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안통 물러난 자리 특수통이 장악하고 ‘윤석열 사단’ 전진 배치
전 정권서 잘나갔던 검사들 줄사표… 검찰 인사 공정은 요원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식이 7월 25일 오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5층에서 열렸다. 윤 총장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사진:변선구 기자 | |
'특수통 전진 배치’
윤석열(59, 사법연수원 23기) 검찰총장 취임 이튿날인 7월 26일 법무부에서 검찰 고위 인사를 발표하자 이런 수식어가 붙었다. 10여 년 전부터 윤 총장과 함께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 국정농단 사건 등을 맡으면서 호흡을 맞춰온 한동훈(46, 27기)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가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을 꿰찼다. 반부패·강력부는 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로 불리던 자리로 전국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총괄한다.
다시 5일 뒤 발표된 중간 간부급 고검 검사 인사에서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서울중앙지검은 1·2·3차장에 각각 신자용(47, 28기) 전 법무부 검찰과장과 신봉수(49, 29기)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송경호(49, 29기) 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등 특수통 검사들이 전진 배치됐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의혹 사건을 맡았던 송경호 전 특수2부장은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 검사로 수직 이동했다. 특수2부가 맡던 삼바 분식회계 의혹 사건은 특수4부가 맡는다. 신임 특수4부장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박영수(67, 10기) 특검팀에서 활동했던 이복현(47, 32기) 검사가 맡았다. 이 4부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주와 삼성 다스 해외소송비 대납 의혹 등을 다루면서 삼성 지배구조와 관련된 수사를 담당했다.
최순실 국정농단과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거래 의혹 등 굵직한 사건을 수사해 온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수1부장에 공정거래 전문가로 알려진 구상엽(45, 30기) 공정거래조사부장이 발탁된 점도 눈길을 끌었다. 구 부장은 현직 검사로선 이례적으로 공정거래 분야로 서울대에서 형사법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과 함께 미국 법무부 반독점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윤석열 총장은 취임사를 통해 ‘공정한 경쟁질서 확립’을 강조했다. 그는 “시장 교란 반칙행위 등 경제 분야의 공정한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범죄에 대해서는 추호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것”이라며 “이제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의 본질을 지키는 데 법 집행 역량을 더 집중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호(號)가 닻을 올릴 때부터 ‘공정’ 경제를 강조하는 게 기업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국장급을 지낸 인사는 “미국 외에 유럽이나 일본은 기업 간 담합 행위에 대해 과태료 처분과 같은 행정 제재를 내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미국 모델을 좇는 검사들이 자칫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요직에 특수부 검사 전진 배치
▎전국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발탁된 한동훈 전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윤 총장과 함께 10여 년 전부터 굵직한 특수수사를 맡아 호흡을 맞춰 왔다. | |
지난해 11월 검찰이 김범수 카카오 의장을 계열사 주식보유 현황을 신고할 때 5개 계열사를 고의로 누락했다고 약식 기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공정위 전공인 사립대 법학전문대학원의 한 교수는 “공정위가 경고에 그친 사건을 검찰이 기소하더니 1심에서 무죄가 나왔다”며 “고소·고발 천국인 한국에서 기업들이 압수수색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검찰이 특수부를 강조하면 경찰도 지능범죄수사대 인력을 많이 늘려서 검찰과 경쟁하려 할 것이라고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기업 옥죄기 수사보다는 사회 약자들을 위한 수사를 강조하자는 차원에서 윤 총장이 ‘공정’ 경제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검찰 관계자는 “서민 실생활과 피부에 와닿을 수 있는 수사를 위해 윤 총장이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 경제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서민용 임대주택 건설을 주로 맡는 부영그룹 수사가 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부영그룹이 분양가를 조작하고, 아파트 단지 설치용 미술작품의 단가나 각종 공사 대금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총수 일가 비자금을 조성한 점을 잡아냈다.
윤 총장은 지난해 6월부터 이어져 온 사법행정권 남용 및 재판거래 의혹 사건 공소유지를 위해 기존 수사팀 인력 상당수를 특별공판부로 이동시켰다. 특별공판팀은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 산하에 새로 설치됐다. 신 차장은 직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시절부터 이 사건을 전담했다.
특별공판팀은 검사 18명으로 구성됐다. 대부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기존 특수부 검사들이다. 박주성(41, 32기)·단성한(45, 32기) 부장검사도 이번에 각각 부천과 성남지청 형사4부장으로 승진·전보됐으나 파견 형식으로 공판 업무를 담당한다.
검찰은 사법행정권 남용 1심 재판 외에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연루된 블랙리스트 사건의 대법원 판결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직권남용죄 심리 판결은 늦어도 9월 중순에는 나올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정부에서 승승장구하던 ‘공안통’은 이번 인사에선 줄줄이 물을 먹었다. 18명 고검장·검사장 승진 인사에서 한 명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특히 그동안 공안통 검사들이 가는 법무부·서울중앙지검 주요 자리에 ‘비공안통’이 배치됐다.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자리에는 권상대(43, 32기) 제주지검 형사2부장이, 서울중앙지검 공안1·2부장에는 각각 정진용(49, 30기) 서울중앙지검 총무부장과 김태은(47, 31기) 서울동부지검 사이버수사 부장이 임명됐다.
다만 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일부 형사부 부장검사들이 대검찰청과 일선 지검의 주요 보직으로 발탁되면서 형사부 출신 검사장도 윤 총장 임기 내에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가 모이고 있다.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 사건을 맡았던 김유철(50, 29기)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장은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으로, 가습기 살균제와 코오롱 인보사 사태를 담당했던 권순정(45, 29기) 전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장은 대검 대변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버닝썬 사건을 지휘했던 신응석(47, 28기)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은 기업·금융 전담청인 서울남부지검 2차장으로 발탁됐다. 이번에 남부지검 1차장으로 임명된 심재철(50, 27기) 검사는 직전 법무부 대변인을 지냈다.
검사장 승진자 18명 중 공안통 ‘0’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의 지휘라인이었던 권순철 전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는 검찰 인사 직후 사의를 표명하면서 “인사는 메시지”라는 말을 남겼다. | |
형사부는 업무량이 많으면서도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형사부에서 평검사로 주로 지내다가 3년 전 로펌으로 나온 한 변호사는 “형사부에서 주로 활동한 검사들은 스스로 전공을 일빵빵(100, 육군 보병 주특기 번호를 가리키는 은어)이라며 출세에 큰 욕심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서 형사부 검사의 존재감은 남다르다. 경찰 출신 변호사는 “국민이 사기를 당하면 만나는 검사가 대부분 형사부 소속”이라며 “형사부 검사들이 경찰의 수사권이 남용되지 않도록 지휘와 통제를 하고 재판 공소 유지를 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 퇴임한 봉욱(54, 19기) 전 대검 차장검사도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는 범죄가 최근에는 아동학대와 성폭력, 살인사건과 같은 형사사건으로 변하고 있다”며 “형사부 검사가 한 사건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평균 1시간 30분에 불과하다”며 지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 개혁위원회에서 활동했던 원혜욱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통·공안통 출신 검사들은 매번 인사 때마다 높은 자리로 올라가는 만큼 국민이 마주하는 형사부 검사들을 요직에 앉히는 흐름도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에서 이른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한 서울동부지검의 한찬식(51, 21기) 전 검사장, 권순철(50, 25기) 전 차장검사, 주진우(44, 31기) 전 형사6부장 등 지휘라인은 모두 사표를 냈다. 한 전 검사장은 고검장 승진 인사에서 제외된 것으로 전해졌고, 권 전 차장은 고검으로 전보됐다. 주 전 부장은 후배 기수들이 맡는 안동지청장으로 발령 났다.
서울지방변호사 회장을 지낸 김한규 변호사(법무법인 공간)는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를 하자는 취지로 이번 정부에서 공수처 도입을 주장했는데 동부지검 검찰 인사로 정권의 이중성이 드러났다”고 말했다.
하나 떠나는 사람도 조용히 나가지 않았다. 권 전 차장은 “인사는 메시지라고 합니다”, 주 전 부장은 “‘능력과 실적, 조직 내 신망에 따라 인사가 이뤄진다는 신뢰’ ‘검사로서의 명예와 자긍심’이 엷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사직 인사에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검사 출신인 김종민 변호사(법무법인 동인)는 “전체 2200명의 검사 중 650여 명에 이르는 부장 이상 간부 중 10%에 이르는 검사가 집단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며 “특수통 검사가 약진하면서 공안검사들이 몰락했고 현 정부의 비리를 수사한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 인사를 당한 데 대한 항의 성격이 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검찰 인사처럼 현 정권의 비리에 정면으로 수사의 칼을 들이댔던 검사들이 줄줄이 좌천당할 수 있는 대통령의 검사 인사권이 건재하는 한 검찰개혁은 요원하다”고 지적했다.
인사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윤석열 총장도 동부지검 간부 줄사표 이후 열린 대검 내부 행사에서 “어떤 보직을 맡느냐가 아니라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여러분이 맡은 보직은 기대했던 것일 수도 있고, 기대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하나 특징은 이전 정권에서 승승장구했던 검사들과 좌천당했던 이들의 희비가 엇갈렸다는 점이다. 일각에서는 박형철(49, 25기) 청와대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이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 관여한 모습이 보인다며 5년 전 좌천성 인사를 뒤집었다는 말도 나온다.
5년 전인 2014년 1월 10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사건 특별수사팀을 이끌던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은 대구고검으로, 수사팀 부팀장 역할을 했던 박형철 당시 서울중앙지검 공공형사부장은 대전고검으로 밀려났다. 박 비서관은 그 후 2016년 검찰을 떠났다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민정수석실 반부패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지난 정부에서 소위 ‘잘나갔던’ 검사들은 대거 사표를 던졌다. 2009년 대검 중수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했던 이선봉(53, 27기) 전 군산지청장이 대표적이다. 이전 지청장은 2014년 연수원 동기 가운데 가장 먼저 부장검사(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가 됐지만 현 정부에서는 한직을 맴돌았다. 이번에도 한직으로 분류되는 부산고검 검사로 발령이 났다. 그는 사직 인사를 통해 “저도 사람인지라 항상 그 마음을 유지하고 실천하기가 쉽지 않아 검사 생활을 마무리해야 할 시기가 온 것 같다”고 전했다.
‘정권에 잘 보인 검사가 출세’ 속성은 그대로
배종혁(52, 27기) 서울고검 검사도 사의를 표명했다. 2007년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의 BBK 주가 조작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다. 검찰은 당시 사건을 대부분 무혐의 처분했다. 지난 정부에서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까지 맡았던 배 검사는 현 정권 들어 서울고검 검사로 발령 났고 이번에도 서울고검에 남게 됐다.
이번 정부에서 강조하는 검경 수사권 조정에 반기를 든 인사도 실무에서 배제됐다. 김웅(49, 29기) 전 대검찰청 미래기획단장은 이번 인사에서 법무연수원 교수로 발령 났다. 수사 실무를 맡지 않는 연구직이다. 김 전 단장은 문무일 전 총장 때 정부·여당의 수사권 조정안을 강하게 반대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검찰 인사를 공정히 하려면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해야 하는데 말은 쉽지만 참 어려운 문제”라며 “대통령은 형식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하는 식으로 검찰 인사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011년 한 토크콘서트에 출연해 “집단 항명으로 검사들이 사표를 제출하면 다 받으면 된다. 로스쿨 출신 중 검사보를 대거 채용해 새로운 검찰을 만들면 된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검찰이 말을 안 듣는다고 보는 것 자체가 그들을 충견(忠犬)으로 보는 독선적인 생각이다. 검찰 인사 공정성을 보장해야 국민을 위한 검찰이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인사가 그동안 기업-검찰 유착 관계를 끊는 일시적인 흐름이라는 분석도 있다. 검찰 미래위원회 위원인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무일 총장 시절에는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등 기존 권력층 수사에 집중해 왔다면 윤석열 총장 임기에는 경제 권력 감시 중심으로 검찰이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무부와 대검찰청 주요 보직을 차지하고 사임 뒤 바로 대형로펌에서 기업을 변호하는 전관은 막아야 한다”며 “이런 기업-검찰 유착 비리를 끊기 위해서 기업을 잘 아는 특수통 검찰들이 일시적으로 전진 배치될 수 있다”고 말했다.
- 김민상 중앙일보 사회1팀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