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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영 감독(65)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법정 실화극 <부러진 화살>로. 처음에는 ‘13년 만의 컴백’이었다. 이제는 ‘2012년을 여는 문제작의 감독’이다.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10분 넘게 기립박수를 받으면서, 잇단 시사회를 통해 영화적 재미와 사회적 의미를 폭넓게 인정받으면서.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을 찾아서’.
<부러진 화살>. 이른바 ‘석궁 테러 사건’을 다뤘다. 2007년 1월에 발생한,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한 대학 교수가 판사에게 석궁을 쏴 다치게 했다는 사건이다. 그 교수는 4년 만기를 채우고 출감했다. <부러진 화살>은 그의 이유 있는 법정투쟁을 영화적으로 재창조했다. 실제 사건을 통렬하게
웃음을 실어가며 재조명, 법정영화의 틀을 새로 짰다. 모든 배우·스태프가 러닝캐런티로 참여, 한국영화의 지형도 드넓혔다. 내년 1월 19일 개봉된다.
-언제, 어떻게 시작했나요.
“재작년 가을에 배우 문성근씨 소개로 르포 <부러진 화살>을 읽었다. 단숨에. 곧장 작가를 만나고 복역중이던 김명호 교수 면회도 가고 수차례 편지를 주고받았다. 박훈
변호사도 당연히 만났고. 박 변호사에게 받은 자료가 네
박스나 된다.”
-동의받는 데 어렵지 않았는지.
“전혀. 김명호 교수는 실화인데, 널리 알려진 사건인데 당사자 동의가 필요하냐고 하더군요. 그럼에도 동의를 받았다.”
-두 주인공 설정이 돋보입니다.
“김 교수(안성기) 못지 않게 박 변호사(박원상) 또한 만만찮은 인물이더라. ‘김 교수 혼자 극을 어떻게 끌고가게 하나’ 하는 고민이 그를 만나면서 해소됐다. 두 인물은 대조적이다.
수학을 전공한 김 교수는 ‘법은 아름답다’고, ‘법대로 하면 된다’고 한다. ‘안 지키는 게 문제’라며. 원칙을 중시한다. 고지식하다. 반면 법을 전공한 박 변호사는 ‘법은 쓰레기’라고 한다. ‘뒷북이나 치는’. 그는 원칙이 안 통하면 불법을 행사해서라도 잘못을 바로 잡고 싶어 한다. 자칭 ‘양아치 변호사’다. 이들은 보수와 진보로 대별되지만 함께 부당한 권력에
맞선다. 같은 가치를 추구하는 과정을 통해 보수와 진보가 공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문제는 불통이고 해법은 소통이다.”
-시나리오 작업은 얼마나 했나요.
“1년 넘게 걸렸다. 소재가 소재인만큼 여느 작품과 달리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날 때까지 외부에 일체 노출시키지 않고 수정·보완을 거듭했다. 촬영도 언론 등에 일체 알리지 않았다. 사법부에서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에.”
-실제와 픽션의 비중은.
“드라마 부분에 픽션을 조금 가미했을 뿐 거의 사실이다. 법정장면은 90% 이상이다. 더러 ‘영화잖아’라고 하시는데 기가 막히는 건 그게 불과 5년 전에 발생한 사실이라는 거다. 극중에 교수는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라고 말한다. 기득권 논리와 집단 논리가 개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 대한 항변을 상징한다.”
-호화 캐스팅인데요..
“처음에는 유명세는 떨어지지만 실력은 뛰어난 배우 중심으로 가려고 했다. 돈이 없으니까.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은 문성근씨였는데 정치 일정 때문에 불가능했다. 그런데 캐스팅 디렉터가 안성기씨를 추천했다. <페어러브>라는 저예산 영화를 했다면서. 그래서 만나 함께하고 싶다고 했다. 소재가 껄끄러웠지만 성공한 <남부군> (1990)과 <하얀 전쟁>(1992) 사례를 들면서. 시나리오 읽고 답을 달라고 했는데 다음 날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유명 배우 위주로.
독립영화에서 저예산 상업영화가 됐다.”
-박원상씨는.
“시간이 좀 걸린 편이다. 내가 더 욕심을 내는 바람에. 훗날 원상씨에게 에둘러
사과했다. ‘연기로 복수해 달라’고. 실제로 복수해 줬다. 보란듯이. 호연을 펼친 안성기씨에게 조금도 밀리지 않고.”
-‘꼴통판사’ 문성근씨도 눈길을 끕니다.
“정말 잘해줬다. ‘유쾌한 100만 민란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으로 야당 통합을 주도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짬을 내줬다. 정치인으로 뜻을 잘 펼치고 다시 배우로 돌아왔으면 한다.”
-저예산 상업영화라고 하셨는데요.
“안성기씨는 물론 박원상·나영희·김지호·이경영·문성근씨 등 배우와 김형구 촬영감독 등 스태프도 모두 러닝 개런티로 참여했다. 이분들 덕분에 만족할만한 완성도를 꾀할 수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시사회 때마다 호평을 받은 데 힘입어 설 개봉작으로 확정됐다.”
-연출력이 여전합니다.
“기분이 좋기는 하다. 하지만 나이 먹은 사람들은 감각이 낡고 녹슬었다는 건 편견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나를 포함해 내 세대 감독들은 영화밖에 모른다. 쉬고 있지 않다. 내놓은 영화가 없을 뿐 항상 영화에 매달려 실력을 갈고 닦고 있다. 검증받은 이들이고. 차제에 우리 세대 감독들에게 눈을 돌려주었으면 한다.”
<부러진 화살> 순제작비는 5억원.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한 달여 동안 24회 촬영을 가졌다. 찍어놓고 버린 에피소드가 하나도 없다. 정 감독은 막바지에 <부러진 화살>에 대해 “철학적 성찰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지적인 영화가 아니다”고 했다. “어처구니 없는 일, 시비가 너무나 명약관화한 문제를 던지는 영화여서 서구의 유명 국제영화제에서 쳐다보지 않을 것”이라며. “프랑스에서 100여년 전에 발생한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의 사법부에서 일어났다는 게 황당하고 슬프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 통하려면 국민 개개인이 부당한 권력과 조직논리에 맞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금기 소재 전문 감독···다음 작품도 ‘일급비밀’
정지영 감독은 ‘충무로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손꼽힌다. 영화산업의 구조적 모순을 깨뜨리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고 충무로가 금기해온 소재도 과감하게 다뤘다. <부러진 화살>은 <남부군> <하얀전쟁> 등에 이어 또 하나의 정점을 보여준다. 21세기 한국에서 누구든 법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보안을 철저히 하고 있는 다음 영화 또한 주목된다. 정 감독은 <부러진 화살>처럼 다 익힌 다음에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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