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의 위험한 선택 - "보완의학" [주형규]

주형규 vvjooh@kornet.net

과학적으로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아 주류의학에 편입되지 못한 진단이나 치료방법들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대체의학이라 부릅니다. 전문분야 사람들은 애매하게 보완대체의학(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 CAM)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최근 대한의사협회는 "대체"라는 말이 정통의학을 부정하는 뜻을 갖고 있다는 점을 중시하여, "보완의학"으로 용어를 통일하기로 했다 합니다. CAM의 용어 선택이 갖는 의미와 의료계 안팎에 미칠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볼까 합니다.

여기서 먼저 기본적으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어떤 용어를 사용하든 CAM의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즉, 효과와 위험성에 대한 객관적 근거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은 어떤 용어를 사용하느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이죠.

용어를 이렇게 저렇게 달리 부르는 것은 그것이 암시하는 의미, 보다 정확히는, 용어를 사용하는 측이 그것을 통해 드러내고 싶거나 감추고 싶은 자신의 생각을 구체화시키려는 의도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사협회는 왜 특별히 보완의학이라는 용어를 선택했을까요?

뒤집어 생각하면 쉬울 수 있겠습니다. 대체의학이라고 할 때는, (명색이 현대의학을 자존심으로 알았던 의사가) 의사로서의 정체성마저 훼손해가며 선택해야 할 무엇으로 생각되지만, 보완의학이라고 하면 굳이 정체성 문제까지 들출 필요가 없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불완전한 부분을 보완해 준다는데... 기존 치료에 조금 덧붙여 하는 치료일 뿐인데... 그런 생각으로 의사들이 CAM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더구나 요즘같이 힘들어진 때 보험 규제도 없으니 경영에 도움도 될 것이고... 편리하긴 합니다.

다시, 의협은 왜 새삼스럽게 지금 CAM을 보완의학이라 부르기로 결정했을까요? 일단 생각해 보면, 예전에 별로 관심이 없던 의사들이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실제 임상에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의협으로서 무언가 CAM에 대한 태도 정리가 필요했을 것이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방향으로 태도를 정리할 것이냐였겠죠.

즉, 적극적으로 접근을 하되, 원칙을 고수하는 쪽에서 현대의학의 기반인 과학적 기준들을 들이대고 충분히 비판을 받게 할 것이냐, 아니면 의학적 판단기준 자체를 느슨하게 하여 이미 진행되고 있는 현실을 수용하는 쪽에서 의사 회원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것이냐... 표현의 차이가 있을 지는 모르지만, 결국 둘 중 어느 하나였을 겁니다.

제 판단으로는, 보완의학이란 용어를 선택한 의협의 결정은 후자 쪽이었던 게 분명해 보입니다. 의협이 내세우고 있는 그럴듯한 표면적인 이유는 있습니다. CAM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난립해 있는 현재의 판도를 과학적 기준으로 무장한 의사들이 주도하여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겠다는 겁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습니다.

의협이 회원들에 대해 아무런 효과적인 제어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무얼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걸 그대로 인정하더라도, 과연 능동적으로 보이는 그 선택이 온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뭔가 어폐가 있지 않은가요? 혹시 겉과 속이 다른 어떤 뜻은 없을까요?

의사들의 신문인 의협신보는 얼마 전부터 "보완의학 바로보기"란 고정란을 만들어, 동종요법과 산소요법 등 CAM 치료법들을 긍정적인 입장에서 꾸준히 소개해오고 있습니다. 물론 그런 CAM 치료법들은 세상에 알려진 지가 오래 되었고, 그간 과학적 검증을 통해 의학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결론이 이미 내려져 있는 것들이죠.

치료법들 자체가 타당성, 즉 학문적 가치의 면에서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어쨌든 최근 들어 의사들이 갑자기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되어 그런 결정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의협신보 기사와 같은 맥락이겠지만, 의협은 그 기사를 연재하고 있는 분을 위원장으로 하는 CAM 소위원회를 둠으로써 아예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태세를 취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의협은 또 CAM 관련 좌담회를 열고 결과를 발표했는데, 그 내용은 "의사들이 보완대체의학을 잘 활용할 경우 특정 질병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원가의 재정 수입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CAM 활성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회원들이 힘들어지다 보니 그들을 대변할 의협이 소중히 지켜야 할 "의사"단체로서 본질적 기능을 잠시 망각한 것은 아닐까 걱정이 앞섭니다. 의협은 아마도 그것이 의사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 아니더라도 최소한 회원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방책이라고 판단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면, 원론적인 의미에서 따져 보겠습니다. 외국의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과학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해 여지껏 CAM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들이 대한민국 의사들에 의해 임상에서 적극 활용되면 새삼스럽게 타당한 치료로 둔갑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까요?

아니면 의협은, 요즘처럼 팍팍한 시절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의사들이 엄격히 도덕성을 발휘하여, 나름대로 타당성을 정확히 판단해가면서 환자들에게 최대한 도움이 될 수 있는 수준에서만 CAM 치료법을 이용할 것이라는 확신이 서 있다는 것일까요? 의료의 과학적 기준을 엉성한 것으로 흐트러 놓아도 의학을 적절한 모습으로 유지해갈 어떤 보장이 되어 있는 것일까요?

아무래도 이건 아닙니다. 이는 단순히 용어 선택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보완의학이라는 순화된 용어가 도리어 CAM의 부정적인 본질을 은폐하여 의사와 환자들에게 혼선을 주는 역기능을 하리라는 것이 무시되었음에 틀림 없습니다.

아마, 어떤 의사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정부가 국민을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마당에 의사들만 고고한 척 하자는 말이냐?" 사실 순수한 기대 속에 사회적 시각으로 의료문제를 바라보다가 절망감을 맛본 의사라면, 있을 법한 항변이겠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런 상황논리는 CAM에 대한 의사들의 그릇된 선택을 정당화시켜 주지 못할 것입니다. 그 자체가 타당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릇된 선택이 초래할 보다 무겁고 본질적인 악순환의 짐을 다른 사람이 아닌 의사들 스스로 끊임없이 감당하고 극복해가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인 근거를 직업의 생명으로 삼아야 할 의사들의 단체인 의협이 권장하기로 한 "보완의학"이란 말을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그 말은, 뭔가 타당한 근거와 도덕성이 내재되어 있는 듯해서 의사들이 주저 없이 받아들여도 문제될 게 없을 것처럼 위장하는, 그렇기 때문에 의사들을 자칫 헤어나오기 힘든 수렁으로 빠뜨릴지도 모를 선악과(善惡果) 같은 것이 아닐까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문가로서 끝까지 지켜야 할 직업적 정체성이 타락하고 있음을 감추고 합리화하려는 변명이 아닐런지요?

처음 올린 날 ; 2003-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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