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온 나라가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 또 황당하고 비상식적인 일이 터질지 온 국민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찌해야 할까요.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들여다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입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3000년 전이나 2000년 전이나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역사를 읽으면 어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민심을 잃은 지도자를 과연 어찌 해야 할지 찾아봤습니다.
흔히 성선설과 성악설로만 알려진 맹자와 순자, 두 분의 사상을 접하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두 분은 ‘민심과 천심을 잃은 지도자는 쫓아내도 되며, 수틀리면 죽여도 좋다’고 했습니다. 맹자와 순자, 두 분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두 사람이 쫓아내도 좋다는 지도자란 과연 어떤 부류의 지도자일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09회는 <맹자와 순자, ‘하늘이 버린 지도자는 죽여도 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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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1337~1392)는 두 말 할 것 없는 고려의 충신이다.
그런 정몽주에게 아마도 천추의 한을 남긴 일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모친·부친상으로 3년(1366~1369)의 낙향과, 부원파 이인임의 견제로 9년의 유배 및 유랑(1375~84년)을 견뎌야 했던 덜친 정도전(1342~1398)에게 <맹자>를 한 질 보내준 것이다. 그것이 천려일실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삼봉 정도전의 생각은 여느 사대부와 다르지 않았다. 백성을 가르침과 교화의 대상으로 보았으니까…. 삼봉이 5살 연상의 정몽주에게 보낸 편지를 보라.
“백성은 어리석습니다. 취사선택을 모릅니다. 백성은 뛰어난 자를 믿고 복종할 줄 알았지, 도가 바르고 나쁨을 모릅니다.”
정도전은 그저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라 바람이 불면 풀은 자연스레 눕기 마련”이라고 여겼다.
정도전의 삼봉집. 정도전은 낙향, 유해시절 절친 정몽주가 보내온 <맹자>를 읽고 역성혁명의 의지를 다졌다.
■정몽주가 정도전에게 준 선물
그러나 낙향에 맞춰 정몽주가 보내준 <맹자>는 정도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정도전은 정몽주 선생이 보내준 <맹자>를 하루에 한 장 또는 반 장씩 차근차근 정독했다.”(<삼봉집>)
정도전은 아마도 맹자가 주장한 역성혁명론에 온통 정신을 팔았을 것이다. <맹자> ‘양혜왕 하’를 보자.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묻는다.
“탕왕(상나라 창업주)이 하나라 걸왕을 내쫓고 상나라를 세웠고, 무왕(주나라 창업주)은 상나라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렇습니까.”
“기록이 있으니 맞겠지요.”(맹자)
“그런데 말입니다. 신하가 군주를 죽여도 됩니까.”(제 선왕)
제 선왕은 맹자를 시험하고 있다. 충효사상을 으뜸 덕목으로 여기는 유교가 아닌가.
선왕은 맹자에게 신하된 자가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죽이는 것이 과연 잘한 일이냐고 감히 물었다. 말하자면 맹자에게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아주 과격한 발언으로 대꾸한다.
“주나라 무왕(재위 기원전 1046~1043)이 ‘한낱 사내’(一夫·상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을 지칭)를 죽였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임금을 죽였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어짊과 올바름을 해치는 자는 ‘사내’(一夫)에 불과합니다.”
■‘군주가 아니라 한낱 필부입니다’
무시무시한 발언은 계속된다.
“연못에 고기를 몰아주는 것은 수달이다. 나무와 숲을 위해 참새를 몰아주는 것은 새매다. 성탕(상나라 창업주)과 무왕(주나라 창업주)을 위해 백성을 몰아준 자들은 바로 걸주(폭군의 대명사인 하나라 걸왕과 상나라 주왕)이다.”(<맹자> ‘이루·상’)
그러니까 맹자는 “탕왕과 무왕이 비록 신하였지만 민심을 잃고 한낱 사내로 전락한 폭군(상나라 주왕)을 죽인 뒤 새왕조를 세운 것일뿐”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말하자면 때에 따라선 폭력혁명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맹자의 소신발언에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백성의 마음, 즉 민심이었다.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 것이다. 백성을 얻는데도 도가 있다.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백성을 얻는 것이다.”(<맹자> ‘이루 하’)
그렇다면 왜 백성과 백성의 마음이 중요한가. 여기서 맹자의 천명사상이 엿보인다.
■하늘은 백성을 보고 군주를 판단한다
맹자는 왕위를 물려주는 선양을 천명(天命)으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하늘(天)은 어떻게 군주의 어짊과 악함을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맹자는 바로 하늘은 백성을 통해 군주의 어짊과 악함을 구별한다고 했다. 이것은 사실 맹자의 이야기도 아니다. <서경> ‘주서’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이 보는 것은 백성을 통해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백성을 통해 듣는다.(天視 自我民視 天聽 自我民聽 百姓有過)”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권력을 이양하고, 군주를 바꾸는 것은 하늘이라도 멋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늘 역시 백성의 마음, 즉 민심의 향배를 보고 들은 뒤 군주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늘의 뜻(天意)는 곧 백성의 뜻(民意)라는 것이다.
그랬으니 맹자는 하늘의 뜻을 갖고 있는 백성의 지위를 군주보다 위에 놓았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 君爲輕)”(<맹자> ‘양혜왕 하’)
백성이 가장 무겁고, 군주가 가장 가벼우니 백성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혁명은 그것이 폭력의 수단을 사용한다 해도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도전의 유배지인 전남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의 ‘백동마을’. 정도전은 기나긴 유배 및 유랑 생활 등을 거치며 <맹자>의 역성혁명론을 곱씹었다.
■정도전의 결론은 역성혁명이었다
다시 정도전에게 돌아와보자. 정몽주가 선물한 <맹자> 한 질을 읽고 또 읽은 정도전이 얻은 결론이 있었다.
“임금의 지위는 존귀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한다. 하나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임금을 버린다.”(<조선경국전> ‘경보위’)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열겠다는 정도전의 결심이 굳어진 순간이었다.
그런데 백성과 임금의 관계를 좀더 극적으로 표현한 유학자가 있다. 맹자보다 다소 늦은 전국시대 말기를 풍미한 순자이다.
흔히들 맹자의 성선설과 비교되는 성악설을 주장한 것으로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맹자보다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어법으로 ‘혁명’을 외치고 있다.
■민심을 이반한 나라는 임금의 나라가 아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순자의 ‘주수군민론(舟水君民論)’이다. <순자> ‘왕제’에 있는 말이다.
“군주는 배(舟)이고 백성(서인)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 군주라는 배는 결국 물에 타라 순항할 수도 있고,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 군주란 민심을 잃으면 전복될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충효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도 ‘수틀리면 군주를 갈아 엎을 수도 있다’는 주수군민론을 수없이 개진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것도 다른 임금도 아닌 연산군 시대의 신하들이 그랬다니 믿을 수 있겠는가.
때는 바야흐로 무오사화(1498년)로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친 지 4년 뒤인 1502년(연산군 8년) 3월이었다.
한치형·성준·이극균 등 삼정승이 연산군 앞에서 ‘시폐(時幣) 10조목’을 올렸다. 시폐란 ‘시정의 폐단’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임금의 실정(失政)’을 지적한 것이다.
삼정승이 올린 상소문은 지독하다.
“전하께서 후원에서 내시들하고 장난이나 치고, 사사로운 잔치를 벌이며 깊숙한 비밀처소까지 두고 있는데, 이것이 옳은 정치냐”고 다그치고 있다.
"임금의 지위는 가볍고, 백성은 무겁습니다. 예로부터 물을 백성에 비유하고 배(舟)를 임금에 비유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물은 배를 뜨게 할 수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두려운 것은 백성이 아니냐(可畏非民)’는 말도 있습니다. 민심이 이반하면 나라는 이미 ‘임금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삼정승은 “임금에게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면전에서 직언을 할 수 있어야 신하라 할 수 있다”고까지 고한다. 민심을 잃은 나라는 ‘임금의 나라’가 아니므로 백성은 그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른 시대도 아니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왕권이 강한 연산군 시대인데도 대신들, 그것도 지금의 국무총리·부총리 격인 삼정승이 ‘죽어도 아니되옵니다’라고 쓴소리를 해댄 것이다.
■숙종이 내린 심상찮은 그림
어떤 임금은 ‘주수군민’의 민(民·백성)대신 신하(臣)를 넣어 ‘날 좀 잘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바로 숙종(1674~1720) 임금이다.
숙종은 즉위하자 마자(1675년) 화가에게 ‘주수도(舟水圖)’를 그리라고 명한다.
즉 배가 물 위에 떠있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면 그 배가 뒤집힌다는 내용을 그리게 한 것이다. 이 ‘주수도’는 숙종이 경계의 뜻으로 간직하고자 했던 일종의 자경화(自警畵)다.
숙종은 그림에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으니…’운운하는 주수군민의 내용을 써서 곁에 걸어놓는다. 그런 다음 ‘벽 위에 붙여 두고 늘 생각하며 잊지 말라.(糊之壁上 念念不忘)’는 의미의 8글자를 써서 삼정승을 비롯한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특별히 신하들에게 내린 까닭이 있었다. 백성(民)을 신하로 치환시켜 놓았던 것이다.
숙종은 ‘임금은 배와 같고, 신하는 물과 같으니, 신하가 어질어야 임금이 편안하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러니 “경들은 그림의 뜻을 깊이 유념해서 임금을 잘 보필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통치철학 5가지를 언급했다.
‘학문을 좋아할 것, 현인을 등용할 것, 충간(忠諫·충성스러운 간언)을 받아들일 것, 쓴소리 듣기를 좋아할 것, 현인을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천하게 여길 것’이었다.
숙종의 글씨. 달이 촛불처럼 밝다는 뜻의 ‘교월어촉’이다. 숙종은 <주수도>를 그리게 해서 임금과 신하의 도리를 강조했다.
■‘전하, 잘난척 하지 마십시오’
숙종의 이른바 ‘주수도설’을 본 신하들은 가만 있지 않는다.
숙종이 언급한 5가지 통치철학의 의미를 나름대로 전하고, 제발 바른 정치를 해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글을 올린다.
이현일(1627~1704)은 ‘임금이 임금됨을 어렵게 여긴다.(后克艱厥后)’는 <서경>의 언급과, ‘임금 노릇하기 어렵다(爲君難)’는 <논어>의 말을 인용한다.
“임금은 잠시라도 태만하고 소홀하면 안됩다. 군신 관계는 ‘배와 물의 관계와 같다’는 뜻을 염두에 두십시요. 두려워하고 삼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렵게 여기고(爲艱)’ ‘어려워하는(爲難)’ 것입니다.”(<갈암집>)
그러면서 ‘임금이라고 절대 잘난척 해서는 안된다’고 꼬집는다.
“명철한 군주라도 자기 혼자만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고 스스로 성현입네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망하는 길입니다. 충성의 말은 귀에 거슬리며 논박은 미움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임금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상나라 재상 이윤이 왕인 태갑에게 말했습니다. ‘임금의 마음을 거스르는 말이어야 도에 맞는 법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귀에 거슬리는 말이야말로 충언이라는 것이다. 고언을 남김없이 다 받아들여야 나라를 잃고 백성을 잃는 화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명철한 군주라도 자기 혼자만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고 스스로 성현입네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또한 망하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맹자의 말씀대로 ‘잘난체 하는 것을 내 이미 알고 있다.(이이 予旣知之矣)’고 할 것입니다. 잘난 체 하는 음성과 안색은 천리 밖에서도 들립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임금에게 ‘잘난체 하지 말라’는 것이니, 얼마나 강한 직언인가.
이현일은 임금만 겨냥하지 않았다. 배에 탄 신하들의 역할도 강조했다.
“배가 순조롭지 않을 때 당연히 유의해야 합니다. 물이 새어 배가 가라앉을 때 사공이 닻줄과 노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어찌됩니까.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물속에 빠져 죽게 됩니다. 바다 저 편에서 이 광경을 보는 사람들도 모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럴 때 사공을 불러 일깨워서 깊이 술에 취하지 않도록 하여 평정을 되찾고 힘을 다하여 백성들을 구제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수(舟水)의 뜻입니다.”
허목(1598~1682)과 윤휴(1617~1680) 역시 신하의 역할을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허목은 “큰 강을 건널 때 신하가 제대로 노를 저어야 한다”(<기언>)면서 군주(배)와 신하(노)의 관계를 강조했다. 윤휴 역시 “배(군주)를 잘 건너게 해주는 사공은 장상(將相·장수와 재상)과도 같은 존재”아며 “따라서 유능한 장상을 얻으면 국가라는 배는 아무런 걱정없이 운행할 것”(<백호전집>)이라 했다.
■정조 임금이 부끄러워한 까닭
이들의 언급은 한결같다. 백성과 군주처럼 신하와 군주의 관계도 똑같다는 것이다.
신하란 배 안의 임금(사공)을 잘 인도해서 배가 민심의 바다에서 뒤집어지지 않도록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숙종은 “당신의 말이 옳다. 내가 유념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왕조시대의 군신관계다.
정조는 1779년(정조 3년) 남한산성 행궁에 행차하려고 한강변 광진나루에 이르렀다. 정조는 불현듯 숙종이 그린 ‘주수도’를 떠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내가 이제 배를 타고 백성에 임하니 대하는 사물마다 두렵기만 하구나. 지금 내가 물에 다다라 성조(숙종)의 깊은 뜻을 되돌아 봤는데 가만 생각하니 부끄럽구나.”(<일성록>)
군주가 백성을 두려워했고, 본인 스스로 지도자의 깜냥이 되는지 선왕들과 비교해보면서 부끄러워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명군(名君)인 정조 임금도 그랬다는 것이다.
이즈음에 순자의 군신론을 함축해주는 인용문이 있다.
“간쟁하고 보필하는 자는 사직을 지키는 신하요, 국왕의 보배이다. 그러니 명군은 이들을 후대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암군은 미혹되어 이들을 자신을 해치는 적으로 안다. 명군이 상을 내리면 암군은 벌을 준다. 그런데 만약 암군에게 상을 받는 자라면 명군은 죽여버려야 한다.”(<순자> ‘신도’)
이현일의 <갈암집>. 임금을 향해 잘난체 하지말아야 한다는 쓴소리도 서슴치 않았다.
■혼용무도의 지도자를 쫓아내는 법
새삼 지난해 이맘때가 생각난다.
교수신문이 2015년 지난해를 정리해서 발표한 ‘올해의 단어’가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어리석고 무능한 지도자가 무도한 정치를 했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참 나쁜 지도자’를 굳이 나눌 때 폭군(暴君)과 혼군(昏君 혹은 暗君), 용군(庸君)으로 분류했다.
율곡 이이는 임금의 도리(君道)를 논하면서 이렇게 구별한다.
“폭군이란 누구인가, 욕심이 지나치고 바깥의 유혹에 빠져 백성의 힘을 다 빼앗고, 충언을 물리치면서 자기만 성스러운체 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자다. 혼군(암군)은 누구인가. 정치를 잘 하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라지 못해 현명한 신하 대신 간사하거나 무능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을 기용해서 패망하는 군주다. 그렇다면 용군은? 나약하고 과단성이 없어 구태만 되풀이 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지도자다.”(<율곡전서> ‘잡저·동호문답’)
만약 폭군과 혼군, 용군의 면모를 두루 갖춘 지도자라면 과연 어떻게 불러야 할까.
전국시대 좌구명이 공자의 <춘추>를 해설한 <춘추좌전>은 무도한 지도자를 쫓아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한다.
“하늘이 버린 몸을 누가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겠는가.(天之所廢 誰能興之)”
대명천지에 무슨 천명론이야고? 누누이 강조하지 않았던가. 하늘은 백성을 통해 군주의 선악을 판단하고 신상필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그래서 백성은 물이고, 군주는 배이며, 물은 배를 뜨게 할 수도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향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