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노조의 전설적인 지도자 월터 류터와 포드 자동차의 창업자 헨리 포드 2세가 자동화된 자동차 공장을 둘러볼 때였다. 포드가 류터에게 “위원장님, 저 로봇들로부터 노조회비를 어떻게 받으실 건가요”라고 묻자, 류터는 곧장 이렇게 받아쳤다고 한다. “회장님, 저 로봇들에게 어떻게 차를 팔 생각이십니까?” (마틴 포드, <로봇의 부상 - 인공지능의 진화와 미래의 실직 위협) 301쪽)
두 사람이 나눴다고 전해지는 이 대화 속에는 로봇이 노동자를 대체할 것이며 그 결과 시장의 구매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고가 담겨있다.
자동화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될 미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이런 고민에서 출발하는 책 <로봇의 부상>(세종서적·2016)의 저자 마틴 포드는 기계가 “이제까지 수행해오던 도구의 역할을 벗어나 독립적인 근로자의 지위를 확보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노동이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시대가 올 경우 인간은 무엇으로 소득을 얻고 생존할 수 있을까?
■교육으로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기계가 대체할 일자리가 어느 정도나 될 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컴퓨터의 물리적 계산력이 무어의 법칙에 따라 폭발적인 성장을 했고, 알고리즘의 발달로 인간처럼 추론하고 창의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기계의 등장 역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출간된 책이라 알파고에 대한 이야기는 담겨 있지 않지만 책에서 소개하는 인공지능 발전상 만으로도 이미 현기증이 날 정도다. 컴퓨터가 호기심과 창의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2009년 코넬대학교의 크레에이티브 머신 연구팀이 개발한 ‘유레카’는 특히 인상적이다.
유레카는 생명의 진화에서 힌트를 얻은 유전자 프로그래밍을 활용한 ‘자동 발명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유레카는 무작위적으로 만든 수학 방정식이 실제 데이터와 일치할 때까지 반복해서 방정식을 만들어가면서 자연의 기본 법칙을 발견한다. 연구진이 물리 법칙을 프로그램에 입력하거나 관련 정보를 넣지 않았는데도 이 프로그램은 진자 운동을 관찰한 지 몇 시간 만에 뉴턴의 운동 제2법칙을 비롯한 진자의 운동 관련 물리 법칙 몇 가지를 찾아냈다.
음악에 특화된 알고리즘인 ‘야머스’는 수백만개의 곡을 작곡했는데 하나의 곡을 작곡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몇 분에 불과하다. 2012년 7월에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야머스가 만든 ‘심연 속으로’라는 곡을 연주하기도 했다. 야머스가 작곡한 노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는 개인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최소한 전문가들은 듣기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일본 국립정보학연구소의 수학자 아라이 노리코는 도쿄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할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 개발을 이끌고 있다. 그는 자신의 연구가 성공할 경우 고용 시장에 지각변동이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최고 대학에 합격하는 데 필요한 자연어 이해력과 분석력을 갖춘 컴퓨터라면, 대학 졸업자가 수행하고 있는 직무 중 상당 부분을 컴퓨터가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가 음악을 작곡하거나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대학 입학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면 나중에는 법률 관련 전략을 수립하거나 경영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공지능에 위협받지 않을 직업은 거의 없다.
이미 로봇 저널리즘의 발달로 기자가, 대규모 온라인 공개 강의(MOOC)의 등장으로 대학의 교수와 강사 자리가, IBM의 왓슨과 같은 슈퍼 컴퓨터의 등장으로 일부 의사들이, 실시간 통번역 기술의 발달로 인간 통번역사의 일자리가 위협받고 있다. 증권시장의 거래는 이미 70% 정도가 자동화된 거래 알고리즘으로 대체됐다.
고숙련 일자리마저 인공지능에 대체되는 상황에서 교육을 더 많이 받고 더 높은 기술을 습득한다고 미래의 자동화로부터 일자리를 지키리라는 보장이 없다. 저자는 “기술 발전과 교육의 경주가 이제 거의 결승선에 도달했고 기계가 고숙련 직종까지 넘보는 것이 현실”이라며 “기계와 싸우기보다 교육 훈련으로 이들과 나란히 달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더 이상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교육으로 기계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지만 그 정도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되어 있고 보장되는 일자리도 소수에 불과하다. 그 일자리마저 종내 기계에 대체될 수 있다. 일자리 다수가 기계에 대체되면 노동으로 번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노동자들은 한편으로는 소비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들이 사라진 자본주의 사회는 어떻게 변할 것인가?
■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있는 대안은 기본소득
자동화로 노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 사람이 줄면 소득은 기계를 소유한 극소수 엘리트의 수중에 집중될 것이다. 소득 양극화는 소비 양극화로 이어진다. 미국에서 1992년 가계 소득 최상위 5%는 전체 소비의 27%를 차지했는데 이 비율은 2012년이 되자 38%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득 하위 80%가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7%에서 39%로 줄었다.
이런 현상을 관찰한 시티그룹의 애널리스트들은 2008년 초 가장 부유한 고객들에게만 보낸 메모에서 “급속히 와해되어가는 미국 중산층을 고객으로 하는 회사의 주식을 포기하고, 최상위층을 고객으로 하는 사치품 및 서비스생산업체 쪽으로 눈을 돌릴 것”을 권고했다.
주식 투자가 아닌 시장의 관점에서 볼 때 구매력은 소수에 집중된 것보다는 고르게 분배되는 편이 낫다. 저자의 말대로 “억만장자라고 해서 스마트폰을 1000개, 자동차를 1000대를 사지는 않기 때문”이다. 현실은 그러나 반대로 진행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미국의 고용률이 이전의 최고 수준까지 회복됐지만 내용면에서는 저임금의 불안정한 일자리가 그 증가분의 다수를 차지했다.
개인 소비는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가 넘고 다른 선진국에서도 대략 60퍼센트 이상이다. 개인 소비자의 압도적 다수는 소득의 거의 전부를 고용으로부터 얻고 있다.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발생한 수요 부족은 오늘날 세계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진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실업이 장기적(심지어 영구적)이고 일자리를 얻더라도 저임금의 불안정 일자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퍼지면 사람들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소비 보다 저축을 늘릴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면 경제 침체기에 정부가 흔히 쓰는 재정 지출 확대나 세금 감면과 같은 정책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기업들이 고용을 늘리지 않고도 정부 지출 증가로 늘어난 수요에 자동화로 대응할 수 있다면 실업 해결도 기대하기 어렵다. 중앙은행의 통화정책도 비슷한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더 많은 돈을 발행해도 기업의 추가 고용이 없다면 구매력을 소비자들의 손에 쥐어줄 방법이 없다.
결국 저자는 노동을 조건으로 하지 않는 소득보장이야말로 구매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저자는 “교육에 더 많은 투자를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리나는 점을 인정한다면, 그리고 자동화의 진행을 중단시키자는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면 “경제 성장을 지속하는 데에 있어 구매력을 이렇게 직접 재배분하는 일은 경제에 필수적인 것이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기본소득으로 알려진 이 방법이 모든 사람에게 사회 안전망을 제공하면서도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시장 지향적 접근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최저 임금, 식량 쿠폰, 빈민을 위한 후생, 주거비 지원처럼 덜 효율적인 정책들이 불필요해지고 지원 대상자를 선정하고 심사하기 위한 행정 비용도 줄어든다. 경제가 어려울 때 구매력을 유지시켜 경기 안정화 역할도 할 수 있다.
보수 진영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도 이러한 입장에서 기본소득을 지지했다. 그는 1973~1979년 사이 출간된 세 권의 저서 <법, 입법, 그리고 자유>에서 “일정수준의 기본소득을 모든 사람에게 보장하는 일, 달리 말해 스스로를 부양할 능력을 잃어도 일정한 선 이하로 생활수준이 떨어지지 않게 해주는 일, 이는 단순히 모든 사람을 위한 보호 차원을 떠나 위대한 사회의 한 요소로서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기본소득 도입은 인간 본성에 관한 실험
기본소득 도입은 조건 없는 소득을 보장할 때 인간이 게을러질 것인지 아니면 안정적인 소득을 바탕으로 더 혁신적인 일에 도전할 것인지를 실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양자의 경향이 다 나타나겠지만 저자는 후자에 더 무게를 뒀다. 그는 그 근거로 보수주의 경제학자들이 정부 규제 강화에 대한 반론을 제시할 때 흔히 거론하는 ‘펠츠먼 효과’를 들었다.
시카고대학교 경제학자 샘 펠츠먼은 1975년 발표한 논문에서 “자동차 안전을 개선할 목적으로 도입된 규제가 고속도로 인명 사고를 의미 있을 정도로 줄이지 못했다”면서 그 원인이 “안전성이 증가해도 운전자들이 더 위험하게 운전을 해서 이를 상쇄해버리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펠츠먼 효과는 안전한 만큼 더 위험하게 행동하는 심리를 설명한다. 이를 기본소득에 적용하면 보장된 소득이 있는 상태에서 혁신적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사람들이 안전한 직장을 버리고 창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저자는 “소득보장제도를 잘만 고안하면 국가를 게으름뱅이 천국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역동적이고 기업가 정신이 넘치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저자는 “경제 전체를 하나의 자원으로 보는” 시각에서도 기본소득을 도입할 정당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생산은 소비라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는 점에서 구매력은 일종의 공공재라 할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이나 자동화와 같은 생산 기술은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노력을 기울인 결과이며, 이러한 과정에는 납세자의 돈이 투입된다.
저자는 “이렇게 축적된 모든 진보와 역동적인 시장 경제를 지탱하는 경제 및 정치적 제도는 사실상 모든 시민 소유의 자원이라고 해도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며 “내가 제안한 소득보장 대신 시민 배당금이라는 표현도 자주 쓰이는데 이 표현은 어떤 나라의 전체적 경제 번영에 모든 사람이 적어도 조금은 기여했다는 주장을 잘 반영한다”고 말했다.
기본소득이 인간을 나태하게 만들고 혁신을 방해할 것이라는 심리적인 저항감을 해소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본소득을 위한 재원 마련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저자는 실현 가능성이 높은 재원 마련 방법으로 미국에서만 연간 1000억달러의 세수를 늘릴 것으로 예상되는 탄소세를 들었다. 법인세율 인상이나 조세 회피 차단, 토지세와 고액 자본소득세, 금융거래세 등도 거론했다. 개인 소득세도 누진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그는 “최상위 소득 계층에 대한 세율이 70%였던 1970년대 중반에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가 창업되었다는 사실은 기업가들이 최고 세율 때문에 골머리를 앓느라 시간 낭비를 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된다”고 말했다.
이제 눈을 돌려 국내 상황을 보자. 최저임금위원회는 지난달 7일 2017년에 적용될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한 제 1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되는 6월말까지 사회 각계의 힘겨루기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결국 노동을 전제로 한다. 자동화로 대다수 일자리가 사라져버릴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특히 최저임금을 받는 직업일수록 자동화에 더 취약하다. 저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 인상도 중요하지만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논의를 시급히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지난달 15일 정재승 KAIST 교수는 인공지능과 관련한 한 강연에서 한국의 로봇 채용율이 세계 최고임을 지적하면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할 경우에 발생할 경제적 문제를 거론했다. 그는 “로봇이 소비를 하도록 할 수 없다면 인간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로봇을 고용하는 것이 노동자를 고용하는 비용보다 낮아지면 결국 노동자들이 설 자리는 없게 된다. 정 교수의 말은 ‘노동자=소비자’라는 점에서 이들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해 소비자 지위라도 유지시켜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할 유일한 방법이 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경제학자도 아닌 뇌과학자가 기본소득을 주장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과거의 통계만으로 이론을 만들어가는 경제학자보다는 일상적으로 기술의 발전상을 들여다보는 과학자들의 미래 예측이 더 정확할 수 있다. 이처럼 기본소득 논의에는 경제학계만이 아니라 공학, 심리학 등 거의 모든 학문 분야의 참여가 필요하다. 기본소득은 경제 활동과 노동을 바라보는 인간의 인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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