학생회였다.

군사정권은 막을 내렸지만, 검찰은 여전히 국민의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비고비마다 국민 관심이 많은 사건을 전광석화처럼 수사하며 영향력을 유지해왔다. 대통령 인사권과 국회의 인준 권한을 침범한 검찰은 이제 칼끝을 야당으로 돌리고 있다. ‘정치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몇몇을 치고, 그렇게 국민 지지를 얻으며 논란을 잠재우려 할 것이다. 최근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검 간부들에게 “검사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건 부패한 것과 마찬가지다. 검사는 중립을 지키면서 본분에 맞는 일을 하면 된다”고 말한 건 그런 뜻으로 읽힌다.

여야를 똑같이 수사하면 ‘공정’한 것일까. 정치적 균형과 공정함을 찾는 건 선거를 통해 국민 위임을 받은 정치가 할 일이지, 검찰의 역할은 아니다. 검찰이 독점적 수사권으로 이걸 하겠다는 건, 군부가 쿠데타를 해서라도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지키겠다고 나서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여야를 넘나들며 ‘균형’을 맞추고 그래서 정치적 편향 시비에서 벗어나는 걸 용인하면, 최후의 승자는 언제나 검찰일 수밖에 없다.

현대사의 마지막 쿠데타는 1979~80년 무렵의 12·12와 5·17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군사 쿠데타의 위협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그로부터 20년이 지나서다. 1990년대 초반 김영삼 정부가 경복궁에 주둔하던 수방사 30경비단의 해체를 추진할 때만 해도, 군 장성들이 청와대 상황실로 전화를 걸어 ‘니들 배엔 총알이 안 박히냐’고 노골적인 협박을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2·12와 5·17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등이 군사반란과 내란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1997년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 주변을 휘감고 있던 쿠데타의 그림자는 사라졌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가 무너지고, 비록 쿠데타에 성공해 집권하더라도 결국 정치적·법적 심판을 면할 수 없으리라는 인식이 군 지휘관들에게 뿌리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의 과욕을 뿌리 뽑으려면 아마도 비슷한 경로를 거쳐야 하지 않을까 싶다. 취임 이후에도 외줄타기하듯 아슬아슬한 조국 법무부 장관이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논설위원실장 pcs@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09333.html?_ns=t1#csidx21fd7defa322c3a959857f9bf15c0bc

[이슈해부] 윤석열號 첫 검찰 인사에 담긴 ‘메시지’ 

칼날 바꿨지만 칼자루는 그대로 

공안통 물러난 자리 특수통이 장악하고 ‘윤석열 사단’ 전진 배치
전 정권서 잘나갔던 검사들 줄사표… 검찰 인사 공정은 요원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식이 7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5층에서 열렸다. 윤 총장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사진:변선구 기자
'특수통 전진 배치’

윤석열(59, 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 취임 이튿날인 7월 26일 법무부에서 검찰 고위 인사를 발표하자 이런 수식어가 붙었다. 10여 년 전부터 윤 총장과 함께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국정농단 사건 등을 맡으면서 호흡을 맞춰온 한동훈(46, 27기)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을 꿰찼다. 반부패·강력부는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로 불리던 자리로 전국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총괄한다.

다시 5일 뒤 발표된 중간 간부급 고검 검사 인사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서울중앙지검은 1·2·3차장에 각각 신자용(47, 28기) 전 법무부 검찰과장과 신봉수(49, 29기)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송경호(49, 29기)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등 특수통 검사들이 전진 배치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의혹 사건을 맡았던 송경호 전 특수2부장은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 검사로 수직 이동했다. 특수2부가 맡던 삼바 분식회계 의혹 사건은 특수4부가 맡는다. 신임 특수4부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67, 10기) 특검팀에서 활동했던 이복현(47, 32기) 검사가 맡았다. 이 4부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와 삼성 다스 해외소송비 대납 의혹 등을 다루면서 삼성 지배구조와 관련된 수사를 담당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거래 의혹 등 굵직한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장에 공정거래 전문가로 알려진 구상엽(45, 30기) 공정거래조사부장이 발탁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구 부장은 현직 검사로선 이례적으로 공정거래 분야로 서울대에서 형사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윤석열 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 교란 반칙행위 등 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이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의 본질을 지키는 데 법 집행 역량을 더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호(號)가 닻을 올릴 때부터 ‘공정’ 경제를 강조하는 게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국장급을 지낸 인사는 “미국 외에 유럽이나 일본은 기업 간 담합 행위에 대해 과태료 처분과 같은 행정 제재를 내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미국 모델을 좇는 검사들이 자칫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요직에 특수부 검사 전진 배치


▎전국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발탁된 한동훈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윤 총장과 함께 10여 년 전부터 굵직한 특수수사를 맡아 호흡을 맞춰 왔다.
지난해 11월 검찰이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계열사 주식보유 현황을 신고할 때 5개 계열사를 고의로 누락했다고 약식 기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정위 전공인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교수는 “공정위가 경고에 그친 사건을 검찰이 기소하더니 1심에서 무죄가 나왔다”며 “고소·고발 천국인 한국에서 기업들이 압수수색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검찰이 특수부를 강조하면 경찰도 지능범죄수사대 인력을 많이 늘려서 검찰과 경쟁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기업 옥죄기 수사보다는 사회 약자들을 위한 수사를 강조하자는 차원에서 윤 총장이 ‘공정’ 경제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검찰 관계자는 “서민 실생활과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수사를 위해 윤 총장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경제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서민용 임대주택 건설을 주로 맡는 부영그룹 수사가 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부영그룹이 분양가를 조작하고, 아파트 단지 설치용 미술작품의 단가나 각종 공사 대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총수 일가 비자금을 조성한 점을 잡아냈다.

윤 총장은 지난해 6월부터 이어져 온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거래 의혹 사건 공소유지를 위해 기존 수사팀 인력 상당수를 특별공판부로 이동시켰다. 특별공판팀은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 산하에 새로 설치됐다. 신 차장은 직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부터 이 사건을 전담했다.

특별공판팀은 검사 18명으로 구성됐다. 대부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기존 특수부 검사들이다. 박주성(41, 32기)·단성한(45, 32기) 부장검사도 이번에 각각 부천과 성남지청 형사4부장으로 승진·전보됐으나 파견 형식으로 공판 업무를 담당한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1심 재판 외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루된 블랙리스트 사건의 대법원 판결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직권남용죄 심리 판결은 늦어도 9월 중순에는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정부에서 승승장구하던 ‘공안통’은 이번 인사에선 줄줄이 물을 먹었다. 18명 고검장·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특히 그동안 공안통 검사들이 가는 법무부·서울중앙지검 주요 자리에 ‘비공안통’이 배치됐다.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자리에는 권상대(43, 32기) 제주지검 형사2부장이, 서울중앙지검 공안1·2부장에는 각각 정진용(49, 30기) 서울중앙지검 총무부장과 김태은(47, 31기) 서울동부지검 사이버수사 부장이 임명됐다.

다만 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일부 형사부 부장검사들이 대검찰청과 일선 지검의 주요 보직으로 발탁되면서 형사부 출신 검사장도 윤 총장 임기 내에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모이고 있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을 맡았던 김유철(50, 29기)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가습기 살균제와 코오롱 인보사 사태를 담당했던 권순정(45, 29기)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은 대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버닝썬 사건을 지휘했던 신응석(47, 28기)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은 기업·금융 전담청인 서울남부지검 2차장으로 발탁됐다. 이번에 남부지검 1차장으로 임명된 심재철(50, 27기) 검사는 직전 법무부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장 승진자 18명 중 공안통 ‘0’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의 지휘라인이었던 권순철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는 검찰 인사 직후 사의를 표명하면서 “인사는 메시지”라는 말을 남겼다.
형사부는 업무량이 많으면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형사부에서 평검사로 주로 지내다가 3년 전 로펌으로 나온 한 변호사는 “형사부에서 주로 활동한 검사들은 스스로 전공을 일빵빵(100, 육군 보병 주특기 번호를 가리키는 은어)이라며 출세에 큰 욕심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 형사부 검사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경찰 출신 변호사는 “국민이 사기를 당하면 만나는 검사가 대부분 형사부 소속”이라며 “형사부 검사들이 경찰의 수사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지휘와 통제를 하고 재판 공소 유지를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퇴임한 봉욱(54, 19기) 전 대검 차장검사도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는 범죄가 최근에는 아동학대와 성폭력, 살인사건과 같은 형사사건으로 변하고 있다”며 “형사부 검사가 한 사건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에 불과하다”며 지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 개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통·공안통 출신 검사들은 매번 인사 때마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만큼 국민이 마주하는 형사부 검사들을 요직에 앉히는 흐름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의 한찬식(51, 21기) 전 검사장, 권순철(50, 25기) 전 차장검사, 주진우(44, 31기) 전 형사6부장 등 지휘라인은 모두 사표를 냈다. 한 전 검사장은 고검장 승진 인사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고, 권 전 차장은 고검으로 전보됐다. 주 전 부장은 후배 기수들이 맡는 안동지청장으로 발령 났다.

서울지방변호사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하자는 취지로 이번 정부에서 공수처 도입을 주장했는데 동부지검 검찰 인사로 정권의 이중성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하나 떠나는 사람도 조용히 나가지 않았다. 권 전 차장은 “인사는 메시지라고 합니다”, 주 전 부장은 “‘능력과 실적, 조직 내 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뤄진다는 신뢰’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사직 인사에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검사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전체 2200명의 검사 중 650여 명에 이르는 부장 이상 간부 중 10%에 이르는 검사가 집단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특수통 검사가 약진하면서 공안검사들이 몰락했고 현 정부의 비리를 수사한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 인사를 당한 데 대한 항의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검찰 인사처럼 현 정권의 비리에 정면으로 수사의 칼을 들이댔던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당할 수 있는 대통령의 검사 인사권이 건재하는 한 검찰개혁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인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윤석열 총장도 동부지검 간부 줄사표 이후 열린 대검 내부 행사에서 “어떤 보직을 맡느냐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러분이 맡은 보직은 기대했던 것일 수도 있고, 기대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 특징은 이전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던 검사들과 좌천당했던 이들의 희비가 엇갈렸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박형철(49, 25기)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이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 관여한 모습이 보인다며 5년 전 좌천성 인사를 뒤집었다는 말도 나온다.

5년 전인 2014년 1월 10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특별수사팀을 이끌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은 대구고검으로, 수사팀 부팀장 역할을 했던 박형철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장은 대전고검으로 밀려났다. 박 비서관은 그 후 2016년 검찰을 떠났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지난 정부에서 소위 ‘잘나갔던’ 검사들은 대거 사표를 던졌다. 2009년 대검 중수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이선봉(53, 27기) 전 군산지청장이 대표적이다. 이전 지청장은 2014년 연수원 동기 가운데 가장 먼저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가 됐지만 현 정부에서는 한직을 맴돌았다. 이번에도 한직으로 분류되는 부산고검 검사로 발령이 났다. 그는 사직 인사를 통해 “저도 사람인지라 항상 그 마음을 유지하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 검사 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고 전했다.

‘정권에 잘 보인 검사가 출세’ 속성은 그대로


배종혁(52, 27기) 서울고검 검사도 사의를 표명했다.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BBK 주가 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다. 검찰은 당시 사건을 대부분 무혐의 처분했다. 지난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까지 맡았던 배 검사는 현 정권 들어 서울고검 검사로 발령 났고 이번에도 서울고검에 남게 됐다.

이번 정부에서 강조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기를 든 인사도 실무에서 배제됐다. 김웅(49, 29기) 전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은 이번 인사에서 법무연수원 교수로 발령 났다. 수사 실무를 맡지 않는 연구직이다. 김 전 단장은 문무일 전 총장 때 정부·여당의 수사권 조정안을 강하게 반대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검찰 인사를 공정히 하려면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해야 하는데 말은 쉽지만 참 어려운 문제”라며 “대통령은 형식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검찰 인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1년 한 토크콘서트에 출연해 “집단 항명으로 검사들이 사표를 제출하면 다 받으면 된다. 로스쿨 출신 중 검사보를 대거 채용해 새로운 검찰을 만들면 된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이 말을 안 듣는다고 보는 것 자체가 그들을 충견(忠犬)으로 보는 독선적인 생각이다. 검찰 인사 공정성을 보장해야 국민을 위한 검찰이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인사가 그동안 기업-검찰 유착 관계를 끊는 일시적인 흐름이라는 분석도 있다. 검찰 미래위원회 위원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무일 총장 시절에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 기존 권력층 수사에 집중해 왔다면 윤석열 총장 임기에는 경제 권력 감시 중심으로 검찰이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무부와 대검찰청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사임 뒤 바로 대형로펌에서 기업을 변호하는 전관은 막아야 한다”며 “이런 기업-검찰 유착 비리를 끊기 위해서 기업을 잘 아는 특수통 검찰들이 일시적으로 전진 배치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김민상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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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z8szd05TYas

국회의원 '톱 30명', 소유 부동산만 4000억대

경실련 "3년간 평균 30억 원 시세 차익...재산 공개토록 법 개정해야'
2019.08.20 11:44:53
국회의원 '톱 30명', 소유 부동산만 4000억대
부동산 재산 상위 30명 국회의원이 가진 부동산 평균 시세가 144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공개한 평균 신고가액의 두 배에 달했다. 

20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서울 동숭동 경실련 강당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회의원 상위 29명, 보유 부동산 시세 절반만 신고

경실련이 올해 기준 가장 많은 부동산 재산을 신고한 국회의원 30명(이완영 제외 29명)의 부동산 보유 현황과 임기 중 재산가액 변화를 조사한 결과, 이들이 보유한 부동산 시세 총합은 4181억3632만 원으로 나타났다. 평균 보유 부동산 시세는 144억1849만 원이었다. 

이들이 공개한 신고가액 2233억4346만 원(1인당 평균 77억149만 원)의 두 배에 가까운 차이다. 신고가액과 시세의 차액이 1947억9286만 원으로 시세반영률은 53.4%에 불과했다. 

국회의원 중 가장 비싼 부동산 자산을 보유한 이는 박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었다. 박 의원은 보유 부동산으로 352억503만 원을 신고했으나, 이들 부동산의 시세는 657억6983만 원에 달해 차액이 305억6480만 원이었다.  

뒤를 김세연 자유한국당 의원(신고가액 300억1891만 원, 시세 657억2678만 원), 박덕흠 자유한국당 의원(신고 295억1398만 원, 시세 476억4024만 원), 홍문종 우리공화당 의원(신고 123억949만 원, 시세 240억6508만 원), 정우택 자유한국당 의원(신고 42억1780만 원, 시세 176억1603만 원)이 이었다.  

이들 부동산 보유 상위 5명의 재산 신고가액은 1113억 원에 달했으나, 시세는 2208억 원에 달해 시세반영률이 50.4%에 불과했다.  

특히 정우택 의원은 신고가 기준으로 국회의원 중 재산 22위였으나, 그가 보유한 성수동 빌딩 등의 신고가액 시세가 적용되면서 재산이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별로 보면 자유한국당 의원이 16명으로 가장 많았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6명, 바른미래당 의원이 3명, 민주평화당 의원이 2명, 우리공화당 의원이 1명, 무소속 의원 1명이었다. 

3년간 평균 30억 원 시세 차익 올려 

이들 국회의원 29명의 부동산 자산 가치는 임기를 시작한 2016년 이후 3년 간 시세 기준 868억2000만 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이들은 부동산 투자로 평균 29억9000만 원의 시세 차익을 올렸다.  

김세연 의원이 2016년 가진 부동산의 시세는 499억7000억여 원이었으나, 2019년에는 657억 원이 넘어 시세 차익 157억6000만여 원을 올렸다.  

박정 의원이 얻은 시세 차익은 139억4000만 원이었다. 정우택 의원이 113억7000만 원, 박덕흠 의원이 62억4000만 원의 시세 차익을 얻었다.  

김병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6년 부동산 3억2000만 원을 보유했다고 신고했으나(당시 시세 3억9000만 원), 2019년에는 58억5000만 원을 신고했다. 현재 해당 부동산의 시세는 70억5000만 원에 달한다는 게 경실련 측의 조사 결과다.  

조사한 전체 의원 29명의 부동산 자산은 2016년 3313억 원에서 올해 4181억 원으로 868억 원 증가했다.  

경실련은 "국회의원들의 부동산 재산 신고가액이 시세를 절반만 반영해, 투명한 재산공개를 통해 부정한 재산 증식을 방지하고 공직자 윤리를 강화한다는 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며 "대부분 국회의원이 부동산 재산을 공시지가로 신고해 재산을 축소했고, 막대한 세금 특혜까지 누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20일 경실련이 서울 동숭동 경실련 강당에서 국회의원 부동산 재산 현황을 발표했다. ⓒ프레시안(이대희)


경실련 "국회의원 부동산 재산 온라인 공개토록 공직자윤리법 개정해야"

상위 29명 국회의원이 보유한 부동산은 총 484건이었다. 1인당 평균적으로 논·밭·임야 등 대지 10건, 아파트·오피스텔·주택 등 주택 3건, 상가·빌딩·사무실 등 1건씩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덕흠 의원이 총 83건의 토지를 보유했고 그 뒤를 김세연(45건), 주승용(42건) 의원이 이었다. 주택이 많은 국회의원은 이용주(27건), 박덕흠(7건), 강석호(6건) 의원 순이었다. 상가·빌딩·사무실을 많이 가진 국회의원은 이철규(4건), 진영(3건) 의원 순이었다. 

경실련은 이 같은 조사 내역도 완전하지는 않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 국회의원 중 19명의 가족 38명이 독립생계 유지, 타인부양 등을 이유로 재산 고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경실련은 이 같은 이유로 인해 이들 국회의원이 가진 정확한 재산 규모가 축소됐다고 밝혔다. 

신고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문제도 있다고 경실련은 지적했다. 경실련에 따르면 박정 의원은 2014년 12월 서울 상암동 트루텍 빌딩을 383억 원에 샀으나, 취득가보다 낮은 공시지가로 신고했다. 정우택 의원은 보유한 서울 중랑구 도로부지를 '0원'으로 신고했다. 공시지가는 2018년 기준 제곱미터당 120만 원이었다.  

공직자윤리법은 공시가격 또는 실거래가 중 높은 가격으로 부동산 재산을 신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이 시세를 공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관 의원이 운중동 단독주택을, 장병완 의원은 한남동 한남더힐을, 김세연 의원은 부산의 상업용지를 새로 취득하며 실거래가로 신고했다.  

경실련은 "국회의원 재산 공개가 공시가격 기준 축소, 고지거부, 인사혁신처의 허술한 심의와 불투명한 공개 등에 따라 '반쪽짜리 공개'로 이뤄지고 있다"며 "대부분 공직자가 시세의 30~60% 수준의 공시가격으로 신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순철 경실련 사무총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본인 재산을 처음 공개하면서 다른 고위공직자의 재산도 강제로 공개토록 했다"며 "당시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유명한 말이 '돈과 명예를 같이 갖지 말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가진 재산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공직자의 자세일 것"이라고 일침했다.  

경실련은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공직자윤리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재산의 공시가격과 실거래가를 모두 신고하고 △재산 신고 시 해당 재산의 취득 일자·취득 경위·소득원 등 재산형성 과정을 의무적으로 심사토록 하며 △고위공직자 재산을 현행 공고 게시 대신 재산 변동 현황을 누구나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개로 바꾸고 △인사혁신처의 실거래가 평가 시기를 취득 시점으로 해석하는 문제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동 경실련 부동산건설개혁본부 본부장은 "한국의 상위 0.001%에 불과한 고위공직자 5300여 명이 권력 90% 이상을 독점하고 있다. 특히 국회의원은 입법권까지 갖고 있다"며 "이들이 그 막강한 권력으로 자기 재산을 절반으로 축소하고, 가족의 재산을 숨기는 게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 본부장은 특히 최근 정치권의 논란이 되고 있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포함한 장관 후보자의 재산 검증도 조만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조국 후보자가 2017년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취임할 당시 신고한 재산 내역이 있을 것"이라며 "당시 제대로 신고했는지, 실거래가를 신고했는지 여부 등을 검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국회 관보에 게재된 부동산 공개현황을 토대로 시세와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부동산 시세는 최근 3년 이내 해당 필지 또는 주변 실거래가 평균값이며,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은 KB부동산 시세 자료를 활용했다고 경실련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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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기자 eday@pressian.com 구독하기 최근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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