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 제20화. 실전, 천재들의 독서법_사색 인문고전에 빠지다... / 게시판

2011.02.07.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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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실전, 천재들의 독서법_사색

 

 

동양의 천재들은 하나같이 진정한 인문고전 독서는 ‘사색’에 있고, 사색이 빠진 인문고전 독서는 헛것이요 가짜라고 강조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관자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그러면 귀신도 통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귀신의 힘이 아니라 정신의 극치다”라고 했다. 공자는 『논어』에서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라고 했다. 맹자는 “마음의 기능은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하면 얻는 것이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얻는 것이 없다”라고 했다. 주자는 “책을 읽는 방법은 다른 게 없다. 글을 숙독하면서 정밀하게 생각하라. 그렇게 오래도록 하다보면 깨닫는 게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성리학의 기틀을 마련한 중국의 정자는 “읽고 사색하지 않으면 어리석어진다”라고 했다.

 

서양의 천재들도 이구동성으로 인문고전 독서의 핵심은 단순히 눈으로 읽고 입으로 외우고 손으로 베껴 쓰는 게 아니라 마음과 영혼으로 읽어서 깨달음을 얻는 ‘사색’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격언의 창시자이자 귀납법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는, 500년이 지난 지금도 열렬하게 읽히고 있는 『학문의 진보』 『신기관』 『에세이』의 저자인 프랜시스 베이컨은 후학들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독서는 오로지 사색하고 연구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명예혁명의 주창자이자 300년 넘는 세월 동안 철학 분야에서 가장 뜨겁게 연구되고 있는 저서 중의 하나인 『인간오성론』의 저자인 존 로크는 이런 말을 남겼다. “독서는 단지 지식의 재료를 얻는 것에 불과하다. 그 지식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오직 사색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출간된 지 200년 넘게 지났지만 오늘날에도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연

구되고 있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을 쓴 영국의 천재 정치철학자 에드먼드 버크(왼쪽 그림)는 이렇게 지적했다. “사색 없는 독서는 전혀 씹지 않고 삼키기만 하는 식사와 다를 바 없다.”

 

천재들은 인문고전을 읽고 끝없는 사색에 잠겼고, 사색의 와중에 머리와 가슴을 치는 깨달음들을 얻었다. 천재들은 그 깨달음들을 기록했다. 마치 여기저기 흩어진 채 빛나고 있는 진주알들을 하나의 실로 꿰어서 아름다운 목걸이를 만들듯이.

 

사색을 기록하는 방법은 1)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따로 준비한 종이나 노트에 즉시 적는다. 2)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을 책의 여백에 즉시 적는다. 3)책 한 장(章) 또는 책 전체를 읽고 사색한 뒤 그것을 독후감식으로 적는다, 이 세 가지가 대표적이다.

 

첫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중국 송의 천재 성리학자 장재(張載)와 우리나라의 천재 실학자 성호 이익과 서양의 천재 철학자 데카르트가 대표적이다. 장재의 집안 곳곳에는 벼루와 먹과 붓과 종이가 있었다고 한다. 사색을 하다가 실마리가 풀리거나 어떤 깨달음을 얻으면 그 즉시 기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그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기록을 하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성호 이익은 책을 읽다가 이해가 잘 안 되거나 의심이 가는 부분이 있으면 이내 사색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깨우침이 있으면 붓을 들어서 바로 적었다. 참고로 말하면 그는 깨우침을 얻기 전에 사색을 그만두는 일이 결코 없었다고 한다. 성호는 이 방법을 통해 선대 학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경지에 도달하는 일이 많았고, 결국 자신만의 학문을 정립했다. 데카르트는 사색을 통해 서양 근대 철학을 탄생시킨 사람이다. 그는 젊은 시절 자기 자신의 내면과 세상의 사물들의 본질에 관해 깊이 사색하기로 결심했고 그 결과 새로운 철학을 창시했다. 데카르트는 침대에 오래 누워 있기로 유명한 사람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직업군인이었을 때조차 오전 11시까지는 어김없이 침대에서 누워 있었다. 사색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데카르트가 침대에서 일어날 때가 있었다. 사색을 하다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노트에 즉시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두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볼테르와 바흐가 대표적이다. 볼테르는 출간된 지 3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독자들을 설레게 하는 『캉디드』의 저자이다. 그의 인문고전 독서법은 책을 읽다가 어떤 생각이 떠오르면 그것을 책의 여백에 즉시 적는 것이었다. 매우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졌던 탓에 그가 책의 여백에 남긴 메모들은 철학적 깊이가 풍부한 것들도 있었지만 “이건 정말 바보 같은 말이야!”라든가 “정말 재미없군!” 같은 순간적인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것들도 많았다고 한다.

 

천재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책이 정말 귀했던 그 시절에 루터 전집 경매행사가 열리자 연봉의 10분의 1에 달하는 거액을 제시하면서 뛰어들었을 정도로 인문고전을 구입하고 소장하는 일에 열정을 발휘했던 전형적인 인문고전 마니아였다. 그는 개인 도서관에 당시로서는 엄청난 숫자에 달하는 신학고전들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가 읽은 책에는 각 페이지마다 무수히 많은 밑줄이 그어져 있고, 여백에는 예외 없이 치열한 사색의 흔적인 메모가 잔뜩 적혀 있었다고 한다.

 

세번째 방식을 따른 천재는 다산 정약용과 도스토옙스키가 대표적이다. 다산 정약용(왼쪽 동상)이 『퇴계집』을 읽었을 때의 일이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면 바로 세수를 한 뒤 『퇴계집』에 실린 편지 한 편을 읽었다. 그리고는 오전 내내 그 내용을 깊이 음미하면서 사색했다. 하여 마침내 사색을 마치고 깨달음을 얻으면 그 내용을 자세히 기록했다. 후일 다산은 그 기록을 모아서 『도산사숙론』이라는 책으로 엮였다. 도스토옙스키는 10대 시절부터 거의 미쳤다고 생각될 정도로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 타키투스, 플루타르코스, 호머, 셰익스피어, 단테, 괴테, 실러, 칸트, 헤겔 등 문학ㆍ역사ㆍ철학고전을 읽어 치웠고 사색 또한 그렇게 했다. 그렇게 질풍 같은 독서와 불같은 사색을 마치고 나면 그는 마치 열에 들뜬 사람처럼 그것을 기록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사색 독서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글자 하나를 놓고 깊이 사색하는 다산 정약용의 격물(格物) 독서법 소개하면서 이 글의 문을 닫도록 하자. 다산은 어느 날 깊은 사색 없이 책만 읽는 것은 설령 하루에 백 번 천 번 반복해서 읽더라도 전혀 독서하지 않은 것과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동시에 단 한 권의 인문고전을 읽고도 그 책의 의리(義理)를 환하게 꿰뚫게 되어 마치 수백 권의 인문고전을 읽은 것과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독서법을 깨달았다.

 

그것은 책을 읽는 도중에 그 뜻을 알기 어려운 글자를 만나면 그 글자의 근본을 터득하고 그 글자가 속한 글의 전체 의미를 완벽하게 이해할 때까지 그 글자를 널리 고찰하고 자세하게 연구하는 것이었다. 즉 자신이 잘 모르는 글자의 어원을 공부하고, 여러 책에서 그 글자가 사용된 문장들을 뽑아서 따로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내는 독서법이었다.

 

다산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이 독서법을 하나의 사물을 끝까지 사색하고 탐구하여 그 이치를 깨달은 뒤 다음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고 깨우치는 일로 넘어가는 주자의 격물 공부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기: 자객열전』에 나오는 ‘기조취도(旣祖就道)’라는 구절의 ‘조(祖)’자를 예로 들어 그 독서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1. 자서(字書) 즉 한자 사전에서 ‘조(祖)’의 본뜻을 찾는다.

2. 자서에 있는 것을 근거로 다른 책들은 ‘조(祖)’라는 글자를 어떻게 해석했는가를 상세히 고찰한다.

3. 다른 책들에서 언급된 ‘조(祖)’의 근본 뜻과 지엽적인 뜻을 뽑는다.

4. 『통전通典』 『통지通志』 『통고通考』 등의 책에서 조제(祖祭)의 사례를 모아 책으로 만든다.

 

『논어』를 원전으로 읽다가 ‘서(恕)’라는 글자를 만났는데 처음 보는 글자라 그 의미를 전혀 알 수 없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다산의 격물독서법은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인터넷에 접속해서 대형 포털 사이트로 들어간다.

2. 한자 사전 검색창에 ‘서(恕)’를 쳐서 뜻을 알아본다.

3. 책 검색창에 ‘서(恕)’를 치고, 본문검색을 클릭한 뒤 인문 분야를 클릭한다. (실제로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았더니 143권의 책이 떴다. 그중 9권은 인문고전이었고 나머지는 해설서였다.)

4. 『맹자』 『중용』 『순자』 『한비자』 『채근담』 『논어집주(주자)』 『소학』 『근사록』 『분서』 같은 인문고전에서 ‘서(恕)’가 언급되었음을 확인한다.

5. 위 원전들을 구해서 읽어보고, 각 원전에서 ‘서(恕)’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가를 상세히 고찰한다.

6. 각 원전에서 ‘서(恕)’에 관해서 언급한 부분, 각 원전에서 사용한 ‘서(恕)’의 본래 의미와 지엽적인 의미를 뽑아서 노트에 정리한다.

 

*5,6번 작업은 본문검색을 할 때 뜨는 해설서를 참고해도 좋을 것이다.

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 제19화. 실전, 천재들의 독서법_반복독서, 필사, 암송 인문고전에 빠지다... / 게시판

2011.02.07. 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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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실전, 천재들의 독서법_반복독서, 필사, 암송

 

 

반복독서

 

반복독서는 천재들의 독서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자 천재들이 가장 강조한 독서법이기도 하다. 공자는 주역의 이치를 깨우치기 위한 방법으로 반복독서를 택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반복해서 읽었던지 죽간(오른쪽 그림)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떨어졌다고 한다.

주자는 자신의 독서법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다른 사람이 한 번 읽어서 알면 나는 백 번을 읽고, 다른 사람이 열 번 읽어서 알면 나는 천 번을 읽는다.”

세종대왕은 『구소수간歐蘇手簡』을 천백 번 반복해서 읽었다.

영조대왕은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독서는 다독이 최고다. 나는 일찍이 ‘소학’을 백 번 넘게 읽었다. 하여 지금도 눈을 감고 암송할 수 있다.” 

정조대왕(왼쪽 그림)은 주자의 “맹자가 내 안에 들어앉게 하려면 수백수천 번 읽으면 된다. 그러면 저절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을 독서 좌우명으로 삼고서 맹자를 읽었다. 『주자절요』를 읽을 때도 수십 번 반복해서 읽었고 중요한 내용을 따로 뽑아서 책으로 만들었다.

율곡 이이(오른쪽 그림)는, 친구 성혼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한 해에만 『논어』 『중용』 『대학』 『맹자』를 각기 아홉 번씩 반복해서 읽어 놓고도 또다른 고전인 『시경』을 읽고 있었다고 한다.

서애 류성룡은 열여덟 살 때 『맹자』를 읽기 위해 절에 틀어박혔는데 몇 달 동안 스무 번 넘게 읽었고 마침내 『맹자』를 전부 외워버렸다고 한다. 그는 이듬해에는 고향에 내려가 『춘추』를 서른 번 넘게 읽었는데 그때부터 비로소 문장을 짓는 법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우암 송시열은 맹자를 일천 번 넘게 읽었는데, 앞부분은 수천 번 읽었다고 전해진다.

고봉 기대승은 『고문진보』를 수백 번 읽었고 마침내 전부 외워버렸다. 그는 어떤 고전이든 한 번 손에 잡으면 완벽하게 암송할 수 있을 때까지 몇 백 번이고 읽는 독서습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봉 이수광은 이렇게 말했다. “성인들의 글이 적힌 책을 반복해서 읽고서야 비로소 도(道)의 근원을 파악했고, 마음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형암 이덕무는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어린 시절 아침에 40~50줄의 글을 배우면 저녁때까지 그것을 50번씩 반복해서 읽었다. …… 병이 심하게 들었을 때를 제외하고는 매일 그렇게 했다. 덕분에 공부에 큰 발전이 있었다.”

순암 안정복은 제자들에게 성호 이익의 제자 신후담의 “성현(聖賢)의 글은 1만 번은 읽어야 비로소 그 의미를 환하게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을 독서 원칙으로 삼으라고 조언했다. 

단테(왼쪽 그림)는 유랑 생활 내내 보에티우스의 『철학의 위안』을 반복해서 읽었다.

아이작 뉴턴은 유클리드의 『기하학』과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의 각 구절들을 이해가 될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

라이프니츠(오른쪽 그림)는 단순한 천재가 아니다. 그는 정치, 종교, 역사, 문학, 논리학, 형이상학, 사변철학, 수학, 물리학, 법학 등 거의 전 영역에 걸쳐서 천재적인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부모나 교사 등의 권유로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한 대부분의 천재들과 달리 스스로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한 유별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은 오로지 독서로 인해 얻어진 것이라 고백한 바 있는데, 그가 세상에 공개한 독서법은 매우 간단한 것으로 정치, 종교, 역사, 문학 등 각 분야의 대표적인 책을 그 이치를 터득할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 것이었다.

헤겔의 인문고전 독서법도 반복독서였다. 그는 특히 플라톤과 소포클레스 같은 고대 그리스 사상가들과 루소, 칸트, 피히테의 저작을 반복적으로 읽으면서 자신의 사상을 형성해나갔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서 엄청난 부피의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발견하고서 틈날 때마다 반복해서 읽었다. 이후 ‘반복독서’는 그의 중요한 독서습관으로 자리잡았다.

19세기에 활동한 천재 설교가 찰스 스펄전은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을 백 번 이상 읽었다.

천재 작곡가 바그너는 1천 페이지가 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그 책을 만난 첫해에만 네 번 읽었고, 그 뒤로 평생 반복해서 읽었는데 결국 전부 외워버렸다고 한다.

천재 희극배우 찰리 채플린도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40년 동안 반복해서 읽었다.

 

 

필사

 

천재들의 필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인문고전의 저자와 어떤 정신적 교감 같은 것을 나누지 않았나를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필요나 의무감 또는 욕심 때문이 아닌 벅찬 감격과 떨림 그리고 기쁨과 설렘 속에서 필사를 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너무 좋아서, 마치 연애편지를 쓰듯이 필사를 했다.

천재들이 가장 선호한 필사 방식은 원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도 남김없이 그대로 베껴 쓰는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삼국지』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제갈공명, 서양 천재의 대명사로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동아시아 최고의 유학자인 퇴계 이황 등이 이 방법을 따랐다. 방법은 간단하다. 원전을 매일 적게는 몇 줄 혹은 몇 쪽 많게는 십수 쪽 혹은 수십 쪽씩 베껴 쓴다. 마침내 한 권을 완전히 베껴 쓰면 다음 원전으로 넘어간다. 이게 전부다.

주의할 점은 번역서가 아닌 원전을 베껴 썼다는 것이다. 참고로 말하면 천재들 중에서 인문고전을 번역서로 읽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들은 원전 지상주의자들이었다. 이는 로저 베이컨의 “원전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원전과 관련된 학문 전부를 이해한다는 것과 같다”라는 말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만일 원전의 언어를 모르면 천재들은 어떻게 했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비롯한 여러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를 연구해보면 그 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들은 원전에 사용된 언어를 새로 배웠다.

천재들은 자신이 읽은 부분 중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만 필사하는 방식도 선호했다. 키케로, 아이작 뉴턴, 존 스튜어트 밀, 프리드리히 니체, 퀴리 부인, 자와할랄 네루, 윈스턴 처칠 등이 이 필사법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방법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표시를 하거나 밑줄을 그으면서 책 한 권을 읽은 뒤 옮겨 적거나 중요한 부분을 발견하는 즉시 옮겨 적는 것 그리고 초서(鈔書), 세 가지가 있다.

초서란 인문고전에서 중요한 부분을 뽑아서 옮겨 적은 뒤 이를 주제별로 분류해서 편집한 뒤 책으로 만드는 것인데, 조선의 천재들이 취한 기본적인 인문고전 독서법이었다. 정조대왕은 『일득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릴 적부터 즐겨한 독서법은 초서였다. 내가 직접 필사해서 책을 이룬 것만 해도 수십 권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얻은 효과가 매우 크다. 그냥 읽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다산 정약용(오른쪽 그림)은 매일 새벽마다 고전을 몇 쪽씩 베껴 쓰는 일을 황홀한 취미로 삼았던 사람이다. 그는 아들 학연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올 겨울부터 내년 봄까지 『상서尙書』와 『좌전左傳』을 읽도록 하거라. …… 『고려사』 『반계수록』 『서애집』 『징비록』 『성호사설』 『문헌통고』 등도 읽어보고, 그 내용 중 중요한 것을 발견하면 초서하도록 하여라.” 필사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의심을 가질 수도 있다. “책을 베껴 쓰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는 말인가, 과연 그런 방법이 효과가 있을까?”

다산의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아버지의 조언을 의심했고, 급기야 편지로 물었다. 과연 그게 괜찮은 방법이냐고. 다산은 이렇게 답했다. “너희들이 어찌하여 초서의 효과를 의심하여 그런 말을 하느냐. 어떤 책이든 손에 잡으면 학문에 보탬이 될 만한 대목만 가려서 뽑고 나머지는 눈길도 주지 말거라. 그러면 비록 백 권의 책이라도 열흘 공부로 끝낼 수 있을 것이다.”

다산이 유배지에서 제자로 받아들인, 열다섯이 되도록 글자도 몰랐으나 다산의 체계적인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통해 천재적인 지식인으로 성장한 치원 황상(黃常)이 나이 일흔이 넘어서도 한결같이 실천한 인문고전 독서법도 바로 초서였다. 치원 황상 또한 초서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로부터 늘 이런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그게 과연 효과가 있습니까?”

뉴턴과 헤겔의 필사는 초서와 약간 유사한 면이 있다. 뉴턴의 독서노트는 45개의 소제목을 가지고 있었다. 소제목은 물질, 장소, 시간 등 자신의 관심사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었다. 뉴턴은 책을 읽다가 각 소제목에 해당하는 부분이 나오면 노트에 필사를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함께 적었다. 그리고 그 노트를 보면서 자신의 사상을 형성해나갔다. 

헤겔(왼쪽 그림) 또한 뉴턴처럼 자신만의 필사노트를 만들었다. 그의 필사노트는 자신의 관심사가 반영된 각 항목별로 나뉘어 있었는데 독서하다가 각 항목과 관련된,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 부분을 발견하면 즉시 옮겨 적었다. 헤겔은 이 작업을 매우 중요시했는데 이를 통해 천재들이 사고하는 방식을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고로 말하면 헤겔은 필사노트를 마치 보물처럼 평생 간직했고, 수시로 들춰보았다고 한다. 

진정한 필사는 종이 위에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영혼 속에 새겨 넣는 것이리라.

 인문고전이 자기 자신과 하나가 된 상태이리라. 키케로의 서한집을 전부 필사한 것으로 유명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페트라르카는 『나의 비밀』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했다. “책을 읽다가 자네의 영혼을 뒤흔들거나 유쾌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문장을 마주칠 때마다 자네의 지적 능력만을 믿지 말고 그것을 외우도록 노력해보게나. 그리고 그것에 대해 깊이 명상하여 친숙한 것으로 만들어보라고. 그러면 어쩌다 고통스런 일이 닥치더라도 자네는 고통을 치유할 문장이 마음속에 새겨진 것처럼 언제든지 준비되어 있음을 깨닫게 될 걸세.”

 

 

암송

 

페트라르카는 필사의 천재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인문고전 필사광이었을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피렌체 시를 아예 인문고전 필사의 도시로 만들어버린 장본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 필사의 천재가 권유하는 최고의 필사는 영혼을 뒤흔드는 문장들을 마음속에 새기는 것이다. 그 방법은 암송 즉 외우는 것이다.

사실 암송은 천재들이 즐겨 사용한 독서법이다. 중국 송나라의 대문호 구양수는 300자 암송 독서법을 권한다. “내가 글자 수를 세어보았더니 『효경』 1,903자, 『논어』 1만 1,750자, 『맹자』 3만 685자, 『주역』 2만 4,107자, 『서전』 2만 5,700자, 『시경』 3만 9,234자, 『예기』 9만 9,010자, 『주례』 4만 5,806자, 『춘추좌전』 19만 6,845자였다. 이 책들을 매일 300자씩 외우면 4년 반 만에 끝낼 수 있다. 조금 우둔해서 반으로 줄여서 외운다고 해도 9년이면 충분하다.”

칸트는 엄청나게 긴 라틴 고전 작품들을 단 한 줄도 틀리지 않고 암송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링컨은 데모스테네스, 키케로, 셰익스피어 등의 작품을 암송하는 것을 평생 즐거운 취미로 여겼다. 처칠은 어릴 적부터 고대 그리스 문학 작품을 줄줄 암송했다. 십대 시절에는 수천 쪽에 달하는 역사고전 『로마제국쇠망사』를 반복해서 읽었는데 덕분에 대부분의 핵심구절들을 외울 정도까지 되었다고 한다.

천재들의 필사법을 연구하다보니 놀라운 사실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많은 사람들이 제갈량 즉 제갈공명이 소설 속의 인물인 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엄연히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이다. 그는 인문고전 독서의 전통을 지닌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숙부로부터 유학을 배웠다. 그러다가 열일곱 살이 되던 해에 융중의 산골로 들어가서 스물일곱 살이 될 때까지 인문고전에 파묻힌 삶을 살았다. 그 기간에 그는 천재로 변화했고, 그 소식은 유비의 귀를 사로잡았다. 제갈량은 유가, 법가, 도가, 병가, 종횡가 등 제자백가의 책을 모두 섭렵했는데 그의 대표적인 독서법이 바로 필사였다.

제갈량은 유비의 아들 유선의 교육에 잠깐 관여한 적이 있는데, 이때 『신자』 『한비자』 『관자』 『육도』 네 권을 직접 손으로 필사해서 유선에게 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해지는 도중에 사고가 나서 유실되었다고 한다. 나는 생각해본다. 제갈량이 과연 유선에게만 그렇게 했을까라고.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자녀에게도 똑같이 했을 것이다. 덕분에 아들 제갈량은 오나라의 대장군과 태자의 태부(太傅)를 겸임하는 당대의 큰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부모가 인문고전을 직접 필사해서 아이에게 읽힌 사례는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 서포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 등의 사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현대의 인물로는 케네디의 어머니 로즈 여사를 들 수 있다.

제갈량은 촉나라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었다. 정치, 군사, 행정 등 각 방면의 일들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비자』의 원전은 55편으로 10만자가 넘는다. 『관자』는 우리나라 번역본의 페이지가 1천 쪽을 넘는다. 인문고전 독서교육에 대한 불타는 신념을 갖고 있지 않고서야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작업을 제갈량은 해냈다. 서포 김만중의 어머니 윤씨는 참으로 가난한 과부였다. 그녀는 책을 살 돈이 떨어지면 책방 주인에게 사정해서 책을 빌린 뒤 그것을 밤새도록 일일이 베껴 쓴 뒤 아이에게 읽혔다. 아이에게 인문고전 독서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마음 깊이 담아두고 늘 되새겨야 할 사례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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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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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천재들의 독서법: 읽다가 죽어버려라!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는 태도부터 남달랐다. 그들의 독서 태도는 무시무시한 열정과 집중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서애 류성룡이 관악산에서 맹자를 읽을 때의 일이다. 그는 물 긷고 밥 짓는 시동 하나만 데리고 빈 암자로 들어가 전투적으로 독서했다. 어느 날 밤 방문 앞에 이상한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그 그림자는 맹수 같기도 했고 도둑 같기도 했다. 그것은 꽤 오랜 시간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서애의 독서를 방해했지만 서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몸은 암자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책 속에 들어가 바깥세상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남명 조식(왼쪽 그림)은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자리에 앉아서 독서했는데 온종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어서 사람들이 조각상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평생 이런 독서 습관을 유지했다. 한편으로 그는 검을 몸에 차고서 독서한 것으로 유명했다. 아마 그는 이런 각오를 했던 것은 아닐까. 만일 조금이라도 나태하게 책을 읽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 나는 이 검으로 나 자신을 베어버리리라.

 

성호 이익은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어머님과 오랫동안 이별했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독서하라. 아픈 자식의 치료법을 묻는 사람처럼 질문하고 토론하라.” 성호에게 책은 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다산 정약용(오른쪽 그림)은 이런 고백을 남겼다. “유배지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가 창문을 닫고 밤낮으로 혼자 외롭게 살았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 하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런 상황이 고마웠다. 그래서 ‘나는 이제야 독서할 여유를 얻었구나’ 하면서 기뻐했다.” 다산에게 독서는 패가망신한 자신의 처지를 도리어 행운으로 여기게 할 정도로 소중한 그 무엇이었다. 그는 독서를 자기 자신보다 더 귀하게 여긴 사람이었다.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지은 중국의 천재 시인 도연명은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만나면 그대로 책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는 먹고 자는 것까지 까맣게 잊은 채 책 속에서 빠져나올 줄을 몰랐다. 그에게 독서는 단순히 글을 읽고 그 의미를 아는 것이 아니었다. 책 세계의 주민이 되어 그곳에서 사는 행위였다.

 

알렉산더 대왕이 서른세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손에는 『일리아드』가 들려 있었다. 아마도 그는 부하들과 백성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인문고전 독서로 얻은 특별한 두뇌의 힘으로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내가 이룩한 대제국을 무너뜨리고 싶지 않거든 나처럼 독서하다가 죽어라!”

가장 위대한 교부철학자로 평가받는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암브로시우스의 독서하는 모습을 보고 이런 글을 남겼다. “책을 읽는 그의 곁에는 누구도 감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손님들조차 예외가 될 수 없었다. 그의 두 눈은 책장을 뚫어버릴 듯 했고, 그의 가슴은 두 눈이 읽는 각 구절의 의미를 무서운 기세로 파악하고 있었다." 암브로시우스는 천재 중의 천재인 아우구스티누스가 감탄할 정도로 위대한 독서를 했기에 로마 황제들의 잘못을 꾸짖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기독교고전 중의 고전인 『그리스도를 본받아』를 쓴, 서양의 독서가들이 최고의 모범으로 꼽는 독서가인 토마스

아 캠피스는 제자들에게 책 읽는 법을 이렇게 가르쳤다. “책을 손에 쥘 때는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입 맞추려고 할 때처럼 하기를, 책 읽기를 마치고 나면 하나님의 입을 통해 나온 그 모든 단어들에 감사를 표하기를.” 그에게 독서는 예배의 연장이었다.

 

톨스토이(왼쪽 그림)는 장자크 루소의 책을 만나고 감동한 나머지 그의 초상이 새겨진 메달을 구해서 목에 달고 다녔다. 루소와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고 싶어서였다. 그는 루소의 영향을 받아 대학까지 중퇴해버리고 말았는데, 후일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진짜 공부(인문고전 독서)를 하기 위해서였지.”

 

버지니아 울프(아래 사진)는 자신의 시각으로 인문고전을 읽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녀는 그리스 고전을 읽을 때는 고대 그리스인의 시각으로, 라틴 고전을 읽을 때는 고대 로마인의 시각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위해 그녀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개인교사를 고용해서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 공부는 20년 넘게 계속되었다. 버지니아 울프 연구가들은 말한다. 그녀는 그리스 로마 고전을 ‘읽었다’라기보다는 ‘먹어치웠다’고. 버지니아 울프에게 인문고전 독서는 단순한 책 읽기가 아니었다. 일생일대의 사명이었다.

 

천재들의 인문고전 독서 태도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독서하다가 죽어버려라!” 정도가 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그토록 무서운 각오로 독서했던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나는 그 이유를 천재들의 평범함에서 찾고 싶다. 천재들은 자신이 평범한 두뇌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이는 다음 고백들과 일화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세종대왕은 『성리대전』을 읽고 집현전 응교 김돈에게 고백했다. “내가 한 번 읽어보았는데 책의 의미를 쉽게 탐구할 수 없었다. 너는 유념하고 읽어서 나의 질문에 대비하라.” 세종대왕은 신하에게 일종의 독서과외를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세종대왕이 태어날 때부터 천재였다면 굳이 신하에게 이런 부탁을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한 번 읽고서 그 모든 뜻을 통달했을 테니까. 이렇게 놓고 보면 그의 백독백습도 이해가 된다. 그는 평범한 두뇌를 가졌기에, 그 정도로 미친 듯이 독서해야 비로소 그 의미를 터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퇴계 이황은 젊어서 인문고전 독서에 힘썼는데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괴로워하다가 마침내 병까지 얻었고, 몇 년 동안 책을 손에 잡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우암 송시열(왼쪽 그림)은 맹자 호연지기장을 읽다가 자신의 무능력과 한계를 절감했다. 그는 후일 당시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했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보면 볼수록 더욱 단단해지는 나무토막 같았다.……짜증이 났고 식은땀까지 났다.” 결국 그는 호연지기장을 무려 500번 넘게 읽는 방법을 택했지만 끝내 깨달을 수 없었다고 한다.

 

고봉 기대승은 청년 시절 이렇게 고백한 바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훈을 받아서 공부했다. 지금쯤은 어떤 성취를 이루어야 하는데 나의 기질이 범상하여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어리석으니 한스럽다.”

 

일두 정여창은 『소학』 한 권을 30년 동안 읽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나는 자질과 능력이 남들보다 못한 사람이다. 때문에 전심전력을 다해 독서하지 않으면 털끝만한 효과도 얻기 힘들다.”

 

담헌 홍대용은 이렇게 말했다. “인문고전을 처음 접할 때면 누구인들 힘들고 괴롭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 하지 않고 구차하게 편안한 독서만 하려고 한다면 자신의 능력을 내던지는 결과밖에 얻지 못할 것이다.”

중세 아라비아의 천재 학자 아비세나(Avicenna)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이해하고픈 나머지 마흔 번 넘게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그 의미를 아는 데 실패했다고 전해진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오른쪽 그림)은 기본적인 서양고전인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과 데카르트의 『방법서설』을 읽다가 심히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그는 마음자세부터 새로 고쳤고 온 정성을 다해 독서했다. 하지만 그래도 쉽지 않아서 수시로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마하트마 간디가 자서전에서 한 고백은 충격적이다. “어느 날의 일이다. 친구가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론』*을 읽어주었다. 나는 매우 당황했다. 무슨 소리인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친구가 책의 내용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팔을 휘휘 저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미안하다. 내 능력으로는 그 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존 스튜어트 밀이 인문고전 독서를 매우 힘겨워했다는 사실은 책의 서두에서 자세히 밝힌 바 있다. 천재들은 인문고전을 대하고서 자신이 평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앞에서 언급한 남다른 독서 태도, ‘독서하다가 죽어버려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천재들의 남다른 독서태도는 어떻게 구체화되었던 걸까. 내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반복독서-필사-사색’이었다. 앞으로 하나씩 살펴보자.

 

*벤담은 『도덕과 입법의 원리서설』에서 공리주의를 말했다. 아마도 간디는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서전에 『공리주의론』이라고 하였기에 그대로 따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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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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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나’와 ‘너’와 ‘우리’를 위한 인문고전 독서

 

 

나의 인문고전 독서는 1)저자만 있는 단계 2)‘나’가 나타나는 단계 3)‘너’가 나타나는 단계 4)‘우리’가 나타나는 단계를 거쳤다. 처음에 나는 아무런 의견이 없었다. 그저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기에 바빴다.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인가부터 ‘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는 집요할 정도로 ‘저자’를 만나고 싶어했다. 그 열망이 1차원적 독서밖에 할 줄 몰랐던 나로 하여금 2차원적 독서를 하게 했다. 나는 인문고전의 내용을 나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지혜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몇 년이 지나자 ‘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멘티들에게 인문고전에 기반한 멘토링을 해줄 수 있었다. 지금은 ‘우리’가 나타나는 단계에 있다.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 라는 내 수준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그런 주제를 놓고 묵상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의미다.

 

세상에는 인문고전을 좔좔 외우면서도 ‘너’나 ‘우리’는커녕 ‘나’도 나타나지 않은 단계에 머물러 있는 인문고전 독서가들이 의외로 많다. 나는 처음에 그런 사람들을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연구해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들에게는 ‘열망’이 없다는 것이다. ‘나’와 ‘너’와 ‘우리’를 아름답고 지혜롭게 성장시켜서 세계를 보다 나은 곳으로 변화시키고 싶어하는 간절한 열망 말이다. 쉽게 말해서 그들은 가슴이 아닌 머리로 독서하는 사람들이었다. 한편으로 그들은 인문고전을 읽는 행위 자체를 무슨 대단한 지적 행위를 하는 것인 양 여기는, 인문고전을 통해 얻은 지식을 뽐내고 싶어서 안달하는, 인문고전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심하게 깔보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인문고전 저자들이 꿈꾼, 인류의 이상이 실현된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분투하는 삶을 살지 않는 인문고전 독서가는 그 존재 자체로 인류의 수치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 정도는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는 나이지만 그렇다고 어떤 ‘분투’를 하고 있지도 않은 나이기에 ‘그들’을 비판할 자격은 없지만, 그들에게 안타까운 감정은 가지고 있다. 그들이 가슴으로 하는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기를. 그러면 세계는 지금보다 행복한 곳이 될 것이다.

 

나는 인문고전 해설서를 거의 읽지 않았다. 아니 해설서를 몇 권 읽어본 뒤 의도적으로 해설서를 멀리했다. 그 기간이 약 7년에 달한다. 내가 해설서를 멀리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해설서 집필자들은 대부분 인문고전 연구 경력이 화려하다. 쉽게 말해서 그 분야의 최고 전문가다. 그러다보니 초보자인 나로서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신뢰하게 되었는데, 그게 나의 발전을 저해했다. 인문고전을 내 관점이 아닌 그들의 관점으로 읽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는 의미다. 즉 나는 인문고전을 그들의 두뇌로 읽는 우를 범하고 있었다. 물론 해설서 집필자들은 대단히 뛰어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인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정도의 천재는 못 된다. 천재의 저작은 천재만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또 해설할 수 있다. 이것은 상식이다. 즉 현대의 연구자들이 쓴 해설서들은 원작자인 천재의 입장에서 보면 황당한 것일 수 있다. 달은 보지 못하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 것일 가능성이 100%다. 나는 해설서를 읽어야 하느냐 마느냐를 놓고 오랜 시간 고심한 끝에 이런 결론을 내렸고, 해설서와의 인연을 단칼에 끊었다.

 

둘째, 나는 인문고전을 날것 그대로 만나고 싶었다. 나도 인간이고 인문고전의 저자들도 인간이고 해설서 집필자들도 인간이다. 하나님 앞에 서면 나나 인문고전의 저자들이나 똑같이 평등한 존재인데, 굳이 다른 인간(해설서 집필자)의 도움을 얻어가면서까지 그들(인문고전 저자들)을 만나야 할 필요성이 있을까?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질문했고, ‘아니다’라는 답을 얻었다. 한편으로 나는 해설서 독서는 아무리 열심히 하더라도 인문고전을 단 하루 읽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인문고전은 비록 처음엔 두뇌 고문과도 같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하다보면 어느 순간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된다. 두뇌가 열리고 어떤 빛 같은 게 두뇌를 채우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두뇌의 근본적인 변화, 즉 둔재가 천재로 변화하는 순간은 그런 경험이 절정에 이른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해설서 독서는 단 한 번도 그런 경험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하여 나는 해설서를 내 책장에서 치워버렸다.

 

나는 작년부터는 해설서를 즐겨 읽고 있다. 이제는 읽어도 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아니 이제는 해설서가 두렵지 않다. 아직도 초보 수준이긴 하지만 그래도 인문고전을 제법 접하다보니 해설서 저자의 의견에 크게 영향받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제도 중국의 한 유명 대학 교수가 쓴 동양고전 해설서를 읽었는데, 나는 그의 몇몇 의견, 특히 묵자에 관한 부분에서 치명적인 한계와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마도 옛날 같았으면 나는 그 교수의 의견에 압도되었을 것이고, 그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 급급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인문고전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해설서에는 인문고전을 보다 잘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들어 있다. 때문에 나는 해설서는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시기에 있어서는 인문고전 독서를 시작하고 최소 3년, 최고 10년이 흐른 뒤가 적당하다고 주장하고 싶다. 아니 좀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당신의 내면에 인문고전 독서 능력이 제대로 자리잡은 뒤에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덧붙이자면 인문고전 독서 능력은 인문고전을 날것 그대로 치열하게 읽다보면 저절로 생긴다.

 

인문고전 독서는 체계가 있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을 읽고 플라톤을 전기, 중기, 후기로 구별해서 읽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읽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나는 체계를 따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체계라는 것을 알게 된 지도 얼마 안 됐다. 나는 무턱대고, 닥치는 대로 읽었다. 중요한 것은 천재들의 사상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가 아니라 천재들의 마음을 끌어안고 얼마나 치열하게 뒹굴었느냐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의 인문고전 독서 목표는 인문교양 서적 저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고 인문대학 교수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돌덩이 같은 머리를 좀 괜찮은 두뇌로 만들고 싶다는 것뿐이었다. 쉽게 말해서 나는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철학 그 자체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인문고전을 열심히 읽다보니 체계가 저절로 잡히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유는 간단하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읽다보면 플라톤을 읽지 않으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나온다. 결국 아리스토텔레스 독서를 중지하고 플라톤을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플라톤을 읽다보면 프로타고라스라든지 파르메니데스 같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을 모르면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나온다. 결국 플라톤 독서를 중지하고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글을 읽을 수밖에 없다. 동양 고전도 마찬가지다.

 

어찌 보면 나는 꽤 무식하게 체계를 잡은 셈인데, 그래도 나는 이 방법을 추천하고 싶다. 처음부터 체계를 잡아놓고 읽기 시작하면 독서의 재미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아무 책이나 골라서 읽다가 불현듯 얻게 된, 앞선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음, 그것이 나에게는 굉장한 동기 부여가 되었다.

 

나는 내가 읽은 인문고전을 거의 대부분 베껴 쓰기, 즉 필사를 했다. 처음에 필사를 시도했던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으니 한번 필사해보면 뭔가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실제로 필사를 해보니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아이들을 보내고 교실에 홀로 앉아 클래식을 틀어놓고 철학고전을 필사했을 때마다 느꼈던 그 강렬하고 특별했던 감정들을. 어느 겨울날 새벽에 홀로 깨어 눈 내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필사를 했을 때 체험했던 그 놀라운 깨달음들을. 나는 필사를 하면서 인문고전 저자를 직접 만나는 듯한 착각에 빠졌던 것이다. 하얀 종이 위에 찍힌 검은 글자들이 단순한 글자로 머물지 않고 시공을 초월한 ‘대화’로 변해서 나에게 다가오던 그 순간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순간들은 필사를 할 때 주로 찾아왔는데, 나는 그 순간들이 쌓여서 나의 작은 변화를 만들어냈다고 믿는다.

 

주로 새벽이나 방과 후 교실에서 필사를 했다. 하지만 자투리 시간도 많이 활용했다. 예를 들면 키르케고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EBS TV 녹화를 하러 갔을 때, 대기실에서 했다. 학교별로 40명씩 나와서 하는 퀴즈 대항전 프로였다. 2시간 연속 녹화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이들을 인솔해서 녹화무대로 보내고 나니 할 일이 없었다. 해서 나는 키르케고르를 꺼내들었고, 필사를 했다. 『맹자』의 5분의 1은 지하철에서 필사했고, 『범주론(아리스토텔레스)』의 절반은 공원 벤치 등에서 필사했다.

 

나는 노트에 하는 필사를 선호했는데 어느 날 워드 필사의 편리함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 약 5~6년 동안 워드 위주의 필사를 했다. 그런데 워드 필사는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나는 필사를 하다가 좋은 구절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흥분해서 자판을 세게 내려치는 경향이 있는데, 인문고전 같은 경우 거의 모든 구절이 좋은 구절이었다. 게다가 나는 멋진 작가가 되기 위해 인문고전 외의 책들도 매일 필사하고 있었다. 덕분에 내 손가락들은 늘 작은 파스와 대일밴드를 붙이고 살아야 했다. 특히 왼손이 심하게 아팠는데 나중에는 합기도에서 하듯이 다른 손으로 왼손을 꺾고 다니지 않으면 안 될 지경이 되었다. 그리고 어깨가 늘 찌르듯이 아팠다. 필사를 한창 열심히 하던 때는 어깻죽지 통증이 하도 심한 나머지 나도 모르게 길거리 등지에서 소리를 지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2008년부터는 워드로 하는 필사를 실질적으로 그만두었다. 대신 집에 있는 복사기로 책을 몇 쪽씩 복사한 뒤에 각 행 밑에 있는 여백에 필사를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필사는 보통 한 번만 했다. 그러나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책들은 여러 번 했다. 철학고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필사했고, 문학고전은 가슴에 와닿는 부분만 필사했다. 역사고전은 한 권도 필사하지 않았다. 철학고전 중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따로 출력해서 주머니나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수시로 꺼내서 소리 내어 읽었다. 이해가 될 때까지 그렇게 했다. 물론 내 수준의 이해였지만. 자동차가 생긴 뒤부터는 mp3에 인문고전을 녹음해서 운전중에 듣는 방법도 쓰고 있다. 최근에 마키아벨리의 『군주론』과 베게티우스의 『군사학 논고』를 이런 식으로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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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 제15화. 인문고전 독서가 주는 카타르시스 인문고전에 빠지다... / 게시판

2011.02.07. 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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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인문고전 독서가 주는 카타르시스

 

 

 

내 방 책꽂이에는 인문고전이 가득하다. 그 책들을 볼 때마다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읽은 책보다는 읽지 못한 책이 더 많다는 사실, 어떤 책들은 구입한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 첫 페이지를 넘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 만한 책이 단 한 권도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좀더 내밀한 고백을 하자면, 나는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내가 ‘바보’라는 사실을 알았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다.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한다는 것. 물론 이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일 수 있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것이므로. 나 역시 그런 함정에 빠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나의 그런 생각은 독파하는 인문고전이 늘어나면서 저절로 사라졌다.

 

플라톤의 『소피스테스』를 읽었을 때의 일이다. 아마도 2002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없는 것은 있다’라는 소피스테스들의 주장이 틀리고 ‘없는 것은 있지 않다. 그러므로 없는 것은 없다’라는 플라톤의 주장이 맞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논박이 펼쳐지고 있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무지 알.수.가.없.었.다. 그러나 이해하고 싶었다. 해서 책을 몇 차례 되풀이해서 읽고 따로 노트 정리를 하고 다시 종이 한 장으로 요약했다. 그 종이를 몇 달 동안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그러나 이.해.할.수.없.었.다. 나는 그만 왈칵 눈물을 흘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바보’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다행스럽게도 플라톤의 위의 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론』 『소피스트적 논박』 『형이상학』을 읽고(물론 이 책들도 죽기 살기로 읽었고,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과 니체의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 그리고 칼 포퍼의 『파르메니데스의 세계』를 읽으니까 무슨 의미인지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참고로 말하면 내가 니체의 『플라톤 이전의 철학자들』과 칼 포퍼의 『파르메니데스의 세계』를 손에 잡은 것은 2009년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내가 바보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권고로 인문고전을 접한 사람들의 반응이 하나같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소위 독서광이라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나마 쉬운 플라톤의 초기 저작도 머리를 쥐어뜯어가면서 독서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이렇게 난해한 책이 다 어딨어!” 몇몇은 “내가 책 좀 읽는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았는데, 그 자부심이 플라톤 앞에서 처참하게 박살났다. 서양 철학고전의 세계를 알게 해준 이지성이 원망스럽다”라는 식의 말까지 했다.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칸트, 하이데거를 읽다가 “악!” 하고 소리를 지른 사람도 있었고, 열등감과 좌절감이 분노로 변한 나머지 책을 찢어버린 사람도 있었다. 눈물을 흘린 사람은, 매우 많다. 그들 중엔 의사, 약사, 판사, 변호사, 대학교수, 아나운서, CEO, 미스코리아, 슈퍼모델, 작가, 기자, 칼럼니스트, 평론가, 독서지도사, 독서법 강사, 독서 전문 기고가 등이 있었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혹시라도 인문고전을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고, 에베레스트 산이나 태평양 한가운데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을 얻더라도 당황스러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당신이 지극히 정상이라는 신호니까.

최근에 출간된 책들 특히 인문교양서와 경제경영서는 손에 너무 쉽게 잡히는데, 인문고전은 왜 그렇게 손에 잘 안 잡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책상 위, 운전석 옆 좌석, 가방, 침대 머리맡 등등 내 손이 자주 가는 곳에는 예외 없이 인문고전을 배치해놓았다. 그런데 내 손에는 다른 책이 들려 있을 때가 더 많다. 특히 만화책이. 한때 나는 그런 내 자신을 보면서 곤혹스런 감정을 느끼곤 했다. 이어 실망, 좌절, 분노, 슬픔 같은 감정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헤겔과 비트겐슈타인을 만나고 그런 감정으로부터 적잖이 자유로워졌다.

 

헤겔은 베스트셀러 소설광이었다. 그는 어떤 인문고전보다 당시 베스트셀러 소설가였던 요한 티모테우스의 글을 즐겨 읽었다. 아니 지인들의 걱정거리가 될 정도로 푹 빠져 있었다. 비트겐슈타인(왼쪽 사진)은 싸구려 탐정소설광이었다. 그는 제자이자 친구였던 말콤(N. Malcolm)에게 보낸 편지들에서 이렇게 말했을 정도였다. “자네로부터 탐정잡지를 받아보는 건 멋진 일이 될걸세. 요즘엔 그걸 구하기가 무척 힘이 드네. 마치 내 마음이 허기가 지는 기분이야. 탐정잡지 안에는 정신적인 비타민과 칼로리가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다네. ……만일 미국이 우리에게 탐정잡지를 주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들에게 철학을 줄 수 없다는 이야기라네.” “정신 나간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탐정잡지를 최근에 다시 읽었을 때 나는 또다시 너무 좋아져서 진심으로 작가에게 편지를 써서 감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네.”

 

헤겔과 비트겐슈타인의 독서 취향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인문고전보다는 신간 서적을, 신간 서적보다는 만화책을 좋아하는 나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게 되었다. 게다가 나는 천재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지극히 평범한 두뇌를 가진 사람일 뿐이다. 이런 내가 천재들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문고전의 세계에 과감히 발을 들여놓을 용기를 냈고, 지금껏 도망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일일 수 있다. 어쩌다보니 분위기가 제법 자화자찬 쪽으로 돌아갔다. 수습을 해야겠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언젠가는 나도 인문고전을 만화책처럼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이런 뻔한 말밖에는.

 

나는 늘 막다른 골목에 몰린 심정으로, 읽지 않으면 작가로서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에, 쫓기듯 인문고전을 펼친다. 그리고 이내 두통을 느낀다. 하지만 꾹 참고서 독서를 계속하다보면, 강박관념과 두통은 어느새 황홀한 감정으로 바뀐다. 거의 두뇌고문이라 불러도 부족하지 않을 서양 철학고전 독서도 마찬가지다. 읽다보면 어느 순간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나는 인문고전을 읽으면서 이 우주에는 우리가 오감으로 아는 시공간과 전혀 다른 시공간을 가진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세계는 인문고전 저자들이 만든, 그들의 정신이 살아서 빛나고 있는 세계다. 인문고전을 온 마음을 다해서 읽다보면 내 정신이 그 세계에 접속하는 것을 느낀다. 그때의 경험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밝고 아름다운 빛이 꽉 막힌 머릿속으로 확 뚫고 들어오는 느낌, 가슴속이 말할 수 없이 시원해지는 느낌, 단전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확 올라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나는 그런 경험을, 특히 새벽에 일어나 홀로 독서할 때, 자주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성장하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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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 제14화. 가장 훌륭한 『논어』 독서법은? 인문고전에 빠지다... / 게시판

2011.02.07. 0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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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가장 훌륭한 『논어』 독서법은?

 

 

최고의 경영자는 본질경영, 전략경영, 인재경영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다. 본질경영과 전략경영의 완벽한 교과서가 플라톤의 『대화편』과 『손자병법』이라면 인재경영의 그것은 『논어』다. 이는 우리나라 최고경영자들이 인재경영 필독서로 『논어』를 가장 많이 꼽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논어』의 주인공 공자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달리 불굴의 의지로 무장한 자기계발의 화신이었다. 그는 명문 학자 집안이 아닌 하급 무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것도 서자(庶子)로. 나이 일흔 즈음에 공자를 얻고 행복해하던 아버지는 공자가 세 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때부터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공자는 생계를 위해 가축관리, 창고지기, 정원지기 등의 일을 해야 했다.

 

출생신분, 가정환경, 직업 등을 놓고 볼 때 공자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원초적인 자기계발인 ‘공부’에 집중했고, 이를 통해 한 국가의 정점에 서는 인물로 성장했다. 공자의 자기계발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충실히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가 노나라의 대사구(大司寇, 오늘날로 치면 법무부 장관)가 된 지 3개월째의 일이다. 관리들은 공명정대와 청렴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문화를 만들었고, 상인들은 저울을 속이던 관행을 스스로 없앴다. 정치와 경제가 투명해지자 사회 질서는 저절로 바로잡혔다.

 

치국에 성공한 공자는 노나라를 통해 평천하를 이루고자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자의 꿈은 제나라 군주가 노나라 군주에게 선물한 80명의 미녀와 120필의 명마로 인해 무너지고 말았다. 주색잡기에 빠진 노나라 군주는 바른 정치를 추구하던 공자를 막다른 길로 내몰았고 결국 공자는 노나라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그것은 공자에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공자는 인(仁)과 예(禮)로써 세상을 구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이루기 위해 천하를 주유했다. 그 와중에 굶어죽을 뻔도 했고 살해당할 뻔도 했지만 그럴수록 공자는 뜨겁게 불타올랐다. 마치 어두울수록 더욱 빛을 발하는 별처럼.

 

13년에 걸친, 불가능을 향한 공자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렇다고 공자의 영혼마저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천하주유를 접고 노나라로 돌아온 공자는 새로운 꿈에 들떴다. 그것은 인재양성을 통한 세상의 구제였다. 그는 무수히 많은 ‘작은 공자’를 만들어서 천하를 혁명적으로 바꾸고자 했고, 이를 위해 귀족의 자녀들만 공부할 수 있었던 당시의 관습을 타파하고 평민의 자녀들을 대거 제자로 받아들였다. 공자의 밑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던 제자들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해서 세상으로 나갔고, 공자가 꿈꾸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내던졌다.

 

『논어』는 ‘지도자’를 위한 책이다. 기업 지도자 즉 최고경영자가 『논어』를 애독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1. 삼성그룹 창업주와 현대그룹 창업주이병철과 정주영의 경영필독서는 『논어』였다.

2. 삼성그룹을 세계 일류기업으로 변화시킨 이건희는 창업주 이병철에게 단 한 권의 책을 물려받았는데, 『논어』였다.

3. 포스코 정준양 회장은 『논어』의 한 구절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에서 얻은 깨달음을 토대로 포스코의 기업문화를 새롭게 바꾸고 있다. 그가 추구하는 기업문화는 ‘신나게, 즐겁게, 통통 튀게’ 정도로 요약될 수 있겠다.

 

4. 코오롱그룹 부회장 민경조는 『논어』를 1,000번 이상 읽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말단 샐러리맨으로 시작해서 CEO가 되었는데, 코오롱건설 대표이사 시절 『논어』를 기반으로 한 경영을 펼쳤다. 그 7년 동안 코오롱건설은 설립 이래 최고실적인 1조원 대의 매출을 올렸다.

5. 신세계 구학서 부회장은 『논어』의 ‘안연’편을 자신이 추구하는 윤리경영의 토대로 삼고 있다.

6. 중국 진출 공로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노재만 베이징 현대자동차 사장은 『논어』의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경영철학으로 삼고 있다.

7. (주)동주 회장 조병두는 일흔 살의 나이에 『논어』의 인간경영론과 현대 기업경영에서의 활용에 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성균관대학교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어』를 읽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만일 누군가가 나에게 『논어』를 어떻게 읽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다음 순서대로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1. 공자는 『논어』를 직접 쓰지 않았다. 『논어』는 공자 사후 그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편집해서 엮은 것이다. 공자가 직접 편찬한 여섯 권의 책있다. 육경(六經)이라고 불리는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악경, 춘추다. 이를 읽는다. (성리학의 창시자 주자는 유학의 ‘도’가 ‘요-순-우-탕-문왕-무왕-주공-공자’ 순으로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이 7명의 군자에 대한 이야기는 『서경』에도 있지만 사마천의 『사기: 본기』에도 있다. 때문에 『사기: 본기』를 함께 읽을 것을 권한다.)

2. 『논어』를 읽는다.

3. 증자는 공자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 그 가르침을 담은 책 『대학』을 읽는다.

4. 자사는 증자의 제자이자 공자의 손자다. 그가 저술한 책 『중용』을 읽는다.

5. 자사의 제자이자 유가에서 공자 다음 가는 사상가인 맹자의 『맹자』를 읽는다. 참고로 말하면 『논어』 『대학』 『중용』 『맹자』를 일러 사서(四書)라 한다.

6. 동양의 아리스토텔레스라고 불리는, 성리학자들에 의해 유교의 이단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러나 맹자보다 더 뛰어난 유가 사상가라는 평가 또한 받은 순자의 『순자』를 읽는다. 참고로 말하면 대표적인 법가 사상가인 한비자와 진시황의 두뇌였던 이사가 순자의 제자였다.

7. 비록 유학을 지배 계급의 통치이론으로 만들어버렸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공자의 사상을 공부할 때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물인 동중서의 『춘추번로』를 읽는다.

8. 정치이념으로 전락해버린 『동중서』는 물론이고 맹자와 공자에까지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던 유가 사상가인 왕충의 『논형』을 읽는다.

9. 북송오자(北宋五子)라 불린, 성리학의 창시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주돈이의 『태극도설』『통서』, 소강절의 『황극경세서』와 『관물외편』, 정호․정이 형제의 『명도문집』 『어록』 『이정유서』와 두 형제의 글을 주자가 편집한 『하남정씨문집』과 『하남정씨유서』, 장재의 『정몽』 『횡거역설』 『서명』, 주자(주희)의 『근사록』 『주자문집』 『주자어류』 『논어집주』 『역학계몽』 『태극해의』를 읽는다.

10. 실질적으로 주자가 창시한 『성리학』과 쌍벽을 이루는 『양명학』의 창시자 왕수인의 『전습록』을 읽는다.

11. 유학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사상가였던, 유교의 반역자라고까지 불린 이탁오(이지)의 『분서』를 읽는다.

12. 성리학의 리(理)를 비판하는 기(氣) 철학의 완성자라고 불리는 대진의 『맹자자의소증』 『원선』을 읽는다.

13. 우리나라 성리학 역사에서 기 철학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탐구했다고 평가받는, 중국 『사고전서』에 개인 저서가 수록된 유일한 우리나라 학자인 서경덕의 『원리기』 『이기설』을 읽는다.

14. 중국,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열렬히 연구되고 있는 위대한 유학자 퇴계 이황의 『성학십도』 『자성록』 『언행록』 『퇴계선집』 『전습록논변』 『퇴계와 고봉간의 편지 모음집』을 읽는다.

15. 퇴계 이황에 이어 세계적으로 연구되고 있는 대유학자 율곡 이이의 『격몽요결』 『동호문답』 『성학집요』 등을 읽는다.

16. 설명이 필요 없는 대학자 정약용의 『논어고금주』 『맹자요의』 『중용자잠』 『대학공의』를 읽는다.

 

*선택사항: 공자는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주인공인 관중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관중은 제나라의 환공으로 하여금 천하를 바로잡도록 보필했다. 덕분에 백성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은혜를 입고 있다. 만일 관중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도 오랑캐 신세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물론 공자의 사상은 관중의 그것과 다르다. 공자는 유가의 시조이고 관중은 법가의 시조이기 때문이다. 허나 위의 글을 놓고 보면 공자가 관중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음은 분명해 보인다. 때문에 나는 관중의 '관자'를 읽을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이는 선택사항으로 하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공자와 관중은 다르기 때문이다. 참고로 말하면 관중은 제갈공명이 가장 존경한 인물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 순서는 이지성의 『논어』 독서법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가장 훌륭한 『논어』 독서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코오롱 그룹의 민경조 부회장처럼 『논어』를 천 번 넘게 읽는 것일 수도 있고, (주)동주의 조병두 회장처럼 『논어』를 연구주제로 삼아 논문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논어』를 애독하는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아니다. 가장 훌륭한 『논어』 독서법은 아마도 아래의 대화에 나오는 공자의 대답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삶일 것이다.

 

번지가 ‘인(仁)’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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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세계 최고의 경영인들을 매혹시킨

‘소크라테스 식 대화법’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경영이다. 경영은 인간을 움직여서 ‘변화’라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창조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움직이려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그것도 거의 완벽하게. 쉽게 말해서 인격의 한 부분이 성인(聖人)의 경지에 올라서야 한다. 때문에 경영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 뛰어난 실적을 올리는 것, 회사를 업계 1위의 자리에 올리는 것은 경영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일을 잘하는 것에 불과하다. 진정한 경영은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새로운 역사를 쓰는 행위다. 궁극적으로는 소크라테스처럼 공자처럼 노자처럼 손자처럼 시공을 초월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물론 이 사람들이 철학자이지 어떻게 경영자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나는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모든 경영인의 꿈은 인류의 역사의 끝까지 존속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영원에 가까운 회사를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은 물질세계에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비물질세계, 이를테면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소크라테스, 공자 등은 인류의 마음속에 영원에 가까운 세계를 세운 사람들이다. 때문에 진정한 경영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들처럼 사는 삶을 지향해야 한다.”

 

나는 불가능한 조건을 딛고 기적 같은 꿈을 이룬 사람들을 17년 가까이 2천여 명 넘게 연구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을 책으로 정리해서 펴내고 있다. 정확하게 세어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이 중 절반 가까이가 경영자들일 것이다. 즉 나의 인문고전 독서는 경영 연구와 함께 진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나는 7명의 전설적인 경영자가 등장해서 주인공에게 소크라테스 식 대화법으로 멘토링을 하는 『행복한 달인』이라는 책을 쓴 적이 있을 정도로 인문고전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내가 발견한 바에 따르면 인문고전 중에서도 소크라테스를 주인공으로 하는 플라톤의 대화편들, 손무의 손자병법, 공자의 논어가 경영자들에게 최고의 영감과 지혜를 제공해주는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통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W. K. C. 거스리는 『그리스 철학의 역사』에서 ‘캠브리지 고대사6’에 실린 콘포드의 글을 참고하여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다음과 같이 나누고 있다.

1)초기: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라케스’ ‘뤼시스’ ‘카르미데스’ ‘에우튀프론’ ‘소 히피아스’ ‘대 히피아스’ ‘프로타고라스’ ‘고르기아스’ ‘이온’

2)중기: ‘메논’ ‘파이돈’ ‘국가’ ‘향연’ ‘파이드로스’ ‘에우튀데모스’ ‘메넥세노스’ ‘크라튈로스’

3)후기: ‘파르메니데스’ ‘테아이테토스’ ‘소피스테스’ ‘정치가’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필레보스’ ‘법률’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대화편들에서 플라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언제나 소크라테스가 나올 뿐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가들은 플라톤이 초기 대화편에서는 스승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충실하게 나타냈지만 중기 대화편부터는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후기 대화편에 이르러서는 자신만의 독보적인 철학세계를 구축했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짐 콜린스는 자신을 포함하여 총 21명으로 구성된 경영연구팀을 이끌고 1965년부터 1995년까지 『포천』 선정 500대 기업에 오른 1,435개의 기업을 5년 동안 심층 분석했다. 그리고 1,435개 기업 중 고작 11개 기업만이 전체 주식 시장의 3배 이상의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유지했음을 밝혀냈다. 짐 콜린스는 11개 기업의 성장비결을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담아냈는데, 이에 따르면 좋은 기업을 위대한 기업으로 변화시킨 경영자들은 모두 ‘소크라테스 식 질문법’의 달인이었다.

 

피터 드러커(오른쪽 사진)의 경영 사상은, 플라톤의 대화편들을 읽고 소크라테스 식 질문법에 익숙해진 뒤 피터 드러커의 책들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사실상 소크라테스 식 질문법의 경영학 버전에 불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그는 『변화리더의 조건』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진정한 마케팅은 ‘우리가 팔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고객이 구입하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20세기 미국 대통령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각료진을 구성했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과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내각의 인사를 시행하면서 늘 이렇게 이야기했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에게 어떤 약점이 있는가?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1910년 전후) 당시 소규모 자동차 제조회사의 사장이었던 (후일 제너럴모터스를 창업하는) 윌리엄 듀란트는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자동차가 대중교통수단이 될 것이라는 예측은 혹시 이미 일어난 사실이 아닌가?’”

그의 다른 저서들도 마찬가지다. 소크라테스 식 질문법을 사용해서 경영의 본질을 파헤치고 자신이 발견한 답을 독자들에게 강력하면서도 흥미롭게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잭 웰치와 스티브 잡스는 소크라테스 식 질문법을 경영에 적용해서 세계적인 경영인이 된 대표적인 경우다.

잭 웰치는 피터 드러커가 소크라테스 식 질문법을 활용해서 개발한 두 가지 질문 1)만일 당신이 그 사업을 하고 있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뛰어들 것인가? 2)그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사업에 적용해서 미국 경영의 역사를 새로 썼다. 자신의 모교인 리드 칼리지에 거액을 기부하면서 “리드 칼리지 시절에 접한, 플라톤과 호머에서 시작해서 카프카에 이르는 인문고전 독서 프로그램이 애플 컴퓨터를 만든 결정적인 힘이다. ……리드 칼리지 시절 나는 동양 인문고전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시절 서예 강좌도 들었는데 그때 배운 감각이 매킨토시와 아이팟 디자인 감각의 원천이 되었다”라는 연설을 한 바 있는 스티브 잡스는 “만일 소크라테스와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면 우리 회사가 가진 모든 기술을 그것과 바꾸겠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소크라테스광(狂)이다. 그가 소크라테스 식 질문법을 경영에 적용했음은 두말할 것 없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질문자로 등장한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안다’고 믿는 상대방에게 질문을 던지는데 상대방이, 자신이 그동안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에 불과하고 사실 자신이 ‘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까지 계속한다. 예를 들면 ‘메논’에서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메논에게 계속 질문을 던져서 “……그동안 사람들을 향해 수만 번 넘게 ‘탁월함’에 대해 아주 잘 설명했던 제가 당신의 계속된 질문으로 인해 영혼도 입도 다 마비되어, ‘탁월함’에 대해 당신께 어떤 대답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탁월함’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라는 고백을 이끌어낸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상대방의 무지를 깨우쳐준 뒤, 역시 질문법을 사용해서 상대방을 진정한 앎의 세계로 이끈다.

 

경영의 성패는 경영자가 일의 본질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경영자는 자신이 파악한 일의 본질에 따라 경영 전략을 짜기 때문이다. 최근에 발생한 도요타 차량 결함 사태는 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대표적인 사례다. 도요타 경영진은 자신들의 일의 본질을 ‘고객’이 아닌 ‘이윤’으로 잘못 파악했다. 도요타 사건과 관련된 모든 불행이 다름 아닌 여기서 나왔다. 반면 1993년에 시작된 삼성 신경영의 성공은 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한 대표적인 사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삼성이 수주업 분야에서 수조원의 기회 손실을 입었는데, 이는 다음 아닌 수주업이라는 일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었다고 일침하면서 세계 삼류인 삼성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일의 본질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줄고 불면증에 걸릴 정도로 삼성이라는 기업이 하는 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건희는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서 그렇게 파악한 일의 본질을 토대로 일의 특성을 추출해내자 그로부터 일의 핵심 성공 요인을 추려낼 수 있었고, 그 핵심 성공 요인에 관리 역량을 집중하자 사업의 성공이 저절로 따라왔고, 세계 삼류에서 초일류로 도약할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건희에 관련된 여러 자료를 보면 이건희는 일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다음 7가지 질문을 던졌다.

1)이 일은 어떻게 생겨났는가?

2)이 일의 뿌리는 무엇인가?

3)이 일의 핵심 기술은 무엇인가?

4)이 일의 핵심 기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5)이 일의 경쟁력의 핵심은 무엇인가?

6)이 일의 고객은 누구인가?

7)고객의 기호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건희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토대로 삼성 반도체, 신라호텔, 삼성가전, 삼성생명, 삼성카드 등 삼성 각 계열사 사장들이 잘못 파악한 일의 본질을 바로잡았고, 경영의 방향을 새롭게 했다. 결과는 우리가 아는 바대로다.

 

너무도 많은 CEO들이 자신이 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경영의 본질이 무엇인지, 시장의 본질이 무엇인지, 브랜드의 본질이 무엇인지, 임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직원의 본질이 무엇인지, 고객의 본질이 무엇인지, 유통의 본질이 무엇인지, 가격의 본질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아니 대부분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다. 심지어는 벤치마킹이나 창조경영 등의 본질도 모르면서 벤치마킹과 창조경영을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결과는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정체 및 쇠퇴,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소멸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의 평균 수명이 15년 내외이고, 한때 우리나라 매출 순위 상위 1위에서 10위까지를 차지했던 기업의 대부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사실 등이 이를 증명한다.

 

소크라테스는 질문법을 사용해서 불멸의 철학세계를 구축했다. 피터 드러커와 찰스 핸디는 소크라테스의 질문법을 경영학에 적용해서 경영학계의 전설이 되었다. 잭 웰치, 스티브 잡스, 이건희는 소크라테스 식 질문법을 경영 현장에 적용해서 경영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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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 제13화. 경영의 기본, 중국 병법서에서 배워라  인문고전에 빠지다...게시판

2011.02.07.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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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경영의 기본, 중국 병법서에서 배워라 

 

 


 손무(孫武)는 공자가 출생한 해로부터 약 7년 뒤인 BC559년에 제(齊)나라의 낙안(樂安)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제나라의 유력한 정치가문이었다. 그러나 손무가 약 서른 살 되던 해에 권력투쟁에 실패해 가문이 멸망당할 처지에 이르렀다. BC545년, 손무의 가족은 제나라를 탈출해 오나라로 망명했다. 이후 약 10년간 손무는 오나라의 시골에 은거하면서 춘추시대 2백년간 벌어진 전쟁을 연구했고 이를 6,074자로 정리했다. 약 4천여 권에 달하는 중국 병법서의 지존이라 불리는 『손자병법』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손무는 실전을 통해서 자신의 병법을 증명했다. 당시 약소국이었던 오나라는 강대국 초나라와 초나라의 속국인 서나라와 종오국, 역시 강대국인 제나라와 진나라 그리고 남방국 월나라에 둘러싸여 있었다. 오나라의 국경을 둘러싸다시피 한 이들 국가들은 호시탐탐 오나라를 집어삼킬 궁리를 하고 있었다. 손무는 그 시기에 오나라의 장군이 되어 초나라, 서나라, 종오국, 월나라를 정벌했고 제나라와 진나라가 감히 딴 마음을 갖지 못하

 게 만들었다. 특히 오․초 전쟁 때는 3만에 불과한 오나라 군대를 지휘해서 20만에 달하는 초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런 손무를 두고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렇게 평했다.

“오나라가 서쪽의 강대국인 초나라를 무찔러 수도 영(郢)을 차지하고, 북쪽으로 제나라와 진나라를 위협하여 제후들 사이에서 이름을 떨친 것은 손자의 힘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손무의 『손자병법』이 경영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논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은 언어가 아닌 감각으로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경영감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는 즉시 깨달을 것이다. 그 안에 경영의 모든 것이 들어 있음을. 물론 어떤 사람은 『손자병법』을 읽고도 아무것도 느끼는 바가 없을 수 있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그 사람이 경영자로 있는 기업은 오래지 않아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반대로 『손자병법』을 읽고서 의식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 경영자로 있는 기업은 언젠가 반드시 초일류 기업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마이크로 소프트, 제너럴 일렉트릭, 노키아, 시몬스 같은 기업들의 공통점은 『손자병법』을 철저히 연구한다는 것이다.

 일본 경영계의 전설 중의 전설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중국 고대의 선철(先哲) 손무는 천하제일이다. 그의 병법은 우리 그룹을 성공의 길로 이끈 법보다. 때문에 우리 회사 직원들은 모두 『손자병법』을 숭배해야 한다.”

 


 147만 위안의 적자를 기록하면서 파산을 향해 달려가던 하이얼 그룹을 전 세계 160개국에서 1,080억 위안의 매출을 올리는, 3만 1,034배라는 기적 같은 성장을 이룬 회사로 바꾸어놓은, 하버드 경영대학원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의 연구 대상인 장루이민은 『논어』와 『손자병법』에서 경영의 모든 해법을 찾았다고 밝힌 바 있다.                        

 

 형태만 다를 뿐 본질은 전쟁터의 그것과 똑같은 경영 현장에 몸담고 있지 않은 사람은 『손자병법』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아니 거부감마저 느낄 수 있다. 사실 나도 이런 경험을 했다. 나는 그것을 다른 병법서들을 읽으면서 극복했다.                                                                                                                                                            

  북송시대 신종 원풍 3년 즉 1,078년의 일이다. 병법서를 교정하여 간행하라는 황제의 명을 받은 관리들은 그때까지 전해오던 347종 1,956권의 병법서 중에서 가장 훌륭한 7권을 골라서 ‘무경칠서(武經七書)’라 칭하였다. 무학(武學)의 7가지 경전이라 불리는 ‘무경칠서’는 아래와 같다.                               

 


 1. 강태공의 『육도』

 2. 황석공의 『삼략』

 3. 손무의 『손자병법』

 4. 오기의 『오자병법』

 5. 사마양저의 『사마병법』

 6. 울료의 『울료자』

 7. 이정의 『이위공병법』

 

 ‘무경칠서’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그 유명한 제갈공명이 쓴 『제갈량집』과 손무의 후손인 손빈이 쓴 『손빈병법』도 매우 중요한 병법서다.

 나는 중국 병법서를 육도->삼략->손자병법->이위공병법->사마병법->제갈량집->오자병법->손자병법->(‘군사학 논고’ 등)->육도->삼략->손빈병법->울료자->손자병법의 순서로 읽었다. 『육도』와 『삼략』을 한 번 더 읽은 이유는, 중국 병법서 해설집들을 읽다가 손자가 강태공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즉 『손자병법』을 보다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였다. 참고로 말하면 강태공은 중국 병법서의 시조다.

위의 순서대로 중국 병법서를 읽은 기간이 약 16년에 달한다.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별것 아니다. 대학시절에 『육도』 『삼략』 『손자병법』을 처음 접했는데 너무 재미없었다. 그래서 이후 약 10년 넘게 병법서를 손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약 2년 전에 교사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되면서 소위 경영자의 시각이라는 것을 갖게 되었는데 우연히 읽은 『이위공병법』이 범상치 않게 다가왔다. 이후 병법서 독서에 불이 붙었다. 『이위공병법』에 이어 『사마병법』 『제갈량집』 『오자병법』을 읽으니 기존에 잘 이해가 되지 않던 『손자병법』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여기에 더해 고대 로마의 병법서인 『군사학 논고』와 중국 법가의 시조인 관중의 『관자』, 역시 법가인 상앙의 『상군서』, 한비의 『한비자』를 읽고, 고대 로마의 상징 그 자체인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 『내란기』 『알렉산드리아 전쟁기』 『아프리카 전쟁기』 『히스파니아 전쟁기』를 읽고, 근대 군사과학의 창시자라 불리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클라우제비츠에 비견되는 군사전략가인 앙투안 앙리 조미니의 『전쟁술』, 바실 리델 하트의 『전략론』을 읽고, 알렉산더, 칭기즈칸, 이순신, 나폴레옹, 마오쩌둥 같은 위대한 군인들의 삶을 연구했다. 그리고 다시 육도->삼략->손빈병법->울료자->손자병법 순으로 읽으니까 비로소 『손자병법』이 입체적으로 이해되었다. 혹시라도 『손자병법』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되거나 거부감이 든다면 나의 독서이력을 참고하기 바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군대는 『손자병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육해공군 사관학교와 해병대 등에서는 『손자병법』을 군사학 교재로 선정했고, 지휘관들은 『손자병법』을 읽고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미국 군대는 ‘손자병법 신드롬’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손자병법』을 열성적으로 읽고 공부했다. 이후 미국 군대는 세계 최강의 군대로 변신하게 된다. 미국의 경영자들은 군대의 이러한 변화를 주목하고 그 비결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어했다. 『손자병법』이 미국 경영자들의 필독서가 된 게 이즈음의 일이다. 이후 미국 기업은 미국 군대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 최강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물론 미국의 군대와 기업이 2차 대전 이후 세계를 지배하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허나 경영전략적인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아마도 『손자병법』 때문일 것이다. 이는 미국의 여러 저명한 경영사학자들이 경영서의 시조로 『손자병법』을 꼽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970년대에 미국의 경영자들을 뺨칠 정도로 『손자병법』을 열심히 공부하고 기업경영에 적용하는 경영자 집단이 동양의 한 나라에서 나왔다. 일본이다. 『손자병법』이 일본에 전해진 때는 대략 716~735년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자병법』은 약 3백년간 일본 황실의 비서(秘書)였다고 한다. 이후 쇼군 계급에 전파되었고, 쇼군들의 전쟁 지침서가 되었다. 대표적으로 16세기의 유명한 무장 다케다 신겐은 『손자병법』 ‘군쟁편’에 나오는 문구들을 따와서 만든 ‘풍림화산(風林火山)을 부대 운용의 핵심으로 삼았다. 한편으로 일본 최고의 무사로 추앙받는 미야모토 무사시는 『손자병법』에 지대한 영향을 받아 내용면에서 『손자병법』과 유사한 『오륜서』를 쓰기도 했다. 아무튼 1970, 80년대의 일본 경영자들은 『손자병법』과 『오륜서』를 최고의 경영전략서로 삼았다. 그리고 이후 세계 기업계를 지배하게 된다. 지금이야 그 빛이 많이 바랬지만 20세기 말에 일본 기업은 미국을 집어삼킬 정도의 저력을 갖고 있었다.

21세기에 들어서 『손자병법』의 힘을 뒤늦게 발견하고 『손자병법』 공부에 가장 열을 올리는 집단은 중국의 경영자들이다. 최근 중국 기업이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는데 그 원인을 ‘보이는 곳’에서 찾으면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인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찾으라고 한다면 나는 『손자병법』을 비롯한 중국 인문고전을 다시 치열하게 읽고 있는 중국 경영자들의 독서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영자들은 어떨까? 희망적이게도 많은 경영자들이 『손자병법』을 열심히 읽고 있고 기업 경영에도 적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영자들의, 그토록 척박한 경영 환경 아래서도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을 만들어낸 저력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단 우리나라에도 『무오병법』 『김해병서』 『진법언해』 『병학통』 『진설문답』 『동국병감』 같은 훌륭한 병법서들이 많은데 전해져 내려오지 않거나 한글 번역의 미흡 등의 이유로 일반 서점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서 우리 경영자들이 우리 병법서를 기초로 한 우리만의 독창적인 경영전략을 짤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한편으로 나는 경영인들이 『손자병법』과 더불어 『묵자』를 공부할 것을 권하고 싶다. 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공자 이상의 명성을 얻었던 인물로 철저한 전쟁반대론자였다. 그의 핵심사상은 ‘사랑’인데, “남의 나라를 내 나라처럼 대하고, 남의 집을 내 집처럼 대하며, 남의 몸을 내 몸처럼 대하면 세상의 모든 혼란과 다툼, 전쟁이 사라진다”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이런 묵자를 두고 맹자는 “그는 타인을 위하는 일이라면 머리끝에서 발꿈치까지 온몸이 다 닳아 없어질지라도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이다”라고 했고 장자는 “묵자는 천하의 호인으로 비록 몸이 말라서 없어질지라도 남을 위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라고 했다.

묵자의 전쟁반대는 구호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침략전쟁을 일으킨 군주를 직접 찾아가서 담판을 벌여 전쟁을 포기하게 만들었는가 하면, 어떤 나라가 공격을 당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제자들을 이끌고 그 나라로 달려가서 자신이 직접 제작한 첨단 방어 무기를 활용해 침략군을 격퇴했다. 나는 여기에 묵자의 위대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의 기업세계는 손자의 사상에 충실한 경영자가 최고가 되는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윤리경영, 상생경영 등 묵자의 사상과 직간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경영기법이 갈수록 중요시되고 있는 기업세계의 현실을 보면 오래지 않아 묵자의 사상에 충실한 경영자가 최고가 되는 세상이 도래할 것 같다. 아니 하루라도 빨리 그런 세상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때 비로소 기업은 민주주의의 골칫덩이에서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변화하게 될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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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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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화. 미국의 아이들을 변화시킨 ‘카를 비테’ 교육법

 

 

지금으로부터 약 2백 년 전의 일이다. 독일의 한 시골 마을에서 목회를 하던 카를 비테(Karl Witte)는 장차 태어날 아이를 성공적으로 교육하고자 플라톤, 에라스무스, 존 로크, 루소, 페스탈로치 같은 위인들이 집필한 교육 서적과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와 로마의 교육에 관해 쓰인 문헌들을 읽다가 그 책들이 하나같이 당시의 교육과 ‘다른 교육’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카를 비테는 그 책들이 옳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고, 자녀를 그렇게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첫째는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장티푸스로 죽고 둘째는 저능아로 태어났다. 카를 비테는 “하나님, 제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왜 저에게 이런 벌을 내리시나요? 첫째는 병으로 죽고 둘째는 저능아라니요!”라고 울부짖는 아내를 위로하면서 아들 카를 비테 주니어에게 ‘다른 교육’을 실시했다. 카를 비테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비록 아들이 저능아로 태어나긴 했지만 ‘다른 교육’을 받으면 얼마든지 천재가 될 수 있다는. 그가 아들에게 실시한 ‘다른 교육’ 과정 중 하나는 인문고전 독서 교육이었다. 그는 아들에게 태어난 지 15일째부터 위대한 시인들의 시를 읽어주었다. 두 살 때부터는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같은 고전을 읽어주었고, 여덟 살 때부터는 아들 스스로 그리스 로마 고전을 원전으로 읽게 했다.

 

카를 비테 주니어의 두뇌는 위대한 천재들이 집필한 인문고전을 지속적으로 접하고 기적처럼 변했다. 그는 고작 아홉 살에 라이프치히 대학의 입학 자격증을 취득했는가 하면 열세 살에 기젠 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열여섯 살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곧바로 베를린 대학교 법학부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는 여든세 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천재 중 한 명으로 칭송받았다.

 

카를 비테는 저능아 아들을 천재로 키운 비결을 책으로 썼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자녀를 천재로 키우기를 열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책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져버렸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 것 같았던 카를 비테의 저서는 20세기에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 서고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 그리고 그 책을 접한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던 레오 위너는 카를 비테의 책을 읽고 너무 감명을 받은 나머지 기자회견을 열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을 천재로 만들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카를 비테 식 교육을 언급했다. 그의 아들 로버트 위너는 열두 살에 태프트 대학에 입학해서 2년 만에 졸업했다. 열네 살에는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에 입학했고, 열여덟 살에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하버드 대학교와 MIT공대의 교수가 되었고, 인공두뇌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창시했다. 레오 위너의 딸 콘스턴스는 열네 살에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고, 다른 딸 베타는 열두 살에 같은 대학에 입학했다.

 

보리스 사이디스는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고 심리학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그는 아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를 카를 비테 식 교육법으로 교육했는데 그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인문고전 독서 천재 교육이었다. 보리스 사이디스는 자신의 저서 『속물과 천재』에서 고백했다.

“내 아들은 올해 겨우 열두 살이지만……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를 그리스어 원문으로 암기하고 있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같은 그리스 고전 원전도 다른 아이들이 『로빈슨 크루소』를 읽듯이 쉽고 재미있게 읽는다.”

윌리엄 제임스 사이디스는 열한 살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고, 열두 살에는 하버드 대학교 수학 클럽에서 4차원 세계에 관한 논문을 발표해서 백여 명의 교수들을 지적 충격에 빠뜨렸다.

 

태프트 대학교 교수 발도 자녀에게 카를 비테 식 인문고전 독서 천재 교육을 실시했다. 그의 아들 아돌프 발은 열세 살에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해서 3년 만에 졸업했고 곧장 하버드 대학교 법과 대학원에 들어가서 공부를 계속했다. 딸 리나는 열다섯 살에 하버드 대학교 부속 래드클리프 여대에 입학했다. 다른 아들과 딸인 루돌프와 밀리엄 역시 각각 열두 살, 열네 살에 대학생이 되었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외견상으로는 학교 교육과 학원 교육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학교 교육 하나다. 학원의 교육 목표가 학교 성적 올리기이기 때문이다. 학교 교육은 프러시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후진국이었던 프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인들과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 육체노동자들이 필요했다. 이 두 가지는 강대국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인 군사력과 경제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엄청나게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프러시아 지배계층의 눈에 어느 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농민계층의 자녀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농민의 자녀들에게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가 되는 교육을 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세웠다. 후일 프러시아는 독일제국에 합병되었다. 독일제국은 프러시아의 교육 제도를 한층 더 발전시켜서 아예 군대식 학교를 세웠고 1,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영국은 1860년에 의무교육 즉 공립학교 교육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도 프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산업혁명으로 인해 숙련된 공장 노동자가 무한정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농민의 자녀들을 교육하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 제도를 그대로 수입해서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은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기반으로 한 자국의 공립학교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도입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 게 목적이었던 교육 시스템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혹시라도 이 말을 인정하기 어렵다면 다음 사실을 한번 생각해보라.

*군대의 상관은 부하들에게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리고 부하들은 그 명령을 기계처럼 수행한다.

*공장의 장은 휘하 노동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작업 지시를 내리고 노동자들은 그 지시를 기계처럼 수행한다.

*학교의 교사는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학생들은 그 지식을 기계처럼 암기한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학생들은 초중고 합쳐서 무려 12년 동안이나 교육을 받고도 지적이고 창의력 넘치는 인재가 되기는커녕 좀 심하게 말하면 바보가 돼서 사회에 나온다. 대학에 입학해서 다시 4년을 배우고 대학원까지 졸업해도 마찬가지다. 당당히 사회를 이끌어나가는 지식인이 되기는커녕 제 앞 길 하나도 헤쳐 나가지 못하는 무능력한 존재로 전락하는 게 일반적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왜 우리나라 학생들은 배우면 배울수록 무능력한 사람이 되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의 공교육이 시키는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를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시스템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진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신이 학교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배우고도 두뇌와 삶에 어떤 변화도 없었던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당신의 자녀가 학교를 다니면 다닐수록 머리가 비상해지고 삶의 지혜가 발달하는 게 아니라 두 눈에 총기를 잃고 지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게 되는 본질적인 이유를 알아야 한다. 학교를 부정하거나 다니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사들이나 교육부에 돌을 던지라는 의미도 아니다. 학교는 다녀야 한다. 그것도 될 수 있으면 최고의 학교를 다녀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또 교사와 교육부는 프러시아에서 유래된 나쁜 공교육 시스템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인문고전을 집필한 위대한 천재들이 우리나라의 학교 제도를 보면 뭐라고 말할까? 십중팔구 학생의 두뇌를 죽이는, 창조성을 말살시키는, 노예를 만드는,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하루빨리 개혁해야 할, 민족의 운명을 걸고 반드시 새롭게 고쳐야 할 그 무엇이라고 말할 것이다. 동양 철학과 서양 철학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공자와 소크라테스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인문고전 저자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실시한 교육은 교사가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스승과 제자가 깊은 대화를 통해 지혜와 진리를 터득하고 발견해가는 교육이다.

 

새로운 두뇌를 갖고 싶다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다면 지금부터라도 하루 또는 일주일에 몇 시간씩 카를 비테 식 ‘다른 교육’을 실천하기 바란다. 위대한 고전을 집필한 인류의 스승들과 지속적으로 만나 깊은 정신적 대화를 하기 바란다. 그렇게 그동안 받았던 프러시아 식 교육을 두뇌에서 털어내고 지혜와 진리를 추구하는 진정한 배움을 경험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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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0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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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화. 인문고전 독서 전통, 어떻게 사라졌나?

 

 

어느 날 갑자기 우리나라 대학가에서 인문고전 독서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인문고전을 원서로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던 교수도, 신입생에게 플라톤과 공자를 권하던 선배도, 뭐가 뭔지 모르면서도 죽어라고 인문고전을 읽던 학생도 다 사라져버렸다. 대신 그 자리에 베스트셀러를 읽으라는 숙제를 내주는 교수, 신입생에게 재테크 서적을 권하는 선배, 무협판타지 소설을 애독하는 학생들이 들어섰다. 물론 베스트셀러, 재테크 서적, 무협판타지 소설이 나쁘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 아니다. 이 세 가지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다. 나는 고전이 빠져버린 대학 교육의 현실을 강조하기 위해 이 말을 하고 있다. 참고로 말하면 나도 베스트셀러를 즐겨 읽는다.

 

 

『부자 교육 가난한 교육』(동아일보사)이라는 책이 있다. 황용길 미국 루이지애나 주립대학교 교육학과 부교수가 썼는데, 미국 부자 계급의 교육이 빈자 계급의 교육과 얼마나 어떻게 다른지와 우리나라가 사실상 미국 빈자 계급의 교육을 따라하고 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이 책 52쪽을 보면 “고급 지식교육은 똑똑하고 능력 있는 아이들에게나 적당하다. 은행가(부자)의 자식과 광부(빈자)의 자식이 필요로 하는 교육은 종류가 다르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친 교육 평가론의 창시자 에드워드 손다이크(Edward Lee Thorndike)와 그의 추종자 매디슨 그랜트(Madison Grant) 등이 한 말인데, 이들은 진화론과 우생학을 신봉한 철저한 인종차별론자들이었다. 끔찍한 사실은 이들이 미국의 빈자 계급에게 실시할 목적으로 만들었고, 실제로 오늘날 미국 공립학교에서 시행중인 교육 과정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현재 각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빈자 계급을 위한 고전 독서 과정인 클레멘트 코스의 창립자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희망의 인문학』에서 미국의 엘리트주의자들의 숨은 의도를 고발하면서 미국의 빈자 계급이 그 숨은 의도를 분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인문고전 독서라고 말하고 있다.

“……빈민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지 못하도록 하는 강령들을 보면 미국의 엘리트주의는 그리스인의 노예관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가난의 대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일지라도 부자들과 비교해서 인문학(고전)을 공부할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엘리트주의자들의 그러한 선험적 주장은 사실 단 한 번도 제대로 검증받지 않은 채 사회적으로 수용되었던 것이다. 엘리트주의자들의 충고 때문에 빈민들은 인문학(고전)을 공부할 기회를 차단당했고 그 결과 정치적 삶에 이를 수 있는 하나의 효과적인 길을 봉쇄당한 것이다. ……우파들 또한 자신들의 이익을 지켜내는 데에 있어서는 탁월하다.……그들의 관점에서 정확히 이해하고 있듯이, 빈민들이 인문학(고전)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매우 ‘급진’적인 행동인 것이다. 인문학(고전) 학습이 빈민들에게 정치적 삶을 가르치며, 진정한 힘이 존재하고 있는 공적세계로 그들을 확실하게 이끌어주기 때문이다.……타고난 능력에선 부자 아이들과 동등하거나 때론 더 뛰어날 수도 있는 가난한 아이들이지만 현대 사회의 게임에서 그들은 패배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의 빈곤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 대다수의 사람들 그 중에서도 특히 빈민들에게는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 그 자체가 부를 재분배하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7위의 출판대국이다. 일부 언론은 수시로 설문조사나 통계자료를 들먹이면서 우리나라 국민이 정말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만일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책을 읽지 않는다면 세계 7위의 출판 산업이란 존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인문고전 독서량은 세계 몇 위일까? 이 글을 읽는 독자는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책 좀 읽는 사람일 것이다. 소설도 경제경영서도 아닌 인문 분야 그것도 독서에 관한 글을 일부러 찾아 읽을 정도면 정말 남다른 독서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당신에게 묻고 싶다. 미국의 명문 사립 중고등학생들처럼 인문고전을 읽고 도서관에 가서 그 인문고전에 관해 쓰인 주석서들을 전부 읽고, 독후감을 쓰고, 토론을 해본 적이 얼마나 되냐고. 이 질문에 대한 독자들 개개인의 답이 우리나라 지식 경쟁력의 현주소이자 우리나라가 맞이하게 될 미래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두뇌의 수준은 그가 읽는 책의 수준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그리고 두뇌가 우수한 인간이 그렇지 못한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 또한 상식이다. 이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인류 역사의 어느 시대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지배 계급은 이 사실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피지배 계급의 문자 교육 자체를 금지했다. 이 악습은 현대 민주주의의 상징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에서 이상한 형태로 되살아났다. 문자 교육 자체에 있어서는 평등을 추구했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불평등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미국의 부자 계급은 사립학교를 다니고 있고 빈자 계급은 공립학교를 다니고 있다.

 

물론 미국의 모든 엘리트들이 이런 식의 교육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당시 미국 지식인 사회에서 격렬한 반대가 있었고, 지금도 많은 양심적인 지식인들이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또 얼 쇼리스 같은 사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많은 엘리트들이 빈자 계급에 대한 책임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고 또 실제로 부자 계급과 빈자 계급의 지식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한편으로 미국은 사립 중고교 및 대학의 문을 세계 각국에 활짝 열어놓고 있다. 미국의 지배 계급이 전부 손다이크나 그랜트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허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에 들어온 미국의 교육 과정이 리더의 두뇌를 가진 사람을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인문학 중심의 사립학교 교육 과정이 아닌 노동자의 두뇌를 가진 사람을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립학교 교육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 과정이 우리나라에 완전히 정착하고 나자 우리나라에서 인문고전 독서의 전통이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유색인종 발전을 위한 국가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Advancement of Colored People)’를 세운 흑인 지식인 뒤부아(W. E. B. Du Bois)는 미국 인종주의 교육학자들의 교육 이론에 반대해서 외롭게 투쟁했다. 황용길 교수가 정리한 뒤부아의 지식교육론 중 일부를 옮겨보겠다.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미래의 지도자는 지식 중심으로 교육되고 배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식교육을 버리라니, 이는 우리의 운명을 백인들에게 맡기고 그들의 사슬에 묶여 마냥 끌려만 다니는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

뒤부아의 절규를 접하고 나는 가슴에 묵직한 돌덩이 한 개가 얹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뒤부아의 절규가 곧 21세기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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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성의 『인문고전 독서법』- 제13화. 경영의 기본, 중국 병법서에서 배워라  (0) 201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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