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의 서막 노무현 대통령의 타살... [59]

정직이최선 (freebo****)

주소복사 조회 6940 16.12.29 16:46 신고신고

증거자료 추론소설 노무현 대통령의 타살흔적 추적자료 입니다~


경호원이 바뀐 첫 날 아침에 변호사까지 맡으셨던 분이 조작이 수월한 컴퓨터에 유서를 남겨놓고 정토원 보살님이 본 경호원귀신과 숨바꼭질 놀이를 하다가 아무도 안볼때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서 공중에서 등산화 한 짝 벗어던지며 윗옷을 벗어 온몸의 피를 전광석화와 같이 닦은 뒤 피 한 방울만 바위에퐁 떨어뜨린 뒤 멀리 던져놓고 착지 충격 줄이기 위해 풋샵 자세로 떨어져 팔뼈를 부러뜨린 뒤 장기 손상없이 머리에 상처만 남기고 돌아가셨다는데..그걸 믿으라구?


MBC뉴스에선 정토원 같이 갔다더니.. 횡설수설하는 경호원이 갑작스럽게 노무현이 정토원에 자기를 심부름 보냈다고 하니깐... "~그랫구나." 노무현 전대통령의마지막 배려였구나...... 하면서..... 넘어가네..ㅋㅋㅋㅋㅋㅋㅋ또 유서라고 하는 건 신문에 발표된 것만 두 개가 돌아다니고, 경호원은 논두렁에서 일하던 아저씨도 들었던 "" "" "" 소리도 못듣고, 무전기 놔두고 핸폰으로 컬러링 들으면서 헤메고 다녔는데?


그리고 이건또 뭐냐??? 노무현 대통령 서거일이 23일인데 조선일보에 걸린 근조배너 제작일은 22일네? 니네들 예지능력도 있냐? 혹시 노스트라다무스가 너야? 아님 누가 미리 알려주더냐??

↓↓↓↓↓↓↓↓↓↓↓↓↓↓↓



아래 기사는 23일날 가장빨리 올라온 기사 캡쳐야 이거도 이상한거 보이지? ↓↓↓↓↓↓↓↓↓↓↓↓↓↓↓↓타살을 빠져나갔을경우 차선책의 언론보도

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73611 ↑↑↑↑↑↑↑↑↑↑↑↑↑↑↑↑↑↑↑↑↑↑↑↑↑노전대통령 시신화장 반대서명입니다! 진실을 위해 서명해주세요!!

이것도 하루전날 기사 ...

서거 전날에 나온 언론자료와 서거후 언론자료는 동일합니다.

문재인, "등산 중 뒷산 바위에서 뛰어내려" <-- 이부분...(23일 기사)


카페게시글(http://cafe.daum.net/investigatehisdeath/6NJN/218?q=%B3%EB%B3%E2%BD%C3%B4%EB%BD%C5%B9%AE%20%B3%EB%20%C0%FC%20%B4%EB%C5%EB%B7%C9%209%BD%C3%2030%BA%D0%B2%B2%20%BC%AD%B0%C5)


http://media.tab.search.daum.net/Search?w=news&q=%BB%E7%C0%FA%BA%F1%BC%AD%B0%FC&viewsite=0000j&viewio=i&repno=0&period=0&relQ=&lpp=10&page=55

에 클릭하셔서 2009.05.22.(금)에 들어가시면 8시 30분에 돌아가셨다 나옵니다

 

 

관리자 아이피가 바뀌어있다...

www.nnnews.co.kr은 노년시대신문 ---> 사고이후 백세시대 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듣보잡이라 칭한곳은 노년시대신문(백세시대) 

노년시대신문에게 항의하는 날짜는 5~6월입니다.

배너를 어떻게 캡처한지 본문 하단에 나와있습니다 (조선일보배너) 글이 아닌 그림 그래서 완벽한증거.http://cafe.daum.net/freemicro/QnxH/187 


새로운 목격자 증언 기사 올라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ㅆㅂ새끼들.......... 피범벅의 투신자살 기도 했다는 노전대통령의 혈흔을 못찾는게 말이 되냐고.. 국민들리 ㅈㄹ 까니까....... 오늘... 혈흔 찾앗다고.. 기사올라왓네.....

아래봐봐.....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밤새 고스톱치고 피곤해서 흘린 코피보다 적냐???? 수고했다 수고했어.....................

ㅅㄲ......폴리스 라인 쳐놓은거 봐라...(-_-)내가 슬쩍 옆에가서 니네들이 찾았다는 혈흔 구경하면서. 코파다가 코피흘리면,

다음날 메인뉴스로 뜨겠다??????혈흔 추가 대량 확인!!! DNA 분석중----?ㅆㅂ 내가범임?내가다 손모가지가 오그라들고 민망하다...나쁜자식들아....

대통령 혈흔, 배경 사진 촬영

노무현 전 대통령 혈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다음날인 24일 부엉이바위 아래 최초 추락지

점에서 10m 내리막길의 한 돌뿌리에 노 전 대통령의 선혈이 묻어있다. 본지는 현재 온라인 등에

 "현장에 피가 하나도 없었다"는 등의 논란과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어 의혹해소 차원에서 편집

회의 등을 거쳐 국내 언론 중 최초로 노 전 대통령의 선혈이 찍힌 사진을 공개키로 했다.(이지용

기자)↑↑↑↑↑↑↑↑↑↑↑↑↑↑↑↑↑↑↑↑↑↑↑↑↑↑↑

니네들이 절벽에서 맨몸으로 떨어지고 저만큼만 피흘리면, 내가 평생 ?아다니면서 혀로 똥딱아줄께!!!

글구 들아.... 노전대통령 서거 다음날 비온거 까먹었냐? ..그런대 피한방울 찾았어???? ㅋㅋㅋㅋㅋㅋ 그냥 비에 지워졌다 그러지... 찔리니까... 피한방울급하게 찍어노쿠.... 찾았다~~ 와와와~ㅋㅋㅋ 도대체 어떤 돌대가리 수뇌부가 지시 하는거야.??ㅋㅋ

 

사고 2일전에 정확하게 예언한 울산제일 예언일보


              윤동주 시인이 유서를 대신썼나? ㅋㅋ

출처: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115&articleId=3676047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설계하고 건축까지? 설계가 미리 되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하죠...

'노무현' 대통령의 묘지를 '프리 메이슨(Free Mason)' 상징으로 만든 

건축가 '승효상'은 "반인권 독재정권의 사고(思考)를 건축으로 구현한 

건축가" '김수근'의 제자이고, '문재인'의 경남고 25회 동창이라고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묘소는 승효상에 의해 미리 디자인 되었다.(경남고25회졸업생)

승효상_건축가_노무현대통령님 묘역 설계 등

서거후에 설계한것으로 되어있다 http://blog.naver.com/00blue008/110168998595



3개의 링크자료는

문재인 이정표라고 표현한 증거에 관련된 자료입니다.

"노무현시해 문재인 이정표", "노무현시해 이정표 핏자국 조작"

"노무현대통령이 흘린 자국 발견"

아래 자료는 닉네임 멀더(kosys****)님이 다음아고라에 올렸던 자료입니다.


경찰은 경호관이 피 묻은 손으로 잡아서 생긴 것으로 추정하는데 어이없다. 

손으로 잡아서 생긴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밝히겠다.

증거1 (노란색 화살표): 화살표 방향에서 피가 튄 것이다. 화살표의 크기가 작지만 약 45도 윗 방향에서 피가 튀어서 노란색화살표처럼 보이는 것이다. 손으로 잡아서 생긴 것이라면 수직으로 90 방향 밑으로(중력의 영향) 흘러내려야 한다.

증거2 (붉은색 화살표): 손에서 묻은 피라면 저렇게 많이 흘러내릴 수 없다.

심지어 화살표의 끝부분을 보면, 흘러내리다가만 혈액이 굳어져서 까맣게 보인다.

혈액이 묻은 손으로 이정표를 만지면, 저렇게 많은 혈액을 묻힐 수 없다.

(이정표에 묻히자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또 하나, 노란색 화살표의 각도와 붉은색 화살표의 처음 시작 각도가 동일하다. 이는 손으로 만져서 발생한 혈흔이 아니라, 혈액이 이정표로 튀어서 발생한 혈흔이라는 증거다.

증거3 (파란색 직선): 경호관의 주장대로라면 두개의 타원의 혈흔은 검지와 중지가 만들어낸 혈흔이다. 혈액은 점성이 있어서 손가락으로 찍으면 지문이 남는다. 위의 혈흔에는 지문이 없다. 결정적으로 저 두 타원의 사이가 너무 길다. 손가락을 최대로 벌려도 손가락으로 위와 같은 타원의 혈흔은 만들 수 없다.


증거4 : 백번 양보해서 손가락이라고 쳐주자. 붉은색 선은 손가락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첫 번째 사진의 경우를 보자.

손가락과 혈액이 흘러내리는 방향이 서로 만난다. 혈액이 묻은 손가락으로 기둥을 만진다면 흘러내리는 혈액이 손가락에 의해서 뭉개져야 한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혈액은 전혀 뭉개지지 않았다.

두 번째 사진을 보자.

손으로 만져서 저런 혈흔이 남았다는 언급자체가 가소롭지 않은가? 저렇게 피가 묻기 위해서는 손가락의 지문 부분에만 피를 왕창 묻혀서 손가락 끝으로 살짝 대어야 한다. 출혈이 심한 사람을 업는데 손가락 끝에만 피가 왕창 묻을 수 있는가? 또한, 손으로 잡기에는 기둥이 너무 두껍다. (각진 기둥) 기둥이 두꺼우므로 저 기둥에 여기저기에 사람의 손처럼 혈흔이 나타나야 한다.


이것이 경호원의 상식인가? 머리를 다쳐서 두부에 출혈이 심한 상태인데 저렇게 거꾸로 들쳐 메고 내려온다면 출혈이 더욱 심해질 것이다. 도대체 상식이 있는 사람인가? 애초에 살해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다면 저렇게 할 수 없다. 

그리고 경호원이 대통령을 들쳐 메고 온 등산로에 연속적으로 혈흔이 남아야 한다.

경찰은 혈흔을 조사했나? 비가 내려도 루미놀 반응을 해보면 혈흔을 찾아낼 수 있다.

루미놀은 PPM 단위의 혈액에도 반응한다. 경호원이 말한 경로대로 루미놀 반응을 시도해보면 경호원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경찰은 진실을 알고 싶기나 한 것인지 궁금하다.

경찰은 사고당일 국과수에서 파견한 조사 직원들을 그냥 올려 보냈다. (경찰이 아닌 검찰이나 상부기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지금에 와서야 현장검증을 한다는 것은 진실을 외면하고 싶어 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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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자료는 다음 아고라 닉네임 주후70강림님의 자료를 보충한 것으로 추정되는것입니다.


부엉이바위에서 노통이 투신했다고 믿는 추모객들이 꽃다발을 가져다 놓은 사진 

5명의 살인 경호조에게 바치는 꽃다발이 되었으면 합니다.


몹시 가파릅니다.


"저 현장재연자의 오른 손을 잘 보세요." 

오른 쪽 어깨로 노통을 메고 가다가 힘들어서

오른손으로 이정표를 잡는다고? 웃겨도 한 참 웃긴다.


혈흔이정표가 있는 곳은 부엉이바위 바로 앞입니다. 

투신예상지점(폴리스라인)에서 밑으로 뛰어 보았습니다. 경사길 48(20m)였습니다.


현장 재연하는 위 사진과 아래 사진을 자세히 비교해 보세요.


내려가는 길이 너무 경사져서 위험하다보니 

임시 돌계단이 파헤쳐질 정도였습니다.

옆으로 조심조심 내려가서 이정표 옆에 쪼그려

주후70강림이 직접 혈흔의 크기를 측정 해 보았습니다.


장정 허벅지 높이 즈음에 묻어있는 혈흔 달랑 두 방울입니다.

쪼그려 앉아서 담배갑으로 혈흔 크기를 비교한 사진입니다.


이 혈흔이...

노짱을 짐짝처럼

오른 쪽 어깨에 메고 내려오다가...

힘들어서 오른 손으로 짚은 흔적이랍니다...


오른 쪽 어깨에 사람을 메고 오른 손으로 잡으면 어케되요? 

국민(학생)여러분!

게다가 화살표지판 아래를 잡다가는 주저앉게 되어 쓰러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피가 화살표지판 아래에 있거든요.


다시 시도 해보았습니다. 화살표지판을 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화살표지판 아래에 있는 두 방울 코() 흘린 정도의 혈흔 자국은

사건종료 후에 조작되었다는 결론입니다.

===

위는

문재인 이정표에 대한 보강자료 들입니다.

문재인 이정표 어떤 결론이 내려질 것 같습니까?

청와대 경호처는 어떤 책임이 있을 것 같습니까?

...

그리고 그날 함께 이정표를 본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타살이며 연극임을 

알고들 떠났습니다.


추가증거

 

그런데 내가 더 싫어 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내가 점심까지 굶어가면서 이딴 헛딴짓을 

하는거는 정말 논리에 맞지 않는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기때문이다.

 

오 늘 새벽인가에 법의학쪽 지식있는 양반 글 잘 읽었다. 내가 그쪽 방면에 지식이 없어서 뭐라 하긴 

그렇지만 나름 수긍이 가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그랬다.   그런데, 나는 그냥 아주 상식적인 

수준에서 어디서나 구할 수 있는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이건 아니다 싶은거몇개만 짚어 보려고 

한다.   틀린부분이 있으면 지적 엄청 환영한다.  

자 이제 하나씩 보자   

 

증거 시즌 1)

 

 

 

그림1) 부엉이 바위 그림이다 중간에 바위 상단과 바위 하단이 보이고 기자양반이 사진찍을때 누군가 검시하는듯한 인간이 보인다. 대략 추정 추락위치 정도로 보면 무리는 없을 것같다.  중간 바위 갈라진 기준으로해서 상단 기준길이를 1.0으로 했을때, 하단 추락지점까지 길이는 대략 그 1.5배정도 된다.

 



 

자 봤지?

 

그림 2,3) 은 위에서 내려다본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 모습인건데... 이거 잘보면 창고나 주변 집모양이 빗나가게 찍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거의 수직앵글로 봐도 되겠다..

 

결론은 부엉이 바위는 완전 수직낙하 바위는 아니고 약간 경사진 바위란거다... 어디 기사에서도 경사가 한 80도쯤 된다고 했으니 맞다.


 




 

 

자, 위에 그림들은 나중에 논리에 어긋나는 부분이 있다면 모두모두 추가해도 되겠다.

 

본격적으로

 

그림 4)

수사대에서 현장검증하는 것 같은 모야인데, 그 인간들 두명 키를 기준으로 해서 높이를 측정해봤다. 남자 평균키 170cm로 좀 보수적으로 잡아도 상단 하단 높이 계산이 가능하다.



그 림 1)에서 보았듯이 위아래 높이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투신지점으로부터 추락지점까지의 높이는 보수적으로 잡아도 근 43m, 맨처음에 언론에서 바위 높이를 3~40미터라고 하다가  나중엔 30m로 바뀌던데 이게 10m차이가 이게 단순한 차이가 아니다.  40미터는 30미터에서 추락할때보다 받는 충격 추락에너지가 30% 더 받게된다.

 

자 보자, 저 높이에서 추락했다고 하면 추락 종단 속도는 초속 29미터.... 쉽게 시속으로 계산하면 104km/h 이다. 이게 뭔 얘기냐 하면 시속 100km로 달리는 승용차타고 벽을 쳐박는 충격이 아니라...   네이키드, 즉 헬멧도 안쓰고 시속 100km/h 로 달리다가 고정되어 전혀 움직이지 않는 시멘트 벽에 충돌하는 충격을 이야기 한다.

 

자 다들 한번 생각해봐. 헬멧도 안쓰고 시속 100km... 그래 남자들 키도 뭐 170이 안될수도 있으니 조금만 양보하자... 시속 90킬로로 달리다가  벽에 쳐박았다고 하자...  어떤 상황이 벌어지겠는가?   머리는 두부자상이 아니라 터진다.... 갈비뼈 그런거 말고도 장기도 다 파손되고 엄청난 출혈이 즉각 발생한다.

 

오토바이 안타본 양반들도 많을테니... 아파트로 예를 들자 40미터가 넘는 높이에서의 추락은 아파트 12층에서의 추락을 의미하는데, 아파트 12층에서 뛰어내리면 어떻게 되는지 주위 사람들 혹시 떨어진거 본 사람 있으면 한번 알아봐라...

 

그림 5) 전체적인 바위 조망 다른 각도에서 한번...  이건 숙제 참고용

 



 

 

자 대망의 증거 사진 들어간다.

 

그림 6)

 



 

뭐가 보이는가?  여기가 경찰이 추정한 추락위치다. 아직도 안보이는가?

그럼, 다시한번 두 눈 똑바로 뜨고 보자

 

아래 뭐가 보이는가?

 





 

저 증거 깃발이 그리 크지 않은건데, 추락 위치가 뭐 대략 저렇다는데..

저기 옆에난 쑥이나 무슨 잡초보라... 이게 난지 하루 이틀된건 아니다..

 

사 람이 시속 100킬로 가까운 속도로 추락했는데, 혈흔이야 이슬이나 잠시 내린 비로 씻겨 내려

갔다고 치더라도 저 잡초들은 뭔가?   무슨 지들이 슈퍼잡초냐? 대략 사이즈로 봐라... 이게 추락

이란게 그 속도로 떨어지면 단순 골절이 아니라 뇌며, 장이며 다 터진다.    주위에 똑똑한 의사하는 

친구나 선배 큰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한테 물어봐라... 사람이 퍽 하고 터진다...

 

그런데, 왜 모양이 저런가... 조그만 돌들조차 큰 충격 (두개골, 뼈)와 부딪히면 무슨 자국이라도 

남기게 마련이다.

 

겨우 두부 상부 정도 사이즈로 유일하게 있는 추락자국이라고 보기엔 어디 좀 이상하지 않은가?

많이 이상하지 않은가?

 

보너스)

그 리고, 지금도 오락가락 한다는 초강력 울트라 대한민국 최고 경비관 청와대 파견 경비관의 사건후 

행동을  떠올려보라... 아래 진영읍 소방서가 평소 VIP 담당으로 긴장 바짝하고 있을 진영119 소방서

가 얼마나 가까운지 한번 봐라. 거리가 3.9km 다.   난 무지무지 먼데 있어서 응급의료진이 들것 갖고 

오는데 삼사십분 걸리는줄 알았다.

 

여기에 의학소견 올리신 분들도 있는데 아래 소방서가 얼마나 가까운지 한번 보고 경비관이 추락후 

아래로 뛰어내려가면서 앰뷸런스 안부르고 갈비뼈 나간 사람을 업고 뛰었다고 하는데... 뭔가 이건 

이미 나온진술이라 우리가 추측이 아닌... 그가 경비 수칙 및 응급치료 수칙을 하나부터 열까지 지키

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파트 12층에서 떨어져서 갈비뼈 나가고 머리터진 사람을 업고 뛰었다라고 생각해봐라... 숨이 붙어있어도 부러져서 날카로운 갈비뼈에 심장이며 폐며 신경이며 다 아작난다.




 

여러분께 부탁이 좀 있다.

 

1.이글을 누가 복사하거나 스캔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수있도록 분향소에있는 국회의원이나 노사모회원들.일반시민분들께 나눠줬음한다

 

2.이글을 많은 사람들이 볼수있도록 되도록 많이 퍼가주세여

 

 

 결론

제 가 봤을때 추락사 한게 아니고 어디서 둔기로 맞은뒤 이곳으로 시신이 옮겨진게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검찰에 사건당일 노대통령 사저 안팎cctv와 경호원들 무전기록,내원한 병원의 모든 진찰기록 내원한 병원의  현장 cctv등을 증거로 제출할것을 요구합니다...............국민의 눈과 귀를 막는 mb정권, 국민을 바보로 아는 mb정권.........국민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번기회로 알아야 합니다...........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금품수수설 전부터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한명도 안보인다......노무현대통령이 등산하기 위해 사저를 나섰다면 그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사진기자들이 한명이라도 사진을 찍어서 기록을 남겼을텐데 단한명의 기자도 사진을 찍지 못했다..........아주 특종에 목말라 있으면서도 사진하나 찍지 못했다는건 정말 이상한일이다............사고후에도 경호원이 대통령을 들쳐메고 병원으로 옮기는 장면 이런장면이 찍혀져 있어야 하는게 정상아닌가? 정말 알수 없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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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일 팀 급파

검찰의뢰 없어 현장도 못 보고 '빈손' 상경
: 왜 국과수가 현장에 내려가 있는데도 국과수가 현장을 보지도 못했는가?


당시 검찰 수사를 지휘한 이인규는 

올해 2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 서거는 검찰 책임이 아니라 국정원의 책임' 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서거 당일 조선일보 보도에는 봉하 사저 도청 정황이 드러났다.

이제라도 노무현의 죽음에 국정원이 어떻게 개입했는지 따져야 한다.

정상적인 야당이라면, 원래 야당 국회의원들이 해야할 일이다. 

 

근거는 충분하다.

3월 신임 국정원장 인사청문회에서 이 인터뷰 내용이 문제가 되자 

이병호 현 국정원장이 취임 후 자체 조사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이미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야당은 공식적인 절차에 의해  청문회 사후 조치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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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 당시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서 공식인터뷰를 한 자리는 아니지만 식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2009년 당시 상황이 화제가 됐고 이인규 전 중수부장이 당시 

상황을 회고하면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검찰 책임이 아니라 국정원의 책임'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했다는 것이다. 


이인규 변호사는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받은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언론보도 등은 국정원 주도로 이뤄진 것"이라며 "검찰은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 내용으로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은 "(검찰이) 노 전 대통령에게 '시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시계 문제가 불거진 뒤 (권 여사가) 바깥에 버렸다고 합디다'라고 답한 게 

전부"라며 "논두렁 얘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 식으로 (국정원이) 말을 

만들어서 언론에 흘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개입 근거에 대해서는 "(언론까지) 

몇 단계를 거쳐 이뤄졌으며 나중에 때가 되면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저녁자리에 참석했던 경향신문 기자는 "노 전 대통령 서거 얘기가 

나오자 그 부분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면서 "옛날에는 수사는 정당했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던 것 같은데, 얘길 하다보니까 고통스러워한다고 하면서 얘기를 길고 

심각하게 했다"고 전했다. 

경향신문 기자는 "이 전 부장이 술을 많이 마신 상태가 아니었으며, (얘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 같았다"면서 "굉장히 진지한 분위기 였다"고 설명했다. 말실수나 우연히 나온 

발언이 아니라 작심하고 한 의도된 발언이라는 얘기다


결론! 타살!

1) 최초 경찰조사에서 유서저장시간 오전 5시 44분 CCTV속 노통과 경호원이 사저를 

나선 시간은 5시 38분 유령이 유서작성? 이 사실이 보도되고 네티즌들의 타살의혹과 

CCTV 공개요구가 빗발치자 경찰은 CCTV를 공개 그러나 날짜와 시간이 지워져 있었네..


그리고 경찰은 어떠한 설명도 없이 노통이 사저를 나선 시간을 47분 으로 수정해 최종 수사 결과 발표 그리고 한때 변호사까지 하셧던 전노무현 대통령께서 자살할 생각을가지고 있었다면 법적효력이 없는 컴퓨터 문서에 유서를 적었을 리가 있는가..


 

1번째 증거자료 사진1 연합뉴스에서 2009년 5월 12일 촬영한 사진입니다.

아래는 일반인이 노통 서거 후인 5월 24일에 같은 곳을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2 위 사진 좌측 아래의 경호동건물 처마를 기준으로 사저 지붕까지 실선으로 표시해 보겠습니다.
빨간색 원 안에 바람구멍을 잘 보아 두십시오.
물론 빨간색 원 우측으로도 바람막이가 끝나는 지점까지 바람구멍은 계속 있습니다.

사진3 이해를 돕기 위해 위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5월 이전(3~4월 사이)에 찍은 것입니다. 칸막이 어디에도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진4 경찰이 공개한 CCTV의 한 장면입니다.
노통이 사저를 나서 맨 처음 풀을 뽑은 위치입니다. 칸막이의 라운드진 부분을 주목해 두십시오.

사진5 이 사진은 노통이 처음 풀을 뽑으신 위치를 위쪽에서 표시한 것입니다.

사진6 당연히 아래사진의 빨간 원안에는 사진 1의 구멍들이 보여야 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아래 사진은 반대쪽에서 찍은 CCTV화면입니다.

사진7 (추가) 경찰의 CCTV에 나오는 후반부 장면. 칸막이 끝부분에 구멍들이 보일 것입니다.
이 구멍은 4월 22일 전후로 먼저 뚫려 있던 것입니다.

사진8 (추가) 2009년 4월 19일 사진 사진을 잘 보시면 상단부분까지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까지는 구멍이 없었다는 예기.

2009년 4월 19일의 또다른 사진

2009년 4월 19일의 또다른 사진

2009년 4월 22일 사진. 바람막이가 끝나는 부분에 몇 개의 구멍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 바로 옆 찬막이 늘어진 부분에는 구멍이 없습니다.
이것은 측면에서 강풍이 불어 그 위치만 먼저 구멍을 뚫은 것입니다.

사진9 (추가) 2009년 5월 10일 사진.
이 때는 이미 사저 정면에서 불어오는 강풍을 막기 위해 왼쪽방향으로 쭉 구멍을 뚫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화장하면 절대 안됩니다 증거를 없애는 것입니다!!

 


- CCTV 내역 전부 공개하라 전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보안상 CCTV1대만 공개한단다..ㅋㅋㅋㅋ핑계거리라도 만들어서..속일라구 해봐라. 잔머리 잘돌아가자나? 니들?- 경호원 및 병원의사, 관련인들의 신상을 안전하고 공개된 곳으로 이동시켜라- 시신 화장 및 장례를 연기하고, 즉시 사체부검을 실시하라

전대통령이 의문사하셨는데 보안상이라구??? 공개를 제대로 안해??? 지금  열심히 합성조작이지?? 그리고 오늘 공개를 다그치니까... 결국 한다는 말이 화면이 전반적으로 흐릿해서 공개를 못한다네.. ㅋㅋㅋㅋ 국민들을 빙다리 핫바지로 보네. ㅋㅋㅋㅋㅋ CCTV화면 조작은 합성 편집좀 하는 학생들도 맘먹으면 할수 잇는거다!!! 大韓民國 국민들을 닭대가리로 보냐????????

 


 


사진 3에서 처럼 처음 공사를 시작하여 적어도 사진1이 찍힐 때까지는 칸막이에 바람구멍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강풍이 잦아지자 사저 맨 우측에 있는 바람막이쪽부터 바람구멍을 뚫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사진1의 바람구멍은 분명히 5월 12일에 촬영된 것이니 최대한 양보해도 5월 12일 아침부터는 뚫려 있었다는 예기입니다.
그런데 경찰이 공개한 CCTV(사진4)에는 있어야 할 위치에 바람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CCTV영상이 적어도 5월 12일 이전에 촬영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 문제를 제기했던 제 글에 어떤 분께서 CCTV의 화질 때문에 구멍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이 사진들을 보시면 다른 반박은 못하실 것입니다.


경찰의 CCTV영상은 5월 23일 것이 아닙니다!
경찰은 왜 5월 12일 이전의 CCTV를 5월 23일 것이라 했습니까?
아니라면 전문가들과 함께 CCTV를 분석하게 해주십시오


2)사건 종료와 함께 공개된 cctv속 마지막으로 사저를 나서는 노통이 착용하고 있는 의복은 <회색 양복 상의> 그러나 경찰은 <점퍼>를 노통 투신증거물이라며 공개

 

 

사하구 을숙도 다리에서 자살의심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오늘 새벽 3시 반쯤 사하구 하단동 을숙도 다리 중간지점에 30살 윤모씨의 그랜져 승용차가 세워져 있는 것을 행인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 했습니다.

경찰은 모 의대 레지던트인 윤씨가 새벽 2시쯤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간다"고 말한점 으로 미뤄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5 26일 부산 MBC 저녁뉴스-

 

2009.05.23  20:53

 

역시 나의 분석은 틀리지 않았군!

친필유서가 아니라 컴퓨터에 저장된 문서파일 유서.그것도 서거 당일날 몇시간 전에 작성. 내용은 급조한 것이 확연히 들어나도록 짧고, 조잡한데 제목은 길기도 하지! 파일명은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의 고통이 너무 크다.] 영혼에 베인 습관은 변할 수 없는 것!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무리 인터넷을 좋아했어도 나이가 육십이 넘은 할아버지가 유서를 한글타자로 남겼다는건 월드컵 경기를 본 날 야구 꿈을 꿨다는 얘기만큼 독특하군!

 

내가 범죄심리학에는 일가견이 있거든 죽기 바로 직전 유서를 남기는 자살자들은 99.9% 손목을 긋거나, 목을 메지! 음독자살을 하거나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유서를 당일날 작성하지 않아! 왜냐하면 음독과 투신이란 방법에는 사전준비(,장소)라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지! 투신자살하는 사람들이 아무데나 가서 뛰어내리는 것 같지?

 

그건 나이아가라 폭포나 금문교 같이 물이 끌어당길 때의 얘기이고 사람은 점찍어 두었던 익숙한 장소로 걸어가게 되어 있어! 결국 음독과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들은 자살을 사전에 계획했단 얘기이고 유서를 미리 작성해 놓는다는 뜻이지!

 

기네스북에 오른다면 가장 긴 유서제목이 되겠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렇게 모르나? 만약 진짜 노무현 전 대통령 자신이 자살하러 나가기 전에 급히 작성한 유서의 제목이라면 그 제목은 분명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였을거야! 유서제목이 신기하게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바람을 대변해주는군! 정말 신기한 일이지! 유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썼는데 왜 유서제목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대변할까?세상은 속여도 나는 못속이지!

 

2009.05.23  12:45

 

그자가 어떤 인생을 살았건, 이유가 무엇이건, 죽음으로 무엇을 말하고, 이루려 했건 자살은 옳지 못한 것이다.게다가 자살이란 선택을 한 당사자가 전직 대통령 이라면 그건 더욱 더 옳지 못한 행동인 것이다. 무슨 일이건 일어날 수 있으니 세상이다. 충격받을 일도 아니고, 감싸고 이해해줄 일은 더더욱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진짜 자살을 했다면 그건 잘못된 판단이었으며,책임감이 결여된 비겁한 도피일 뿐이다.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발표를 믿지 않는다. 차분히 유서까지 남기고 준비된 자살을 할 사람이 조용히 집에서 죽을 수 있는 수많은 방법들을 뒤로 한 채하필 단 한명의 경호원을 대동하고 뒷산으로 향했다는 얘기는 마치 목이 말라 냉장고 문을 열어 바로 앞에 있는 물병뒤에 숨어있던 간장을 마셨다는 얘기처럼 비논리적이다. 물론 목이 마를 때에도 물대신 콜라나 우유를 선택할 수는 있다. 두명의 경호원을 대동 했다거나 조용히 혼자 산에 올라가 뛰어 내렸다면 자살 발표를 믿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이런 일기가 경호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살해 했다는 주장은 아니다. 내 머리가 지금보다 조금 나쁘다면 그렇게 의심하겠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대동한 단 한명의 경호원] 이란 정의는 이번 사건에 대해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상상을 사전에 불식시킬 역 알리바이인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바로 얼마전 헬기를 거부했다. 노무현은 자신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함께 죽게 될 수도 있는 위험을 거부한 것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한달전 유시민 전 장관을 만났다. 어떤 방향으로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앞으로 자신에게 다가올 불행을 예감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대한민국에서 수수께끼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는 그랬다. 아침먹고 멀쩡히 출근했던 가장이 들어올 때는 시신이 되어 돌아오고, 어제 웃으며 안부 전화를 했던 아들이 오늘 사망했다는 전화가 걸려오던 시절이었다.

 

다시 역사가 되돌려지고 조만간 최루탄이 컴백하신단다. 그때처럼 의문의 죽음이 생겨나는 것도 전혀 이상할게 없다. '노무현 죽이기' 를 하더니 진짜 죽인 것일까? 그런 귀여운 질문은 하지 말아라! 답은 나도 모른다 아니...

 

분명한건 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끝까지 살아 남으려면 강해야 한다. 남한과 북한은 영원히 둘로 갈라져 둘중에 하나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져야만 할 운명인가 보다. 불행한 나라에 태어난 국민에게 불행을 헤쳐나갈 용기는 선택이 아닌 필연적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인 것이다.

 

2009.05.24  16:08

 

역시나 의학적 정황들도 나의 주장을 뒷받침 해주네요! 올해 63세의 당신은 일명 자살바위라 일컬어지는 30미터 높이 70도 경사각의 암벽에서 추락했어요! 그곳은 30대인 내가 떨어진다 해도 즉사할만큼 위험한 장소이죠!

 

암벽에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거꾸로 뛰어 내리지 않아요! 인간은 암벽을 보면 반사작용으로 주춤하게 되기 때문에 자살자는 무의식적으로 먼곳을 보면서 최대한 멀리 뛰어 내리죠! 그렇게 뛰어내려 바위에 닿는 1차 충격으로 뼈가 부서지면서 장기가 파열되는 거예요! 하지만 당신의 직접 사인은 두개골 골절 등 두부의 손상 이예요!

 

즉 당신은 떨어져서 구른게 아니라 구르면서 떨어진 것이죠! 스스로 뛰어 내린 것이 아니라 누군가 뒤에서 밀쳤다는 얘기예요! 당신은 분명 평소의 트레이드 마크대로 양팔을 위로 들고 손을 흔들다가 뒤에서 미는 충격으로 푸쉬업의 자세로 암벽을 짚으며 굴렀어요!

 

그 충격으로 양팔이 골절된 것이죠! 하지만 오히려 그런 과정이 당신을 살게 했지요! 스스로 뛰어내렸다면 즉사 했을텐데 누군가 뒤에서 밀어 굴러 떨어졌기 때문에 당신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암벽으로 부터 최대한 자신을 방어했죠! 경호원은 분명 거짓증언을 하는게 아니예요!

 

처음 떨어졌을때 당신은 분명 살아 있었어요! 의식이 분명했고, 경호원과의 대화도 가능했어요! 당신의 정확한 투신 시간은 23일 오전 6 45분이었어요!당신은 멀쩡했고, 경호원은 당신을 살려야 한다는 의지가 분명했기에 경호원은 초인적인 일념으로 당신을 들쳐업고 달려 자동차를 이용해 30분만에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이동한 거예요! 여기까지가 1단계예요!

 

문제는 병원을 옮기는 과정이죠! 당신은 처음 도착한 세영병원에서 청와대에 보고를 한 직후 부산대 병원으로 옮겨졌어요! 23일 오전 7 34분 까지 당신은 경호원 한명이 부축해 병원을 데려올 수 있을 만큼 멀쩡한 상태였어요!김해의 세영병원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시골병원이 아니예요!

 

충분한 의료시설을 갖춘 현대식 병원이죠! 그런데 당신은 이상하게도 조금의 의논도 없이 부산대 병원으로 옮겨졌어요! 마치 그곳이 당신이 죽어야 할 장소인 것처럼... 결국 당신은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완전히 의식을 잃었고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부산대 병원 도착 1시간만에 숨을 거두었죠!정말 신기하죠?

 

젊은 사람이 실족을 해도 즉사를 할 만한 암벽에서 63세의 노인이 자살을 하려 뛰어 내렸는데 척추등 모든게 멀쩡해서 경호원 한명이 살릴려고 번개처럼 날라다 병원에 모셔다 놓았더니 죽지도 않았는데 청와대로 보고부터 하고 당신은 도토리 키재기같이 비슷한 병원으로 응급처치 기능도 없는 조그만 앰블런스에 실려 느릿느릿 옮겨져마치 죽을 장소에 도착한 사람처럼 쓸쓸히 눈을 감았죠!

 

그 나이에 자살하려고 암벽에서 뛰어 내렸는데 어떻게 몇시간 동안이나 살아있었나요? 그래요! 당신은 옛날부터 초인 이었으니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었죠! 당신 죽으면서 어이가 없어 웃었군요! 요즘 대한민국에 쓸만한 조폭이 없어요! A급들은 다 연희동으로 갔거든요! 대통령씩이나 지냈으면서 당신은 왜 세상을 몰랐나요?

 

그들은 알고 있었는데 청와대를 나와 사저로 갔을 때는 사설 경호부대를 운영해야 안전하다는 것을 경호원은 분명 진실만을 말하고 있지만 기억의 퍼즐조각들을 잃고 있어요! 선진국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당장 최면수사에 들어갈 겁니다. 당신의 죽음은 타살일 가능성이 90% 를 넘어요! 타살이 아니라 해도 이건 분명 의문사라고 봐야죠!

 

당신이 죽어서 누가 이득이냐구요? 그럼 당신이 살아있다면 누가 손해를 볼까요? 김해세영병원에서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옮겨지는 40분동안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건가요? 맘먹고 투신자살을 하는 사람이 암벽에 머리를 부딪히면 절대 3시간이나 살아 있을 수 없어요!

 

그것도 그 자리에서 당장의 치료없이 이리저리 옮겨다니면서 말이죠! 풀밭에 떨어졌다 해도 피가 흥건해서 혈흔을 일부러 고생해 찾을 일도 없거니와 투신자살을 한 사람을 업고 병원으로 옮기면 옮긴 사람의 옷에 피가 가득 베이게 마련입니다. 당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대한민국을 위해 당신이 품고 있는 블랙박스를 보여주세요! 어떤것이 먼저였습니까?

 

암벽에서 굴러 떨어져도 불굴의 의지로 살아있던 당신. 머리를 둔기로 맞은 것이 나중 아니었던가요? 아니면 머리를 둔기로 맞고 떨어진건가요? 두정부는 검도를 한 조폭들이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휘두를때 많이 노리는 곳이죠!암벽에서 구른 사람이 왜 하필 머리 위쪽 부분에 11cm 정도의 찢어진 상처를 남겼나요? 머리가 찢어지는건 각목으로 맞았을 때이죠! 먼저 때리고 암벽에서 굴리는건 조폭들에겐 이미 고전이 된 살해 방법입니다.

 

2009.05.24  05:41

 

후후후~ 왕거니가 하나 걸렸군!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의문사 해결에 결정적 역할을 해줄 증거는 바로 경호원이 증언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말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몽고인이 아닌 이상300미터 밖의 사람을 보고 사람이 지나간다라 말하지는 않지! 산에는 나무가 있고, 5월은 나뭇잎의 무성함이 절정에 달할 때. 아무리 높은 산정상에 서있다 하여도 사람을 보는 것은 바로 밑의 코스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하지!

 

곧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엉이 바위 바로 아래쪽에 지나가는 사람을 보았다는 뜻! 첫째 부엉이 바위의 구조는 뒷편은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한쪽면으로만 투신이 가능한 구조. 결국 그 얘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아래를 보며"저기 사람이 지나가네!" 라고 말을 하면 경호원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방향을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자 여기선 두가지 상황이 성립되지!

 

먼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절벽 가까이로 걸어가면 직책상 요인보다 뒷편에 서있는 경호원은 직분상"각하 위험합니다." 라고 만류하게 되고 (뛰어내리는 것이 불가능 해짐.)다음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경호원이 발걸음으로 이동없이 바로 뛰어 내릴 수 있는 위치까지 간 것이라면 이는 100% 경호과실인 것이지!

 

즉 한눈을 파는 사이 뛰어 내렸다는 증언은 전혀 말이 안된다는 것.(경호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보다 뒷쪽에 서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기 때문)둘째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기 사람이 지나가네라고 말한 다음 그 자리에 앉아 책한권을 읽고 뛰어 내린 것이 아니야! 경호원은 분명 바로 뛰어내렸다고 증언했지!

 

부엉이 바위의 높이는 30미터. 30미터 절벽위에서 성인남자가 떨어지는데 저기 지나간다던 그 사람이 그걸 몰랐을리가 없지! 봉화산이 서울 시내에 위치한 남산 이었다면 저기 지나가던 그 사람은 겁많은 도시청년일 수도 있지! 무서운 생각에 그냥 도망갔을 수도 있어!

 

그러나 경남 김해의 가파른 암벽 및을 꼭두새벽부터 혼자 걸어가던 그 사람이 소심한 여고생일리는 없는 것! 30미터 절벽위에서 사람이 떨어지는 것을 알고도 홀연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는건 전혀 설득력이 없어! 정리하자면 한눈을 파는 사이 뛰어 내렸다는 경호원의 증언은 100% 거짓이며,

 

이 경호원이 인생을 종칠려고 작정하지 않은 이상 혼자서 노 전대통령을 수행하며 초긴장을 했을 텐데 그런 경호원이 달음박질 없이 바로 뛰어 내릴 수 있는 위치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었다면 그건 경호원이 노 전대통령을 죽였다는 얘기나 진배없는 것이라는 것! 사고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목격자부터 찾는 것은 수사의 기본. 그냥 일반인도 아니고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서거 직전 전직 대통령의 입으로 직접 언급한'저기 지나가던 그 사람(목격자)은 왜 수소문해 찾지 않나?“

 

어째 일제시대부터 우매한 대한민국 국민들 쉽게 속여가며 권력을 유지해오다 보니대한민국 국민들은 전부 닭대가리로 보이던가? 그런데 미안해서 어쩌나? 가끔은 돌연변이로 대한민국에 나같은 사람도 태어나는 것이거든 차라리 "저기 비행접시가 날아가네!" 라 말하고 경호원을 따돌렸다 주장해라!

 

2009.05.25  15:50

 

이놈들이 전직 대통령을 폭행 살해하고서 대국민 사기극을 꾸미고 있네! 그러나  트릭은 아무리 치밀해도 결국 깨어지게 마련이지! 김해 세영병원 손과장이 말한 세영병원의 도착시간은 오전 7시경. 경남 지방경찰청이 24일 오전 2차 브리핑을 통해 밝힌 노 전 대통령의 투신시간은 오전 6 45. 양쪽의 말이 모두 진실이라면 결국 거짓말은 경호과장이 하고 있는 것이지!

 

부엉이 바위 위에서 세영병원까지 단 20분만에 도착했다는 얘기인데 경호과장도 부엉이 바위에서 굴러 내려왔나?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오는 시간 + 노 전 대통령을 업고 차로 가는 시간 + 차로 세영병원으로 이동하는 시간 = 20? 절대 불가능 하지! 노전대통령이 오전 7 35분에 김해 세영병원을 출발해 양산 부산대 병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8 13분이야!

 

엠블런스에 싣고 도로를 달려가도 40분이 걸리는데 그 많은 일들을 겪으며,놀라서 손이 부들부들 떨려 사고가 안나면 다행인 상황에 부엉이 바위 위에서 세영병원까지 도착하는데 그 절반인 20분이 걸렸다고 니가 무슨 슈퍼부엉이냐? 아니면 본래부터 죽일 계획이라 심장이 평온했던 것이냐?

 

혹시 너도 고향이 봉하마을이라 세영병원 가는 길을 통달했던 것이냐? 아니면 범행전에 미리 동선 코스를 답사해놨던 것이냐? 봉하마을 택시기사가 가도 니보다는 느리겠다. 결국 답은 하나. 최종적으로 일을 마무리한 장소가 부엉이 바위 아래가 아닌 세영병원에서 가까운 장소였다는 뜻이지! 더 간이 오그라들게 만들어 줄께!

 

거기에 세영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과장과 노전대통령만 왔던 것이 아니라경호실 차량에 비서진과 경호팀이 동승했다고 증언하고 있어! 이건 무엇을 증명할까? 이동시간이 플러스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

사저를 나갈 때는 둘이서만 나갔는데 비서진과 경호팀이 동승해서 세영병원에 왔다는 말은결국 이과장이 노전대통령을 싣고 사저에 들러 비서진과 경호팀을 태웠던지, 아니면 이과장이 무전을 해서 비서진과 경호팀이 사고장소로 왔다는 뜻이지! 어때?

 

부엉이 바위 꼭대기에서 세영병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이 20분이 아니라이 시간만 해도 20분은 걸리지! 결국 답은 하나.틀린 그림을 찾았나? 그렇지 바로 그거지! 노전대통령과 이모과장은 차를 타고 나오지 않았어! 즉 이모과장이 무전을 해서 사람들을 불렀다는 뜻이지! 다음 과정을 볼까?심장이 멈추도록 만들어 주지! 경남지방경찰청은 이렇게 발표했지!“

 

수행 경호과장이 사고 직후 무전 등으로 문모 비서관에게 연락했고 문 비서관으로부터 다시 연락받은 박모 비서관이 컴퓨터 바탕화면에서 유서를 처음 발견했다. "유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동행한 이과장으로부터 무전을 받은 문 비서관에게 연락을 받은 사저의 박모비서관 이었어! 이거 완전한 그림이 나오잖아?

 

이과장은 현장에, 박모 비서관은 사저에,그럼 문 비서관은 어디에 있었던 건데?  (차를 대기시켜 놓고 기다리고 있었지! 그래서 이동시간이 빨랐던 것!)그리고 노전대통령이 추락했다는 무전을 받고 노전대통령의 컴퓨터 바탕화면부터 확인한 박 비서관은 뭐하는 새낀데? 이거 완전히 미친놈 아닌가? 세상에 어떤 상식있는 인간이 전직 대통령이 암벽에서 추락했다는 무전을 듣고 방으로 들어가 컴퓨터 부터 확인하나?

 

상식적으로 경호원이라면 추락했다는 무전을 받자마자 만사를 제쳐두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하는거 아닌가? 방으로 들어가려면 권여사에게 먼저 알렸어야지! 처음부터 컴퓨터 조작하는게 임무가 아니라면 어떤 미친놈이 추락했다는 무전받고 노전대통령 방으로 들어가서 컴퓨터부터 확인해? 이건 완전히 책을 나눈 조폭들이야! 현장(행동대원), 운송대기조, 마무리조. 다시 현장으로 이동해 볼까?

 

너희들은 한가지 사실을 간과했지! 거기엔 노전대통령을 진짜 지켜주려는 착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사실. 경비3초소에 있던 순진한 전경 1명이 오전 6 20  경호상황실에 '현재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 있다'고 보고했어! 25분 전에  부엉이 바위 위에 있는 것을 목격한 전경, 그리고 25분 전에 부엉이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을 보고받은 경호실 요원들이 모두200미터 뒤 30미터 암벽에서 성인남자가 추락하는 것을 보지도, 듣지도 못했다고?

 

거기 있는 사람들은 다 며느리 들인가? 세영병원으로 가보지! 세영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노전대통령은 피범벅 이었어! 게다가 피가 많이 묻은 노전대통령의 상의 또한 발견됐지! 어머! 그런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노전대통령은 피범벅이 되어 세영병원에 실려오고, 노전대통령의 피묻은 상의는 발견이 되었는데어째 현장에서 노전대통령의 혈흔은 하루가 지나도록 발견을 못한거야!

 

아직까지도 어디서 얼마만큼의 혈흔이 발견되었다는 정통한 소식이 없네!참 신기하기도 하지? 피범벅이 된 사람,피묻은 상의가 벗겨진 사람이 왜 현장엔 그토록 혈흔찾기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을까? 답은 하나. 노전대통령은 그곳에서 살해된게 아니었기 때문이지! 후후후~ 범인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릴줄 아는 놈이었지만 법의학 상식이 부족한 놈이었어!

 

암벽에서 추락을 해도 상의는 벗겨지지 않는 단 사실을 몰랐던 것이지! 멍청한 범인은 노전대통령이 이곳에서 굴렀다는 증거를 꾸미기 위해 상의와 등산화 한짝을 이용했지! 그런데 바보같은 놈이 상의의 위치를 잘못 잡은 거야! 상의는 낙하 지점으로부터 11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어!

 

나무에도 걸리지 않았는데 상의가 벗겨져 11미터 밖으로 도망가 버리는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지!  11미터 일까? 답은 두개야! 하나는 부엉이 바위 위에서 상의를 던진 것이지! 둘은 다른 곳에서 급하게 그 지점에 상의를 갖다 놓느라고 아무데나 놔버린 것이지! 경찰은 상의가 이과장이 노전대통령을 업고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졌을 것이라 말했어!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나? 결국 경찰도 추락하는 동안은 상의가 벗겨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인데 추락하는 동안에도 벗겨지지 않던 상의가 업고 옮기는 과정에서 떨어져? 그렇다면 그것은 떨어진게 아니라 일부러 벗긴 것이지! 범인이 피해자의 옷을 벗기는 이유는 단하나. 피해자가 항상 품에 간직하고 다니던 물건을 노릴 때이지!

 

여태까지 내가 올렸던 모든 추론들을 종합해 볼 때이 사건을 대충대충 넘겨 빨리빨리 끝내기 위해 국민들을 속이려고 하지만 미리 서로 입을 맞춘 것이 아니고 사건의 진행동안 변수가 생겼기 때문에 여기 저기서 말이 어긋나고 있는게 분명해!

 

먼저 노전대통령을 수행한 경호과장의 진술은 100% 신빙성이 없으며 그에 따라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23일 오전 6 45분에 뛰어 내렸다는 부분부터 다시 재고가 되어야 해! 일단 떨어진건 떨어졌다 하더라도 그게 밀려 떨어진 것인지, 아니면 위협을 피해 뛰어 내린 것인지도 분명치가 않아! 분명한건 단 한가지 사실 뿐이야!

 

노전대통령과 이모경호과장이 단둘이 사저를 나갔다는 것! 그게 산책이었는지, 그 방향이 부엉이 바위였는지, 둘이서 밖으로 나간 이유가 무엇 이었는지 아무 것도 결론을 내릴 수 없어! 개판. 수사법이 바뀌어야 해! 사건이 일어나면 지방경찰은 국과수가 올 때 까지 현장에 폴리스라인을 치고 일체의 출입을 금지 시켜야 해! 전직 대통령이 서거했는데 동네경찰이 수사를 한다는게 말이 되나?

 

정말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졌다면 사저의 경호원들은 바로 통제에 들어가야지! 23일 오전 6 45분 부터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봉하마을을 들락거리고 사건현장을 오갔나? 무개념.그 자체가 이미 범행인거야!

 

2009.05.25  08:32

 

난 대한민국 경찰의 노력과 양심은 믿지만 실력은 인정할 수가 없어! 노력이고 양심이고 간에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건 지능이고,실력인거야!미국이나 영국의 수사팀이 와서 조사후 자살발표를 하기 전에는내 홈피에서 만큼은 타살로 잠정 결론 내리겠다.추리는 상상이 아니라 검증과 실험을 통한 과학적 인과론이야!

 

추론을 음모론이라 칭하는 무식한 나라는 미개한 후진국 한국이 유일하지! 내가  가진 최고의 의문점은 63세의 노인이 자살을 마음먹고 30미터 높이 70도 경사각의 암벽 위에서 뛰어 내렸는데 과연 3시간 동안이나 특별한 조치도 없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게 가능할만큼 살아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야! (그것도 사인이 두부손상인데 말이야)

 

지금 많은 네티즌들이 가장 의문을 갖는 것중에 하나가 바로 사람이 추락했으면 척추를 비롯 온몸의 뼈가 다 절단이 났을텐데 그런 사람을 어떻게 경호원 혼자 업고 가서 승용차로 병원까지 데리고 갈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인데그건 아주 간단한 문제야! 즉 척추도 온몸의 뼈도 멀쩡했다는 뜻이지! 추락해서 절단난 사람을 어떻게 혼자 업고 갔느냐?가 아니라 멀쩡했으니 혼자 데리고 간 것이지!

 

여기선 두가지 결론이 성립되는 거야! 하나는 자살하려고 뛰어 내린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하고 몸을 보호해서 죽지 않았다는 것이고 둘은 처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은 암벽에서 추락한게 아니라는 것이지! 봉화산은 경남 김해에 위치한 시골산 이지만 부엉이 바위는 사저에서 200미터 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고 알잖아?

 

당시 사저 주변에 얼마나 많은 기자들과 사람들이 24시간 눈을 부릅뜨고 특종거리와 볼거리를 노리고 있었는지 그런데 30미터 높이에서 먼지가 아닌 성인남자가 추락하는 것을 아무도 목격하지 못했어! 시골마을 고요한 아침 조그만 돌멩이 하나가 굴러 떨어져도 그 소리는 상당한 파장력을 소유하지!

 

사람은 자살을 한다 해도 긴 비명은 아니라도 충격으로 인한 단말마의 소리라도 내지르게 되어 있어! 아무도 보지 못했고,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어! 덧붙여 새로운 사실 하나가 나왔지! 권양숙 여사도 산행에 동행하려 했어!분명 혼자 올라간 남편이 궁금해서 봉화산 쪽을 수시로 쳐다봤을 거야!

 

아니 일부러 쳐다보진 않았다 해도 신경이 봉화산 쪽으로 쏠려 있었겠지! 왜 암벽에서 떨어진 사람이 머리가 깨져야지 하필 정수리 부분에 찢어진 상처를 남기나? 궁금하면 머리통을 바위에 박아 보라고 과연 정수리가 찢어지나? 박은게 아니라 맞은 거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것은 어떤 분야로도 논리적인 설명이 안돼! 범죄 심리학적으로 볼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분명 몇주전부터 계속 우울한 기미를 보였다고들 증언했어! 그런데 유서를 자살하러 나가기 20분전에 남기나?

 

법의학적으로 살펴 볼까? 3백미터 암벽에서 추락해도 점퍼는 벗겨지지 않아! 점퍼가 벗겨지려면 팔을 벌려야 하는데 추락하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팔을 웅크린다고 성인남자가 떨어지는데 나뭇가지 정도에 걸릴 거 같나? 걸리더라도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점퍼가 찢어지지! 나무에 걸렸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살았어야지! 나무에 걸려 살아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점퍼를 벗어 버리고 도망치는데 쫓아가서 각목으로 후려쳤다면 말이 되지!

 

지능이 모자라기 때문에 추론이 나오면 소설을 쓴다고 빈정대는 거야! 그러나 아는 사람들은 다 알지! 이번 사건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그려 원래 계획대로 죽었어야 하는데 안죽었으니 어쩌겠나? 범인은 목표가 어긋나면 정신이 번쩍 들면서 후회가 밀려 오는거야! 죽일 사람이 멀쩡하니 최선을 다해 살리는 수 밖에 그런데 살아있던 사람이 진짜 죽었어! 언제?

 

 

청와대에 전화하고 병원으로 이동해서 도착하는 동안에 40분전엔 가망이 있어서 큰 병원으로 옮기는데 40분뒤엔 이미 심폐소생술도 못할만큼 저승사람이 되어 버리나? 누굴 바보로 아나? 그건 니들같은 닭대가리들이나 속아 넘어가는 것이고 죽을 사람이면 세영병원에서 죽게 내비두고 사저의 권양숙 여사한테 먼저 전화를 하는게 순서이고 옮겨서 살 사람이 40분만에 송장이 됐다는건 옮기는 40분동안 죽였다는 뜻이지!

 

처음부터 세영병원은 예정에 없던 돌발수였지! 암벽에서 추락해도 바로 죽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변수였으니까 원래 계획은 암벽에서 추락. 즉사하거나 의식이 없었다면 바로 부산대병원으로 가는 것이었지! 그러니까 니가 바보인 것이지! 청와대에 중간 보고는 왜 하나? 그러니까 니가 똥줄타는 아마추어인 거야! 봐라! 청와대에 보고를 하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완전히 서거한 다음에 하는 것이 정상이지!

 

그게 아니고 그토록 급하게 먼저 해야 했다면 떨어지자 마자 했어야지! 세영병원에 도착해서 전화를 했다는건 뭔가? 일이 틀어졌단 얘기 아닌가? 마지막으로  내가 여기다 싸인하나 해주지! 난 이모과장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 3 의 인물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임무를 완수하면 니놈은 살 수 있을 것 같나?

 

니놈도 삼년안에 죽을테니 두고 보라고 그리고 집착해서 기다릴 필요도 없어!내가 아무리 베플을 즐겨한다 해도 이런 내용을 공론화 시키지는 않으니까 중요한건 어떤 글이냐 하는 것이지, 어디에 쓰면 어떠한가? 내가 쓴 글은 돌고 도는 동안에도 끝까지 살아남아 결국엔 들어갈 사람 귀에 다 들어가더라고

 

2009.05.25  03:54

 

많은 사람들이 고 안재환 씨의 누나를 욕했지만 난 안재환 씨의 누나와 타고난 성격이 비슷한 사람이기에 그분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그분이 동생의 불행과 의문의 죽음을 해결할 수 있기를 아직까지 응원하고 있다.무기력하고 무지하며 가증스런 인간들.그게 한국인들의 공통점이다. 국장?

꼴값떨고 있네! 자살한 전직 대통령이 무슨 명예가 있다고 국장을 치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자살로 끝나면 노무현의 명예는 없는 것이다. 노무현이 죽음으로 누가 이득을 보냐고? 노무현이 자살을 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은 바로 노무현 자신이다.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측은하고, 불쌍한 대통령으로 남는 것은 명예가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분향소를 찾아가지만 그 눈물과 발걸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국민들이 흘렸던 그 눈물과 발걸음이 아닌 것이다.

 

노무현의 죽음이 서거가 되고 노무현의 명예가 지켜지기 위해선 그의 죽음의 본질적 원인 자체가 격상 되어야지 장례형식 따위가 격상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다. 명복은 무슨 얼어죽을 허구한 날 명복을 빌면 죽은 사람이 살아오나? 세월호도 마찬가지야. 슬퍼하지말고 진실을 밝혀야지!!! 난 분양소에 절대안가 잠을 못자고 밥을 못먹더라도 진실을 밝히길 위해 노력만하지.

 

죽으면 그걸로 끝나는 것이지 죽은 다음에 눈물 흘리고, 아쉬워 하고, 명복 빌고 다 부질없고 가증스런 짓거리들이다. 진짜 애정은 그런게 아니다. 진짜 애정은 우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다. 진짜 애정은 떠난 자의 영혼이 잘됨을 비는 것이 아니라 떠난 자의 이름이 잘되도록 기도하는 것이다.

 

진짜 애정은 잊는 것이 아니라 궁금해 하는 것이다. 진짜 애정은 분향소에 가는 것이 아니라 그가 죽은 루트를 답사하는 것이다. 사랑은 주먹으로 발로 심장으로 하는 것이지! 세치 혀로 하는게 아니다. 장난하나? 노무현이 담배 못피워 한맺힌 사람인가?

 

유시민이 대표로 한대 피게 했으면 됐지! 뭘 줄나라비를 서서 담뱃불을 붙여놓나? 한국인들은 그저 모든게 형식.오직 같잖은 형식일 뿐이다. 모든 추측을 미루고서 라도 본래 경찰의 공식발표가 나오기 전까지 모든 죽음은 그냥 죽음일 뿐이다. 지금이야 공식발표가 나왔지만 이 나라는 어찌된게 경찰의 공식발표가 나오기도 전까지 사람이 죽기만 하면 무조건 다 자살이다.

 

야 이거 진짜 죽어도 한국에서는 죽지 말아야지! 나처럼 자살을 혐오하는 사람이 어느날 죽어도 이 나라에선 바로 자살로 종결 처리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절대 자살을 안할 사람들은 미리미리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죽으면 그건 절대 자살이 아니라고 알려두어라! 그래야 당신이 죽었을때 주변 사람들이 자살이 아님을 알거 아닌가?

 

이 나라에선 꿀먹은 벙어리처럼 살다간 어느날 억울하게 죽어도 당신은 분명 자살자로 처리된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노숙자가 죽어도 이토록 사건을 빠르게 종결하지는 않는다. 언제 제대로 된 수사라도 한번 해보았는가? 이건 완전히 "죽었다. 끝났다." 이다.

 

당연히 죽을 사람이 죽은 것처럼, 이미 죽어있던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지지자들 마저 집단최면에 홀린 듯이 총체적 무지에 빠져 깊은 영혼의 웅덩이를 헤메고 있다. 무기력한거 착한거 아니다. 대가리 나쁜거 자랑 아니다. 남들하고 똑같이 사는거 올바르게 사는거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못된 새끼들, 죽으면 무간지옥에 떨어질 새끼들이 바로 음모론을 펴지 말라는 놈들이다.

 

사이버수사대는 인터넷에서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주자] 는 놈들을 전부 잡아다가 조사를 해야 한다. 역사는 증명한다. "대대로 입다무는 것들 치고 죄없는 놈 없다.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머리가 좋은 죄 뿐! 무식한 인간들이 내글을 이해 못한다고 해서 내글이 틀린 글이 되는 것은 아니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내글을 이해 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3년 뒤에 이민갈 계획인가? 한나라당은 3년 뒤에 대통령 후보 내세우지 않을 작정인가? 나를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다.오히려 정부여당을 위해 전직 대통령의 죽음엔 한점 의혹도 없는 객관적 수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건 타살이 아니라도 의문사이다.제대로 생각이 있는 사람들의 길을 막고 물어보라!예순 넘은 우리 어머니도 노무현은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라 했다. 이 나라엔 젊어도 늙은 놈들,무기력하고 무식하고 착한척 하는 역겨운 위선자 들로 가득차 있다.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인 범인이라면 인터넷에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 줍시다.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주자는 놈들 글과 내글은 이미 문장의 레벨 자체가 다르다.사람들이 니놈보다 할일이 없어서 의문을 제기하겠는가? 술에 술탄듯 물에 물탄듯 대충 대충 좋은게 좋은거 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인간들을 전부 쓸어내야 이 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걱정마라! 니가 죽었을 때는 닥치고 명복이나 빌어줄 테니...

 

2009.05.26  05:21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아마추어가 노전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가 제 무덤을 파고 있네!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25일 발표하기를 노전대통령이 서거 당일(23) 정토원에 갔었다고 말을 했네! 대한민국엔 범죄심리학자가 단 한명도 없단 말인가?

이렇게 완벽한 증거가 나와도 그냥 자살로 처리하고 화장을 해?봐라!정토원이란 곳은 노전대통령이 뛰어 내렸다는 부엉이 바위에서 200미터 이상 떨어진 곳이야!그리고 노전대통령과 경호과장이 정토원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6 30. 그런데 내가 앞선 글에서 분명히 언급했었지!

 

경비3초소에 있던 전경 1명이 오전 6 20분 경호상황실에 '현재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 있다'고 보고했다고 그렇다면 얘기가 어떻게 되는 거야?자살하는 사람이 일단 부엉이 바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정토원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서 뛰어내렸다고?

 

푸하하하~ 플로리다 에서는 그렇게 증언하면 정신병동행이다. 자살하는 63세의 전직대통령이 혼자도 아니라 경호원을 대동하고 일단 부엉이 바위 위로 올라가서 전경에게 자신이 부엉이 바위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 시켜주고 다시 200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정토원으로 내려가서 "저 자살하는거 맞습니다." 하고 흔적을 남겨주고 또 다시200미터 이상이나 떨어진 부엉이 바위 위로 올라가서 뛰어 내렸다고?

 

천만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어!첫째 자살자가 자살할 장소에 왔다가 그곳을 벗어나 다시 그곳을 찾아와 자살을 했다는건 범죄심리학적으로 설명이 안되는 얘기이고, 둘째 무슨 유격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몸도 안좋았다는 63세의 노인이 험한 산길을 25분안에 왕복했다는건 물리적으로 설명이 안돼! 봐라! 오전 6 20분에 부엉이바위 -> 오전 6 30분에 정토원 -> 오전 6 45분에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컨디션도 안좋은 63세의 할아버지가 무슨 바쁘게 자살할 일이 있었나?

 

만약 진짜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까지 올라왔다 내려가 정토원에 들러 다시 부엉이 바위로 올라가자 말했다면그순간 바보가 아닌 정상적인 경호원이라면 모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을거야! 그런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노전대통령을 그대로 절벽가까이 가도록 놔둔 것이라면 그 자체가 이미 중대한 경호과실이지!

 

이 트릭을 깨주지! 너희들은 언제나 한명이야! 대동한 경호원도 한명, 부엉이 바위위에 있는 노전대통령을 목격한 전경도 한명. 내가 저번글에 언급한대로 노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서 떨어진게 아니었어! 처음부터 노전대통령은 부엉이 바위에 가지 않았어!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위에 가지 않았다면 경호원이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오는 시간은 없어지기 때문에 세영병원에 얼마나 빨리 도착했건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이지!

 

645분에 투신을 했는데 세영병원 도착시간은 7시라는건 도저히 말이 안되지만 640분에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폭행을 당했다면 세영병원 도착시간이 7시라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것이지! 처음 계획은 노전대통령을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 버리는 것이었지!

 

그래서 뛰어 내렸다는 정황을 만들기 위해 전경 한명이 목격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었어! 그런데 변수가 생겼어!자신의 위험을 직감한 노전대통령이 갑자기 정토원으로 발걸음을 돌려버린거야! 확실한 공포가 엄습해 올 때 피해자는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지만 위험이 직감적으로 느껴질 때 피해자는 싸인을 남기는 법이지! 정토원은 노전대통령이 남긴 표식이야! 어떡하나?

 

따라가는 수 밖에! 그런데 거기서 부처님의 도움이 계셨지! 선진규 정토원장은 경호원과 눈이 마주치자 마자 이렇게 물었어!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이게 무슨 뜻인가? 사람이 정토원에 찾아오면 그 첫인사를 "무슨 일이 있으시냐?" 로 하는 원장이 세상에 어디 있나? 그만큼 무슨 일이 있어 보였던거야!

 

그런데 재밌는건 선원장은 자살하려던 노전대통령을 보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던게 아니라 따라온 경호원과 눈을 마주친후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어!왜 그랬을까? 경호원이 자살하려고 맘먹은 것도 아니었는데 경호원의 눈에서 뭘 느꼈길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을까?

 

그런데 여기서 경호원의 대답이 해답을 말해주지! 무슨 일이 있냐는 선원장의 질문에 경호원은 이렇게 대답했어! "아무 것도 아니다." 이게 상식적인 대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설마 없겠지! 경호원의 정상적인 대답이라면"네 각하께서 오셨습니다." 였겠지! 아무 것도 아니다란 대답은 뭔가 나쁜 짓을 하려고 할 때 누가 갑자기 "너 뭐하냐?" 라고 물어오면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대답하는 것이지!

 

한마디로 사람은 상대방이 나에게 많은 말을 걸어오지 않기를 바랄 때,빨리 이 상황이 끝나주기를 바랄 때바로 아무 것도 아니란 대답을 하게 되어 있는 거야! 어디까지 연결되고 누구까지 엮여있니? 24일 있었던 경찰의 브리핑에선 노전대통령이 정토원에 들렀다는 사실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어! 경찰이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스스로 은폐한거니?

 

그건 아니었겠지! 그런데 왜 25일 전 청와대 홍보수석의 발표가 나왔을까? 목격자인 정토원 원장님은 매수를 못했기 때문이지! 게다가 어떻게 할까 고민해보니 정토원에 들렀다고 발표를 하는게 자살의 당위성을 높여줄거라 착각했던거야!

 

그러나 너희들은 대한민국에도 나같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지! 여기가 만약 미국이나 영국 이었다면 뒤집어질 일이야! 한국에서 권력을 누리는걸 하늘에 감사하고 겸허하게들 살아라! 내가 왜 이런 글을 자꾸 올리냐고? 자존심이지! 내 머리에 대한 자존심.

 

난 내가 억울하게 죽는건 용서해도, 바보같이 속아 넘어가는건 절대로 용서못해! 뭘 고개를 갸우뚱 거리니? 미련한 놈아! 나를 죽이는 남은 용서해도, 속아 넘어가는 내 자신은 용서하지 못한다고...

 

2009.05.27  00:27

 

하하하~ 어떠니? 핏덩이들아^^ 몸에 힘좀 있으니 사람 죽이는게 쉬워 보였지? *만한 핏덩이들이 이 넓은 세상에 어떤 잘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깝치고 있네! 나원 같잖아서 내가 얘기했지? 위협을 직감한 노전대통령이 발길을 정토원으로 돌렸다고 거기서 니가 정토원장 이랑 눈마주쳐서 버벅대는 사이에 노전대통령이 자살하러 부엉이 바위로 혼자간게 아니라살기 위해 도망을 친 것이지!

 

놓쳐? 뭘 놓쳐?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작당을 한게 아니라면 어떤 일이 생겼을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무전을 왜 치나? 노전대통령이 자살할 거란걸 미리 알고 있었어? 아니잖아! 니가 무전을 칠 그때는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때 였어!그런데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무전을 왜쳐?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잖아! 넌 깜짝놀라 무전을 쳤지?왜 쳤을까? 바로 유서를 맡은 놈 때문이었지!

 

 

난 처음부터 왜 유서가 바탕화면에 떠 있었을까? 생각했어!바로 이제 그 이유를 알게됐지! 사저에 남아있던 공범은 노전대통령의 컴퓨터가 있던 방에 두번을 들어간거야! 한번은 유서를 작성하러,그리고 또 한번은 놓쳤다는 무전을 받고 유서를 삭제하러 그런데 인기척이 들리자 미쳐 유서를 삭제못하고 급하게 컴퓨터도 못끈채 방을 나와버렸지!

 

무전의 내용을 한번 살펴볼까?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 넌 형사가 아니라 경호원이야! 전직 대통령이 무슨 범죄자니? 니가 쫓아가서 뭔가를 해야할 입장이 아니라면 놓쳤다란 무전은 맞지가 않지! 폭행치사가 아니라면 노전대통령의 시신을 일본인 의사에게 정밀검사 하도록 맡겨봐! 한국은 독립할 지능이 안되는 나라. 난 일본인 만큼은 믿는다.

 

그래! "놓쳤다", "보이지 않는다" 고 치자! 그리고 노전대통령이 널 따돌리고 부엉이바위 에서 투신했다고 치자!그럼 너는 정말 용한 점쟁이로구나! 부엉이바위는 정토원 바로 옆에 있는 바위가 아니야! 아무리 봉화산이 뒷산이라도 거긴 서울이 아니지! 녹음이 우거진 5월의 시골산에서 200미터나 떨어진 부엉이바위 아래 노전대통령이 쓰러져 있을 줄 넌 도대체 어떻게 알았던 것이니?

 

내가 치명타를 날려 줄께! 너희들은 한놈이 아니었던 것이지! 도망치던 노전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아래에서 다른 놈과 마주쳤던 거야! 바로 등산객이 만났다던 혼자 거닐던 경호원은 니가 아니라 그놈이었지! 정토원에서 놓쳤다고 무전을 치던 니가 부엉이 바위 아래 쓰러져 있던 노전대통령을 찾았다는건 말이 안돼! 넌 뒤에서 쫓아가고 한놈은 부엉이 바위 아래 숨어 대기하고 있었지!

 

? 부엉이 바위에서 밀어 버리는게 애초 계획 이었으니까 그놈이 거기 있었던건 본래의 위치를 지키고 있었던거야! 만약 노전대통령이 정토원에 들렀다 도망치지 않았다면 실제로 그렇게 돌아가셨겠지! 그런데 도착해야 할 시간에 도착을 안하니 궁금해서 숨어있다 나온 것이지! 그래서 등산객을 만나게 된거야!

 

 

너더러 사람들이 순간이동 했냐고 하더라! 어떻게 부엉이 바위에서 세영병원까지 20분만에 노전대통령을 옮기며 도착했는지 이젠 답이 나오잖아! 처음부터 부엉이 바위에서 내려올 일이 없었고, 너흰 하나가 아니었으니까 분명 세영병원에 도착했을때 너희들은 한명이 아니었다고 증언이 나왔지! 먼저 각목으로 두정부를 내리쳤니?

 

정신을 잃고 쓰러진 노전대통령의 양발을 붙잡고 배쪽으로 내리 눌렀니?그래서 등산화를 양쪽다 벗겼다가 생각해보니 이상해서 한쪽은 다시 신겼니? 노전대통령이 도망치는 사이 메모라도 남겼을까봐 주머니를 뒤지려고 상의를 벗겨니? 직접사인은 두부손상,그리고 뼈들은 이곳저곳 부러졌는데 신기하게도 장이 파열됐다는 소견은 듣지 못했거든!

 

난 처음부터 의심을 했었지! 암벽에서 자살하려 한 63세의 노인이 어떻게 저렇게 오랫동안 숨이 붙어 있을 수 있으며,혈흔 찾기가 힘이 들었을까? 니가 한번 30미터 암벽에서 죽기로 마음먹고 뛰어내려 볼래? 니몸이 어떻게 되고 추락장소에 혈흔이 얼마나 남나?

 

그래서 니들은 아마추어. 폭행으로 추락사를 꾸미려니 대충 모양새는 유지했는데 장들 파열을 못시키고, 뼈들을 분산시키지 못하고, 피를 많이 뽑지 못했던거야! 하지만 의사들이 바보는 아니야!언제 의사들이 제대로 된 정밀검사라도 할 여유가 있었니?

 

그대로 세영병원에 남아 있었다면 의사들도 의문을 제기했을 거야! 그런데 병원을 옮겼지! ? 세영병원은 애초에 목적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왜 세영병원 으로 갔을까? 엔딩타임 오전 7 20분을 초과했기 때문이지! 원래 계획은 오전 6 30분에 노전대통령을 부엉이바위에서 밀어버리고 곧장 양산부산대병원으로 가는 것이었지!그런데 도망친 노전대통령 때문에 시간이 초과되니까 일단 세영병원으로 갔던 것이지!

 

결론 핵심요약 및 추가

 

1. "놓쳤다 못찾겠다" 무언가 낌새를 차리고 도망갔다는 의미. 언론은 계속 1명의 경호원만 있었다고 했는데 최소 보고하는 자와 보고받는 자 2명 이상이라는 뜻. 그렇다면 사고 발생시 왜 1명의 경호원이 업어서 내려왔을까.

 

2. 새벽에 같이 등산가자고 부른 권여사를 따돌리고 급하게 먼저 출발 아마도 무언가 불길한 기분에 부인이 위험에 처할수도 있겠다는 위협을 느낀건 아닌지.그래서 같이 가자고 했으나 옷 입을때 그냥 먼저 성급히 따돌리고 나간건 아닐는지.

 

3. 문서작성시간 문서파일은 시간설정변경으로 간단히 저장정보를 왜곡할 수 있음. 예를 들어 밤10시에 작성한 것도 시간을 바꿔놓으면 새벽 5시로 저장됨

 

4. 바탕화면 문서 최근 기술로는 원격조종이 가능함. 즉 제3의 컴퓨터에서 유서파일 작성 뒤 노대통령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는건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음. 또한 HWP는 저장시 첫번째 문장이 자동으로 파일명으로 저장이 되나 노대통령의 유서는 두번째  문장이 파일명으로 저장됨.

 

5. 유서를 발견한 비서관 이것은 평소에 노 대통령의 사재를 자기 방 드나들듯 다닌다는 이야기? VIP가 보이지 않는다고 덜컥 사재에 들어가 컴퓨터를 확인? 상식적으로 자살을 예감한다면 유서를 찾기위해 노트나 책상서랍을 뒤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또한 언론은 유서를 오후 1시경에 발견했다고는 하지만 실제 기사는 11시 부터 났었음

 

6. 유서의 신뢰도 법적 효력 이런것을 떠나서 상식적으로 오래전부터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아침일찍 일어나 깨끗이 속옷을 갈아입고 정갈한 마음으로 종이에 적어서 살포시 올려놓고 가지 않는가? 실제로 자살과 관련한 여러 사례와 연구를 보면 자살을 앞둔 사람은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는 등 여러가지 징후를 보인다(군대 다녀온 사람은 알것임)

 

7. 손목골절 추락하며 손이 먼저(만세자세) 바닥에 닿았다는 의미. 자살하는 사람이 왜 충격을 저지하려는 자세를 취하였는가

 

8. 혈흔 30미터 절벽에서 떨어진 시신의 착지지점과 피투성이가 돼어있을 그의 잠바, 그리고 그 시체를 업고 왔다는 경호원의 옷.. 어디에도 혈흔은 발견되지 않았다.

 

9. CCTV 미공개 사저와 정문, 경호원 별채등 CCTV 출입기록만 공개되면 거의 모든 비밀은 풀리게 되어있다.

특히 유서를 쓰러 갔다는 시간의 실내CCTV 기록만 공개되면..

 

10. 정토원 정토원 보살의 말로는 경호원이 혼자 올라왔다고 하며, 결정적으로 경호원을 만나 잠시같이 산행을 한 목격자의 진술.

 

11. 시체의 상태뼈마디가 다 으스러지고 피투성이가 된 시체를 40대 경호원이 업어서 하산.그러나 나중에 확인한 시신의 표정은 너무나 평온하고 온화했다.

 

12. 사건전날 사건전날 담당 경호원이 바뀜. 그리고 사건 전날 이례적으로 경호원들을 일찍 퇴근시킴.

 

13. 발표시간 OO일보에서 914분에 930분 서거로 기사가 뜸. 또한 최초 음독사로 의심된다는 기사도 있었음.

 

14. 자살발표 사건이 일어난 이후 부검이나 일체의 구체적인 정황조사없이 모든 언론이 자살이라고 일제히 방송.대부분 속보는 사건사실만 최초보고 한후 후속보도나 추가보도를 하는데 당일 언론은 이미 오전에편집영상 및 각종 분석까지 준비된 듯 내보냈음.

 

15. 화장 고인은 2004년 장기기증 서약을 하였음."화장해라" = "부검하지마라" 뿐만 아니라 사고 직후 정부는 "고인의 예우차원에서 부검은 실시하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부검여부는 가족들이 결정해야 할 사안임.

 

16. 이동시간과 시체이동 45세의 경호관이 63세의 노인을 업고 하산해서 차량에 싣고 병원까지 도착하는데 걸린시간이단20. 팔팔한 20대의 나이에 20kg대 군장들고 산타본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지 알 것.

 

17. 경호원의 진술 경호원은 일관되게 자신이 행동했던 것을 증언한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걸' 증언하고 있다., 그는 산 아래나 다른 위치에서 노대통령을 지켜본 경호원이고 산위-노대통령의 옆에 있던경호원은.. 다른 누군가가 있었을 수도 있다.

 

18. 경호원의 초기대응 자신이 경호하는 VIP가 낙상을 당했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리시버를 통해서 다른 경호원이나사저로 연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119도 부르지 않았다. 전직 대통령이라면 사실상 헬기가 제일 먼저 왔었어야 한다. 경호라인을 통해 청와대에 최초 보고를 한 뒤 사저의 다른 경호원 도움없이혼자 병원으로 이송했다. 물론 응급조치는 하지 않았으며 골절환자를 개인도수운반으로 날랐다.

 

19. 새벽에 경호원와 맞닿은 등산객 경호원이 VIP를 놓친 상황이라고 하면 "노 대통령 못 보았냐?"라고 물어보는 것이 정상.하지만 그는 놓친 VIP를 찾는 것이 최우선임에도 불구하고 행사있냐는 질문에 그냥 등산하러왔다고만 대답

 

20. 조선일보 홈페이지 로고 홈페이지 왼쪽 위 노무현대통령 서거 애도하는 로고 logo_090522.gif 를 보면서거일은 523일인데 파일명은 5 22일임.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12963&hisBbsId=best&pageIndex=1&sortKey=&limitDate=-30&lastLimitDate=

 

21. "쿵 쿵" 하는 두번의 소리 중간에 한번 부딛히고 나중에 한번 더 부딛히는 바운드되는 소리일 수도 있고, 둔기로 한번 맞고 추락할 때 한번 부딛히는 소리일 수도 있고 참고로 사인은 두개골 손상. 그러나 손목골절도 있음.

 

22. 혈흔의 다른 미스테리 현장에는 혈흔이 없었뜨나 현장에서 떨어져 발견된 상의에는 혈흔이 있었다. 상의는 왜 현장에서 떨어져 있었을까? 살해당한 사람이 두명이었을 가능성. 예를 들어 그 끔찍한 현장을 목격하거나 그 상황을 저지하려고 시도하던 제3의 인물의 상처가 상의에 묻을수도.

23. 시체의 상태 30미터의 절벽에서 머리부터 떨어졌다면 사실상 두부는 거의 파손될 수 밖에 없음. 추락시체 목격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파트 10층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져도 시체는 산산조각이 난다고 하는데, 시체의 모습은 '편안히 잠든' 모습이라고 함.

 

24. 잠바와 등산화 왜 잠바와 등산화는 사망장소에서 떨어진 곳에서 발견이 되는지? 피가 뭍어 있는 상태라면 사후에 벗겨진 것이라는데. 등산화는 그냥 벗기려고 해도 잘 안벗겨지는 신발인데.. 사후에 그냥 슬리퍼 벗겨지듯이 등산화가 벗겨질수가 있는가?

 

25. 다른 경호원들의 동향 사고직후 사저내에 있던 다른 경호원들은 어떤 행동을 취했는가? 그리고 그들이 청와대에 보고한 내용은? 최초 산에서 무선으로 보고를 받았으면 VIP 병원까지 옮기기 위해 산으로 뛰어 올라가던지 아니면 산아래에서 접선해서 같이 병원에 가야하는게 최우선이 아닌지?

 

26. 경비의경의 진술 경비의경이 사저에서 올려다 보니 부엉이바위에 노통이 경호원 둘과 같이 있는 걸 봤다고 진술했다고OO뉴스에 뜸. 그 뒤로 그 기사가 사라짐.

 

27. 기자들의 부재 평소 사저주변에는 파파라치 처럼 많은 기자들이 새벽에도 항상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음. 특히 마을 뒷산은 사진 앵글이 잘 잡혀서 사진기자들이 상주했던 장소이기도 함. 그러나 권양숙 여사 소환일이었던 사건 당일 사저앞에는 단 한명의 기자도 없었음.

 

28. 유서내용의 부실성 현학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흔적은 보이나, 평소의 어투와는 전혀 다른 문체를 쓰고 있음. 특히 평소에 늘 언급하던 부인, 가족(자녀), 국민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고 문맥상 뜬금없이 화장하라는 말을 강조함

 

29. 경호원의 행동 경호원이 경호대상자 놔두고 담배가지러 갔다 올까요? 라고 물어봄. 경호원을 아는 정토원장에게 왔다고 말하지 말라고 함. 하지만 이 두가지 사유도 경호원이 vip를 놓쳤다고 가정하면 모두가 거짓말이 됨 (참고로 위 경호원이 사건 전날 교체된 경호원이라면 정토원장이 경호원을 알아본다는 것도 말이 맞지 않음)

 

 

30. 목격자의 부재 그러나 이런 희대의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경호원들과 경비의경, 유가족, 등산객,정토원,병원의사등의 목격담은 지극히 제한적으로 공개되거나 은폐되고 있음. 신변안전확보가 필수적임.

 

31. 부엉이바위에 관한 대화내용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 유래와 부엉이가 사느냐는 질문을 경호원에게 했다고 하는데어렸을적 봉화마을 뒷산에서 살다시피 한 노통이 그걸 전날 새로 온 경호원에게 질문함?실제로 현재 동영상 중에 노무현 대통령이 부엉이바위의 유래에 관한 설명을 하는 동영상도 있음.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14395&hisBbsId=best&pageIndex=1&sortKey=agreeCount&limitDate=-30&lastLimitDate=

 

32. 주차장 오보? 사건당일 오전 8 30분경 생방송 도중 노무현 전대통령의 시신이 주차장에 방치되어 있다고 방영됨.하지만 생방송 도중 주위에서 고함으로 방송을 방해하여 잘 전달되지 않고 묻힘.

 

33. 일정하지 않은 사망시각MBC 방송사는 사건 당일 방송시 양산부산대학병원 한관계자와 전화통화한 사실을 언급하며 사망시각을 0830분으로 1시간동안 방송했는데, 동시간대에 KBS 0930분으로 사망시각을 보도하여 양방송사간에 무려 1시간이나 차이가 났었음. 11 30분경 병원의 공식 발표때는 09 30분으로 사망시각이 MBC의 방송내용과 달리 1시간 늦은 시간으로 발표됨. 사망시각도 석연치 않음

 

34. 환자복의 미스테리 조선일보 "부산대병원 의료진이 전하는 노 전대통령의 마지막"이라는 기사에 따르면 "오전 8 13분쯤 노 전 대통령이 김해 세영병원 환자복을 입고 머리에 붕대를 감으채 도착했다"라는 기사가 있음. 위급한 상황에.. 그것도 30미터 절벽에서 떨어져 뼈가 다 으스러진 사람, 그것도 피떡이 되었을 그런 응급환자를.. 환자복으로 갈아입힌다는게 의료적으로 타당한것인가?

 

35. 전에 없는 북한의 맹공, 신종플루의 전국적 확산 왜 몇년에 한번 있을 국가적인 재앙이 연달아 일어나는지..

 

36. 봉하사저 도청설 (필독)

http://www.jpnews.kr/sub_read.html?uid=383§ion=sc1§ion2 (현재삭제됨)

 

37. 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았는가? (추가) 투신시각은 0640, 양산부산대병원 도착시간은 0830분 서거시각은 0930. 무려 2시간의 공백이 있었다. 세영병원으로 이동할 20분 거리내에는 종합병원이 몇개나 위치해 있다. 그리고 양산부산대병원까지 1시간여 지체. 통상 응급환자가 생기면 119에 연락하여 최소 5~10분내 도착하여 급하게 응급실로 실어나르고 특히 낙상사고의 경우 산악지형이기 때문에 구조헬기가 와서 이송한다. (더욱이 전직 대통령인데) 하지만 경호원은 119에 신고도 하지 않은채 도와줄 사람 없이 혼자서 승용차에 피투성이가 된 그를 싣고 무려 2시간을 보호장비도 없이 방치하였다. ?

 

38. 경호원 없이 혼자였다? 노대통령은 최초 경호원 1명과 함께 등산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1명도 동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절벽위에 노대통령 혼자 있었다는 이야긴데, 그것은 누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아무런 증인이 없는데. 같이 올라갔던 경호원 A외에 제3의 인물이 산에 미리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글구~!!!새로 기사뜬거 봤어???

 

의문점 : 처음 들을때는 부산대의대(노무현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그병원) 레지던트라고 했는데 다음뉴스에는 그냥 모 의대라고 나오네요

 

증거인멸 작업인거냐???.....ㅆㅂ....

의사가 본 노통 추락 이후의 의문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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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모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사입니다. 이번 노통 서거 사건에 관련되어 여러가지 의문사항이 있습니다.

아침 기상 시점부터 시작해서 추락할 때까지의 여러 의문점들도 다 풀린 것은 아니나 일단은 노통의 신체에 손상이 가해져서 의학적인 처치가 필요하게 된 이후의 상황들에 대해서만 글을 써보렵니다.

참고로 가장 최근에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중심으로 기술하겠습니다.(사실을 가지고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가지고 기술하는 것입니다. 다만 언론에 의하지 않은 개별네티즌의 글이나 댓글들에 보이는 내용은 참고하지 않았습니다.)

 

오전 6 40 ~ 오전 7

(부엉이 바위에서 추락이후 세영병원 이송 전)

 

노통이 부엉이바위 에서 추락한 이후 산위에 있던 경호원은 20분만에 산을 내려와 쓰러져 있는 노통을 찾은 후 환자를 들쳐업고 인근의 세영병원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양산 부산대병원장의 발표를 보면 두정부의 11cm 정도의 열상이 관찰되었으며 두개골의 골절과 기뇌증이 확인되었는데 두부의 외상이 직접적인 사망원인으로 판단 된다고 한다. 간략하게 머리쪽은 해부학적으로 바깥쪽에서 부터 시작해서 두피, 두개골, 경막, 지주막하 공간, 뇌의 순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럼 의학적 관점에서 '두정부의 11cm 정도의 열상' '두개골의 골절 및 기뇌증이 확인되었다'는 것을 살펴보자. 두정부는 머리의 정수리 부근을 의미한다. '열상'이란 피부가 ?어져서 생긴 상처를 의미하고 기뇌증이랑 두개골 안의 공간에 공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어의 의미와 발표문에서 나온 환자의 상태를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두부의 두정부 부위로 엄청난 외력이 작용하면서 두피를 파열시키고 두개골을 골절시킨다. 두개골 골절이 발생하면서 ?어진 피부를 통해 외부의 공기가 그 틈을 통해 두개골 안으로 들어간다.(기뇌증의 발생) 그런데 두개골 골절이 있다고 모두 기뇌증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기뇌증이 발생하려면 경막이 뚫려야 하고 경막이 뚫리면 지주막하 공간이 손상을 받는다.(두개골 골절이 생기더라도 경막이 뚫리지 않으면 경막외출혈이 되고 이 경우 기뇌증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면 지주막하출혈이 발생하게 되는데 외상에 의한 두개골 골절이 동반된 지주막하출혈은 엄청난 양의 출혈을 야기한다. 영화에서 보셨을거다. 등장인물들이 땅에 떨어지거나 서로 싸우다가 땅에 머리 부딪힌 경우 땅에 쓰러진 등장인물의 머리 뒤로 서서히 피가 흘러나와 동심원이 커지는 모양으로 땅을 적시는 모습을...

 

결론은... 추락한 부위의 혈흔을 찾을 수 없다는 건 말이 안된다!! 또한 그런 상황에 처한 환자를 들쳐업고 뛰었다? 머리에 피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무의식적으로 지혈부터 하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뭐 물론 지혈을 하려고 노력해도 지혈은 잘 안된다. 저정도 출혈이면.. 양손으로 눌러막아도 지혈은 안된다. 어쨌거나 그 상황에 진짜로 일단 데리고 내려가자는 생각에 들쳐업고 뛰었다면 그 경호원은 온몸에 피칠갑을 했을거다.

 

밝혀야 할 문제점1 노통이 추락한 지점을 찾아야 한다. 혈흔이 없을 수 없다.!! 혈흔이  없다면 그건 노통이 추락사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 된다.

밝혀야 할 문제점2 당시 경호원이 착용했던 의복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 피칠갑된 의복의 상태를 보면 경호원이 어떤 방식으로 노통을 옮겼는지 알 수 있다. 경호원의 의복은 어디 있나? 설마 빨아버린 건 아니겠지??

 

밝혀야 할 문제점3 의식 잃은 대통령을 들쳐업고 내려와 경호차량으로 세영병원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당시 경호차량은 어떤 차였고 탑승했던 사람은 전부 몇명이었나? 차량 내 좌석은 어떤 식으로 배정되었고 노통은 어떤 좌석에 어떤 자세로 태워졌나? -> 차량탑승자에 대한 개별조사가 필요하다. 또한 차량 내부에 대한 조사도 필요하다. 차량에서 분명히 혈흔과 함께 추락지점의 흙이나 나무조각, 풀 등이 나와야 한다.

 

오전 7 ~ 오전 7 35 (세영병원)

 

내 생각으론 노통은 양산부산대병원 도착 당시 이미 사망한 상태였거나 혹은 세영병원에서 사망하였을 것이다.

오전 7시경에 세영병원에 도착한 노통은 거기서 심폐소생술을 시행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없어 상급병원인 양산부산대병원으로 이송했다고 한다. 심폐소생술은 심장이 정지한 환자의 소생을 위해 시행되는 술식이다. 여기서 환자의 소생이란 사실 환자 심장의 소생이다.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였으나 호전될 기미가 없다는 말은 멈춰버린 심장이 아예 안 돌아왔거나, 심폐소생술로 인해 심장박동이 되살아 났다라도 금방 다시 멈춰버렸음을 의미한다. 이 상황은... 의사가 신이 아닌 이상 손을 더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상급병원으로의 이송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첫번째 세영병원에서 사망하고 나서 의전상 대형병원으로 옮겼을 가능성, 두번째 이송하다가 사망한다는 것을 100% 확신하면서도 의전상 대형병원으로 옮겼을 가능성이다. 어쨌거나 세영병원에서는 노통이 곧 사망할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의사입장에서.. 상태가 호전될 기미가 없어 타병원으로 이송하였는데 그 상태라고 하는 것이 거의 심폐소생술에 반응을 하지 않는 심장사에 준하는 상태였다면..그건 의사 자신이 환자의 사망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나 역시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세영병원에서의 가상기록1 응급실로 노통 내원 -> 즉시 환자 상태 확인 및 당직의사 콜 -> 바이탈싸인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 상태였다면 바이탈 유지하면서 즉시 뇌CT  X-ray 촬영 시행 -> CT상 심한 두부손상 관찰되어 상급병원 전원 필요하나 환자 상태 점차 나빠짐 -> 심장기능 정지하여 즉시 심폐소생술 실시 -> 지속적인 심폐소생술 시행에도 환자 상태 호전 없음 -> 이후 환자는 세영병원에서 사망하거나 혹은 사망가능성 경고하고 상급병원 전원. 이송도중 사망가능성이 아주 높으나 세병병원에서는 더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음.

 

세영병원에서의 가상기록2 응급실로 노통 내원 -> 즉시 환자 상태 확인 및 당직의사 콜 -> 바이탈싸인 좋지 않아 즉시 심폐소생술 실시 -> 심폐소생술 시행에도 불구하고 심장기능 정지 상태를 유지 혹은 잠깐씩 심장박동 돌아왔다가 얼마 안가 심장기능 정지 상태로 회귀 -> 이후 환자는 세병병원에서 사망하거나 혹은 사망가능성 경고하고 상급병원 전원.

 

내 생각엔 '가상기록1'이 더 신빙성 있어 보인다. 이유는 노통이 입은 환자복 및 세영병원에서 시행한 X-ray 기록 때문이다. 언론보도를 보면 양산부산대병원 내원시 노통은 세영병원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한다. 응급실로 이송되어 온 그 상황에 환자 상태가 좋지 않다면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다.

 

또한 3차 진술에서 의사는 노통에게 두부외상 외에 척추 및 오른발목 골절 등이 있었다고 한다. 두부외상과 골절 여부를 알았다는 것은 CT X-ray를 촬영할만큼의 생체징후는 나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세영병원 의사는 인터뷰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었고 호전기미가 보이지 않을만큼 상태가 위독했었므로 상황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언론보도로 재구성해 본 당시 세영병원에서의 상황 내원 당시 노통은 심각한 외상에도 불구하고 바이탈싸인은 유지되는 상태였으며, 두부외상을 제외하고 신체 다른 곳의 외상 여부를 알기 위해 노통의 의복을 잘라내고 수액라인을 확보하고 기타 필요한 처치 후 뇌CT  X-ray 촬영을 갔을 것이다.(세영병원의 CT가 몇채널짜리인지는 모르겠으나 통상 CT 찍는데 시간은 5분 정도면 되고 X-ray도 금방 찍는다.) 이후 환자 상태가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하면서 심장기능이 정지해 버렸다.

 

즉각적인 심폐소생술이 시행되었으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신경외과적인 처치를 위한 상급병원으로의 이송을 생각한다. 하지만 이송할 수 있을 정도로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다. 이송 도중 사망할 가능성이 거의 99%이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경호팀)들은 상급병원으로의 이송을 강력히 요구한다. 의사는 이송 도중의 사망가능성을 경고하고 이송을 지시한다.

 

밝혀야 할 문제점1

 

세영병원에서 시행한 의료적인 처치는 무엇인가? -> 의료기록 및 검사내역에 관해 전부 공개해야 한다. 그러면 세영병원 내원 당시의 환자 상태를 알 수 있다.

 

밝혀야 할 문제점2

 

노통이 당시 착용한 의복은 어디 있는가?-> 언론보도에 의하면 노통의 외투가 사고현장에서 발견되었다. 경호원이 추락한 노통의 외투를 벗기고 병원으로 이송을 했다고 진술했다는데... 외상환자의 의복을 함부로 탈의하고 심지어 업고 가는 건 다른 네티즌들이 많이 지적을 했으니 넘어가고.. 난 세영병원으로 노통이 이송되어 올 당시 어떤 의복을 착용한 상태였는지가 궁금하다.

 

노통 추락사에 대한 의혹 중에 '피 묻은 노통의 외투가 발견된 지점에 혈흔이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고 이후 누군가가 외투를 가져다 놓은 것이다'라는 것이 있다. 이 의혹은 세영병원 내원 당시 노통의 의복 상태를 알면 바로 해결될 의혹이다. 또한 의복의 피묻은 상태로 노통의 외상여부를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더.. 병원에 내원한 외상환자의 의복은 응급실에서 벗겨내는 것이 아니다. 가위로 의복을 전부 잘라서 제거한다. 외상환자는 함부로 몸을 움직여서는 안되므로...

 

밝혀야 할 문제점3

 

이송시에 왜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헬기를 동원하여 이동하지 않았는가? 또한 양산부산대병원 으로의 이송을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전직대통령급의 VIP에 저 정도의 응급상황이면 당연히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으로 가장 빠른 이송수단을 이용해서 가야한다. 신경외과가 있는 가장 가까운 대형병원은 마산삼성병원이었다.

 

(세영병원-마산삼성병원 16km, 세영병원-양산부산대병원 52km) 아무리 환자가 사망에 준한 상황이라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는 경우 신경외과가 있는 대형병원으로 최대한 빨리 가는 것이 필요하다. 양산부산대병원이 마산삼성병원보다 더 좋은 병원이라서 그 쪽으로 갔을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 중요한 것은 빨리 신경외과적인 처치를 시행하는 것이므로 양산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은 잘못된 결정이었다.

 

또한 양산부산대병원 으로의 이송을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경호팀인가. 통상 상급병원으로 환자를 전원할 때 어느 병원으로 이송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의사이다. 왜냐하면 이송할 병원에서 그 환자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지를 먼저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송할 환자가 생기면 응급실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상급병원에 먼저 전화해서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고 보내도 되는지 여부를 물어본다.

 

그래서 보내도 된다는 허락을 맡으면 그 때 환자를 보낸다. 당시 노통을 담당했던 의사는 누가 이송을 결정했는지, 자신이 양산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을 지시했으면 왜 그렇게 지시한 것인지에 대해 공개해야 한다. 또한 전직대통령의 응급상황에 왠 자동차??? 헬기 불렀어야 한다.(의료장비가 탑재된 구급차량이 더 낫지 않으냐는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당시 상황에서 필요한 장비는 휴대용 산소통, 심실제세동기, 환자상태 감시할 감시모니터, 수액 및 기타 의약품, 그리고 동승할 의료진이 전부다. 헬기에 다 실을 수 있다.)

 

밝혀야 할 문제점4

 

두부의 상처는 어떤 상태였는가? 그리고 신체 내 다른 부위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두부손상에 있어서 두부에 작용한 외력은 그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흔적을 남긴다. 예를 들어 기다란 작대기에 맞은 상처와 망치로 맞은 상처는 모양이 다르다. 추락시에 바위에 부딪힌 상처와 땅바닥에 부딪힌 상처는 모양이 다르다.

 

노통은 부엉이바위에서 추락사하였는데 부엉이바위는 경사가 70도라고 한다. 경사 70도의 바위라면 멀리서 도움닫기를 하고 뛰지 않는 이상 떨어지다가 바위에 몸이 부딪힌다. 당연히 낙하도중 바위에 부딪히고 나서 튕기고 다시 다른 바위에 부딪히고 구르고를 반복하다가 산의 흙바닥에 떨어진다. 바위에 부딪히면서 두부손상이 발생하였으면 두부열상의 가장자리가 단단한 바위에 부딪히면서 으깨질 것이고 상처의 표면에 주로 흙이 묻어있거나 할 것이다.

 

바닥으로 직접 추락한 경우는 두부열상 깊숙히 흙이나 풀 등이 들어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말하자면 직접사인으로 지목되는 두부외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필요하다. 또한 신체내 다른 외상의 정도를 알아야 한다. 당연히 온몸은 긁힌 상처로 가득해야 하고 팔다리의 일부분은 거의 꺽이거나 적어도 깊은 열상 정도는 있어야 한다.

 

밝혀야 할 문제점5응급실 CCTV를 공개하라.

 

-> 응급실을 운영하는 병원은 응급실에서 혹시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 이를테면 응급실에서의 난동, 환자 사망시의 책임여부공방 등에 대한 증거수집을 위해 CCTV를 가동하게 된다. 노통 내원 당시의 CCTV를 공개해서 당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밝혀야 할 문제점6

 

권양숙 여사는 노통의 상태를 언제 처음 보고받았나? 왜 세영병원으로 직접 오지 않았나?-> 권양숙 여사는 9 30경이 되어서야 양산부산대병원에 도착했다는데... 도대체 오전 6 40분 사고 이후 세영병원으로 노통이 이송될 때까지 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은 것인가? 혹시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한 것인가?

 

밝혀야 할 문제점7

 

세영병원 내원 당시 현재 세영병원 내과과장말고 다른 당직의사가 있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먼저 노통의 상태를 살펴본 의사로서 그 사람의 진술이 꼭 필요하다.

 

오전 7 35 ~ 오전 8 13 (이송중)

 

차량을 통한 양상부산대병원으로의 이송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

밝혀야 할 문제점1이송 중의 노통의 상태는 어떠했는가? -> 당시 동승한 의료진은 이송시의 의료기록을 공개해야 한다.

 

오전 8 13 ~ 오전 9 30 (양산부산대병원)

 

언론보도에 의하면 노통이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로 내원하였을 때 다들 DOA(death on arrival)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말 그대로 사망한 채로 실려왔다는 뜻이다. 이런 경우 응급실 의사들은 어쨌거나 소생술을 시행한다.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위해... 하지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여도 반응이 없어서 9 30분 경 심폐소생술을 중단했다. 병원에서는 환자의 사망시각을 의사가 사망선고를 한 시간으로 잡는다.

 

그래서 외부에서 실려온 환자의 상태가 DOA라 하더라도 심폐소생술을 끝내는 그 시점을 사망시간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왜냐하면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는 것 자체가 환자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에 보도된 사망시간은 그래서 오전 9 30분이다. 오전 9 30분에 양산부산대병원의 어떤 의사가.. 노통에게 사망선고를 내렸을 것이다....

 

결론..

 

1. 증거를 토대로 결론을 내리십시오. 사건의 중대성에 비해 도무지 증거가 없습니다!!!! 수사당국은 증거부터 수집하십시오. 길가에 떨어진 머리카락 하나까지 수집해야 합니다!

 

2. 노통의 시신은 부검해야 합니다. 전신의 상태에 관한 정확하고도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합니다.

 

3. 사고현장감식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현장에 대한 증거 없이 자살로 결론내리면 안됩니다. 모든 증거를 총괄하여 자살이라는 결론이 도출되기 전까지 노통의 죽음은 의문사입니다.

 

4. 사건관련자들은 모두 다 재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이 번복되는 상황입니다.

 

5. 상기 2,3,4에서 나온 자료들을 토대로 사건 발생 당시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해야 합니다. 몇시에 어디서 어떤 자세로 어떤 바위들에 충격 후 추락했는지까지 모든 상황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의혹을 제기하는 주체들이 납득할 수 있는 누군가가 수사 전체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수사를 맡은 경남지방경찰청은 유일한 목격자인 경호원의 진술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채 수사를 종결하려 했습니다.

 

그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진실을 알려주십시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 편안하시길 빕니다.

 

p.s.) 어제 저녁 뉴스를 보니 인근의 회사원이 등산 도중 경호원을 만났었다고 하더군요. 그 회사원에게 노통을 경호한 사람의 사진을 보여 주고 그 때 만난 경호원이 그 사진 속의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게 하십시오. 만약에 두 인물이 다르다면 그 날 산속에는 노통과 경호원 두 사람말고 또 다른 제3의 인물이 있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이 글은 마음대로 퍼가셔도 됩니다. 일개 소시민 의사가 그냥 답답해서 쓴 글입니다. 저작권 어쩌고 그런거 모릅니다. 퍼가시려거든 그냥 퍼가세요.

 

덧글1>

 

언론에서 노통 사고 당시의 혈흔을 공개했네요. 가소롭습니다. 위에서 설명하였듯이 외상성지주막하출혈을 야기할 정도의 두개골 골절 및 11cm 두피열상이면 적어도 수도꼭지를 쫄쫄쫄 들어놓은 듯한 출혈이 발생합니다. 저 사진으로 알 수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저 혈흔 주위로 대량의 혈흔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2. 두피손상은 떨어지는 도중 언덕 중턱 바위에 부딪히면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낙하예상경로 주위로 흩뿌려진 여러 개의 혈흔들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3. 혈흔의 모양이 원형이고 주위로 튄 듯한 양상이 두드러지지 않은 것을 보아 혈액이 튄 방향은 바위면에서 봤을 때 수직90도 방향이며 바위면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높이에서 혈액이 떨어졌을 것이다.

 

4. 혈액을 채취해서 DNA 감식을 의뢰하여 혈액의 주인이 노통인지를 알 수 있다.5. 서거 다음날 봉하마을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는데 어떻게 저 혈흔은 그대로 있지?

 

덧글2>

 

혈흔 관련해서 추가사항1. 제가 위에서 말한 바위면에서 그리 떨어지지 않은 높이라 함은 말 그대로 몇십센티미터 높이입니다. 혈액은 구성성분 중 40% 정도가 적혈구 등의 고체성분입니다. 물보다 점성이 좀 있는 편이죠. 그래서 바닥에 떨어져서 튀는 피가 다시 주위로 튈 때는 좁은 반경 내에 대부분 있게 됩니다.

 

응급실에서 외상환자들 받아볼 때 경험으로 볼 때 혈액 한 방울이 30센티미터 위에서만 떨어져도 좁은 반경을 가진 피 튄 자국이 나타나게 됩니다. 공개된 혈흔은 꼭 바위 바로 위에서 살며시 떨어뜨린 것 같더군요. 마치 그 혈액을 떨어뜨린 사람이 자기 몸에 그 피가 튈까봐 걱정하면서 떨어뜨린 것처럼....

 

덧글3> 세영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것은 맞는가?

 

1. 상기 질문에 대해 저는 일단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을 걸로 생각합니다. 양산부산대병원 응급실로 노통이 내원할 때 기도삽관(intubation, 자발호흡이 없는 사람에서 저환기 및 저산소증의 발생을 예방하기 위해 기도에 관을 집어넣고 강제로 호흡을 시키는 것)을 하지 않았다는 글을 저도 다른 네티즌이 쓴 글을 읽고 알긴 했는데 언론사 보도로 확인한 내용이 아니라 기술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응급실에서 이루어지는 심폐소생술의 경우 기도삽관 상태에서 시행하는 것이 정석이죠.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죠. 예를 들어 의사가 기도삽관에 실패하거나, 경추손상 가능성으로 통상적인 기도삽관이 불가능한데 코를 통한 기도삽관을 할만한 장비가 없거나 등... 그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에 따라 심폐소생술 시행 여부는 논란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관련 의무기록 및 CCTV 공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덧글3-1>

 

기도삽관에 대해 부가 설명1. 통상 환자 이송시 특히나 중환을 이송할 때는 기도삽관을 반드시 하고 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왜냐하면 이송중에 어떤 이유에서건 호흡곤란이 발생하면 구급차 안에서는 대처 자체를 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어떤 분께서 지적하셨듯이 정말로 기도삽관 없이 자가호흡이 없는 심한 두부외상 환자를 52km 거리의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은... 제 짧은 식견으로 비추어 봐서는 거의 환자의 소생가능성을 0%로 잡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덧글4>

 

부검에 관해..1. 부검에 대한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부검은 사인이 불분명한 사체에 관하여 그 사인을 밝히기 위한 작업입니다. 사실 사람이 사망한 경우 우리나라는 주로 의사가 망자를 1차적으로 검안하고 그 사람이 평상시 가지고 있었던 질병이나 사망에 이르게 된 외인(external cause)을 판단기준으로 사인을 작성하지요.

 

하지만 의사가 봤을 때 사인이 정말로 불분명하거나, 사인이 명확한 듯 해도 망자의 유족이 그 사인에 반발하여 경찰에 변사신고를 하면 부검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노통의 경우 양산부산대병원에서 두부손상을 사인으로 판정하였으므로 일단은 부검의 케이스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유족이 원할 경우는 가능하지요. 부검은 신체 내외를 총괄하는 아주 자세한 신체검사라고 보시면 됩니다.

 

신체 내부의 모든 공간(머리속, , 가슴, 배 등)을 열어서 그 내부 장기를 적출하여 장기의 상태 관찰 및 약물반응검사 등을 진행하는 과정입니다. 유족의 입장에서는 망자를 두번 욕되게 하는 것이라 여겨져서 꺼려할 수 있는 작업이죠. 하지만 노통의 경우 부검이 필요하다면 단순한 신체관찰 및 방사선학적인 촬영 등 최소침습적인 방법으로 필요한 검사만 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일뿐이고 결정은 유족들이 해야 하는 겁니다.

 

덧글5>

 

노통 추락후 28분간 방치되었다는 기사.(기사의 행간을 주목하세요.)1.

6 14~17분 사이에 노통이 부엉이바위에서 추락했고 이후 28분여간 혼자 남겨져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네요. 노통의 두부손상 상태로 보았을 때 노통의 사인은 두부손상이 아니라 과다출혈일 수도 있겠습니다. 의식소실상태에서 지혈시도조차 없이 30여분을 그 상태로 있었다면 출혈양이 상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물론 인체의 혈액응고작용으로 피가 저절로 멎어서 경호원이 발견할 때까지 노통은 살아계셨겠지요.

 

일단은 출혈은 많았으나 목숨은 붙어 있었다는 가정하에... 지금 상태에서는 추락한 현장이 더 이상 손상되기 전에 그 장소를 빨리 찾아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의식소실상태에서 과다출혈하면서 한 자리에 머물렀으니 분명히 과다출혈의 흔적을 간직한 혈흔의 흔적이 부엉이바위 아래에 있을 겁니다. 상황이 저런데 현장조사에서 혈흔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노통의 사인이 추락사가 아니거나 경찰이 초동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 이건 노무현 대통령 피살의 원인 ■■■

 

분명히 노무현 전대통령이 입을열면 이명박 탄핵사태가 일어날수 있었다는것을 유추해볼수 있다

 

MB 아킬레스건 자를 ‘X파일 있다?

 

예견됐던 정치 사정, 퇴임 전 비장의 무기 준비됐다봉하문서  X파일살아있는 권력 뒤흔들 막강파워정치권 안팎이 조용히 숨죽인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담담한 표정으로 검찰 소환조사를 마쳤다. 노 전 대통령은 각종 의혹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러나 조용히 돌아선 그의 뒷모습에서 정가는 그가 쥐고 있는 반격카드를 점치고 있다.

 

이미 참여정부 시절 측근 비리로 뒤흔들리는 일들을 경험하면서 정권교체 후 살아남을 길을 마련해뒀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는 이들이 상당하다.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이었을 시절,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이들의 급소를 건드릴 이른바 ‘X파일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또한 가족과 측근에 이어 본인도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초유의 사태에 처하면서 검찰의 공세에 대한 방어책은 물론, 소환 이후 역풍까지 고려한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서 있을 것으로 보고 사태의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의 정점에서 물러난 지 1년여 만에 비리 의혹으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았다.

 

이에 대해 정치권 안팎에서는 정권 내내 야당의 의혹 제기에 시달린 노 전 대통령이 이러한 결과를 예견하지 못했겠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이었을 때도 측근 비리로 흔들렸던 노 전 대통령이 새 정권이 들어선 후 정치 사정을 고려, 대책을 세워뒀을 것이라는 이야기다.노무현 1년여 퇴임준비에새 정권 급소 포함됐다?

   

 

정권교체 후 전 정권에 대한 사정은 되풀이돼 왔다. 더군다나 퇴임 말기 정권교체의 조짐이 여러 차례 나타나면서 퇴임 1년여 전부터 안전한 연착륙을 위한 준비를 해 온 노 전 대통령도 새 정권의 사정 편안한 휴식의 가장 큰 방해물로 다가왔을 것이라 것.퇴임 준비에 이에 대한 대책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고 검찰과 국정원 등 최고의 정보망들을 통해 입수한 정보들을 토대로 ‘X파일이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게 ‘X파일설의 주된 골자다.

 

그렇다면 노 전 대통령이 쥐고 있는 숨은 는 무엇일까. 노 전 대통령의 반격 카드는 현 정권의 급소를 찌를 수 있는 것이면서 검증된 증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말로 한 약속을 어떻게 믿냐는 것이다.정가 한 관계자는 제대로 된 대화를 위해서는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있어야 한다. 같이 죽자고 했을 때 상대방에게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는 무언가가 마련돼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살아있는 권력으로 검찰과 경찰, 국정원 등 주요 수사기관에 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을 때 퇴임 준비를 마무리 했을 것이라며 임기 내내 공세에 시달리면서 힘을 잃었을 때 권력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학습효과를 갖게 되었을 것으로 봤다.정치권 안팎의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몇 가지 이야기가 수면 위로 조용히 떠오르고 있다.

 

그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이 ‘BBK 사건이다. BBK 주가조작 사건은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철저하게 해부됐다. BBK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이 회사를 통해 수백억원을 횡령한 김경준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이며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했고 이 대통령은 자신도 김 전 대표에게 사기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사건으로 대세론을 이루던 이 대통령에게 위기가 찾아왔고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의 밀약설이 제기됐다.이 대통령 캠프에서 일하던 추부길 전 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과 관련된 비자금에 대한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 노 전 대통령측과 만남을 청했으며 노 전 대통령측 인사로 나선 노건평씨에게 BBK 사건의 공정한 수사를 부탁했다는 것.

 

 

청와대가 BBK 수사에 관여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이에 건평씨는 정권교체 후 패밀리를 건드리지 말아줄 것을 조건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건평씨는 또 이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과도 종종 만나 형님들의 약속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았다.말보다는 증거가장 아픈 곳 찔러라 결국 BBK사건은 이 대통령에게 혐의가 없는 것으로 결론 났다. 귀국했던 김 전 대표와 그 가족의 범행으로 마무리 된 것.

 

김 전 대표는 주가조작 혐의 등으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8년과 벌금 100억원을 선고받았다.이에 대해 정가 일부 관계자들은 “BBK를 다시 끄집어내면 지난 대선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면서 측근들의 비리로 포괄적 수뢰죄 혐의를 받은 노 전 대통령처럼 이 대통령도 정권운영에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또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전 대표가 양심선언을 준비하고 있으며, BBK 사건과 관련한 또 다른 폭로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관련된 비리 의혹에서도 MB로 향할 것 같은 의혹의 꼬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대선자금이다.천신일 의혹 따라가면‘MB 대선자금 보일까천 회장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위한 세무조사 무마 로비설에 이어 박 회장으로부터 현금 10억원 수수설, 2007년 대선 당시 30억원 당비 대납설,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 직전 총 220억원 현금 확보설 등 각종 의혹에 휘말렸다.

 

이 중 현금 확보설은 천 회장이 한나라당 경선 직전인 2007 4월 자신과 가족 명의의 주식을 매각해 49억원을, 대선 직전인 같은 해 11 171억원을 현금화했으며 이 돈이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낸 특별당비 30억원의 출처라는 내용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천 회장이 2007년 대선 직전 주식매매로 200억원이 넘는 현금을 만들었다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썼는지 궁금하다는 말로 의혹을 제기했다.

 

천 회장은 특별당비 대납설에 대해 이 대통령의 건물에 근저당권을 설정하는 대신 내 예금을 담보로 30억원을 빌려 낼 수 있도록 편의를 봐줬을 뿐이라고 해명했다.검찰은 천 회장에 대해 출금까지 했는데 수사 안 하겠냐며 수사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천 회장에 대한 수사는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된 부분만 조사하고 있다면서 이 대통령의 대선자금 수사에 대해서는 수사대상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은 특검 도입을 추진, “의혹의 하나까지 뿌리 뽑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노 전 대통령의 소환을 기점으로 역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봉하문서부터 시작해 측근들에 대한 먼지털기식 수사가 전 정권에 대한 현 정권의 무리한 사정이라는 비판과 함께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동정론, 옹호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박연차 태광실업 회장과의 대질신문에서 혐의를 시인했던 이들이 공판에서 이러한 내용을 반박하기 시작한 것도 변수다.

 

이들은 일제히 박 회장의 진술에 의존한 검찰 수사를 비판하며 증거를 요구했다.박 회장에게 불법선거자금 10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송은복 전 경남 김해시장은 “2006 4월에 5억 원을 선거자금으로 빌린 뒤 2~3일 만에 바로 돌려줬고 2008년에는 아예 돈을 받지도 않았다면서 돈을 받았다면 당시 통화기록 등이 있어야 하는데 검찰은 송신 기록조차 확보하지 못했다. 박 회장의 단순한 진술만으로 수사를 했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에게서 불법선거자금 7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정욱 전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도 “2억원을 받은 혐의는 인정하지만 노건평씨를 통해 박 회장의 돈 5억원을 받은 사실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검찰은 증거가 있어서 기소한 것이라며 담담한 표정을 하고 있지만 내심 당황하는 기류도 읽힌다. 대부분의 수사가 박 회장의 진술에 근거로 하고 있으며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한 혐의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벌써부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불구속 기소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 공략을 위해 준비한 것은 정황증거로 박 회장의 진술 외에는 족쇄로 사용될 것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 소환으로 급변한 정국다시 생각나는 탄핵사태 후폭풍 이에 따라 노 전 대통령이 쥐고 있는 반격 카드가 쉽사리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살아있는 정권에 대한 수사에서 전력을 다하지 못하는 검찰의 특성상 검찰이 이번 수사에서 노 전 대통령의 관련성을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X파일은 정권교체용 칼날로 복심에 품게 될 확률이 크다는 것.정치권 한 관계자는 권력이 힘을 잃을 때가 되어서야 사정은 빛을 발한다면서 제대로 된 반격을 원한다면 수중에 쥐고 있는 현 정권의 치부를 이번 기회에 고스란히 노출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토원 홈피http://www.bonghwasan.org/

 

부록

광해와 노무현의 비교. (동영상 5분입니다.)

꼭 보시고 마음으로 느끼시길 부탁 드립니다^^

http://youtu.be/Tzy0r6DgKt0



노무현 대통령:감동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M9Hy981w6qE


故 노무현 대통령의 최고 명연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lkUjticObV8


유시민 그리고 노무현 두 사람 이야기이명박 정권 의문사


1.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의문의 자살

2. 2009년 노무현 대통령 사고를 처음 접한 레지던트 의사 의문의 자살

3. 2009년 이명박 대선시 비리를 폭로한다던 한상렬 게이트의 비서 행방불명.

4. 2009년 사대강 사업에 농민 자살

5. 2010년 국민은행 100조 증발사건 후 국민은행 전산팀장 의문의 자살

6. 2011년 씨모텍 대표 김태성 (명바기 조카사위) 자살

7. 2012년 명바기 수족이었던 김병일 (정수장학회 비리) 홍콩에서 자살

8. 2013년 다이아몬드 광산개발 CNK 전 부회장 의문의 자살

9. 2013년 12월 5년간 4000억대 비자금 조성 의혹 국민은행 도쿄지점 현지직원 자살

10. 2014년 1월 광우병 위험성 알렸던 박상표 수의사 의문의 자살

11. 2014년 1월 명바기 시절 숭례문 복원 검증하던 박원규교수가 가족과의 저녁식사 약속 앞두고 노트북에 유언 쓰고 의문의 자살

12. 2014년 4월 명바기 시절 지난 정권의 무수한 비밀들을 꿰어찬 홍정기 감사원 사무총장 의문의 투신자살

13. 2014년 4월 명바기 비리 캐던 전현희 의원 남편 김헌범 판사 대형트럭에 의한 사고사




박근혜 정권 의문사

1. 2012년 박그네 측근 인사였던 이모씨로 추정되는 일명 춘차장 교통사고로 의문사. 
직전까지 좋지 않았던 박그네여론이 오른팔 잃은 박그네 이러면서 동정여론 급부상

2.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304명 사망 (일부는 기획에 의한 살해라고 주장중)

3. 2014년 4월 18일 단원고 강모 교감 야산에서 의문의 자살

4. 2014년 5월 유병언 의문사 
(유병언 시신을 세월호 사건전에 발견한 농민이 있었으나 모처에서 협박받고 입 닫음)

5. 2014년 12월 정윤회 문건 폭로 누명쓰고 최경락 경위 번개탄 자살 
(친형이 자살을 당했다고 주장중)

6.2015년 4월 9일 성완종 자살 
(이중에서 비교적 가장 자살정황에 가까움)

7.2015년 7월 국정원 해킹사건 직원 임모 과장 마티즈 타고 번개탄 자살 
(산으로 가던 차가 모양이 다름. 119 도착하기전에 이미 국정원 직원이 현장이 있었음)



이밖에 박근혜 관련 의문사 

1. 1994년 2월 최태민 뒤 쫓던 탁명환 이단 사이비종교 연구가 살해당함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미제 사건)

2. 1995년 방영된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박근혜와 최태민 목사'가 등장한 후 촬영감독이 의문사. 
새벽 촬영이 진행 중이던 1995년 9월 28일, 30대 음주운전자가 차를 몰고 현장으로 질주해 
촬영감독이 숨지고 제작진 8명이 크게 다침. 
사후 최종수 감독 하차. 
참고로 이 사람들이 찍은 장면이 
전두환이가 박근혜한테 6억원 현금(현 시세로 약 330억 가량)을 주는 장면이었음

3. 2011년 9월 6일 박근혜 5촌 살인사건 / 박용수 박용철 의문사

4. 이를 죽인 사람으로 추정되는 사람도 행방불명 (그알), 
그와 관련된 사람은 사발면 먹다가 천식으로 의문사 (평소에 천식이 없던 건강했던 사람임)

5. 2007년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가 대선 다음날 의문사. 
조순제는 박그네와 최태민의 관계를 이명박과 친이계에게 폭로한 인물

그외 : 육영재단 사건후 육영재단 직원들 몇몇 의문의 자살

이 분석이 합당합니다. 세월호를 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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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님과의 허점 몇 가지 여러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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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세월X 2시간 20분 시청 관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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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잠수함의 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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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님을 분석해본 예전자료.. 자로님은 걱정원으로 추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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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님과 정직이의 이메일 답변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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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참사에는 우연이란 없다 -조지오웰-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조지오웰-


자로, 세월호는 외부충격으로 침몰, ‘세월호 다큐 영상 JTBC에 넘겨’자로 세월호 다큐 영상 25일 공개 후 파장은 얼마나 되려나?박귀성 기자l승인2016.12.25l수정2016.12.25 05:06

 

자로 세월호 다큐영상이 JTBC로 넘겨졌다. 자로는 세월호 다큐 영상을 25일 공개하겠다고 했다. 자로는 세월호 다큐영상을 왜 JTBC에 넘겼을까? 자로 스스로 세월호 다큐영상 공개는 어렵다는 결론이었을까?

자로 세월호 다큐는 지금까지 공개되거나 발표된 어떤 자료보다도 더 파괴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JTBC뉴스룸은 24일 방송을 통해 자로 세월호 다큐 동영상이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에게 넘겨졌다고 도보했다.

▲ 자로 세월호 다큐 동영상 공개가 25일로 예정되어 네티즌들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자료는 관련 동영상을 JTBC에게 건네 준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룸은 그러면서 세월호 침몰을 분석한 ‘세월호 다큐’ 동영상의 제작자 자로와의 인터뷰를 전격 공개했다. 수개월 동안 SNS와 인터넷에서 사라졌던 자로는 최근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함께 세월호 침몰 원인을 다룬 세월호 다큐 영상을 공개하겠다고 지난 20일 선언했다. 뉴스룸은 “한 네티즌이 성탄절인 내일(25일), 침몰 원인을 분석한 동영상을 공개하겠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면서 “JTBC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이 동영상을 만든 이 네티즌을 만났다”고 전하면서 자로와의 인터뷰 내용을 공개했다.

뉴스룸에 의하면 자로는 성탄절에 공개하겠다던 세월호 침몰 원인을 분석한 동영상을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에 넘겼다. 왜 자로가 직접 공개하지 않았을까? 분석해보면 뉴스룸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침몰 참사부터 최근 최순실 PC사건 등을 보도하면서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서 공정보도를 견지해왔다. 그 결과 뉴스룸은 지상파 방송의 어느 ‘뉴스 프로그램’보다도 훨씬 높은 시청율을 기록하면서 압도적인 파괴력을 보유하게 됐다.

또한 자로가 세월호 다큐 영상을 JTBC에서 공개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편집과 방송 과정에서 ‘사실성과 보안에 대한 보장’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즉, 자로 세월호 다큐 영상이 제작자인 자로의 의도를 마음대로 편집하거나 사전에 정보를 흘려 자로 세월호 다큐 영상 제작의 본 취지를 흐릴 염려가 없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자로는 지난 2012년 12월 대선 이전부터 국정원이 대선 개입한 정황을 잡고 국정원이 이용한 트위터 계정을 일일이 찾아내 2013년에 공개함으로써 일약 ‘네티즌 수사대’라는 별명을 얻으며 유명해졌다.

자로는 세월호 다큐 동영상 공개를 앞두고 JTBC 스포트라이트 취재진과 만나 “세월호가 외부 충격 때문에 침몰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초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세월호가 복원력 부족과 급격한 변침 등으로 침몰한 것이라는 주장을 완전히 뒤엎는 것으로, 향후 파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자로가 과거 공개한 국정원 자료 등을 볼 때 자로의 정보 수집능력과 정보 분석능력은 일반적인 상상을 훨씬 넘어선다. 네티즌들이 이번 자로 세월호 다큐 영상에 대대적으로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로가 세월호 다큐 제작 과정에 대해 스포트라이트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자로는 세월호 침몰 이유에 대해 전문가와 함께 복원력을 다시 계산했고, 복원성 부족만으론 참사 원인을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진도 VTS의 레이더 영상을 분석한 결과, 외부 충격이 침몰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자로는 스포트라이트 제작진에게 전체 영상을 미리 넘겼다고 밝혔다. 이런 자로의 세월호 다큐 동영상은 내일 25일 밤 9시40분부터 방송되는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공개된다.

자로의 세월호 침몰 관련 다큐에 대해 이규연 JTBC 탐사기획국장은 “단순 음모 제기가 아니라 세월호 침몰 원인을 둘러싼 과학적 논쟁을 촉발시킬 것”이라고 설명해, 사실상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해 그간 정론으로 삼아온 정부의 발표를 완전히 부정할 것을 예고했다.

자로는 지난 22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25일 그간 제작해온 세월호 다큐를 공개하겠다”면서 “자료는 2중, 3중으로 백업을 해둔 상태이고 믿을 수 있는 언론사에 이미 자료를 넘긴 상태”라면서 “우리 사회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는 편견을 깨보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한편 자로가 지난 18일에 ‘세월호 다큐 티저 영상’을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를 통해 공개했고, 일주일이 지난 25일 오전엔 이미 2백만 조회수에 육박하고 있다. 자로가 인터뷰한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는 같은 날 오후 9시40분에 방송되지만, 자로가 유뷰브에 세월호 다큐 동영상을 공개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인협 = 박귀성 기자]


박귀성 기자  skanskdl01@hanmail.net
<저작권자 © 한국인터넷언론인협동조합,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죽 쒀서 개 줬다”는 탄식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등록 :2016-12-21 10:56수정 :2016-12-2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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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매번 이렇게 끝났나

1987년 6월항쟁 쓰라린 귀결
대학생·넥타이부대·노동자 등
야당 지도부에 주도권 넘겨버려

광장 목소리 ‘헌법 개정’서 배제
양김은 ‘전두환 각본’대로 분열
결과적으로 군부독재 합법적 연장

2016년 박근혜 탄핵뒤 ‘반면교사’
“광장의 시민이 계속 주도권 갖고
민주사회 구현해야 진정한 승리”
“직선제를 해도 마, 이기지 않겠소?”

1987년 6월24일 청와대. 대통령 전두환이 민정당 대표 노태우를 불러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직선제로서 이긴다고요?” 김대중을 사면·복권하면 김대중·김영삼이 다 대통령 후보로 나와 이길 방법이 생길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다만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노태우가 대통령과 상의 없이 독자적으로 선언하고 나중에 대통령이 추인하는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서중석의 <6월항쟁>(2011) 중에서)

이틀 뒤 민주헌법쟁취 국민평화대행진(6·26 대행진)이 열렸다. 전국 33개 도시에서 당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인 동시다발 시위가 열렸다. 50만명이 참가한 6·10 국민대회보다 더 많은 130만명이 거리로 쏟아졌다. 특히 ‘넥타이 부대’로 불리는 중산층과 화이트칼라 노동자가 6·10대회에 이어 대거 참여했다. 전두환·노태우는 굴복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6월29일 노태우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복권 등 시국수습 방안을 발표했다. 노태우는 ‘각본대로’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두환은 7월1일 노태우의 6·29 선언을 대폭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각본대로’였다.

12월16일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은 졌다. 6월항쟁으로 어렵게 얻은 선거에서, 그것도 오랜 독재를 물리치고 16년 만에 처음 치른 국민의 직접선거에서 말이다. “죽 쒀서 개 줬다”는 국민의 탄식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역사가 전환기를 맞을 때마다 우리 국민은 광장으로 뛰쳐나와 권력에 맞섰다. 그러나 그 끝은 ‘패배의 기억’으로 남기 일쑤였다. 1960년 4·19 민주혁명부터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까지 만족스러운 결실을 맺지 못했다. 거대한 파도는 이내 가라앉았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평범한 일상이 반복됐다.

4·19와 5·18은 총칼을 앞세운 군부의 쿠데타로 무릎을 꿇고 말았지만 87년 6월항쟁은 방심한 민주세력이 기성 정치권에 기만당한 사례다. 특히 헌법 개정 과정에서 국민은 철저히 배제됐고, 야권이 분열하면서 군부독재의 합법적 연장으로 귀결됐다. 당시 유력 대선 후보군이었던 노태우와 김영삼, 김대중은 자신들의 대리인들로 8명(8인 정치회담)의 ‘헌법개정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쫓기듯이 개헌을 추진했다. 헌법 개정 과정에서 국민 참여나 토의는 없었다. 8인 정치회담은 7월31일에 시작해 한 달 만인 8월31일 끝났다. 대통령 임기와 자격, 국회의 권한 강화 등 정치 권력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중심 의제였다. 대통령 국민소환제 등 국민이 권력을 직접 견제하는 제도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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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담에 통일민주당 대표로 참여했던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은 “대통령 임기가 최대 관심사였다. 여당은 6년 단임을, 야당은 5년 단임을 요구했다. 디제이와 와이에스가 (단일화 문제로) 싸우고 있으니까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형식으로 5년씩 하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으로 확정된 개헌안이 국민투표를 거쳐 10월29일 공포됐다. 전광석 연세대 교수(헌법학)는 ‘헌법과 한국 민주주의: 1987년 헌정체제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87년 헌법 개정작업의 특징을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 헌법 개정작업은 전적으로 정치권에 맡겼다. 즉 헌법이 일종의 엘리트 협상의 산물로서 탄생했다. 실제 국회는 예정됐던 지역 공청회를 여야 간에 공청회 장소 및 연사 선정 등의 문제에 이견을 보이며 한 번도 시행하지 못했다. 둘째, 헌법 개정에 전적으로 차기 집권을 위한 전략적 사고가 지배했다.”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정치학)는 “프랑스 혁명의 경우 인권선언을 만들어냈고 2년 뒤 헌법에 이를 반영했다. 프랑스 혁명의 정신이 헌법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87년 6월항쟁은 운동으로만 끝나버리고 선언이나 헌법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6월항쟁 때 민주 세력은 왜 개헌 논의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 상임집행위원장을 맡았던 오충일 목사는 이렇게 회고한다.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뒤 국본 지도부는 주도권을 정치권에 넘겨버렸다. 야권의 대통령 후보인 양김을 너무 믿었기 때문이다.” <87년 6월항쟁> 저자인 김원 박사(정치학)는 “당시 중산층은 호헌 철폐와 직선제 쟁취라는 민주주의 제도의 절차성에 관심을 가졌고, 양김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대리인’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려고 했다”고 지적했다.

국본 조직국장이었던 이병철(농민운동가)씨는 “민주 세력은 직선제 이후에 무엇을 할지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독재에 대한 염증이나 분노, 저항은 컸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를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 로드맵이 없었다”고 진단했다. 직선제 이후 구체적 대안이 부족했던 이들은 대선 과정에서 급속도로 분열했다. 국본 정책 연구차장으로 일했던 황인성(6월민주포럼 운영위원장)씨는 “합법적 경쟁을 하면 야권이 이길 수 있다는 낙관이 지배적이었고, 다양한 세력이 모인 탓에 구심력보다는 원심력이 훨씬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후보 단일화’ ‘비판적 지지’ ‘독자 후보’로 분열하면서 민주세력은 독립적인 중심으로 서지 못하고 구정치 엘리트의 종속변수가 돼 버렸다. “결국 국민의 힘으로 이룩해놓은 변화의 계기를 군부 독재 정권의 합법적 정권 연장으로 갖다 바쳐버렸다.”(황인성)

그뿐이 아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이후 잇따라 군부 세력과 손잡았다. 1990년 1월 김영삼은 대통령 노태우,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과 손잡고 ‘3당 합당’을 선언했고 1992년 여당 후보로 대선에서 이겼다. 김대중은 1997년 대선 때 김종필과 후보 단일화에 합의해 당선됐다. 이용희 전 국회부의장은 “87년에 디제이와 와이에스가 단일화해 민주 정부가 들어섰다면 군사정권을 다 물러나게 할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어떻게 저런 대통령이 나올 수 있겠나. (박근혜 정부의 탄생에) 나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오충일 목사는 “내가 6월항쟁의 죄인”이라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이 되더라도 방심하지 말고 시민이 계속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 새로운 민주사회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계속 논의하고 이를 구현해야 진정한 승리를 완성할 수 있다.” 2016년 12월9일,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 결의 이후에도 광화문 촛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87년 광장에서 당한 배신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 아닐까.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연재1987~2017 광장의 노래
  • 1부 나의 광장, 너의 광장
  • 2부 우리안의 박정희들
  • 3부 다시, 문제는 민주주의다
  • 4부 함께 그리는 대한민국 설계도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75486.html?_fr=mt2#csidxb03a202709eacc0a881fb2f78358602

네티즌수사대 “25일 세월호의 진실 공개한다” 선언

khclose

 

Published : 2016-12-20 09:54
Updated : 2016-12-20 10:04

한 유명 네티즌수사대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공개하겠다고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자로’라는 닉네임으로 알려진 네티즌은 19일 자신의 SNS에 “그동안 제가 찾아낸 세월호 진실의 흔적들을 세상에 공개하려 한다”며 “방대한 자료를 검토한 끝에 마침내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진실을 봤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해당 자료는 다큐멘터리(‘세월X’) 형식으로 25일 유튜브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어 자로는 이날 티저 영상을 통해 “모든 접촉은 흔적을 남긴다”는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의 말을 인용하면서 “세월호 사고 시각 ‘8시49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자로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주목을 받는 이유는 과거 정치 분야에서 각종 성과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2014년 정성근 문화체육부 장관 내정자가 과거 트위터에 올린 편향적인 글을 공개해 결국 국회 검증 과정에서 자진사퇴시켰다.

앞서 2012년에는 국정원의 비밀 트위터 계정과 포털 사이트 아이디를 찾아 국정원 대선 개입 관련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결국 재판부는 국정원의 트위터 아이디 수백개를 바탕으로 선거 개입 의혹을 인정해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 징역 3년과 자격정지 3년형을 내렸다.

한편, 지로는 40대 초반 남성으로 알려졌다.

 
(khnews@heraldcorp.com)

“나는 내가 대표한다”…11월 혁명의 ‘스마트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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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7차 주말 촛불집회가 열린 10일 오후 시민들이 집회도중 휴대폰으로 1인방송을 하거나 동영상을 찍는 등 자신의 집회참석을 기록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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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혁명’에는 지도부가 없다. 국회를 압박해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이라는 엄청난 성과를 끌어냈지만, 트로피를 들어올릴 ‘누군가’가 없다. 전통적인 시민사회단체들은 행사를 조직하는 도우미만 자임했다. ‘차이’와 ‘다양성’이 넘실대는 이들을 더듬어보려는 건 광장의 미래를 짚기 위해서다. ‘11월 혁명’을 이끈 이들은 누구인가.


한겨레
■ 깃발을 들지 마라…나는 내가 대표한다 촛불 시민은 어떤 대표자도 원치 않았다. ‘나’는 ‘나’로 대표될 뿐이다. ‘깃발을 치워라’는 요구는 촛불 초기부터 광장을 메웠다. 기존 조직은 거부당했다. 이들은 ‘세상에 없는 조직’의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서는 것으로 임의로 ‘나’를 대표하려는 조직에 반감을 표했다. ‘장수풍뎅이연구회’, ‘정다운 개돼지 연합’, ‘민주묘총’ 등의 깃발은 이번 사태에 대한 기묘한 풍자이면서, 동시에 멋대로 나를 대표하려는 조직을 부정하는 몸짓이었다. ‘장수풍뎅이연구회’ 깃발을 들고 나선 이는 ‘장수풍뎅이연구회’ 트위터 계정에 ‘소속 집단을 나타내는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여하는 방식이 낡았다고 느꼈다. (어떤 의미도 갖지 않는) 부유하는 기표로 모임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름엔 아무 뜻이 없다’고 밝혔다. 최근 정치스타트업 ‘와글’이 시민대표를 추천받아 ‘온라인 시민의회’를 만들려고 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힌 사건은 이런 흐름에서 기인한다. 이들은 ‘당신이 왜 함부로 나를 대표하려는가’라는 질문으로 ‘시민의회’를 주저앉혔다.

조직 깃발로 모이지 않고
개인들 느슨한 자유 연대
SNS통해 즉석 모임뒤 해산

박 대통령 꼼수 담화 보곤
패러디물 만들어 SNS 공유
촛불 현장은 실시간 중계

정치 관찰자 아닌 주체로
정당들 눈치보며 흔들릴때
압박 문자 보내며 중심잡아


조직에 대한 반감은 자유로운 개인들의 느슨한 연대로 이어졌다. 이름도 모르는 타인들은 모르는 이와도 손쉽게 ‘친구’를 맺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속성대로 거부감 없이 모였다. 직장인 이예슬(27)씨는 지난달 4일 집회에 혼자 나가기에 앞서 페이스북에 ‘혼자 온 사람들’이라는 이름의 페이지를 개설했다. 페이지는 빠르게 공유됐다. 11월12일 이씨가 처음 ‘혼자 온 사람들’ 깃발을 들고 집회에 나갔을 때 300여명이 함께 행진했다. 익명의 개인들은 이 깃발 아래서 자유롭게 만나고 흩어졌다. 이원상(30)씨는 “주최자가 있거나 조직처럼 움직이지 않아 자유롭게 합류했다 빠질 수 있다”고 장점을 설명했다.

■ 가르치지 마라…내가 판단한다 스스로 정보를 습득하고, 공유하고, 분노했다. 정치인, 지식인들보다 행동이 재빠를 수 있었던 이유다. 지난 10월29일 처음 광장에 모인 이래 이들은 흔들리지 않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거국중립내각, 질서있는 퇴진, 명예로운 퇴진 등으로 오락가락했던 정치권은 속수무책으로 광장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정치인들이 꼼수를 부릴 때마다 이를 비트는 콘텐츠가 쏟아졌다. 공분을 불러일으킨 콘텐츠는 분노의 크기만큼 에스엔에스에서 빠르게 유통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달 29일 3차 대국민 담화가 대표적이었다. ‘박 대통령이 국회에 공을 넘겨 분란을 만들고, 임기를 연장하겠다는 것’이라는 해석은 분노를 먹이 삼아 빠르게 전파됐다. 재치있게 3차 담화를 분석한 영상도 쏟아졌다. 가족들과 집회에 참여한 김명중(50)씨는 “3차 담화 보고 나서 화가 났다. 대통령이 자기 연설을 국민들이 해석하게 만들잖나. 담화문 뒤에 꼼수를 숨겨놓고 국민들이 못 알아챌 거라고 생각했다면 그건 착각”이라고 말했다.

스스로 학습하고, 공유하고, 분노한 뒤 행동으로 나서는 이들의 특성은 지난 8월 이화여대에서 이미 감지됐다. 지도부도 없이 자발적으로 모인 재학생과 졸업생들은 학내 커뮤니티를 통해 학습하고, 토론하고, 결정한 뒤 행동했다. 익명의 개인들 간 연대로 이어진 86일간의 점거농성은 결국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철회’와 ‘최경희 총장 사퇴’로 이어졌다.

‘스마트 시민’은 젊은층에 국한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손에 익은 중장년층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집회 현장에서 스마트폰으로 집회 현장을 실시간 중계했고, 친구·가족들이 모인 ‘단톡방’에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올렸다. 지난달 26일 열린 5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50대 남성은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에 남기려는 이유도 있지만, 카톡이나 밴드로 지인들에게 사진을 보여줘서 다음 집회에 나오도록 하려고 현장 사진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 대의기구는 내 말을 들어라 광장에 선 ‘스마트 시민’들은 거듭 물었다. ‘왜 내 뜻대로 하지 않는가.’ 이들은 대의제 아래 유보됐던 주인의식을 마음껏 표출했다. 5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박가연(18·고교 3학년, 청주 거주)양은 “국민소환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국민들이 계속 외쳐도 버티는데, 정말 분통 터진다. 우리가 뽑았으니까 우리가 불러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의기구인 국회를 규탄하는 데 머물던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 직후 새누리당 비박계가 탄핵안 표결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자 직접 압박에 나섰다. 한 대학생이 새누리당 국회의원 휴대전화 번호를 통째 공개한 지난달 29일, 문자메시지 폭탄이 의원들에게 쏟아졌다. 새누리당 비박계는 입장을 바꿨다.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은 “인터넷에 새누리당 의원들의 전화번호가 공개돼 국민들의 문자메시지가 쏟아진 것이 입장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며 “누구 엄마, 어디 아파트 주민이라고 오는 문자들을 보니, 동원된 것이 아니라 순수한 시민의 뜻이라는 것이 느껴져 마음이 뭉클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국회 처리를 앞두고 국회의원들 앞으로 손쉽게 항의 이메일을 보낼 수 있도록 고안된 ‘박근핵닷컴’이라는 사이트도 등장했다. 이 사이트를 통해 개별 국회의원들은 최소 수천통의 항의 이메일을 받았다. 한 국회의원은 “개별 지역구 의원들이 느끼는 압박감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에 직접 대통령 탄핵을 청원할 수 있도록 의원 사무실 전화번호 등을 제공하는 사이트 어셈블리포미(http://assembly4.me) 개발자 이아무개(35)씨는 “‘국민은 우매하지 않고, 똑똑하다’는 점을 국회의원들이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는 미디어 환경의 변화로 다양한 창구를 통해서 지식을 얻고 있다”며 “국민은 이제 의원을 직접 압박할 수 있다. 대의 민주주의가 자리잡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온라인 시민의회’를 만들자던 정치스타트업 ‘와글’의 제안에 대해 한 누리꾼은 이렇게 말했다. “모처럼 국회를 길들였는데 또다른 민회가 왜 필요한가. 맘에 안 들면 문자·이메일 보내면 된다.”

박수진 고한솔 기자 jjin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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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버드 교수도 열광한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

○ 아이의 교육을 위해 인문고전 연구를 한 카를 비테가 창안한 ‘다른 교육’

▷ 저능아인 아이에게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게 함

- 태어난 지 15일 - 위대한 시인들의 시 낭송

- 2세 - 고전 읽어주기

- 8세 - 그리스 로마 고전 원전으로 읽히기

▷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로 성장시킴

○ 20세기 하버드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되어 큰 인기를 얻음


○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은 창의력이 넘치는 인재가 부족함

▷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인문고전 독서 교육’이 필요함


2. 소문난 삼류 학교 시카고 대학이 노벨상 왕국이 된 사연

황상과 박지원

▷ 청소년 시절까지 글을 몰랐던 두 사람

▷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천재로 성장함

○ 위인들의 사례

  아이작 뉴튼은 초등학교 시절 연속적으로 전교 꼴찌를 하다가 지진아 반에 들어간 경력이 있다.

  교장 선생님은 그런 뉴튼을 안타깝게 여겨 인문고전을 소개해주었다.

  이후 뉴튼의 삶은 인문고전 독서로 채워진다.

  그 결과 한 때 저능아 취급을 받았던 뉴턴은 휘황찬란하다는 표현이 어울릴법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로 변화하게 되었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면서 과학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되었다.

  윈스턴 처칠은 열세 살에 해로우 학교에 전교 꼴찌로 입학했는데, 4년 6개월의 재학기간 동안 거의 전교 꼴찌였다.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23세에 인문고전 독서를 처음 시작했는데 하루 평균 4~5시간씩 독서했다.

  처칠의 인문고전 독서는 그의 두뇌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 되었고,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었다.

  토머스 에디슨은 초등학교에 입한한 지 3개월 만에 퇴학당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 학교 수업을 따라갈 만한 지적 능력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본래 머리가 나쁜 아이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며 포기했지만 교사 출신 어머니는 희망을 가지고 특별한 교육과정을 만들어서 에디슨을 직접 교육했다.

  에디슨은 어머니의 지도로 아홉 살에 '자연과 실험의 철학'을 독파했다. 시어즈의 '세계사',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흥망사', 흄의 '영국사' 같은 역사 고전과 세익스피어, 찰스 디킨스의 소설 같은 문학 고전 등이 그 뒤를 이었다.

  20대에는 도서관을 통째로 읽어버리겠다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는 세계 최고 기록인 1,093개의 특허를 따내면서 발명왕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인정받고 있는 제너럴 일렉트릭(GE)의 창업자가 되었다.



3. 카를 비테식 ‘다른 교육’

○ 저능아로 판명받은 사람도 인문고전 독서 교육을 제대로 받으면 천재로 성장할 수 있음

▷ '제대로'의 의미 : 일반인이 상상하는 수준 이상의 독서를 한다는 의미


○ 시카고 대학

▷ 3류 대학이었으나 총장 로버트 허친스의 시카고 플랜을 통한 인문고전 독서 교육 실시

- 고전 100권을 외울 정도로 읽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다.

▷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명문대로 거듭남

미르바 콜린스의 사례

▷ 빈민가의 아이들을 인문고전 독서를 통해 변화시킴

▷ 웨스트 사이드 사립 예비학교를 통해 인문고전 독서 교육 실시

○ 인문고전 독서교육의 효과

▷ 문맹을 천재로 만듬

▷ 저능아를 천재로 변화시킴

▷ 평범한 학생들을 아이비리그 졸업생보다 뛰어난 인재로 만듬

▷ 둔재를 노벨상 수상자로 만듬

▷ 학습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지적으로 성장시킴

▷ 어떤 희망도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줌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석학들 중에는 역사나 철학을 외면하고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독특한 창의력과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 머리 겔만은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에서 쿼크의 존재를 발견하고 1969년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위대한 물리학자다. 그런데 그는 과학자로서의 인지도만큼이나 현대문학에 조예가 깊다. 특히 제임스 조이스 문학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에어빈 슈뢰딩거도 양자역학의 창시자로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과학자였으나 그리스와 인도 철학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였다.”

  - 김대식의 『공부혁명』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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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조나단 에드워즈 가문의 교육

2016.05.26. 10:03

URL 복사 http://blog.naver.com/mosesan0827/220719552700

미국 뉴욕시 교육위원회에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가문을 5대에 걸쳐서 조사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의 영적, 지적 수준이 후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를 주제로 한 연구였는데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조나단 에드워즈 가문의 비교 대상으로 마커스 슐츠의 가문을 선정했다.

마커스 슐츠는 조나단 에드워즈와 동시대 사람으로서 조나단 에드워즈와 같은 지역에 살았을 뿐만 아니라 같은 수준의 경제력을 가졌고 같은 수의 가족이 있었다.

그런데 큰 차이점이 하나 있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후손에게 영적으로 <성경>을 지표로 삼고 지적으로 인문고전 독서에 힘쓰는 전통을 물려주었던 반면에 마커스 슐츠는 <성경>에 무관심하고 인문고전 독서에 문외한인 전통을 물려주었다는 점이었다.

뉴욕시 교육위원회는 두 가문의 후손을 5대에 걸쳐서 면밀하게 추적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후손은 896명이었다.

여기서 부통령 1명, 상원의원 4명, 대학총장 12명, 

대학교수 65명, 의사 60명, 목사 100명, 군인 75명, 

저술가 85명, 법조인 130명, 공무원 80명이 배출되었다.

한편, 마커스 슐츠의 후손은 1062명이었다.

여기서 전과자 96명, 알코올 중독자 58명, 창녀 65명, 

빈민 286명, 평생 막노동으로 연명한 사람들 460명. 

참고로 미국 정부는 마커스 슐츠의 후손들을 위해 1억 5000만 달러가 넘는 국가 보조금을 지출해야 했다.

-이지성의 <리딩으로 리드하라> 중.



[속보] 박대통령 “임기단축 등 진퇴문제 국회에 맡기겠다”

등록 :2016-11-29 14:34수정 :2016-11-29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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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9일 대국민담화에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저의 진퇴 문제를 국회 결정에 맡기겠다. 여야 정치권이 국정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아래는 대국민 담화 전문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의 불찰로 국민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 번 깊이 사죄드립니다. 이번 일로 마음 아파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모습을 뵈면서 저 자신 백번이라도 사과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다 해도 그 큰 실망과 분노를 다 풀어드릴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면 제 가슴이 더욱 무너져 내립니다.

국민 여러분. 돌이켜보면 지난 18년 동안 국민 여러분과 함께 했던 여정은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1998년 처음 정치를 시작했을 때부터 대통령에 취임하여 오늘 이 순간에 이를 때까지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마음으로 모든 노력을 다 해왔습니다. 단 한 순간도 저의 사익을 추구하지 않았고 작은 사심도 품지 않고 살아 왔습니다.

지금 벌어진 여러 문제들 역시 저로서는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들이었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변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입니다. 이번 사건에 대한 경위는 가까운 시일 안에 소상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그 동안 저는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저의 결심을 밝히고자 합니다.

저는 제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저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습니다. 여야 정치권이 논의하여 국정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주시면 그 일정과 법 절차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하루속히 대한민국이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 뿐입니다. 다시 한 번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며 대한민국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정치권에서 지혜를 모아주실 것을 호소드립니다.

(기자 질문) 공범 관계 인정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박 대통령) 여러가지 무거운 말씀을 드렸기 때문에 다시 말씀드렸듯이 여러가지 경위에 대해 소상히 말씀드리겠고 다시 한 번 질문하고 싶은 것도 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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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온 나라가 괴로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 어느 순간에 또 황당하고 비상식적인 일이 터질지 온 국민이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과연 어찌해야 할까요.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맬 때 들여다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역사입니다. 사람 사는 모습이 3000년 전이나 2000년 전이나 1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역사를 읽으면 어찌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번 주는 민심을 잃은 지도자를 과연 어찌 해야 할지 찾아봤습니다.
흔히 성선설과 성악설로만 알려진 맹자와 순자, 두 분의 사상을 접하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두 분은 ‘민심과 천심을 잃은 지도자는 쫓아내도 되며, 수틀리면 죽여도 좋다’고 했습니다. 맹자와 순자, 두 분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요. 두 사람이 쫓아내도 좋다는 지도자란 과연 어떤 부류의 지도자일까요.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09회는 <맹자와 순자, ‘하늘이 버린 지도자는 죽여도 된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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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1337~1392)는 두 말 할 것 없는 고려의 충신이다.

 

그런 정몽주에게 아마도 천추의 한을 남긴 일이 있었을 것이다.

 

바로 모친·부친상으로 3년(1366~1369)의 낙향과, 부원파 이인임의 견제로 9년의 유배 및 유랑(1375~84년)을 견뎌야 했던 덜친 정도전(1342~1398)에게 <맹자>를 한 질 보내준 것이다. 그것이 천려일실이었다.
사실 이전까지 삼봉 정도전의 생각은 여느 사대부와 다르지 않았다. 백성을 가르침과 교화의 대상으로 보았으니까…. 삼봉이 5살 연상의 정몽주에게 보낸 편지를 보라.

 

“백성은 어리석습니다. 취사선택을 모릅니다. 백성은 뛰어난 자를 믿고 복종할 줄 알았지, 도가 바르고 나쁨을 모릅니다.”

 

정도전은 그저 “군자의 덕은 바람이고, 소인의 덕은 풀이라 바람이 불면 풀은 자연스레 눕기 마련”이라고 여겼다.

 

정도전의 삼봉집. 정도전은 낙향, 유해시절 절친 정몽주가 보내온 <맹자>를 읽고 역성혁명의 의지를 다졌다.

■정몽주가 정도전에게 준 선물
그러나 낙향에 맞춰 정몽주가 보내준 <맹자>는 정도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정도전은 정몽주 선생이 보내준 <맹자>를 하루에 한 장 또는 반 장씩 차근차근 정독했다.”(<삼봉집>)

 

정도전은 아마도 맹자가 주장한 역성혁명론에 온통 정신을 팔았을 것이다. <맹자> ‘양혜왕 하’를 보자.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묻는다.

“탕왕(상나라 창업주)이 하나라 걸왕을 내쫓고 상나라를 세웠고, 무왕(주나라 창업주)은 상나라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렇습니까.”
“기록이 있으니 맞겠지요.”(맹자)
“그런데 말입니다. 신하가 군주를 죽여도 됩니까.”(제 선왕)

 

제 선왕은 맹자를 시험하고 있다. 충효사상을 으뜸 덕목으로 여기는 유교가 아닌가.

 

선왕은 맹자에게 신하된 자가 자신이 모시던 주군을 죽이는 것이 과연 잘한 일이냐고 감히 물었다. 말하자면 맹자에게 어깃장을 놓은 것이다.

그런데 맹자는 아주 과격한 발언으로 대꾸한다.

“주나라 무왕(재위 기원전 1046~1043)이 ‘한낱 사내’(一夫·상나라 마지막 임금 주왕을 지칭)를 죽였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임금을 죽였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어짊과 올바름을 해치는 자는 ‘사내’(一夫)에 불과합니다.”   

 

■‘군주가 아니라 한낱 필부입니다’
무시무시한 발언은 계속된다.


“연못에 고기를 몰아주는 것은 수달이다. 나무와 숲을 위해 참새를 몰아주는 것은 새매다. 성탕(상나라 창업주)과 무왕(주나라 창업주)을 위해 백성을 몰아준 자들은 바로 걸주(폭군의 대명사인 하나라 걸왕과 상나라 주왕)이다.”(<맹자> ‘이루·상’)

그러니까 맹자는 “탕왕과 무왕이 비록 신하였지만 민심을 잃고 한낱 사내로 전락한 폭군(상나라 주왕)을 죽인 뒤 새왕조를 세운 것일뿐”이라고 옹호하고 있다. 말하자면 때에 따라선 폭력혁명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맹자의 소신발언에는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백성의 마음, 즉 민심이었다.

 

“백성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 것이다. 백성을 얻는데도 도가 있다. 백성의 마음을 얻어야 백성을 얻는 것이다.”(<맹자> ‘이루 하’)

그렇다면 왜 백성과 백성의 마음이 중요한가. 여기서 맹자의 천명사상이 엿보인다.

 

■하늘은 백성을 보고 군주를 판단한다
맹자는 왕위를 물려주는 선양을 천명(天命)으로 설명했다.

 

그렇다면 하늘(天)은 어떻게 군주의 어짊과 악함을 구별할 수 있다는 말인가. 맹자는 바로 하늘은 백성을 통해 군주의 어짊과 악함을 구별한다고 했다. 이것은 사실 맹자의 이야기도 아니다. <서경> ‘주서’에 나오는 말이다.

 

“하늘이 보는 것은 백성을 통해 보고, 하늘이 듣는 것은 백성을 통해 듣는다.(天視 自我民視 天聽 自我民聽 百姓有過)”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권력을 이양하고, 군주를 바꾸는 것은 하늘이라도 멋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늘 역시 백성의 마음, 즉 민심의 향배를 보고 들은 뒤 군주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하늘의 뜻(天意)는 곧 백성의 뜻(民意)라는 것이다.

 

그랬으니 맹자는 하늘의 뜻을 갖고 있는 백성의 지위를 군주보다 위에 놓았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 다음이며, 군주가 가볍다.(民爲貴 社稷次 君爲輕)”(<맹자> ‘양혜왕 하’)

백성이 가장 무겁고, 군주가 가장 가벼우니 백성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혁명은 그것이 폭력의 수단을 사용한다 해도 용인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도전의 유배지인 전남 나주시 다시면 운봉리의 ‘백동마을’. 정도전은 기나긴 유배 및 유랑 생활 등을 거치며 <맹자>의 역성혁명론을 곱씹었다.

■정도전의 결론은 역성혁명이었다
다시 정도전에게 돌아와보자. 정몽주가 선물한 <맹자> 한 질을 읽고 또 읽은 정도전이 얻은 결론이 있었다.

 

“임금의 지위는 존귀한 것이긴 하다. 그러나 백성의 마음을 얻으면 백성은 복종한다. 하나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백성은 임금을 버린다.”(<조선경국전> ‘경보위’) 

 

백성을 도탄에 빠뜨린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 왕조를 열겠다는 정도전의 결심이 굳어진 순간이었다.

그런데 백성과 임금의 관계를 좀더 극적으로 표현한 유학자가 있다. 맹자보다 다소 늦은 전국시대 말기를 풍미한 순자이다.


흔히들 맹자의 성선설과 비교되는 성악설을 주장한 것으로만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맹자보다 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어법으로 ‘혁명’을 외치고 있다.

 

■민심을 이반한 나라는 임금의 나라가 아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순자의 ‘주수군민론(舟水君民論)’이다. <순자> ‘왕제’에 있는 말이다.


“군주는 배(舟)이고 백성(서인)은 물이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전복시키기도 한다.(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얼마나 무시무시한 말인가. 군주라는 배는 결국 물에 타라 순항할 수도 있고, 뒤집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아닌가. 군주란 민심을 잃으면 전복될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충효사상이 지배했던 조선시대에도 ‘수틀리면 군주를 갈아 엎을 수도 있다’는 주수군민론을 수없이 개진하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것도 다른 임금도 아닌 연산군 시대의 신하들이 그랬다니 믿을 수 있겠는가.

 

때는 바야흐로 무오사화(1498년)로 한바탕 피바람이 몰아친 지 4년 뒤인 1502년(연산군 8년) 3월이었다.

 

한치형·성준·이극균 등 삼정승이 연산군 앞에서 ‘시폐(時幣) 10조목’을 올렸다. 시폐란 ‘시정의 폐단’이라는 뜻이다. 한마디로 ‘임금의 실정(失政)’을 지적한 것이다. 

삼정승이 올린 상소문은 지독하다.

“전하께서 후원에서 내시들하고 장난이나 치고, 사사로운 잔치를 벌이며 깊숙한 비밀처소까지 두고 있는데, 이것이 옳은 정치냐”고 다그치고 있다.

 

"임금의 지위는 가볍고, 백성은 무겁습니다. 예로부터 물을 백성에 비유하고 배(舟)를 임금에 비유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물은 배를 뜨게 할 수도 있지만 배를 뒤엎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두려운 것은 백성이 아니냐(可畏非民)’는 말도 있습니다. 민심이 이반하면 나라는 이미 ‘임금의 나라’일 수 없습니다.”

삼정승은 “임금에게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면전에서 직언을 할 수 있어야 신하라 할 수 있다”고까지 고한다. 민심을 잃은 나라는 ‘임금의 나라’가 아니므로 백성은 그 임금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다른 시대도 아니었다. 조선 역사상 가장 왕권이 강한 연산군 시대인데도 대신들, 그것도 지금의 국무총리·부총리 격인 삼정승이 ‘죽어도 아니되옵니다’라고 쓴소리를 해댄 것이다.

 

■숙종이 내린 심상찮은 그림
어떤 임금은 ‘주수군민’의 민(民·백성)대신 신하(臣)를 넣어 ‘날 좀 잘 이끌어달라’고 당부했다.

바로 숙종(1674~1720) 임금이다.

숙종은 즉위하자 마자(1675년) 화가에게 ‘주수도(舟水圖)’를 그리라고 명한다.

 

즉 배가 물 위에 떠있다가 거센 풍랑을 만나면 그 배가 뒤집힌다는 내용을 그리게 한 것이다. 이 ‘주수도’는 숙종이 경계의 뜻으로 간직하고자 했던 일종의 자경화(自警畵)다.

숙종은 그림에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으니…’운운하는 주수군민의 내용을 써서 곁에 걸어놓는다. 그런 다음 ‘벽 위에 붙여 두고 늘 생각하며 잊지 말라.(糊之壁上 念念不忘)’는 의미의 8글자를 써서 삼정승을 비롯한 신하들에게 하사했다.

 

특별히 신하들에게 내린 까닭이 있었다. 백성(民)을 신하로 치환시켜 놓았던 것이다.

 

숙종은 ‘임금은 배와 같고, 신하는 물과 같으니, 신하가 어질어야 임금이 편안하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했다. 그러니 “경들은 그림의 뜻을 깊이 유념해서 임금을 잘 보필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통치철학 5가지를 언급했다.

‘학문을 좋아할 것, 현인을 등용할 것, 충간(忠諫·충성스러운 간언)을 받아들일 것, 쓴소리 듣기를 좋아할 것, 현인을 귀하게 여기고 재물을 천하게 여길 것’이었다.

 

숙종의 글씨. 달이 촛불처럼 밝다는 뜻의 ‘교월어촉’이다. 숙종은 <주수도>를 그리게 해서 임금과 신하의 도리를 강조했다.

■‘전하, 잘난척 하지 마십시오’
숙종의 이른바 ‘주수도설’을 본 신하들은 가만 있지 않는다.

숙종이 언급한 5가지 통치철학의 의미를 나름대로 전하고, 제발 바른 정치를 해달라고 신신당부하는 글을 올린다.

 

이현일(1627~1704)은 ‘임금이 임금됨을 어렵게 여긴다.(后克艱厥后)’는 <서경>의 언급과, ‘임금 노릇하기 어렵다(爲君難)’는 <논어>의 말을 인용한다.


“임금은 잠시라도 태만하고 소홀하면 안됩다. 군신 관계는 ‘배와 물의 관계와 같다’는 뜻을 염두에 두십시요. 두려워하고 삼가야 합니다. 그래서 ‘어렵게 여기고(爲艱)’ ‘어려워하는(爲難)’ 것입니다.”(<갈암집>)

그러면서 ‘임금이라고 절대 잘난척 해서는 안된다’고 꼬집는다.

 

“명철한 군주라도 자기 혼자만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고 스스로 성현입네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망하는 길입니다. 충성의 말은 귀에 거슬리며 논박은 미움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임금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상나라 재상 이윤이 왕인 태갑에게 말했습니다. ‘임금의 마음을 거스르는 말이어야 도에 맞는 법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귀에 거슬리는 말이야말로 충언이라는 것이다. 고언을 남김없이 다 받아들여야 나라를 잃고 백성을 잃는 화를 입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명철한 군주라도 자기 혼자만의 지혜로 세상을 다스리고 스스로 성현입네 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이 또한 망하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맹자의 말씀대로 ‘잘난체 하는 것을 내 이미 알고 있다.(이이 予旣知之矣)’고 할 것입니다. 잘난 체 하는 음성과 안색은 천리 밖에서도 들립니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불문가지입니다.“

임금에게 ‘잘난체 하지 말라’는 것이니, 얼마나 강한 직언인가.

 

이현일은 임금만 겨냥하지 않았다. 배에 탄 신하들의 역할도 강조했다.

“배가 순조롭지 않을 때 당연히 유의해야 합니다. 물이 새어 배가 가라앉을 때 사공이 닻줄과 노를 제대로 잡지 못하면 어찌됩니까. 배 안의 사람들은 모두 물속에 빠져 죽게 됩니다. 바다 저 편에서 이 광경을 보는 사람들도 모두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럴 때 사공을 불러 일깨워서 깊이 술에 취하지 않도록 하여 평정을 되찾고 힘을 다하여 백성들을 구제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수(舟水)의 뜻입니다.”

 

허목(1598~1682)과 윤휴(1617~1680) 역시 신하의 역할을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허목은 “큰 강을 건널 때 신하가 제대로 노를 저어야 한다”(<기언>)면서 군주(배)와 신하(노)의 관계를 강조했다. 윤휴 역시 “배(군주)를 잘 건너게 해주는 사공은 장상(將相·장수와 재상)과도 같은 존재”아며 “따라서 유능한 장상을 얻으면 국가라는 배는 아무런 걱정없이 운행할 것”(<백호전집>)이라 했다.

 

■정조 임금이 부끄러워한 까닭
이들의 언급은 한결같다. 백성과 군주처럼 신하와 군주의 관계도 똑같다는 것이다.

 

신하란 배 안의 임금(사공)을 잘 인도해서 배가 민심의 바다에서 뒤집어지지 않도록 이끌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숙종은 “당신의 말이 옳다. 내가 유념하겠다”고 했다. 이것이 왕조시대의 군신관계다.

정조는 1779년(정조 3년) 남한산성 행궁에 행차하려고 한강변 광진나루에 이르렀다. 정조는 불현듯 숙종이 그린 ‘주수도’를 떠올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임금은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내가 이제 배를 타고 백성에 임하니 대하는 사물마다 두렵기만 하구나. 지금 내가 물에 다다라 성조(숙종)의 깊은 뜻을 되돌아 봤는데 가만 생각하니 부끄럽구나.”(<일성록>)

군주가 백성을 두려워했고, 본인 스스로 지도자의 깜냥이 되는지 선왕들과 비교해보면서 부끄러워했다는 것이다. 조선의 명군(名君)인 정조 임금도 그랬다는 것이다.  

 

이즈음에 순자의 군신론을 함축해주는 인용문이 있다.

“간쟁하고 보필하는 자는 사직을 지키는 신하요, 국왕의 보배이다. 그러니 명군은 이들을 후대하고 존중한다. 그러나 암군은 미혹되어 이들을 자신을 해치는 적으로 안다. 명군이 상을 내리면 암군은 벌을 준다. 그런데 만약 암군에게 상을 받는 자라면 명군은 죽여버려야 한다.”(<순자> ‘신도’)

 

이현일의 <갈암집>. 임금을 향해 잘난체 하지말아야 한다는 쓴소리도 서슴치 않았다. 

■혼용무도의 지도자를 쫓아내는 법
새삼 지난해 이맘때가 생각난다.

 

교수신문이 2015년 지난해를 정리해서 발표한 ‘올해의 단어’가 ‘혼용무도(昏庸無道)’였다.

어리석고 무능한 지도자가 무도한 정치를 했다는 뜻이다.

 

예로부터 ‘참 나쁜 지도자’를 굳이 나눌 때 폭군(暴君)과 혼군(昏君 혹은 暗君), 용군(庸君)으로 분류했다.

율곡 이이는 임금의 도리(君道)를 논하면서 이렇게 구별한다.

 

“폭군이란 누구인가, 욕심이 지나치고 바깥의 유혹에 빠져 백성의 힘을 다 빼앗고, 충언을 물리치면서 자기만 성스러운체 하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는 자다. 혼군(암군)은 누구인가. 정치를 잘 하려는 뜻은 있지만 총명라지 못해 현명한 신하 대신 간사하거나 무능하거나 신뢰할 수 없는 자들을 기용해서 패망하는 군주다. 그렇다면 용군은? 나약하고 과단성이 없어 구태만 되풀이 하다가 나라를 망치는 지도자다.”(<율곡전서> ‘잡저·동호문답’)

만약 폭군과 혼군, 용군의 면모를 두루 갖춘 지도자라면 과연 어떻게 불러야 할까.

 

전국시대 좌구명이 공자의 <춘추>를 해설한 <춘추좌전>은 무도한 지도자를 쫓아낼 수밖에 없는 이유를 한마디로 정리한다.

“하늘이 버린 몸을 누가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겠는가.(天之所廢 誰能興之)”

대명천지에 무슨 천명론이야고? 누누이 강조하지 않았던가. 하늘은 백성을 통해 군주의 선악을 판단하고 신상필벌을 내리는 것이라고…. 그래서 백성은 물이고, 군주는 배이며, 물은 배를 뜨게 할 수도 뒤집어버릴 수도 있다고…. 경향신문 논설위원

박근혜 퇴진 국민행동 제안, "'하야만사성' 현수막 달아요"

26일 광화문에선 300만 촛불 들고, 참가 못 하는 사람들은 집에 현수막 답시다

16.11.23 20:52l최종 업데이트 16.11.23 20:52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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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26일(토) 광화문에서는 박근혜 퇴진 300만 촛불을 들고, 집회에 오지 못하는 시민들은 우리집 우리가게 우리동네에 현수막을 답시다.
박근혜 퇴진을 위한 천만 국민행동을 제안합니다.

11월 26일(토) 광화문에서는 박근혜 퇴진 300만 촛불을 들고,
집회에 오지 못하는 시민들은 우리 집 우리 가게 우리동네에 현수막을 답시다.

노동자는 칼퇴근 박근혜는 칼퇴진
국민들은 칼퇴근 박근혜는 칼퇴진

하야만사성 : 박근혜 하야하면 모든 일이 잘 이루어진다

100만 촛불에도 물러나지 않는다면,
1000만 국민행동으로 보여줍시다.

국가는 국민입니다. 국가는 국민이 만듭니다.

국민여러분, '하야만사성' 하야현수막을 휘날려주세요.
아파트 베란다도 좋고요, 가게 문 앞도 좋고요, 집 안도 좋습니다.

전국방방곡곡 천만 국민행동으로
겨울이 오기 전에 나쁜 대통령을 끌어내립시다.

 국민들은 칼퇴근 박근혜는 칼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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