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삶과 경영 (17) 60대 목표 ‘회사 물려주기’ 이미 시작

[중앙일보] 입력 2011.11.03 00:05 / 수정 2011.11.03 10:19

손정의 후계자 찾기 … 젊다면 보너스 100억 엔쯤 요구할 배포 있어야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 홈페이지(http://www.softbank.co.jp/academia)에 게시된 입교생 모집 광고. 소프트뱅크 그룹의 후계자 양성을 위해 개원한 아카데미아엔 직원뿐 아니라 누구라도 지원 가능하다. 국적·성별은 물론 소속 조직도 따지지 않는다. 이미 여러 명의 경쟁사 직원, 외국인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손정의 회장의 직강은 종종 인터넷 개인화 방송 서비스인 ‘유스트림’을 통해 온라인 생중계된다.

손정의 회장이 본지 연재를 기념해 써 보내온 좌우명 ‘뜻을 높게(志高く·고코로자시타카쿠)!’
지난해 6월 25일 제30회 정기 주주총회 자리에서 ‘소프트뱅크 신(新)30년 비전’을 발표했다. 예상대로 이런저런 의문과 비아냥이 쏟아졌다. 요지는 “30년 뒤 세계 톱10 기업이 되겠다, 계열사를 5000개로 늘리겠다면서 왜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없느냐”는 거였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실은 그런 질문이 외려 좀 답답하게 여겨졌다. 30년 비전을 통해 나는 소프트뱅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제시했다. 우리 본업은 마이크로칩 제조도, 소프트웨어 판매도 아니다. 정보혁명을 추진하는 것이다. 미래에 도달해야 할 이미지도 확실히 그려 놨다. 그를 위한 전술, 즉 구체적 방법론은 시대와 더불어 변하며 도구도 달라진다. 사업상 라이벌도 현재와는 다를 것이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럽다. 그러니 방법론이란 건 큰 원칙 정도만 제시해 두면 된다. 물론 확실히 준비해야 할 것도 있다. 새 시대에 맞는 이른바 ‘웹(Web)형 조직’이다. 구성체들이 자율·분산·협조의 원칙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다. 각 구성체는 적재적소에서 자기 역할을 하며 타 조직들과 연대한다. 특정 브랜드·기술·사업모델에 매이지 않는 ‘멀티형 조직’이기도 하다. 이런 구상의 핵심에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가 있다.

30년 비전을 발표한 한 달 뒤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개원했다. 플라톤의 ‘아카데메이아’를 본뜬 이 학교의 제1 목표는 ‘손정의 2.0’을 만드는 것이다. 나 대신 소프트뱅크를 이끌어갈 차세대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하려는 것이다. 이는 내가 열아홉 살 때부터 계획한 일이다. ‘인생 50년 계획’ 중 60대의 목표가 바로 ‘다음 세대에 사업을 물려준다’는 거였다. 당시 어린 나이였지만 ‘돈이나 명예보다 사람을 남기고 싶다. 누군가를 통해 내 뜻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내 나이 올해 쉰 넷, 35년을 숙성시킨 목표를 이루려면 이제쯤엔 발동을 걸어야 한다. 그런 비상한 각오로 문을 연 것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다.

#‘소프트뱅크 DNA’는 피보다 진하다

 내겐 두 딸이 있다. 모두 맞벌이 주부다. 성실한 배우자를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다. 사랑하는 딸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준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다. 인류 역사상 300년 이상 존속한 국가는 의외로 드물다. 동로마제국, 중국의 청나라를 포함해 11개국 정도다. 이들은 하나같이 장자 상속을 포기했다. 능력과 상관없이 큰아들이라, 혹은 내 핏줄이란 이유로 후계자로 삼는 건 매우 위험하다.

 그렇다고 내가 ‘오너십’을 가벼이 여기는 건 아니다. 대기업 샐러리맨 사장의 임기는 기껏해야 4~5년이다. 이래서야 자기 임기 동안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계획밖에 세우지 않는다. 큰 시야로 사업을 펼 수도 없다. 대업을 이루려면 역시 20~30년의 시간 축으로 생각해야 한다.

#회장보다 ‘교장 선생님’으로 남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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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는 바로 그런 큰 스케일로 미래를 그려갈 후계자를 기르는 곳이다. 무슨 사업부장 같은 리더를 키우기 위한, 일반 회사에서 시행하는 사원 교육 프로그램 같은 것이 아니다. 정원은 일단 300명. 그중 200명은 소프트뱅크 그룹 내에서, 나머지 100명은 외부에서 선발했다. 트위터를 통해서도 신청을 받았다. 무려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패기 만만한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개중엔 우리 경쟁사 직원도 있고 외국인도 있다. 후계자가 꼭 사내에서 나올 필요는 없다. 30년 뒤 소프트뱅크를 지금의 100배 규모로 키우려면 보통의 생각으론 불가능하다. 밖에 큰 인물이 있다면 당연히 데려와야 한다.

 이들은 말 그대로 ‘통치자가 되기 위한 실전 교육’을 받는다. 수강생 각자는 ‘내가 소프트뱅크 CEO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항상 생각하도록 훈련받는다. 매주 수요일 오후 5시부터 4~5시간 진행하는 교육은 힘 닿는 한 내가 직접 수행한다. 말하자면 내가 교장인 셈이다. 사실 교장 선생님이 되는 건 내 오랜 꿈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의 교장으로 죽고 싶다. ‘사장’이나 ‘회장’이라 불리며 죽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은가.

 수강생의 긴장도는 상당하다. 6개월마다 한 번씩 프레젠테이션 경연을 한다. 일종의 ‘물갈이 전쟁’이다. 소프트뱅크 CEO로서 사업 전략과 성장 전략, 투자 전략을 공개한다. 수강생들이 직접 채점한다. 이를 통해 하위 10%를 솎아낸다. 빈자리는 다시 새 수강생으로 채운다. 밀려난 사람이라도 원하면 언제든 재도전할 수 있다.

#소프트뱅크, 웹형 조직으로 거듭나야

 이 학교에 대해 내가 그리는 이미지는 ‘도장(道場)’이다. 검도에서 되받아치기를 하듯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통해 강한 미래 경영자로 거듭난다. 물론 내가 사범이다. 전성기에 접어든 검도 선수의 근육은 점차 약해진다. 하지만 경험은 그대로 남는다. 그러니까 젊은 검도 선수들의 솜씨를 보며 ‘근육이 좋군’ 하고 읊조리는 위치에 서는 거다. 멋지지 않나.

 물론 내 후임이 될 사람은 한 명뿐이다. 그렇더라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후보군은 여러 명 둘 생각이다. 그 외 인재들도 모두 소중하다. 소프트뱅크가 진정한 웹형 조직으로 자리 잡으려면 각 소조직의 리더가 될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들 또한 나와 소프트뱅크의 DNA를 품고 있기를 희망한다. 30년 뒤 소프트뱅크 5000개 자회사의 CEO 중 상당수는 바로 여기서 탄생하지 않을까.

 참고로 내 후계자, 소프트뱅크그룹의 CEO가 될 사람에게는 스톡옵션으로 100억 엔 정도를 줄 생각이다. 그러니 지금 당신이 20대, 30대 젊은이라면 배포를 크게 가졌으면 한다. ‘보너스로 한 100억 엔(약 1430억원) 정도 받아볼까?’ 하는 정도가 딱 좋다.

정리=이나리 기자 <windy@joongang.co.kr>

◆손정의가 생각하는 ‘기업 지배권’ =손정의 회장은 세계적인 인수합병(M&A) 전문가다. 이런 그가 기업 지배권 확보에 집착하지 않는 건 뜻밖의 일이다. 손 회장은 “흔히 기업을 인수할 때 소유 지분을 51%로 하니 마니 하는 얘기들을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51%를 가지면 본업이고 그 이하면 본업이 아닌 건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지배권에 집착하는 건 일방적·이기적 판단이며 상하관계를 고집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보면) ‘머릿속이 봉건사회에서 못 빠져나온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소유 지분이 50% 이하라도 파트너십으로 맺어진 조직이라면 문제 없다는 것. 요컨대 “내 안에는 지배권 운운하는 정의 따윈 아예 없다”는 게 그의 공언이다.

◆아카데메이아(Akademeia)=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기원전 400년께 만든 교육기관. 왕·장군 같은 차세대 통치자를 육성하는 것이 목표였다. 주로 철학을 가르쳤다. 진정한 통치자가 되려면 수학·과학을 배우는 이상으로 철학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5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선구자인 메디치가에서 이를 ‘플라톤 아카데미’란 이름으로 부활시킨 적이 있다. 손정의 회장 또한 이를 본떠 후계자 양성기관인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를 열었다. 고대 아카데메이아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지나지 말라’는 문구가 있었다고 한다. 손 회장은 이에 착안해 “소프트뱅크 아카데미아의 문에는 ‘디지털 정보혁명에 뜻이 없는 자, 이 문을 지나지 말라’는 문구를 쓰고 싶다”는 말을 했다.

 

 

쓰나미가 바꾼 내 인생관 … 100억 엔 + 은퇴 때까지 월급 다 기부

[중앙일보] 입력 2011.11.08 00:01 / 수정 2011.11.08 11:01

뜻을 높게 !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삶과 경영
(18)·끝 “내 기업만 잘 꾸린다? 그것만으론 안 되는 일도 있다”

대지진 발생 11일 뒤인 3월 22일 후쿠오카 원자력발전소 사고 대피소에서 이재민들과 대화 중인 손정의 회장. 손회장은 이날 높은 방사능 수치에도 불구하고 이재민들과 고통을 함께하려 마스크 없이 현장을 누볐다. 상황의심각성을 절감한 그는 곧바로 주변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찾아가 “식대, 통신료, 일자리를 책임지겠으니 이재민들에게 주거지를 제공해 달라”고 설득했다. [소프트뱅크 제공]

올 3월 11일 오후 2시48분. 일본열도에 사는 모든 이의 삶을 뿌리째 흔든 대재난이 일어났다. 규모 9.0의 강진으로 후쿠시마를 비롯한 일본 북동부가 쑥대밭이 됐다. 정부는 ‘일본 관측 사상 최대’라고 했다. TV 화면으로 본 거대한 해일, 성냥갑처럼 쓸려가는 마을의 참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더 무서운 일은 그 다음 일어났다. 원자력발전소 피해로 막대한 방사선이 유출된 것이다. 공포, 혼란, 무기력, 불안. 나는 가슴을 쳤다.

“내가 죄인이다!”

손정의 회장이 본지 연재를 기념해 써보내 온 좌우명 ‘뜻을 높게(志高く·고코로자시타카쿠)!’
누가 일본의 대기와 바다를 오염시켰는가. 나 또한 그런 범법자 중 한 명 아닌가. 전 세계에 미안했다. 젊은이들이 걱정돼 견디기 힘들었다. TV에선 가족을 모두 잃은 92세 할머니가 눈물을 쏟고 있었다. 나도 울었다. 대지진은 내 인생관을 송두리째 바꿨다. 삶은 뭔가, 회사란 뭔가. 내가 살아가는 보람이란 과연 무엇인가. 정보기술 혁명으로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하지만 이 역시 에너지 없인 불가능하다. 원전에 기대지 않는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내 기업만 잘 꾸려간다고 될 일이 아니다. 깊은 고민 끝에, 나는 행동하기로 했다. 돈, 시간, 열정 모두 아끼지 않기로 했다.


세상을 바꾸는 일에 동참하기로 한 순간 내 주요 소통도구는 트위터가 됐다. 직원뿐 아니라 일본 국민 모두에게 알려야 할 일들이 잔뜩 있었다. 공포에 질려 걱정만 할 게 아니라 누군가 판단하고 움직여야 했다. 지진 당일, 그래서 난 이런 트윗부터 날렸다. “오늘부터 일주일간 소프트뱅크 가입자의 문자 서비스는 모두 무료입니다.” 다음날엔 “16일부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모금을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그대로 실행했음은 물론이다. 그렇게 매일 ‘네온사인 자제’ ‘구호식품 전달’ ‘자원봉사자에게 무제한 사용 가능한 휴대전화 지급’ 같은 진행 상황을 트위터로 알렸다. 기업인으로서, 이동통신 사업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하고 싶었다. 동분서주했지만 마음은 갈수록 지옥이었다.

# 총리보다 먼저 현장으로 달려가다 

손정의 회장이 9월 20일 도쿄에서 열린 ‘일본 자연에너지재단’ 설립 기념식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그의 뒤로 재단 로고가 보인다. [연합뉴스]
 미야기현 해변에 시신 수백 구가 방치돼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날, 트위터에 “나는 겁쟁이”임을 고백했다. 목숨 걸고 수습에 나선 이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한편으론 정부에 몹시 화가 났다. 당장 후쿠시마로 달려갔어야 할 총리는 “날씨가 나빠 헬기를 못 띄운다”며 도쿄에서 미적대고 있었다.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 사장은 “두통이 심하다”며 출근도 안 했단다. 내가 아는 한 올바른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언제나 ‘현장’이다. 나라도 가봐야 했다. 지진 발생 11일 만인 3월 22일, 이재민들이 모여 있는 후쿠시마현 다마라시의 체육관으로 차를 달렸다. 밀도 높은 전문가용 마스크로 단단히 무장하고 휴대용 방사능 측정기도 챙겼다. 도쿄에서 2시간20분. 현장에 다가갈수록 방사능 측정기의 경고음이 잦아졌다. 대피소에 다다랐을 즈음엔 아예 쉴 틈 없이 삑삑거려 마음이 몹시 불안했다. 차 안에서 5분 정도 고민했다. 이윽고 난 마스크를 벗어던진 뒤 대피소로 들어갔다. 거기 있는 사람 대부분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여 명의 주민이 체육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피소엔 방사능 측정기도 없었다. 구호품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고생이 말이 아니었다. 담요·의약품은 물론 물과 음식물마저 부족했다. 나는 체육관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눴다. 어르신들의 손을 꼭 잡고 “얼른 더 먼 곳으로 피하시라”고 했다. 주민들은 한숨짓고 눈물을 흘릴 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정부가 명확한 피난 지침이나 구호대책을 내놓지 않은 탓이었다. 세계 3위 경제대국에서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 피가 끓어올랐다.

# 놀라운 추진력·실행력 “손정의를 총리로”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날로 당장 주변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차례차례 방문했다. 피난민들이 머물 거처를 마련해 달라, 집단 이주 비용과 식대, 이재민 일자리는 소프트뱅크가 1년간 보증하겠다고 설득했다. 원전이 향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바른 선례를 만들고 싶었다. 무엇보다 나는 이동통신사업자다. 사고 지역 기지국이 붕괴되면서 수많은 휴대전화가 무용지물이 됐다. 통신만 이어졌어도 살 수 있는 생명이 있었을 게다. 난 큰 책임감과 그 이상의 무력감을 통절했다. 이에 앞으로 소프트뱅크를 통해 출시하는 대부분의 디지털 기기엔 지진속보 기능을 탑재하기로 했다. 스마트폰 화상통화를 통한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효율적 복구·지원을 위한 포털 사이트도 서둘러 구축 중이다. 4월 3일에는 피해 복구를 위해 100억 엔(1430억원)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언론은 “일본 개인 기부 사상 최고액”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더해 올해부터 은퇴 때까지 최고경영자(CEO)로서 받는 보수 전액도 기부하기로 했다. 내 연간 급여는 2억 엔 안팎이다. 소프트뱅크 기업 차원에서도 10억 엔을 따로 내놓았다.

 이런 내 활동에 대해 “결국 소프트뱅크를 홍보하려는 것” “일개 기업인이 과도하게 나선다”는 식의 비난 또한 없지 않았다. 실제 일본 재계는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지지와 격려를 보내주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트위터엔 “고맙다”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나도 동참하겠다”는 댓글이 이어졌다. “손정의를 총리로!”라는 글도 간혹 눈에 띄었다. 정부의 우왕좌왕 느린 대응에 실망한 탓인 듯했다. 정부도 뒤늦게나마 내 뜻에 화답했다. 도호쿠 지역 지방선거를 연기하고 사고지역 고아 현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 "경제인 이전에 생명 생각하는 사람 돼야”

 급박한 초기 대응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자 난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과거 나도 원전 건설을 지지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는 것이라면 더 이상 필요 없다. 경제성 또한 자연에너지보다 딱히 나을 게 없다. 환경보호는 물론이다. 원전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내 생각은 확고해졌다. 수명이 다한 원자로는 멈춰야 한다. 태양열·풍열·지열·바이오 에너지로 새로운 일본을 건설해야 한다.

 주장만 하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우선 10억 엔을 출자해 자연에너지협의회를 설립했다. 일본 47개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34개 현 지사들을 설득해 이 재단에 동참케 했다. 4월에는 동일본지역에 태양광산업 전문단지인 ‘솔라벨트’를 조성해 무상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지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역할도 할 것이다. 약 80억 엔을 들여 일본 전역에 10개의 대규모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자연에너지 개발을 위한 이 모든 사업은 애초 내놓기로 한 100억 엔 외에 추가 기부를 통해 추진할 계획이다.

 지진 발생 한 달쯤 뒤 난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국가가 어려울 때 경제인이기 전에 생명을 생각하는 인물이 되고 싶다. 내 시간의 30%를 이 국난을 위해 쓰고 있다. 지금은 평상시보다 일하는 시간을 1.5배 늘렸다.” 며칠 뒤엔 이렇게도 적었다. “원전 사고라는 국난이 아무 일 없이 끝나 ‘당신이 너무 소란스러웠다’는 비판을 받게 된다면 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기꺼이 굴욕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내 삶은 열일곱에 단신 미국 유학을 결심했던 그 순간부터 지진과 해일, 폭풍의 연속이었다. 굴욕과 실패 또한 없지 않았으나 어떻게든 다시 일어섰다. 난 인간의 의지를 믿는다. 뜻 높이 세운 청춘의 힘을 믿고, 타인을 위해 몸 바치는 선의와 열정을 믿는다. 내 그런 진심이 중앙일보와 함께 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도 충분히 전달되었기를 바란다.

정리=이나리 기자 <windy@joongang.co.kr>

 

손정의 시리즈 마치며 … 도쿄 소프트뱅크 회장실서 만나보니

[중앙일보] 입력 2011.11.14 02:23 / 수정 2011.11.14 10:18

손정의 회장이 자신의 집무실을 언론에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손 회장의 뒤로 사카모토 료마의 사진이 보인다.
초고층빌딩이 운집한 일본 도쿄 남부의 히가시신바시(東新橋). 그중 심장부 격인 시오도메(汐留) 시티센터에 소프트뱅크 본사가 있다. 지난달 28일 26층에 있는 손정의(54) 회장 집무실을 찾았다. 일본 1위 부자(올 초 ‘포브스’ 집계)를 만나러 가는 것치곤 절차가 간단했다. 신분증을 맡기고 통행증을 받은 것으로 끝. 26층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는 몇몇 사람 중 눈에 익은 인물이 있었다. 소탈한 웃음을 지으며 손님들을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배웅하러 나온 이, 손 회장이었다.

 잠시 뒤 사실상 그의 집무실인, 30여 명은 들어갈 법한 대회의실에서 손 회장과 마주했다. 장식이라곤 없는 방에서 단연 눈에 띄는 건 손 회장 자리 바로 뒷벽을 온통 차지한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전신사진이었다. 손 회장은 올 9월부터 지난주까지 본지에 연재한 ‘손정의 회장의 삶과 경영’을 통해 “료마는 내 인생의 영웅이자 롤 모델”임을 거듭 고백했다. 그는 그렇게 료마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하루 5~10개의 회의를 소화한다. 점심도 저녁도 도시락. 간혹 귀한 손님이 오면 전속 출장요리사가 사무실을 찾아 직접 요리를 낸다고 했다.

손정의 회장이 본지 연재를 기념해 써보내 온 좌우명 ‘’뜻을 높게(志高く·고코로자시타카쿠)!’
 손 회장은 “그간 한국 정보기술(IT) 업계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아 왔다. 늘 받기만 했는데 중앙일보 연재 덕에 나 또한 (한국인들에게) 뭔가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처음으로 정확히 전달할 수 있었고, 덕분에 비로소 한국과 상호자극을 주고받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게도 없는 사진을 찾아내고, 잊다시피 한 에피소드들까지 끄집어내 놀라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연재가 매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에피소드로 이어질 수 있었던 건 그의 삶 자체가 위기와 반전, 실패와 재기로 점철된 한 편의 대하드라마이기 때문이다. 19살 적 ‘50년 인생계획’을 세운 그는 매번 ‘미쳤다’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에 뛰어들었다. 26세, 중증 간염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자 절망하는 대신 책 4000권을 읽었다. 손자병법을 원용한 ‘제곱병법’을 창안했다. ‘일본에서 온 거품남’이란 비아냥을 무릅쓰고 ‘야후’ 대주주가 됐다. “망해도 좋다”는 각오로 일본 최초의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시작했다. 일본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을 통해 소프트뱅크 모바일을 설립했고, 5년 만에 가입자 수를 두 배로 늘리는 ‘기적’도 창출했다.

도쿄=이나리 기자 windy@joongang.co.kr

 

 

집무실엔 료마 전신 사진 … 손정의, 매일 그와 대화한다

[중앙일보] 입력 2011.11.14 02:24 / 수정 2011.11.14 10:18

소프트뱅크 핵심 2인이 본 손정의

마쓰모토(左), 가사이(右)
소프트뱅크 임원들에게 손정의 회장은 어떤 인물일까. 손 회장의 오른팔 격인 가사이 가즈히코(75) 최고재무책임자(CFO), 모바일사업을 책임지는 마쓰모토 데쓰조(68) 소프트뱅크모바일 부사장에게 ‘손정의 스타일’과 ‘소프트뱅크 정신’에 대해 물었다.

 -손 회장은 특별한 상사다.

 “그는 매우 매력적인 남자다. 대단히 명민한 한편 따뜻한 가슴과 순수함을 지니고 있다. 많은 이가 그의 솔직함을 좋아한다. 또한 논리적이고 편견이 없다. 결국 그와 일하는 걸 편하게 생각하게 된다. 소프트뱅크에선 일이 재미있다. 손 회장은 늘 큰 생각을 하며 그건 내게 엄청난 자극이 된다. 그는 일본 통신산업을 변화시킬 유일한 인물이다. 그 변화는 내가 오랫동안 꿈꿨지만 거의 실행을 포기하고 있었던 그런 것이다.”(마쓰모토)

 -소프트뱅크모바일의 놀라운 성장 이유는 .

 “첫째, ‘철학’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단순한 통신사업자라 생각 하지 않는다. 우리는 노력과 열정을 다해 사람들에게 삶의 질을 선사하는 걸 목표로 한다. 둘째, ‘조직’이다. 소프트뱅크 사전엔 관료주의가 없다. 놀고 먹는 사람도 없다. 조직은 슬림하며 직원들은 대단히 목표 지향적이다. 셋째, ‘실행’이다. 모든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이뤄지고 즉각 반영된다.”(마쓰모토)

 -소프트뱅크 문화의 특징은.

 “과거·관행·편견에 얽매이지 않는다. 난관이 예상돼도 일단 해 본다. 회사 이름처럼 유연한(soft) 사고로 가득 차 있다. 외부의 좋은 것을 적극 도입하되 본질은 잃지 않는다.”(가사이)

 -손 회장은 안정적 재무구조보다 미래를 향한 모험을 중시하는 듯하다.

 “ 그의 예측력은 천재적이다. 스케일이 크며 지식도 풍부하다. 물론 그는 도전적 경영자다. 하지만 한편으론 치밀한 재무 전문가 다. 내가 위험 을 지적하면 즉각 수정한다. 무모한 내기는 절대 하지 않는다.”(가사이)

도쿄=이나리 기자 <windy@joongang.co.kr>

◆사카모토 료마=일본 시코쿠의 최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나 서구식 해군 양성과 무역, 근대정부 수립에 앞장섰다. 1835년생. 31세에 암살당했다.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를 통해 국민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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