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지자체 ‘메타버스 올라타기’ 열풍
“거리와 시간 제약 넘어 차세대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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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광역·기초 지자체 메타버스 콘텐트, 플랫폼 제작 돌입
공무원 정례 공부 모임도 AI, IoT 등 신기술 열공 모드
"그럼 메타버스용 콘텐트를 지자체 내에 개별적으로 구축하는 게 나은가요, 아니면 기존의 메타버스 플랫폼에 들어가서 만드는 게 나은가요?”
“아무래도 초기에는 유저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대형 플랫폼에 구축한 메타버스 콘텐트가 노출면에서는 더 유리할 것 같습니다.”
6월 1일 경북 안동 경북도청사에서 김상윤 중앙대 컴퓨터공학과 연구교수와 경북도청 공무원이 주고받은 대화의 일부분이다. 경북도는 매주 화요일 아침 공무원들이 참여하는 공부 모임을 개최한다. 이날 모임에서는 김 교수가 ‘현실과 가상의 결합, 메타버스 혁명’을 주제로 특강을 했고 평소 메타버스 분야에 관심을 가진 한 공무원이 지자체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물었던 것이다.
요즘 메타버스는 가장 핫한 트렌드의 하나다. 대학, 기업, 산업은 물론 전국 지자체에까지 따라하기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런데 메타버스가 뭘까? 기성세대 중에는 메타버스하면 이층 버스 등을 떠올리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메타버스는 3차원 가상세계를 말한다. 초월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말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이다. 현실의 세계를 가상의 세계, 즉 온라인 세상으로 옮겨놓은 셈이다.
그런데 이곳은 현실을 온라인 세계에 단순히 옮겨 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체험을 통해 생산적이고 실용적인 활동을 가능케 하기에 과거의 가상현실 기술보다 파괴력이 더 크다. [메타버스 새로운 기회]의 저자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메타버스의 특징과 관련해 “일상세계에서 살아가는 느낌과 온라인에서 살아간다는 느낌이 어느 정도 일치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들어 부쩍 두드러진 지자체들의 메타버스 몰입도 일상과 가상이 어느 정도 접목되는 선에서 이뤄진다.
“일상의 느낌과 가상의 느낌이 일치”
서울시의 예를 보자. 서울시는 청년창업을 지원하고자 공덕, 성수 창동에 서울창업허브를 두고 있다. 공덕센터에는 약 140개의 사무공간이 있으며 1년에 약 300개사가 입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들 오프라인의 창업허브를 올 5월 온라인 공간에도 설치했다. 바로 국내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에 개관한 ‘서울창업허브월드’가 주인공이다. 공덕, 성수, 창동의 오프라인 창업허브를 직접 방문하지 않더라도 집에서 컴퓨터나 모바일을 통해 제페토에 접속하면 ‘서울창업허브월드’를 둘러볼 수 있다. 여기엔 서울의 스타트업 64개와 서울시의 창업 지원시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홍보 전시관이 들어서 있다. 투자 유치 상담 같은 비즈니스 행사가 열리는 콘퍼런스홀, 스타트업 사무실 등 서울시가 오프라인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창업 지원 시설이 온라인에서도 실재처럼 구현된다. 제페토 이용자들은 누구나 서울창업허브월드에 입장할 수 있다.
서울시가 입주한 메타버스 플랫폼 제페토는 원래 게임 기업이었다.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에서 피노키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은 제페토 할아버지처럼 작은 아이디어에도 생명력을 불어넣어 세대와 시대를 뛰어넘어 전 세계 모든 게이머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게임을 제공하는 글로벌 게임 기업을 지향한다’는 문구가 홈페이지에 올라있다. 지금은 게임뿐 아니라 놀이와 생활 경험을 공유하는 온라인상의 새로운 디지털 우주로 발전하고 있다.
지자체들은 왜 제페토와 같이 잘 이해조차 안 되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걸까? 잘나가는 메타버스 플랫폼에는 엄청난 유저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바타 선거 유세를 펼친 메타버스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2020년 3월 출시된 후, 누적 판매량 3000만 개를 넘겼다. 게임형 생활 플랫폼인 ‘로블록스’는 월간 활성 이용자 수가 약 1억5000만 명에 달한다.
네이버 계열사가 만든 제페토는 10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또 제페토 가입자가 2억 명을 넘었고 그중 90%가 외국인이라는 데 하나의 해답이 숨어 있다. 지자체들은 미래의 고객인 10대, 20대들에게 자신의 브랜드와 정책을 홍보하는 효과를 노린다. 제페토 등 요즘 뜨는 메타버스는 해외 유저를 다수 포괄하기에 시장의 사이즈가 크고 홍보 및 사업화의 기회도 더 많다고 할 것이다. 서울시 창업정책과 조용주 주무관은 “스타트업은 판로 개척이나 매출증대를 목표로 한다”면서 “해외의 유저들이 많이 봐주기를 기대하면서 서울시도 메타버스에 홍보관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메타버스 홍보관, 인천시는 게임 론칭
인천시도 메타버스 대열에 합류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아직 구상단계에 머물러 있지만, 인천시와 똑같은 쌍둥이 도시, 이른바 ‘디지털 트윈’을 메타버스 공간에서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디지털 트윈 구현에 드는 도시 데이터를 수집하는가 하면 도시 전체를 상공에서 촬영하는 스캔 작업도 시행 중이다. 올 5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전파진흥협회가 시행한 ‘5G 콘텐츠 플래그십 프로젝트’공모에 ‘XR(확장현실) 메타버스인천이음 프로젝트 사업’이 최종 선정됐다. 인천시는 XR메타버스 생태계 구축을 위해 2022년까지 총 130억원을 투자할 예정이다. 이 사업을 통해 인천지역 내 XR메타버스 관련 산업을 육성하고 관광 콘텐트 개발 및 지속가능한 플랫폼으로의 확장 등을 꾀한다. 인천시는 또 올 8·15 광복절을 맞아 메타버스와 지역 독립운동 장소를 접목한 게임 맵을 제작했다. 인천시가 제작한 ‘인천크래프트 1945 맵’은 메타버스 게임 플랫폼인 마인크래프트에서 공개됐다.
대구시도 지난 6월 메타버스를 주제로 관련 기관 및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변화하는 신기술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메타버스 개념, 활용 사례, 기술 특징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주제 발표와 토론이 이어졌다. 홍의락 대구시 경제부시장은 “메타버스가 미래가 아닌 이미 현실로 다가온 만큼, 현명하게 메타버스 생태계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일환으로 대구시는 메타버스에 온라인 콘퍼런스 플랫폼 구축사업을 진행 중이다. 대구시의 특징을 구현한 가상공간을 만들어 마이스(MICE, 회의·관광·컨벤션·전시) 사업 유치에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행정과 연구 기능으로 특화된 충청권은 광역지자체들의 협업 시스템이 눈길을 끈다. 대전·충남·충북·세종 등 충청권 4개 광역자치단체와 대덕 특구 연구기관들이 ‘충청권 인공지능(AI)·메타버스(metaverse)생태계’ 구축에 나선다. 충청권 4개 지자체는 대덕 특구를 중심으로 인공지능과 메타버스 핵심기술을 연구·개발하고, 지자체에서 실증·확산해 나가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학기술원(KAIST),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등 대덕 특구 연구기관들도 합류한다. 충청권은 메타버스 기술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이를 적용할 환경을 갖췄다는 점에서 비교우위를 갖는다고 대전시는 강조한다. 대전시 김진수 인공지능팀장은 “중앙정부가 메타버스 정책을 세우고 관련 예산을 지원하지만 이를 적용하고 완성하는 건 지방정부”라며 “관련 기술을 연구하는 정부 출연 연구기관과 이를 적용할 데이터를 생산하는 지자체가 유기적으로 맞물린 충청권은 앞으로 AI와 메타버스 기술의 견인차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기술 등장에 행정 환경 급변, 공무원들 위기의식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전남도는 메타버스 기술을 활용한 전남 관광 콘텐트 홍보관을 올해 안으로 구축키로 했다. 이 홍보관은 미래의 고객인 1020세대를 겨냥해 재미와 호기심을 유발할 관광 콘텐트를 담게 된다. 나아가 전남도와 전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은 도내 시·군의 다양한 관광자원을 메타버스에서 구현하는 방안도 함께 모색한다. 전남도 권장주 관광마케팅 팀장은 “지금은 초기 단계로 시범적으로 콘텐트를 마련하는 작업에 들어갔다”면서 “소요되는 예산 규모가 엄청난 만큼 전남도민과 관련 기관과의 협력 체계를 만든 작업에도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했다.
메타버스 공간을 활용해 시상식을 개최한 지자체도 있다. 김포시는 8월 6일 메타버스를 활용한 ‘2021 김포시 SNS 홍보 콘텐츠 공모전’ 온라인 시상식을 개최했다. 김포의 명소 발굴을 목표로 하는 이번 공모전에는 사진 66점, 영상 39편 등 총 105점의 작품이 접수됐으며 우수 작품 20점을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김포시는 코로나19 확산 방지 차원에서 SK텔레콤의 메타버스 플랫폼인 ‘이프랜드(ifland)’를 온라인 시상식 공간으로 활용했다.
이처럼 메타버스 사람들이 가상 세계에 단순히 체류하는 게 아니라 생활하고 뛰어놀며, 생산적인 활동까지 펼칠 수 있는 공간이다. 기존의 가상세계에 견줘 경제적 실용성, 대중적 접근성을 극대화한 게 메타버스다. 그게 가능한 건 메타버스 자체가 인간을 흥분케 하고 의욕과 흥미를 불어 넣는 호르몬인 도파민을 활성화하는 데 적합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따른다. 또 전문가들은 메타버스 내의 다양한 감각 정보가 유저들의 뇌를 자극한다고 말한다.
앞서 경북도의 화요일 공무원 특강 모임도 메타버스 영향권에 들어가고 있다. 당초 산업계 동향, 환경 문제, 문화, 관광, 역사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던 특강 주제가 2021년 들어서는 4차산업 분야로 수렴되는 양상을 보인다. 2021년 특강 30회 중 메타버스 등 4차산업 관련 특강 9회에 이른다고 경북도는 전했다. 이장식 경북도 자치행정국장은 “신기술 등장과 함께 사회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행정 환경도 급변하는 추세에 있다”면서 현장의 분위기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 “공무원들도 이런 흐름을 제대로 알아야 그에 걸맞은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는 절박함이 작용하는 듯하다. 전문가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시대 흐름에 뒤처져선 안 된다는 인식에서 젊은 분은 젊은 대로, 나이 든 분들은 나이 든 대로 필요성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지자체에 부는 메타버스 바람은 모든 공공기관의 입찰 정보가 집결하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인 ‘나라장터’에서도 더 확연하게 느껴진다. 나라장터 초기화면 검색창에 ‘메타버스’를 입력하면 관련 사업 입찰을 공고한 지자체 목록이 와르르 쏟아진다.
경북 구미시는 ‘메타버스 산업육성 연구용역’을 입찰에 부쳤다. 경상북도 산업 현황을 분석해 메타버스 산업육성에 적합한 분야를 도출하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설계하는 목적이다.
포항시는 메타버스에 기반을 둔 ‘포항형 축제’ 콘텐트 개발 용역을 제안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재택근무와 비대면 활동이 증가하는 시대를 맞아 포항의 축제 행사를 가상세계에서 경험토록 하는 플랫폼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한다. 플랫폼이 완성되면 남구 송림테마거리 일대에서 열리는 ‘전국생활문화축제’와 형산강 체육공원 등 포항 일원을 희망의 불빛으로 밝히는 ‘포항국제불빛축제’가 메타버스 세계로 들어오게 된다.
강원정보문화진흥원은 강원도 춘천시 서면에 자리한 애니메이션박물관에 ‘메타버스 놀이터’를 구축한다. 2억원의 예상을 들여올 연말쯤 새로운 가상세계에 아이들을 초대한다는 계획이다. 애니메이션박물관은 춘천을 대표하는 박물관이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방문객이 대폭 줄었다. 이에 아이들이 메타버스라는 새 기술을 통해 문화를 안전하게 향유하고 서로 소통하는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충북도는 거리두기라는 코로나 방역지침을 준수하면서도 여행을 즐기는 실감형 여행콘텐트를 개발하고 있다. 충북도가 선정한 충주호, 대청호 등 도내 9개 절경인 이른바 ‘호수9경’을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즐기도록 하는 서비스가 핵심이다. 3차원의 입체적 경험과 현실감을 극대화해 실제로 여행하는 기분을 방문객들에게 선사한다.
지자체, 주민 간 메타버스 격차 대비해야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승병으로 활약한 사명대사 유적지도 스마트폰과 앱에서 만날 수 있다. 밀양시는 사명대사 유적지를 AR 콘텐트로 제작하는 용역을 발주했다.
광주광역시 광산구도 역사문화 체험 콘텐트를 3D 가상현실(VR)에 론칭한다. 무양서원의 역사적 의미와 배향 인물의 스토리를 10분 분량의 가상체험 콘텐트로 만들어 해설사나 안내자 없이도 문화유산을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체험자는 가상 캐릭터의 안내를 받아 3D로 구현된 무양서원으로 진입해 각각의 테마별 콘텐츠를 실행하면서 체험과 게임을 수행하게 된다.
메타버스로 대변되는 디지털 공간은 앞으로 더 확장되게 마련이다. 전국 주요 지자체들도 AR, VR, 메타버스 등에 기반한 행정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쏟아낼 전망이다. 지자체의 주인인 주민들은 메타버스 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을까? 전문가들은 지자체가 메타버스 플랫폼과 콘텐트 설계 단계에서부터 기술 변화에 둔감한 고령층이나 경제 형편이 어려운 계층까지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년층을 위해 최신 스마트폰뿐 아니라 효도폰 같은 사양에서도 잘 작동하는 메타버스 콘텐트와 플랫폼 구현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랫폼 메뉴도 작은 화면에 많은 것을 넣다 보면 글씨나 버튼 크기가 작아져 고령층에는 뜻하지 않은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유의할 대목이다. 김상균 강원대 교수는 “다양한 세대가 편하게 쓸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쪽으로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박성현 지역발전연구소 전문위원 park.su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