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게 이건희의 승리에 대한 노하우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승리는 위대하다. 승리는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인식이 진실이듯, 승리만이 진실이다. e첨단한방병원의 특수 교정재활치료 시스템이 이 세상에 의료의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오직 승리만이 간절히 필요한 시기다.


대한민국의 거인, 삼성 공화국의 거인 "이건희"

대한민국에서 너무 미워만 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좋아할 수도 없는 대한민국의 거인 "이건희"


벌써 몇년이 지났는데, 참 재미있는 책이다. 강준만 교수의 질문이다. 우리는 정말 이건희를 알고 있는가?






한국사회의 모든 담론에 적용되는 불멸의 법칙

- 한국사회의 모든 조직과 집단의 문제는 항상 일방적 지지와 일방적 반대만이 있다. 중간적 입장은 매우 희귀하다. 양극단의 전선이 형성된 "전시체제"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전시체제에서 내부비판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것은 이적행위로 간주되기 쉽다. 내부의 문제는 스스로 곪아서 터질때까지 내버려 둔다는 사실상 철칙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이다.

- 한국의 최대재벌인 삼성그룹의 총수 이건희 문제도 그러한 관점으로 보야야 한다.

- 이건희는 어려서부터 특수한 환경에서 특수한 교육을 받고 자라난데다 그렇게 자란 극소수의 사람들 중에서 워낙 특수한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인간에 대한 우리의 기존지식으로는 파악이 안되는 인물이다.

- 이책은 이건희와 삼성의 입장에도 서보기도 하고 그 반대자들의 입장에도 서보겠다는 관점이다.

제 1장. 이건희는 누구인가?

"기업경영의 관점에서 보는 천재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건희는 천재이거나 천재에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나는 유치원때부터 혼자였다.

- 이건희는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이병철, 어머니 박두율 8남매중 끝에서 두번째(3남 아들 중에는 막내)로 태어났다.

- 초등학교 5학년때 일본으로 건너가 초등학교를 졸업.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고 이지메까지 당했다.

-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아버지를 졸라 서울사대부중에 입학했다. 그는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고 놀림받았던 것처럼, 한국에서는 서툰 한국발음으로 "일본놈"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자랐다.

- 이후 연세대에 입학했다가 일본으로 유학가 와세다대학 상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66년 귀국.

- 1967년 홍라희와 결혼. 홍라희는 이승만 정권에서 법무, 내무부장관을 지낸 홍진기의 맏딸! 홍진기의 큰아들이 바로 중앙일보 회장인 홍석현이다.

기계와의 사랑

- 그는 일본에 있을때 하루세끼를 라면으로 떼우기도 할정도로 라면을 자주 먹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세번은 라면을 먹는다고 한다.

- 이건희가 외로운 객지생활에서 주로 즐긴 것은 영화였다. 일본유학시절 초등학고 3년간 1300여편 이상의 영화를 보았고, 지금도 1만개가 넘는 비디오를 소장하고 있다.

- 머리가 좋고 고독한 사람은 기계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희도 마찬가지 였다. 그는 기계와의 사랑에 빠진 첨단기술 지향적인간이었다. 그게 아예 취미다.

- 조지워싱턴대 경영학과를 다닐때 차를 여섯번이나 바꾸었는데 이는 차를 분해 조립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일본유학시절에서 새로나온 전자제품을 사다 뜯어 보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 반도체의 성공은 그 덕분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건희는 주변의 만류를 무릎쓰고 74년 반도체사업에 뛰어들었다. 파산위기에 직면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10개월만에 손목시계용 반도체를 개발하고, 77년 흑백티비용 트랜지스터, 81년 컬러티비용 집적회로, 83년에 64kd램 개발 성공 등의 신화는 이건희의 이러한 신념과 체질의 산물이다.

이건희는천재인가?

- 이건희의 말이다. "천재는 공부만 잘하는 100점만 맞는 사람은 아닙니다. 각자 끼가 하나씩은 있고 놀기도 잘하고 공부도 효율적으로 하고 창의력이 뛰어난 그런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빌게이츠같은 사람이죠"

- 이병철의 비서 박세록의 말이다. "회의할때나 업무사 임직원들의 발언 요지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여 주거나 옳은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데 탄복할 정도로 천재성을 발휘했다. 나는 아직까지 남의 말을 그렇게 알기 쉽도록 잘 정리해 주는 사람은 만나보질 못했다"

- 이건희의 고교동창 홍사덕의 말이다.

"당시 삼성에서 간부한 분이 내쳐졌어요. 그런데 고교생 건희가 아버지께 그분의 복권을 고집스레 권유하더군요. 그분은 나중에 삼성발전에 큰 기여를 했지요. 당시 건희에게 "고등학생이 뭘 안다고 그러느냐"라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건희가 그러더군요. "나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제일 열심히 한다고""

엽기적인 집념과 승부욕

- 이건희는 천재형의 강한 집중력, 집착력을 내놓았다.

사례1. 93년 잇따른 해외회의에서 이건희는 일본의 역사를 알기 위해 45분짜리 비디오 테이프 45개를 수십번 봤다

사례2. 신경영회의에서 "24시간 잠을 안자며 구상할때도 있었지만 48시간 꼬박 안잔것은 이번이 처음"

사례3. 김영삼 정권시절 스페인 국왕이 방한했을 때 다음날 청와대 접견행사가 있었는데도 밤새 책을 잃고 눈이 벌개져서 청와대에 가기도 했다.

사례4. 진도개의 구분법에 대한 이야기

사례5. "미국 출장을 갈때 필요하다 싶으면 서울에서 LA까지 12시간 동안 중앙일보를 본다. "중"자에서 끝페이지 광고까지 한자도 안빼놓고 읽는다"

사례6. 한손을 묶고 24시간 살아봐라.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이를 극복해봐라. 나는 해봤다. 이것이 습관이 되면 쾌감을 느끼고 승리감을 얻게되고 재미를 느끼고 그때 바뀐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사례 7. 제일 모직 소속 국가대표 선수와 겨룰정도의 탁구실력을 가지고 있는 이건희는 선수들이 지쳐서 그만두자고 할정도까지 탁구를 쳤다.

패거리 문화에 대한 상대적 자율성

재벌가는 왕가와 비슷하다.

부자는 보통사람과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의 말이다. "이회장은 열등감과 강박증 소유자로 보인다. 삼성이 만들면 다르다거나 일등주의를 고집하는 것은 내적 열등감의 발로이다. 감정개입없이 사고와 원칙을 내세우는 것은 강박증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 재벌가는 왕가와 비슷하다고 보면된다. 대재벌의 운영구조는 국가운영구조와 비슷하다. 그래서 최고 리더십의 공백은 상상조차할 수 없는 일이다. 이병철이 타계한 87년 11월 27일 당일 그것도 사망소식이 전해진 25분 만에 삼성은 긴급사장단 회의를 열어 이건희를 그룹회장으로 추대한 것도 다 이러한 이유때문이다. 이병철은 71년 건희를 2대회장으로 지명할 것을 밝힌 유언장까지 작성해 놓았다.

- 우리는 아무리 멀쩡한 사람이라도 대통령이 돼 청와대에 들어가기만 하면 달라지게 되어 있다는 말을 듣곤 한다. 최고권력자의 고독이 낳을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한 말이다.


- 사실 대재벌총수는 대통령보다 훨씬 더 고독하다. 대통령은 5년임기가 있지만 재벌총수는 평생임기다. 어려서부터 황태자교육을 받고, 내외의 도전과 위치의 불안정으로 말하자면 재벌총수가 대통령보다 더하다.

왕자의 난

- 삼성의 권력투쟁은 정치판의 권력투쟁 못지 않은 것이었다. 그것 역시 대권이다.

- 태종대왕이 3남 세종대왕에게 통치권을 넘긴 것이 태종대왕이 역사에 남긴 위대성이듯이 .....

- 73년 왕자의 난. 둘째 아들 창희가 아버지의 비리를 들춰내 진정서를 만들고 이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당시 박정희는 "자식이 아버지를 모함하고 고발한다는 것은 천륜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사건을 묵살하라"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이병철은 구테타를 진압한후 "이맹희 묶어두기'에 들어갔다.

- 장남 맹희의 말이다. "아버지로서는 건희에게 모든 것을 물려준 상태에서 혹시라도 성질급한 내가 어떤 일을 저지르지 않을까 염려를 했던 것이다. 더욱이 나는 아버지의 압력에도 굽히지 않는 억센 성격을 가졌으니 아버지로서도 당신의 사후에 내 문제가 걱정되었을 것이다"

- 이맹희 묶어두기는 잔인했다. 맹희를 정신병으로 몰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려는 시도를 하기 까지 했다. 진찰없는 정신병 소견서를 구해 삼성비서실은 맹희를 강제 입원시키려했을때 맹희는 대비책으로 평소에 거실의자아래에 늘 휘발유통 3개를 준비해두었다. 맹희를 끌고 가려하자 맹희는 휘발유를 뿌려 가스라이터를 들고 그들을 쫒아낸 일도 있었다.

재산을 둘러싼 권력투쟁

- 삼성분할이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것은 이병철이 타계한지 8년이 지난 95년 2월 가족회의에서였다.

- 제일제당, 안국화재는 장남인 이맹희가로 넘어가 오늘날 제일제당 그룹이 되었고

- 제일합섬은 새한미디어에 편입되어 이창희의 부인 이영자와 그 아들 이재관에게로 넘어갔고

- 전주제지, 고려병원은 이인희에게 넘어가 훗날 한솔그룹이 되었으며

- 신세계 백화점은 이명희이 몫이 되었다.

- 이맹희의 장남 이재현은 계속 이건희에게 요주의 인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건희의 고독

- 사람은 길들여지기 마련이다. 고독을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고독이 견딜수 없는 문제이겠지만 어려서부터 익숙한 상황이 되면 나중엔 그걸 즐기게 된다. 라이프스타일도 그렇게 형성되기 마련이어서 고독을 방해하는 생활을 귀찮게 여기고 짜증까지 내게 된다.

- 이건희의 취미는 "연구와 생각"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는 무엇이든 혼자하기를 좋아했다. 그는 골프도 혼자친다. 그는 혼자해야 골프를 더 잘 이해하고 더 잘칠수도 있다는게 지론이다.

- 그의 골프스승도 비디오였다. 그는 비디오를 보면서 샷 하나하나를 연구분석하고 스윙동작까지 교정했다는 것이다.

- 이건희는 고독에 익숙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술도 하지 않으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에서 큰 기쁨을 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는 맥주 한두잔 이상 못마시며 술자리에서는 사이다를 마신다. 사교성도 없는데다 노래도 못한다. 사람이름도 그렇게 못 외운다고 한다.

- 정치에 입문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이건희의 말이다."나는 사람 이름을 못외우는데 천부적인 재주가 있습니다. 상무급 200명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1천명정도 되는 이사의 이름을 얼굴과 매치를 못시킵니다. 아마 나는 삼성안의 국회의원에 나간다고 해도 당선되지 못할 것입니다"

- 이건희는 가족을 끔찍이 아낀다. 장남의 서울대 입시원서 접수날 그 상황을 체크하면서 하루종일 대학주변을 서성거렸다고 하니 보통 아버지와 다를바없는 자식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이건희를 세상과 차단하는 "인의 장막"

- 89년 오효진과의 인터뷰다.

오효진 "개를 키우면서 얻은 철학같은게 있나요?"

이건희 "개는 절대 배신을 안하죠. 배신할 줄도 모르죠"라고 대답했다.

- 위로 높이 올라갈수록 배신에 대한 방어기제가 발달했을 것이라는 건 미루어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배신은 일상의 게임이다.

- 이건희의 말이다. "나는 속았다. 비서실장, 사장, 팀장들이 모두 날 속였다. 집안에 병균이 들어왔는데도 5년 10년간 나를 속였다. 측근들이 이정도이니 중역들은 어느정도이겠는가?"

- 93년 이건희가 일본방문당시 삼성직원들은 이건희가 방문할때 시장에 나아가 웃돈을 얹어 줄테니까, 삼성전자제품을 진열해달라고 읍소했다. 이건희의 기쁨이 곧 자신의 안전과 성장의 보증수표라는 걸 너무나 잘알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 이건희가 제발 그러지 말라고 수도 없이 많이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달라졌을까?

- 삼성의 한 고위 임원의 말이다. "회장은 자신이 보아야 할 것, 자신이 알아야 할 것의 30%밖에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고 있다"

- 대통령과 재벌총수들이 유념해야할 말이다.

오그라질 뒷다리 잡기

왜 이렇게 일하기가 어려운가?

- 이건희는 자신이 거느린 삼성인들이 자신의 뜻대로 따르지 않을 경우 자신이 속임을 당하고 배신을 당한다고 느낀다.

- 그는 이렇게 개탄한 바가 있다' "삼성의 일에 손댄이래, 나는 수백번도 더 속았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내가 신경질내고 고함쳐서 겨우 움직이고, 또 움직이고 보니 잘되고 관심이 쏠리고,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해서, 위에서 책임을 진다는 말까지도 안듣던 사람들이 이제서야 어쩌고 저쩌고 하다. 왜 이렇게 일하기가 어려운가?"

- 이건희가 즐겨쓰는 말에 "오그라질"이라는게 있다. 이건희가 "이런 오그라질 일이 있는가"라고 말하는 건 매우 격한 감정의 표현이다.

- 오그라질 일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뒷다리 잡기"이다. 그는 93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뒷다리 잡는 것"을 삼성의 고질병으로 결론짓고 그 이유가 뭐냐고 반문했다. 그는 스스로 답하기를 "이유 없다. 악의도 없다. 그저 막연한 습관이다. 과거 20-30년간 굳어진 막연한 버릇이다"라고 단언했다.

"알면서 뒷다리 잡는 사람은 없다. 알고 잡는 사람은 머리 좋은 사람이다. 모두 자기가 뒷다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며 뒷다리 잡고 있다"

- 그는 또다른 고질병으로 신뢰부족을 지적했다.

"상대에 대한 신뢰가 너무 없다. 자신은 전혀 행동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상대는 못믿는다고 말하는가. 자신은 노력하지 않으면서 남의 비난은 어찌 그리도 잘하는가?"

"뛸 사람은 뛰어라. 빨리 걸을 사람은 빨리 걸어라. 아무도 안 말린다. 걷기 싫은 사람은 앉아서 놀아라. 일 안한다고 못한다고 내쫓는 사람없다. 인간은 일하지 말고 놀아라해도 일하게 되어있다. 한달도 못논다. 그러면 뭐냐? 남의 뒷다리는 잡지 말아라. 뛰는 사람, 빨리 걷는 사람, 앞으로 가는 사람 뒷다리만 잡지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라"

- 그는 어떤 유형의 직장인을 가장 싫어하느냐는 질문에 "거짓말, 변명,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억지, 뒷다리잡기"를 들었다.

마누라 자식빼고 다 바꾸자.

- 이건희의 말이다. "나 자신의 문제점이라는 것이 자기 자랑하는 사람과 엄살부리고, 과장하고, 변명하는 성격을 제일 싫어하는 타입이라는 것입니다"

7.10제로 전락한 7.4제

- 세계의 경쟁무대에서 삼성이 처해있는 현실에 대해선 그 어떤 사람보다 이건희의 현실인식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이건희가 월급쟁이들의 고충을 어렴풋이 이해한다고 해도 그들의 생존술, 처세술 그리고 심리적 배경에 대해 그들과 주파수를 맞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 7시 출근 4시 퇴근은 10퇴근으로 변질해버렸다.

면종복배는 저항이다.

- 이건희가 분개하는 월급쟁이들의 겉다르고 속다른 이중성(면종복배)은 이 험난한 세상에서 그들의 현명한 "생존 전술"일 수 있다. 월급쟁이들에게 저항이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인간은 저항을 전혀하지 않고 살수가 없는 동물이다. "면종복배"야 말로 최상의 저항인 것이다.

- 역설스럽지만 그래서 리더십이 중요하다.

이건희 타운 파동의 의미

부자와 빈자를 분리시키는 이중도시

- 한 논평가는 "아주 부자인 사람과 가난한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있을때, 그것은 완전한 정치적 다이너마이트와 같아 사회혁명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인지 미국사회는 부자와 빈자의 거주지역을 완전 분리시켜 사로 상종하지 않게끔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 놀랍게도 한국도 점점 미국의 그런 "이중 도시화"현상을 추종하고 있다.

이건희의 복합화 철학

- 93년부터 이건희는 자신의 복합화철학을 이야기 했다. "빌딩을 옆으로 넓히지 말고 위로 높이자. 좁은 국토를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한곳에 모든 임직원이 모여산다면 40초만에 모일 수있다. 이게 바로 경쟁력이다. 물류 비용이 줄고 경영스피드가 제고된다. 교통체증도 없어진다. 이게 바로 복합화다"

좌절된 삼성市의 꿈

- 기업도시는 이건희의 복합화 구상의 연장선상에 있다.

- 2004년 9월 "민간복합도시개발특별법안"을 마련하여 기업도시 시범사업지 4곳을 선정했다. 하지만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은 하나도 참여하지 않았다. 규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세상과 닫혀 있는 이건희

- 이건희의 복합화 구상은 국가적 규제에 의해 번번히 좌절되었다.

왜 이건희 집앞은 살벌한가?

- 이태원동 135번지 일대에서 10년째 공사를 볼인 이건희 타운은 전체대지 1650평, 연면적 2744평, 주차차량 45대, 지하 3층의 요새다. 땅값 250억원에 공사비를 합하면 800억이 넘는다.

- 이건희 타운엔 전혀 새로운 시설이 들어섰지만 그게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다는데 묘미가 있다. 심지어 건축자재를 운반하는 차량도 안으로 들어가질 못하고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 인계해야 했다.

- 이웃에 살고 있는 농심재벌가 신동익부부가 10년째 지속되는 공사때문에 불면증에 걸려 병원신세를 지고 소송이 붙었다.

- 삼성-농심가의 분쟁은 4월 28일 농심가의 공사진행중지 청구소송을 4개월만에 취하함으로써 일단락되기는 했지만 모든 게 끝난게 아니다.

- 수십억짜리 저택을 가진 부자주민이 이건희에게 서신을 보내 "인간답게 살게 해달라"고 호소했는데도 그것이 제대로 경청되지 않을 정도라면 이건희가 이끄는 삼성공화국에 대한 어떤 호소도 먹혀들지 않을 수 있을 것인지 그점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건희의 "코쿤"기질

은둔의 경영인

- 이건희 타운은 코쿤을 연상케 한다. 이건희는 "은둔의 경영인"이라는 별명답게 코쿤의 특성을 보인다. "나는 티비에서 방영되는 다큐멘터리를 거의 빼놓지 않고 본다. 시간이 맞지 않을때는 녹화해두었다가 나중에라도 본다. 우리집 지하에 있는 서재에는 그렇게 녹화한 테이프가 100개쯤 있는데, 이것을 회사의 정보센터에 보내 여러사람들이 돌려보도록 하고 있다"

- 삼성직원들은 호텔방을 이건희의 집과 똑같이 꾸며놓는다. 이렇게 하여 해외여행을 자주다니는 이건희의 코쿤 성향을 해결한다.

이건희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는 언론

- 이건희의 그런 코쿤기질때문에 언론은 더욱더 그의 모든 일거수 일투족에 촉각을 세워 보도하곤 한다.

코쿤과 워크홀릭의 차이

- 코쿤은 워크홀릭과 다르다. 김우중은 지난 30년간 딸 결혼식과 아들 장례식 등 단 이틀만 쉬었다는 워크홀릭이었다.

- 이건희는 일중독증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차라리 "생각 중독증"에 빠져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 빌게츠는 1년에 두차례씩 미국 서북부의 한 별장에 은둔해 마이크로 소프트의 장래를 결정지을 전략과 아이디어에 대한 연구를 몰두한다고 한다. 그것을 생각주간이라고 부른다.

수줍은 황태자.

- 늘 생각에 빠져 있는 이건희가 내향적이고 수줍어 하는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무도 이건희를 모른다.

- 삼성의 2인자 이학수 본부장의 말이다. "선대회장이 나를 찾으면 왜 찾는지, 무엇을 물어볼 것인지, 뭣때문에 야단을 칠 것인지 대강 짐작할 수있었다.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나를 찾는다고 하면 왜 부르는 건지 감을 못잡는다. 무슨 얘기를 꺼낼지 예측불허이기 때문이다"

말없는 사람

- 삼성에서 회장의 뜻을 읽어내는 이심전심 능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건 이병철때부터였다. 경영천재의 오기였을까? 이병철은 자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반문하는 경우 두번다시 말하지 않는걸로 악명이 높았다.

- 이병철은 말 대신 생각을 선호했다. 전경련 부회장 김입삼의 말이다. " 이병철회장은 항상 세상의 고민을 혼자 짊어진 듯 늘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 이건희가 부회장이 되자 이병철이 직접 붓으로 써준 글귀도 "경청"이었다. 효자인 이건희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어찌나 말을 아꼈던지 한동한 이건희 부회장은 말을 못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 지금 이건희의 좌우명도 "경청(傾聽)"이다.

- 누구건 말을 적게하면 "사고의 깊이"가 더해질 수있다는 가설이 가능하다. 말을 죽이면 발산되지 못한 에너지가 생각쪽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말 많은 사람치고 창의성 강한사람을 보기 어려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건희의 "다중적 품성"

토플러, 드러커를 즐겨 읽는 이건희

- 이건희의 눈은 늘 세계를 향하고 있다. 그의 학구열은 대단하다. 이건희는 늘 꿈을 꾼다. 그는 앨빈토플러, 피터드러커 등의 미래학자들의 책을 즐겨 읽는다.

이건희의 운동권 정서(다중적 품성)

- "한국내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집단아라고 하는 우리 삼성까지도 학연, 지연에 따른 개인적 이냏가 조직의 이익에 우선하는가 하면 타율, 획일, 이기주의, 권위의식, 흑백논리, 불신풍조에 깊이 젖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문제의식조차 갖지 못하는 도덕불감증에 걸려 있는 현실을 보면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의료기는 GE의 웰치하고 지멘스, 일본 몇몇 기업이 단합하고 있는데 이들이 인류의 역적이다. 8만달러면 양산할 수 있는 것을 100만달러를 받고 있다. 의료기에서 폭리를 취하여 사람의 생명을 팔아먹는 것은 절대 안된다"

조지소로스를 어떻게 볼것인가?

- 소로스 역시 다중적 품성의 소유자로 분류될 수 있는 인물이다.

제 2장. 이건희의 경영관

"우리는 사소한 것을 따지고 기록하는 것에 대해 쩨쩨하다고 생각하는 실속없는 대범증부터 고쳐야 한다. 이런 허세가 대충대충 마무리하는 타성으로 이어져 우리제품, 우리사회의 기본을 흔든다"

이건희의 본질주의 경영

본질주의란 무엇인가?

- 이건희는 본질을 좋아한다. "우리는 항상 기업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관상은 인재에 대한 본질주의적 집착

- 이병철의 말이다. "눈은 마음의 창이고 입은 진실성을 나타내며 코는 의지를 반영한다" "면접시험에서는 반드시 눈동자가 맑은지, 인중은 뚜렷한지, 눈을 불안하게 돌리지 않는지, 손발을 움직이지 않는지 등을 관찰한다"

- 삼성전자 인사담당 상무 안승준의 말이다.

"세상을 좋게 보는 사람, 흉하게 보는 사람이 다 나타납니다. 왜 그럴까요? 말하는 행동, 표현, 톤, 눈빛, 용모에 그게 드러나니까. 자신이 없으면 눈길이 아래로 내려가요. 건방지면 몸이 건들건들대요. 그건 누가 봐도 똑같아 보입니다"

이건희의 입체적 사고

- "기업의 위상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시기에는 외관상 난삽하기 이를데 없는 표피적인 변화를 꿰뚫고 사물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내가 그룹의 임직원들에게 본질적 사고, 입체적 사고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까닭이다. 사물의 본질을 알지 못하면 주체적인 삶을 살수 없다. 언제나 수동적인 겉도는 존재로 남고 만다. 가령 지하철을 타더라도 그 운행원리를 알지 못하면 그것을 타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태워지는 것에 불과하다. 삶이란 언제나 그러한 것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수없이 많은 물건을 분해해봤다. 그 속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일을 누구보다 많이 하였다고 자부한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나는 사물의 외관이 던지는 의문에 대해 겉모습 뿐만 아니라 그 이면까지도 들여다보는 훈련을 받을 수있었다"

"나는 사물의 본질은 그것에 대하여 최대한 다각적으로 접근할때 가장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20년간 삼성은 매출이 450억원규모에서 35조원으로 늘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그런 줄 알지만 착각입니다. 70-80년대 고도성장은 반도체, 주식회사, 컴퓨터의 출연에다 생산대국 일본에 인접한 지리적 이점이 있었고 소팔고, 논팔아 교육을 시킨 결과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입니다. 그런데 삼성을 포함해서 너나없이 제 잘난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어 그것을 깨우치려는 것입니다"

업(業)의 특성과 직관

- 이건희의 업에 대한 정의이다. "사업을 영위하는 기본정신과 목적이 무엇이며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핵심기술, 제품특성, 유통구조상의 특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관련 법규, 제도, 기술개발, 소비자의 의식변화 등 외부여건 변화의 추세를 아는 것이다"

- 90년대 초 이건희는 신세계백화점 사장에게 백화점 업의 특성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다들 헷갈려하고 있는데 이건희는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백화점 사업은 부동산업이며, 호텔은 서비스업이기보다는 장치산업이며, 반도체업은 시간산업이며, 시계는 패션업이며, 가전은 조립양산업이라는 것이다"

- 72년 이병철은 직관을 중요시하는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숫자만 가지고 결론이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럴때 최고경영자의 직관이 사세를 판가름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중요한 단서가 붙는다. 그 직관을 스스로 확인할 만한 토대가 있어야 한다"

- 이건희도 직관을 중요시한다. 그는 21세기형 경영자는 미래 변화에 대해 통찰력과 직관으로 기회를 선점하는 전략을 창조할 수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건희의 "질(質) 경영"

- 이건희는 위기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이른바 "메기 경영론"을 제시했다. 아버지가 직접 들려준 경험담이다. 논에다 미꾸라지만 키운경우와 메기를 함께 넣어 키운 경우 수확할때 메기를 넣어 키운 쪽 미꾸라지가 살이 통통하다는 것이다"

- 개인이건, 조직이건 위기감 속에서 문제의식이 싹트고 적당한 긴장감은 활력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이건희의 평소 신념이다.

- 이건희의 몰입과 집착력은 대단하다. 시작하면 반드시 끝장을 보고야 마는 성격을 갖고 있다. 무엇이든 한번 파고들면 끝장을 보고야 마는 이건희의 극단주의 기질은 질에 올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건희의 독특한 수사법

질경영에서 천재경영으로

이건희의 암묵지(暗默知) 경영

일본기업의 성공비결은 암묵지

- 이건희 경영철학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암묵지 경영"이다. 기업에게 정말 필요한 지식은 바로 보통 명문화하기 어려운 암묵지이다.

기록문화를 강조하는 이건희

- 이건희의 암묵지 경영론으로 들어가보자. 그는 끊임없이 기록을 강조한다. 이건희는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기술이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못한 것은 기록문화의 부재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이건희는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기록을 잘하고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나라일수록 일류라고 주장한다.

"기록문화가 없다. 지점장에서 전무, 상무, 이사 모두가 인수인계할때 책이 한권인계가 될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그냥 왔다가 그냥 가버린다. 자신이 만났던 사람, 성공사례, 실패사례 등을 기록으로 남겨야하는데....기록문화가 정착되지 않아서 모든 부문에서 우리는 단절의 연속이요, 남이 언젠가 했던일을 기록하지 않음으로써 얼마나 큰 낭비를 하고 있는가?"

기록의 공유를 강조하는 이건희

- 이건희는 기록의 공유를 강조한다. 실수의 기록과 함께 그 기록을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보의 상하교류가 중요하다. 정보의 공유가 이루어지면 회사. 그룹은 하나라는 공동체의식을 가져올 수있고, 이는 또 부서, 회사간 벽을 허무는 계기가 될 수있다는 것이다"

- 이건희의 그런 강력한 의지에 따라 삼성은 99년부터 정보화 비전을 수립하고,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인 싱글을 구축하여 속도경영을 실현해 냈다.

- 미국의 포브스지는 04년 7월 26일자 삼성의 성공스토리를 표지 기사로 다루면서 삼성의 속도경영이 세계초일류 기업이 된 비결이라고 말했다. 삼성의 속도경영의 기본은 회의이며, 삼성의 회의문화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기록문화이다. 삼성인들은 일상적으로 정보 수집활동을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암묵지 경영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 삼성은 괜찮은 정보다 싶으면 누구나 이를 문서화하거나 사내의 pc네트워크에 입력한다. 이것들은 모두 정리되고 집약되어 최고경영자의 책상에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어떤 때는 즉각적인 조치가 내려오기도 해 삼성맨들의 정보마인드를 다시 일깨우곤 한다.

이건희의 디자인 경영

design, or resign

- 1979년 영국총리에 취임한 대처는 "디자인하라, 아니면 사직하라"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미술적 감수성을 경영과 접목시키는 데에 능한 MFA는 기업내에서 브랜드 디자인 전략을 총괄하는 CDO(chief design officer)로 성장하는데, 삼성전자 등 국내기업들도 디자인을 총괄하는 CDO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디자인 문화를 선도한 이건희

- 한국정부는 디자인개발전략을 통해 산업전반에 디자인을 결합 2008년까지는 세계 7위(현재 12위)의 디자인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한국 디자인 역사에 일등공신은 두말할 필요없이 바로 이건희이다.

- 2005년 4월 14일 이건희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디자인 경영전략회의를 열고 디자인의 중요성을 역설함으로써 국내업계에 불고 있는 디자인 열풍을 더욱 뜨겁게 달구는데 기여했다.

- 그는 96년에 산업디자인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외국인 교수 5명을 채용해 IDS를 설립해 운영, 현재 삼성전자에 디자이너는 470명이나 있다.

학벌주의는 창의력의 원흉

- 디자인 경영과 관련하여 이건희의 탁월한 점은 그가 적어도 디자인 분야만큼은 학벌주의가 발전을 가로막는 원흉이라는 걸 제대로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건희는 포스트모던 경영자

스필버그 사건

- 이건희는 기업인이 안되었다면 영화사를 했거나 영화감독을 했을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영화에 심취한 인물이며 그의 지하실에는 VTR이 15대나 있어 마치 방송국 같다.

이건희의 입체적 사고

- 영화는 이건희에게 취미이상의 것이었다. 그는 영화를 통해 앞서 지적한 입체적 사고라는 것을 개발해 냈는데, 이건 영상매체적 사고로 포스트모던 경향이 농후한 것이었다. 입체적 사고란 영화를 감상할때 주연의 입장에서만 보지 말고 모든 등장인물 각자의 처지에서 보면 영화의 재미가 점점 커져 평켠 스크린에 비치는 영화가 입체영화로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휴전직후 소학교를 일본에서 다녔던 나는 이국생활의 외로움 탓인지 한때 영화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일요일 아침 조조부터 시작하여 심야프로까지 보고나면 어떤땐 하루에 5-6편의 영화를 보는 일도 적지 않았으니 2년여 사이에 본것만도 1천편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처음에 100-200편정도를 보고나니 그때부터 대충 다음스토리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있었고, 어느 단계를 넘어서고부터는 단순히 영화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배우의 동작 하나하나에서 촬영당시 감독의 지시와 카메라맨의 위치, 심지어 배우의 마음가짐까지도 선명히 느껴지는 것이었다. 실로 한편의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감독과 배우, 카메라맨과 조명기사의 입장이 번갈아 되어보며 이 장면은 이렇게 처리하면 어떨까, 저장면은 카메라의 위치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하는 등의 여러가지 궁리를 하다보니 영화를 보는 감흥도 남다른 바가 있었고 마침내는 전문가 못지 않은 식견도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들면 지도를 보자. 그림으로 보면 평면이다. 그러나 기구를 타고 본다고 하면 위치, 크기, 각도 등이 완전히 달라진다. 영화를 예를들어 보자. 단순히 영화를 재미로 보지 말고 다양한 입장에 스스로 서 보아라. 주연입장, 좋은 사람, 악당, 조연입장, 조연입장에서 주연입장, 작가입장, 영화가 사회에 미칠 영향, 카메라맨의 앵글처리 등등 다양한 입장에서 봄녀 그 영화가 새로워진다. 영화하나로도 큰 공부가 된다. 영화가 한사람의 일생을 두시간으로 축약시킨다고 보면 그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나겠는가? 이게 입체적 사고다"

- 입체적 사고는 커뮤니케이션의 장애를 일으키기 쉽다. 글과는 달리 영화는 각자 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희는 한국의 압축형

- 이건희는 물리적 출근을 혐오한다. 그는 꼭 회사에 출근해야할 필요는 없다. 어디에 있든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재택근무의 실천적 선구자였다.

- 이건희는 한국의 압축형이다. 한국이 전근대-근대-포스트근대가 동시에 공존하듯이 이건희에게도 그 세가지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건희의 인간성 개조론

이건희의 도덕경영

- "기업이 돈 잘버는 기계여서는 안된다. 도덕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이 되어야 한다.

- 93년 프랑크루르트 선언에서 "우선 시급한 것은 인간미와 도덕성의 회복이다. 도덕성을 회복하고 인간미를 살리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이건희의 가상현실

이건희는 종교인인가?

이건희 골프론


인간성 개조론의 효과

첫째, 세계기업 역사상 회장이 일반사원들에 비해 더 높은 "도덕적 우월감"을 과시한 경우는 처음

둘째, 이건희 팬들 가운데 이건희의 "인간성 개조론"에 대해 감동먹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 이건희는 80년대 말부터 잭웰치의 위대성을 감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 잭웰치와 GE에 대해 철저히 분석할 것을 지시하여 벤치마킹함.

- 잭 웰치의 넘버원 경영, 스피드 경영, 6시그마 운동

- 이건희의 1등경영, 속도경영, 질 경영 등으로 구현됨

셋째, 적어도 다른 기업의 샐러리맨들에 비해 삼성인들의 도덕성이 비교적 높다는 것에 대한 증언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인간성 개조론은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3장. 이건희 리더십의 정체

"이건희의 리더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그가 혼자서만 너무 유능하다는 점이다. 천재의 고독과 비극일까?"

이건희의 제왕적 카리스마

이병철은 삼성인들에게 천황

- 이병철은 1년에 한번 열리는 사장단 회의에서 경영실적이 부진한 사장들에겐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할정도로 무서운 호통을 치곤 했다. 어찌나 혹독했던지 "어전회의"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 이병철의 카리스마는 단지 돈의 덕분이라기 보다는 특별히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 이건희는 그러한 이병철을 배웠는지,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법정에선 재벌 총수들이 한결같이 "제가"라는 표현을 쓴 반면 이건희는 "본인"이라는 표현을 썼다.

내말 틀린거 있어?

- 93년 7월 31일 MBC-TV는 사장 강성구의 특별지시로 삼성그룹 사내용으로 제작된 이건희 훈시비디오를 90분간 특집프로그램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 그는 거기서 임직원들앞에서 반말을 사용하며 고압적으로 훈시하면서 "내말 틀린 거 있어?"라는 표현을 ....

당장 나가시오

이심전심 대리체제

- 삼성 사장들은 이건희의 생각을 읽어내는 데 목숨을 건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용되는 사람일수록 그런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다. 이심전심의 대리체제를 가능케 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셈이다.

이건희는 왜 대학생들에게 존경을 받는가?

세계속의 한국에 굶주린 한국인

- 대학생들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존경받는 기업인 1위는 늘 이건희의 몫이다. 무노조 경영과 편법상속이라는 두가지 큰 문제가 있는데도 참 의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건희의 국가주의적 애정

삼성전자는 국가주의의 상징

실업난과 노동운동의 타락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주

- 2004년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는 70.3%로 미국(19.5%)이나 일본(21.8%)의 3배이상이었다. 대외의존도라함은 총공급에서 수출과 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을 가리키는 것인데, 이것이 높아지면 외부충격에 약하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큰 흐름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언론은 이건희의 "순한 양"인가?

- 삼성 구조조정 본부 부사장 이순동의 말이다. "이회장은 학창시절 커뮤니케이션을 공부하였고, 중앙일보에서도 근무한 경험이 있어 신경영철학이 어떻게 전파되고 공유되어야 하는지 누구보다 훤히 꿰뚫었다"

- 매출규묘와 업종을 감안하고 분석해보더라도 삼성은 다른 재벌에 비해 광고비를 더 많이 지출한다. 이는 그만큼 언론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미디어 오늘 95년 6월 28일자는 "일부기자들이 삼성비판기사를 출고한 뒤에 아예 호출기를 꺼버리고 삼성측의 로비를 피해다니는 경우도 있으며 삼성은 기사수정이나 삭제가 뜻대로 되지 않을 경우 심지어 이미 예약되어 있는 광고도 빼겠다면서 언론사에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재벌의 로비에 맥없이 무너지는 언론

- 삼성, 현대, 대우, LG 등 4대 그룹의 경우 중앙일간지 한곳에 주는 연간 광고물량만 2-3백억이다. 하루에 1억원꼴이다. 여기에 협찬, 취재경비까지 하면 ..........

- 지난해 한 신문사는 적자를 이유로 기자들에게 광고유치차원에서 "기업비리나 비판적인 기사는 쓰지 말라"는 지침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은 시끄러울게 뻔한 기업비판기사는 아예 쓰지 않게되고 취재할 생각조차 안하게 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방송도 이건희 홍보부대?

- 방송도 마찬가지...

이건희, 삼성의 성역화 작업

언론, 재벌의 婚脈 카르텔

- 2005년 2월 조광명의 고려대 언론대학원 "한국 언론사주의 혼맥에 관한 연구"는 재벌과 혼맥을 맺다봄녀 언론은 대기업중심의 정책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특소세폐지, 법인세 인하 등을 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했따.

- 조선일보의 경우 엘지그룹 허씨가문과 사돈을 맺었으며 엘지에서 뻗어나간 혼맥을 통해 벽산그룹, 박정희, 김종필 씨와 연결된다. 방일영 회장의 동생인 방우영일가는 태평양 그룹과 사돈이며 건너건너 농심, 동부그룹, 삼양사 등과도 맥이 닿는다.

- 삼양사는 동아일보 김성수 일가와 형제집안

- 동아 김병관 전 명예회장의 아들이 삼성 이건희 회장의 딸과 결혼.

- 이건희 회장은 중앙일보 초대 회장인 홍진기씨의 사위

- 중앙일보 홍진기 회장의 딸 홍라희씨가 이건희회장과 결혼

- 홍회장의 둘째 딸은 전 국무총리인 노신영 일가에 시집

- 노신영 총리의 아들은 현대그룹의 사위

- 출발점을 어디로 잡든 조중동과 재계의 탄탄한 혼맥카르텔을 확인할 수있다.

연예인 X파일 사건

- 2005년 1월에 터진 연예인 X파일 사건도 삼성의 위력을 잘 보여주었다.

'심지어는 삼성의 정보가 안기부보다 빠르다는 말이 있을 정도. 삼성물산이나 삼성전자 등과 같은 주력기업 홍보실도 업계나 언론계의 웬만한 정보는 훤히 알고 있다고 전해진다. 삼성은 이 정보를 이용하여 산업동향이나 사회이슈는 물론 편집국의 분위기와 업계 담당기자들의 움직임을 재빨리 포착하여 미리 손을 쓰는데 놀라운 기민함을 발휘한다"

삼성 저널리즘

- 2005년 삼성은 "유능한 언론 인재를 확보하라"는 이건희의 지시에 따라 그해 5월 앵커 이인용이 삼성전자 홍보담당 전무로 자리를 옮긴다.

삼성은 이건희 없으면 쓰러지나?

이건희 전지전능론

이건희 에세이에 대해

삼성의 코쿤화

삼성맨이라서 행복해요

삼성왕국의 내부 메커니즘

삼성인의 "삼쿤"인가?

블루오션과 소프트 파워

한국정치는 4류다.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

- 95년 4월 13일 이건희는 북경에서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명언으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듬.

- 이병철의 한국비료 밀수사건은 박정희의 지시로 대선자금명목으로 실시되었다가 박정희에게 철저하게 배신당한 뒤 이병철은 정치권력의 횡포에 대항할 수 있는 언론 권력을 키우기 시작함.

정치의 희생으로 큰 경제

고독한 황태자의 운명

제 4장. 이건희의 나라.

"인간미를 간직하고 도덕성을 지키면서 올바르게 나가야 한다. 절대로 여기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지켜야할 우리끼리 약속이며 곧 삼성의 헌법이다"

왜 삼성공화국인가?

삼성의 힘

- 2002년 4월 2일 미국의 월스트리트는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이 65조원으로 소니의 63조원보다 2조원이 앞섰다고 발표해 일본열도를 경악하게 만들었고, 한국인들에게는 커다란 환희와 자신감을 안겨주었다.

삼성은 국가적 자존심의 원천

- 2005년 삼성전자는 포천이 선정하는 500대기업에서 매출 715억달러로 39위에 오름. 소니는 666억달러로 47위

삼성이 잘못되면 한국이 잘못된다.

- 드물지만 삼성에 대한 비판과 성찰의 목소리도 제기됨.

금산법 논란

재벌 앞 작아지는 검찰

이건희는 한국의 베를루스코니?

조선일보, 삼성 비판 속내 있나?

왜 이건희 시대인가?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

- 2005년 5월 16일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라는 말을 했다. 이 발언의 의도가 무엇이었던 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권력 우위론"을 일깨워주는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는 건 분명하다.

정치, 경제 분리주의

정치과잉 경제과소

이건희에 대한 민심의 실체

- 이건희 개혁 10년에 대한 서평을 정리

기만, 분열, 모순의 포용

- 이건희 개혁 10년에 대한 독자가 지적한 "기만, 분열, 모순"은 이건희와 삼성의 도청에 널려 있을 뿐만아니라 한국적 삶의 곳곳에 만연해 있는 삶의 법칙이며 이건희 시대는 바로 그런 법칙에 근거하고 있다.

이건희 시대와 정치중독

한국의 소용돌이 문화

다원주의와 분권화가 어려운 이유

정치과잉의 구조

제대로된 개입이 필요하다.

이건희의 사회경영론

93년의 이건희 신드롬

- 93년 이건희는 로스엔젤레스-프랑크푸르트-오사카-동경-런던으로 이어지는 4개월에 걸친 대장정에서 1800여명의 임직원을 해외로 불러놓고 500여시간동안 열변을 토해냈다. 그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축제나 이벤트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이건희 자신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바로 이점이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 95년에는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는 명언과 더불어 "반도체 공장 하나를 짓는데도 정부로부터 무려 1000여개의 도장을 받아야 한다"며 정부를 비판한 대목은 ............

영웅으로 등극한 이건희

- 97년 말 이른바 IMF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오는 05년 삼성은 재계랭킹 4위로 떨어진다는 얘기가 널리 퍼져 있었지만 그는 삼성을 세계적 1류기업으로 키우면서 영웅으로 등극한다.

사농공상, 관존민비 뒤집기

지속가능한 삼성공화국을 위해

삼성이 만들면 표준이 된다.

삼성의 표준파워

- 2002년 이건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삼성이 만들면 표준이된다"는 점을 명심해달라고 말한다.

성찰적 경영이 필요하다.

사회와의 소통이 필요하다.

이건희와 경로의존성

박정희 패러다임

백낙청의 박정희 평가

박정희도 경로에 굴복했다.

부정축재 처벌에서 부정축재 이용으로

제 5장. 이건희와 한국사회의 충돌

"답답한 것은 정부와 싸우려고만 하는 삼성의 태도다....하지만 삼성이 잊어서는 안될게 있다. 정권은 이길 수 있어도 시대흐름은 막을 수 없다는 점이다"

이건희의 "초현실적 권위"

이건희의 고려대 사건

- 고려대 사건에서 고대총장의 석고대죄는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될 것이다. 재벌의 최고권력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삼성에 엎드린 언론

왜 노조는 안된다는 건가?

삼성의 노조 원천봉쇄작전

- 이건희의 말이다. "삼성이 인정하지 않는 것은 노조가 아니라, 노조의 필요성입니다. 다시말하면 삼성은 노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경영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삼성은 1938년 창업한 이래 확고한 경영이념을 바탕으로 기업경영의 불모지였던 이땅에 삼성식의 독자적인 경영풍토를 만들어 왔고, 그 중에서도 특히 공존공영의 원칙을 중시, 이를 노사간, 회사와 고객간의 기본원칙으로 삼아왔습니다. .......끝

The natural state of the human body is to be in motion!!


문형철(panic bird)
첨단한방병원 병원장
kbs 라디어정보시대에서 생방송으로 한방 건강상담 진행자로 활동

풀코스 마라톤, 농구, 배드민턴, 골프, 인라인 스케이트, 야구, 웨이트 등의 운동을 직접 체험하며 “치료적 맞춤운동연구소”(http://cafe.daum.net/panicbird)를 만들어 새로운 치료영역을 구축하고 치료의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세상의 의료패러다임은 통증치료에서"인체의 움직임 기능회복"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의료인의 존재이유는 환자 스스로 치유하는 방법에 대한 통찰을 알려주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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