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 교수 시국선언, SKY집회... 그들의 저항이 의심스럽다
[게릴라칼럼] '조국 사퇴' 요구, 또다른 특권 지키기라면 곤란
19.09.22 11:55
최종 업데이트 19.09.22 11:55▲ 단체삭발한 한국당 의원들 자유한국당 이만희, 김석기, 최교일, 송석준, 장석춘 의원이 19일 국회 본관 앞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의 파면을 촉구하며 삭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 남소연 |
그런 그가 지난 19일 삭발한 뒤 낭독한 성명서에서는 "국민들은 있을 수 없는,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라며 "진심을 알아주시고 힘을 보태 달라"라고 호소했다.
최교일 한국당 의원도 이날 삭발에 동참했다. 그는 2012년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에서 발표한 '이명박 정부 정치검사 10인'에 포함된 서울중앙지검장 출신 국회의원이다. 용산참사 책임자와 정치검사 출신 국회의원의 삭발. 그들은 진심을 알아달라는데, 그 호소가 진정성 있게 보이지 않는다.
착잡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질쇼'라는 생각에 쓴웃음이 난다. 삭발 의원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로 언론의 도마에 오르고 지탄의 대상이 됐던 사람들이다. 조국 장관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해 국민적 지탄을 받았던 의원들이 스스로 면죄부를 주듯 머리를 깎고, 대통령을 끌어내려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은 동의도 이해도 되지 않는 일이다.
박근혜 하야 촉구보다 많다? 이해못할 교수들의 집단 행동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아래 정교모) 소속 교수들이 조국 장관의 임명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조선일보>는 인터넷판을 통해 여기에 참여한 교수들이 최순실 사태 당시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전국 교수·연구자 시국선언 참여자 2234명보다 많은 3396명이나 된다는 속보를 내보냈다.
정교모는 성명서에서 "특권층이 자신의 지위와 권력을 이용하여 온갖 편법적인 일을 서슴지 않고 행한 후에, 죄책감도 없이 뻔뻔하게 자신의 주장을 할 수 있는 선례를 만들었다"고 조국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을 성토했다.
혹자는 이 기자회견을 두고 '참여자 명단도 밝히지 않는 회견' '정치 편향이 짙은 교수들이 급조한 단체'라며 배후가 의심스럽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참여자 명단을 밝히지 않든, 그 단체의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그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보다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이 더 발끈해 정의감을 내세울 일인가 하는 점이다.
▲ 조국 장관 사퇴 촉구하는 "정교모" "사회정의를 바라는 전국교수모임"(정교모)이 19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앞에서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 |
ⓒ 권우성 |
정교모 시국선언의 또 다른 압권은 '내심으로 여전히 사회주의를 신봉하는 자가 도대체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말인가?'다. '내심'이란 말은 조국 장관의 속마음을 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표현이다. '여전히 사회주의를 신봉'이라는 문구도 정교모의 비뚤어진 시각을 반영할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말인가' 역시 이 논리가 사실로 증명되려면 많은 사회주의 국가의 개혁은 전부 부정돼야 한다. 이 한 줄에 담긴 뜻은 길거리 극우의 표현대로라면 '딱 보니까 너는 빨갱이, 그래서 안 돼' 정도의 주장일 수밖에 없다. 지식인 집단이 내놓은 시국선언문 치고는 논리가 참 치졸하고 저급하다.
대학생들 박탈감, 이해는 하지만...
▲ 조국 장관 사퇴 촉구 연세대 첫 집회 19일 오후 서울 연세대 학생회관앞에서 재학생과 졸업생이 참석한 가운데 조국 법무부장관 사퇴촉구 집회가 열리고 있다. | |
ⓒ 권우성 |
대학생들의 박탈감과 분노는 일리도 있고, 그들의 투쟁은 명분도 있다. 평등과 공정, 정의로움을 주창했던 정부의 핵심인사가 자신의 재력과 권력, 그리고 네트워크를 자녀의 경쟁력으로 활용했다면 이는 법적 잣대를 넘어서 배신감을 유발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3개 동시 집회는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드라마 <스카이캐슬>에 나오는 1% 특권층의 삶처럼 이질적이다. 조국 장관의 딸이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의 아들처럼, 엄마가 대학 실험실 사용을 부탁해 스펙을 쌓을 수 있는 사람들, 할아버지의 재력까지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주로 소위 'SKY' 자격을 거미쥘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사회의 공공연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특권을 반대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집회가 조국 장관과 거리두기를 통해 결백을 증명하는 과정일 뿐이란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조국 퇴진을 주장하며 삭발하는 의원들, 시국선언문을 들고 청와대 앞에 서는 대학교수들, 촛불을 들고 퇴진 구호를 외치는 SKY 대학생들. 누가 뭐래도 이들은 특권의 피해자이기보다는 특권의 수혜자에 가깝다. 국회의원과 대학교수라는 지위, 공고한 성으로 비유되는 SKY 학생이라는 신분이, 조국 장관의 특혜와는 다르다는 건 자기 최면에 불과하다.
조국 장관이 행사했던 특권이 법을 위반했다면 그건 검찰을 통해 사법부가 단죄해야 할 일이다. 특권 없는 공정한 세상을 주장하려면 '조국 반대 임명 취소'에 머물러선 안 된다. 국회의원이 가진 특권, 대학교수로서 행세해 왔던 불공정한 행위들, 'SKY 캐슬'을 가능하게 한 입시제도와 학벌주의를 개선하고 법으로 제도화하자는 요구를 해야 한다. 그러지 못한다면 '조국 반대'는 또 다른 특권 지키기가 될 뿐이다.
우리의 헌법은 민주주의 이념을 담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분히 자본주의 운영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다. 법이 기회의 균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로움을 보장하기보다는 여전히 가진 자, 특권층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 사회 일반의 통념이다. 삭발, 시국선언, SKY 학생들의 집회가 공정과 정의로움을 가지자는 호소인지 아니면 나의 결백을 주장하며 자신의 정치적 특권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는 온전하게 국민들이 판단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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