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노자와 융
송범석 기자 | melon@newscj.com
2012.10.04 15:47:29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노자(老子)와 융(Jung, Carl Gustav)을 비교하는 것은 상당히 지난한 작업이다. 두 사람이 살다간 시대는 2000년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특히 융은 그렇다 치더라도, 노자의 경우엔 ‘전설’의 인물로 불릴 정도로, 족적을 담아내기가 어려운 인물이다. 두 사람은 살았던 곳이나 생산해냈던 정신세계도 전혀 달랐다. 융은 서양의 전통정신의 토대 위에서 경험을 통해 학설을 세웠지만, 노자는 고대 아시아 대륙에서 나와 동아시아인의 심성에 깊은 정신적 인각을 남겼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하나의 접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융 자신이 노자의 <도덕경>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까닭이다. 융은 자신의 심리학설을 설명하는 가운데 노자의 도를 자주 인용하고 그의 사상을 자신의 정신세계에 둘러맸다.

동시성 관념의 선구자였던 융은 노자사상을 제시하는 가운데 <도덕경>의 다른 장구와 함께 ‘하늘의 그물이 성긴 듯하나 놓치는 것이 없다’는 제73장의 마지막 몇 줄을 놓고 “뜻이 있는 곳에 질서도 있다”고 말한다. 도가 ‘뜻’이라 할 때 그것은 융이 발견한 전체정신의 핵심이며 조절자인 ‘자기’의 의도와 일치한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도덕경>의 핵심 명제라고 할 수 있는 ‘무위(武爲)’에 대해서 융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이 ‘안 함’ 또는 ‘능률의 결여’는 꼭 파괴적인 것은 아니지요. 물론 그것은 서구인이 이해하는 뜻으로서의 능률을 저해합니다. 예컨대 능률의 미국식 개념은 무위의 원리에 의하여 틀림없이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즉 무위와 미국식 능률, 이 둘보다 더 큰 대비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식 능률은 동양에서의 능률의 결핍보다 훨씬 파괴적입니다.”

융의 발언은 산업화의 맹신이 지배하던 서구 사회에 새로운 충격이었다. 이 지점에서 융은 서양의 능률과 동양의 무위를 접목시킨다.

“그러니 서구적 관념인 능률에다 동양의 무위를 약간 보탠다면 아마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능률이 괴로움을 겪게 될 테지만, 서구적 능률은 인간생활을 집어삼키는 괴물이자 용이지요. 무위는 능률의 감소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활에 대해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느 지점까지는 우리의 심리학적‧생존적 존재에 대해 훌륭한 약이 될 것입니다.”

이처럼 융은 동양의 무위를 서양의 지나친 외양화를 치유할 수 있는 일종의 묘약으로 평가했다.

이 책은 노자의 <도덕경>을 융의 분석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하고 있다. 노자의 통찰이 우리 마음의 심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고찰한다. 둘의 사상을 한 권의 책에 녹여내기 위해 저자는 융의 분석심리학적 입장에서 노자의 말들을 풀이하고 동시에 노자의 입장에서 융의 생각을 조명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동과 서를 아우르는 정신의 전체상을 편견 없이 해석해내고 있다.

이부영 지음 / 한길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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